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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1 편 기도의 진화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22 (수) 23:22 조회 : 2037
 

제 91 편   기도의 진화

 

종교에 있어서 하나의 매개자에 해당하는 기도(祈禱)는, 그 전에 있었던 비종교적인 독백(獨白)과 대화의 표현들로부터 진화되었다. 원시인이 자아 의식을 획득하게 됨으로써, 그 결과로 발생되는 필연적인 다른 의식, 사회적인 반응과 하느님 인식(認識)의 이원적(二元的)인 잠재가 발생되었다.

 

최초의 기도 형태들은 신(神)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표현들은 너희들이 어떤 중요한 일을 하면서 "나의 성공을 빌어 달라"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였다. 원시인은 마술에 노예가 된 상태였으며 행운과 불운은 삶에 있어서 모든 것들과 결부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행운의 요청이 독백 형식으로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똑같은- 행해졌다. 그 다음에는, 행운을 믿는 이 사람들이 자기 친구들과 가족들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이윽고 전체 씨족 또는 부족을 참여시키는 어떤 형태의 예식이 행해지게 되었다.

 

귀신들과 영들에 대한 개념들이 발전하게 되자, 이러한 청원들은 그 요청에 있어서 초인간적인 것이 되었으며, 하느님들에 대한 의식과 함께, 그러한 표현들은 참된 기도의 차원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에 대한 한 예로, 오스트랄리아의 어떤 부족들 사이에서는 원시적 종교 형태의 기도가 영들과 초인간적 품성들에 대한 믿음보다도 먼저 생겼다.

 

인도에 있는 토다 부족은 특별한 대상이 없이 기도하는 관습이 지금도 있는데, 종교적인 의식이 생기기 전의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오직, 토다 부족 사이의 경우에서만큼은, 이것이 그들의 퇴보하는 종교가 이러한 원시적인 차원으로의 역행(逆行)을 보여준다. 토다 부족 중에서 낙농업(酪農業)에 종사하는 사제들의 오늘날의 의식(儀式) 행사들은 종교적인 예식과 상관이 없는데, 왜냐하면 비품성적인 이러한 기도들이 사회적 가치나 도덕적 가치 또는 영적 가치의 보존 또는 증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형성되기 이전의 기도는, 멜라네시아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숙달시키는 과정과 아프리카 피그미 종족의 우다 신앙 그리고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마니투의 일부였다. 아프리카에 있는 바간다 부족들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초자연적 차원의 기도에서 탈피하였다. 이러한 초기 진화의 혼란 상태 속에서 사람들은 하느님들 -지역적인 그리고 민족적인- 에게, 주물들, 부적(符籍)들, 귀신들, 통치자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향하여 기도하였다.

 

1. 원시적인 기도

 

초기의 진화적 종교의 기능은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 가는 사회적, 도덕적, 영적 가치들을 보존하고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종교의 이러한 임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의식적(意識的)으로 관찰 되지는 않았지만, 주로 기도의 역할에 의해서 달성되었다. 보다 높은 가치들의 이러한 보존을 확실하게 하려는 (실제화 하려는) 모든 집단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도 하는 습관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기도의 보호를 위하여, 모든 거룩한 날들은 단순한 휴일의 지위로 재빨리 전환되었다.

 

그 주요 부분이 기도인 종교 그리고 그 매개자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 집단적인 동의를 얻은 그러한 가치들과만 결합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인이 보다 낮은 차원의 자기감정들을 만족시키거나 순전히 이기적인 야망을 달성하려고 시도할 때, 그는 종교의 위로와 기도의 협력을 잃어버린다. 만약에 그 개인이 반(反) 사회적인 어떤 것을 이룩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비종교적인 마술의 협력을 추구하고 요술쟁이들에게 의지하고 그리하여 기도의 도움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매우 옛날부터 사회적인 진화와 도덕적인 진보 그리고 영적인 달성을 강력하게 증진시키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원시적인 마음은 논리적이지도 않았고 일관성도 없었다. 옛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들 이 기도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단순한 마음을 소유한 그 사람들은 음식과 주거지와 비와 오락 그리고 다른 물질들이 사회적인 행복을 증진시켜준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이러한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기도를 오용(誤用) 하는 요인이 되었던 반면,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활동들에 의해서 이러한 물질적 목표들을 실현 시키려는 노력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였다. 기도의 그러한 타락은, 사람의 영적인 가치들 을 저하시키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윤리적 관습들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켰다.


