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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편 하느님의 속성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18 (토) 15:53 조회 : 2305
 

제 3 편   하느님의 속성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우주 아버지는 영원의 순환계(巡環系)를 통치하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낙원 창조주 아들들의 품성체 속에서, 나아가 그는 이 아들들을 통하여 생명을 증여함으로써, 지역우주 안에서 통치하신다.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이 생명은 그의 아들들 안에 있다." 하느님의 이 창조주 아들들은 시간의 구역들에서의, 그리고 공간의 진화 우주들의 소용돌이치는 행성에 있는 자녀들에 대한, 그 자신의 품성적 표현이다.

 

고도로 품성체구현된 하느님의 아들들은 피조 지능존재들의 낮은 계층들에 의해 분명하게 식별될 수 있으며,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무한하고 그리하여 잘 식별할 수 없는 아버지의 불가시성(不可視性)을 보상한다. 우주 아버지의 낙원 창조주 아들들은, 낙원 신들의 품성 안에 그리고 영원의 순환계(巡環系) 안에 선천적인 절대성과 무한성 때문에 보이지 않는, 그렇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계시이다.

 

창조자관계는 하느님의 속성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것은 오히려 그의 활동본성의 집합이다. 그리고 창조자관계의 이 우주 기능은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무한하고도 신성한 실체의 모든 합동 속성들에 의해 그것이 조절되고 조정되는 것으로 영원하게 명시된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 중 어느 한 특징이 다른 것들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정으로 의문스럽다, 만일 그 경우가 사실이었다면, 신(神)의 창조자관계 본성은 다른 모든 본성들, 활동들 그리고 속성들 보다 선행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神)의 창조자관계는 하느님이 아버지신분이라는 우주의 진리에서 정점을 이룬다.

 

1. 하느님의 어디에나 - 계심

 

어디에나 그리고 동시에 현존할 수 있는 우주 아버지의 능력이 그의 전재(全在)를 이룩한다. 하느님 홀로만 두 곳에, 수많은 곳에 동시에 계실 수 있다. 하느님은 "위에 있는 하늘에 그리고 아래에 있는 땅에" 동시에 현존하시며 시편 기자는 이렇게 외쳤다: "당신의 영으로부터 내가 어디로 갈 수 있으며 당신의 현존으로부터 내가 어디로 도망 갈 수 있겠습니까?"

 

"주(主)는 '나는 멀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도 있는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지 않느냐?'" 우주 아버지는 그의 멀리-퍼지는 창조 안에서 모든 부분들 속에 그리고 모든 가슴 속에 항상 현존하신다. 그는 "만물을 채우고 만물 속에 충만한," 그리고 "만물 속에서 모든 일을 하는 그의 충만함 "이며, 더 나아가, 그의 품성의 개념은 "하늘(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우주들의 우주)도 그를 담을 수 없다"는 것과 같다. 하느님이 모든 것이고 모든 것 속에 계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느님의 전부가 아니다. 무한자는 오직 무한 속에서만 최종적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원인은 결과에 대한 분석으로는 결코 충만하게 이해될 수 없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은 그의 속박되지 않는 자유 의지의 창조적 활동들의 결과로서 존재로 되어 온 그 창조의 전체 총계보다도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다. 하느님은 조화 우주에 두루 계시되지만, 그 조화우주는 결코 하느님의 무한성 전체를 포함하거나 둘러쌀 수 없다.

 

아버지의 현존은 주(主)우주를 끊임없이 순찰한다. "그의 나아감은 하늘 끝으로부터 이고, 그의 순환회로는 그 끝까지 이고, 아무 것도 그 빛으로부터 숨겨진 것이 없다."

 

창조체가 하느님 안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도 또한 창조체 속에 사신다. "그가 우리 안에 사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그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알며 그가 그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 낙원아버지로부터의 이 선물은 사람의 떨어질 수 없는 동행자이다." "그는 항상-현존하는 만물에-스며드는 하느님이다."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영은 모든 필사 자녀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 "사람은 친구를 찾아 나아가지만, 바로 그 친구는 그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참된 하느님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는 우리의 일부분이며 그의 영은 우리 안에서 말한다." "아버지는 자녀안에 사신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는 영원한 운명의 안내하는 영이다."

