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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26 (일) 21:16 조회 : 2093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서기 27년 6월말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점점 더 심하게 반대함으로 인하여 예수와 12사도들은 그들의 천막과 변변치 않은 개인 물건들을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에 맡기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사마리아로 들어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면서 그들은 안식일을 벧엘에서 머물렀다. 이곳에서 그들은 곱나와 에브라임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설교하였다. 아리마대와 탐나에서 온 한 집단의 사람들이 예수께 자기들의 동네를 방문해 주기를 원하였다. 주(主)와 사도들은 이 지역에서 2주 이상이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을 가르쳤는데,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쁜 소식을 듣기 위해 멀리 안티파스에서도 왔다.

 

남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가룟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게 가졌던 자신들의 편견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유다로서는 이 사마리아인들을 사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7월의 마지막 주간에 예수와 그의 동료들은 요단 가까이에 있는 그리스 도시들인 파사리와 아켈라이로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1. 아켈라이에서의 설교

 

8월 전반부에 사도 일행은 그리스 도시들인 아켈라이와 파사리에 본부를 두었으며 거기에서 그들은 거의 이방인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 -그리스인, 로마인, 시리아인- 을 상대로 해서는 처음으로 설교를 하는 경험을 가졌는데, 이 두 도시들에는 거의 유대인들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로마 시민들과 접촉하면서, 사도들은 다가오는 천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에 새로운 어려움에 부닥쳤으며, 예수의 가르침들에 대한 새로운 반대에 봉착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사도들과 가졌던 회의들 중 하나에서, 12사도들이 자기들 각자의 수고를 주제로 경험담을 반복하여 말하자, 예수께서는 천국의 복음에 대한 이러한 장애물들에 대해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셨다.

 

빌립의 질문이 그들의 어려움들 중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빌립이 말하였다. "주(主)님, 이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그러한 가르침들은 단지 약한 자들이나 노예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메시지를 가볍게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종교가 강력하고 확고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성취하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의 가르침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확언하기를,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약하고 수동적인 무저항 자들로 만들어서 곧 그들은 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주(主)님, 그들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의 가르침이 하늘의 것이며 이상적이라고 기꺼이 시인하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종교가 이 세상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주(主)님, 이제 우리는 이 이방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도마, 나다니엘, 시몬 젤로떼, 마태로부터 천국의 복음에 대한 비슷한 반대들에 대해 듣고 나신 후에, 예수께서 12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 분의 사랑의 성격을 모든 인류에게 계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내 형제들아,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래서 나는 단지 이 한 가지를 이행할 것이며, 나의 가르침이 이 시대 혹은 다른 세대의 유대인들이나 혹은 이방인들에 의해 오해 받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그러나 너희는 신성한 사랑에도 엄격한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 없는 자손들의 현명하지 못한 행위를 억제하도록 종종 강요한다. 아버지가 내리는 억제시키는 훈련의 현명함과 사랑의 동기를 자녀가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낙원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우주들의 우주를 지배하신다. 모든 영적 실체들 중에서 사랑이 최고이다. 진리는 자유롭게 하는 계시이지만, 사랑은 지고한 관계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세상일들에서 너희와 같은 사람들이 어떤 실수를 하던지 간에, 앞으로 오는 세대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인간 진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을 경건하게 깨닫는 것과 사람이 형제임을 사랑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너희에게 나의 복음이 단지 노예들과 약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했느냐? 내가 선택한 사도들인 너희가 허약한 자들처럼 보이느냐? 요한이 약한 자처럼 보였느냐? 너희는 내가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았느냐? 이 세대에서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전파된 복음을 소유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세상의 종교는 가난한 자들을 무시했지만, 나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게다가, 회개하라는 소명(召命)과 자녀 됨을 받아들이는 것에 이 시대의 가난한 자들이 제일 먼저 관심을 표하였다. 천국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 에게 전파되었고 젊은이나 노인, 남자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부여되었다.

 

"나의 아버지께서 사랑의 하느님이시며, 자비를 행하심을 기뻐하신다고 해서, 천국의 봉사가 단조롭고 쉬운 것이라는 관념을 받아들이지 말라. 낙원으로의 상승은 언제나 최극 모험, 영원함을 어렵게 성취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천국을 위한 봉사에는 너희와 너희 동료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용감한 남성다움이 요구될 것이다. 너희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천국 복음에 충성을 바침으로써 죽임을 당할 것이다. 물리적 전쟁에서, 네 앞에서 싸우고 있는 전우 때문에 용기가 강화되었을 때, 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너희의 필사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는 진리를 사랑하기 위하여 네 생명을 조용하게 혼자서 버리는 일은 좀 더 높고, 좀 더 심오한 인간적 용기와 헌신을 요구한다.

