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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27 (월) 14:29 조회 : 2190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예수와 열 명의 사도들은 3월 6일 월요일 늦은 저녁에, 펠라 야영지에 도착하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곳에 머무신 마지막 주가 되었으며, 군중들을 가르치고 사도들에게 설명하는 일에 매우 민활하게 움직이셨다. 매일 오후 무리들에게 설교하셨고, 매일 밤에는 야영지에 머물고 있는 보다 진보된 어떤 제자들과 사도들의 질문에 답변하셨다.

 

나사로의 부활에 관한 소식이 주(主)께서 도착하시기 이틀 전에 그 야영지에도 전해졌으며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였다. 5,000명을 먹인 사건 이후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이처럼 자극하는 어떤 것도 발생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때 예수께서 이 짧은 한 주 동안에 펠라에서의 가르치기로 계획하였던, 천국의 공중 사명활동 두 번째 위상이 최고 정점에 달하였으며, 그 후에는 페레아의 남쪽으로 내려가셔서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비참한 경험으로 들어가시게 되었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고소 내용들을 공식화하고 고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주(主)의 가르침들을 배척 하였다.


  1. 그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이며 죄 많은 사람들을 용납하고 심지어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2. 그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이며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고 하느님과 같다고 생각한다.


  3. 그는 법을 파괴하는 자이다. 그는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며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율법을 조롱하였다.


  4. 그는 귀신들과 결탁하고 있다. 귀신들의 영주인 바알세불의 힘으로 기적을 행하고 그럴 듯한 이적들을 행한다.

 

1.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비유

 

목요일 오후에 예수께서는 군중들에게 "구원의 은혜"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주(主)는 이 설교 속에서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돈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하신 후에, 그가 좋아하시는 돌아온 탕자 아들에 관한 비유를 더하셨다. 예수께서는 말씀하기를,

 

"사무엘로부터 요한에 이르는 선지자들이 너희들에게 하느님을 찾으라고 - 진리를 탐구하라고 - 훈계하여 왔다. 그들은 항상 '만날 수 있는 동안에 그 주(主)를 찾으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가르침을 가슴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는 동안 하느님께서도 너희들을 찾으려고 하신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보여주려고 내가 왔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가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 양을 발견하자, 그것을 어깨에 메어 친절하게 데리고 돌아와서 양 떼 속으로 다시 넣어주었다는, 선한 목자의 이야기를 내가 너희에게 여러 번 해 주었다. 그리고 잃었던 양이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 그 선한 목자가 자기 친구들을 부르면서, 잃었던 양을 발견한 것에 대하여 함께 즐기자고 그들을 초대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기억할 것이다. 다시 말하겠는데, 천국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 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을 더욱 기뻐한다. 혼들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관심을 더욱 깊게 해줄 뿐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분부대로 하려고 이 세상에 왔으며, 사람의 아들이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 말이 사실이다.

 

"회개한 후에야, 그리고 희생 제물과 참회의 행위의 결과로 신(神)의 용서가 임한다고 너희가 배워왔지만, 내가 너희에게 약속하는 것은,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회개하기도 전에 너희를 용납하시며, 너희를 찾아서 양 무리에게로, 영적인 진보가 있는 아들관계의 천국으로 기뻐하면서 데리고 오도록, 아들과 그의 동료들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길을 잃은 양과 같으며, 길을 잃은 그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내가 왔다.

