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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23 (목) 00:35 조회 : 2103
 

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역동적인 종교 생활의 경험은 평범한 개인을 이상적(理想的)인 힘을 가진 품성으로 변환시킨다. 종교는 각 개인의 진보를 조성함으로써 전체의 진보를 충족시키며, 각 개인의 진보는 전체의 성취를 통하여 증대된다.

 

영적인 성장은 다른 종교인들과의 긴밀한 연합에 의하여 서로 자극을 받는다. 사랑은 종교적 성장 -주관적인 찬미 대신 객관적인 매력- 에 토양을 제공하며 더욱이 그것은 최극의 주관적 만족을 가져온다. 그리고 종교는 일상적인 생활의 진부한 고역을 고상하게 만든다.

 

1. 종교적 성장

 

종교가 의미들의 성장과 가치들의 증진을 가져오지만 한편으로, 전적으로 품성적인 평가들이 절대차원으로 들어 올려질 때는 반드시 악(惡)이 귀결된다. 어린이는 즐거움의 내용에 따라서 경험을 평가한다. 성숙은 품성적인 즐거움을 보다 높은 의미들로 치환된 양(量), 여러 가지 생활환경과 조화우주적 관계들의 가장 높은 개념들에 대한 충성심에 비례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성장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고착되는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의미들의 성장을 위한 준비가 서로 다른 시대들에, 계속되는 문화들 속에서, 그리고 발전하는 문명의 발생 단계들 속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편견과 무지가 성장을 억제하는 주된 것들이다.

 

발달하는 각각의 어린이에게 그 자신의 종교적인 경험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미 만들어진 어른의 경험을 그에게 강요하지 마라. 확립된 교육 체제를 통하여 매년 진보되는 것이 반드시 지적인 진보를 의미하지 않으며, 영적인 성장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라.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성품의 발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장은 단순히 결과들에 의해서 정확하게 표시되지 않고 오히려 진행되는 정도로 표시된다. 참다운 교육적 성장은 이상(理想)들의 향상과 가치들에 대한 증대된 이해와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의미들 그리고 최극의 가치들에 대한 증대된 충성심에 의해 표시된다.

 

어린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어른 친척들의 충성심에 의해서만 영구적으로 감명을 받으며, 교훈이나 본보기조차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충실한 사람들은 성장하는 사람들이며, 성장은 감명을 주고 영감을 주는 실체이다. 오늘을 충성으로 살라 -성장하라- 그리고 내일은 내일대로 저절로 올 것이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매 순간마다 올챙이로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종교적인 성장을 위한 기본적인 토양은 자아실현의 진보적인 삶, 자연적 성향의 합동, 호기심의 발동과 적당한 모험을 즐김, 만족감의 경험, 주의집중과 경각심의 자극제인 두려움의 기능, 경이로움의- 매혹, 그리고 보잘 것 없음에 대한 일상의 의식을 전제로 한다. 또한 성장은 자아비판 의식에 수반되는 자아신분 발견에 입각하는데, 왜냐하면 의식은 정말로 사람 자신의 가치, 기질, 품성적 이상(理想)들에 의한 자기비판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경험은 육체적인 건강과 타고난 기질 그리고 사회 환경에 의해 현저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세적 조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바쳐진 혼에 의해 이루어지는 내부의 영적인 진보를 막지 않는다. 정상적인 모든 필사자들 속에는 만일 그들이 특별히 억압하지만 않으면 기능을 발휘하는 성장과 자아 실현에 대한 어떤 타고난 본능적 욕구들이 존재한다. 영적인 성장의 잠재를 갖는 이 구조적 자질을 육성하는 확실한 기법은 최극 가치들에 대해 전심으로 헌신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종교는 증여되거나, 받거나, 빌리거나, 배워지거나, 또는 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가치들을 향하여 자라가는 탐구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품성적 경험이다. 그래서 우주적 성장은 의미들의 누적과 가치들의 계속 확대되는 상승의 결과로 수반된다. 그러나 숭고함 그 자체는 항상 무의식적인 성장이다.

 

사고와 행동의 종교적 습관들은 영적 성장의 조화에 기여한다. 누구든지 영적인 충동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 일종의 조절된 영적 반영작용을 하는 쪽으로 종교적 성향을 개발할 수 있다. 종교적 성장을 도와주는 습관들에는 신성한 가치들에 대한 세련된 감수성,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인 삶 인식, 조화우주 의미들에 대한 깊은 명상, 경건한 문제 해결, 자신의 영적 삶을 다른 동료들과 나눔, 이기심의 극복, 신성한 자비를 부정적으로 이용하지 않음, 하느님의 현존에 있는 것처럼 살기 등이 있다. 종교적 성장의 요소들은 계획적일 수 있지만 성장 그 자체는 반드시 무의식(無意識)적이다.

