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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중앙우주와 초우주들 /제 1 편 우주 아버지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18 (토) 15:29 조회 : 2288
 

유란시아서 

 

제 1 부  중앙우주와 초우주들

 

오르본톤의 옛적으로 늘계신이들의 권한에 의해 활동하는 초우주 품성들의 한 유버사 무리단의 후원을 받았음.

 

제 1 편    우주 아버지

 

우주 아버지는 모든 창조의 하느님이시며,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근원이며 중심이다. 우선 하느님을 창조자로서, 다음에는 조정자로서, 그리고 맨 나중에는 무한한 유지자로서 생각하라. 예언자들이 "하느님, 당신은 홀로 계시며 당신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하늘을 창조하셨고 또한 하늘들의 하늘을 그곳의 모든 무리들과 함께 창조하셨으며 이들을 보존하고 조정하십니다. 우주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창조주는 빛으로 옷처럼 자신을 두루고 있으며 휘장처럼 하늘들을 펼치십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우주 아버지에 대한 진리가 인류에게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오직 우주 아버지의 개념- 많은 하느님들 대신 한 하느님 - 만이 필사사람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신성한 창조자와 무한한 조정자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무수한 행성 체계들은 모두 결국에는 여러 종류의 많은 지능(知能)창조체들, 하느님을 알 수 있고, 신성한 애정을 받아들이고, 보답으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거주되도록 만들어졌다. 우주들의 우주는 하느님의 작품이며 그의 다양한 창조체들이 사는 곳이다. "하느님이 하늘들을 창조하셨고 땅을 빚으셨으며 하느님이 우주를 세우셨고 이 세상을 헛되이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거주되도록 그것을 빚으셨다."

 

깨우친 세계들 모두는 모든 창조의 영원한 조물주이며 무한의 유지자인 우주 아버지를 인식하고 그리고 경배한다. 우주 위의 우주마다 모든 의지 창조체들은 길고 긴 낙원으로의 여행, 아버지 하느님께 도달하는 영원한 모험인 황홀한 투쟁을 시작했다. 시간의 자녀들의 초월적 목표는 영원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 신성한 본성을 이해하는 것, 우주 아버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하느님을-아는 창조체들은 오직 한 가지 최극의 열망, 온몸을 불태우는 욕망 하나를 갖고 있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구체들에 있어서도, 그가 그의 품성의 낙원 완전성으로 그리고 그의 의로운 최극위(最極位)의 우주 구체에서 존재하는 그러한 그 같이 되어가는 것이다. 영원에 거하는 우주 아버지로부터 최극의 명령이 내려졌다,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들도 완전하라." 낙원의 사자(使者)들은 사랑과 자비로써 이 간곡하고도 신성한 권유를 여러 세대에 걸쳐 아래쪽으로 그리고 여러 우주를 거쳐 바깥쪽으로, 심지어는 유란시아의 인종들과 같은 하등의 동물-기원 창조체에게까지 전해 왔다.

 

신성의 완전성을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라는 이 장엄하고도 우주적인 명령은 완전성의 하느님의 모든 투쟁하는 창조체 창조의 첫 번째 의무이자 최고의 열망이 되어야 한다. 신성한 완전성을 달성하는 이 가능성은 모든 사람의 영원한 영적 진보의 최종적이고도 확실한 운명이다.

 

유란시아의 필사자들은 무한적 감각에서 볼 때 완전해지기를 도저히 바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존재들에게는, 이 행성에서 그들이 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무한한 하느님이 필사자 사람을 위해 마련한 숭고하고도 신성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이 이 운명을 성취할 때, 자아-실현과 마음 달성에 속하는 모든 면에 있어서, 그들은, 하느님 자신이 그의 무한하고 영원한 구체에서 그러하듯이 신성한 완전성인 그들의 구체에서 그렇게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완전성은, 물질적 감각에서는 보편적도 아니고, 지적인 파악에서 제한됨이 없지 않거나, 혹은 영적 경험에서 최종적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의지를 가진 신성, 품성 동기부여의 완전성, 하느님-의식의 모든 유한한 측면에 있어서는 최종적이며 완벽하다.

 

이것이,"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들도 완전하라."라는, 신성한 명령의 진정한 의미로, 이는 필사자 사람이 더욱 더 높은 차원의 영적 가치와 진정한 우주 의미들을 달성하도록 하는 길고도 황홀한 투쟁에서 앞으로 나가도록 계속 촉구하고 그리고 그를 안쪽으로 손짓하여 부른다. 우주들의 하느님을 찾기 위한 이 숭고한 탐구는 시간과 공간에 속하는 모든 세계들의 거주자들의 최극의 모험이다.

 

1. 아버지의 이름

 

우주들에 두루 알려진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들 중, 그를 첫째 근원이며 우주 중심이라고 칭하는 이름들이 가장 자주 발견된다. 첫째 아버지는 다른 우주들에서 그리고 같은 우주의 다른 구역들에서 다양한 이름들로 알려져 있다. 창조체가 창조주에게 부여한 이름들은 창조체의 창조주에 대한 개념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첫째 근원이며 우주 중심은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으며, 단지 본성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만일 우리가 자신들을 이 창조주의 자녀들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그를 결국에는 아버지라고 불려야 하는 것이 바로 본성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한 이름이고, 그리고 이것은 첫째 근원이며 중심과 우리의 품성적 관계를 인식함으로써 성장한다.

