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게시물

접속자(48)

사이트맵

영단과 은하연합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영단과 은하연합
     유란시아서
     광자대
     40일 마음 훈련
     신의 편지
     메시지
     영상물
유란시아서
HOME > 영단과 은하연합 > 유란시아서
총 게시물 202건, 최근 0 건
   
제 2 편 하느님의 본성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18 (토) 15:37 조회 : 2158
 

제 2 편     하느님의 본성

 

하느님에 대한 사람의 가장 높이 가능한 개념이 시원적이고 무한한 품성(稟性)으로 인간의 관념과 이상 속에 포옹될 때, 신(神)의 성격을 구성하고 있는 신성한 본성의 어떤 특징들을 배우는 것이 무방하고,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본성은 네바돈의 미가엘이 그의 여러 가지 가르침들 속에서 그리고 육신으로의 그의 훌륭한 필사 삶에서 보여주었던 아버지에 대한 계시로 가장 잘 납득될 수 있다. 또한 만일 사람이 스스로를 하느님의 자녀로 생각하고, 낙원 창조주를 참된 영적 아버지로 우러러 본다면 신성한 본성은 사람에 의해 더 잘 납득될 수 있다.

 

하느님의 본성은 최극관념들의 계시 속에서 배워질 수 있고, 신성한 성격은 천상의 이상들에 대한 묘사로서 상상될 수 있지만, 신성한 본성의 모든 계시들 중 가장 잘 깨우쳐주고 영적 교화를 주는 것은, 신성의 충만한 인식에 달성하기 이전과 이후, 나사렛 예수의 종교적 삶에 대한 이해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만일 미가엘의 육신화된 삶이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의 근간으로 채택된다면, 우리는 우주 아버지의 품성의 본성과 성격에 대한 인간 개념의 더 앞선 계몽과 통합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 신성한 본성에 관하여 어떤 관념들과 이상들을 인간 언어 상징으로 나타내려고 시도할 수 있겠다.

 

하느님에 대한 인간 개념을 확대시키고 영성화 시키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 있어서, 우리는 필사마음이 갖는 제한된 능력 때문에 엄청나게 장애를 받는다. 또한 우리는 신성한 가치들을 묘사하고 유한자, 사람의 필사마음에게 영적 의미들을 제시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있어서 설명하고 비교하는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재료의 빈곤과 그리고 제한된 언어로 인해 우리의 임무 수행에 심각한 장애를 받고 있다. 우주 아버지의 증여된 조절자가 필사마음 속에 내주하고 창조주 아들의 진리 영이 가득 퍼져있는 그 사실이 아니라면, 하느님에 대한 인간 개념을 확대시키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은 거의 쓸모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슴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개념의 확대를 도와주는 이 신성한 영(靈)들의 현존에 의존하면서, 나는 하느님의 본성을 사람의 마음속에 더욱 묘사하고자 시도하는 나의 권한 수행을 기쁘게 시작한다.

 

1. 하느님의 무한성

 

"무한자와 접하지만,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다. 신성한 발자취는 알 수 없다." "그의 납득은 무한하고 그의 위대함은 헤아릴 수 없다." 아버지 현존의 눈부신 빛은, 그리하여 그의 하급 창조체들에게는 그가 "짙은 어둠 속에 거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생각들과 계획들을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한다." "하느님은 위대하시며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의 연세가 얼마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하느님이 정말로 땅 위에 거하겠는가? 보라, 하늘(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우주들의 우주)은 그를 담을 수 없다." "그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려운가, 지나간 그 행적들은 얼마나 찾아내기 어려운가!"

 

"오직 한 분의 하느님만 계시다. 무한한 아버지, 그는 또한 진실된 창조주이시다." "신성한 창조주는 또한 우주의결정자, 혼들의 근원인 동시에 운명이다. 그는 최극 혼, 시원(始元)의 마음이며 모든 창조의 제한됨이 없는 영이다." "위대한 조정자는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는 엄위와 영광으로 찬란하다."  "창조주 하느님에게는 두려움과 미움이 전혀 없다. 그는 불멸하고, 영원하고 자아-존재하며 신성하고 풍성하다." "모든 것들의 천상선조(天上先祖)는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심오하고 불가해한 분인가!" "무한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에서 가장 탁월하시다. 그는 시작이요 끝이며, 모든 선함과 완전한 목적의 아버지이시다." "하느님과 함께 모든 것이 가능하며 영원한 창조주는 원인들 중의 원인이다."

 

아버지의 영원한 우주 품성의 엄청난 현시의 무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무한과 영원 둘 모두에 대해 분별불가적으로 자아-의식 하며 마찬가지로 그는 완전성과 힘을 충분히 아신다. 그는 우주에서 자신의 신성한 동격자(同格者)들을 제외하고, 자신에 대한 완전하고 엄밀하고 완벽한 평가를 체험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아버지는 그의 주(主)우주의 다양한 구역들에서 때때로 변함에 따라 자신에 대한 각기 다른 요구의 필요를 끊임없이 그리고 반드시 충족시킨다. 위대한 하느님은 자신을 알고 납득하며 그는 완전성의 모든 그의 시원의 속성들을 무한히 자아-의식 한다. 하느님은 조화우주의 우연한 현상이 아니며 뿐만 아니라 그는 우주의 실험가도 아니다. 우주 주권자들은 모험에 들어갈 수 있고 별자리 아버지들은 실험할 수 있고 체계 우두머리들은 연습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주 아버지는 시작에서 끝을 알며, 그의 신성한 계획과 영원한 목적은 그의 광대한 권역의 모든 우주의 각 세계, 체계 그리고 별자리 안에 있는 그의 모든 종속들의 모든 실험들과 모든 모험들을 실제적으로 포옹하고 이해한다.

 

하느님에게 새로운 사물이란 아무 것도 없으며 조화우주의 어떤 결과도 전혀 놀라운 것이 될 수 없으며 그는 영원의 순환 속에 거주하신다. 그는 시작이나 끝나는 날이 없이 계신다. 하느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시간은 어떤 주어진 순간에든지 현재이다. 그는 위대하며 유일한 스스로 계신이이다.

