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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27 (월) 11:58 조회 : 2038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9월 18일 일요일 아침, 안드레는 앞으로 일 주일 동안 아무런 일도 계획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나다니엘과 도마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가족을 만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하여 집으로 갔다. 이 일 주일 동안 예수께서는 거의 아무런 방해 없이 휴식을 취하셨지만, 나다니엘과 도마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이라 하는 어떤 그리스 철학자와 토론하기 위하여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 그리스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명활동을 하였던 아브넬의 동료들 중의 하나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최근에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다. 로단은 자신의 삶의 철학과 예수의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을 조화시키는 문제에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었으며, 주(主)가 자신에게 이 문제들에 대하여 얘기해 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마가단에 왔다. 또한 그는 예수나 그의 사도들로부터 복음에 대한 원래의 그리고 믿을만한 해설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주(主)께서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직접 로단과 상의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를 친절히 환영하시면서 나다니엘과 도마에게 그의 말을 잘 듣고 나서 복음에 대하여 설명해 주라고 지시하셨다.

 

1. 로단의 그리스 철학

 

월요일 이른 아침에, 로단은 나다니엘과 도마 그리고 마침 마가단에 있었던 스물네 명가량의 어떤 믿는 자들 무리에게 열 번의 연속된 강연을 하였다. 이 말들을 압축, 종합하고 현대의 문체로 다시 서술하면 다음과 같은 사상들을 고찰할 수 있다.

 

인간의 삶 속에는 -무의식적 충동, 욕망, 매혹- 세 가지의 큰 본능적 욕구가 있다. 강인한 성격, 당당한 품성은 오직 삶에서의 자연적 충동을 살아가는 사회적 기교로 전향시킴으로써 얻어지고, 현재의 욕망을 영속적인 달성이 가능한 더욱 높은 소망들로 변환시킴으로써 얻어지며. 한편으로는 실재에서의 평범한 매혹을 자신의 진부하고 확립되어진 관념으로부터 아직 탐구되지 못한 관념과 개척되지 않은 이상의 더욱 높은 영역으로 옮겨져야만 얻어지는 것이다.

 

문명이 더욱 복잡해질수록 삶의 기술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사회적인 관습의 변화가 더욱 빨라질수록 성격 계발의 과업도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만일 진보가 계속된다면 매 열 세대마다 삶의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재능이 매우 발달하여 사회의 복잡성을 더욱 조속히 가중시킨다면, 삶의 기술을 다시 습득해야 하는 기간은 더욱 짧아져서 매 세대마다 그리해야 될지도 모른다. 만약에 삶의 기술의 진보가 실재(實在)의 기법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인간성은 다시 단순한 삶의 충동으로 조속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성은 미성숙의 상태에 머무를 것이며 사회는 온전한 성숙(成熟)으로 자라가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인 성숙도는 사람이 단순한 과도기적 현상으로서의 만족을 기꺼이 포기하려는 정도와, 영원한 목표를 향하여 점차적으로 진보하는 것에 대하여 그의 달성이 보다 풍성한 만족을 줄 수 있도록 분투하는 초월적 열망을 즐기려는 태도를 자발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회적 성숙의 진정한 상징은, 이상주의적 영적 실체들의 발견되지 않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하는 탐험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추구함으로써 동요를 일으키고 에너지가 요구되는, 매혹을 얻기 위하여 확립된 믿음과 전통적 관념들의 그 편안함을 촉구하는 매혹의 기준 밑에서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사는 권리를 기꺼이 버리고자 하는 태도이다.

 

동물들도 삶의 충동에 훌륭하게 반응하지만,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적인 충동으로 사는 경험밖에 하지 못할지라도, 오직 사람만이 삶의 기술을 달성할 수 있다. 동물들은 다만 맹목적이며 본능적인 충동만을 알뿐이며 사람은 능히 선천적으로 작용하는 이 충동을 초월할 수 있다. 사람은 지적인 예술의 높은 경지, 심지어는 초월적인 기쁨과 영적인 황홀경의 경지에서 살고자 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동물들은 삶의 목적에 대하여 질문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걱정이라는 것이 없으며, 자살하지도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행해지는 사람들의 자살은 그러한 존재들이 순전히 동물단계의 실재로부터 벗어났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필사 경험에 있어서 예술적인 차원을 달성하고자 하는 그 인간존재의 탐구적인 노력이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삶의 의미를 모르지만 인간은 의미를 이해하고 가치를 인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들에 대한 의미도 인식한다. 인간은 통찰력을 스스로 인식한다.

 

사람들이 불확실한 논리와 모험적인 예술의 그런 삶을 위하여, 본능적 갈망의 삶을 감히 버릴 때, 적어도 어느 정도의 지적이고 감정적 단계를 달성하는 시기까지는, 그들은 감정적인 피해 -갈등, 불행, 불확실성- 의 필연적 위험들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해야만 한다. 낙심, 염려, 나태함 등은 도덕적으로 미숙하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인간 사회는, 개인의 성숙을 달성하는 것과 종족의 성숙을 달성하는 것, 이 두 가지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성숙된 인간은 부드러운 느낌과 너그러운 감정으로 모든 다른 필사자를 곧 바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성숙된 사람은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그 사랑과 동정심으로 아직 미숙한 자들을 대한다.