 

"오늘날, 너희가 무저항의 복음을 가르치고 무폭력의 삶을 사는 것으로 인하여 믿지 않는 자들이 너희를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너희는 이 가르침들에게 자신들의 영웅적인 헌신을 하여 모든 인류를 놀라게 할 사람들, 곧 천국 복음을 믿는 진지한 신도들의 긴 행렬의 첫 번째 자원자(自願者)들이다. 이 세상의 어떤 군대도, 모든 세상으로 나아가 기쁜 소식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형제신분- 을 전파하게 될 너희와 너희의 충성스러운 계승자들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와 용감함을 보여 준 적이 이제까지 없었다. 육신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성이다. 마음의 용감성이 더 높은 유형의 인간적 용기이지만, 가장 높고 지고(至高)한 것은 심오한 영적 실체의 계몽된 신념에 대한 타협하지 않는 충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용기가 하느님을 아는 사람의 영웅적 행위를 이룬다. 그리고 너희 모두는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이며 진정으로 사람의 아들의 개인적인 동료들이다."

 

이것이 그 상황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의 연설의 처음 부분이었으며, 그는 계속해서 장시간을 이러한 발표에 대한 설명과 예를 들어 주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12사도들에게 말씀하셨던 것 중에서 가장 열렬한 강연들 중의 하나였다. 주(主)는 사도들에게 명백하게 강한 감정을 가지고 말씀하신 적이 거의 없었으나, 이것은 그가 깊은 감정과 눈에 띄는 열성을 가지고 말씀하셨던 얼마 되지 않은 경우들 중의 하나였다.

 

사도들의 대중 연설과 개인적 활동에서의 결과는 즉시 나타났는데 바로 그 날부터 그들의 메시지는 용기로 지배되는 새로운 내용을 포함하게 되었다. 12사도들은 천국의 새로운 복음에 대한 긍정적인 적극성의 정신을 계속해서 습득하였다. 이 날 이후로 그들은 주(主)의 다방면에 걸친 가르침의 소극적인 덕행들과 수동적인 명령들을 전파하는 일에 그렇게 많이 얽매이지는 않았다.

 

2. 자아- 정복에 대한 교훈

 

주(主)는 인간 자아 통제의 완전한 표본이셨다. 그는 자기가 욕을 먹을 때에도 욕하지 않으셨으며 자신이 고통을 당할 때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자에게 아무 위협의 말도 하지 않으셨으며, 적들이 자기를 고발하면 단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정의(正義)로우신 심판에 자신을 맡기셨다.

 

어느 날 밤 회의에서 안드레가 예수께 물었다. "주(主)님, 요한이 가르친 것처럼 우리도 자아 부정을 실행해야 합니까? 아니면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자아 통제를 행하도록 분투해야 합니까? 선생님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다른 것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요한은 진실로 자기 선조들의 빛과 법에 의거하여 정의로움의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으며, 그것은 자아 반성과 자아 부정의 종교였다. 그러나 나는 자아 망각과 자아 통제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보여 주신 대로 너희에게 삶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은 것이다. 자아 정복은 사람의 도덕적 본성의 척도(尺度)이며 그의 영적 발전의 표식(標識)이다. 옛날의 규율에서는 너희가 금식하고 기도하였지만 영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창조체로서의 너희는 믿고 기뻐하라고 배우고 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너희는 새로운 창조체들이 될 것이며 옛 것은 지나갔으며 보라, 모든 것들이 어떻게 새롭게 되는지를 내가 너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너희는 속박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영구한 삶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세상에게 확신시키게 될 것이다.