 

우주 아버지는 그의 모든 속성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그리고 자격조건 없이 무한하다 바로 이 사실이, 저절로 그리고 그 자체로, 유한한 물질적 존재들 그리고 다른 하급 피조 지능존재들과의 모든 직접적인 개인의 교통으로부터 그를 자동적으로 차단시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의 갖가지 창조체들과의 접촉과 교통을 위한, 운명지어진 그러한 주선을 필요로 한다. 첫 번째로, 신성에 있어서 완전함에도, 또한 행성종족들의 바로 그 살과 피를 가진 본성으로 때때로 함께 하는, 하느님의 낙원 아들들의 품성으로 너희들 중의 하나가 되고 너희들과 하나가 되어 그리하여, 말하자면,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기도 하고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한 미가엘의 증여에서 나타났듯이, 하느님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급 기원의 물질적 존재들에게 접근하고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돌보고 또한 그들에게 봉사하는 무한 영의 품성들, 성(聖)천사군(天使群)들의 다양한 계층 그리고 기타 천상 지능존재들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유란시아의 인간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예고 없이 그리고 설명 없이 보내지는, 내주하도록 보내지는 위대한 하느님 자신의 실제 선물인 비품성의 신비 감시자들, 생각조절자들이 존재한다. 끝없이 풍부하게, 그들은 하느님-의식 또는 이를 위한 잠재 능력을 소유하는 그러한 필사자들의 미천한 마음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리고 내주하기 위하여 영광의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온다.

 

이러한 방법들 그리고 다른 여러 방법들로, 너희에게 알려지지 않고 유한(有限) 이해력을 철저히 초월하는 방법들로, 낙원 아버지는 사랑으로 그리고 기꺼이 내려오시며, 그리고 다른 한편 그의 창조체 자녀들의 유한 마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그의 무한성을 변형시키고 희석시키며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절대성을 점차 감소시키는 일련의 품성 분배들을 통하여, 무한한 아버지는 그의 멀리 퍼진 우주의 많은 영역에 속한 다양한 지능존재들과의 가까운 접촉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의 무한성, 영원성, 그리고 시원성(始原性)의 사실 그리고 실체로부터 조금도 낮아짐이 없이, 그는 이 모든 것을 행해왔고 지금도 행하며, 또한 행함을 영원토록 계속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 유란시아에 거하는 그러한 창조체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충분히 납득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진실이다.

 

최초 아버지가 그의 계획에서 무한하고 그의 목적에서 영원하기 때문에, 이들 신성한 계획과 목적을 전부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떤 유한 존재에게든지 선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필사사람은 아버지의 목적들을 우주가 진보하는 연속 차원들의 완성되어지는 창조체 상승계획 수행과 이에 따라서 그들이 드러나는데 따라서, 오직 이따금, 여기저기에서, 얼핏 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무한성의 의미에 에워싸여 있을 수는 없지만, 무한하신 아버지는 모든 우주들 안에 있는 자신의 모든 자녀의 모든 유한을 가장 분명하고 충만하게 이해하고 사랑스럽게 포옹하신다.

 

아버지는 수많은 상급 낙원 존재들과 신성과 영원을 공유하지만, 우리는 낙원 삼위일체인 그의 동격 동료들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와 무한성과 필연인 우주 시원성을 충만히 나누는지는 의문을 갖는다. 품성의 무한성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품성의 모든 유한성을 포옹하며 따라서 "그분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우리의 존재를 갖는다"라고 선언하는 가르침은 진리 - 글자 그대로 진리 - 이다. 필사사람 속에 내주하는 우주 아버지의 순수한 신(神)의 그 단편은 첫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 아버지들의 아버지의 무한성의 일부분이다.

 

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너희 옛 선지자들도 우주 아버지의 영원한, 시작도-없고, 끝도-없는 순환적인 본성을 이해하였다. 하느님은 자신의 우주들의 우주 안에 글자 그대로 그리고 영원히 현존한다. 그는 모든 그의 절대 주권과 영원한 위대함을 가지고 현재 순간에 거하신다. "아버지는 자신 안에 생명을 갖고 계시며,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시대에 두루 "모든 생명을 주신" 분은 아버지였다. 신성한 고결 안에 무한한 완전성이 있다. "나는 주이며 나는 변하지 않는다."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그가 빛들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행성 간 일들에 관한 그의 행위에는 "아무런 변동 가능성도 없고 변화의 그림자조차 없음"을 드러낸다. 그는 "시작에서 끝을 선언한다." 그는 말씀하신다. "나의 조언은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나의 아들 안에서 세운 영원한 목적에 따라서. "나는 내가 기뻐하는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다" 그래서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계획과 목적은 그 자신처럼: 영원하고 완전하며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다.

 

아버지의 명령에는 완벽의 최종과 충만의 완전성이 있다. "하느님이 무엇을 하시든지, 그것은 영원할 것이며 어떤 것도 거기에 더해질 수 없고 어떤 것도 거기에서 감해질 수 없다. "우주 아버지는 지혜와 완전성에 대한 그의 기원적 목적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그의 조언들은 확고하고 그의 의도는 변경되지 않으며, 동시에 그의 행위들은 신성하고 오류가 없다. "그에게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시간과 같다." 신성의 완전성과 영원의 장엄함은 필사사람의 제한된 마음으로 충분하게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언제까지나 초월한다.

 

변함없는 하느님의 반응은, 그의 영원한 목적을 실행함에 있어서, 그의 피조 지능존재들의 변화하는 태도와 바뀌는 마음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외관상 그리고 피상적으로 바뀔 수 있지만 그러나 표면의 아래 그리고 밖을 향한 모든 현시(顯示)의 밑에는, 영원한 하느님의 변함없는 목적, 영구한 계획이 여전히 있다.