 

성공적인 삶이란 공통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뢰할만한 기법들을 습득하는 기법에 불과하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그 어려움을 알아내고, 그 문제를 분리시키며, 솔직하게 그 본질과 중대성을 아는 것이다. 가장 큰 오류는, 삶의 문제들이 우리의 깊은 두려움을 자극할 때,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려움들을 인정하는 것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자부심을 축소시키거나, 질투심을 용납하거나, 또는 깊숙이 위치한 편견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면, 보통의 사람들은 안전한 옛 환상과 오래 간직해 온 안심을 주는 잘못된 감정에 매달리기를 더 좋아한다. 오직 용감한 사람만이 진지하고 논리적인 마음이 발견하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두려움 없이 대한다.

 

어떤 문제를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편향, 흥분, 그리고 모든 그 밖의 순전히 개인적 선입관, 문제가 스스로 해결을 제시하는 것으로 꾸미게 하는 실제 요소들을 냉정하게 조사하는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그러한 것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용기와 성실성이 필요하다. 오직 정직하고 용감한 개별존재가 당황하게 하고 혼돈을 일으키는 인생의 미로를 통과하면서, 두려움 없는 마음의 논리가 인도하는 곳으로 용감하게 따라갈 수 있다. 마음과 혼의 이러한 해방은 종교적 열정과 접해있는 지적 열심의 추진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어려운 물질적 문제들로 둘러싸이고 많은 지적(知的)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목표를 추구하도록 사람을 몰아붙이는 데에는 매혹적인 훌륭한 관념이 있어야 한다.

 

너희들이 삶의 어려운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무장되어 있다 할지라도, 너희들로 하여금 너희 동료들로부터 가슴에서 우러난 지지와 협조를 얻게 만들, 그 마음의 지혜와 품성의 매력으로 갖추지 않으면 너희들은 성공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동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설복시킬 수 있는지를 배우지 못한다면 현실적이든지 종교적이든지 아무 일에도 너희들이 크게 성공할 희망은 없다. 너희들은 다만 재치와 관대함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의 주(主)이신 예수로부터 가장 훌륭한 문제 해결 방법을 배웠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예수께서 늘 행하시고 또 너희들에게도 엄중하게 가르치셨던 것으로, 경건한 묵상을 위하여 격리되는 것이다. 자주 혼자 떠나셔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교제하신 예수의 습관 속에서 그 기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상적인 삶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도덕적이며 영적 성질의 보다 높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정확하다 할지라도 본성적으로 타고난 품성 손상을 보충하지는 않으며, 참된 정의에 대한 갈망의 부재(不在)를 보상하지도 않는다.

 

혼자 따로 가셔서 삶의 문제들을 한동안 홀로 살펴보시며 사회적인 봉사에 대한 여러 가지의 요구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지혜와 힘을 새로이 저장하기 위해 애쓰시며 신성과의 접촉을 의식하도록 전체 품성을 실제적으로 복종시킴으로써 삶의 지고한 목적을 활성화하고 심화시키시며 항상 변화하는 살아가는 실재의 환경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는 새롭고 훌륭한 방법들을 소유하고자 하시며 보람되고 실제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통찰을 강화하는데 필수적인, 인간 자세의 살아있는 재조정과 재조성을 달성하고자 하시며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너희들의 주(主)께서 성실한 태도로 즐겨 하시는 기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 이 모든 것들을 행하시는 예수의 습관에 나는 큰 인상을 받았다.

 

너희들의 주(主)의 경배하는 습관은 마음이 새로워지도록 긴장을 풀어주며 혼이 고무되도록 빛을 비추며 자기 문제들에 과감하게 대처하도록 하는 용기를 주며 쇠약하게 하는 두려움을 없애 주는 자아 납득을 가져오며 사람이 감히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그를 무장시켜 주는, 신성과의 결합을 의식하게 해 준다. 편안한 경배 또는 주(主)가 하신 것과 같은 영적 교제는 긴장을 해소시키며, 갈등을 없애 주고, 품성의 모든 자원들을 대단히 증대시켜 준다. 그리고 천국 복음에 덧붙여진 이 모든 원리는 내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새 종교를 구성하고 있다.

 

선입견은 혼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다, 그리고 선입견은 자기 동료들의 모든 것이 포옹되고 모든 것이 포함되는 이유를 찬미하는 일에 혼을 진지하게 헌신해야만 없앨 수 있다. 선입견은 이기주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선입견은 오직 자아 본위를 포기함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아보다 클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성보다 큰 이유 -하느님 추구, 신성의 달성- 에 봉사하는 만족을 탐구하는 것으로 대치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품성이 성숙하였다는 증거는 인간 욕구를 변환시켜서 가장 높고 가장 신성하게 실재하는 그 가치들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추구하는데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 속에서, 사회 계층이 진화하는 중에, 확립되고 고정된 운명의 목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품성의 안정성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무한한 달성의 영원한 목적지로서 발견하고 터득하였던 사람들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목적지를 유한한 시간으로부터 영원으로, 인간의 것으로부터 신성한 것으로 옮기는 데에는 그의 개심, 전환, 다시 태어남이 있어야 한다. 신성한 영의 자녀로 다시 창조되어야만 한다. 천국의 형제 신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 개념들이 부족한 모든 철학들과 종교들은 아직 미 성숙된 상태이다. 내가 가르치는 철학은 너희들이 전파하는, 장차 올 모든 세대들의 이상(理想), 그 성숙된 새로운 종교를 대표하는, 복음과 연결된다. 이러한 설명이 참된 것은 우리의 이상이 궁극적이며 결코 잘못이 없으며, 영원하며, 우주적이며, 절대적이며, 무한하기 때문이다.