 

우주 아버지는 우주들의 지능적 의지창조체에게 독단적 인식, 형식적 경배, 또는 노예로서의 예배를 어떠한 형태로든 강요한 적이 없다. 시간과 공간 세계들에 있는 진화하는 거주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와서- 그를 인식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자발적으로 경배하여야 한다. 창조주는 그의 물질적 창조체들의 영적 자유의지의 복종을 강요하거나 강제하기를 거부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애정 어린 헌신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람이 최고로 선택할 수 있는 선물이다 사실, 창조체의 그러한 헌신은 사람이 낙원 아버지에게 주는 유일하게 가능한 참된 가치의 선물이 될 것이다.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활동하고, 존재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한 이러한 선택을 제외하고 하느님에게 사람이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우주들의 지능적 의지 창조체들에 의해 내려진 그러한 결정들은, 사랑으로 가득한 창조주 아버지의 본성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그 진정한 경배의 실체를 이룬다.

 

너희가 엄위한 창조주를 실제로 알아내고, 신성한 조정자의 내주하는 현존의 실제성을 경험하기 시작한 후에, 너희가 진실로 하느님-의식함이 되면, 그러면 너희의 깨달음에 따라서 그리고 신성한 아들들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방법과 방식에 따라서, 너희는 첫 번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에 대한 너희의 개념이 적절하게 표현되는 우주 아버지에 대한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세계들에서 그리고 다양한 우주들에서, 창조주는 무수한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는데, 관계성의 영적 면에서는 모든 이름이 같은 의미이지만, 그러나 어떤 주어진 영역에서 그의 창조체의 가슴에 자리 잡은 그의 보좌의 정도와 깊이를 말과 상징 안에서 알 수 있다.

 

우주들의 우주의 중심 가까이에서는, 우주 아버지가 일반적으로 첫째 근원의 의미로 여길 수 있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공간의 우주들 안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우주 아버지를 지칭하는 용어는 우주 중심을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다. 별들의 창조 속으로 더 멀리 밖으로 나가면, 너희의 지역우주의 본부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첫째 창조자 근원이며 신성한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가까이에 있는 한 별자리에서 하나님은 우주들의 아버지로 불려지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무한한 유지자로, 그리고 동쪽에서는 신성한 조정자로 불려지고 있다. 그는 또한 빛들의 아버지, 생명의 선물, 전능하신 분으로도 명명되어 왔다.

 

낙원 아들이 증여의 삶을 살았던 그러한 세계들에서는, 하느님이 일반적으로, 품성적 관계, 부드러운 애정, 아버지로서의 헌신을 나타내는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너희들의 별자리 본부에서는 하느님이 우주 아버지로 알려져 있으며, 거주되는 세계들 중에서 너희의 지역체계 안에 있는 다른 행성들에서는 그는 아버지들의 아버지, 낙원 아버지, 하보나 아버지, 그리고 영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낙원 아들들의 증여의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된 자들은, 창조체-창조주 연합의 감동적 관계를 나타내는 감정적인 호소에 결국에는 승복하여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성(性)적 창조체들이 사는 행성에서는, 지능 존재들의 가슴속에 부모 정서에 대한 충동들이 선천적으로 들어 있는 세계에서는, 아버지라는 용어는 영원한 하느님을 매우 잘 표현해 주는 아주 적합한 이름이다. 그는 너희들의 행성, 유란시아에서 하느님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보편적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대한 것은 너희들이 그를 알아야 하고 그처럼 되고자 열망해야 한다. 너희들의 옛 예언자들은 진심으로 그를 "영존(永存)하는 하느님"이라 불렀으며 그를 "영원 속에 거(居)하는 자"로 묘사하였다.

 

2. 하느님의 실체

 

하느님은 영 세계의 최초 실체이며 하느님은 마음 구체들 안에서 진리의 근원이며 물질적 영역들에 두루 모든 것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모든 창조된 지능존재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하나의 품성이고, 우주들의 우주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영원한 실체의 첫째 근원인 동시에 중심이다. 하느님은 사람 같지도 기계 같지도 않으시다. 첫째 아버지는 우주의 영이고, 영원한 진리이며, 무한한 실체이고, 아버지 품성이다.

 

영원한 하느님은 이상화된 실체 또는 품성체구현된 우주보다 더욱 무한하다. 하느님은 단순히 사람의 최극의 욕망, 필사자가 추구할 대상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단지 정의(正義) 의 힘-잠재적이라는, 어떤 개념도 아니다. 우주 아버지는 자연계에 대한 동의어가 아닐 뿐 아니라, 품성화된 자연 법칙도 아니다. 하느님은 초월적 실체이며, 단지 최극 가치에 대한 사람의 전통적 개념이 아니다. 하느님은 영적 의미들에 대한 심리적 초점화구현이 아니며, "사람의 가장 고귀한 작품"도 아니다. 하느님은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개념들 중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이다. 그는 지상에서 영적 평화를 누리고, 죽음에서 품성의 생존을 경험하기를 갈망하는 모든 자들에게, 생존되는 품성체이고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하느님의 실재(實在)의 실제성은 사람의 필사자 마음속에서 살며 그리고 거기서 영원히 생존되는 불멸 혼의 진화를 도와주도록 낙원으로부터 보내진 영 감시자의 신성한 현존의 내주를 통한 인간의 경험 속에서 명시된다. 인간 마음속에 있는 이 신성한 조절자의 현존은 세 가지 경험적 현상에 의하여 드러낸다:


1. 하느님을 아는 지적 능력 - 하느님-의식.


2. 하느님을 찾으려는 영적 욕구 - 하느님-추구.


3. 하느님처럼 되고자 갈망하는 품성 -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전심(全心)적 욕망.