 

그렇지만, 종교적 성장의 무의식적인 본성은 그것이 인간 지능의 무의식적인 영역이라고 가정되는 곳에서 기능하는 활동임을 예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필사자 마음의 초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활동들을 예시한다. 무의식적인 종교적 성장의 실체에 대하여 깨닫는 경험은 초월의식의 기능적 실재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증거이다.

 

2. 영적 성장

 

영적인 발전은, 첫째로, 참된 영적 기세와 살아있는 영적 관계를 유지함에 있으며, 두 번째는, 영적 열매가 계속해서 맺도록 하는 것 즉 자신의 영적 은인으로부터 받았던 것을 자신의 동료 에게 사명활동으로서 결실 거두는 것에 달려있다. 영적인 진보는 완전함에 굶주린 자의 자아의식, 하느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욕망, 전심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목적과 연상하여 생각되는, 영적 빈곤의 지능적 인지 위에 바탕을 이루게 된다.

 

영적 성장은 먼저 필요에 대한 각성이며, 그 다음에는 가치들의 발견이다. 참된 영적 발전의 증거는 사랑에 의해 출발되고, 이타적인 사명활동에 의해 활성화되며, 신성(神性)의 완전한 이상들에 대한 전심으로의 경배에 의하여 지배되는 품성의 표현 속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체 경험은 단순히 신학적인 신앙들과는 대조적으로 종교의 실체를 구성한다.

 

종교는 그것이 우주에 대하여 영적으로 반응하는 개화되고 현명한 기법이 되는 경험의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영화롭게 된 그러한 종교는 인간 품성의 3가지 차원 즉, 지적 차원, 모론시아적 차원, 영적 차원 마음 위에, 진화하는 혼속에, 내주(內住)하는 영과 함께 기능할 수 있다.

 

영성화(靈性化)는 사람의 하느님에 대한 가까움을 가리키는 지표임과 동시에 곧바로 동료 존재에 대하여 쓸모 있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영성은 사물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의미들 속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며 가치들 속에서 선함을 발견하게 하는 능력을 증진시킨다. 영적인 발달은 그것을 위한 수용력에 의해 결정되며 이기적인 본질특성의 사랑을 배제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실제적인 영적 지위는 신(神) 달성, 조절자가 동조된 정도와 같다. 영성(靈性)의 최종 성취는 실체의 최고점 달성, 하느님 같음의 최고점과 일치한다. 영원한 삶은 무한한 가치들에 대한 끝없는 추구이다.

 

인간 자아 실현의 목표는 물질적이 아니라 영적이어야만 한다. 분투할만한 가치를 갖는 유일한 실체들은 신성하고 영적이며 영원한 것들이다. 필사자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인간적 애정을 만족시킬 권리가 있으며 인간 단체들과 현세적인 제도들에 충성함으로써 유익을 얻을 수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극복하며 신성한 완전성과 최종자의 봉사에 대한 영원한 운명을 성취해야만 하는 불멸의 품성을 세울 수 있는 영원한 기초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아는 필사자의 깊은 확실성을 묘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느님을 알고 천국을 믿는 자들이라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진들 그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 되겠느냐?" 현세적인 안전은 무너지기 쉽지만, 영적인 확실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적인 역경과 이기심과 사악함과 증오와 원한과 시기심의 밀물이 필사자의 혼을 휩쓸 때, 너희는 하나의 내적인 요새, 절대적으로 무너질 수 없는 영의 성곽이 존재한다는 확신 속으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이것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내주하는 영에게 자신의 혼을 맡기는 데 헌신해 온 모든 인간 존재들에게 확실히 적용된다.

 

그러한 영적인 달성이 이루어지고 나면, 점차적인 성장 또는 특이한 분기점에 의해 야기되더라도, 품성의 새로운 적응은 물론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기준들의 발달이 일어난다. 영으로 태어난 그러한 개인들은 삶에 다시 확실한 동기를 부여 받기 때문에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정들이 사라지고 가장 열망하는 희망이 무너지는 속에서도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다 그들은 그러한 큰 재앙들이 다만 새롭게 방향을 정해주는 대변혁이며. 그것은 우주적 달성에서의 새롭고도 더욱 웅대한 차원의 실체들로 이루어진, 더욱 고귀한 그리고 참을성으로 견뎌내는 뒤편에 대한 준비단계로서 자신들의 현세적 창조계를 파괴하는 그러한 대 변혁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안다.

