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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26 (일) 15:11 조회 : 2296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서기 27년 1월 12일 일요일 정오 직전에, 예수께서는 천국의 복음을 전할 공적(公的) 전도자(傳道者)들로 임명하기 위해 사도들을 불러 모으셨다. 사도들은 어느 때든지 부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그날 아침에도 고기를 잡으러 호숫가로부터 멀리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몇은 그물 손질과 고기잡이 도구의 수선 작업을 하며 호숫가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께서는 호숫가로 내려가면서 사도들을 부르셨는데, 첫 번째로 호숫가 근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안드레와 베드로를 불러 들이셨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인 세베대와 함께 근처에 있는 배에서 그물 손질을 하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다. 예수께서는 나머지 사도들도 두 사람씩 불러 열두 명을 다 모아 가버나움 북쪽의 산지로 가서 그들의 공식적인 임명식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이번에는 열 두 사도들 모두가 침묵을 지켰으며 베드로조차 묵상적인 분위기에 잠겨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때가 드디어 도래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아버지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면서 스승을 대표하는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개인적 헌신과 집단적 봉헌의 엄숙한 의식에 참여하려고 스승과 함께 떠나가고 있었다.

 

1. 예비적인 명령

 

정식 임명식 앞서서,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자신의 주위에 앉히고 말씀하셨다. "나의 형제들아, 천국이 도래하였다. 나는 너희들을 아버지께 천국의 대사로 바치기 위해 여기에 따로 불렀다. 너희들 중 일부는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 이 천국에 대한 나의 가르침을 회당에서 이미 들었다. 너희는 나와 함께 갈릴리 바다 근처 도시들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워 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천국에 대해 너희에게 좀더 가르치고자 한다.

 

"내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있는 자기 자녀들의 가슴속에 곧 세우시게 될 새로운 나라의 주권은 영구적인 것이다. 아버지의 신성한 뜻을 행하려는 이들의 가슴속에서는 그 분의 주권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나의 아버지는 유대인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이방인의 하느님도 아니시다. 동방과 서방의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와 너희와 자리를 함께 하겠지만, 아브라함의 많은 자녀들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통치하시는 아버지의 영의 이러한 새로운 형제신분에 참여하기를 거절할 것이다.

 

"천국의 능력은 집단의 힘에 있지도 않고 부(富)의 힘에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하늘나라의 거듭난 백성들, 하느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가르치고 가슴을 지배하는 신성한 영의 영광에 있다. 이것은 사랑으로 맺어지는 형제신분인데 그 안에서는 정의(正義)가 지배하며, 다음과 같은 함성소리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평화가 그리고 모든 이들 위에는 선한 뜻이 이루어 지이다. 너희들이 곧 선포하러 나가게 될 이 나라는, 모든 선한 이들의 바램이요, 온 땅의 소망이며 모든 선지자들의 지혜로운 약속들에 대한 성취이다.

 

"그러나 나의 자녀들아, 너희와 또한 너희를 따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는 모든 이들에게는 엄중한 시험이 앞에 가로 놓여있다. 오직 믿음만이 너희를 그 문으로 통과할 수 있게 해주겠지만, 너희가 신성한 교제를 나누는 진보적인 삶 속에서 계속하여 상승하기를 원한다면, 너희는 내 아버지의 영의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겠는데,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너희가 전할 말씀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것들을 찾는 동안에, 영원한 삶에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이 그것과 함께 너희에게 보장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는 힘을 밖으로 나타내면서 또는 보기 흉한 과시를 통하여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천국을 전파하러 나가게 될 때, '천국이 여기 있다' 또는 '천국이 저기 있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인데, 왜냐하면 너희가 전할 이 천국은 너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나라 안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 형제들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일단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고 나면, 너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며 아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리하여 이 천국은,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모든 이가 아버지를 알고 내가 선포하러 온 구원의 진리를 믿게 될 때까지, 이 세상에서 진보를 이룩할 것이다. 이미 천국이 가까이 이르렀으며, 여기 있는 너희들 중의 일부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주권이 큰 힘으로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 눈으로 지금 보고 있는 이것, 평범한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이 미약한 출발이, 결국에는 온 땅이 아버지를 찬양하는 소리로 가득 찰 때까지 배가(倍加)되고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희가 나와 함께 있음을 알고 천국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은, 너희가 전하는 말씀 보다는 오히려 너희가 행하는 삶을 통해서 이다. 그리고 나는 너희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육신으로 살면서 아버지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내가 떠났을 때 세상에서 나를 나타내는 엄숙한 책임감을 너희 혼속에 갖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신 후에 일어나셨다.