 

하느님의 실재는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적 추론의 순수 이성에 의해서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 하느님은 오직 인간 경험의 영역 안에서만 깨닫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실체에 대한 참 개념은 논리에서 적합하고, 철학에서 타당하며, 종교에서 필수적이고 그리고 품성 생존에 대한 그 어떤 소망에서도 필수 불가결하다.

 

하느님을 아는 자들은 그의 현존한다는 사실을 경험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을-아는 필사자들은 그들의 품성적 경험 속에 한 인간 존재가 다른 이에게 살아있는 하느님의 실재를 제시할 수 있고 증명하기 위한 오직 긍정적인 증거를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실재는 인간마음의 하나님-의식과, 우주 아버지로부터 증여된 대가 없는 선물로서 필사자 지성 안에 내주하는 생각조절자인 하나님-현존 간의 접촉을 통해서만 명시가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너희들이 하느님을 창조주로 생각할 수 있고, 그는 낙원과 완전성의 중앙우주를 몸소 창조하신 이다, 시간과 공간의 우주들은 모두 창조주 아들들의 낙원 집단에 의하여 창조되고 조직된다. 우주 아버지는 네바돈이라는 지역우주의 몸소 창조자가 아니며 너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의 아들 미가엘의 창조다. 비록 진화하는 우주들을 아버지가 몸소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그들 우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특정한 물질적, 마음적 그리고 영적 에너지들을 통한 현시 속에서 그는 그들을 조정한다. 아버지 하느님은 낙원 우주의 몸소 창조자이며, 영원 아들과 연합하여, 다른 모든 개별적 우주의 창조주들의 창조자이다.

 

물질적 우주들의 우주에 있는 물리통제자로서, 첫째근원이며 중심은 영원한 낙원 섬의 원형틀들 안에서 기능하며, 그리고 이 절대 중력 중심을 통하여 영원한 하느님은 중앙우주와 그리고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물리적 차원의 조화우주적 총괄을 균등하게 행사한다. 마음으로서, 하느님은 무한 영의 신(神) 안에서 기능하며 영으로서, 하느님은 영원 아들의 품성체 안에서 그리고 영원 아들의 신성한 자녀들의 품성체 안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첫째근원이며 중심과 낙원의 합동 품성체들과 절대자들과의 상관관계는, 모든 창조에 두루 그리고 그에 대상되는 모든 차원에 걸친 우주 아버지의 직접적인 품성 활동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다. 그의 단편(斷片)화된 영의 현존을 통하여, 창조주 아버지는 그의 창조체 자녀들과의 그리고 그가 창조한 우주들과의 즉각적인 접촉을 유지한다.

 

3. 하느님은 우주의 영

 

"하느님은 영이다." 그는 한 우주의 영적 현존이다. 우주 아버지는 한 무한한 영적 실체이며 그는 "지고하고, 영원하고, 불멸적인, 불가시적인, 그리고 유일하게 참된 하느님이다." 비록 너희들이 "하느님의 자손"이라 하더라도, 너희가 "그의 형상에 따라"창조되었다고 - 그의 영원한 현존이 머무르는 중심으로부터 보내진 신비의 감시자가 내주된다고- 불린다고 해서 형태와 모습에서 아버지가 너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 존재들은 비록 그들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살과 피를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옛 선지자는 "보라, 그가 내 옆에서 걸어가도 나는 그를 보지 못한다. 또한 그가 지나가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마도 계속해서 하느님의 일들을 지켜보고, 그의 장엄한 행위에 대한 물질적 증거들에 대하여 고도로 의식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의 신성의 가시적 현시를 우리가 거의 보지 못하며, 심지어는 인간 속에 내주하는 파견된 그의 영의 현존을 쳐다볼 수도 없다.

 

우주 아버지는 물질적 장애들과 제한된 영적 자질들을 가진 저급한 창조체들로부터 자신을 숨기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오히려 다음과 같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는 어떠한 필사자도 나를 보고서는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물질적 어떤 사람도 영 하느님을 쳐다보고서는 그의 필사 실재를 보존할 수 없다. 신성한 품성현존의 영광과 영적 광채는, 비교적 낮은 영 존재들의 집단이나 또는 어떤 계층의 물질적 품성들도 접근할 수 없다. 아버지의 품성적 현존의 영적 광채는 "어떠한 필사자 사람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어떤 물질적 창조체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빛이다." 그러나 영화(靈化)된 마음의 신앙-시각으로 그를 식별하기 위해 육신 계층의 눈으로 하느님을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우주 아버지의 영 본성은 그의 공존하는 자아인 낙원의 영원 아들과 함께 가득 차게 공유된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의 공동 품성합동자인 무한 영과 우주적이고도 영원한 영을 가득 차게 그리고 남김없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공유한다. 하느님의 영은, 자체적으로 그리고 저절로, 절대적이며 아들 안에서 그것은 분별불가하며, 영 안에서 우주적이며, 그들 모두 안에서 그리고 그들 모두에 의하여 무한하다.

 

하느님은 우주적인 영이며 하느님은 조화우주 품성체이다. 유한 창조의 최극 품성적 실체는 영이며 품성적 조화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아절대(亞絶對) 영이다. 오로지 무한 차원들만이 절대적이며, 그런 차원들에서만이 물질, 마음, 그리고 영 사이에 하나가 되는 최종이 있다.

