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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편 개인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18 (토) 16:47 조회 : 2091
 

제 5 편   개인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만일 사람의 유한한 마음이, 우주 아버지처럼 그토록 위대하고 그토록 장엄한 하느님이 어떻게 무한한 완전성 속에 있는 그의 영원한 거처로부터 내려오셔서 개별적 인간 창조체와 친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러한 유한한 지성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실제적 단편이, 모든 정상-마음을 가진 그리고 도덕적으로 의식하는 유란시아 필사자의 그 지성 안에 거주한다는 사실의 진리 위에서 신성한 동료관계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내주하는 생각조절자들은 낙원 아버지의 영원한 신의 일부분이다. 사람은,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와의 교제를 시도하기 위하여 이 영적-실체 현존에 관한 혼의 깊은 사색으로서의 그 자신의 내적 경험보다 더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자신의 영원한 본성의 무한함을 그의 여섯 절대 동격자들의 존재적 실체들에 두루 분배해 왔지만, 그러나 언제든지 그는 자신의 전(前)품성 단편들의 중재로 창조의 어떤 부분이나 위상 또는 종류와 직접적인 품성적 접촉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영원한 하느님은 또한 우주들의 우주의 살아있는 창조체들과 신성한 창조주들에게 품성(稟性)을 증여하는 특권을 자신이 보유하여 왔고, 동시에 더 나아가 그는 품성(稟性) 순환회로를 통하여 이 품성적 존재들 전체와 직접적인 그리고 어버이로서의 접촉을 유지하는 특권을 보유하여 왔다.

 

1.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

 

유한 창조체가, 무한한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선천적인데, 아버지의 무관심에서가 아니고, 창조된 존재들의 유한함과 물질적 한계 때문이다. 우주 실재 중 가장 높은 품성(稟性)과 창조된 지능존재들 중 가장 낮은 집단들 사이에 있는 영적 차이의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비교적 지능존재의 낮은 계층들이 아버지 자신의 현존 속으로 즉시 전환되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과 마찬 가지로 그곳에서도 우주 아버지의 현존에 대해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필사자 사람의 앞에, 그가 가능성의 영역 내에서 우주 아버지의 낙원 현존 속으로의 안전한 처리행위를 일관되게 요구할 수 있기 전까지는, 멀고도 먼 길이 있다. 영적으로, 사람은 일곱 주(主) 영(靈)들 중 어느 한 분이라도 볼 수 있게 하는 영적 시각을 이룩하게 될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여러 차례 전환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아버지는 숨어있지 않으며 그는 독단적으로 은둔해 있지 않으시다. 그는 자신의 우주 권역에 있는 자녀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신성한 지혜의 자원들을 끝임 없는 노력으로 동원하여 왔다. 그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또는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모든 창조된 존재의 연합을 그가 갈망하도록 만든 그의 사랑의 장엄에는 무한한 숭고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대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너희의 유한한 품성(稟性) 그리고 물질적 실재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너희 안에 있는 선천적 한계들이, 너희가 필사상승의 여행 목표를 성취하고 만물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의 현존 속에 서게 되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들을 결정한다.

 

비록 아버지의 낙원 현존에 다가감은 너희가 영 진보의 최고 유한 차원들을 달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너희는, 너희 내면의 혼 그리고 너희의 영성화하는 자아와 그렇게 긴밀하게 연합된 아버지의 증여 영과 즉각적 교제가 항상 존재가능 함을 인식하며 기뻐해야만 한다.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 속한 필사자들은 타고난 능력들과 지적 자질에 있어서 크게 다를 수 있고, 또는 그들은 사회적 발전과 도덕적 진보에 예외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누릴 수도 있거나, 아니면 그들이 문명 예술에 있어서 예상되는 진보와 문화에 거의 모든 인간적 도움의 부족함에서 오는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승하는 생애에 있어서의 영적 진보에 대한 가능성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영적 통찰력과 조화우주 의미의 증가하는 차원들은 진화 세계에 있는 다양한 물질 환경들의 그러한 모든 사회-도덕적 차이들과는 매우 독립적으로 달성된다.

 

유란시아 필사자들이 그들의 지적, 사회적, 경제적, 심지어는 도덕적 기회들과 자질들에 있어서 다르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적 자질은 일정하며 특유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은 모두 아버지 선물의 동일한 신성한 현존을 누리며, 그들은 모두 신성한 기원을 갖는 내주하는 이 영과의 긴밀한 품성적 교제를 추구하는 특권을 똑같이 누리며, 또 한편 그들 모두는 이 신비 감시자들의 일정한 영적 안내를 받아들이기를 똑같이 선택할 수 있다.