원시적인 유형의 마음을 소유한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기도는 독백(獨白)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대화 형체가 되었고 집단적인 경배의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기도는, 마술(魔術) 전에 있었던 원시적인 종교의 주문(呪文)이 진화하여, 인간 마음이 사회적인 가치들을 증진시키고 도덕적 이상(理想)들을 증대시킬 수 있는 인정 많은 힘들 또는 존재들의 실체를 인식 하는 차원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예시(豫示)하며,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영향들이 초인간적이라는 사실과 자아 인식의 인간 그리고 그 동료 필사자들의 자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예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사명활동 매개자가 품성적인 것으로 가시화(可視化)되기 전에는 참된 기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는 정령(精靈) 숭배와 거의 관련이 없지만, 그러한 신념들은 출현하는 종교적 감정들에 따라서 존재할 수도 있다. 종교와 정령 숭배가 전혀 다른 기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원시적인 두려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필사자들에게는, 모든 기도가 죄에 대한 병적(病的)인 감각, 실제적이든지 공상에 의한 것이든지 범죄에 대한 근거 없는 신념으로 발전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의식에 대하여 위험할 정도로 낙심하게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기도에 바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도에 대한 왜곡과 오용에 수반되는 위험들이 무지, 미신, 정형화(定型化), 생명력 상실, 물질주의, 그리고 광신(狂信) 속에 존재하고 있다.

 

2. 진화하는 기도

 

처음에 하였던 기도들은 소원하는 것들을 말로 표현한 것, 진지한 욕망들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다음에 기도는 영적인 협동을 달성하는 기법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다음에는, 모든 보람 있는 가치들의 보존에 있어서 조력(助力)하는 종교의 보다 높은 기능을 달성하였다.

 

기도와 마술 두 가지는 모두 유란시아의 환경에 순응하는 사람의 반응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된 관계를 제외한다면, 공통점이 거의 없다. 기도는 반드시 기도하는 자기에 의한 긍정적인 활동을 가리키며 항상 심리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영적이기도 하다. 마술은 대개 조작자, 마술을 행하는 사람의 자기와 상관없이 실체를 조종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그것들의 독립적인 기원(起源)에도 불구하고, 마술과 기도는 후대의 발전단계에 있어서 서로 관련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술은 습관적인 방식으로부터 의식(儀式)과 주문(呪文)의 단계를 거쳐 참된 기도의 입구까지 이르는 목표 향상에 의해 발전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때로는 기도가 너무나 물질적인 것이 되어, 유란시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피하는 사이비 마술 기법으로 타락하였다.

 

기도가 하느님들을 움직이게 할 수 없음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자, 그것은 좀 더 탄원적(歎願的)인, 은혜를 추구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가장 진지한 기도는 사람과 그의 조물주 사이의 교제이다.

 

어떤 종교의 경우든지 희생 제물을 바치는 개념의 출현은 참된 기도의 더욱 높은 효능보다 훨씬 못한 것이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신들의 헌신된 의지들을 바치는 대신에 물질적인 소유물들을 바치려고 한다.

 

종교가 품성적인 하느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종교의 기도들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으로 변형된다. 어떤 종교가 갖는 하느님에 대한 가장 높은 개념이 범신론적인 이상주의처럼 비품성적인 신(神)의 개념일 때에는, 특정한 형태의 교제를 위한 기초가 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참된 기도의 잠재력에 치명적인 것임이 입증되는데, 그 기도는 언제나 품성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와 사람의 교제를 의미한다.