 

우주들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은 잠재적으로 물질, 마음, 영에 대한 총괄자이다. 하느님은 오직 그의 멀리-퍼지는 품성 순환회로에 의해서만, 의지창조체들로 이루어진 그의 광대한 창조의 품성들과 직접 관계를 맺지만, 그는 (낙원 밖에서는) 오직 그의 단편(斷片)화된 실존개체들, 우주들 안에 널리 퍼진 하느님의 뜻으로만 접촉이 가능하다. 시간 속의 필사자들의 마음속에 깃들고, 그곳에서 살아남는 창조체의 불멸의 혼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이 낙원 영은 우주 아버지의 본성이며 신성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화하는 창조체의 마음은, 지역우주들 안에서 기원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겠다는 창조체의 선택의 필연적 결과인 영적 달성이라는 그 경험적 변환을 성취함으로써 신성한 완전성을 얻어야만 한다.

 

사람의 내적 경험 속에서, 마음은 물질과 결합되어 있다. 물질에-연관된 이러한 마음은 필사자의 죽음에서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의 기법은 인간 의지의 그러한 조절들 안에 그리고 그러한 하느님-의식 지성이 점차적으로 영의 가르침을 받고 결국에는 영의 인도를 받게 되는 필사자 마음 안에서의 그 변환들 속에 포옹되어 있다. 물질 연합으로부터 영 결합을 향한 인간 마음의 이 진화는 필사마음의 잠재적인 영 위상을 불멸의 혼인 모론시아 실체들로 변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질에 종속된 인간 마음은 점점 더 물질적으로 되는 운명에 있고 결국 되어지는 품성의 소멸을 당한다. 영에 종속되는 마음은 점점 더 영적으로 되는 운명에 있고, 궁극적으로 생존시키고 인도하는 신성한 영과 하나됨을 성취하며, 이런 식으로 해서 품성 실재의 생존과 영원을 달성하게 되어 있다.

 

나는 영원자로부터 왔고, 우주 아버지가 현존하는 곳에 반복하여 되돌아갔었다. 나는 첫째근원이며 중심인 영원하고 우주적인 아버지의 실제성과 품성에 대해 알고 있다. 나는 위대한 하느님이 절대이고 영원하며 그리고 무한하며 또한 그는 선하며 신성하며 그리고 자비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위대한 선언들의 진리를 알고 있다: "하느님은 영"이고 "하느님은 사랑"이며, 이 두 속성들은 영원 아들 안에서 우주에 가장 완벽하게 밝혀져 있다.

 

4. 하느님의 신비

 

하느님의 완전성의 무한성이 그렇게 그를 영원히 신비롭게 만드는 그러한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불가해한 모든 신비들 중 가장 큰 것은 필사마음 속에 있는 신성한 내주(內住) 현상이다. 우주 아버지가 시간의 창조체들에게 머무는 방식은 모든 우주 신비들 중 가장 심오한 것이며 사람마음 속에 있는 신성한 현존은 신비들 중의 신비이다.

 

필사자들의 물질 육체는 "하느님의 전(殿)"이다. 비록 주권자 창조주 아들들이, 그들의 거주세계 창조체에 가까이 다가가서 "모든 사람들을 그들 자신에게 이끈다" 할지라도 그들이 의식의 "문에 서서""그리고 두드리고"그리고는 " 자신들의 가슴의 문을 여는"모든 이에게 들어가는 것을 기뻐할지라도 창조주 아들들과 그들의 필사창조체들 사이에 친밀한 품성적 교제가 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사람들은 자신들 속에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온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몸은 하느님의 전(殿)인 것이다.

 

너희가 여기 아래에서 끝이 날 때, 땅에서 일시적 형태로 너희의 여정을 다 마쳤을 때, 육신으로서의 시험 여행이 끝날 때, 필사자 장막을 이루는 티끌이 "원래 유래되었던 땅으로 되돌아 갈" 때 그때에 내주하는 "영이 그것을 주셨던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밝혀진다. 신성의 한 부분이며 조각인, 하느님의 한 단편(斷片)이 이 행성의 각 필사 존재 안에 머무른다. 그것은 소유로는 아직 너희들 것이 아니지만, 만일 너희가 필사 실재에서 생존된다면 너희와 하나가 되도록 계획적으로 의도되어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이 신비에 직면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의 무한한 선, 끝없는 자비, 비할 데 없는 지혜, 숭고한 성격의 끝없는 진리의 장관(壯觀)이 더욱 더 펼쳐지고 있음에 당혹하고 있다.

 

신성한 신비는 유한과 무한 사이에, 일시와 영원 사이에, 시-공간 창조체와 우주 창조주 사이에,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사람의 불완전성과 낙원 신의 완전성 사이에 존재하는 선천적 차이점 속에 있다. 우주적 사랑의 하느님은 신성한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의 본질특성들을 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그 창조체의 능력의 한도껏 그의 모든 각 창조체에게 어김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우주 아버지는, 우주들의 우주에 속한 모든 구체와 각각의 세계에 있는 모든 영 존재와 필사 창조체들에게, 그러한 영 존재들에 의해 그리고 그러한 필사 창조체들에 의해 식별되고 이해될 수 있는 자신의 자비롭고 신성한 자아 전체를 드러낸다.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하느님은 품성체들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우주의 어느 자녀가 어느 주어진 시기에 느끼는 신성한 현존은, 초물질 세계의 영 실체들을 받아들이고 식별할 수 있는 그러한 창조체의 능력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이다.