 

인간 종족들이, "너희는 하느님께 속하니" 이는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느님 안에 거하고, 그의 안에 하느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들어온 것은 참이다. 잘못된 행위에 있을 때조차 너희는 하느님의 내주하는 그 선물을 괴롭히는데, 이는 생각조절자가 악한 사고(思考)의 결과들을 그가 갇혀있는 인간 마음과 함께 겪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전재(全在)는 실체 안에서 그의 무한한 본성의 일부분이며 공간은 신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직 낙원에서 그리고 중앙 우주 안에서만. 하느님은 완전성으로 그리고 제한 없이, 식별될 수 있도록 현존한다. 따라서 그는 하보나를 감싸고 있는 창조계에서는 눈에 보이도록 현존 하지 않으시는데, 이는 하느님이 시간과 공간 우주들의 합동 창조자들과 통치자들의 주권과 신성 한 특권들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현존을 제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현존의 개념은, 영원 아들과 무한 영 그리고 낙원 섬의 현존 순환회로들을 포함하는 명시의 형식과 경로 둘 모두의 넓은 범주를 고려해야 한다. 우주 아버지의 현존과 그의 영원한 합동자들 그리고 대리자들의 활동은 항상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의 변하지 않는 목적의 모든 무한한 요구들을 그렇게 완전하게 충족시킨다. 그러나 품성회로와 조절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으며 여기에서 하느님은 독특하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독점적으로 활동하신다.

 

우주의 조정자는 우주의 모든 부분에 있는 낙원 섬의 중력 순환회로 속에, 질량에 따라서, 이 현존에 대한 물리적 요구에 응답하여 그리고 만물을 응집하고 그의 안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모든 창조의 선천적 본성으로 인하여, 동시에 그리고 똑같은 정도로 잠재적으로 현존한다. 마찬가지로 첫째근원이며 중심은 분별불가 절대자, 영원한 미래에 속하는 창조되지 않은 우주들의 저장소 안에 잠재적으로 현존한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물리적 우주들 속에 잠재적으로 가득 퍼져있다. 그는 소위 물질적 창조의 응집성의 시원적 기초이다. 이 비(非)영적 신(神)의 잠재는, 우주 활동의 단계에서 그의 독점적 대리자들 중 어느 하나의 불가해(不可解)한 침입으로 인하여 물리적 실재들의 차원에 두루 여기저기에서 실제화 된다.

 

하느님의 마음 현존은 공동행위자, 무한 영의 절대 마음과 관련되어 있지만, 유한 창조계에 서는 그것이 낙원 주(主) 영(靈)들의 조화우주 마음이 기능하는 모든 곳에서 좀더 잘 식별된다. 첫째근원이며 중심이 공동행위자의 마음 순환회로들 안에 잠재적으로 현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우주 절대자의 긴장들 속에 잠재적으로 현존한다. 그러나 인간 계층의 마음은 공동행위자의 딸들, 진화 우주들의 신성한 사명활동자들의 증여물이다.

 

우주 아버지의 어디에나-있는 영은 영원 아들의 우주 영 현존 그리고 신(神) 절대자의 영존하는 신성한 잠재의 기능과 합동된다. 그러나 영원 아들 그리고 그의 낙원 아들들의 영적 활동은 물론이고 무한 영의 마음 증여들까지도, 그의 피조 자녀들의 가슴속에 있는 하느님의 내주하는 단편들인 생각조절자들의 직접적 행동을 제외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행성, 체계, 별자리 또는 우주 안에서의 하느님의 현존에 관하여, 어떤 창조적 단위에서든지 그러한 현존의 정도는 최극존재의 진화하는 현존의 정도의 척도가 된다. 그것은 체계들 그리고 행성들 자체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약해지는, 광대한 우주의 부분에서 하느님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과 그리고 그에 대한 충성심에 의하여 정해진다. 그러므로 어떤 행성들(또는 심지어는 체계들) 이 영적 어두움 속으로 멀리 던져졌을 때,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격리되거나 또는 보다 큰 창조 단위들과의 교류로부터 부분적으로 고립된 것은 때때로 하느님의 고귀한 현존의 이 위상들을 보존하고 보호하려는 희망에서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란시아에서 작용되고 있듯이, 완고하고 사악하며 반역적인 소수의 이간 행위들로 인한 고립되는 결과의 고통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그들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그 세계들의 대다수(大多數)가 영적으로 방어하는 반응이다.

 

아버지가 모든 그의 아들들 - 모든 품성들 - 을 어버이로서 순환회로 안에 두지만, 그들 안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신(神)의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품성체들로부터 그들의 기원이 멀리 떨어져있음에 의해 제한되고, 그들의 운명 달성이 그러한 차원들에 가까이 감에 따라 증대된다. 창조체 마음들 안에 하느님이 현존한다는 사실은 신비 감시자들과 같은 아버지 단편들이 그들에게 내주 하느냐 안하느냐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의 유효한 현존은 그들이 머무는 마음들이 이 내주하는 조절자들과 조화되는 협동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아버지의 현존의 동요들은 하느님의 가변성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고 해서, 격리되어 물러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애정은 창조체의 잘못된 행위로 인하여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의 힘을(자기 자신에 관하여) 타고났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은, 선택권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가슴과 혼 안에서의 아버지의 신성한 영향력의 정도와 한계들을 직접 결정한다. 아버지는 제한과 편애함이 없이 우리에게 자신을 무상으로 증여하셨다. 그는 개인들, 행성들, 체계들 또는 우주들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시간 구역들에서 그는 칠중 하느님의 낙원품성들, 유한한 우주들의 합동 창조자들에게만 서로 다른 명예를 수여한다.