 

바깥 우주들에서는, 완전성은 부득이 상대적인 용어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중앙 우주 그리고 특별히 낙원에서는, 완전성은 희석되지 않으며 어떤 위상들에서는 절대이기도 하다. 삼위일체 현시는 신성한 완전성을 다양하게 보여주지만, 그것을 엷게 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시원적 완전성은 어떤 가정되는 정의(正義)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의 신성한 본성인 선천적 선(善)의 완전성에 들어 있다. 그는 최종적이고 완벽하고 완전하다. 그의 의로운 성격의 아름다움과 완전성에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 그리고 공간의 세계들에서 살아있는 실재들의 전체 기획이 아버지의 낙원 완전성을 공유하는 경험인 높은 운명을 향해 모든 의지창조체들을 들어올리는 신성한 목적에 집중되어있다. 하느님은 자아-중심이지도 않고 자아-억제이지도 않으며 그는 광대한 우주들의 우주의 모든 자아-의식 창조체들에게 자신을 증여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하느님은 영원히 그리고 무한하게 완전하며, 그는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는 불완전성을 몸소 알 수 없지만, 모든 낙원 창조주 아들들의 진화 우주들에 속한 모든 투쟁하는 창조체들의 불완전함의 모든 경험에 대한 의식을 공유한다. 완전성의 하느님의 품성적이고 해방시키는 손길은 도덕적 식별의 우주 차원에 올라와 있는 모든 저들 필사창조체들의 본성을 둘러싸고 그 가슴을 감싸고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고는 신성한 현존의 접촉을 통하여, 우주 아버지는 전체 우주의 모든 도덕적 존재의 진화 생애 속에서 미성숙과 불완전성에 대한 경험에 실제로 참여한다.

 

인간의 제한조건들, 잠재적 악은 신성한 본성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악으로 인한 필사 경험과 거기에서의 모든 사람의 관계들은 시간의 자녀들 - 낙원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창조주 아들에 의해 창조되어왔거나 진화되어온 도덕적 책임을 가진 창조체들 - 안에서의 하느님의 항상-확대하는 자아-실현의 일부분인 것이 아주 확실하다.

 

3. 공의와 정의(正義)

 

하느님은 정의(正義)로우시며 따라서 그는 공정하다. "주(主)는 그의 모든 방법에 있어서 정의(正義)롭다." "'내가 행한 모든 것 중에 원인 없이 한 것이 없다'라고 주(主)는 말씀한다." " 주(主)의 심판은 참되고 전적(全的)으로 정의(正義)롭다." 우주 아버지의 공의는 그의 창조체들의 활동과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없는데, "이는 우리 하느님이신 주(主)에게는 어떤 사악함도 없고, 사람들을 차별하지도 않고, 어떤 선물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하느님께, 그의 변치 않는 신(神)의 뜻을 바꾸라고, 그래서 그의 현명한 자연 법칙들과 의로운 영적 명령의 작용으로 인한 마땅한 결과들을 우리가 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철없이 간청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속지 말라 하느님은 조롱당하지 않으시는데, 이는 사람이 뿌린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잘못된 행위의 결과를 거두는 공의에 있어서도, 이 신성한 공의는 항상 자비로 완화된다. 무한한 지혜는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든지 내려질 공의와 자비의 비율을 결정하는 영원한 중재자(仲裁者)이다. 잘못된 행위와 하느님 정부(政府)에 대항하는 고의적 반역에 대한 가장 큰 형벌(실제로는 불가피한 결과)은 그 정부의 한 개별적 주체로서의 존재를 잃는 것이다. 진심에서 나온 죄의 최종적 결과는 절멸이다. 결국에는, 그러한 죄와-동일시되는 그러한 개인들은 사악(邪惡)을 포옹함으로 전적으로 비실체(非實體)가 되어 스스로를 파괴해 왔다. 그렇지만 그러한 창조체의 실제 사라짐은 그 우주에서 행해지는 운명지어진 공의의 절차가 충분히 따라졌을 때까지 항상 연기된다.

 

실재의 중지는 대개 영역 또는 영역들의 섭리시대나 신시대적 판결이 있을 때 공포된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는 그것은 행성의 섭리시대의 끝에 온다. 실재의 중지는 행성협의회로부터 창조주 아들의 법정을 거쳐 옛적으로 늘계신이들의 심판법정에 이르는 모든 사법권을 갖는 법정들의 합동적 활동에 의하여, 그러한 시기에 공표될 수 있다. 괴멸의 명령은 잘못한 자가 거주하는 구체에서 비롯된 고발에 대한 파기될 수 없는 확인 이후에 초우주의 상급법원에서 비롯한다. 그 다음에는, 소멸 판결이 높은 곳에서 확인되고 나면, 집행은 초우주의 본부에 거주하는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일하는 판사들의 직접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판결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면, 죄와-동일시된 존재는 즉시 그가 존재해 오지 않았던 것처럼 된다. 그러한 운명으로부터는 부활이 전혀 없으며 그것은 영구적이고 영원하다. 정체인 살아 있는 에너지 요소들은, 시간의 변환들과 공간의 변형들에 의해, 그것들이 언젠가 출현하였던 조화우주의 잠재들 속으로 분해 된다. 사악하게 된 자의 품성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보증할 수도 있는 선택과 최종 결정에 창조체가 실패함으로써, 지속적인 생명 매체를 빼앗긴 것이다. 연합된 마음에 의한 계속되는 죄 포옹은 사악함과의 완벽한 자아-정체화달성 안에서 극도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생명이 중지됨에 따라, 조화우주로 분해 됨에 따라, 그렇게 격리된 품성은 창조의 대혼(大魂) 속으로 흡수되어, 최극존재의 진화하는 경험의 일부분이 된다. 그것은 결코 다시 품성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그것의 정체는 그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된다. 조절자-내주 품성의 경우에는, 지속되는 조절자의 실체 속에서 경험적 영적 가치들이 살아남는다.

 

실체의 현재차원들 사이의 어떤 우주 경쟁에서든지, 보다 높은 차원의 품성이 보다 낮은 차원의 품성을 궁극적으로 이기게 된다. 우주 논쟁의 이 필연적 결말은 본질특성으로서의 신성이 어떤 의지창조체이든지 실체성 또는 실제성의 정도와 동등하다는 사실에서 선천적이다. 순전한 악, 완벽한 실수, 고의적 죄, 그리고 수그러지지 않은 사악은 선천적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자멸이다. 조화우주의 비실체인 그러한 태도들은 정의(正義)로운 판결의 우주 법정들이 공의-결정의 명령을 보류하는 과도기 자비-관용과 그리고 공정성을-찾아내는 기능구조들 때문에 오직 우주 안에서 생존할 수 있다.