 

나의 철학은 진실 된 달성의 실체들, 성숙의 목표를 찾도록 나에게 충동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충동은 힘이 없었으며 나의 탐구는 추진력이 부족하였으며 나의 추구는 방향 설정에 확실성이 없음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다. 부족한 이것들은 예수의 새로운 복음에 의하여 통찰력의 향상, 이상의 제고(提高), 목표의 확립과 함께 풍성하게 공급되었다. 나는 이제 의심이나 불안함이 없이 전심으로 영원한 탐험에 참여할 수 있다.

 

2. 삶의 기술

 

사람들이 같이 사는 데에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는데, 하나는 물질적 혹은 동물적인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영적 혹은 인간적인 방법이다. 동물들도 신호나 소리로 제한된 한도 내에서 서로 교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형태의 교통은 의미나 가치 또는 관념을 전달하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의 한 가지 차이점은 사람만이 의미, 가치, 관념 그리고 심지어는 이상들을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는 상징들을 수단으로 하여 다른 사람과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없기 때문에 품성을 발전시킬 수 없다. 사람은 개념들뿐만 아니라 이상들을 동료들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품성을 발전시킨다.

 

사람에게 사회적인 연합을 통하여 문명을 이룩하게 하고 인간의 문화를 구성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의미들을 함께 나누고 교통할 수 있는 힘이다. 지식과 지혜는 누적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교통을 통하여 이것들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 민족의 문화적 활동, 예술, 과학, 종교, 철학들이 발생한다.

 

인간들 서로가 상징적인 교통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 집단들이 생겨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예정된 일이었다. 모든 사회적 집단 가운데 가장 실제적인 것은 가족인데, 그 중에도 특별히 두 부모들이다. 인간 애정은 이 물질적 연합들을 함께 묶어주는 영적 끈이다. 그러한 실제적 관계는, 진정한 우정의 헌신에서 많이 설명되는 바와 같이, 같은 성(性)의 두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우정과 상호 애정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관계들은 그들이 삶의 기술을 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아래와 같은 기본 요소들을 조장하고 촉진하기 때문에 사회화되어 가고 고상하게 되어간다.

 

1. 상호적인 자아 표현과 자아 이해 : 훌륭한 많은 인간들의 추진력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어 버린다. 정말로, 혼자 있는 것은 사람에게 좋지 않다. 어느 정도 인정받고 존중 받는 것은 인간 성격 개발에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집에서 참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어린이들의 정상적인 성격 개발은 온전히 성취될 수 없다. 성격은 단순히 마음이나 도덕보다도 더 큰 그 무엇이다. 성격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회적 관계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이상적인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지적인 결혼생활에서의 서로간의 포옹 안에서 애정이 넘치고 그리고 납득하는 친구관계이다. 결혼은, 그 각가지 관계와 함께, 강한 성격을 개발하기에 필수불가결한 보다 높은 동기들과 귀중한 추진력들을 가져오도록 최상으로 설계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찬미하는데, 왜냐하면 너희들의 주(主)께서 새로운 이 천국 복음의 주춧돌로서 아버지-아이의 관계를 현명하게 채택하셨기 때문이다. 시간의 가장 높은 이상들을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 무엇에도 비길 데 없는 그러한 관계의 공동체는 너무나 가치가 있고 경험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그 소유를 위해서라면 어떤 값, 어떤 희생, 또는 어떤 대가(代價)라도 치러야 한다.

 

2. 혼들의 연합 - 지혜의 운용 : 모든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한 어떤 개념과 다음 세계에 대한 어떤 환상을 곧 획득한다. 일시적인 실재의 관찰과 영원한 전망을 결합하는 것이 품성 연합을 통하여 이제 가능해졌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통찰력을 많이 얻음으로써 그 영적 가치를 증대시킨다.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각각의 영적 재산을 모음으로써 혼을 풍성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똑같은 방법으로, 시야의 왜곡, 관점의 편견, 그리고 판단의 편협으로 희생자가 되는, 그 항상 존재하는 경향을 피할 수 있다. 두려움, 질투, 그리고 자만은 다른 마음들과의 친밀한 접촉을 통해서만 막을 수 있다. 나는 주(主)께서 너희들을 천국 확장을 위한 사명활동에 내 보내실 때 절대로 혼자서 가지 않도록 하신 사실에 너희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주는 항상 너희들을 둘씩 짝지어서 보내셨다. 그리고 지혜는 초(超)지식이기 때문에, 사회적 집단들이 작든지 크든지, 지혜와 결합할 때 모든 지식들을 서로 나누게 된다.