 

3. 최극 가치의 개념들

 

종교는 정적(靜的)이고 행복한 마음의 평화 달성을 위한 기법이 아니며, 동적(動的)인 봉사를 위해 혼을 편성하는 추진력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돌보는 충성된 봉사 속에 자아신분의 전체성을 등록하는 것이다. 종교는 최극의 목표 달성, 영원한 보상에 필수 불가결한 모든 값을 지불한다. 최고로 탁월한 종교적 충성심 속에 신성시된 완성됨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심들은 사회적으로 유효하고 영적으로 진보적이다.

 

종교인에게 있어서 하느님이라는 말은 최극 실체를 향한 접근과 신성한 가치에 대한 깨달음 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인간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선과 악을 결정하지 않으며, 도덕적 가치관은 소망의 달성이나 감정적 좌절감으로부터 발생되지 않는다.

 

가치관을 깊은 사색함에 있어서 너희들은 가치 있는 것과 가치를 갖는 것의 차이를 반드시 구분해야만 한다. 너희들은 유쾌한 활동들과 그것들의 인간 경험의 점점 더 높은 차원들을 향하여 계속 혁신적으로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통합과 증진된 실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미는 경험이 가치에 덧붙이는 어떤 것이며 가치들에 대한 감상적인 자각이다. 격리되고 순전히 이기적인 만족은 의미들에 대한 실질적 평가절하, 상대적인 악(惡)에 가까운 무의미한 향락을 암시할 수도 있다. 가치관은 실체들이 의미 있고 정신적으로 연합될 때, 그러한 관계들이 마음에 의해 감지되고 통찰될 때 경험적인 것이 된다.

 

가치관은 결코 정적(靜的)인 것이 될 수 없으며 실체는 변화, 성장을 의미한다. 성장이 없는 변화, 의미의 팽창과 가치에 대한 찬미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잠재적인 악이다. 조화우주 적응의 본질특성이 향상될수록, 모든 경험은 더 많은 의미를 갖게 된다. 가치관은 관념적인 환상이 아니며, 실제적인 것이지만, 반드시 관계들의 실상에 의존한다. 가치관은 반드시 실제적이고 잠재적이다. 과거의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의 어떤 것 그리고 이루어져 가는 어떤 것이다.

 

실제적인 것들과 잠재적인 것들의 연합은 성장, 가치들에 대한 경험적 깨달음과 동일하다. 그러나 성장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반드시 의미를 갖지만, 성장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다. 인간 삶의 최극 가치는 가치들의 성장과 의미들의 진보 그리고 이 두 경험들의 조화 우주적 상호관계의 실현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하느님 인식에 상응한다. 그러한 필사자는 초자연적이지 않은 반면 정말로 초인간적인 존재가 되며 불멸(不滅)의 혼(魂)은 진화한다.

 

사람이 성장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순조로운 조건들을 제공할 수는 있다. 성장은 육체적, 지적 또는 영적에 상관없이 반드시 무의식적이다. 사랑은 그렇게 성장한다. 그것은 창조되거나 만들어지거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자라나야만 한다. 진화는 성장의 조화우주 기법이다. 사회적인 성장은 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도덕적인 성장은 진보된 행정으로 얻을 수 없다. 사람이 기계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참된 가치는 반드시 인간의 문화와 품성적 앎에서 유래되어야만 한다. 성장에 대해 사람이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의 품성의 모든 전체 힘을 동원하는 것 -살아있는 신앙- 이다.

 

4. 성장에 관한 문제

 

종교적인 삶은 헌신적인 삶이며, 헌신적인 삶은 창조적인 삶, 기원적이고 자발적인 것이다. 새로운 종교적 통찰력은 옛날의 열등한 반응 원형틀들 대신에 새롭고도 더 나은 반응 습관들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갈등들로부터 발생한다. 새로운 의미들은 오직 갈등 속에서만 일어나며, 갈등은 오직 우수한 의미들 속에 내포된 더 높은 가치들을 지지하기를 거부하는 현상에 직면하여서만 존속된다.