 

만약에 필사자 사람이 전심을 다하여 영적으로 동기를 부여 받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서슴없이 헌신한다면, 그는 내주하는 신성한 조절자에 의해 그렇게 확실하게 그리고 그렇게 효과적으로 영적으로 부여 받기 때문에, 하느님을 아는 고결한 의식과, 그리고 더욱 그와 같아지는 진보적 경험으로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한 숭고한 생존의 확신이 그 개인의 경험 속에서 체현(體現)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에게는 살아남는 생각조절자가 영적으로 내주된다. 만일 그러한 인간 마음이 진지하게 그리고 영적으로 동기부여를 받는다면, 만일 그러한 인간 혼이 하느님을 알고자 하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한다면, 진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신성하게 동기부여를 받은 혼을 낙원 입구를 향하여 확실하게 상승하는 일에서 막을 수 있는 어떤 필사자 박탈이란 부정적 영향도 그리고 어떤 훼방 가능한 적극적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모든 그의 창조체들이 자신과의 품성적 교제 안에서 있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들의 생존지위와 영적 본성이 그러한 달성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그들을 받아들일 장소를 낙원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영원히 너희 철학에 자리 잡게 하라. 너희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은 가까이 갈 수 있는 분이고, 아버지에게 도달할 수 있고, 그 길은 열려 있다. 신성한 사랑의 기세들과 신성한 관리의 방법과 그리고 수단들은 우주 아버지의 낙원 현존을 향한 모든 우주의 모든 가치 있는 지능존재의 진보를 촉진시키려는 노력에서 모두가 서로 연동(聯動) 되어 있다.

 

하느님에게 도달하기까지 광대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은, 무한자(無限者)의 현존과 품성을 조금도 비실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너희의 상승은 일곱 초우주들의 순환회로의 일부분이며, 너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그 둘레를 돈다 하더라도, 너희는 영에 있어서 그리고 지위에 있어서 안쪽을 향해 계속 회전 진동되기를 기대해도 된다. 너희는 구체에서 구체로, 외부 순환회로에서 계속 더 내부 중심 가까이로 전환되고 있음을 믿어도 좋다. 그리고 언젠가는, 너희가 신성한 중앙 현존 안에 서게 될 것을 그리고 상징적으로 말해서 얼굴을 마주하고 그를 보게 될 것임을 의심 하지 마라. 그것은 실제적인 그리고 글자 그대로의 영적 차원의 달성에 대한 현안이다 그리고 이 영적 차원들은 신비 감시자가 내주하였던, 그리고 나중에 그 생각조절자와 영원히 결합한 어떤 존재든지 달성할 수 있다.

 

아버지는 영적 은둔 속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그의 창조체들은 그들 자신의 의지적 결정들의 안개 속으로 스스로 멀리 숨어왔으며, 그들 자신의 비뚤어진 길을 선택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의 편협한 마음들과 비(非)영적 본성의 자아-주장에 빠짐으로써, 그의 영과 그리고 그의 아들의 영의 교제로부터 스스로를 한동안 분리해왔다.

 

필사사람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도 있고 그리고 선택의 힘이 남아 있는 한 신성한 뜻을 반복적으로 저버릴 수도 있다. 사람의 최종 파멸은 그가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힘을 잃기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자기 자녀들의 필요와 청원에 대하여 아버지의 가슴은 결코 닫힘이 없다. 그의 신성한 뜻을 행하고자 - 그를 알고자 하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 하는 욕망을 그들이 최종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잃을 때는, 아버지의 이끄는 힘에 대하여 그의 자손이 그들 가슴을 영원히 닫을 때뿐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조절자 융합이 그러한 상승자가 아버지의 뜻을 살기로 최종적이고도 취소할 수 없는 선택을 하였음을 우주에 선언할 때 확인된다.

 

위대하신 하느님은 필사사람과 직접적 접촉을 만들며 그리고 그의 안에 살고 거주하도록 그의 무한하고 영원하며 이해할 수 없는 자아의 일부분을 내어주신다. 하느님은 사람과 함께 영원한 모험 여행에 오르셨다. 만일 너희가 너희 안의 그리고 너희 둘레의 영적 기세들의 안내를 따른다면, 너희는 공간의 진화 세계들로부터 상승하는 그의 창조체들의 우주 목표로서, 사랑하는 하느님에 의해 수립된 그 높은 운명을 달성하는데 실패할 수 없다.