 

3. 삶에 대한 열심 : 고립은 혼의 충전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경향이 있다. 동료들과의 연합은 삶에 대한 묘미를 새롭게 하는데 필수적이며 인간 삶의 보다 높은 차원으로 상승할 때 따라오는 그러한 투쟁들 속에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 우정은 기쁨을 크게 하고 삶의 승리를 더욱 영광스럽게 한다. 사랑이 있고 그리고 친밀한 인간 연합은 그 쓰라림의 많은 슬픔과 고초의 괴로움을 깨끗이 닦아 없애는 경향이 있다. 친구의 현존은 모든 아름다움을 돋보이고 모든 선을 드높인다. 사람은 지적인 상징들에 의해 친구들에 대한 감상 힘이 활성화될 수 있고 확대될 수 있다. 인간의 우정에 대한 최고의 기쁨 중의 하나는 상상력이 서로 동조될 수 있는 이 힘과 가능성이다. 조화우주 신(神)에 대해 서로 충실한, 하나의 공동 전선에 전심으로 바쳐진 의식 속에 엄청난 영적 힘이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다.

 

4. 모든 악에 대항하는 강화된 방어 : 품성 연합과 상호 애정이, 악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대비책이다. 어려움, 슬픔, 실망, 패배를 혼자서 견딜 때에는 더욱 고통스럽고 낙담이 된다. 연합 자체가 악을 정의로 바꾸지는 못하지만, 괴로움을 크게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너희들의 주(主)께서는 "슬퍼하는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 하신다. 위로할 친구가 옆에 있다면.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살고, 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너희의 행복과 발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확실히 힘을 얻을 것이다. 사람은 고독으로 시들어버린다. 인간은 시간의 일시적 활동행위만을 바라볼 때, 반드시 낙담하게 되어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감정만 끊게 하는 하찮은 일로 되어진다. 영원의 순환계를 어렴풋이 감지하기만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최선을 다하도록 고무될 것이며 그의 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에 도전을 주어서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그의 최선을 다하게 될 때, 다른 사람, 시간과 영원 속에 머물고 있는 동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에 가장 헌신적인 삶을 살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감을 주고 고상하게 하는 이러한 연합은 인간의 결혼 관계 속에서 이상적인 가능성을 발견한다. 정말로, 많은 것들이 결혼을 통하여 얻어지는데, 너무나도 많은 부부들이 결혼 생활 속에서 이러한 도덕적이며 영적인 열매를 맺는데 철저히 실패한다. 인간 성숙을 가져오는 이러한 뛰어난 부속물보다는 낮은 다른 가치들을 찾으려고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상적인 결혼은 오르내리는 감정과 변하기 쉬운 성적 끌어당김보다는 더 안정된 어떤 것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 진실되고 상호적인 개인의 헌신을 기초로 해야만 한다. 너희들이 그러한 신뢰할만하고 효과적인 인간 공동체의 작은 단위들을 조성할 수가 있다면, 이것들이 모여 집단을 이룰 때, 세상은 장엄하고 영화로운 사회 구조, 필사자의 성숙된 문명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한 민족은 "땅에는 평화 사람들 속에는 선한 의지"라는 너희들의 주(主)가 가지신 이상을 어느 정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가 완전하다거나 악으로부터 전반적으로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성숙으로 인한 안정에 도달할 것이다.

 

3. 성숙에 대한 매혹들

 

성숙을 향한 노력에는 일을 필요로 하며 그리고 일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물질적인 것들이 당연히 생각되겠지만, 주(主)께서 바로 말씀하셨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없다." 정상적인 육체와 상당히 좋은 건강을 받았더라도, 우리는 또한 사람의 잠자는 영적 기세를 깨우도록 자극할 그 매혹들을 찾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람 속에 살아 계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사람을 설득하여 이러한 신성과 무한의 혼에 묶여진 힘을 풀어줄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을 하느님, 그가 솟아올라 우리자신의 혼을 일깨워 새롭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밖을 향해 이동하며 그리고는 수 없이 많은 다른 혼들을 깨우치고, 향상시키고, 축복하려는 목적으로 봉사할지도 모를, 그러한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도록 설득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의 혼속에 동면하고 있는 이 잠재 힘들을 내가 어떻게 깨우면 최선책이 되겠는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감정적인 흥분은 이상적인 영적 자극이 아니라는 것이다. 흥분은 에너지를 증대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과 육체 모두의 힘을 소모시킨다. 그렇다면 이 큰 일들을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너희들의 주(主)를 바라보자. 우리들이 여기에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언덕에 오르셔서 힘을 취하고 계신다. 이 모든 문제의 비밀은 영적 교제, 경배 속에 감춰져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연합된 묵상과 긴장이완이다. 명상은 마음과 영이 접촉하도록 한다 정신적 긴장의 이완은 영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약한 것을 강한 힘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자아의 마음을 하느님의 뜻으로 교체하는 이것이 경배를 이룬다. 적어도 이것이 철학자가 그것을 보는 길이다.