 

인종 진화의 초기 시대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보통 수준의 필사자가 겪는 매일 매일의 경험 속에서, 기도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잠재의식과의 교제 현상인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적인 경고(警告)와 영적 진보가 인간 마음의 초의식적인 차원, 내주(內住)하는 생각조절자의 권역과 어느 정도의 접촉을 개인적으로 달성하는 기도의 권역도 역시 존재한다. 그 외에도, 거기에는 우주의 영적인 세력들에 의해서 그것의 수신(受信)과 인식(認識)에 관여하는 참된 기도의 분명한 영적 위상이 있으며, 그것은 모든 인간과 지적인 연합체와는 전반적으로 다르다.

 

기도는 진화하는 인간 마음의 종교적인 감상(感想)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그것은 품성이 고립되지 않도록 막는 일에 큰 영향을 준다.

 

기도는, 윤리적으로 탁월한 높은 종교, 계시 종교의 경험적 가치들의 일부분을 형성하기도 하는 인종적 진화의 자연적인 종교들과 연합된 하나의 기법을 대표한다.

 

3. 기도와 또 다른 자기

 

말을 사용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운 아이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아무도 듣지 아니할지라도 생각을 소리치려는 경향,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창조적인 상상력이 생기면서 그들은 가상(假想)의 동행자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새로 나타나는 자기는 이런 식으로 가상의 또 다른 자기와 교제하고자 한다. 그 아이는 이러한 기법을 통하여 자신의 독백을 가상의 대화로 바꾸는 방법을 일찍부터 터득하는데, 그 대화 속에서 이 또 다른 자기는 말로 표현된 자신의 생각과 희망에게 반응한다. 어른의 생각은 거의 정신적으로 대화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초기의 원시적인 기도 형태는 오늘날 토다 부족의 반(半) 마술적인 암송(暗誦), 특정한 어떤 대상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 기도들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 기법들은 또 다른 자기에 대한 개념이 나타남으로써 서로 의사소통하는 대화 유형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때가 이르면 또 다른 자기 개념은 신성한 존엄성이라는 초월적인 지위로 강화되고, 종교의 매개자인 기도가 나타난다. 여러 위상을 거쳐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원시적 유형의 기도는 진정으로 윤리적이고 지능적인 기도의 차원을 달성하기 전에 계속 진화하게 되어 있다.

 

기도하는 필사자들의 이어지는 세대에 의해 인식되는 것처럼, 또 다른 자기는 귀신들과 주물(呪物)들 그리고 영들의 단계를 거쳐 다신론적(多神論的) 하느님들의 개념으로 진화하고, 결국에는 유일하신 하느님, 가장 높은 이상(理想)들과 기도하는 자기의 가장 고귀한 소망을 구현하는 신성한 존재에 이르기까지 진화한다. 그렇게 하여 기도는 기도하는 자들의 가장 고귀한 가치들과 이상들을 보존함에 있어서 종교의 가장 강력한 매개자로 기능한다. 또 다른 자기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하늘에 계신 신성한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출현될 때까지, 기도는 언제나 사회화시키고 교화(敎化)하고 영(靈)화시키는 실습이다.

 

신앙으로 하는 단순한 기도는 인간 경험에서 강력한 진화를 입증하고, 그것에 의하여 원시적인 종교의 또 다른 자기에 대한 허구적인 상징물과의 먼 옛날의 대화는, 무한자의 영과 교제를 나누는 차원으로 그리고 모든 지적인 창조의 주인이신 영원한 하느님과 낙원 아버지의 실체에 대하여 진정으로 의식하는 차원으로 고양되게 되었다.

 

기도하는 경험 속에서의 초(超)자아에 해당되는 모든 것을 제외한다면, 윤리적인 기도가 한 사람의 자기를 증진시키고 그 자아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과 보다 높은 달성을 강화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기도는 인간 자아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볼 수 있게 유도하는데, 필사자 경험의 잠재의식 저장소에 대한 물질적인 원조와, 영적인 존재, 신비 감시자와 물질적인 존재가 접촉하는 초의식적 경계선에 이르도록 하는 통찰력과 안내가 그것들이다.