 

"옛날의 방법은 너희로 하여금 삶의 법규들에 의해 억제되고 그것에 복종하고 순응하기를 추구하게 하였으나 새로운 길은 먼저 진리의 영에 의해 변환시키고 따라서 너희의 마음을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만들면서 너희 안에 있는 혼을 강건하게 하며, 그래서 너희는 인자하고 만족스럽고 그리고 완전한 하느님의 뜻을 확실하고 기쁘게 행하는 힘을 부여 받게 된다. 너희가 신성한 본성의 참가자가 되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매우 위대하고 귀중한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너희의 개인적 신앙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그렇게 해서 너희의 신앙과 영적 변환에 의해 너희는 실제로 하느님의 성전이 되며, 그 분의 영은 실제로 너희 안에 거하신다. 만약에 그 영이 너희 안에 거한다면, 너는 더 이상 육신의 노예가 아니고 자유롭고 해방된 영의 자녀들이다. 새로운 영의 법이 자아 속박의 두려움과 자아 부정의 노예 관계라는 옛날의 법 대신에 자아 정복이라는 해방을 너희에게 준다.

 

"너희가 악을 행했을 때, 실제적으로는 너희가 너희 자신의 원래 경향들로 인하여 길을 잃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희의 행동들이 악한 세력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이 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오래 전에 너희에게, 인간의 가슴은 모든 것들보다도 더 기만적이고 매우 사악하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자아 기만에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어리석은 두려움, 가지가지의 욕망, 사로잡힌 쾌락, 악의, 시기, 그리고 복수심을 일으키는 증오에까지 빠져드는 것이 너희에게는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른다.

 

"구원은 영(靈)의 부활로 인한 것이며, 육신의 자아 정의로 인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육신적인 두려움이나 자아 부정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앙의 의해 정당화되고 은총에 의해 동료관계화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으로 태어난 아버지의 자녀들은 언제나 그리고 항상 자신과 육신의 욕망들에 관계되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된다. 너희가 신앙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하느님과 진정한 평화를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하늘의 평화의 길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항상 진보하는 자녀들의 영원한 봉사로 신성화 되도록 운명 지워진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함을 구하면서 모든 마음과 육체의 악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씻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너희의 드높아지는 특권이다.

 

"너희가 자녀 관계를 획득하는 것은 신앙에 기반을 두며 두려움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너희의 기쁨은 신성한 말씀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며 따라서 너희는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실체를 의심하도록 이끌리지 않아야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참되고 진정한 회개를 하도록 인도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선함이다. 자아를 정복하는 너희의 비결은 내재하고 있는, 사랑으로 늘 일하는, 영에 대한 너희의 신앙에 단단히 엮여있다. 구원에 이르는 이러한 신앙도 너희들 스스로 안에 가진 것이 아니며 그것도 역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만약 너희가 이러한 살아있는 신앙의 자녀들이라면, 너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노예가 아니고 오히려 너희 자신을 이긴 주인들, 하느님의 해방된 자녀들이다.

 

"나의 자녀들아, 만약 너희가 영으로 태어난다면, 너희는 자아 부정의 삶에 대한 자아의식의 속박으로부터 그리고 육신의 욕망들을 염려로서 살피는 일로부터 영원히 구원을 받으며, 즐거운 영적 천국으로 옮겨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의 열매를 맺게 되며 그리고 영의 열매들은 즐겁고 고상한 자아 통제의 가장 높은 유형의 핵심, 심지어는 이 세상의 필사 달성의 최고봉(最高峰) -진정한 자아 정복- 이다."

 

3. 기분전환과 휴식

 

이 무렵에, 신경과민과 감정적 강박감이 사도들과 그들의 직속 동료 제자들 사이에서 크게 일었다. 그들은 함께 살아가며 일하는 것에 거의 적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잘 지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방인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과의 접촉이란 이들 유대인들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 이외에도, 최근의 예수의 발언이 그들의 어지러운 마음을 더 심각하게 만들다. 안드레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으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자신의 문제들과 난처한 상황들에 대한 문제들을 가지고 주(主)에게로 갔다. 예수께서 사도들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문제들과 관련하여 말하는 것을 들으신 후에 말씀하셨다. "안드레야, 그들이 그러한 분규에 그렇게 연관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때에는, 그들과 그 일들을 논의할 수 없다. 나는 네가 요청한 일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이러한 개인적인 공동체의 문제들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3일간의 휴식과 기분 전환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네 형제들에게 가서 모두 나와 함께 사르타바 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하루 이틀 쉬도록 하자고 전해라.

 

"이제 가서 11명의 형제들 각각에게 사적(私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라. '주(主)가 휴식과 기분전환을 잠시 하려는데 우리와 같이 떠나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가 최근에 많은 영적 시달림과 마음의 긴장을 경험하였으므로, 나는 아무도 이 휴가 동안에는 우리의 시련과 곤경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너의 협조를, 내가 기대해도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네 형제들 각자에게 다가가라." 안드레는 주(主)가 지시한 대로 행하였다.