 

2. 하느님의 무한한 힘

 

모든 우주들은 "전능한 주 하느님이 지배하심"을 안다. 이 세계와 다른 세계들의 일들은 신성하게 감독된다. "그는 하늘 군대(天軍) 속에서 그리고 이 땅의 거주자들 가운데에서 그의 뜻대로 행하신다." "하느님의 힘 이외에는 아무 힘도 없다"는 말은 영원히 참되다.

 

신성한 본성과 일치되는 그 한계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참이다. 사람들, 행성들 그리고 우주들이 길게 이어져 겪는 진화과정들은 우주 창조자들과 행정자들의 완전한 조정 아래에 있으며 우주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에 일치하여 펼쳐진다. 조화와 질서 속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전지(全知)한 계획과 일치하여 진행한다. 오직 한 분의 입법자(立法者)만이 있다. 그는 세계들을 공간에 유지시키고 영원한 순환회로의 끝없는 순환계(巡環系)를 따라 우주들을 회전 진동시킨다.

 

모든 신성한 속성들 중에서 그의 전능(全能)하심은, 특히 그것이 물질적 우주 안에 널리 퍼져있어, 가장 잘 납득된다. 비(非)영적 현상으로 본다면, 하느님은 에너지이다. 물리적 사실에 대한 이 선언은, 첫째근원이며 중심이 모든 공간의 우주의 물리적 현상의 시원적 원인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신성한 활동으로부터 모든 물리적 에너지와 다른 물질적 현시들이 도래된다. 빛, 이것은, 열이 없는 빛은, 신들의 비(非)영적 현시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유란시아에 실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비(非)영적 에너지 형태가 존재한다. 그것은 아직 인지되지 않고 있다.

 

하느님은 모든 힘들을 조정하시며 그는 "번개가 지나가는 길"을 만드셨으며 그는 모든 에너지의 순환회로들을 정하셨다. 그는 에너지-물질의 모든 형태의 현시 시간과 방법을 정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영존하는 장악 안에 - 하부 낙원에 중심을 두는 중력의 조정 속에 - 영원히 붙들려 있다. 영원한 하느님의 빛과 에너지는 그의 웅장한 순환회로, 곧 우주들의 우주를 구성하는 별 무리들의 끝없는 그러나 계층적인 행렬을 따라 그렇게 영원히 회전 진동한다. 모든 창조체는 낙원-만물과 존재들의 품성 중심을 영원히 돈다.

 

아버지의 전능하심은, 물질적 마음적 그리고 영적 세 에너지들이 그에게 아주 근접된 가운데 구별할 수 없는 그러한 곳 - 만물의 근원, 절대 차원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 속한다. 창조체 마음, 낙원 단일력도 아니고 낙원 영도 아닌 것은 우주 아버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응답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불완전성의 마음에 - 생각조절자들을 통하여 유란시아 필사자들에 조율하신다.

 