 

종교적인 혼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심리적인 갈등과 영적인 동요 없이는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삶에 대한 철학적 기준의 체제는 마음의 철학적 영역 속에 상당한 소란을 가져온다. 갈등이 없이는 숭고한 자들과 선한 자들과 진실한 자들 그리고 고결한 자들을 위하여 충성심이 발휘될 수 없다. 영적 선견지명의 정화(淨化)와 조화우주 통찰력의 증진에는 노력이 뒤따른다. 그리고 인간 지성은 현세적 실재가 갖는 비영적(非靈的) 에너지들에 의해 생존되는 상태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막아준다. 나태한 동물적 마음은 조화우주 문제 해결과 싸우도록 요구되는 노력에 반발 한다.

 

그러나 품성이 가진 혼의 힘을 사랑, 건강, 정신적 효과 그리고 행복에 지배되는 것으로 통합해보려는 과업에 있는 그 종교적 삶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물리적 체계, 마음 체계 그리고 영의 체계의 통합이라는 것에서 생겨난다. 사람은 몸의 건강과 정신의 온전함은 많이 납득하지만, 그러나 행복에 대해 진정으로 깨닫는 것은 거의 없다. 최고의 행복은 분리가 불가능하도록 영적 진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적 성장은 영속적인 즐거움, 모든 납득을 거치는 평화를 낳는다.

 

육체적인 삶 속에서는 감각이 물체들의 실재들을 밝혀주며 마음은 의미들에 대한 실체를 발견하지만 영적인 경험은 각 개인들에게 생명에 대한 참된 가치들을 계시해 준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러한 높은 차원들은 하느님에 대한 최극의 사랑 속에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 속에서 성취된다. 만약에 너희가 너희 동료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가치들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높은 가치를 두셨기 때문에 그들을 그토록 사랑 하셨던 것이다. 너희는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너희 연합체들 속에서 가치들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너를 짜증나게 한다면, 화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너는 그의 관점, 그러한 불유쾌한 행동을 일으키게 한 그에게 있는 이유들을 식별하기 위하여 동정심을 가지고 노력해야만 한다. 만일 너희가 일단 너희 이웃을 납득하게 되면, 너희는 인내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인내심이 우정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고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동굴 속에 살던 시대의 원시적인 너희 조상들 중의 하나에 대한 모습 -키가 작고, 보기 흉하며, 불결하고, 으르렁거리는 사람 괴물이 선 채로 막대기를 들어올리고 정면을 사납게 쳐다보면서 증오심과 악의에 가득 차 숨을 몰아쉬는- 을 마음의 눈으로 상상해 보라. 그러한 모양은 인간의 신성한 존엄성을 거의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그림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바란다. 살아있는 이 인간 앞에 송곳니가 날카롭게 나있는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그 사람 뒤에는 한 여인과 두 아이들이 있다. 너희는 그러한 모습이 인간 종족 속에 있는 훌륭하고 고귀한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임을 곧 알게 되겠지만, 그 사람은 두 가지 그림 속에서 똑같은 주인공이다. 오직 두 번째 그림에서만 너희는 넓혀진 시야에 호감을 갖게 된다. 그 속에서 너희는 진화하는 필사자의 동기유발을 식별하게 된다. 그의 태도는 너희가 그를 납득하기 때문에 칭찬 받을 만한 것으로 바뀐다. 만일 너희가 너희 친구들의 동기들을 추측 할 수만 있다면, 너희가 얼마나 그들을 더 잘 납득할 수 있겠는가. 만일 너희가 너희 동료들을 알 수만 있다면, 너희는 결국에는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단순한 의지적 행동에 의해서는 너희 동료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너희 이웃의 동기와 감상을 철저히 납득함으로써만 발생된다. 너희가 매일 한 사람씩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오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너희가 매일 또는 매 주마다 너희 동료들 중에 한 사람씩을 더 납득하게 된다면, 그리고 만일 이것이 너희가 가진 능력의 한계라면, 너희는 분명히 사회화 되어갈 것이고 너희 품성을 진정으로 영성화 시켜갈 것이다. 사랑은 전염성이 있으며, 인간적 헌신이 지능적이고 현명할 때에는, 사랑이 미움보다 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참되고 이타적인 유일한 사랑은 정말로 전염성이 있다. 만약에 각 사람이 역동적인 애정의 중심점이 될 수만 있다면, 사랑이라는 이 친절한 병원체는 인간성의 감상적인 감정 흐름을 곧 널리 퍼뜨려서 모든 문명 세계가 사랑으로 포위되고 사람의 형제신분이 실현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5. 전향과 신비주의

 

세상은 길을 잃은 혼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은 신학적인 감각에 있어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방향적 의미에 있어서 길을 잃었고, 좌절감을 느끼는 철학 시대의 이론들과 종파들 속에서 혼돈하여 방황하고 있다. 종교적 권한 대신에 하나의 삶의 철학을 세우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이 너무 적다. (사회화된 종교의 상징들도 성장의 경로들로서 무시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바닥은 강물과는 다르다.)