 

이것은 각자의 경험에 있어서 굉장한 사건이었으며 그들은 산으로 올라갔던 그날을 결코 잊지 못하였다. 전체 여행 기간 동안 자신들의 문젯거리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산 정상에 올라가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주위에 앉히고 말씀하셨다. "내 형제들아, 너희 모두는 휴식의 소중함과 쉰다는 것의 효능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에 대한 최선의 해결 방법은 잠시 동안 그것들을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휴식이나 경배의 시간을 가진 후에 새롭게 돌아가면, 너희는 좀 더 굳건한 가슴은 말할 필요도 없고 좀 더 맑은 머리와 안정된 솜씨로 그 문제들의 해결책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희가 심신(心身)을 쉬게 하는 동안에 너희의 문제는 크기와 비율에서 매우 줄어들었다는 것을 여러 번 발견하게 된다."

 

다음 날 예수께서는 12사도들 각자에게 토의 제목을 하나씩 주셨다. 그들의 종교적 일과 관계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회상(回想)과 토의(討議)를 하며 하루 온 종일을 보냈다. 그들은 예수께서 점심 식사 때 식사기도 -입 밖으로 내어서- 까지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그러한 형식을 무시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갔을 때, 안드레의 머리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요한은 지나칠 정도로 가슴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마태는 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묶고 있었으므로 기금 조달에 매우 쪼들리고 있었다. 베드로는 과로하였고 최근에는 보통 때보다 더 성질이 심하였다. 유다는 주기적인 신경과민과 이기심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시몬은 자신의 애국심을 사람의 형제 됨이라는 사랑으로 절충하려는 노력으로 특별히 격해 있었다. 빌립은 일이 진행되어 나가는 방식에 대해 점점 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나다니엘은 이방인들과 접촉하게 된 이래로 유머가 줄어들었으며, 도마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단지 쌍둥이 형제만이 정상적이었고 평온하였다. 그들 모두는 어떻게 요한의 제자들과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난처해하고 있었다.

 

셋째 날에 그들이 산을 내려와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많은 힘든 문제들이 과장된 두려움의 산물이고 증가된 우려의 결과이며, 인간들의 많은 난처한 일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중대한 발견을 하였다. 모든 그러한 분규들은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으며 그것들에서 떠나감으로 인해 그들은 그러한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이 휴가로부터 돌아온 것이 이들 요한의 추종자들과 그들의 관계를 많이 개선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2사도들 중 대부분은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의무에서 떠나 3일간의 휴가를 가진 결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상태가 바뀐 것을 보았고, 그들이 신경과민에서 해방되었음을 알게 되자 진정으로 기뻐하였다. 인간 접촉에 있어서의 단조로움은 분규들을 크게 불리고 어려움들을 확대시키는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아켈라이와 파사리라는 두 그리스 도시에서는 그렇게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게 되지는 않았지만, 12사도들은 오직 이방인들을 상대로 해서는 처음으로 일하면서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그 달 중순경 어느 월요일 아침에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다같이 사마리아로 가자." 그래서 그들은 야곱의 우물 근처의 수가라는 도시를 향해 즉시 떠났다.

 

4.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6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유대 지방의 유대인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갈릴리의 유대인들도 역시 사마리아인들과 반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악감정은 이렇게 연유되었다. 기원 전 700년경에 아수르의 왕인 사르곤이 중부(中部) 팔레스틴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25,000명 이상의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가고 그들의 자리를 거의 비슷한 숫자의 큐타이트, 세파바이트, 하마타이트 후손들로 채웠다. 더 나아가 그 뒤에는, 아쉬르바니팔이 다른 거류민단을 보내어 사마리아에 살게 하였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의 종교적 적대감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때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막으려고 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알렉산더의 군대에 호의적인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유대인들을 화나게 하였다. 그들의 우호에 보답하기 위하여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였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봉사 순서의 많은 부분을 본 따서 야훼와 자기들 종족의 하느님들에게 경배를 드렸고 많은 희생제물을 바쳤다. 적어도 그들은, 요한 힐카누스가 그리심 산에 있는 그들의 성전을 파괴하였던, 마카비 시대까지도 이 경배를 계속하였다. 사도 빌립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사마리아인들을 위해 일하면서 이 옛 사마리아 성전 터에서 많은 모임들을 가졌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반목은 매우 오래되고 역사적인 것이었으며 알렉산더 이후로 그들은 점점 더 서로를 상대하지 않았다. 12사도들은 그리스에서 또는 다른 이방 도시들인 데가볼리나 시리아에서 설교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나, 주(主)가 "사마리아로 가자"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주(主)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엄중하게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년 넘게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그의 가르침에 대한 자기들의 신앙과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까지도 초월하는 개인적 충성심의 형태를 이미 발전시켜 왔었다.