 

지역우주들에서의 창조주 아들의 통치는 창조하고 영성화이다. 이 아들들은 진보하는 필사자 상승이라는 낙원 계획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일에, 반역자들과 잘못 생각한 자들을 복귀시키는 일에 자신들을 헌신하지만, 그러한 모든 사랑하는 수고들이 마침내 그리고 영원히 거부되면 최종 괴멸 명령이 옛적으로 늘계신이들의 관할권 밑에서 움직이는 기세들에 의해 집행된다.

 

4. 신성한 자비

 

자비는 단순히, 지식의 완전성과 유한 창조체들의 타고난 연약성과 환경의 장애를 충분히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그 지혜에 의해 완화된 공의 일 뿐이다. "우리 하느님은 동정심이 가득하시고, 인자하시고, 오래-참으시며, 자비가 풍부하시다." 그러므로 "주(主)를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니," "이는 그가 충분하리만큼 용서하기 때문이다." "주(主)의 자비는 영구함에서 영구함으로 이어지며"; 정말로,   "그의 자비는 언제까지나 지속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자애로움, 심판 그리고 정의(正義)를 베푸는 주(主)이며, 이는 이 모든 것들에 있어 내가 기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자녀를 고의적으로 괴롭히지도 않고 슬프게 하지도 않는데, "이는 내가 "자비의 아버지이고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선천적으로 친절하고, 본성적으로 인정이 많으며, 영구히 자비로우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의 자애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영향도 결코 필요하지 않다. 창조체의 필요만 으로도 아버지의 온화한 자비와 그의 구원하는 은혜의 충만한 흐름을 보장하기에 온통 충분하다. 하느님은 그의 자녀들에 대해 모두 알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그에게는 쉬운 일이다. 사람이 자기 이웃을 더 잘 납득할수록, 그를 용서하는 것,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더욱 쉬워진다.

 

오직 무한한 지혜의 식별력만이 정의(正義)로운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리고 동시에 어떤 주어진 우주 상황 안에서도 공의와 자비를 베풀 수 있게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의 우주 자녀들에 대한 상충되는 입장(立場)으로 괴로움을 결코 받지 않으며 하느님은 결코 상반되는 입장의 희생이 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전지(全知)함은 그의 영원한 본성의 그의 모든 신성한 속성과 무한 본질 특성의 요구들을 완전하게, 동시에, 그리고 균등하게 만족시키는 그 우주 행위의 선택에 그의 자유의지를 틀림없이 이끈다.

 

자비는 선(善)과 사랑의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산물이다. 사랑하는 하느님의 선(善)한 본성은 그의 우주 자녀들의 모든 집단의 각 구성원에게 자비의 현명한 사명활동을 억제할 수 없다. 영원한 공의와 신성한 자비는 인간 경험 속에서 소위 공정함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함께 구성한다.

 

신성한 자비는 완전성과 불완전성의 우주 차원들 사이를 조절하는 하나의 공정(公正) 기법을 나타낸다. 자비는 진화하는 유한자의 상황들에 맞추어진 최극위의 공의, 시간의 자녀들의 가장 높은 이익과 우주 복지를 만족 시키려고 수정된 영원의 정의(正義)이다. 자비는 공의에 대한 위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화하는 우주들의 물질창조체에게 그리고 종속적인 영적 존재들에게 그것이 공정하게 적용되듯이, 최극 공의의 요구를 납득하는 해석이다. 자비는, 그것이 신성한 지혜에 의해 형성되어지고, 그리고 우주 아버지와 그의 모든 연합 창조주들의 전지(全知)의 마음과 주권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창조계에 있는 갖가지 지능존재들에게 현명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내려지는 낙원 삼위일체의 공의이다.

 

5.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우주의 일들에 대한 유일한 그의 품성적 태도는 항상 신성한 애정 반응이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증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는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태양을 뜨게 하시며 의로운 자들이나 불의한 자들에게 비를 내리게 하신다."

 

자기 아들들의 희생이나 또는 그의 피조 종속들의 탄원 때문에 설득되어서,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이라고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인데, "왜냐하면 아버지 자신이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버지로서의 애정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주하도록 놀라운 조절자들을 보낸다. 하느님의 사랑은 보편적이며 "누구든지 올 수 있다." 그는 "진리의 지식을 얻어 모든 사람들이 구원되게 하신다." 그는 "누구도 멸망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창조주들은 사람들이 신성한 법칙들을 어리석게 위반함으로써 생기는 비참한 결과로부터 구하려는 시도를 가장 먼저 하시는 이들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애정이며 따라서 그는 때로   "우리가 그의 거룩함을 함께 하는 자가 되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역경에 있게 한다." 너희가 불같은 시련에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우리와 함께 고통 받고 있음"을 기억하라.

 

하느님은 죄인들에게 신성하게 다정하시다. 반역자들이 정의로움으로 돌아올 때, 그들은 자비롭게 받아들여지며, "이는 우리 하느님은 풍성하게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너희 죄악들을 지워버리는 자이며, 나는 너희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떤 사랑의 태도를 우리에게 증여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는지 보라."

 

결국,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가장 큰 증거와 그를 사랑해야 되는 최극 이유는 아버지의 내주하는 선물 - 너희 두 존재가 영원히 하나가 될 그때를 그토록 인내하며 기다리는 조절자- 이다. 비록 너희가 하느님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만일 너희가 내주하는 영의 인도를 따르면, 한 걸음 한 걸음, 한 생애 한 생애, 우주에 우주를 거쳐서 그리고 한 시대 한 시대, 너희가 우주 아버지의 낙원 품성의 현존 앞에 마침내 서게 될 때까지, 틀림없이 인도될 것이다.

 

인간 본성의 한계와 너희 물질적 창조체의 장애들이 너희가 그를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너희가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너희와 하느님 사이에는 건너야 되는 엄청난 거리(물리적 공간)가 있다.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다리를 놓아야만 하는 영적 차이의 거대한 심연(深淵)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낙원 품성의 현존으로부터 너희를 물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격리시키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너희 안에 살고 계시다는 엄숙한 사실을 멈추어 숙고해 보라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이미 그 심연(深淵)에 다리를 놓았다. 그는 너희가 너희의 영원한 우주 생애를 추구할 때 너희 안에 살면서 너희와 함께 수고하기 위하여 그 자신, 그의 영을 보내 왔다.