 

종교적 성장의 진보는 침체로부터 갈등을 거쳐 합동으로, 불확실성으로부터 확신하는 신앙으로, 혼돈 된 조화우주 의식(意識)으로부터 품성의 통합으로, 현세에서의 목적으로부터 영원한 것으로, 두려움의 속박으로부터 신성한 아들관계의 해방으로 이끈다.

 

최극의 이상들에 대한 충성심의 고백 -하느님 의식을 심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깨달음- 이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성장이 될 수 있거나 또는 어떤 위기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시점에서 때때로 경험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그 중대한 날에 바로 그러한 갑작스럽고도 장엄한 회심을 경험하였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그가 홀로 앉아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신비를 꿰뚫어보고자 하던 그 밤에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많은 다른 사람들도 유사한 경험들을 하였으며, 갑작스러운 회심 없이 영적인 진보를 이룩한 참된 신자들도 많이 있었다.

 

소위 종교적인 회심이라 불리는 것들과 관련된 극적인 현상들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전반적으로 심리적인 것이었지만, 때로는 영적으로 기원되는 경험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영의 달성을 향하여 심리적으로 상승하여 도달하는 모든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전체성을 갖도록 정신적으로 동원될 때, 신성한 개념에 이르는 충성심에 대한 인간적 자극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때에는, 믿는 그 인간의 초의식적 마음이 갖는 집중되고 정화된 목적에 동조하기 위하여, 내주하는 영이 갑자기 하향(下向) 점유하는 현상이 매우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순전히 심리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요소들 속에 있는 회심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지적 현상들과 영적 현상들을 통합하는 그러한 경험들이다.

 

그러나 감정 자체만으로는 잘못된 회심이며 느낌뿐만 아니라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한 심리적 동기가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인간적 충성심의 동기가 불완전한 한, 회심의 경험은 그 정도에서 지적이고 감정적이며 영적인 실체가 혼합된 상태가 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의 이론적 잠재의식 마음을 통일된 다른 지적 삶 속에 있는 실제적으로 작용하는 전제(前提)로 이해할 마음이 있다면, 그는 초의식적 차원처럼 상승하는 지적 활동의 비슷하고 상응하는 영역, 내주하는 영적 실존개체인 생각조절자와 즉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영역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러한 모든 심리적 고찰 속에 있는 큰 위험성은 색다른 꿈들을 포함하여 환상들과 소위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인간 마음을 향한 신성한 대화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신성한 존재들이 하느님을 아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나타내어 온 것은, 그들의 신비로운 황홀경이나 병적인 환상들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현상들을 무시한 상태에서였다.

 

회심의 추구와는 대조적으로, 생각조절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모론시아 영역에 더 잘 접근하는 길은 살아있는 신앙과 진지한 경배, 전심으로의 기도와 이타적인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다. 요컨대 인간 마음의 무의식적 차원들에 대한 기억들의 급격한 상승들 중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신성한 계시와 영적인 안내로 오해되어 왔다.

 

종교적인 백일몽의 습관적 행위와 관련된 큰 위험성이 존재한다. 신비주의가 실체를 도피하는 하나의 기법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때로 참된 영적 교제의 수단이 되어 왔다. 바쁜 삶의 현장으로부터 잠시 동안 물러나 있는 것은 심각한 위험을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품성의 긴 기간의 고립은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망상적인 의식의 무아지경 상태는 종교적인 경험으로 장려되어서는 안 된다.

 

신비적인 상태의 특징은, 비교적 염세적인 지성 위에서 작동하는 집중적인 관심이라는 선명한 안전지대들에 의한 의식의 확산작용이다. 이 모든 것은 영적 접촉의 영역, 초의식의 지시를 받기보다는 잠재의식을 향하여 의식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많은 신비가들은 자신의 정신적 분열을 비정상적 정신적 현시들이 나타나는 차원까지 몰아간다.

 

영적인 명상의 보다 더 건전한 태도는 사려 깊은 경배와 감사기도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육체 속에 있었던 예수의 일생 중에서 후기에 발생하였던 것과 같은, 자기 생각조절자와의 직접적인 교제는 소위 신비적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신비적인 교제의 개시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그러한 심리 상태들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신비적 지위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해 장려되는데, 그것은 육체적 노고, 금식, 심리적 분열, 깊은 심미적 경험, 강렬한 성적 충동, 두려움, 불안, 분노, 격렬한 춤 등이다. 그러한 예비적인 준비의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적 부산물 대부분은 잠재의식 마음에서 기원된다.