우주 아버지는 과도기적인 기세나 뒤바뀌는 힘 또는 동요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힘과 지혜는 어떤 그리고 모든 우주 위급사태들에 대처하기에 전적으로 충분하다. 인간 경험의 긴급사태들이 나타날 때, 그는 그들 모두를 예견해 왔고, 따라서 그는 분리된 방법으로 우주의 문제들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지혜의 지시에 따라서 그리고 무한한 심판의 명령들의 조화 속에서 반응한다. 겉으로 나타난 것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힘은 우주 안에서 맹목적인 기세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긴급 통치가 이루어졌고, 자연 법칙이 중지되었고, 그릇된 적응이 인정되었고, 그리고 그 상황을 시정하도록 어떤 수고가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환경들이 나타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느님에 대한 그러한 개념들은 너희 관점의 제한된 범위에서, 너희 이해력의 유한성에서, 그리고 너희의 한정된 검사범위에서 기인되는 것이며 하느님에 대한 그러한 잘못된 납득은 영역의 더욱 높은 법의 실재함, 아버지의 성격의 장엄함, 그의 속성의 무한함, 그리고 그의 자유-의지함이라는 사실에 관하여, 너희가 깊은 무지(無知)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우주들에 두루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영이 내주하는 행성창조체들은, 그 수와 계층에 있어서 너무나 무한에 가깝고, 그들의 지능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제한되고 때로는 조잡하며, 그들의 시야는 너무나 단편적이고 지엽적이어서, 아버지의 무한 속성들을 알맞게 표현할 수 있는 개괄적인 법칙을 만들고 동시에 이들 피조 지능체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너희 창조체에게는, 전능하신 창조주의 행위들 중 많은 것이 독단적이고, 개별적이고, 종종 냉혹하고 잔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다시 단언한다. 하느님의 행위들은 모두 목적이 있고, 지능적이고, 현명하고, 친절하며, 최상의 선을 영원히 고려하는데, 언제나 한 개별존재나 개별종족이나 개별행성 또는 심지어 개별 우주를 위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가장 낮은 자들로부터 가장 높은 자들에게 이르기까지, 관계된 모든 존재의 복지와 최상의 선(善)을 위한 것이다. 시간의 섭리시대에 있어서 일부분의 복지가 어떤 경우에는 전체의 복지와 다른 것처럼 나타나는데 영원의 순환계(巡環系)에 있어서는 그러한 외견상의 차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가족의 일원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가족 시련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그토록 혼란시키고 혼동시키는 하느님의 활동들 중 많은 부분은, 공동행위자가 무한 마음의 결코 틀림이 없는 의지선택을 수행하며, 광대하고 멀리-퍼지는 창조 전반의 가장 높고 영원한 복지를 포옹하는 완전성의 품성의 관찰, 안목 그리고 배려의 결정들을 실시하도록 힘을 주는, 전지(全知)한 최종 판정들과 결정들의 결과이다.

 

그래서, 너희가 보거나 이해하거나 또는 알 수 없는 많은 신성한 행위들의 지혜와 친절함이, 너희에게 그렇게 부숴 버리는 냉혹함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고, 너희 이웃 창조체들의 행성 행복과 개인 번영에 대해, 위로와 복지에 대해 그렇게 철저한 무관심으로 특징 지워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러한 어떤 장애를 만들게 하는 것은 너희의 분리되고 단편적이고 유한적이고 조잡하고 매우 물질적인 관점과 그리고 너희 존재의 본성 속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는 한계들이다. 너희가 하느님의 동기들을 잘못 납득하고 목적들을 오해하는 것은, 인간 시야의 한계 때문이고, 너희의 한정된 납득과 그리고 유한한 납득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의 품성 행위들이 아닌 많은 것들이 진화 세계에서 일어난다.

 

신성한 전능(全能)은 하느님의 품성의 다른 속성들과 완전하게 합동을 이룬다. 하느님의 힘은, 대개, 그 우주 영적 현시 속에서 세 가지 조건 또는 상황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1. 하느님의 본성에 의해, 특별히 그의 무한한 사랑에 의해,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善)에 의해.


2. 하느님의 뜻에 의해, 그의 자비로운 사명활동 그리고 우주의 품성들과의 아버지로서의 관계에 의해.


3. 하느님의 법에 의해, 영원한 낙원 삼위일체의 정의(正義)와 공의에 의해.

 

하느님은 힘에 있어서 제한됨이 없고, 본성에 있어서 신성하고, 의지에 있어서 최종이고, 속성들에 있어서 무한하고, 지혜에 있어서 영원하며, 실체에 있어서 절대이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의 이 모든 특징들은 신(神) 안에서 합일되어 있고 낙원 삼위일체 안에서 그리고 삼위일체의 신성한 아들들 안에서 우주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와는 달리, 낙원 그리고 하보나라는 중앙우주 밖에서는, 하느님께 속하는 모든 것이 최극자의 진화적 현존으로 제한되고, 궁극위의 결과로서 생기고 있는 현존으로 조절되며, 세 존재적 절대자들 - 신, 우주, 그리고 분별불가 - 로 합동된다.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은 그러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게 제한된다.

 

3. 하느님의 우주 지식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신성한 마음은 모든 창조체의 생각을 의식하고 그것을 밝게 알고 있다. 사건들에 대한 그의 지식은 우주적이며 완전하다. 그로부터 나아가는 신성한 실존 개체들은 그의 일부분이며 "구름을 저울로 다는" 그 분은 "지식에 있어서도 완전하다." "주(主)의 눈은 어디에나 있다." 너희 위대한 선생이 하찮은 참새에 대하여, "그들 중 하나도 내 아버지께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으며," 그리고 "너희 머리에 있는 바로 그 머리카락 숫자도 헤아리신다."고 말하였다. "그는 별들의 숫자를 말하며 그것들을 그 이름대로 부른다."