 

5. 시카의 여인

 

주(主)와 12사도들이 야곱의 우물가에 도달했을 때, 여행에서 지치신 예수께서는, 시카로부터 빌립이 음식물과 천막을 가져오기 위하여 다른 사도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들을 데리고 간 동안, 그 우물가에 남아 계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 근처에서 당분간 머물러 있기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이 예수와 함께 남아 있으려고 하였지만, 다음과 같이 말씀하면서 그들도 다른 형제들과 함께 가도록 권하셨다.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 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며, 오직 우리 형제인 유대인들만이 우리를 해치기를 꾀한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우물가에 앉아 있었던 때는, 여름 날 저녁 거의6시 경이었다

 

야곱의 우물은 시카의 우물들보다 광물질이 적었으므로 식수(食水)로 매우 소중하게 여겨졌다. 예수께서는 목이 말랐으나 우물에서 물을 길을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시카의 한 여인이 그녀의 물그릇을 가지고 다가와서 물을 길려고 했을 때, 예수께서 그녀에게 "나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 사마리아의 여인은 그의 모습과 복장을 보고 예수께서 유대인임을 알았으며 그의 억양에서 그가 갈릴리 유대인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날다였고,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유대인이 그런 식으로 자기에게 말을 하며 물을 청하는 것에 매우 놀랐는데, 그 당시에는 자아 존중의 남자가 공개적으로 여인에게 말을 거는 일은, 더구나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온당하지 않았던 때였다. 따라서 날다는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내가 가진 물을 달라 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참으로 너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만일 네가 단지 이해할 수 있다면, 너는 나에게 살아있는 물(生水) 한 모금을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그러나 선생님, 당신은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살아있는 물을 얻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자신과 자기 아들들과 그의 가축을 다 먹게 하였던, 우리 조상 야곱보다 당신이 더 위대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겠지만, 살아있는 영의 물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물은 그의 속에서 영원한 삶(永生)에 이르기까지 솟아오르는 원기 회복의 샘물이 될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그 물을 내게 주셔서 목마르지 않고 또 이제부터는 물을 길러 여기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게다가, 사마리아 여자가 그런 훌륭한 유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

 

날다는 자기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의 거리낌이 없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주(主)의 얼굴에서 고결하고 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친절함을 통상적인 치근덕거림으로 오해하였으며, 그의 말투를 자기에게 접근하려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그리고 그녀는 도덕적으로 방종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유혹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예수께서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여인아,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이 날다의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주(主)의 친절을 잘못 판단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의 말투를 오해하였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녀는 겁을 먹었으며 자신이 비범한 사람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으며 적당한 대답을 마음속에서 찾지 못하면서 당황하여 말하였다. "저는 남편이 없으므로 남편을 불러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구나. 네가 한 때는 남편이 있었으나 지금 같이 사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다.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늘 너에게 주는 살아있는 물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 너에게 유익할 것이다."

 