 

그 조건들이 신비적 현상들에게 아무리 호의적이더라도, 나사렛 예수께서는 낙원 아버지와 교제하기 위하여 그러한 방법에 의존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납득해야만 한다. 예수께서는 잠재의식적 망상 또는 초의식적 환상을 이용하지 않으셨다.

 

6. 종교적인 삶의 징후

 

진화 종교와 계시 종교는 방법상에서 분명하게 다른 반면, 동기에 있어서는 매우 비슷하다. 종교는 삶에 있어서 하나의 명확한 기능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참된 종교는 그 종교인이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하여 최극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실체에게 전심으로 바치는 헌신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들의 뚜렷한 특징은, 최극의 가치들에 대한 의심하지 않는 충성심과 전심으로의 헌신이다. 최극의 가치들에 대한 이러한 종교적 헌신은 신앙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어머니의 자기 자식에 대한 관계 속에서 그리고 지지하는 주장에 대한 비종교인의 열렬한 충성심 속에 나타난다.

 

그 종교인이 용납한 최극의 가치는 열등한 것일 수 있고 또는 심지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종교적이다. 종교는 최극의 것으로 유지되는 그 가치가 정말로 참된 영적 가치를 갖는 조화우주 실체가 되는 바로 그 한도 내에서 참되다.

 

종교적인 충동에 대한 인간 반응의 표시들에는 숭고함과 웅장함의 본질특성들이 있다. 진지한 종교인은 우주의 시민 됨을 의식하며 초인간적 힘의 근원들과 접촉하는 것을 인식한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들의 뛰어나고 고상한 친교에 소속된다는 확신으로 감격하고 격려를 받는다. 자아 가치에 대한 의식은 가장 높은 우주적 목표들 -최극의 목표들- 을 향한 탐색의 충동에 의해서 증대된다.

 

자아는 강화된 자아 훈련을 강요하고 감정적 갈등을 줄여주며 필사자 삶을 정말로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어주는 모두 포위하고 있는 동기에 대한 흥미로운 충동에 굴복해 왔다. 인간적 한계들에 대한 병적인 인식은 치명적인 결점들에 대한 본능적 의식으로 바뀌며, 가장 높은 우주적 그리고 초우주적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도덕적인 결정과 영적인 열망에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초인간적 이상들의 달성에 대한 열정적인 이 분투는 증가하는 인내와 자제심과 꿋꿋함 그리고 관대함의 특성을 항상 갖는다.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살아있는 사랑, 봉사하는 삶이다. 순전히 현세적이고 진부한 것들 대부분으로부터의 그 종교인의 이탈은 결코 사회적 고립으로 이끌지 않으며, 그것은 유머 감각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참된 종교는 인간적 실재로부터 아무 것도 빼앗지 않고, 오히려 삶 전체에 새로운 의미들을 더해주며 새로운 유형의 열정과 열심 그리고 용기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십자군 전사(戰士)의 마음을 발생시킬 수도 있는데, 만일 영적인 통찰력에 의해서 그리고 인간적 충성심이라는 평범한 사회적 의무들에 대한 성실한 헌신에 의해 조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위험하다.

 

종교적인 삶의 가장 놀랄만한 특징들 중의 하나는 역동적이고 장엄한 평화인데, 그 평화는 모든 인간들을 납득시키는, 모든 의심과 혼란의 부재(不在)를 나타내는 조화우주 평형이다. 그러한 영적 안정성의 차원들은 실망의 원인을 제거해 준다. 그러한 종교인들은,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에 있는 것도 장차 도래할 것도 높음도 깊음도 그밖에 다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분리시킬 수 없음을 나는 확신한다."고 말한 사도 바울과 같다.

 

개가를 올리는 영광의 실현과 관련된, 최극자의 실체를 파악하는 그리고 궁극적 존재의 목표를 추구하는 그 종교인의 의식 속에 내재하는 안전감이 있다.