 

"그리고 너희들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목걸이를 만들려고 은으로 된 열 개의 동전들을 감고 있다가, 하나를 잃어버려서, 등을 밝히고 집안을 열심히 쓸면서 잃어버린 그 은 동전이 발견될 때까지 쉬지 않고 찾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잃었던 그 동전을 발견하자마자,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서, '내가 잃었던 동전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기뻐하자.'고 말하였다. 내가 다사 말하겠는데, 한 죄인이 회개하고 아버지의 양 떼로 돌아오면 하늘의 천사들 앞에 항상 기쁨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나서신다는 것을 너희들의 가슴속에 새겨두기 위해서이며, 이렇게 찾아 나설 때, 구원을 필요로 하며 서 있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기 위한 우리의 부지런한 노력에 도움이 될만한 모든 것들을 우리는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찾기 위하여 광야에 나가며, 집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도 한다. 그 양은 부지불식간에 길을 잃게 된 것이며 그 동전은 시간이라는 먼지로 덮이고, 사람들의 일들로 누적되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너희들에게 어느 부자 농부의 철없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는데, 그 아들은 고의로 자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다른 나라 땅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양들은 아무 의도 없이 방황하게 되었지만, 이 젊은이는 계획적으로 자기 집을 떠났다는 것을 너희들이 기억하기 바란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동생은 근심 걱정이 없고 무책임(無責任)하여 항상 즐거운 시간만을 찾으며 책임은 회피하였으나, 반면에 그의 형은 진지하고 침착하며 열심히 일하고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람이었다. 이윽고 이 두 형제들의 사이가 나빠졌으며 둘이 항상 다투고 언쟁을 하였다. 동생은 명랑하고 활발하였지만, 게으르고 신뢰성이 없었으며 형은 침착하고 부지런하였지만, 반면에 자기중심적이고 무뚝뚝하며 교만하였다. 동생은 놀기는 좋아하였지만 일하는 것은 피하였으며 형은 일에 열심이었지만 잘 놀지 않았다. 두 형제의 불화가 너무 심해지자, 동생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저에게 오게 될 당신의 소유물들 중 3분의 1을 저에게 주시고 세상에 나가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요청을 들은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에 있으면 형 때문에 얼마나 불만스러워 하는지를 알고, 자기 재산(財産)을 떼어서, 작은아들의 몫을 주었다.

 

"그 젊은이는 몇 주 후에 자기 돈을 다 모아서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지만, 재미있으면서도 돈을 벌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곧 모든 유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재산이 모두 떨어졌을 때, 그 지방에 오랫동안 기근이 닥쳐왔으며, 곤궁한 신세가 되었다. 그리하여 배고픔을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자, 그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고용되었는데, 그를 돼지 키우는 곳으로 보냈다. 그 젊은이는 돼지들이 먹는 옥수수 껍질로 배를 채우지 않을 수 없었으나,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매우 배가 고프자,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말하기를, '내 아버지에게 고용된 많은 종들에게는 배부르게 먹고 남을 만큼 빵이 풍성한데, 나는 이 이국땅에서 돼지나 키우다가 굶주려 죽게 되었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렇게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아들이라 불려질 자격이 없으니 다만 저를 고용된 종들 중의 하나처럼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이 젊은이는 가슴의 결정이 되자,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향하였다.

 

"이 때 이 아버지는 아들로 인하여 몹시 슬퍼하였으며 그 명랑하고 철없는 아들을 무척 보고 싶어 하였다. 이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사랑하였으며 그가 돌아오기만을 항상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가 아직도 멀리 있는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사랑과 연민으로 감동이 되어, 그를 만나려고 뛰어 나갔으며, 자애롭게 환영하면서 그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인사가 끝나자, 그 아들은 눈물을 흘리는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 제가 하늘과 당신 앞에 죄를 지었으니 너는 더 이상 아들이라 불려질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지만, 그 아들은 고백을 다 마치지도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너무도 기뻐하는 아버지가, 달려오고 있는 종들에게, '내가 보관해 둔 가장 좋은 옷을 빨리 가져와서 그에게 입히고, 아들을 상징하는 반지를 그의 손에 끼워주고, 발에 신을 신발을 가져오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행복한 그 아버지는 발이 부르트고 기진맥진한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인들을 불러 말하기를,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살찐 송아지를 잡아 음식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가져오고 흥겹게 놀도록 하자.' 그들은 모두 그 아버지에게 모여 그의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였다.