 

이 경험들이 자주 반복되면 습관, 힘을-주는 경건한 습관으로 굳어지며, 그리고 그러한 습관은 결국에는 그들에게 영적인 성격을 조성해 주며, 그러한 성격은 동료들에 의해 성숙한 품성으로 인정받는다. 이렇게 연습하자면 처음에는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들이 습관이 되면, 곧 편안해지고 시간이 적게 든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문명의 매혹이 배가될수록, 하느님을 아는 개인들이 그들의 영적 에너지들을 보호하고 증대시키도록 고안된 그러한 방어적(防禦的)인 습관적 관례들을 형성할 필요성이 더욱 다급해지게 될 것이다.

 

성숙해지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은 계속 변화하는 환경(環境)에 대한 사회적(社會的) 집단들의 협조적(協調的)인 적응이다. 성숙되지 못한 사람은 자기 동료들에 대하여 반목을 키우며 성숙된 사람은 자기 친구들에게 가슴에서 우러난 협조를 하여 삶의 노력에 대한 여러 배의 결실을 얻는다.

 

나의 철학은, 정의(正義)에 대한 나의 개념을 방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내가 싸워야만 할 때가 있다고 말하지만, 반면에 주(主)는 보다 성숙된 품성의 유형으로서, 재치와 관용의 탁월하고 매력 있는 기법으로 쉽고도 은혜롭게 똑같은 승리를 얻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정의(正義)를 위하여 싸울 때, 너무나 많은 경우에, 승리자와 패배자 둘 모두 좌절을 경험한다. 나는 주가 바로 어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잠긴 문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을 때, 현명한 자는 그 문을 부수기보다는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으려 할 것이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단지 자기 자신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확신하려고 싸움에 빠지곤 한다.

 

새로운 이 천국 복음은 보다 높은 삶을 위하여 새롭고 풍부한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삶의 기술에 크게 기여한다. 그것은 새롭고 고귀한 운명의 목적지, 지고한 삶의 목적을 제공한다. 그리고 실재의 영원하고 신성한 목표에 대한 이 새로운 개념들은 그 스스로가, 사람의 보다 높은 본성 속에 있는 바로 그 최선이 반응하는 것을 유발하는, 초월적인 자극이다. 지능적 생각의 모든 산꼭대기에는 마음을 위한 휴양, 혼을 위한 힘, 영을 위한 교제가 있다. 높은 삶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낮은 차원의 생각  -염려, 질투, 시기, 원한, 성숙되지 못한 품성의 자존심-  으로 인한 물질적 고통들을 초월할 수 있다. 이처럼 높이 상승하는 혼들은 삶에 있어서의 사소한 일들의 수많은 대립 충돌로부터 자신을 구해주며, 그리하여 영 개념과 하늘 교통의 높은 흐름을 의식하는 것을 달성하려고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쉽고 과도기적인 달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삶의 목적이 세심하게 보호되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광신적인 위험한 조짐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4. 성숙의 균형

 

너희들은 영원한 실체들을 달성하려고 성실히 목표를 삼고 있지만, 현세적인 삶에 필수적인 것들도 준비해야만 한다. 영이 우리의 목적지인 반면, 육체는 하나의 현실이다. 삶의 필수품들이 우연히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들을 위하여 영리하게 일해야만 한다. 일생에 있어서 두 가지의 주요 문제는, 현세적인 삶을 이루어 가는 것과 영원한 생존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이루어가는 문제에서 참으로 이상적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하다. 이것들은 둘 모두 매우 개인적인 문제들이다. 참 종교는 개인으로부터 분리되어 작용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 현세적인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은:

 

1. 육신적으로 강건함                                                   


2. 분명하고 깨끗한 생각


3. 힘과 기술                                                           


4. 부 - 삶에 필요한 물품들                                            


5. 좌절을 견디는 힘


6. 문화 - 교육과 지혜

 

육신의 건강과 능률에 관한 물리적 문제들일지라도 우리 주(主)가 가르치신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잘 해결될 수 있는데, 사람의 육체와 마음은 하느님들의 선물, 사람의 영이 되는 하느님의 영이 거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물질적인 것들과 영적 실체 사이의 중재자(仲裁者)가 된다.

 