 

2. 성직 임명

 

예수께서는 천국에 관한 가르침을 방금 받은 사도들로 하여금 자기 주위에 원을 그리며 무릎을 꿇게 하셨다. 그런 다음 주(主)께서는 가룟 유다로부터 시작하여 안드레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도들 머리 위에 손을 얹으셨다. 그는 사도들을 모두 축복하신 후에, 손을 내 뻗어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리셨다:

 

"나의 아버지시여, 나의 사자(使者)들인 이들을 이제 당신 앞에 불러 모았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아온 것처럼, 저를 대신하여 내보내기 위해 이 세상의 자녀들 가운데에서 이 열 두 명을 택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저에게 임하시고 사랑하시는 것같이 저들을 사랑하시고 함께 임하시옵소서. 그리고 아버지시여, 다가오는 왕국의 모든 일을 저들의 손에 맡겼사오니, 저들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이라면, 저는 천국을 위한 저들의 일을 돕기 위해 이 세상에 좀 더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을 주심을 아버지께 다시 감사드리며, 아버지께서 제게 맡기신 일을 끝내는 동안 저들을 당신의 보호 아래 맡깁니다."

 

예수께서 기도를 마쳤을 때 사도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각자의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베드로까지도 얼마 동안 고개를 들어 주(主)를 바라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 명씩 나아가서 예수를 포옹했을 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천상존재들의 군단이 이 엄숙하고 성스러운 광경 -한 우주의 창조주께서 사람의 신성한 형제신분에 관한 일들을 인간 마음의 지시 아래에 맡기시는- 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그 곳은 깊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3. 성직 임명 설교

 

그런 다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 나라의 대사(大使)들이며,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진 특별한 사람들이 되었다. 이제 너희는 어두운 세상의 무지한 생명들 가운데에 있지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계몽(啓蒙)된 다른 시민들이 된 사람들이다. 너희들이 이 시간 이전처럼 사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이제부터는 좀더 나은 삶의 영광을 맛본 자로서 그리고 새롭고 더 나은 그 세계의 주권자의 대사로 이 세상에 다시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살아야만 한다. 제자보다는 선생에게 더 많은 것이 기대되며 종보다는 주인에게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천국 시민들에게는 이 세상이 규정하는 시민들보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려는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듯이, 너희는 이 세상에서 나를 대신하기 위해 택함을 받았으며 나의 대변인인 너희들에게는, 공간 세계들의 유한 생명체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반영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계시하는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 속에서 내가 예증하는 그 가르침들과 실행한 것들을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부과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좇아, 영적으로 포로된 자들에게는 자유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기쁨을, 병든 이들에게는 치료함을 선포하도록, 내가 너희를 보내겠다. 절망 속에 있는 나의 자녀들을 보거든, 너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어라:

 

"영적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천국의 보물이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義)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풍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청결한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외에도, 영적인 위로와 약속을 주는 이와 같은 말들을 내 자녀들에게 말해 주어라: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피 우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저희가 기쁨의 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나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내보낼 때,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다. 그러나 만일 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만들겠느냐? 그렇게 된 후로는 아무 쓸데없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숨겨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촛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촛대 위에 두며 이렇게 하여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게 한다. 너희의 빛을 사람 앞에 밝게 비쳐서 저희로 하여금 너희의 착한 행실들을 볼 수 있게 하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인도해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은, 나를 대신하게 하고 내 아버지의 대사로 일하게 하려는 것이며, 너희가 나가서 기쁜 소식을 선포할 때, 너희를 사자(使者)로 보내신 아버지를 신뢰하라. 불의에 대하여는 힘으로 저항하지 말고 너희 자신의 육신적인 힘에 의존하지 마라. 만일 너희 이웃이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그에게 돌려대라. 너희 가운데 있는 법에게 호소하기보다는 불의로 인한 고통을 기꺼이 받아라. 고통과 빈곤 속에 있는 모든 이들을 자비와 친절함으로 보살펴 주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을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라. 그리고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할 것이라고 너희들이 믿는 그대로, 너희 또한 그들에게 그렇게 행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들과 선한 사람들에게 고루 비치도록 해를 만드셨으며 마찬가지로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 모두에게 비를 내리신다. 너희는 하느님의 아들들이며 더욱이, 너희는 내 아버지 나라의 대사(大使)들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를 베풀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천국의 영원한 미래 속에서 너희도 온전해져라.

 

"너희는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임명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임명되었다. 이 세상에서의 너희 삶이 끝날 때에는, 너희 모두는 자비를 기대할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너희가 살아있는 동안 육신을 가진 너희의 모든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너희 눈 속에는 들보를 갖고 있으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 하나를 뽑고자 하는 잘못을 범하지 마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버려야, 눈이 밝아져서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뺄 수 있게 된다.