 

"이 무렵, 그들이 축하하고 있는 동안, 큰아들이 들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 가까이 오면서 음악 소리와 춤을 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뒷문으로 가서, 하인들 중 하나를 불러내어 이 모든 잔치가 왜 벌어지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 종이, '오래도록 잃었던 당신의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으며, 당신 아버지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자기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당신도 들어오셔서 동생을 환영하시고 당신 아버지 집에 맞아들이십시오.'

 

그러나 그 형은 이 말을 듣자, 너무도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동생을 환영한 것에 대하여 큰아들이 분개하였다는 말을 들은 그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그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기를, '제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일하였고, 아버지의 명을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삼 년 동안 꼬박 아버지 곁에서 보살펴 드렸는데, 저의 충성스러운 봉사에는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버지의 소유를 창기들과 함께 탕진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자, 서둘러 살찐 송아지를 잡으시고 그를 즐겁게 만드셨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기 두 아들을 모두 사랑하였기 때문에, 큰아들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내 아들아,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 아니냐. 너는 언제라도 새끼 양을 잡아서 네 친구들과 흥겹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네 동생이 돌아왔으니, 나와 함께 들어가서 기뻐하고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 나의 아들아 네 동생을 잃었다가 찾은 것과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을 생각해 보아라!

 

이 비유는 예수께서 청중들의 가슴속에, 천국으로 들어오려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버지의 기꺼운 마음이라는 것을 심어주기 위하여 제시하신 모든 비유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것들 중의 하나였다.

 

예수께서는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을 동시에 말씀하시기를 대단히 좋아하셨다. 잃어버린 양 이야기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의 길에서 멀어졌을 때,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잃어버린 자들을 잊지 않으시며, 그 양떼의 참 목자인 자기 아들과 함께 나가셔서, 잃은 양을 찾으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집안에서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는, 혼동되거나, 좌절당하거나, 또는 삶의 물질적인 염려들과 축재(蓄財)로 인하여 영적으로 눈이 먼 모든 사람들을 찾으시는 하느님의 노력이 얼마나 철저하신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잃어버린 아들, 방탕한 자를 환영하는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은, 잃어버렸던 아들을 아버지의 집과 가슴속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복귀시키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는 동안 이 방탕한 아들 이야기를 얼마나 여러 번 반복하셨는지 모른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사랑과 사람의 이웃에 대한 정의(正義)를 가르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좋아하셨다.

 

2. 영리한 청지기의 비유

 

어느 날 저녁, 열심당원 시몬은 예수의 말씀들 중의 하나에 대하여 논평하며 말하기를, "주(主)님, 부당함의 재물을 가지고 기술적으로 친구들을 만들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자녀들이 자기 세대에는 천국의 자녀들 보다 더 현명하다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너희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너희 사업상에 관련된 것들을 매우 영리하게 처리하였다. 만일 너희가 불의 하였고 때로는 불공정하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안전에만 일편단심으로 매달려서 사업을 운영함에 있어서 신중하였고 앞을 내다보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너희가 너희 삶을 천국 안에 정한 것처럼 현재의 기쁨을 대비하면서 동시에 장차 천국에 쌓아 놓은 것을 즐길 것도 확보해 두어라. 너희들이 스스로 고용되었을 때 너희 자신들을 위하여 그토록 열심히 얻고자 하였다면, 이제는 너희들이 하느님의 청지기들로서 그리고 형제 된 관계의 종들로서 있으면서 천국을 위해 혼들을 얻는 일에 어찌 그리 열심을 보이지 않느냐?