 

기도는 지금까지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중적인 인간 경험인데, 영적인 기법과 상호 연합된 심리적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의 두 가지 기능들은 결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계몽(啓蒙)된 기도는 반드시 외부에 있고 그리고 품성적인 하느님을 인식해야만 할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고 그리고 비품성적인 신성(神聖), 내주하는 조절자도 인식해야만 한다. 사람이, 기도할 때, 낙원의 우주 아버지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기 위하여 애를 쓰려고 하는 것은 모두 맞는 일이다 그러나, 가장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더욱 효과적인 기법은 바로 원시적 마음이 습관처럼 행해왔던 것과 똑 같이,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자기의 개념으로 되돌아가 보는 것이며, 그리고는 이 또 다른 자기의 관념이 단순한 상상에서부터 조절자의 현실적인 실재로서 필사자 사람 안에 내주한다는 하느님의 진리까지 진화해 온 것, 그리하여 사람이, 말하자면,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있는 하느님, 우주 아버지의 바로 그 현존이자 본질인 그리고 자신에게 내주하고 있는, 실제이자 진정이며 그리고 신성한 또 다른 자기와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4. 윤리적인 기도

 

청원하는 자가 자기 동료들보다 유리한 이기적인 것을 추구할 때에는 어떤 기도도 윤리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기도는, 이타적(利他的)이고 거룩한 사랑에 입각한 윤리적 종교들과 모순 된다. 그러한 비윤리적인 모든 기도는 가짜 마술의 원시적인 차원들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발전하는 문명들과 계몽(啓蒙)된 종교들에 적합하지 않다. 이기적인 기도는 충실한 공의 위에 세워진 모든 윤리들의 마음에 위배된다.

 

기도는 행동을 대치시키게 될 만큼 악용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모든 윤리적인 기도는 행동에 대한 자극이며, 초월적 자아 달성이라는 이상적인 목적을 위하여 점진적으로 분투하게 하는 안내자이다.

 

너희들이 하는 모든 기도에 있어서 공정 하라. 하느님께서 자신의 다른 자녀들, 네 형제들과 이웃들 그리고 심지어는 적들보다 더 너를 사랑하시는 편애(偏愛)를 기대하지 마라. 그러나 자연적이고 진화 종교들의 기도는, 후대의 계시된 종교에서의 기도와는 달리, 처음에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모든 기도는, 개인적이든지 집단적이든지,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그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고 그의 동료들을 위해서도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의 그러한 태도들은 참된 경배의 차원으로 향하게 된다. 이기주의적인 기도들은 고백들과 청원들을 포함하며 물질적인 은혜에 대한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도는 그것이 용서를 취급할 때 그리고 증진된 자아 조정을 위해 지혜를 추구할 때 약간 더 윤리적이다.

 

이기적이 아닌 유형의 기도가 강하게 하고 위안을 주는 반면, 법칙과 질서 속에 운행되는 물리적 우주 속에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발전적인 과학적 탐험이 규명하게 됨에 따라 물질적인 기도는 실망과 환멸감을 주게 되어 있다. 어떤 개인 또는 어떤 종족의 유년기의 특징은 유치하고 이기적이며 물질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청원들이 어느 정도는 효과를 나타내게 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러한 기도들의 응답을 성취하도록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방향으로 변함없이 인도되고 있다. 신앙으로 하는 참된 기도는, 비록 그러한 청원들이 영적인 보답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할지라도, 반드시 삶의 기법을 증대시키는 일에 기여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진보된 사람은 그러한 기도들에 관하여 원시적이거나 또는 미숙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낙담시키게 되는 일을 크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가 하느님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신앙으로 기도를 하고 확실하게 기대를 하는 그 사람 속에 거대한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변화들이 발생되는 경우가 매우 흔히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기도는 진화하는 종족들의 남녀 사람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 쾌활함, 침착, 용기, 자제심(自制心), 그리고 공정성을 조성해 왔다.