 

심지어 진화 종교도 충성심과 장대함에 있어서 이 모든 것이 해당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참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 종교는 참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훌륭하다. 증대된 영적 선견지명에 대한 새로운 충성심은 새로운 차원의 사랑과 헌신, 봉사와 교제를 창출한다. 사회적인 전망을 증진시킨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의식을 확대시킨다.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 사이의 특징적인 차이는, 순전히 경험적인 인간적 지혜에 덧붙여진 신성한 지혜의 새로운 본질특성이다. 그러나 신성한 지혜와 우주적인 통찰력의 증가되는 증여를 그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적인 종교들 속에서 갖는 경험과 그 종교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7. 종교적인 삶의 절정

 

유란시아에 있는 보통 수준의 필사자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육체 속에 머무신 동안 달성하셨던 성격의 높은 이상에 다다르게 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예수의 품성의 완성된 계통들을 따라서 하나의 강력하고 통일된 품성을 개발하는 것은 모든 필사자 신자들에게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주(主)의 품성의 독특한 특성은 그것의 완전성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균형과 섬세함 그리고 안정된 통일이었다. 예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소개는 자기를 고소하는 자들 앞에 서신 주(主)를 향하여 그가 손짓하며 "저 사람을 보라!"고 말하였던 사람의 그 본보기에 이어서 나타난다.

 

예수의 끊임없는 친절이 필사자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지만, 신념이 굳은 그의 강력한 성격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정말로 진실하였으며 그의 속에는 위선적인 것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는 허식이 없었으며 항상 매우 참신한 진실 됨이 있었다. 그는 겉치레로 자신을 낮추신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결코 체면을 차리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셨던 것처럼 진리대로 사셨다. 그는 진리 그 자체이셨다. 그는 비록 그러한 성실성이 때로 고통을 가져왔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 구원하는 진리를 선포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의심할 나위 없이 모든 진리에 충실하셨다.

 

그러나 그 주(主)는 너무나 이성적이셨고, 너무나 사귀기 쉬운 분이셨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사명활동에 있어서 너무나도 실용적이셨으며, 반면에 그의 모든 계획들은 그러한 신성화(神聖化) 된 상식으로 특징 지워졌다. 그는 기형적이고 변덕스럽고 괴벽스러운 모든 경향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셨다. 그는 변덕스럽거나 별나거나 이성을 잃는 경우가 한 번도 없으셨다. 그의 모든 가르침 속에 그리고 그가 행한 모든 것들 속에는 항상 비범한 타당성과 관련된 절묘한 구분이 있었다.

 

그 사람의 아들은 항상 매우 침착한 품성을 유지하셨다. 심지어는 그를 대적하는 적들도 그에게 건전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그의 현존을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예수는 신성한 열심히 넘치게 채워져 있었지만, 광신적으로 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감성적으로 활발하셨지만 경솔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셨지만 항상 실용적이셨다. 그는 삶의 실체들과 솔직하게 마주하셨으나, 흥미 없거나 둔감하신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용감하셨지만 무모하시지 않았으며 세심하시면서도 결코 심약하지 않으셨다. 그는 동정심이 깊으셨지만 감상에 빠지지 않으셨으며 독특하셨지만 괴상하지는 않으셨다. 그는 경건하셨지만 경건한 척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는 매우 침착하셨는데 이는 그는 너무나도 완전하게 통일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기원성은 억압 받지 않았다. 그는 전통에 묶이거나 제한된 인습에 젖음으로써 방해를 받는 일이 없으셨다. 그는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말씀하였으며 절대적 권한으로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의 장엄한 기원성은 그로 하여금 그보다 전에 그리고 동 시대에 있던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리의 보석들을 경시하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기원적인 것은 두려움과 희생 제물 대신에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매우 젊은 견해를 갖고 계셨다. 그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간곡히 타이르셨다. 그에게는 편협함이 없었다. 그의 동정적인 가슴은 모든 인류 그리고 우주까지라도 포옹하였다. 그의 초청의 말씀은 항상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내게로 오라"는 것이었다.

 

예수께 있어서는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셨다"는 것이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장 탁월하게 신뢰하셨다. 그는 어린아이가 자기 육신의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자신의 아버지를 신뢰하셨다. 그의 신앙은 완전하였지만 무례한 적이 결코 없었다. 잔인한 본성이 어떻게 나타나든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사람의 복지에 관계가 없을지라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앙에서 벗어나신 적이 없었다. 그는 실망을 당할 염려가 없었으며 박해에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 그는 외견상의 실패에 의해서 흔들리는 법이 없으셨다.

 

그는 사람들을 형제처럼 사랑하셨으며, 동시에 그들이 선천적인 자질과 후천적인 본질특성들에 있어서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셨다. "그는 부지런히 선(善)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유별나게 쾌활한 사람이셨지만, 맹목적이고 불합리한 낙관주의자는 아니셨다. 그가 늘 훈계하신 말씀은 "명랑한 기분을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러한 확신 있는 태도를 유지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사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임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항상 측은한 심정으로 이해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믿으셨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대한 자신의 헌신에 있어서 숭고하게 확고하였고 자신의 신념에 대하여 항상 진실하셨다.