 

우주 아버지는 공간의 별들과 행성들의 숫자를 실제로 아는 온 우주 안에서의 유일한 품성이시다. 각각의 우주에 속한 모든 세계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의식 안에 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아왔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왔으며, 그들의 슬픔을 알고 있다." 이는 "주(主)는 하늘로부터 바라보며 모든 사람의 아들들을 보시며 그의 거처에서 땅에 있는 모든 거주자들을 내려다보시기" 때문이다. 모든 창조체 자녀는 정말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는 내가 가는 길을 아시며, 그가 나를 다 시험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아갈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그는 멀리에서 우리 생각을 납득하시고 모든 우리의 길을 잘 아신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하는 그 분의 눈앞에 모든 것들이 벌거벗었고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가 너희의 구조를 아시며 너희가 티끌임을 기억 하신다"는 것을 납득하는 것은 모든 인간 존재들에게 참된 위로가 될 것이다. 예수는,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해,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그에게 요청하기도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였다.

 

하느님은 모든 것들을 아는 제한됨이 없는 힘을 소유하고 계시며 그의 의식은 우주적이다. 그의 품성회로는 모든 품성체들을 에워싸며, 심지어 낮은 창조체에 대한 것이라도 그의 지식은 내려오는 일련의 신성한 아들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그리고 내주하는 생각조절자들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보완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무한 영이 항상 어디서나 실재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죄의 사건들을 미리 아시기로 선택하는지 아니하는지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자기 자녀들의 자유의지 활동들을 미리 아신다 하더라도, 그러한 선견(先見)은 그들의 자유를 조금도 폐기시키지 않는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느님은 결코 놀라지 않는다.

 

전능(全能)은 행할 수 없는 것들, 하느님답지 않은 행위를 하는 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지성은 알 수 없는 것들을 아는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은 유한 마음에게는 거의 납득시킬 수 없다. 창조체는 창조주의 뜻의 범위와 한계들을 거의 납득할 수 없다.

 

4. 하느님의 한계 없으심

 

우주들이 생겨나게 됨에 따른 그것들에 대한 자신의 연속적 증여는 그것들이 신(神)의 중앙 품성 속에 계속 존재하고 머무르고 있을 때의 힘의 잠재 또는 지혜의 저장고를 결코 경감시키지 않는다. 기세와 지혜 그리고 사랑의 잠재에 있어서 아버지는, 낙원 아들들에 대한, 그의 종속 창조에 대한, 그리고 그것의 다양한 창조체에 대한 아낌없는 자기증여의 결과로, 그의 소유 중 어떤 것도 줄어들지 않으며 그의 영광스러운 품성의 어떤 속성도 빼앗기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우주의 창조는 중력의 새로운 조절을 요구한다. 그러나 비록 창조가 무기한적 으로, 영원하게, 그리고 심지어는 무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결국에는 물질적 창조가 한도 없이 존재하게 된다 하더라도, 낙원 섬에 평온히 있는 조정과 합동의 힘은 그러한 무한한 우주에 대한 지배, 조정 그리고 합동에 상응하고 또한 그것에 알맞은 것으로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한없는 우주에 대한 무제한적 기세와 힘의 이 증여 이후에, 무한자는 여전히 같은 정도의 기세(氣勢)와 에너지로 충전되어 있을 것이며 분별불가 절대자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은 마치 기세(氣勢), 에너지 그리고 힘이 우주와 우주마다의 자질을 쏟아 내지 않았던 것과 똑같이, 동일한 무한한 잠재를 여전히 소유하신다.

 

그리고 지혜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영역들의 사고(思考)에 그토록 자유롭게 배분된다는 사실이 신성한 지혜의 중앙 근원을 조금도 허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주들이 몇 배가되고 영역의 존재들이 포용의 한계까지 숫자가 늘어나고, 마음이 이 높고 낮은 지위의 존재들에게 증여되는 일이 중지되지 않고 계속된다 해도, 하느님의 중앙 품성은 똑같이 영원하고 무한하며 모든-지혜 마음을 여전히 계속하여 포옹할 것이다.

 

그가 너희 세계 그리고 다른 세계들의 남자와 여자들에게 내주하도록 자신으로부터 영(靈) 사자(使者)들을 보낸다는 사실은, 신성하고 전능한 영 품성으로서 기능하는 그의 능력을 조금도 줄이지 않으며 그가 보낼 수 있고 또 보내게 될 그러한 영 감시자들의 범위와 숫자에는 절대적으로 제한이 없다. 이렇게 그의 창조체들에게 자신을 내어줌은, 신성하게 부여 받은 이 필사자들을 위한 진보하고 연속하는 실재의 무한한, 거의 믿을 수 없는 미래 가능성을 창조한다. 그리고 사명활동하는 이 영 실존개체들로서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분배하는 이 일은, 모든-지혜, 모든 것-아심, 그리고 모든-힘을 가진 아버지의 품성체 안에 평온히 있는 진리 그리고 지식의 지혜로움과 완전성을 조금도 경감시키지 않는다.