 

인간의 영적 경험 안에 있는 실체로서의 하느님은 신비가 아니다. 그러나 영 세계의 실체들을 물질적 계층에 속하는 물리적 마음들에게 쉽게 설명을 시도할 때 신비가 나타나는데: 이 신비는 너무나 미묘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하느님을-아는 필사자의 신앙-파악으로서만 유한으로 무한을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의 물질적 세계들에서 진화하는 필사자들이 영원한 하느님을 식별하는 철학적 기적을 성취할 수 있다.

 

5. 우주 아버지의 품성

 

하느님의 위대하심, 그의 무한성으로, 그의 품성을 흐리게 하거나 빛을 잃게 하지 말라.   "귀를 계획하신 분이, 어찌 듣지 못하실 수 있겠는가? 눈을 지으신 분이, 어찌 보지 못하시겠는가?" 우주 아버지는 신성한 품성의 극치이며 모든 창조에 두루 품성의 근원이자 운명이다. 하느님은 무한하시며 동시에 품성적이며 그는 무한한 품성이다. 아버지는, 비록 그의 품성체 무한성이 그를 모든 물질적이고 유한한 존재들의 가득 찬 이해를 넘어서 영원히 있게 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한 품성이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 마음이 납득하는 품성과 같은 품성보다 그 이상이며 그는 어떤 초(超)품성에 대한 가능한 어떤 개념보다도 훨씬 더 그 이상이다. 그러나 존재의 실체에 대한 최대 개념이 품성의 관념과 이상에 있는, 그러한 물질적 창조체의 마음들로, 신성한 품성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한 개념을 논의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헛된 일이다. 우주 창조주에 대한 물질적 창조체들이 가능한 최고의 개념은 신성한 품성의 드높여진 관념의 영적 이상들 속에서 포옹된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하느님은 품성에 대한 인간개념보다 훨씬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겠지만, 너희는 대부분 우주 아버지가 영원하고 무한하며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품성 이하의 그 어떤 것도 도저히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느님은 자신의 어떤 창조체에게도 숨지 않고 있다. 존재들의 그 많은 계층들이 그에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그가 "물질적 어떤 창조체들도 접근할 수 없는 빛 속에 거(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품성의 광대함과 장엄함은 진화하는 필사자들의 불완전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 그는"손바닥으로 바다를 가늠하고, 손 뼘으로 우주를 가늠한다. 지구 순환계 위에 앉아있고, 하늘을 휘장처럼 펼치고 이것을 거할 우주로 확장 시킨다," "네 눈을 높이 들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으며, 그들의 세계들을 순서에 따라 있게 하고, 저희 모두를 각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그 분을 바라보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것들은, 만들어진 것들로 일부 납득된다."는 말이 사실이다. 오늘날, 너희의 있는 그대로, 너희는 그의 각 가지 그리고 다양한 창조를 통해,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 및 그들의 수많은 종속들의 계시와 직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조물주를 식별하여야 한다.

 

비록 물질적 필사자들이 하느님의 품성체를 볼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은 그가 한 품성체임을 확신하면서 우주 아버지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하급의 거주자들에게 영원한 영적 진보를 제공하고 있음을 묘사하는 그 진리를 "그의 자녀들 가운데서 기뻐한다"는 것을 신앙에 의해 받아들이고 기쁨을 누려야만 된다. 하느님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사랑이시며 무한한 창조주 품성을 이루는 초인간적이고 신성한 속성들 중 그 어느 것에 있어서도 모자람이 없다.

 

지역 창조계에 있어서 (초우주들의 성원들을 제외하고) 하느님은 지역우주들의 주권자들인 동시에 거주하는 자들의 세계의 아버지들인 낙원 창조주 아들들 이외에는 친히 또는 거주의 형태로서 현시하지 않는다. 만일 창조체의 신앙이 완전하다면, 그는 창조주 아들을 보았을 때 그가 이미 우주 아버지를 본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며 아버지를 추구함에 있어서, 그는 아들 이외의 어떤 다른 것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필사자 사람은 완벽한 영 변환과 그리고 실질적 낙원 달성을 성취할 때까지는 결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낙원 창조주 아들들의 본성들 속에는,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무한 본성을 갖는 우주 절대의 분별불가 잠재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주 아버지는 창조주 아들들 속에 모든 면에서 신성하게 실재하고 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이다. 미가엘 계층의 낙원 아들들은 완전한 품성들이고, 빛나는 새벽별에서부터 아래로는 진행되고 있는 동물 진화의 가장 낮은 인간 창조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우주 품성의 원형틀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없이는 그리고 그의 위대하고 중심적인 품성체가 없었더라면, 이 광대한 우주들 중의 우주를 두루 통하여 어떠한 품성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품성이다.

 

하느님이 영원한 힘, 장엄한 현존, 초월적 이상, 영광스러운 영(靈)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모든 것들인 동시에 무한하게 그 이상(以上)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실로 그리고 영구하게 완전한 창조주의 품성, "알 수 있고 알려질 수 있는" 품성체,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분 그리고 우리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이며 다른 인간들이 알려져 온 것처럼, 하나님의 친구로서 너희는 알려질 수 있다. 그는 진정한 영이며 영적인 실체이다.

 

우리가 우주에 두루 드러난 우주 아버지를 볼 때 우리가 그의 수많은 창조체들 속에 내주하는 그를 식별할 때 우리가 그의 주권자 아들들의 품성체들 속에서 그를 바라볼 때 우리가 가까이서 멀리서, 여기저기에서 그의 신성한 실재를 계속 느낄 때, 그의 품성의 시원성(始原性)에 대해 의심하거나 의문을 갖지 말라. 멀리-퍼지는 이 모든 분배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한 참 품성체로 남아 있으며,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흩어져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그의 창조체들의 무리들과 품성적 관계를 영구토록 유지해 나간다.