 

5. 기도의 사회적인 영향

 

조상에 대한 경배 속에서, 기도는 조상의 이상(理想)들을 개발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신(神) 경배의 면으로서의 기도는 그러한 모든 다른 청원들을 초월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신성한 이상(理想)들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의 또 다른 자기에 대한 개념이 최고의 신성한 존재가 된 것처럼, 사람의 이상(理想)들은 그에 따라 단순한 인간적인 상태로부터 숭고하고 신성한 차원으로 상승되었으며, 그러한 모든 기도의 결과로 인간의 성격이 증진되었고 인간의 품성이 심원한 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기도가 항상 개인적인 것은 아니다. 집단적인 기도 또는 회중 기도가 매우 효과적인데, 그 속에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 심오한 사회화(社會化)가 이루어진다. 어떤 집단이 더 나은 발전과 영적인 향상을 위한 공동체적 기도에 참여할 때, 그러한 헌신적 태도들은 그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에게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며 그들은 모두 참여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 낫게 변화되는 것이다. 심지어 도시 전체 또는 한 나라 전체가 그러한 기도에의 헌신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고백과 회개와 기도는 개인들과 도시들과 국가들로 하여금 과감한 성취에 대한 개혁과 용기 있는 행동들을 유발하는 엄청난 운동들이 일어나게 해 왔다.

 

만일에 너희가 어떤 친구를 비난하는 습관을 정말로 극복한다면, 그러한 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분명한 방법은 너희 삶 속에서 그 사람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들의 사회적인 반응은 주로 두 가지 조건들에 의해 좌우된다.

 

1.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그 사람은 자기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2. 기도하는 그 사람은 자기가 기도하고 있는 그 사람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는 접촉을 가져야만 한다.

 

기도는 그것에 의하여 모든 종교들이 얼마 안 가서 제도화시키게 된 기법이다. 그리고 기도는 조만 간에 수많은 부차적(副次的)인 매개자들과 결합되게 되는데, 어떤 것들은 도움이 되지만 또 어떤 것들은 뚜렷하게 해로운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 중에는 사제(司祭)들, 거룩한 책들, 경배 의식(儀式)들, 그리고 예식들이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더욱 계몽된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연약한 영적 통찰력을 가진 자신들을 충동시키기 위하여 상징적인 것들을 갈망하는 지능이 모자라는 상태로 태어난 자들에 대하여 참아야 하고 아량을 베풀어야만 한다.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상징물이 없이도 하느님을 인식(認識)하는 자들은, 형식과 예식이 없이는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을 경배하기가 어렵고 신(神)을 숭배하기가 어려운 그들에게 상징물의 은혜로운 사명활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신앙심이 깊은 경배 속에서, 대부분의 필사자들은 자신들의 헌신의 대상 목표에 해당되는 어떤 상징물을 마음속에 그린다.

 

6. 기도의 범위

 

기도는, 영역의 물질적 감독자들과 품성적인 영적 기세들의 뜻 그리고 행동과 접촉을 가지지 않는 한, 그의 물리적인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기도에서의 청원의 관할분야가 매우 한정적으로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제한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신앙에도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실제적이고 유기체적인 질병들을 고치는 기법은 아니지만, 풍족한 건강을 누리도록 하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하며, 정신적인 질병과 감정적인 질병 그리고 신경증적인 질병들을 치유하는 일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되는 실제적인 질환의 경우에도 기도가 다른 치료 절차들의 효험을 증대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기도는 흥분을 잘하고 불평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변화시켜서 모범적인 환자가 되게 하고 고통을 받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격려를 주도록 만든다.