삶에서 바람직한 것들을 자신의 몫으로 확보하는 데에는 지능이 필요하다. 자신의 일상생활 활동에서 신실하기만 하면 재물의 보상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특별한 경우 또는 우연히 부를 획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현세적인 삶의 물질적 보상은 어떤 확실한 잘 조직된 경로 안에서 흐르는 것이 발견되며, 이 경로들에 접속하는 자들만이 그들의 현세적인 노력에 대하여 좋은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 할 수 있다. 고립되거나 개별적인 경로들 속에서 부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결국 가난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계획이 현세적인 성공에 필수적인 것이다. 성공은 자기 일에 헌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물질적 부의 어느 한 경로에서 한 부분으로 활동해야 한다. 만일 너희가 현명하지 못하면, 너희가 일생 동안 헌신적인 삶을 살아도 물질적인 보상이 없을 수 있으며, 만일 너희들이 부의 흐름으로부터 우연히 수익을 얻었다면, 너희들의 동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치 속에 빈둥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은 선천적이지만 한편, 기술은 습득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를 숙달될 정도로 잘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삶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기술은 만족한 삶의 진정한 근원 중의 하나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선견(先見), 멀리 내다보는 시야를 지닌 재능을 뜻한다. 정직하지 않은 성취의 그 유혹하는 보상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 정직한 노력에 선천적으로 들어있는, 그 훗날의 보상을 위하여 기꺼이 수고하라. 현명한 자는 수단과 목적을 구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때때로 미래에 대한 과도한 계획이 그 자체의 높은 목적을 좌절시킨다. 즐거움을 찾는 자로서, 너희가 즐거움의 소비자인 것처럼, 항상 그러한 생산자가 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너희가 자신의 기쁨과 계몽을 위해 뜻대로 회상할 수 있는, 강함을 주고 가치를 지닌 삶의 일들을, 성스러운 믿음으로 지니도록 너희의 기억을 단련시켜라. 그리하여 너희들 자신 속에 그리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아름다움, 선(善), 그리고 예술적 장관의 저장 전시관을 구축하여라. 그러나 모든 기억들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비할 데 없는 우정을 나눈 위대한 순간에 대한 보배로운 회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억 속의 보배들은 영적 경배의 해방하는 손길 밑에서 가장 귀중하고 드높이는 효력을 방출한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실패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삶은 실재에서의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실패에는 고귀한 혼이 항상 습득하는 어떤 기법이 있다 너희는 반드시 활기차게 잃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실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 속이는 미소와 낙천적인 태도로 애써 실패를 감추려 하지 말라. 성공을 주장하는 소리는 항상 듣기 좋지만, 마지막 결과는 끔찍하다. 그러한 기법은 실체가 아닌 세계를 꾸며내고, 궁극적으로 환멸을 주는 필연적인 파멸로 직접 이끌어 간다.

 

성공이 용기를 낳고 자신감을 증대시켜 주기는 하지만, 지혜는 오직 자기 자신의 실패 결과에 대한 조절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실체보다 낙관적 환상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지혜롭게 될 수 없다. 오직 사실을 마주보고 그것들을 이상에 맞게 조절하는 자만이 지혜를 성취할 수 있다. 지혜는 사실과 이상을 모두 포옹하며, 그리하여 -사실을 거부하는 이상주의를 가진 자와 영적 전망이 결여된 물질주의자- 철학의 불모의 두 극단으로부터 그것에 빠져있는 자들을 구해 준다. 성공에 대한 계속되는 거짓 환상의 도움에 의해서 삶의 투쟁을 겨우 유지하는 소심한 혼들은 궁극적으로 자기들의 환상의 세계에 대한 꿈에서 깨어남으로써 결국 실패를 당하고 패배를 경험하게 되어 있다.

 

최극 영향을 미치는 긴 안목의 종교적 통찰력은 실패에 대처하고 패배에 적응하는 이 일에서 생긴다. 우주를 탐구하려는 영원한 탐험에 동참하여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경험하는 것들 중에서, 실패는 다만 하나의 교육적 사건  -지혜 습득을 연마하는 실험-  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패배는 다만 우주 실체의 높은 차원을 획득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에 불과하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의 삶은, 현세에서의 삶 전체가 숨길 수 없는 실패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영원의 빛에 비추어볼 때 삶의 실패 각자가 지혜의 영원의 견지에서 볼 때 크게 성공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지식과 문화 그리고 지혜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그것들이 삶과 관련되기는 하지만, 방대하게 다른 영적 가치들을 나타내며 지혜는 언제나 지식을 지배하고 항상 문화를 영화롭게 한다.

 

5. 이상(理想)의 종교

 

너희들의 주(主)가 인간의 참된 종교를 각자의 영적 실체경험으로 간주하신다고 너희들은 말하였다. 나는 종교를, 어떤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도 충성과 헌신을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중요시하는 어떤 것에 대하여 반응하는 그의 경험으로 간주하였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실체의 이상들에 대한 우리의 최고 개념을 나타내는 것과, 영적 달성의 영원한 가능성을 향하여 우리 마음이 가장 멀리 도달한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최극 헌신을 상징화한다.

 

사람들이 종족, 국가 또는 민족에 대한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종교에 반응할 때,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집단 밖에 있는 자들은 참으로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종교적인 충성심의 대상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항상 바라본다. 종교는 단순히 지적인 믿음이나 철학적인 이론의 문제가 결코 될 수 없으며 종교는 항상 그리고 영원히, 삶의 상황에 대한 반응 양식이며 행위의 일종이다. 종교는 우리들이 우주적으로 숭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실체에 겸손히 향하는 생각, 느낌, 그리고 행동을 포옹한다.