 

주(主)는 항상 관대하셨다. 그는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시기를 항상 즐거워 하셨다. 그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나 거저 주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한, 그의 끝없는 모든 관용을 베푸심에 있어서 한 번도 낭비적이거나 지나치신 적이 없었다. 그는 너희가 구원을 받았음을 믿어야만 한다고 가르치셨다.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받을 것이다."

 

그는 솔직하면서도 항상 친절하셨다. 그는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숨김이 없었지만, 항상 친근하셨다. 그는 죄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죄에 대한 자신의 증오를 거리낌 없이 선언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솔직함 전체에 있어서 그는 틀림없이 공정하셨다.

 

예수께서는 가끔 인간적인 슬픔의 잔을 깊이 들이마시기도 하였지만, 변함없이 쾌활하셨다. 그는 실재하는 실체들에 대담하게 대면하셨고, 더욱이 천국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열정을 조절하셨으며, 그것이 그를 움직인 적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일"에 무작정 헌신하셨다. 이러한 신성한 열정이 영적이지 못한 그의 형제들로 하여금 그가 미쳤다 고 생각하게 하였지만, 지켜보고 있던 온 우주는 그를 온전한 사람의 본보기로 그리고 영적인 삶의 고상한 표준들에게 헌신한 최극 필사자의 원형틀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의 조정된 열정은 전염성이 있었으며, 그의 동료들은 그의 신성한 낙관주의를 나누어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갈릴리의 이 사람은 슬픔에 잠긴 한 남자가 아니었으며 기쁨이 넘치는 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러나 임무가 요구될 때에는,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짜기"를 기꺼이 용감하게 걸어가셨다. 그는 기뻐하는 사람이셨지만 동시에 겸손하셨다.

 

그는 용기에 못지않게 인내심을 소유하셨다. 때가 이르지 않았을 시점에 행동을 하도록 압력을 받았을 경우, 그는 오직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대답하실 뿐이었다. 그는 결코 서두르시는 법이 없었으며, 그의 침착성은 탁월하였다. 그러나 그는 종종 악에 대하여 분개하셨고 죄를 참지 못하셨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자기 자녀들의 복지에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항하도록 강하게 감동되신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죄에 대한 그의 분개가 그 죄인에 대해 화를 내는 쪽으로 유도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의 용기는 장엄하였지만, 무모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의 표어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의 용감성은 고상하였고 그의 용기는 종종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분별력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성에 의해 조정되었다. 그것은 신앙으로 말미암는 용기였고, 무모하게 맹목적인 무모함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용감하였지만 결코 무모하지 않으셨다.

 

주(主)는 위엄의 한 원형틀이셨다. 그가 젊었을 때에도 그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시오."로 시작되었다. 그는 자기 동료들에의 그릇된 경배를 존중하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적 믿음의 공격적인 실수들 또는 종교적인 전통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참된 신성함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시하셨지만, 자기 동료들에게는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라고 정확하게 항변하실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선하셨기 때문에 위대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린아이들과 친하게 사귀셨다. 그는 자신의 품성적 삶에 있어서 온화하고 겸손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우주의 완성된 사람이셨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자발적으로 주(主)라고 불렀다.

 

예수께서는 완전하게 통일된 품성이셨다. 그리고 갈릴리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오늘도 필사자의 경험을 통일하고 인간 수고들을 합동하는 것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는 삶을 통합하고 성품을 고상하게 하시며 경험을 단순화시키신다. 그는 그것을 증진시키고 변환시키고 변모시키기 위하여 인간마음 속으로 들어가신다. "만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그 안에 소유하면, 그는 새로운 창조체며 옛 것들은 지나가 버렸으니, 보라, 모든 것들이 새롭게 되었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참되다.

 



[네바돈의 멜기세덱에 의해 제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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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878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1998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43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79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06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56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31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20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24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25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49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41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11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47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7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32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41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183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61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277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00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375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47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14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20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37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82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70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65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54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43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80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24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54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64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34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189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44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099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2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30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62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30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74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63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31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27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57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57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01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20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21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55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64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28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76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097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6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22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56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190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21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28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73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15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44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35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181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01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3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87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87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63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54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59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08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48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39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84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696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04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69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83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42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40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4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34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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