 

2. 하느님의 현존

 

무한자의 물리적 현존은 물질 우주의 실체이다. 신(神)의 마음 현존은 개별 지적 경험의 깊이에 의해 그리고 진화적 품성차원에 의해 결정되어야만 한다. 신성의 영적 현존은 필연적으로 우주 안에서 차별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영적 수용력 의해 그리고 신성한 뜻을 행하려는 창조체 의지의 헌신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하느님은 그의 영-탄생 아들들 각자 안에 살아 계신다. 낙원 아들들은 하느님의 현존, "아버지의 오른 손"에 항상 들어갈 수 있으며, 그의 창조체 품성들 모두는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그리고 어떻게 접촉되든지 품성 순환회로에 관한 것이며, 혹은 그렇지 않다면, 우주 아버지가 중앙 거주지 또는 낙원의 일곱 성스러운 구체들 중 하나처럼, 다른 지정 장소에서, 품성적, 자아-의식적 접촉과 그리고 교제를 필요로 한다.

 

아무튼, 신성한 현존은 자연의 그 어디서나 또는 심지어 하느님을 아는 필사자들의 삶 속에서도, 내주하는 신비 감시자, 낙원 생각조절자와 가지는 너희의 시도된 교제에서처럼 그렇게 충분하게 그리고 그렇게 분명하게 발견될 수는 없다. 우주 아버지의 영이 너희 자신의 마음 안에서 살아 있는 데, 하늘 멀리에서 하느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오류인가!

 

너희들에게 내주하는 하느님의 단편 때문에, 너희가 조절자의 영적 인도와 조화에서 진보할수록 너희를 둘러싸고 너희에게 밀접하나 그러나 너희 전체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지는 않는, 다른 영적 영향들의 현존과 변환 힘을 더욱 충분하게 식별하도록 너희가 소망할 수 있다. 너희가 내주하는 조절자와의 가깝고도 긴밀한 접촉에 대해 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어떤 드높여진 경험을 최소한 반증(反證)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한 조절자와의 동료성에 대한 증거는 전적으로 개별 신자(信者)의 삶의 경험 속에서 수확되는 영의 열매들의 종류와 크기에 있다. "그들의 열매로서 너희는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빈약하게 영성화된 필사자 사람의 물질적 마음으로, 낙원 조절자처럼 그렇게 신성한 실존개체들의 영 활동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경험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마음과 조절자의 공동창조의 혼이 더욱더 실재함으로, 신비 감시자들의 그 현존을 경험할 수 있는, 그리고 영 인도와 다른 초물질 활동들을 인식할 수 있는, 혼 의식의 새로운 위상이 역시 진화한다.

 

조절자 교제의 온전한 경험은 도덕적 지위, 정신적 동기부여 그리고 영적 경험이 하나로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한 어떤 성취인 자아-실현은 주로, 배타적은 아니더라도, 혼 의식의 영역에 국한되지만, 그러나 그 증거들은 모든 그런 내부-영 접촉자들의 삶 속에서 영 열매들의 현시(顯示)에서 나타나며 그리고 풍부하게 있다.

 

3. 참된 경배

 

우주 관점에서 볼 때, 낙원 신(神)들은 유란시아에 거주하는 그러한 존재들과 맺는 그들의 영적 관계에 있어서 하나로 존재하지만, 그들은 또한 별개의 분리된 세 품성체들이다. 품성적인 호소와 친교, 그리고 다른 긴밀한 관계들에 관하여 신격(神格)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최고의 감각에서, 우리는 우주 아버지를 그리고 오직 그분만을 경배한다. 진실로, 우리는 그의 창조주 아들들 안에서 그가 현시(顯示)되는 아버지를 경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지만,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경배를 받고 찬미를 받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모든 종류의 간청은 영원 아들 그리고 아들의 영적 조직의 영역에 속한다. 기도, 모든 의례적인 교통, 우주 아버지에 대한 찬미와 경배를 제외한 모든 것은 한 지역우주에 관련되는 일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창조주 아들의 관할 영역을 벗어나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경배는 아버지의 품성 순환회로 기능에 의해 의심할 여지없이 순환회로에 연결되어 창조주 품성체에게 보내진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조절자, 내주 창조체들의 그러한 경의(敬意)함의 기록은 아버지의 영 현존에 의해 용이해진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을 입증시키는 굉장히 많은 증거가 있으며, 나는 아버지 단편들의 모든 계층이, 그들의 주체들의 진실한 찬미를 우주 아버지의 현존 속에 수용할 수 있도록 기록하는 권한을 부여 받았음을 알고 있다. 조절자들은 또한 하느님과 대화하는 전(前)품성 통로들을 의심할 여지없이 직접 활용하며, 그들은 마찬가지로 영원 아들의 영-중력 순환회로들도 활용할 수 있다.

 

경배는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기도는 자아 -또는 창조체- 이익 요소를 포함한다. 이것이 경배와 기도의 큰 차이이다. 참된 경배 속에는 자아- 요청 또는 품성적 이익의 기타 요소가 전혀 없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그가 어떠하리라고 이해하는 하느님께 경배할 뿐이다. 경배는 경배자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숭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아버지를 경배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버지의 비길 데 없는 품성을 인식함에 대한 자연적이고도 자발적인 반응으로서, 그리고 그의 사랑할 만한 본성과 찬미할만한 속성들 때문에 그렇게 헌신을 바치고 그렇게 경배에 참여하게 된다.