이 때 날다는 침착성을 되찾았고 자신의 선한 본성이 깨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으로 비도덕적인 여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에 의해 냉혹하고 부당하게 버림을 받았으며 몹시 비참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한 그리스 남자의 아내로 살 것을 동의했었다. 날다는 이제 생각 없이 예수께 이야기한 것이 대단히 부끄러웠고 후회 막심하여 주(主)에게 여쭈었다. "주(主)님, 당신에게 한 저의 말투에 대해 회개합니다. 당신은 제가 보기에는 성스러운 사람이거나 어쩌면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그리고 그 이래로 행하였던 것 -신학과 철학적 토론으로 바꿈으로써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비켜 가는- 을 행하면서,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도움을 주(主)로부터 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화를 그녀 자신의 필요성에서 신학적 논쟁으로 재빨리 돌렸다. 그리심 산을 가리키면서 그녀는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이 산에서 경배를 드렸는데 당신들은 아직도 예루살렘에서 경배를 드려야만 한다고 하니, 과연 어느 곳이 하느님을 경배 드리는 올바른 장소입니까?"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혼이 창조주와 직접적이고 찾고자 하는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 차리셨지만, 그녀의 혼속에는 또한 좀 더 나은 삶의 길을 원하고 있음도 보셨다. 결국, 날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물에 대한 진정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참을성을 가지고 대하면서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가 말하겠는데 너희가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곧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많은 이교적 신(神)들의 종교와 이방인의 철학들이 혼합된,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한다. 적어도 유대인들은 경배를 드리는 대상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의 하느님 곧 야훼만을 경배함으로써 모든 혼란을 제거시켰다. 그러나 아버지께 참으로 경배하는 자들은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경배할 때가 곧 올 것이라고 -이미 지금 와 있다- 내가 한 말을 믿어야만 하는데, 이는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경배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영이시며, 그에게 경배하는 자들은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경배해야만 한다. 너희의 구원은 다른 자들이 어떻게 혹은 어디에서 경배를 드리는지를 아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너에게 주는 살아있는 물을 너 자신의 가슴에 받음으로써 온다"

 

그러나 날다는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개인적 삶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혼의 지위에 대한 당황스런 논제를 피하기 위해 또 한 번의 시도를 하였다. 다시 한번 그녀는 일반적인 종교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요한이 가르치기를 개종시키는 분이 와서 자신을 구원주라 칭할 것이며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언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날다의 말을 중단시키며 깜짝 놀라게 하는 확신으로 말씀하시기를,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이니라."

 

이것은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 이 땅 위에서 예수께서 이미 이룩하신 아들신분에 관한, 최초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이고 공공연한 발표이었으며 그것은 한 여인에게,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것도 그 당시의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성격의 여인에게 행해졌다, 그러나 신성한 눈이 바라본 그 여인은 그녀 자신의 열망으로 죄를 범한 것에 비하여 더욱 많이 죄에 저항해 오고 있었으며 그리고 지금은 구원을 열망하는 혼을 가진 인간 존재이며, 그것을 진심으로 온 전심을 다해서 원하고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날다가 좀 더 나은 일과 좀 더 고상한 삶의 길에 대한 자신의 진정하고 개인적인 갈망을 바로 말함으로서 자신의 가슴속의 진정한 열망을 이제 말할 준비가 되자마자, 12사도들이 시카로부터 돌아왔고, 예수께서 이 여인 -이 사마리아 여인과 단 둘이서- 과 친근하게 말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그들은 재빨리 자기들의 물건들을 내려놓고는 한 옆에 서서, 아무도 감히 예수를 비난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날다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너의 길을 가거라. 하느님께서 너를 용서하셨다. 이제부터는 새 삶을 살 것이다. 네가 살아있는 물을 받았으니 새로운 기쁨이 네 혼속에 용솟음 칠 것이며 너는 지고자의 딸이 될 것이다." 그 여인은 사도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을 알아채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 도시로 도망쳤다.

 

그녀는 도시에 들어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외쳤다. "야곱의 우물로 빨리 가시오. 거기에서 내가 이전에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개종시키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해가 지기 전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의 말을 들으러 야곱의 우물가에 모였다. 주(主)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물, 곧 내주(內住)하는 영의 선물에 대해 좀 더 말씀하셨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여인들과, 그것도 의심스러운 성격의 여인들, 심지어는 부도덕하기까지 한 여인들과 기꺼이 말씀하는 것에 대한 충격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여인들, 소위 부도덕한 여인들까지도 하느님을 자기들의 아버지로 선택하여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딸들이 되고 영원한 삶을 위한 후보자가 될 수 있는 혼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심지어는 19세기 이후까지도, 많은 이들이 주(主)의 가르침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이와 똑같은 마음 내키지 않음을 나타내었다. 심지어 기독교까지도, 그의 삶에 대한 진리를 중심으로 세워지는 대신에 그리스도의 사망사건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세상은 그의 비극적이고 애통한 죽음보다는 그의 행복하고도 하느님 계시였던 삶에 좀더 관심을 두었어야 했다.

 

날다가 다음 날 이 모든 이야기를 사도 요한에게 말하였지만,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는 다 말해 주지 않았으며, 예수께서도 12사도들에게 그것에 대한 자세한 말씀을 하지 않았다.