 

기도의 효능에 관하여, 신성한 근원들로부터의 도움과 인도를 추구하려고 하는 항상 존재하는 충동과 과학적인 의구심을 조화시키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품성적인 행복과 개별적인 자아 조정과 사회적인 조화와 도덕적인 진보 그리고 영적인 달성을 위하여 신앙으로 하는 진지한 기도가 강력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도는, 심지어 순전히 인간적인 행위인 경우일지라도, 사람의 또 다른 자기와의 대화인데, 인간 마음의 무의식적인 영역 속에 저장되고 보존되는 축적된 인간 본성적 힘들을 실현시키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 기법을 조성한다. 기도는, 그것의 종교적인 함축성과 영적인 의미를 제외한다면, 하나의 건전한 심리적 관습이다. 인간의 경험적인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만약에 충분히 심각하게 궁지에 몰리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어떤 근원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기도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당하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요청할 만큼 게을러서는 안 되지만, 너희들 자신이 당면한 그 문제들을 단호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대처하면서 너희들을 인도하고 지탱시킬 수 있는 영적인 힘과 지혜를 서슴지 말고 그에게 요청해라.

 

기도는 종교적인 문명의 진보와 보존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왔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과학적인 사실들과 철학적인 지혜와 지적인 진지함 그리고 영적인 신앙의 견지에서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공동체의 더욱 앞선 진보와 영(靈)화를 이룩하도록 여전히 크게 기여할 것이다. 예수가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진지하게, 이타적(利他的)으로, 공정함으로,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기도해라.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의 품성적 영적 경험 안에 있는 기도의 효험은 어떤 식으로도, 그러한 경배자의 지적인 납득, 철학적인 통찰력, 사회적인 차원, 문화적 지위, 또는 기타 필사자로서의 학식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신앙을 가진 기도에서 정신적 그리고 영적으로 공존하며 따라오는 것은 즉각적이고, 품성적이며 그리고 경험적이다. 누구든지, 다른 모든 필사자들의 업적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조물주와 교통할 수 있는 영역의 문턱, 창조체가 창조주의 실체인 내주하는 생각조절자와 접촉할 수 있는 곳에 그렇게 효과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기법은 없다.

 

7. 신비주의, 황홀경, 영감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배양하는 기법인 신비주의는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관습들이 사회적인 고립을 야기하고 종교적인 광신적(狂信的)인 지경에 달하게 되면, 그것들은 모두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과도한 신비주의가 신성한 통찰력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깊은 마음에서 솟아난 것인 경우가 너무나 흔하게 있다. 필사자 마음이 그 속에 내주(內住)하는 조절자와 접촉하는 것은, 몰입된 묵상에 의해서 혜택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자기 이웃 사람들을 이타적(利他的)으로 보살피면서 하는 전심(全心)으로의 그리고 사랑에서 베푸는 봉사에 의해 촉진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지나간 시대들에 있었던 위대한 종교 교사(敎師)들과 선지자들은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느님을 아는 남자들과 여자들이었고, 자기 이웃 사람들을 이타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자기 하느님을 최고로 섬겼던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로 하여금 잠시 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떨어져서 묵상과 기도를 하도록 시키신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들이 대중들을 접촉하고 봉사하도록 하셨다. 사람의 혼은 영적인 실천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필요로 한다.

 

종교적인 황홀경은 마음이 멀쩡한 상태에서 야기된 경우에는 허용이 되지만, 그러한 경험들은 깊은 영적 성격이 나타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순전히 감정적인 영향들로부터 야기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경건한 사람들은, 분명히 심리적 현상인 모든 예감(豫感)들과 강력한 모든 감정적 경험들을 일종의 신성한 계시 또는 영적인 교통이라고 간주해서는 결코 안 된다. 참된 종교적 황홀경은 대개 심오한 외적(外的) 평온함과 거의 완전한 감정적 조정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참된 예언적 환상은 심리적 기능을 초월하는 예감이다. 그러한 은혜(恩惠)는 허위적인 환각이 아니며, 또한 무아경(無我境)의 황홀함도 아니다.