 

우주 아버지의 품성에 대한 관념은 주로 계시를 통해 인류가 알게 된 하느님에 대한 확대되고 더욱 진실한 개념이다. 이성, 지혜, 종교적 경험 등이 모두 하느님의 품성을 암시하고 포함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합하여 이것을 타당하게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내주하고 있는 조절자도 전(前)품성이다. 어떤 종교든지 그 진리와 성숙도는 하느님의 무한한 품성에 대한 그 개념과 신의 절대 합일체에 대한 그 파악에 직접 비례한다. 따라서 품성적 신에 대한 관념은, 종교가 하느님의 합일체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한 이후 종교적 성숙의 척도가 된다.

 

원시종교는 많은 품성적 하느님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주로 사람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계시(啓示)는, 첫째 원인의 과학적 설정 안에서 단지 가능하고, 그리고 우주 합일체의 철학적 관념 안에서는 오직 일시적으로만 제시되어지는, 하느님에 대한품성 개념이 타당함을 확인시켜 준다. 어떤 품성체라 해도 오직 품성 접근에 의해서만 하느님의 합일체를 납득하기 시작한다.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품성을 부인하면 결국 유물론이냐 범신론이냐 라는 두 철학적 딜레마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신을 깊이 사색할 때, 품성 개념은 유형론(有形論)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물질적 신체는 사람이나 하느님의 품성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이 유형론의 실수는 인간 철학의 양극단에서 나타나 있다. 유물론에서는, 사람이 죽음에 따라 육체를 잃어버려, 그는 하나의 품성으로의 존재가 끝나며 범신론에서는 하느님은 육체가 없으므로, 따라서 그는 품성체가 아니다. 진보하는 품성의 초인간적 전형은 마음과 영의 결합 안에서 기능한다.

 

품성이란 단순히 하느님의 속성 중 하나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완전한 표현의 영원 그리고 보편성 속에 나타나 있는, 조화된 무한한 본성 그리고 연합된 신성한 의지의 전체를 대표한다. 최극의 의미에서 품성이란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이다.

 

하느님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절대적이고 무한하기 때문에, 지식이 자라거나 지혜가 늘어나지 않는다. 하느님은 유한한 사람이 추측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체험을 획득하지도 않지만, 그는 자신의 영원한 품성의 영역 안에서 부단히 자아-실현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을 즐기는데, 이것은 계속 진화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유한한 창조체들이 새로운 체험을 쌓아 가는 것과 유사하며 또 어떤 면에서 그렇게 비교될 수도 있다.

 

넓은 우주 안에서 신성한 도움에 의해 영적으로 완전한 높은 세계로 오르려고 모색하는 불완전한 모든 혼의 품성 투쟁에 우주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무한한 하느님의 절대적 완전성은 그로 하여금 완전함의 분별불가한 최종이라는 극심한 한계에 부딪쳐 고통을 받게 만들 것이다. 우주들의 우주에 두루 모든 영적 존재와 모든 필사 창조체의 이러한 점진적 체험은, 끝없는 자아-실현의 끝없는 신성한 순환에 대한 아버지의 계속-확대하는 신-의식의 일부이다.

 

"너희의 모든 고통 속에서 그가 고통을 받고 있고,""너희가 승리하는 모든 경우에 그도 너희 속에서 그리고 너희와 함께 승리한다"라는 말들은 정말로 사실이다. 그의 전(前)품성의 신성한 영은 너희의 실제적인 일부분이다. 낙원 섬은 우주들의 우주의 모든 물질적 변형에 응답한다.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의 모든 영 충동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동행위자는 팽창하는 조화우주에 대한 마음 표현 모두를 함유하고 있다. 우주 아버지는 시간과 공간에 속하는 전체 진화 창조의 모든 실존개체, 존재, 품성의 상승하는 영들 그리고 확대하는 마음들의 점진적 투쟁이라는 개별적 경험 전체를 신성한 의식의 충만 속에서 실제화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에 정말로 사실이다.

 

6. 우주의 품성

 

인간의 품성은 신성한 창조주 품성에 의해 투영된 시-공간의 형상-그림자이다. 그리고 어떤 실제성도 그것의 그림자를 조사(調査)하는 것으로는 충분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림자는 참된 실체에 의해 해석되어야만 한다.

 

하느님은 과학에 있어서는 원인, 철학에 있어서는 관념, 종교에 있어서는 품성체, 나아가 사랑의 하늘아버지이다. 하느님은 과학자에게는 시원(始原)적 기세, 철학자에게는 합일체의 가설, 종교인에게는 살아있는 영적 체험이다. 우주 아버지의 품성에 대한 사람의 부적절한 개념은 우주에서 사람의 영적 진보를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순례자들이 드디어 낙원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신성한 포옹에 도달하였을 때에만 진정으로 적절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과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이 품성에 대한 정반대 관점들을 결코 놓치지 마라. 사람은 유한에서 무한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품성을 이해하며 하느님은 무한에서 유한을 바라보신다. 사람은 가장 낮은 유형의 품성을 갖고 있으며 하느님은 최고자, 더 나아가 최극이며, 궁극이며 절대인 품성을 소유하신다. 그러므로 신성한 품성에 대한 더 나은 개념들은, 인간의 품성에 대한 향상된 관념, 특히 창조주 아들인 미가엘의 유란시아 증여 삶 속에서의 인간 및 신성한 품성의 증진된 계시, 그 출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했다.