 

날다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자신이 전에 했던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고 요한에게 말하였다. 요한은 날다와의 이 만남에 대해 예수께 물어보려고 여러 번 원했으나, 결코 한번도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대한 단 한 가지 사실만을 말씀하셨었지만,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로 말미암아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잠시 동안 자신의 변화무쌍한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는데, 그녀는 자신의 과거의 이러한 자아 계시를 주(主)의 표정과 말씀에 관련시켰다. 예수께서는 결코 그녀에게 남편이 다섯이었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버린 이래로 네 명의 다른 남자들과 동거했었는데 예수께서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가 깨닫는 순간 그녀의 모든 과거와 함께 이것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결국 예수께서 그녀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실제로 말씀하셨다고 요한에게 반복하여 이야기하였다.

 

6. 사마리아의 회복

 

날다가 사람의 무리들을 예수를 만나 보라고 시카로부터 불러들이던 저녁에, 12사도들은 음식을 가지고 막 돌아 왔으며, 하루 종일 굶어 시장했었음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대신에 자기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예수께 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곧 밤이 오리라는 것을 아셨으며 그래서 그들을 돌려보내기 전에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로 한 결심을 고집하셨다. 무리들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무엇을 좀 드시라고 안드레가 그에게 설득하려 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사도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그 여인이 마실 것뿐만 아니라 음식도 드렸는가?" 예수께서 그들 사이에서 하는 말을 들으시고,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전에 그들을 돌아보며 12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 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추수하기 전까지 이러 저러한 시간이 남았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사마리아 도시로부터 우리의 말을 듣기 위해 나오는 이 사람들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겠는데 밭이 이미 희어져서 추수할 때가 되었다. 수확하는 자는 삯을 받으며, 영원한 삶에 이르도록 이 열매를 거둬드리는데 결국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함이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하는 말이 옳다. 내가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곳으로 거두러 보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수고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세례 요한의 설교에 관련시켜 말씀하셨다.

 

예수와 사도들은 시카로 들어갔으며 그리심 산에 야영지를 세우기 전까지 이틀 동안 설교하였다. 시카의 많은 거주민들이 복음을 믿었으며 세례를 받기 원했으나 예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그리심 산에서 야영한 첫 날 밤에, 사도들은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 여인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를 꾸중하시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하여 어떤 언급도 없었으며, 그 대신에 "하느님의 나라에서 중심이 되는 실체들"이라는, 기억에 남을 만한 강연을 하셨다. 어떤 종교에서든지, 가치들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고 그리고 사실들이 그 신학 안에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허락하기가 매우 쉽다. 십자가의 사실이 나중의 기독교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게 되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으로부터 유래되어질 종교의 중심적 진리는 아니다.


그리심 산에서의 예수의 가르침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그는 자기(예수)가 형제-친구이듯이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아버지-친구로 여겨 주기를 원하셨다. 그는, 이 신성한 관계들의 관찰에서 진리가 가장 위대한 선언인 것과 똑같이, 사랑이 세상에서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관계라는 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강조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충만하게 사마리아인들에게 선포하셨는데 왜냐하면 그가 안전하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천국 복음을 설교하러 사마리아의 중심부를 다시 방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와 12사도들은 8월말까지 그리심 산에서 야영하였다. 그들은 낮에는 도시에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천국의 기쁜 소식 -하느님의 아버지신분- 을 설교하였고 밤에는 야영지에서 지냈다. 예수와 12사도들이 이 사마리아 도시들에서 했던 과업은, 많은 혼들을 천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열매를 맺었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뒤이어 예루살렘에서 신도들에 대한 비참한 처형이 일어나 사도들이 나중에 땅 끝까지 흩어지게 된 후에, 이 지역에서의 빌립의 놀라운 과업을 위한 길이 충분히 준비되도록 하였다.

 

7. 기도와 경배에 대한 가르침들

 

그리심 산에서의 저녁 회의들에서 예수께서는 많은 위대한 진리들을 가르치셨는데 특히 다음의 것들을 강조하셨다:

 

참된 종교는 창조주와의 자아 의식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 혼(魂)의 행동이며 조직된 종교는 개인적 종교가들의 경배를 사람들이 사회화시키려는 시도이다.