 

만일에 어떤 것이 너희들의 경험 속에서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면, 너희들 자신이 이미 그 종교의 활발한 전도자가 되었다는 것이 자명한데, 왜냐하면 너희가, 너희 종교의 최극 개념을 모든 사람, 모든 우주 지능 존재들이 경배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너희들이 너희들의 종교의 적극적이고 사명을 가진 전도자가 되지 못한다면, 너희들이 종교라고 부르는 것이 오로지 전통적인 믿음이거나 단순한 지적 철학 체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너희들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만일 너희들의 종교가 영적인 경험이라면, 너희의 경배 대상은 너희들의 모든 영적 개념들의 우주 영 실체이자 그리고 이상이어야만 한다. 두려움, 감정, 전통, 그리고 철학에 기초하고 있는 모든 종교들을 나는 지적 종교라고 부르며, 반면에 영적 경험에 기초하는 종교들을 참 종교라고 부를 수 있다. 종교적 헌신의 대상은 물질적 또는 영적이거나, 진실된 또는 거짓된 것이거나, 실재하는 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인간적 또는 신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들은 선하든지 또는 악할 수 있다.

 

도덕과 종교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도덕의 체계들은 경배의 대상을 터득함으로써 종교가 될 수 있다. 종교는 충성심과 최극 헌신에 대한 우주적 호소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철학 체계 또는 도덕의 규범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물질, 존재, 상태 또는 실재의 계층, 혹은 종교적 충성심의 최극 이상을 구성하는 달성의 가능성, 그리고 경배하는 자들의 종교적인 헌신을 받아들이는 분, 이것이 하느님이시다. 영적 실체에 대한 이 이상(理想)에 붙여지는 이름이 무엇이든지, 그 분은 하느님이시다.

 

참 종교의 사회적인 특징은 개인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모시키는 사건들 속에 있다. 종교는 문명 세계에서 가장 성숙된 제도들의 최고 사회 관습 속에 포함되고 이미 알려져 있는, 윤리와 도덕의 기준들을 많이 초월하여 발견되지 못한 이상들의 실재를 내포한다. 종교는 발견되지 못한 이상들, 아직 탐험되지 못한 실체들, 초인간적 가치들, 신성한 지혜, 그리고 참된 영의 달성으로도 뻗어 나간다. 참 종교는 이 모든 것을 성취하지만 다른 믿음들은 이름만큼의 가치가 없다. 영원한 하느님에 대한 최극 숭고한 이상이 없이는 너희들이 참된 영적 종교를 가질 수 없다. 이 하느님이 없는 종교는 인간의 창작물, 생명이 없는 지적 믿음의 인간 제도이며 의미 없는 감정적 의식(儀式)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는 위대한 이상을 헌신의 대상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체가 아닌 그러한 이상들은 이룰 수 없는 것이며 그러한 개념은 착각이다. 인간의 달성을 받아들이는 이상은 오직 영원한 하느님의 영적 사실 속에 있는 무한한 가치의 신성한 실체들뿐이다.

 

하느님이라는 단어, 하느님에 대한 이상에 대비된 하느님에 대한 관념은, 그 종교가 미숙할 가능성 또는 잘못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종교에서든지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이 관념은 그것을 품는 사람들이 만들기로 선택하는 어떤 것이든지 될 수 있다. 하급 종교들은 인간의 가슴의 자연 상태에 맞도록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관념을 형성 한다 고급 종교들은 인간의 가슴이 참 종교의 이상이 요구하는 것에 맞추어지도록 바뀌기를 원한다.

 

예수의 종교는 우리들이 이전에 가졌던 경배에 대한 생각의 개념을 초월하는데, 예수께서는 그 속에서 그의 아버지를 무한한 실체에 대한 이상(理想)으로 설명하실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기로 이 땅에서 선택하여, 하느님에게는 아들관계 그리고 사람에게는 형제신분을 수락하기로 동의한 모든 필사 창조체들이, 가치들의 신성한 근원과 우주의 영원한 중심을 진정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선포하신다. 이것은, 내가 말하건대, 세상에 알려진 것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종교적 개념이며 그리고, 실체들의 무한성, 가치들의 신성, 그리고 우주적 달성들의 영원을 포옹하는 이 복음보다 더 높은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이러한 개념은 최극과 궁극의 이상주의를 경험하도록 하는 요소가 된다.

 

나는 너희들의 주(主)의 이 종교가 더할 나위 없는 이상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영 실체들에 대한 이 이상들이 달성될 수 있다는 그의 선포가 나를 강하게 감동시켜서 나의 믿음을 고백하게 하였으며 그것은 너희들과 내가 이 길고도 영원한 탐험에 참여할 수 있고, 우리들이 궁극적으로는 낙원의 입구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을 주(主)가 확실히 보장하신다는 사실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도 믿는다. 나도 같은 배를 탔다. 이 영원한 모험에 너희들과 같이 길을 걷고 있다. 주(主)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그 길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주(主)가 진리를 말씀하신다는 것을 완전히 믿는다. 나는 결국 영원하신 우주 아버지와 동떨어져서는, 얻을 수 있는 완전의 가치들 또는 실체의 이상들은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다만 실재(實在)의 하느님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실재(實在) 가능성의 하느님을 경배하려고 왔다. 그러므로 지고한 이상을 향한 너희들의 헌신은, 물질들과 존재들로 구성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주들의 하느님께 대한 헌신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어떤 다른 하느님도 없으니, 이는 그 어떤 다른 하느님도 있을 가능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하느님들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고, 필사자 마음의 환상이며, 잘못된 논리의 왜곡이며, 그것들을 창작하는 자들의 자기 기만적인 우상들이다. 물론, 너희들은 이 하느님 없이도 종교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만일 너희들이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이 이상의 실체 대신에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이상, 신성한 실체의 자리에 생각을 집어넣음으로써 너희들 스스로를 속이게 될 뿐이다.