 

시간의 필사자들에게는 미래가 있지만, 하느님은 영원 속에 거하신다. 비록 내가 신(神)이 거하는 바로 그곳 근처로부터 흩어져 나왔지만, 나는 여러 신성한 속성들의 무한성에 관하여 납득의 완전성으로 말한다고는 감히 할 수 없다. 마음의 무한만이 실재의 무한과 행동의 영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필사자 사람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무한성을 알 길이 없다. 유한 마음은 그러한 절대 진리 또는 사실을 생각해 낼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유한 인간 존재는 그러한 무한 아버지 사랑의 충만하고도 경감되지 않은 영향을 실제적으로 느낄 - 글자 그대로 경험할 - 수 있다. 그러한 사랑은 정말로 경험될 수 있는데, 경험의 본질특성이 제한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험의 양은 영적 수용력에 대한 인간능력에 의해 그리고 이에 답하여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연합된 능력에 의해 엄격히 제한을 받는다.

 

무한한 본질특성에 대하여 유한한 인식이, 그 창조체의 논리상 제한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것은 그 필사자 사람이 하느님의 상징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 그의 속에 무한의 단편이 살고 있는 - 사실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 사람이 가장 가까이 그리고 가장 친밀하게 접근하는 일은 사랑에 의해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인데,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독특한 관계 전체는 조화우주의 사회학에서의, 창조주- 창조체 관계 - 아버지-자녀 애정 - 에 대한 실제적 경험이다.

 

5. 아버지의 최극의 통치

 

하보나-이후 창조계에 대한 그의 접촉에 있어서, 우주 아버지는 그의 무한한 힘과 최종적 권한을 직접적인 전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종속 품성들을 통하여 행사한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로 행한다. 위임된 힘의 일부 또는 전부는, 만일 특별한 일이 발생되면, 만일 그것이 신성한 마음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면, 직접 행사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러한 행위는 오직 위임 받은 그 품성이 신성한 신탁을 만족시키는데 실패한 결과로서만 발생될 뿐이다. 그러한 때에 그러한 불이행 앞에서 그리고 신성한 힘과 잠재가 유보되는 한계 안에서, 아버지는 독자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통치를 행하신다. 그 선택은 항상 어김없는 완전성이거나 무한한 지혜 중의 하나이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들을 통하여 통치하시며 우주 조직의 아래로 내려가면, 아버지의 광대한 권역에 속하는 진화 구체들의 운명들을 가름하는 행성영주들에게서 끝이 나는 중단 없는 통치자들의 연결고리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외친 것은 단순히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 땅은 주(主)의 것이며, 주(主)는 그것을 충만케 하신다." "그가 왕들을 폐(廢) 하기도 하고 왕들을 세우기도 하신다." "지고자들이 사람들의 나라에서 통치하신다."

 

사람의 가슴속 일들에 있어서 우주 아버지는 자신의 방법을 항상 취하지는 아니하더라도 행성의 지도와 운명에 있어서는 신성한 계획이 널리 퍼져있다 지혜와 사랑의 영원한 목적이 승리한다.

 

예수는 말씀하였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모든 것들보다 크시며 누구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뺏을 수 없다." 너희가 하느님의 거의 한없는 창조의 다양한 일들을 얼핏 바라보고 그리고 어마어마한 광대함을 볼 때, 너희는 그의 시원성에 대한 너희 개념에 있어서 움칫 할 수도 있겠지만, 너희는 그가, 모든 것들의 낙원중심에서 확실하고 영존하는 보좌에 올라 있으며, 그리고 모든 지능 존재들의 자애로운 아버지임을 받아들이는 일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 위에 그리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한 분 하느님 그리고 모두의 아버지"가 계시며, "그는 모든 것들 이전에 계시고, 그 안에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생명의 불확실성과 존재의 변천성은 하느님의 우주의 주권에 대한 개념에 어떤 방법으로도 모순 되지 않는다. 모든 진화 창조체 삶은 어떤 불가피성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다음을 고려해 보라:

 

1. 용기 - 성격의 강한 힘 - 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어려움에 부딪치고 실망에 반응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으면 안 된다.

 

2. 이타심 - 자기 동료에 대한 봉사 - 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삶의 체험이 사회적 불평등과 마주치는 상황이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

 

3. 소망 - 신뢰의 절정 - 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 실존은 불안정성과 되풀이되는 불확실성에 끊임없이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신앙 - 인간 생각의 최극 확신  - 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은 그것이 믿을 수 있는 것보다 항상 적게 아는 곤란한 궁지에서, 바로 그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진리에 대한 사랑과 그것이 인도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고자 하는 기꺼이 따름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실수가 존재하고 허위가 항상 가능한 세계 속에서 자라야만 한다.