 

필사마음 속에 내주하는 전(前)품성인 신성한 영은, 바로 그 현존 속에서, 그것의 실제적 실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이지만, 그러나 신성한 품성에 대한 개념은 다만 진정한 개인의 종교적 체험의 영적 통찰력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모든 품성체는, 인간적이든 신성하든, 그 품성체의 외부적 반응 또는 물질적 현존과 매우 다르게 이해되고 알려질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도덕적 유사성과 영적 조화는 두 품성체들 사이의 친구 관계에 필수이며 사랑의 품성은 사랑이 없는 품성체에게 결코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신성한 품성을 아는 것에 다가가는 것조차, 모든 사람의 품성 자질들이 온통 그 노력에 바쳐져야만 한다. 건성으로 하는, 어중간한 헌신은 소용없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더 완벽하게 납득하면 할수록 그리고 자기 동료들의 품성 가치를 인정하면 할수록, 그는 기원 품성에 대해 더욱 더 알고 싶어질 것이고, 하느님을-아는 그러한 인간은 더욱 더 진지하게 기원 품성처럼 되려고 분투할 것이다. 하느님에 관한 의견들에 대하여 너희가 논쟁을 벌일 수도 있지만, 그와 함께 그리고 그의 속에서의 체험은 모든 인간적 논란과 단순한 지적 논리를 넘어서 그 위에 존재한다. 하느님을-아는 사람은, 믿지 않는 자들을 납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교화(敎化)와 상호 만족을 위하여 자신의 영적 체험을 묘사한다.

 

우주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우주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리고 품성으로 관리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들이 인간적이든 초인간적이든, 다른 마음 현상들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사람의 품성이 우주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우주 어딘가에는 신성한 마음과 실제적 품성이 숨겨져 있다.

 

하느님은 영 - 영 품성 - 이며 사람도 역시 영 - 잠재적인 영 품성 - 이다. 나사렛 예수는 인간 경험 속에서 이 잠재적인 영 품성의 충만한 실현을 달성하였으며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 그의 삶은 하느님의 품성에 대한 사람의 가장 실질적이고 이상적인 계시가 되고 있다. 비록 우주 아버지의 품성이 오직 실제적인 종교체험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하지만, 예수의 이 땅의 삶을 통해, 한 진정한 인간 경험 속에서 하느님의 품성에 대한 그러한 하나의 실현과 계시의 완전한 명시에서 우리는 영감을 얻는다.

 

7. 품성 개념의 영적 가치

 

예수가 "살아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품성적인 신(神) - 하늘에 계신 아버지 - 을 의미한 것이었다. 신의 품성에 대한 개념은 동료관계를 촉진시키며 그것은 지능적 경배를 장려한다. 그것은 참신한 신뢰감을 증진시킨다. 상호작용은 비품성적인 사물들 사이에도 이루어 질 수 있지만, 동료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처럼, 아버지와 아들 간의 동료관계 조차도 양측이 품성체들이 아니라면 결코 누릴 수 없다. 비록 이 품성적 교제가 바로 그 생각조절자와 같은 비품성적 실존개체의 현존에 인해 크게 촉진될 수 있다 하더라도, 오직 품성들만이 서로 친하게 사귈 수 있다.

 

사람은, 한 방울의 물이 대양과 합일체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과 결합을 성취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점진적 상호간의 영적 교제에 의해, 품성의 하느님과의 품성 상호교감에 의해, 그리고 신성한 뜻과의 충심어리고 지능적인 순응을 통해 점점 더 신성한 본성에 도달함으로써 신성한 결합을 달성한다. 이러한 숭고한 관계는 오로지 품성들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진리에 관한 개념은 품성과는 별도로 다루어질 수 있고, 미(美)에 관한 개념은 품성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신성한 선(善)의 개념은 오직 품성에 대한 관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직 품성체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다. 미와 진리조차도 그것이 사랑의 아버지, 품성적인 하느님의 속성들이 아니라면 생존 소망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이 가장 시원(始原)적이고 변함없으며 전능하고 완전하면서도, 동시에 계속-변화하고, 분명히 법칙에 제한되는, 상대적 불완전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는 우주에 둘러 싸여 있는지를 충분히 납득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품성적 경험 속에서 그러한 진리를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들 그리고 우리의 환경 모두의 계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품성의 정체성과 의지의 합일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의 우주 실체는 수학, 논리, 철학이 아니라, 품성적인 하느님의 신성한 뜻에 점차적으로 순응하는 각자의 경험에 의해서만 파악된다. 과학 또는 철학뿐만 아니라 신학조차도 하느님 품성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신앙 아들들의 품성적 경험만이 하느님품성의 실제적인 영적 실현을 가져올 수 있다.

 

보다 차원 높은 우주 품성의 개념들은: 정체성, 자아-의식, 자아-의지, 그리고 자아-계시에 대한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은 나아가, 낙원 신들의 품성 연합 안에서 존재하듯이 그처럼, 다르거나 동등한 품성들과의 동료관계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합의 절대적 합일은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신성(神性)은 불가분성, 합일체로 알려진다. "주(主) 하느님은 하나이다." 품성의 불가분성은 하느님이 필사자 사람의 가슴속에서 살도록 그의 영을 증여하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인간 아버지의 품성불가분성이 필사 아들들과 딸들을 낳는 행위를 방해하지 않는다.

 

합일체의 개념과 관련된 이 불가분성 개념은 신(神) 궁극위(位)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모두 초월됨을 포함한다. 따라서 시간이나 공간은 절대적이거나 무한할 수 없다. 첫째근원이며 중심은 모든 마음, 모든 물질, 그리고 모든 영을 분별불가하게 초월하는 그 무한자이다.