 

"너희들은 모두 영리하지만 불의한 한 청지기를 가진 어떤 부자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청지기는 자기 주인의 손님들을 위협하여 자기 몫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자산을 직접 써버리고 허비하였다. 이 사실이 주인의 귀에까지 들리자, 그는 청지기를 앞에 불러 그 소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으면서 즉시 청지기 직의 회계장부(會計帳簿)를 제출하고 주인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준비를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자 이 불충한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청지기 직을 잃게 되었으니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구걸하자니 부끄럽다. 내가 이 청지기 직을 그만두었을 때, 내 주인과 거래하였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환영할 수 있도록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겠다.' 그러고 나서, 자기 주인에게 빚을 진 자들을 하나씩 부르면서, 첫 번째 사람에게, '나의 주인에게 얼마나 빚을 졌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름 일 백 되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청지기는 말하기를, '기록된 증서를 가져다가 빨리 앉아서 오십이라고 고쳐라.' 또 다른 빚진 자에게 말하기를 '너는 얼마나 빚을 졌느냐?' 그는 '밀 일 백 가마입니다,' 그러자 청지기는 '네 증서를 가져다가 팔 십 이라고 써라.' 그리고 다른 많은 빚진 자들에게도 이렇게 하였다. 정직하지 못한 이 청지기는 자기가 청지기 직에서 물러난 후에 자기를 위한 친구들을 만들기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그의 주인조차도, 후에 이것을 알고 나서, 그의 불충한 청지기가 장차의 빈곤과 역경에 대비한, 적어도 그 태도에 있어서는 현명함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를 준비함에 있어서, 때로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이런 식으로, 빛의 자녀들보다 더 현명함을 보여준다. 천국에서 보화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너희들에게 말 하겠는데, 부당함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받고, 마찬가지로 너희도 그러한 삶을 살아서, 의의 집단과 영원한 친구관계를 맺음으로써,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끊어질 때, 너희들이 영원한 거처(居處)로 기쁘게 영접될 것이다.

 

"내가 단언하겠는데, 적은 것에 신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신실할 것이며,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많은 것에도 불의할 것이다. 너희들이 만일 이 땅의 일에서 장래를 대비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는다면, 신실성과 현명함에 있어서 천국의 참된 재산에 대한 청지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너희가 신뢰를 받으리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느냐? 만일 너희가 선한 청지기도 아니고 신실한 은행가도 아니라면, 만일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에 신실하지 못하다면, 어떤 바보가 너희 이름으로 큰 보물을 맡기겠느냐?

 

"내가 다시 분명히 말하는데, 어느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나를 미워하고 다른 하나를 좋아하든지, 아니면 하나에 집착하고 다른 하나를 소홀히 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물질을 같이 섬길 수 없다.


거기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들 자신이 재산 획득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므로, 이것을 듣고, 비웃고 조롱하였다. 이들 대적하는 청중들은 예수를 쓸데없는 논쟁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였지만, 예수께서는 대적들과 토의하기를 거절하셨다. 바리새인들이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벌이자, 그들의 큰 소리 때문에 많은 군중들이 호기심으로 모여들었으며 그들이 서로 이의를 제기하자, 예수께서는 물러나셔서, 주무시기 위해 자기 막사로 돌아가셨다.

 

3. 부자와 거지

 