 

나는 그토록 위대하고 동시에 그의 하급 창조체들을 들어올리는 사명활동에 그토록 애정을 담아 헌신하는 그분을 경배하는 일이 쉽고도 기쁜 일임을 발견한다. 나는 창조에서 그리고 그것들의 조정에서 그토록 능력이 있는데도, 선함에 그토록 완전한 그리고 또한 우리에게 끊임없이 드리우는 자애로움에 그토록 신실하신 분을 당연히 사랑한다. 나는 그가 그토록 위대하고 능력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가 그렇게 선하고 자비롭다면, 똑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놀라운 속성들을 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본성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공간 우주들의 진화에 선천적으로 있는 시간의 갖가지 어려움들과 그토록 용맹스럽게 투쟁하는 창조주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종속 행정자들을 내가 바라볼 때, 나는 내가 우주들의 비교적 작은 이들 통치자에게 크고 심오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나는, 영역들의 필사자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우주 아버지와 신성하거나 인간인 다른 모든 존재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 품성들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식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경험은 사랑을 받는 경험에 대한 매우 직접적인 응답이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의 최극위, 궁극위 그리고 절대라는 모든 속성들이 그로부터 없어지게 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그를 최극으로 사랑할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현재와 그리고 영원한 시대의 끝없는 순환에 두루 우리를 따라온다. 너희가 하느님의 사랑하는 본성을 숙고할 때,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타당하고도 자연스러운 품성 반응이 있다: 너희는 너희 조물주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겠고 자녀들이 이 세상의 부모에게 바치는 것과 비슷한 애정을 너희가 하느님께 그렇게 드리게 되는데 이는 아버지, 실제 아버지, 진정한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우주 아버지는 그의 피조 아들들과 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복지를 영원히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부모의 애정이다. 신성한 사랑은, 신성한 지혜와 우주 아버지의 완전 본성의 다른 모든 무한 특징들과 합일된 연합 속에서 기능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하느님은 아니다. 필사 존재들에 대한 신성한 사랑의 가장 큰 현시(顯示)는 생각조절자들의 증여 안에서 보이지만, 그러나 너희의 아버지 사랑에 대한 가장 큰 계시는 이 땅에서 이상적인 영적 삶을 살았던 그의 미가엘 아들의 증여 삶 속에서 보여 진다. 각각의 인간 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개별화하는 이는 바로 내주하는 조절자이다.

 

사랑이라는 인간의 언어 상징을 사용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그의 우주 자녀들에 대한 신성한 애정을 묘사하라고 강요된 것이 가끔 나는 상당히 고통스럽다. 이 단어는, 그것이 비록 존경과 헌신이라는 필사 관계들에 대한 사람의 최고 개념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은 인간관계를 너무 자주 나타내기 때문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우주 창조체들을 향한 그의 비길 데 없는 애정을 나타내는데, 또한 사용되는 어떤 언어로 알려지기에는 온통 저급하고 전혀 맞지 않는다! 낙원 아버지의 신성한 애정의 참된 본성과 절묘하게 아름다운 의미를 사람 마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몇 가지 숭고한 그리고 전용(專用)적인 단어를 내가 사용할 수 없음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사람이 한 품성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단지 선(善)한 나라가 될 뿐이다. 신성한 본성인 무한한 합일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그의 창조체들과 하느님의 모든 품성적 관계에서 지배적인 특징이다.

 

6. 하느님의 선함

 

물리적 우주에서 우리는 신성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지적 세계에서 우리는 영원한 진리를 식별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선함은 오직 품성적 종교 경험의 영적세계에서만 발견된다. 그것의 참된 본질에 있어서, 종교는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신앙-신뢰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하느님은 위대하고 절대적이며 심지어는 지능적이고 품성적 일 수 있지만, 종교적으로 볼 때 하느님은 또한 도덕적임에 틀림없고 그는 선하다. 사람은 위대한 하느님은 두려워하겠지만, 그는 선하신 하느님만은 신뢰하고 사랑한다. 하느님의 이 선함은 하느님의 품성의 일부분이며, 그것에 대한 그 충만한 계시는 오직 하느님의 믿는 아들들의 품성적 종교 체험에서만 나타난다.

 

종교는 영 본성의 초(超)세계가 인간 세계의 근본적 필요를 인식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종교는 윤리적으로 될 수 있지만, 오직 계시 종교만이 참되게 그리고 영적으로 도덕적이 된다. 하느님이 임금으로서의 도덕으로 지배하는 신이라는 옛 개념은 예수에 의해 부모-자녀 관계의 친밀한 가족으로서의 도덕인, 자애로운 손길이 미치는 차원으로 향상되었는데, 필사자의 경험에서 이것보다 더 온화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하느님의 선함의 풍부함이 실수를 범한 사람을 뉘우침으로 인도한다." "모든 선한 재능과 모든 완전한 재능은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다." "하느님은 선하시며 그는 사람들의 혼이 쉴 영원한 피난처이다." "주 하느님은 자비롭고 인자하시다. 그는 오래 참으시고 선(善)과 진리가 풍부하시다" "주(主)의 선함을 맛보고 알라! 그를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다." "주는 인자하시고 동정심이 가득하시다. 그는 구원의 하느님이 시다.""그는 절망에 빠진 자를 고치시고 혼의 상처를 싸매신다. 그는 사람의 전능한 은인이시다"

 

왕-심판관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그것이 비록 높은 도덕기준을 육성하고 그리고 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었지만, 개별 신자(信者)를 시간과 영원 안에서의 그의 지위에 있어서 불안이라는 슬픈 처지에 내버려 두었다. 후기의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임을 선언하였으며 예수는 하느님을 각 인간 존재의 아버지로 드러냈다. 예수의 일생은 하느님에 대한 필사자 개념 전체를 초월하여 조명하고 있다. 자신을 생각지 않는 것은 부모의 사랑 속에 선천적으로 있다. 하느님은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사랑하신다. 그는 모든 우주 품성의 낙원 아버지시다.