 

인간 마음은, 잠재의식이 떠오르는 것에 대하여 또는 초의식의 충동에 대하여 그것이 민감할 때 소위 영감이라고 불리는 것에 응답하여 작동할 수 있다. 어떤 경우이든지, 의식 내용물의 그러한 확장이 개인에게는 다소 이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제어되지 않은 신비주의적 광신(狂信)과 자유분방한 종교적 황홀경은, 통찰력에 대한 증명서, 신성한 증명서로 생각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신비주의와 황홀경 그리고 영감의 이러한 이상한 종교적 경험들에 대한 실용적 진단은 이들 현상이 한 개별존재를 어떻게 만드는 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1. 더 낫고 더 완벽한 육체적 건강을 누리게 하는가.


2. 그의 정신적 삶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기능하는가.


3. 자신의 종교적인 경험과 더욱 완전히 그리고 더욱 기쁘게 교제하는가.


4. 일상적인 필사자 실재에 있어서의 평범한 임무들을 신실하게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의 매일의 삶을 더욱 완벽하게 영(靈)화시키는가.


5.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을 더욱 사랑하게 하고 더욱 감사하게 하는가.


6.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영적 가치들을 널리 인정하도록 유지시키는가.


7. 그의 영적인 통찰력 -하느님에 대한 인식(認識)- 을 증대시키는가.

 

그러나 기도는 이러한 특별한 종교적 경험들과 실제적으로 연합되어 있지 않다. 기도가 과도하게 심미적(審美的)인 상태가 되면, 천국의 신성(神性)에 대한 더 없이 행복한 깊은 사색과 아름다움에 의해 거의 배타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사회화시키는 그것의 영향력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되며 헌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립되게 하고 신비주의에 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사사로운 기도와 관련된 어떤 위험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집단적인 기도, 공동체의 헌신에 의해 교정되고 예방된다.

 

8. 개인적인 경험으로서의 기도

 

기도에는 진정 자발적으로 발생되는 측면이 있는데,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전혀 생기기 전에 원시인이 이미 스스로 기도하였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두 가지 다른 상황에 닥칠 때 기도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긴박한 필요성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충동을 경험하였으며, 기쁨이 넘칠 때 그 기쁨을 표현하고자 하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기도는 마술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며, 그 둘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다. 마술은 상황에 맞게 신(神)을 조정하려는 것이었고, 기도는 품성을 신(神)의 뜻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참된 기도는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이지만, 마술은 그 두 가지 모두가 해당되지 않는다.

 

기도는 확립된 관습이 될 수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기도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정기적인 기원을 드리지 않으면 무서운 어떤 일이 발생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기도한다.

 

어떤 개인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감사에 대한 조용한 표현이며,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찬양에 대한 집단적인 표현, 공동체적인 헌신의 표현이며, 때로는 그것이 다른 종교를 흉내 낸 것이기도 하지만, 참된 기도란 창조체의 영적인 본성이 어디든지 계시는 창조주의 영의 현존과 나누는 진지하고도 신뢰하는 교제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인식하는 사람의 자발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고 신학적으로 공식화된 무의미한 낭송(朗誦)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느님을 아는 혼(魂)의 환희에 넘치는 찬양이 될 수도 있고 두려움에 속박을 당하는 필사자의 비굴한 복종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때로 영적인 갈망의 감상적인 표현이기도 하며 경건한 문장들을 떠들썩하게 외치는 경우도 있다. 기도는 기쁨에 넘치는 찬양이 될 수도 있으며 용서를 바라는 겸손한 탄원이 될 수도 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요청이 될 수도 있으며 도덕적인 성장과 영적인 힘을 바라는 성숙된 탄원이 될 수도 있다. 기원(祈願)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것일 수도 있으며, 하느님을 찾고 그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전심으로의 열망을 포함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온통 이기적인 요청이 될 수도 있고, 이타적인 형제 신분을 실현하는 방향으로의 참되고 숭고한 동작이 될 수도 있다.