 

자아-이익의 요소가 경배에 끼어드는 순간, 그 순간의 헌신은 경배에서 기도로 전환되고 그리고 오히려 영원 아들 또는 창조주 아들의 품성체에게 적절하도록 방향 짓게 된다. 그러나 실제적인 종교적 경험에 있어서는 기도가 참된 경배의 일부분으로서 아버지 하느님에게 드려져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너희가 너희 일상생활의 실제적 일들을 다룰 때, 너희는 셋째근원이며 중심에 기원을 갖는 영 품성들의 통제 아래에 있다. 너희는 공동행위자의 대행자(代行者)들과 협동하고 있다. 그런즉 이런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며 아들에게 기도하고 그와 교제한다. 너희 세계에서 그리고 너희 우주에 두루 활동하는 무한 영의 지능존재들과 관련하면서, 너희의 땅에서 머무름의 세부 일들을 처리해 간다.

 

지역우주들의 운명을 지배하는 창조주 또는 주권자 아들들은 낙원의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 두 분의 자리에 있다. 이 우주 아들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경배의 찬미를 받고 그들 각자의 창조계에 두루 탄원하는 그들 백성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인다. 지역우주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모든 실제적 의도와 목적들에 대해 미가엘 아들이 하느님이시다. 그는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의 지역우주 품성화(稟性化)이다. 무한 영은 우주 영(靈)들, 낙원 창조주 아들들의 행정적 그리고 창조적 동료들을 통하여 이 영역에 속한 자녀들과 품성적 접촉을 유지한다.

 

진지한 경배는 진화하는 혼의 지배 아래에서 그리고 연합된 생각조절자의 신성한 방향 지시 받음이 있었을 때, 인간 품성의 모든 힘들이 동원됨을 의미한다. 물질적 한계를 갖는 마음은 참된 경배의 실제 의미를 결코 깊이 의식하게 될 수 없다. 경배 경험의 실체에 대한 사람의 깨달음은 주로 그의 진화하는 불멸 혼의 발달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혼의 영적 성장은 지적 자아-의식과는 전적으로 독립하여 일어난다.

 

경배 경험은 합일을 약속하는 조절자가 인간 혼의 하느님을 찾는 필사자 마음과 하느님을 계시하는 불멸 조절자의 공동창조의 형언할 수 없는 염원들과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갈망들을 신성한 아버지에게 전달하려는 숭고한 시도이다. 그러므로 경배는, 그의 영화(靈化)하는 자아가 연합된 영의 안내를 따라, 우주 아버지의 신앙 자녀로서 하느님과 교통(交通)하려는 시도에 물질적 마음이 동의하는 행위이다. 필사자 마음은 경배에 동의하며 불멸 혼은 경배를 갈망하고 일으키며 신성한 조절자 현존은 필사자 마음과 진화하는 불멸 혼을 대신하여 그러한 경배를 지휘한다. 참된 경배는, 결국에는 네 가지 조화우주에서 실현되는 영화(靈化) 자아의 경험이 된다. 지적, 모론시아적, 영적, 그리고 품성적 차원들 - 마음, 혼 그리고 영의 인식 그리고 품성 안에서의 그들의 통합 - 에서 실현되는 경험이 된다.

 

4. 종교에서의 하느님

 

진화하는 종교들의 도덕은 하느님 탐구에 있어서 두려움이라는 원동력에 의해 사람들을 앞으로 몰아간다. 계시의 종교들은 사랑의 하느님을 찾도록 사람들을 유도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그처럼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단순히 "절대적 의존"과 "생존의 보장"이라는 소극적인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성 봉사에 근거를 두는 신성 달성의 살아있고 역동적인 경험이다.

 

참된 종교의 크고 즉각적인 봉사는 인간 경험 속에서의 영속하는 합일, 영존하는 평화와 깊은 확신의 수립이다. 원시인에게 있어서는, 심지어 다신교(多神敎) 조차도 신(神)에 대한 진화적 개념의 상대적 통합이다. 다신교는 발달 중인 유일신교이다. 머지않아서, 하느님은 가치들의 실체, 의미들의 본체, 그리고 진리의 생명으로서 이해되도록 예정되어 있다.

 

하느님은 운명의 결정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의 영원한 목적지이다. 인간의 모든 비종교적 활동들은 우주를 자아의 왜곡된 봉사에 맞추려고 모색한다. 참으로 종교적인 개인은 자아를 우주와 동일시하고 그 다음에는 합일된 이 자아의 행위들을, 인간이든지 초인간이든지, 동료 존재들의 우주 가족에 대한 봉사에 바치려고 모색한다.