모임이 너무 시끄러워지자, 시몬 베드로가 일어서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말하기를, "형제들아, 너희들끼리 논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主)는 말씀하셨고, 너희들은 그의 말씀을 잘 숙고해 보아라. 오늘 너희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전혀 새로운 교리가 아니다. 부자와 거지에 대한 나실인들의 우화를 듣지 못 하였느냐? 재물을 사랑하고 정직하지 못한 재물을 탐내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이 비유를 세례 요한이 외치는 것을 우리들 중에서도 들은 사람들이 있다. 오래 된 이 비유는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천국의 새로운 빛을 깨달을 때까지 너희들은 모두 이 교훈을 잘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례 요한이 말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디브스라는 이름의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과 고운 세마포 옷을 입고, 매일같이 화려하게 꾸미며 환락 가운데 살았다. 그리고 거기에 나사로라 하는 부스럼투성이의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이 부자의 출입문 곁에 거하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들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으며 심지어는 개들도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다. 이윽고 그 거지가 죽어서 천사들이 그를 데려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쉬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이 부자도 죽어서 화려하고 호화롭게 매장되었다. 부자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지옥에서 깨어났으며, 고통을 당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디브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형벌로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다가 제 혀를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나의 아들아,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들을 즐겼지만, 나사로는 악한 고통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바뀌어서, 너는 고통을 받으나 나사로는 위로를 받는다. 그밖에도, 너와 우리들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어서 우리가 너에게 갈 수도 없고, 네가 우리에게 올 수도 없다.' 그러자 디브스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저에게 형제가 다섯이 있으니, 제발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어 증거를 주셔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나의 아들아,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 그러자 디브스는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죽었던 자가 그들에게 간다 할지라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말하였다.'그들이 모세도 듣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아니한다면, 죽었던 자가 살아난다 할지라도 그들은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나실인 형제들의 이 우화를 마쳤을 때, 군중들이 조용해 졌으므로, 안드레가 일어나 그들을 잠자리에 들도록 해산시켰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디브스와 나사로의 우화에 관하여 예수께 종종 질문을 하였지만, 그것에 대하여 결코 언급하시지 않았다.

 

4. 아버지와 그의 나라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느님의 나라 확립을 선포하는 동안,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왕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들에게 설명하는데 항상 힘들어하셨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시면서 육신 가운데에서 가르치실 때, 유란시아의 사람들은 대개 국가와 정부를 움직이는 왕 또는 황제에 익숙해 있었으며, 유대인들은 다가올 하느님의 왕국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주(主)는 천국을 사람의 영적인 형제신분으로 나타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이 형제신분의 영적인 머리로 나타내 보고자 하는 최선의 생각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를 왕으로 표현하시지 않았다. 사도들과 가깝게 이야기하실 때에는 언제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또는 형님으로 표현하셨다.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인류의 종으로, 그리고 천국 복음의 사자(使者)이셨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품성과 속성들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가르치신 적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아버지를 믿어달라고 요청하신 적이 없었으며 그들이 당연히 해야 되는 것으로 여기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실체를 증명하는데 있어서는, 논증을 제안함으로써 자기를 낮추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 관한 그의 가르침들은 모두 그와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 아들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것, 아버지도 아들처럼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 아들만이 참으로 아버지를 알고, 아들이 아버지를 그에게 계시할 것이라는 것, 아들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도 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들의 연합된 본성들을 나타내시고 협동하여 일하시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데에 중점을 두셨다. 야곱의 우물에서 만나신 여인에게 "하느님은 영이시다."라고 선포하신 것 외에는 자기 아버지에 대하여 다르게 언급하신 적이 없었다.

 

너희들은 예수의 가르침으로써가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신성을 주시해 봄으로써, 하느님에 관하여 배우게 된다. 영적이며 신성한 실체들, 실제적이여 영원한 진리들을 깨달을 수 있는 너희의 힘의 정도를 나타내는 하느님의 개념을 너희는 주(主)의 삶으로부터 각각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자가 나사렛 예수의 인간 삶의 유한 경험의 시간-공간 품성으로의 초점화구현된 것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한자가 무한자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은 오직 경험적인 실체로써만 알려지실 수 있다는 것과 마음속에 가르치는 것으로는 결코 그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잘 아셨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이 완전하게 하느님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아는 만큼, 그를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써가 아니라, 예수께서 어떤 분이셨다는 것을 앎으로써, 너희가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계시(啓市)이셨다.

 

예수께서 신(神)을 언급하실 때, 히브리 성경을 인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느님과 아버지라는 오직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주(主)가 자기의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부르실 때에는 보통 히브리 단어가 표시하는 복수의 하느님(삼위일체) 개념을 사용하신 것이며, 유대인의 종족적인 하느님에 대한 진보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야훼라는 단어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왕으로 부른 적이 결코 없으셨으며, 왕국 재건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망과 이루어질 왕국에 대한 세례 요한의 선포로 말미암아, 자신이 제시하시는 영적 형제신분을 천국이라고 불러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 것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셨다. 한 번의 예외 -"하느님은 영이시다"라는 선포- 를 제외하고는, 신(神)에 대하여 낙원의 첫째근원이며 중심과 이루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가 아닌 다른 어떤 서술적 방법으로도 언급하신 적이 없으셨다.