 

정의(正義)는 하느님이 우주의 도덕 법칙의 근원임을 의미한다. 진리는 하느님을 계시자로, 가르치는 자로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은 애정을 주고 갈망하며,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이, 납득하는 동료관계를 추구한다. 정의(正義)는 신성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사랑은 아버지의 태도이다. 하느님의 정의(正義)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신을 생각지 않는 사랑과 모순 된다는 잘못된 추측은, 신(神)의 본성에 합일성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했고 그리고는 하느님의 합일성과 자유-의지성 둘 모두에 대한 철학적 공격인, 보상(補償) 교리라는 고심작으로 직접 가도록 이끌었다.

 

그의 영이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 속에 거주하는, 하늘에 계신 자애로운 아버지는, 분리된 품성 - 공의의 품성 그리고 자비의 품성  - 이 아니며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아버지의 은혜 또는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중재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신성한 정의(正義)는 엄격한 인과응보의 공의로 지배되지 않으며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은 심판관으로서의 하느님을 초월한다.

 

하느님은 결코 분노하거나 복수하시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지혜가 종종 그의 사랑을 억제하며 한편, 공의가 그의 거부된 자비의 조건을 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정의(正義)의 사랑은 죄에 대한 미움과 같은 것으로 보여 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일관성 없는 품성이 아니며 신성한 합일성은 완전하다. 낙원 삼위일체 안에는, 하느님과 동격자들의 영원한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합일성이 있다.

 

하느님은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하신다는: 그러한 말은 철학적으로는 참말이지만, 하느님은 초월적 품성이며, 품성체만이 다른 품성체를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 죄는 품성이 아니다. 하느님은 죄인이 품성 실체(잠재적으로 영원한)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반면, 죄에 대해서는 하느님이 어떤 품성 태도도 취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죄는 영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은 품성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오직 하느님의 공의는 단지 그것의 실재에 대해 인식할 뿐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을 구원하며 하느님의 법이 죄를 괴멸시킨다. 필사마음이 내주하는 영 조절자와 스스로를 충만히 동일시 할 수도 있는 것과 똑같이, 만일 죄인이 자기 자신을 죄와 최종적으로 온통 동일시하면 신성한 본성인 이 태도는 분명히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죄-동일시된 필사자는 본성에서 온통 비(非) 영적인 상태가 되며 (따라서 품성으로 비실제적) 결국에는, 존재의 소멸을 경험하게 된다. 비실체는, 심지어는 창조체 본성의 미완성조차도, 점진적으로 현실이 되고 점점 더 영적으로 되는 우주 안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

 

품성의 세계와 대면할 때, 하느님은 사랑하는 품성체임이 발견되며 영적 세계와 대면할 때에는, 그는 품성적 사랑이며 종교적 경험에 있어서는 그는 둘 모두에 해당한다. 사랑은 하느님의 자발적 의지를 그렇게 확인해 준다. 하느님의 선함은 신성한 자유의지성 - 사랑하고, 자비를 보이고, 인내를 나타내고, 용서를 베푸는 보편적 성향 - 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7. 신성한 진리와 아름다움

 

모든 유한 지식과 창조체 납득은 상대적이다. 정보와 지능은, 비록 높은 근원들에서 단편적으로 수집되었더라도, 오직 상대적으로 완벽하고 부분적으로 정확하며 품성적으로 참될 뿐이다.

 

물리적 사실들은 상당히 일정하지만, 진리는 우주의 철학에 있어서 살아있고 유연한 어떤 요소이다. 진화하는 품성들은 그들의 교통에서 부분적으로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품성적 경험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확신할 수 있다. 한 장소에서 겉으로 보기에 온통 참된 것으로 보이는 그것이 다른 창조 구역에서는 오직 상대적으로 참된 것일 수 있다.

 

신성한 진리, 최종 진리는 한결같고 보편적이지만, 영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한 구체에서 흩어져 나온 수많은 개별존재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때로는 지식의 완벽성에 있어서의 이 상대성 때문에 세부사항에 있어서 다를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경험의 길이와 정도에서뿐만 아니라 품성적 경험의 충만함에서 다를 수 있다. 첫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의 법칙과 뜻, 생각과 태도가 영원히, 무한히 그리고 보편적으로 참된 반면 동시에, 각 우주, 체계, 세계와 창조된 지능존재에 대하여 이것들을 적용하고, 그리고 그들을 조절하는 것은, 무한 영과 다른 모든 연합된 천상의 품성들의 지역적 계획과 과정에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창조주 아들들이 그들 각자의 우주에서 기능하는 대로 그들의 계획과 기법에 일치한다.

 

유물론의 잘못된 과학은 필사사람을 우주 속에 버림을 받은 것으로 판결할 것이다. 그러한 부분적인 지식은 잠재적으로 악이며 그것은 선과 악 둘로 이루어진 지식이다. 진리는 충만하면서도 균형이 잡혀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람이 진리를 찾을 때, 그는 신성한 실제를 추구한다.

 

철학자들은 추상적 관념의 오류, 실체의 한 측면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리고는 그러한 고립된 양상이 진리 전체가 되는 것으로 장담하는 습관으로 그들이 잘못 인도될 때 그들의 가장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 현명한 철학자는 항상 모든 우주 현상 뒤에 있는 그리고 그것보다 선재(先在)하는 창조적 설계를 찾으려 할 것이다. 창조자의 생각은 항상 창조적 행동보다 앞선다.

 

지적 자아-의식은, 진리의 아름다움, 그것의 영적 본질, 특성을, 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일관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항상-현존하는 진리의 영의 어김없는 반응으로 말미암아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은 진리를 인식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이는 그것이 활동으로 옮겨질 수 있고 그것은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과 슬픔은 실수라는 결과에서 일어나는데 왜냐하면, 실체가 아니어서, 경험 속에서 실제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인 향기에 의해 가장 잘 알려진다.