 

나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최상의 종교를 발견한다. 이 복음은 우리들로 참 하느님을 추구하고 그를 찾도록 해 준다. 그러나 우리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값을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가? 우리들이 다시 태어나고자, 다시 만들어지려고 하는가? 자아를 버리고 혼을 다시 세워 가는 혹독하고 어려운 과정에 우리가 기꺼이 복종할 것인가? 주(主)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잃을 것이다. 내가 평안을 주려고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혼으로 하여금 투쟁하도록 하려고 왔다고 생각하라." 그렇다, 우리가 아버지의 뜻에 헌신하기 위한 값을 지불한 후에, 바쳐진 삶의 영적 경로를 계속 걷도록 하는 엄청난 평화를 우리들은 경험한다.

 

우리는 이제 실재(實在)의 계층으로 알려진 매혹들을 정말로 배척하며, 한편으로는 신성한 실체에 대한 보다 높은 이상주의의 영적 세계에서 모험하는 미래 삶의, 알려지지 않고 탐험되지 않은 실재(實在)의 계층에 대한 매혹들을 우리가 탐구하는 것에 기꺼이 헌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동료들에게 예수의 종교의 이상주의의 실체에 대한 이 개념들을 전달할 수 있는, 의미의 상징들을 찾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지고한 이 가치를 공동으로 목격함으로써 감동되는 그 날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할 것이다. 방금 초점에 맞추어진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우리 가슴속에 품었던 것처럼, 하느님은 영이시라는 것이며 친구들에게 전달하였던 것처럼,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예수의 종교는 살아 있는 영적 경험을 요구한다. 다른 종교들은 전통적인 신념들, 감정적인 느낌들, 철학적인 자각,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속에 있을 수 있지만, 주(主)의 가르침은 영의 참된 진보를 실제적 차원들에서 달성할 것을 요구한다.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충동을 의식하는 것이 참 종교는 아니다. 하느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감정적 느낌도 참 종교가 아니다.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을 섬기기로 신념을 가지는 지식도 참 종교가 아니다. 이 종교가 다른 모든 것들 중에 최고라는 이론의 지혜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경험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다. 참 종교는 달성되는 운명과 실체는 물론, 전심으로 신앙에서 받아들이는 그것의 실체 그리고 이상주의와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진리의 영의 계시에 의하여 우리에게 개인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하여 자기 민족 중에 가장 훌륭한 자의 한 사람이며 예수의 복음을 믿게 되었던 그리스 철학자의 강연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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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제 85 편 경배의 기원 운영자 08-22 2272
111  제 86 편 종교의 초기 진화 운영자 08-22 2077
110  제 87 편 귀신 예찬 운영자 08-22 2197
109  제 88 편 주물 숭배, 부적과 마술 운영자 08-22 2448
108  제 89 편 죄, 희생 제물, 그리고 속죄 운영자 08-22 2463
107  제 90 편 샤머니즘 - 주술사와 사제 운영자 08-22 2359
106  제 91 편 기도의 진화 운영자 08-22 2048
105  제 92 편 종교의 후기(後期) 진화 운영자 08-22 2397
104  제 93 편 마키벤타 멜기세덱 운영자 08-22 2141
103  제 94 편 동양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321
102  제 95 편 레반트에서의 멜기세덱의 가르침 운영자 08-23 2210
101  제 96 편 야훼 - 히브리인의 하느님 운영자 08-23 2628
100  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의 하느님의 개념의 진화 운영자 08-23 2475
99  제 98 편 서방(西方)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282
98  제 99 편 종교의 사회적인 문제 운영자 08-23 1984
97  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운영자 08-23 2128
96  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운영자 08-23 2152
95  제 102 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운영자 08-23 2097
94  제 103 편 종교적 경험의 실체 운영자 08-23 2172
93  제 104 편 삼위일체 개념의 성장 운영자 08-23 2092
92  제 105 편 신(神)과 실체 운영자 08-23 1856
91  제 106 편 실체의 우주적 차원 운영자 08-23 1983
90  제 107 편 생각조절자의 기원과 본성 운영자 08-23 2061
89  제 108 편 생각조절자의 임무와 사명활동 운영자 08-23 1892
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900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2021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63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96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28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75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49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35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50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44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80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73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39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70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9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57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66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203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81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302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32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402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70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32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36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55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96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83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83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79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55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97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49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75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81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64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213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61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23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4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47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77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48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98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82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53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45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75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77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19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40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39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84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84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55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93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117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8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44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73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211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35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51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91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38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75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57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203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23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4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95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98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72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71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71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22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62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57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92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709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21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82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97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66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59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6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6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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