 

철학과 예술의 권역들은 인간 자아의 비종교적 활동과 종교적 활동 사이에 있다. 예술과 철학을 통하여, 물질적- 마음을 - 가진 사람은 영원한 의미의 영적 실체와 그리고 우주 가치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유인된다.

 

모든 종교는 신(神)에 대한 경배와 인간 구원에 대한 교리를 가르친다. 불교는 고해로부터의 구원, 끝남이 없는 평화를 약속하며 유대교는 어려움들로부터의 구원, 정의(正義)에 근거를 둔 번영을 약속하며 그리스 종교는 아름다움의 실현으로, 부조화, 추함으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하며 기독교는 죄로부터의 구원, 거룩함을 약속하며 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혹한 도덕기준들로 부터의 해방을 제공한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로부터의 구원, 시간 속에서의 그리고 영원 속에서의 창조체 고립이라는 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선(善)에 기초하였으며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에 기초하였으며 두 종교가 모두 진리를 추구하였다. 예수는 사랑의 하느님을 계시하였고, 사랑은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善)의 모든 것을 망라한다.

 

조로아스터 교도들은 도덕의 종교를 가졌으며 힌두인 들은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종교를 가졌으며 유교도들은 윤리의 종교를 가졌다. 예수는 봉사의 종교를 실천하였다. 이 모든 종교들은 예수의 종교에 접근하기에 유효한 가치를 그 안에 갖고 있다. 종교는 인간 경험 속에서 선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진실한 그 모든 것의 영적 통합의 실체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리스 종교는 "너 자신을 알라"는 표어를 가졌으며 히브리인들은 "하느님을 알라"는 그들의 가르침에 중심을 두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목표로 하는 복음을 전파하였다. 예수는 "하느님을 알고, 너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인 것을 알라"는 복된 소식을 선포하였다. 종교의 목적에서 서로 다른 이러한 개념들이 다양한 생활환경 속에서의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며 그리고 그의 개인적 기도 습관의 본성과 경배의 깊이를 예시한다. 어떤 종교든지 그 영적 지위는 그 기도의 본질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반(半)인간이고 질투하는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다신교와 숭고한 유일신교 사이의 필연적 과도기이다. 드높여진 신인동성동형론(神人同性同型論)은 순수하게 진화 종교의 최고 달성 차원 이다. 기독교는 신인동성동형 개념을, 인간의 관념으로부터,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라는 인물의 초월적이고 신성한 개념으로 높여놓았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신인동성동형이다.

 

하느님에 대한 기독교 개념은 분리된 세 가르침들을 병합하려는 시도이다:


1. 히브리 개념 - 도덕적 가치의 옹호자로서의 하느님, 정의(正義)로운 하느님.


2. 그리스 개념 - 통합자로서의 하느님, 지혜의 하느님.


3. 예수의 개념 - 살아 계시는 친구로서의 하나님, 사랑하는 아버지, 신성한 현존.

 

그러므로 혼합된 기독교 신학이 일관성을 달성하는 데 큰 어려움에 부딪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이 어려움은, 초기 기독교의 교리들이 일반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의 예수, 그리고 타르수스의 바울, 서로 다른 이 세 사람들 각자의 개인적 종교적 경험에 기초를 두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악화되어있다.

 

예수의 종교적 삶을 연구할 때,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 그의 죄 없음보다는 그의 정의(正義), 그의 사랑스러운 봉사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라. 예수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에 대해 히브리 개념 속에 계시된 수동적 사랑을, 모든 개인의, 심지어 잘못을 범한 자에게도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더 높은 능동적이고 창조체를-사랑하는 애정으로 올려놓았다.

 

5. 하느님에 대한 의식

 

도덕은 자아-의식의 이성에 그 기원이 있다. 그것은 초 동물적이지만 전적으로 진화적이다. 인간 진화는 조절자들을 증여하기까지 그리고 진리의 영이 부어지기까지, 선행되는 모든 자질들을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 포옹한다. 그러나 도덕 차원의 달성은 사람을 필사 삶에서의 실제 투쟁으로부터 해방하지 않는다. 사람의 물리적 환경은 실존(實存)을 위한 싸움을 수반하며 사회적 상황들은 윤리적 조정을 필요로 하며 도덕적 상태는 최고의 이성 영역에서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며 영적 경험은(하느님을 깨달은)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진지하게 분투하기를 요구한다.