 

영원한 탐구는 통합을 위한, 신성한 결합을 위한 것이다. 멀리-퍼지는 물리적 우주는 낙원 섬에서 결합하며 지적 우주는 마음의 하느님, 공동행위자 안에서 결합하며 영적 우주는 영원 아들의 품성 안에서 결합한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에 속한 고립된 필사자는 내주하는 생각조절자 와 우주 아버지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결합한다. 사람의 조절자는 하느님의 단편이고 신성한 통합을 영구히 추구하며 그것은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낙원 신(神)과 함께 그리고 그 안에서 결합한다.

 

최극의 아름다움을 식별함은 실체의 발견 그리고 통합이다. 영원한 진리 안에 있는 신성한 선(善)을 식별함, 그것은 궁극의 아름다움이다. 인간 예술의 매력조차도 그 합일성의 조화 속에 있다.

 

히브리 종교의 큰 오류는 과학의 실제적 진리들과 예술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하느님의 선함과 연합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문명이 진보됨에 따라, 그리고 종교가 진리를 상대적으로 배제하고 아름다움을 무시하도록 하느님의 선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어리석은 길을 일관되게 추구한 이래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격리된 선(善)에 대한 추상적이고 분열된 관념으로부터 돌아서려는 경향이 점점 더 생겨났다. 많은 20-세기의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을 붙잡는데 실패한, 현대 종교의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고립적인 도덕성은, 만일 그 도덕적 명령에 추가하여 과학과 철학과 영적 체험의 진리들을, 물질 창조의 아름다움, 지적 예술의 매력, 그리고 진정한 성격 성취라는 웅장함과 똑같이 배려한다면, 그 스스로 회복될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조화우주의 진리와 우주 아름다움 그리고 신성한 선(善)의 확대되고 절묘하게 통합된 현대 개념들로부터 살아 나오는, 새롭고도 매력적인 생활철학을 과감히 구축하게 될, 그러한 영적 통찰력을 가진 선견지명이 있고 진취적인 남녀들을 향한 것이다. 그러한 도덕의 새롭고도 정의(正義)로운 시각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선한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그리고 인간의 혼속에 있는 가장 좋은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진리(眞)와 아름다움(美)과 선(善)함은 신성한 실체들이며, 사람이 영적 삶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영원자의 이 최극 본질특성들은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점점 더 합동되고 통합될 것이다.

 

모든 진리  - 물질적, 철학적, 또는 영적 - 는 아름다운 동시에 선하다. 모든 실제적 아름다움 - 물질적 예술 또는 영적 균형성 - 은 참된 동시에 선하다. 모든 진정한 선(善) - 품성적 도덕성, 사회적 공평성, 또는 신성한 사명활동, 그 어떤 것이든지 - 은 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과 건전한 마음과 행복은 인간 경험 속에서 그것들이 혼합되듯이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의 통합이다. 능률적인 삶의 그러한 차원들은 에너지 체계들과 관념 체계들 그리고 영 체계들의 통합을 통하여 나온다.

 

진리는 응집력이 있고, 아름다움은 매력적이며, 선(善)은 안정을 이룬다. 실제적인 이러한 가치들이 품성 경험 속에서 합동될 때, 그 결과는 지혜에 의해 조건이 갖추어지고 충성에 의해 자격이 갖추어지는 높은 계층의 사랑이다. 모든 우주 교육의 실제적인 목적은 세계들의 고립된 자녀가 그의 확대되는 경험의 더 큰 실체들과 더 나은 합동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실체는 인간 차원에서는 유한하고, 좀더 높은 그리고 신성한 차원들에서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유버사에 있는 옛적으로 늘계신이들의 권한에 의해 활동하는 신성한 조언자에 의해 제시되었음]


 



   