 

예수께서는 신(神)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으며, 아버지라는 단어는 하느님을 아는 경험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셨다. 하느님을 의미하기 위하여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가능한 가장 큰 의미로 납득되어야만 한다.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정의(正義)가 불가능하므로,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개념을 대신하며, 반면에 아버지라는 용어는 부분적인 정의(正義)가 가능하기 때문에, 필사자 실재 속에서 사람과 관련되는 신성한 아버지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될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엘로힘은 모든 하느님들의 하느님이었으며,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었다. 예수께서는 엘로힘의 개념을 받아들이셨으며 이 지고한 존재들 무리를 하느님이라고 부르셨다. 종족적인 신(神)인 야훼의 개념 대신에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범-세계적 형제신분 개념을 소개하셨다. 그는 한 종족의 신(神)화된 아버지 개념을 인류의 모든 자녀들의 아버지, 믿는 자 개개인의 신성한 아버지 관념으로 증대시키셨다. 더 나아가서 우주들의 이 하느님 그리고 모든 인류의 이 아버지는 전혀 똑같은 낙원 신(神)이라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엘로힘(하느님)의 현시로 육체 속에 있다고 주장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 자신이 세계들을 향한 엘로힘(하느님)의 계시라고 선포하시지 않았다. 그를 본 사람은 엘로힘(하느님)을 본 것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으셨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아버지에 대한 육체 속에서의 계시라고 선언하시고,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신성한 아들로서 오직 아버지만을 대표한다고 단언하셨다.

 

그는 참으로 엘로힘 하느님의 아들이기도 하셨지만, 그러나 필사 육체의 유사성 속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필사자 아들들에게, 그러한 계시가 필사자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삶을 통한 계시를 자기 아버지의 성격에 대한 묘사로 제한할 것을 결정하셨다. 낙원 삼위일체의 다른 품성체들의 성격에 대해서는, 육신화한 아들, 나사렛 예수의 삶 속에서 품성적 모습으로 그려져 계시되었던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가르침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비록 자신의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참된 본성을 나타내셨다 할지라도, 그에 관하여 가르치신 것은 거의 없었다. 사실, 오직 두 가지만을 가르치셨는데, 자신 속에 계신 하느님은 영이시라는 것과, 창조체들과의 모든 관계성에서 아버지이시라는 것이었다. 이 날 저녁, "나는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왔으며 나는 다시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갈 것이다."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최종적인 선포를 하셨다.

 

그러나 명심하라! 예수께서는 "나의 음성을 들은 자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으시지만, 반면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하느님을 안 것은 아니지만, 예수를 본 것 그 자체가 혼에게 계시된 아버지를 경험한 것이다. 우주들의 하느님은 멀리 퍼져 나가는 창조를 지배하시지만, 너희 마음속에 거하도록 자신의 영을 보내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예수께서는 그가 보여질 수가 없는 물질적인 창조체에게 그가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인간 모습으로의 영적 렌즈이다. 그는 천상의 집단들도 완전하게 납득할 수 없는 무한한 속성들의 존재를 육신을 입고 너희에게 알려주는 너희의 형님이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믿는 자, 각각의 개인적인 경험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이신 하느님은 영적인 경험으로써만 알려질 수 있다. 하느님은 영적 세계의 신성한 아들에 의해서, 오직 아버지로써만, 물질적 세계들의 유한한 아들들에게 알려지실 수 있다. 너희는 영원자를 아버지로서 알 수 있으며 너희는 우주들의 하느님, 모든 실재들의 무한한 창조주로서 그에게 경배를 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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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69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83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42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41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4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3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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