 

종교는 과학의 사실들, 사회의 책무, 철학의 가정, 또는 도덕의 암시적 의무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종교는 삶의 환경에 대한 인간 응답의 독립된 영역이고 그리고 도덕 이후 인간 발전의 모든 단계들에서 어김없이 나타난다. 종교는 가치들을 실현하고 우주 동료관계를 즐기는 네 차원들: 자아- 보존의 물리적 또는 물질적 차원, 동료관계의 사회적 또는 감정적 차원, 이성의 도덕적 또는 의무적 차원, 신성한 경배를 통한 우주 동료관계 의식의 영적 차원, 이 네 가지 모두에 골고루 스며들 수 있다.

 

사실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하느님을 최초의 원인, 기세의 하느님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예술가는 하느님을 아름다움의 이상(理想), 미학(美學)의 하느님으로 이해한다. 추론하는 철학자는 때로 우주적 합일의 하느님으로 가정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는 범신론적 신으로 가정한다. 신앙을 가진 종교가는 생존을 돌보는 하느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다.

 

도덕적 행위는 진화종교와 계시 종교의 일부분에 항상 선행되지만, 그러나 종교 경험 전체보다는 선행되지 않는다. 사회적 봉사는 도덕적 사고(思考)와 종교적 생활의 결과이다. 도덕은 생물학적으로 종교적 경험의 더 높은 영적 차원으로 이끌지 않는다. 추상적인 아름다움의 찬미는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계를 드높여 받드는 것이나 합일을 공경하는 것도 또한 하느님에 대한 경배가 아니다.

 

진화적 종교는, 사람을 조절자 증여와 진리의 영의 오심을 포함하여, 계시 종교가 수용 가능한 차원으로 높여주는, 과학과 예술과 철학의 모체이다. 인간 실재(實在)에 대한 진화적 풍경은, 매우 다른 종교의 본질특성, 하나는 진화적이고 생물학적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적이고 주기적이긴 해도, 종교로 시작하고 종교로 끝난다. 그리하여, 종교는 사람에게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한편, 그것은 또한 선택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의 뜻에 반대하면서 종교적일 이유는 없다.

 

종교적 경험은, 본질적으로 영적이기 때문에, 물질적 마음에 의해서는 결코 충만하게 납득될 수 없다. 그래서 신학의 기능이나 종교의 심리학으로도 이해될 수 없다. 하느님에 관한 인간 실현의 본질적 교리는 유한한 납득력 안에서 하나의 역설을 낳는다. 인간의 논리와 유한한 이성이, 내주하는 하나님이며, 각 개인의 일부분인, 신성한 내재의 개념을,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신성한 지배인 하느님의 초월성 관념과 조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두 가지 신(神)에 대한 본질적 개념은, 지능적 경배를 증명해주기 위한 신앙 - 파악에서의 품성적 하느님의 초월성 개념에서, 그리고 품성 생존의 소망을 유효하게 하기 위한 하느님 단편이 내주하는 현존의 실현 안에서, 합일되어야만 한다. 종교의 난제들과 역설들은, 종교의 실체들이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필사 수용력을 철저히 벗어난다는 사실속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

 

필사사람은 그의 땅에서의 일시 머무르는 세월 동안에도 종교적 경험에서 세 가지 큰 만족감을 획득한다.

 

1. 지적으로 그는 더욱 합일된 인간 의식의 만족감을 얻는다.

 

2. 철학적으로 그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이상(理想)의 실체화를 즐긴다.

 

3. 영적으로 그는 참된 경배의 영적 만족 안에서, 신성한 동행자 신분에 대한 경험 안에서 자라난다.

 

하느님-의식은, 그것이 영역의 진화하는 필사자에 의해 경험되듯이, 변화하는 세 요소들, 실체 실현의 서로 다른 세 차원들로 이루어진다. 첫번째로는 마음 의식 - 하느님관념에 대한 이해 - 이 있다. 다음에는 혼 의식 - 하느님의 이상(理想)에 대한 실현 - 이 따라온다. 마지막으로는, 영 의식 - 하느님의 영 실체에 대한 실현  - 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성한 실현의 이 요소들의 통합에 의하여, 아무리 불완전 하더라도, 필사 품성은, 하느님의 품성에 대한 실현과 함께 모든 의식 차원들에 항상 널리 퍼진다. 최종의 무리단에 도달한 그 필사자들에게, 이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최극위(最極位) 하느님에 대한 실현으로 이끌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낙원 아버지의 아(亞) 절대 초(超)의식의 어떤 위상인 궁극위(窮極位) 하느님 실현으로 결과로서 생기어질 것이다.

 

하느님-의식 경험은 대대로 변함없이 같지만, 인간 지식에서 진보하는 각 신(新)시대마다 하느님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신학적 정의(正義)는 반드시 변한다. 종교적 의식인 하느님을 아는 것은 우주적 실체이다. 그러나 종교적 경험이 얼마나 효력이 있든지 (실제) 간에, 그것은 지능적 비평과 그리고 합당한 철학적 해석에 기꺼이 자신을 종속화 시켜야 한다. 인간 경험의 전체성 속에서 동떨어진 어떤 것이 되도록 추구해서는 안 된다.