 

기도는 복수를 위한 성난 고함 소리가 될 수 있고 자기 적을 위해 자비를 간청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바램의 표현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기법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심판 주 앞에서 도망갔던 죄인이 하는 비굴한 해명이 될 수도 있고, 하늘에 계신 살아계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해방된 아들이 드리는 기쁨에 넘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현대인은 순전히 개인적인 방법으로 하느님과 여러 가지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려고 하기 때문에 당황해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규칙적인 기도를 거부해 왔으며, 오직 특별한 고난 -긴급한 경우들- 의 상황에서만 기도한다. 사람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만, 오직 영적으로 어린아이만이 하느님을 설득하려 하거나 바꾸려고 뻔뻔스럽게 나서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실체성을 달성한다. 심지어는 공기 기류(氣流)가 위로 솟구칠 지라도 새가 날개를 펴지 아니하면 높이 날아 올라갈 수 없다. 기도는 사람을 향상시키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주의 상승하는 영적 기류들을 이용함으로써 진보를 이룩하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참된 기도는 영적 성장을 가져다주고, 태도를 바꾸어 주며, 신성(神性)과의 교제로부터 오는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하느님을 의식하는 자로부터 자동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러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진리에 대한 증대된 계시와 아름다움에 대한 증진된 인식 그리고 선함에 대한 확대된 개념을 사람에게 제공하심으로써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기도는 주관적인 행동이지만, 인간 경험의 영적인 차원에 있는 강력한 객관적 실체들과 접촉을 이루며 인간으로 하여금 초인간적인 가치들에 도달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것은 영적 성장을 위한 가장 유력한 자극제이다.

 

말은 기도와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영적 탄원의 강물이 어쩌다 흘러갈 수 있는 지적 통로에 불과하다. 기도에서의 말의 가치는 사사로운 헌신 안에서 순전히 자동적 연상이며 집단적 헌신 안에서 사회적 연상에 불과하다. 하느님께서는 그 혼의 태도에 응답하며 그 말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다.

 

기도는 갈등으로부터 회피하는 기법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에 직면하여 자라가게 하는 자극제이다. 가치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을 위해 기도하지 말며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만족감을 위해 기도하지 마라.

 

9. 효과적인 기도의 조건

 

만일에 너희가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고자 한다면, 널리 효력을 미치는 청원의 법칙을 마음속에 새겨야만 한다.

 

1. 너희는 우주실체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그리고 용기 넘치게 마주함으로써 힘 있는 기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너희는 조화우주 정력(精力)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2. 너희는 인간적인 조정을 위한 인간적인 수용능력을 정직하게 모두 써 버렸어야만 한다. 너희는 부지런했어야 한다.

 

3. 너희는 모든 마음의 소원과 혼이 갈망하는 모든 것들을 영적인 성장으로 변환시키는 포옹에 내어 맡겨야만 한다. 너희는 의미들의 향상과 가치들의 증진을 경험했어야 한다.

 

4. 너희는 신성한 뜻에 대한 전심어린 선택을 일으키고 있어야만 한다. 너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움직이지 않는 중심(中心)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너희는 아버지의 뜻을 인식하고 그것을 행하려고 선택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아버지의 뜻을 실제적으로 행하려고 분별불가적인 헌신과 역동적인 전념을 일으켜 발휘하고 있어야 한다.

 

6. 너희 기도는 오로지 낙원을 향한 상승 -신성한 완전성 달성- 안에서 마주치는 특정한 인간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신성한 지혜에 대하여 안내를 받을 것이다.

 

7. 그리고 너희는 신앙 -살아있는 신앙- 을 가져야만 한다.

 


[유란시아 중도자들의 우두머리에 의해 제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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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38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82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71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65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57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44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80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24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54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64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34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191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44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01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2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32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63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31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74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63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31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27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57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58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01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20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21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55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66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30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76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098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6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22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58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191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22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29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73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16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44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35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182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03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3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87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88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64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56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59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11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49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39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84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697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07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69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83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42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41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4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3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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