 

6. 이상주의 - 신성한 것에 다가가는 개념 - 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상대적 선함과 아름다움의 환경, 더 나은 것들에 도달하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적 환경 속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7. 충성심 - 가장 고귀한 의무에 대한 헌신 - 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배반과 이탈의 가능들의 한 가운데에서 견디어내야 한다. 의무에 헌신하는 용기는 불이행이라는 내재된 위험 속에 존재한다.

 

8. 반(反) 이기주의 - 자아를-잊도록 하는 영(靈)- 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필사사람은 인정받음과 명예를 위하여 끊임없이 외치는 피할 수 없는 자아의 함성과 마주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은 만일 버리고자 하는 자아-생활이 없다면 신성한 삶을, 힘을 동원하여 선택할 수가 없다. 만일 선(善)을 드높이고 그와 차별할 수 있는 어떤 대비로서의 잠재 악(惡)이 없다면 사람은 결코 정의(正義)위에 그 구원이 되는 발판을 놓을 수가 없다.

 

9. 기쁨 - 행복에 대한 만족감 - 이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사람은 가능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그와 대비되는 다른 쪽인 고통과 그리고 고난 받을 가망이 언제나-실재하는 그런 세계에서 살아야만 한다.

 

우주에 두루, 각 단위는 전체의 일부분으로 간주된다. 부분의 생존은 전체의 계획 그리고 목적과의 협동, 아버지의 신성한 뜻을 행하고자 하는 전심의 욕구와 완전히 자진하는 마음에 의존한다. 실수(어리석은 심판의 가능성)가 없는 유일한 진화 세계는 자유로운 지능존재가 없는 세계일 것이다. 하보나 우주에는 그들의 완전한 거주민들을 갖는 10억 개의 완전한 세계들이 있지만, 진화하는 사람은 만일 그가 자유롭게 되고자 한다면 잘못을 범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고 경험이 없는 지능존재는 처음에는 도저히 한결같이 현명할 수 없다. 오류인 판단(악)의 가능성은 인간 의지가 의식적으로 시인하고 고의적으로 비도덕적 판단을 알면서 포옹할 때에만 죄가 된다.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은 신성한 우주의 완전성 속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 하보나 세계들의 거주민들은 선택의 자극으로서 상대적 가치차원이라는 잠재를 필요로 하지 않다 그러한 완전한 존재들은 대조되는 그리고 생각을-강요하는 전체 도덕적 상황들이 없을 때에도 선한 것들을 식별하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완전한 존재들은, 도덕적 본성과 영적 지위에 있어서, 실재의 사실이라는 이유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선천적인 지위 안에서만 경험적으로 진보를 이룩한다. 필사자 사람은 상승하는 후보자로서의 자기지위도 자기 자신의 신앙과 소망에 의해 얻는다. 인간 마음이 파악하고 인간 혼이 획득하는 신성한 모든 것은 경험적 달성이며 그것은 품성적 경험의 실체이고, 따라서 하보나의 과오 없는 품성들의 선천적인 선(善)과 정의로움과는 대조적인 독특한 재산이다.

 

하보나의 창조체들은 선천적으로 용감하지만, 그들은 인간 감각에서는 용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친절하고 동정심이 있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도저히 이타심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즐거운 미래를 기대하는 자들이지만, 불확실한 진화 구체에 속한 믿음 있는 필사자 들의 아름다운 방법으로 희망에 부풀지는 않는다. 그들은 우주의 안정성에 있어서 신앙을 갖고 있지만, 필사자 사람으로 하여금 동물지위로부터 낙원의 입구까지 의지하여 상승하는 구원의 신앙에 대하여는 전혀 이방인이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만, 그것의 혼-구원 본질특성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은 이상주의자들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들은 활기 넘치는 선택으로 그렇게 되어가는 그 황홀경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 그들은 충성되지만, 불이행의 유혹에 부딪쳐서, 전심으로 그리고 총명하게 의무에 헌신하는 전율은 결코 경험한 적이 없다. 그들은 사심이 없지만, 호전적인 자아를 당당하게 정복함으로, 그런 차원의 체험을 결코 얻은 적이 없다. 그들은 기쁨을 즐기지만, 그러나 잠재된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기쁨의 그 달콤함은 이해하지 못한다.