 

경배 -영적 깊은 사색- 는 헌신으로, 물질 실체와의 접촉과 교대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일은 오락과 교대되어야만 한다.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심오한 철학은 운율이 있는 시로 완화되어야 한다. 삶의 긴장 -개인의 시간적 긴장감- 은 경배의 안식으로 풀어져야 할 것이다. 우주에서의 품성 고립의 두려움으로부터 생기는 불안의 감정은, 아버지에 대한 확신 있는 깊은 사색에 의해서 그리고 최극자(最極者)에 대한 기도하는 깨달음으로 해독(解毒)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덜 생각하게 만들지만 그러나 더욱 깨닫도록 고안되었으며 그것은 지식을 증가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통찰력을 넓히도록 고안되었다.

 

경배는 앞으로 오는 보다 나은 삶을 내다보고 그래서 이들 새로운 영적 의미를 현재의 삶에 반영하도록 하게 한다. 기도는 영적으로 지속시켜 주지만, 경배는 성스럽게 창조적이다.

 

경배는 많은 이들에 대한 헌신의 영감을 한 분에게 찾고자 하는 기법이다. 경배는, 그 혼의 물질적 우주로부터의 분리 정도와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모든 창조의 영적 실체들과의 안전한 부착 정도를 재보는 척도이다.


기도는 자아 일깨움 -탁월한 사고- 이며, 경배는 자아 망각 -초(超)사고- 이다. 경배는 힘들이지 않는 집중이며, 진정하고 이상적인 혼의 휴식이며, 편안함을 주는 영적 분발이다.

 

경배는 한 부분이 그 스스로를 전체와 유한자가 무한자와 자녀가 아버지와 부딪쳐오는 단계의 활동에서의 시간이 영원과, 동일시하는 활동이다. 경배는 신성한 아버지와의 개인적 교제행위, 인간의 혼-영이 신선하고 창조적이며, 우애적이고 낭만적인 자세를 가정(假定)하는 것이다,

 

비록 야영지에 있던 사도들은 단지 얼마간의 가르침들만을 파악할 수 있었을 뿐이었지만, 다른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였으며 이 땅의 다른 세대들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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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제 79 편 동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330
117  제 80 편 서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304
116  제 81 편 근대 문명의 발전 운영자 08-22 2249
115  제 82 편 결혼의 진화 운영자 08-22 1841
114  제 83 편 결혼 제도 운영자 08-22 2369
113  제 84 편 결혼과 가정생활 운영자 08-22 2140
112  제 85 편 경배의 기원 운영자 08-22 2290
111  제 86 편 종교의 초기 진화 운영자 08-22 2092
110  제 87 편 귀신 예찬 운영자 08-22 2214
109  제 88 편 주물 숭배, 부적과 마술 운영자 08-22 2462
108  제 89 편 죄, 희생 제물, 그리고 속죄 운영자 08-22 2482
107  제 90 편 샤머니즘 - 주술사와 사제 운영자 08-22 2375
106  제 91 편 기도의 진화 운영자 08-22 2062
105  제 92 편 종교의 후기(後期) 진화 운영자 08-22 2414
104  제 93 편 마키벤타 멜기세덱 운영자 08-22 2159
103  제 94 편 동양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342
102  제 95 편 레반트에서의 멜기세덱의 가르침 운영자 08-23 2225
101  제 96 편 야훼 - 히브리인의 하느님 운영자 08-23 2640
100  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의 하느님의 개념의 진화 운영자 08-23 2486
99  제 98 편 서방(西方)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296
98  제 99 편 종교의 사회적인 문제 운영자 08-23 1997
97  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운영자 08-23 2151
96  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운영자 08-23 2166
95  제 102 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운영자 08-23 2111
94  제 103 편 종교적 경험의 실체 운영자 08-23 2192
93  제 104 편 삼위일체 개념의 성장 운영자 08-23 2116
92  제 105 편 신(神)과 실체 운영자 08-23 1874
91  제 106 편 실체의 우주적 차원 운영자 08-23 1994
90  제 107 편 생각조절자의 기원과 본성 운영자 08-23 2084
89  제 108 편 생각조절자의 임무와 사명활동 운영자 08-23 1907
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916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2040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79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120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45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95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70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58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75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60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503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86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62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81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504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72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87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217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97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316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49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425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89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44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50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68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313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102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97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99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72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314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70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89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94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86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233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80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39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54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63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89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62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115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93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66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61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87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99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37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53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57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101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302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73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908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131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2002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63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90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227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54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71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207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61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106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77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225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52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61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420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115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91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97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85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38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83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81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508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733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41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502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817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84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86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519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104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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