 

낙원 삼위일체에 관한 사실은 결코 신성한 합일체의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낙원 신의 세 품성들은 모든 우주 실체 반응들과 모든 창조체 관계들에 있어서, 하나로 존재한다. 영원한 이 세 품성체들도 신의 불가분성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 우주 문제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는지 필사마음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실망할 필요가 없으며 이 모든 일들은 낙원 존재들인 나의 집단에 속한 높은 품성들에게조차도 전적으로 뚜렷하지는 않다. 낙원으로 오랜 필사자 오름이 계속되는 신(新)시대를 거치면서 너희의 마음이 점진적으로 영적으로 됨에 따라 신과 관련된 이 심오한 진리들이 점점 뚜렷해 질 것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라.

 

[네바돈 지역우주의 영역을 넘는 일들을 다루어야 하는 이 다가오는 계시의 일부를 감독할 목적으로, 일곱 번째 초우주 본부인 유버사의 옛적으로 늘계신이들에 의해 배정된 천상의 품성무리의 한 일원인, 신성한 조언자에 의해 제시되었음. 나는 하느님의 본성과 속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이 글을 후원하도록 위임받았는데, 왜냐하면 거주하는 어떤 세계든지 그러한 목적을 위해 가능한 정보의 최고 근원을 내가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곱 초우주들 모두에서 신성한 조언자로 일해 왔었고, 오랫동안 모든 사물들의 중심인 낙원에 거주해 왔다. 나는 우주 아버지의 즉각적인 품성 현존 안에서 머무는 최극의 기쁨을 여러 번 누려왔다. 나는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아버지의 본성과 속성에 대한 실체와 진리를 묘사한다. 나는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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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제 61 편 유란시아의 포유류 동물기 운영자 08-21 2382
135  제 62 편 초기 사람의 시조(始祖) 종족 운영자 08-21 2201
134  제 63 편 최초의 인간 가족 운영자 08-21 2148
133  제 64 편 진화하는 유색 인종 운영자 08-21 2242
132  제 65 편 진화의 총괄 운영자 08-21 2222
131  제 66 편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 운영자 08-21 2350
130  제 67 편 행성의 반란 운영자 08-21 2165
129  제 68 편 문명의 태동 운영자 08-21 2122
128  제 69 편 원시 형태의 인간적 제도 운영자 08-21 2208
127  제 70 편 인간 정부의 발전 운영자 08-21 2247
126  제 71 편 국가의 발전 운영자 08-21 1994
125  제 72 편 이웃 행성의 정부 운영자 08-22 2195
124  제 73 편 에덴 동산 운영자 08-22 2280
123  제 74 편 아담과 이브 운영자 08-22 2402
122  제 75 편 아담과 이브의 불이행 운영자 08-22 2511
121  제 76 편 두 번째 동산 운영자 08-22 2221
120  제 77 편 중도 창조체 운영자 08-22 1964
119  제 78 편 아담 시대 이후의 보라색 인종 운영자 08-22 2278
118  제 79 편 동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310
117  제 80 편 서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290
116  제 81 편 근대 문명의 발전 운영자 08-22 2234
115  제 82 편 결혼의 진화 운영자 08-22 1826
114  제 83 편 결혼 제도 운영자 08-22 2338
113  제 84 편 결혼과 가정생활 운영자 08-22 2120
112  제 85 편 경배의 기원 운영자 08-22 2272
111  제 86 편 종교의 초기 진화 운영자 08-22 2077
110  제 87 편 귀신 예찬 운영자 08-22 2196
109  제 88 편 주물 숭배, 부적과 마술 운영자 08-22 2448
108  제 89 편 죄, 희생 제물, 그리고 속죄 운영자 08-22 2462
107  제 90 편 샤머니즘 - 주술사와 사제 운영자 08-22 2358
106  제 91 편 기도의 진화 운영자 08-22 2048
105  제 92 편 종교의 후기(後期) 진화 운영자 08-22 2396
104  제 93 편 마키벤타 멜기세덱 운영자 08-22 2140
103  제 94 편 동양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321
102  제 95 편 레반트에서의 멜기세덱의 가르침 운영자 08-23 2210
101  제 96 편 야훼 - 히브리인의 하느님 운영자 08-23 2628
100  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의 하느님의 개념의 진화 운영자 08-23 2474
99  제 98 편 서방(西方)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281
98  제 99 편 종교의 사회적인 문제 운영자 08-23 1984
97  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운영자 08-23 2128
96  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운영자 08-23 2151
95  제 102 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운영자 08-23 2096
94  제 103 편 종교적 경험의 실체 운영자 08-23 2171
93  제 104 편 삼위일체 개념의 성장 운영자 08-23 2092
92  제 105 편 신(神)과 실체 운영자 08-23 1855
91  제 106 편 실체의 우주적 차원 운영자 08-23 1982
90  제 107 편 생각조절자의 기원과 본성 운영자 08-23 2061
89  제 108 편 생각조절자의 임무와 사명활동 운영자 08-23 1892
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900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2021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62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95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28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75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49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34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50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43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80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73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38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69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9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57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66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203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81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302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32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402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70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31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36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55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95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82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83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79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55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96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48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75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81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63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213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61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23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4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47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77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48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97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81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52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45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74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77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19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39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38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84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84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55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93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117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8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44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73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210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34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51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90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38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75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57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202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23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4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95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98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72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71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70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22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62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57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92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708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21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81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97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66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59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6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6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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