 

6. 아버지의 시원성(始原性)

 

신성한 사심(私心) 없음, 더할 나위 없는 관대함을 가지고, 우주 아버지는 권한을 양도하시고 힘을 위임하시지만, 그는 여전히 시원적이시다 그의 손은 우주의 영역들의 환경에 대한 전능의 지렛대 위에 있으며 그는 모든 최종 결정들을 유보하였으며 밖으로 뻗친, 소용돌이치는, 그리고 항상 돌고 있는 창조의 복지(福祉)와 운명에 대한, 도전 받을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그의 영원한 목적의 전능한 거부권을 조금도 틀림없이 행사한다.

 

하느님의 주권은 제한됨이 없다 그것은 모든 창조의 근본적 사실이다. 우주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주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며, 자아-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우주는 창조의 작품이며 따라서 전적으로 창조주의 뜻에 종속된다. 하느님의 뜻은 신성한 진리, 살아있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진화하는 우주의 완전하게 되는 창조계는 선함 - 신성에 가까움 - 과 잠재적 악 - 신성으로부터 멀어짐 - 으로 특징되어 진다.

 

모든 종교 철학은, 조만 간에, 통일된 우주 통치의 개념, 한 하느님의 개념에 도달한다. 우주 원인들은 우주 결과들보다 낮을 수 없다. 우주 생명의 그리고 우주의 마음의 흐름들의 근원은 그들 현시(顯示)의 차원들보다 높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마음은 더 낮은 계층의 실재를 가지고 일관되게 설명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더 높은 차원의 생각과 목적 있는 의지의 실체를 깨달음으로써만 정말로 이해될 수 있다. 도덕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우주 아버지의 실체가 인정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기계론적 철학자들은 우주적이고 주권적 의지, 그가 그토록 숭배하는 우주법칙의 정교한 노작에서 작용하는 바로 그 주권적 의지에 대한 개념을 거부하는 것처럼 선언한다. 그가 그러한 법칙들이 자아-작용하고 자아-설명된다고 생각할 때, 기계론자는 법칙-창조주에게 정말 생각지도 않은 경의를 바치고 있다!

 

내주하는 생각조절자에 대한 개념의 경우를 제외하고, 하느님을 인간화시키는 일은 큰 실책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첫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에 대한 관념을 완벽하게 기계화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다.

 

낙원 아버지는 괴로워하시는가? 나는 알지 못한다. 창조주 아들들은 필사자들이 하는 것처럼 아주 분명하게 할 수 있고 때로는 그렇다. 영원 아들과 무한 영은 한정된 감각에서 볼 때 괴로워하신다. 나는 우주 아버지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그런지는 납득할 수 없으며 아마도 품성 순환회로를 통해 또는 생각조절자들의 개체성 그리고 그의 영원한 본성의 다른 증여들을 통해서 일 것이다. 그는 필사 종족들에 대해 "너희의 모든 고통들 속에서 내가 괴로워한다."고 말씀하였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그리고 동정적인 납득을 의심할 여지없이 경험하신다. 그는 정말로 괴로워하실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주들의 우주의 무한하고 영원한 통치자는 힘, 형태, 에너지, 과정, 원형틀(元型), 원칙, 현존, 그리고 이상화된 실체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이며 그는 품성체이며 그는 주권적 의지를 행사하고, 신성에 대한 자아-의식을 경험하며, 창조적 마음의 명령을 실행하고, 영원한 목적의 실현에 대한 만족을 추구하며, 그의 우주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아버지의 더욱 품성적인 이 특색들 전체는, 너희 창조주 아들인 미가엘의, 그가 유란시아에 육신화 되었던 동안에, 증여 삶 속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그것들을 살펴봄으로써 더 잘 납득될 수 있다.

 

아버지 하느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아들 하느님은 사람들을 섬기시며 영 하느님은, 영 하느님의 은혜의 사명활동을 통하여 아들 하느님들이 정해놓은 방법들에 의해 아버지 하느님을 발견하는 늘-상승하는 모험을 하도록 우주의 자녀들에게 영감을 준다.

 

[우주 아버지의 계시를 발표하도록 배정된 신성한 조언자로서, 나는 연이어서 신(神)의 속성들에 대한 이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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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제 106 편 실체의 우주적 차원 운영자 08-23 1959
90  제 107 편 생각조절자의 기원과 본성 운영자 08-23 2040
89  제 108 편 생각조절자의 임무와 사명활동 운영자 08-23 1871
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878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1998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44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79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06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56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32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20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25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25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50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43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12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47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7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34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42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184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62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277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01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376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49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14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20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38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82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71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65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57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44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80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24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54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64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34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191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44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01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2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32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63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31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74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63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31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27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57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58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01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20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21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55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66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30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77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098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6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22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58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191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22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29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73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16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44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35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182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03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37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87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88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64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56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59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11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49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39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84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697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07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69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83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42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41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4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3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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