 

품성의 영원한 생존은, 그의 결정이 불멸 혼의 생존 잠재를 정하는, 필사자 마음의 선택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마음이 하느님을 믿고 혼이 하느님을 알 때, 그리고 돌보는 조절자와 함께 그들 모두가 하느님을 원할 때, 생존이 보증된다. 지능의 한계, 교육의 부족, 문화의 박탈, 사회 지위의 열악, 그리고 심지어는 교육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이점이 불행하게 부족됨으로 유래되는 도덕의 인간 기준의 열등함 조차도, 그렇게 불행하고 인간으로의 장애가 있어도 믿음을 가진 개인 속에 있는 신성한 영의 현존을 무효로 만들 수 없다. 신비 감시자의 내주가 불멸 혼의 성장 그리고 생존의 잠재의 시초를 이루고, 가능성을 보장한다.

 

출산에 대한 필사 부모의 능력은 그들의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자연적 환경 아래에서 어버이의 요소결합은 자손을 낳기에 매우 충분하다. 옳고 그름을 식별하고 신성한 조절자와의 결합으로, 하느님을 경배하는 수용력을 소유한 인간 마음이, 만일 영(靈)- 부여 받은 개인이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진지하게 갈망한다면, 만일 정직하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결정한다면, 생존되는 본질특성을 가진 불멸(不滅) 혼의 생산을 시작하고 돌보기 위해 그 필사자가 필요한 것의 전부이다.

 

6. 품성의 하느님

 

우주 아버지는 품성들의 하느님이다. 품성 지위의 가장 낮은 필사자 그리고 물질적 창조체로 부터 창조자 존엄이며 그리고 신성한 지위에 있는 가장 높은 품성체에 이르기까지, 우주 품성의 권역(權域)은 그 중심과 테두리를 우주 아버지 안에 둔다. 아버지 하느님은 모든 품성의 증여자인 동시에 보존자이다. 그리고 낙원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신성한 뜻을 행하기로 전심으로 선택한 모든 유한 품성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의 그 운명이다.

 

품성은 우주의 풀리지 않은 신비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품성의 다양한 계층과 차원을 꾸미는데 들어가는 요소들의 적당한 개념들을 형성할 수는 있지만, 품성 자체의 실제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함께 모아져 있을 때, 인간품성을 위한 매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뚜렷이 감지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유한 품성의 본성과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품성은 자아-의식인 최소로부터 하느님-인식인 최대에 걸쳐서 마음자질을 소유하는 모든 창조체들 안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마음자질 자체만으로는 품성이 아니며, 또한 영도 아니고 물리적 에너지도 아니다. 품성은 물질, 마음, 그리고 영의 연합되고 합동된 에너지의 이 살아있는 체계 위에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 배타적으로 증여되는, 조화우주 실체에 있는 그 본질특성과 그리고 가치이다. 뿐만 아니라 품성은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것도 아니다. 품성은 물질적 또는 영적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어느 쪽도 품성이 있든지 또는 품성이 없든지 둘 중 하나이다. 품성적이 아닌 것은 낙원 아버지의 직접 활동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품성을 가진 차원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품성의 증여는 우주 아버지의 배타적 기능, 우주 아버지가 살아있는 에너지 체계에 대하여 상대적인 창조 의식의 속성과 그리고 그곳에 대한 자유의지 조정을 자질로서 부여하는, 그 살아있는 에너지 체계의 품성체구현(稟性化)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분리된 품성이 없으며, 어떤 품성도 아버지 하느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 품성의 중심 핵(核), 절대조절자와 마찬가지로, 인간 자아신분의 토대가 되는 속성들은, 우주 아버지, 조화우주 사명활동으로서 그의 배타적 품성 권역 안에서 활동하는 이의 증여이다.

 

전(前)품성 지위의 조절자들은 필사 창조체들의 수많은 유형(類型)들 속에 내주하며, 동일한 이 존재들이, 필사 죽음을 품성체구현하여, 궁극적 영 달성의 잠재를 가지는 모론시아 창조체로 생존되도록 그렇게 보증한다. 이는, 품성 자질의 그러한 창조체 마음이, 품성이신 아버지의 전(前)품성 증여, 영원 하느님의 영 단편으로 내주되면, 이 유한 품성은, 신성의 그리고 영원의 잠재를 소유하고 그리고 궁극자와 동족(同族)의 운명을 열망하며, 잇달아 절대자의 실현을 향해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신성한 품성에 대한 수용력은 전(前)품성 조절자 안에 선천적으로 있다. 인간 품성에 대한 수용력은, 인간 존재의 조화우주-마음 자질 속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필사사람의 경험적 품성은, 필사창조체의 물질적 생명 매체가 우주 아버지의 해방시키는 신성의 손길을 받고, 그래서 자아-의식으로, (상대적인) 자아- 결정으로, 그리고 자아- 창조적 품성으로 경험의 바다 위에 항해에 나서게 되기까지는, 실제적이고 기능적인 실체로서 목격되지 않는다. 물질적 자아는 진정한 그리고 분별불가한 품성이다.