총 게시물 202건, 최근 0 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491
 우주의 역사와 구조 운영자 08-18 16007
202  유란시아 서에 대한 소개 (Background) 운영자 07-01 4390
201  유란시아서 요약 운영자 07-01 5507
200  유란시아 서의 기원 운영자 08-18 3910
199  몬조론손을 소개하며 운영자 08-18 2568
198  우주의 역사와 구조 운영자 08-18 16007
197  유란시아서 용어해설 운영자 08-18 2705
196  제 1 부 중앙우주와 초우주들 /제 1 편 우주 아버지 운영자 08-18 2266
195  제 2 편 하느님의 본성 운영자 08-18 2159
194  제 3 편 하느님의 속성 운영자 08-18 2305
193  제 4편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운영자 08-18 2266
192  제 5 편 개인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운영자 08-18 2093
191  제 6 편 영원 아들 운영자 08-18 1970
190  제 7 편 영원 아들과 우주와의 관계 운영자 08-18 2120
189  제 8 편 무한 영 운영자 08-18 2019
188  제 9 편 우주에 대한 무한 영의 관계 운영자 08-18 2102
187  제 10 편 낙원 삼위일체 운영자 08-19 1938
186  제 11편 낙원의 섬 운영자 08-19 2239
185  제 12 편 우주들의 우주 운영자 08-19 2018
184  제 13 편 낙원의 성스러운 구체 운영자 08-19 2053
183  제 14 편 중앙에 있는 신성한 우주 운영자 08-19 2272
182  제 15 편 일곱 초우주 운영자 08-19 2158
181  제 16 편 일곱 주(主) 영 운영자 08-19 1963
180  제 17 편 일곱 최극 영 집단 운영자 08-19 1885
179  제 18 편 최극 삼위일체 품성 운영자 08-19 2054
178  제 19편 합동 삼위일체-기원 존재 운영자 08-19 1996
177  제 20 편 하느님의 낙원 아들 운영자 08-19 1958
176  제 21 편 낙원 창조주 아들 운영자 08-19 1969
175  제 22 편 삼위일체화 하느님의 아들 운영자 08-19 1748
174  제 23 편 단독 사자 운영자 08-19 1973
173  제 24 편 무한 영의 높은 품성 운영자 08-19 2017
172  제 25 편 공간의 사자(使者) 무리 운영자 08-19 1877
171  제 26 편 중앙 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19 1792
170  제 27 편 1차 초(超)천사의 사명활동 운영자 08-19 2003
169  제 28 편 초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19 2076
168  제 29 편 우주 힘 지휘자 운영자 08-19 1903
167  제 30 편 광우주의 품성 운영자 08-19 1965
166  제 31 편 최종의 무리단 운영자 08-19 1888
165  제 2 부 지역 우주 / 제 32 편 지역우주들의 진화 운영자 08-19 1977
164  제 33 편 지역우주의 관리 운영자 08-19 2193
163  제 34 편 지역우주 어머니 영 운영자 08-20 1887
162  제 35 편 하느님의 지역우주 아들 운영자 08-20 1913
161  제 36 편 생명운반자 운영자 08-20 1810
160  제 37 편 지역우주의 품성 운영자 08-20 2315
159  제 38 편 지역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20 2158
158  제 39 편 성(聖)천사 무리 운영자 08-20 2198
157  제 40 편 상승하는 하느님의 아들 운영자 08-20 2088
156  제 41 편 지역우주의 물리적 측면 운영자 08-20 2328
155  제 42 편 에너지 - 마음과 물질 운영자 08-20 2513
154  제 43 편 별자리 운영자 08-20 2141
153  제 44 편 천상의 거장(巨匠) 운영자 08-20 2235
152  제 45 편 지역체계 관리 운영자 08-20 2055
151  제 46 편 지역체계 본부 운영자 08-20 2003
150  제 47 편 일곱 맨션세계 운영자 08-20 2032
149  제 48 편 모론시아 삶 운영자 08-20 2042
148  제 49 편 거주되는 세계 운영자 08-20 1954
147  제 50 편 행성 영주 운영자 08-20 2175
146  제 51 편 행성 아담 운영자 08-20 2267
145  제 52 편 행성 필사자 신(新)시대 운영자 08-20 2135
144  제 53 편 루시퍼 반란 운영자 08-20 2620
143  제 54 편 루시퍼 반란의 문제 운영자 08-20 2248
142  제 55 편 빛과 생명의 구체 운영자 08-20 2122
141  제 56 편 우주 합일 운영자 08-20 2083
140  제 3 부 유란시아의 역사 / 제 57 편 유란시아의 기원(起源… 운영자 08-21 2435
139  제 58 편 유란시아의 생명 태동 운영자 08-21 2164
138  제 59 편 유란시아의 해양 생명 시대 운영자 08-21 2293
137  제 60 편 초기 육지 생명 시대의 유란시아 운영자 08-21 2275
136  제 61 편 유란시아의 포유류 동물기 운영자 08-21 2358
135  제 62 편 초기 사람의 시조(始祖) 종족 운영자 08-21 2185
134  제 63 편 최초의 인간 가족 운영자 08-21 2135
133  제 64 편 진화하는 유색 인종 운영자 08-21 2230
132  제 65 편 진화의 총괄 운영자 08-21 2213
131  제 66 편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 운영자 08-21 2329
130  제 67 편 행성의 반란 운영자 08-21 2151
129  제 68 편 문명의 태동 운영자 08-21 2111
128  제 69 편 원시 형태의 인간적 제도 운영자 08-21 2183
127  제 70 편 인간 정부의 발전 운영자 08-21 2229
126  제 71 편 국가의 발전 운영자 08-21 1981
125  제 72 편 이웃 행성의 정부 운영자 08-22 2173
124  제 73 편 에덴 동산 운영자 08-22 2261
123  제 74 편 아담과 이브 운영자 08-22 2382
122  제 75 편 아담과 이브의 불이행 운영자 08-22 2487
121  제 76 편 두 번째 동산 운영자 08-22 2206
120  제 77 편 중도 창조체 운영자 08-22 1943
119  제 78 편 아담 시대 이후의 보라색 인종 운영자 08-22 2252
118  제 79 편 동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291
117  제 80 편 서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270
116  제 81 편 근대 문명의 발전 운영자 08-22 2217
115  제 82 편 결혼의 진화 운영자 08-22 1814
114  제 83 편 결혼 제도 운영자 08-22 2317
113  제 84 편 결혼과 가정생활 운영자 08-22 2092
112  제 85 편 경배의 기원 운영자 08-22 2255
111  제 86 편 종교의 초기 진화 운영자 08-22 2054
110  제 87 편 귀신 예찬 운영자 08-22 2183
109  제 88 편 주물 숭배, 부적과 마술 운영자 08-22 2429
108  제 89 편 죄, 희생 제물, 그리고 속죄 운영자 08-22 2437
107  제 90 편 샤머니즘 - 주술사와 사제 운영자 08-22 2337
106  제 91 편 기도의 진화 운영자 08-22 2037
105  제 92 편 종교의 후기(後期) 진화 운영자 08-22 2380
104  제 93 편 마키벤타 멜기세덱 운영자 08-22 2131
103  제 94 편 동양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294
102  제 95 편 레반트에서의 멜기세덱의 가르침 운영자 08-23 2194
101  제 96 편 야훼 - 히브리인의 하느님 운영자 08-23 2610
100  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의 하느님의 개념의 진화 운영자 08-23 2453
99  제 98 편 서방(西方)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262
98  제 99 편 종교의 사회적인 문제 운영자 08-23 1962
97  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운영자 08-23 2104
96  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운영자 08-23 2122
95  제 102 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운영자 08-23 2084
94  제 103 편 종교적 경험의 실체 운영자 08-23 2146
93  제 104 편 삼위일체 개념의 성장 운영자 08-23 2068
92  제 105 편 신(神)과 실체 운영자 08-23 1832
91  제 106 편 실체의 우주적 차원 운영자 08-23 1959
90  제 107 편 생각조절자의 기원과 본성 운영자 08-23 2039
89  제 108 편 생각조절자의 임무와 사명활동 운영자 08-23 1871
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878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1998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44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79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06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56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32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20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24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25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49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42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12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47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7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33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41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184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62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277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01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376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48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14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20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38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82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71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65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56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44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80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24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54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64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34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191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44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01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2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32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62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30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74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63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31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27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57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58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01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20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21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55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66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29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76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098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6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22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58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190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22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28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73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16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44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35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182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03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3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87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88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64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56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59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11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49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39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84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697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06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69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83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42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41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4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3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491
이용약관 개인 정보 취급방침 책임의 한계와 법적고지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사이트맵

    위로

Copyright ⓒ 2006 Hiramid Academ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