 

물질적 자아는 품성과 정체성, 일시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전(前)품성 영 조절자 역시 정체성, 영원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 물질적 품성과 이 영 전(前)품성은, 불멸 혼이라는 생존되는 정체성 실재(實在)가 이루어지도록, 그들의 창조 속성들을 그렇게 연합시킬 수 있다.

 

그렇게 불멸 혼의 성장을 위해 준비해 왔고 그리고 선행(先行) 원인성에 절대 의존하는 족쇄로부터 사람의 내부 자아를 해방시켜 왔기에, 아버지는 옆으로 비켜 계신다. 사람이, 적어도 영원한 운명에 관계해서는, 원인성 응답의 족쇄로부터 그렇게 해방되어 왔고, 그리고 불멸 자아, 혼의 성장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져 왔으며, 선택하는 대로 자기 것이 되는 이 생존되고 그리고 영원한 자아의 창조를 원할 것인지 아니면 금할 것인지는, 이제 사람 자신에게 남아 있다. 넓은 우주들의 우주 전체에서 어떤 존재, 기세, 창조자, 혹은 행위수행자라도, 선택하고 있는 필사자 품성의 영원한 운명에 관하여, 선택의 영역 안에서 그것이 작용하는 한, 필사 자유의지의 절대적 주권에 조금도 간섭할 수 없다. 영원한 생존과 관계해서는, 하느님은 물질적이고 필사자 의지에 주권이 있음을 선포해 왔으며, 그 선포는 절대적이다.

 

창조체 품성의 증여는 선행(先行)되는 원인성에 대한 노예적 반응으로부터 상대적 해방을 수여하며, 그러한 모든 도덕적 존재들의 품성은, 진화적이든지 아니든지, 우주 아버지의 품성 속에 집중되어진다. 그들은 광대하고 우주적인 가족 계(界), 그리고 영원한 하느님의 형제적 순환회로를 이루는, 그 존재의 동족관계에 의해 그의 낙원 현존을 향하여 계속 끌어 당겨진다. 모든 품성 속에는 신성한 자발성인 동족관계가 있다.

 

우주들의 우주의 품성순환회로는 우주 아버지의 품성체 속에 집중되고 있으며, 낙원 아버지는 자아-의식 실재의 모든 차원의 모든 품성들을 품성적으로 의식하고, 품성으로 접촉한다. 그리고 전체 창조체의 이 품성 의식은 생각조절자들의 임무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모든 중력이 낙원 섬 안에서 순환회로화 되어있는 것처럼, 모든 마음은 공동행위자 안에 순환회로화 되어있고, 모든 영이 영원 아들 안에 순환회로화 되어있는 것처럼, 모든 품성은 우주 아버지의 품성적 현존 속에 순환회로화 되어있으며, 이 순환회로는 모든 품성들의 경배를, 기원적이고도 영원한 품성에게 어김없이 전한다.

 

조절자가 내주하지 않는 그 품성들의 경우에는, 선택-해방의 속성이 우주 아버지에 의해 역시 증여되어 있고, 그러한 품성체들은 신성한 사랑의 위대한 순환회로, 우주 아버지의 품성순환 회로 속에 마찬가지로 포옹되어 있다. 하느님은 모든 참된 품성들의 주권적 선택을 제공하신다. 어떤 품성 창조체도 영원한 모험여행 속으로 강요될 수 없다. 영원의 문은 자유의지 하느님의 자유의지 아들의 자유의지적 선택에만 응답해서 열린다.

 

지금까지 나는 시간의 자녀들에 대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관계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말하고 마치면서, 나는 하느님이 너희의 우주 아버지이심을, 그리고 너희는 모두 그의 행성 자녀들임을 반복해 말하는 것 이상으로, 더 해 줄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유버사의 신성한 조언자에 의한 우주 아버지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들 중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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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878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1997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43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79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06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56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31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20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24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25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49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41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11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47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7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32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41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183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61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276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00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375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47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14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20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37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82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70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64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54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43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80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24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54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64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34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189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44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099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2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30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62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30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74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63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31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26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57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57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01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20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21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55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64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28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76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097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6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21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56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190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21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28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73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15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44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34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181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01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3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86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87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63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54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59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08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48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38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84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696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04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69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83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42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40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4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34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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