 

"진리를 분명하게 분별하고 두려움 없이 의의 삶을 살라. 그렇게 하면 너희가 나의 사도가 될 것이고 내 아버지의 대사가 될 것이다. 너희는: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모두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만일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한다면, 너희자신이 살아있는 진리의 빛 속에서 걸어가야만 한다. 하늘의 모든 일에 있어서 너희가 공정한 판단과 명철한 지혜를 보이기를 간곡히 권한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들을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너희 보물들을 발로 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거짓 선지자들을 대적할 것을 경고하겠는데,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다가오지만 속에는 탐욕스러운 이리들이 들어 있다.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더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선한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선한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마침내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는 데 있어서, 그 평가에 포함되는 것은 그 동기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시고, 그들의 내면적인 갈망과 진실된 목적을 심판하신다.

 

"천국 심판이 벌어지는 중대한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하였고,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희들에게,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겠으니 가짜 선생들인 너희는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을 듣고, 내가 아버지를 너희에게 나타내듯이,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나타내라는 임무를 진정으로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일에 참여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오는 넓은 입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이 때에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지고(至高)한 권능을 가진 자로서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해가 질 무렵에 산에서 내려왔지만, 예수께 질문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위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불리는 것은 예수의 복음이 아니다. 많은 유익한 가르침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예수께서 열 두 사도들에게 주신 임명식 훈시였다. 그것은 주(主)께서 감동적이고도 완전하게 자기 아버지를 나타내셨던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나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를 나타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일러준 그의 개인적인 명령이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다. 그러나 만일 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만들겠느냐? 그렇게 된 후로는 아무 쓸데없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예수 시대에는 소금이 귀중하였다. 그것은 돈으로 까지도 사용되었다. 현대어에서 '월급'이라는 말은 소금에서 유래되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낼 뿐만 아니라 방부제(防腐劑)의 역할도 한다. 소금은 다른 것에 맛을 더해주며,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봉사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숨겨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촛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촛대 위에 두며 이렇게 하여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게 한다. 너희의 빛을 사람 앞에 밝게 비쳐서 저희로 하여금 너희의 착한 행실들을 볼 수 있게 하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인도해라.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반면, "눈이 부시게" 하여 혼란시키고 좌절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빛을 매우 빛나게 하여 우리의 동료들로 하여금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새롭고도 경건한 길로 나아가도록 하라는 훈계를 받았다. 우리는 빛을 밝게 비쳐서 우리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사명까지도 이러한 생명의 빛을 전파하기 위한 효과적인 "반사체"로 활용될 수 있다.

 

강인한 성격들은 잘못된 행위를 범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기원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로 옳은 행동을 함으로부터 기원된다. 이타심(利他心)은 인간 위대함의 상징이다. 최고의 자아실현은 경배와 봉사에 의해 얻어진다. 행복하고유능한 사람은 잘못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올바른 행위에 대한 사랑에서 그 동기가 유발된다.

 

"너희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품성은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으며 변화하는 -성장하는- 것은 도덕적 성격이다. 현대 종교들이 범하는 주된 실수는 소극주의(消極主義)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베어져서 불 속에 던져진다." 도덕적 가치는 단순한 억압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에 복종하는- 으로부터 얻어지지 않는다. 종교적 생활에 있어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무가치한 동기이다. 종교는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을 계시하고 사람들의 형제신분을 향상시켜 나아갈 때에만 효과가 있다.

 

효과적인 생활철학은, 조화우주 통찰력과,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환경에 대한 개인의 감정적 반응의 총합(總合)이 결합되어 형성된다. 이것을 기억하라. 본능적인 충동들은 근본적으로 수정될 수 없는 반면, 그러한 충동들에 대한 감정적 반응들은 변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도덕적 본성은 수정될 수 있고 성격은 개선될 수 있다. 강인한 성격 속에서는, 감정적인 반응들이 통합되고 협조되며, 그렇게 해서 통일된 품성이 형성된다. 불완전한 통일은 도덕적 본성을 약화시키고 불행을 야기한다.


가치 있는 목표가 없는 삶은 정처 없고 무익한 것이 되며 많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열 두 사도들의 성직 수임식에서 행한 예수의 설교는 탁월한 삶의 철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수께서는 자기 사도들에게 경험적인 신앙을 행하도록 권고하셨다. 그는 단순한 지적인 동의, 쉽게 믿는 것 그리고 기존(旣存)의 권위에 의존하지 말라고 사도들에게 훈계하셨다.

 

교육은 우리의 본능적이고 유전적인 충동을 보다 나은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기법을 배우는(발견하는) 것이어야 하며, 행복은감정적 만족을 주는 이러한 강화된 기법들의 결과적인 총합(總合)이다. 행복은 환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즐거운 주위 환경은 행복에 많은 공헌을 할 수도 있다.

 

모든 필사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그렇게 온전하게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고 있으며, 그러한 달성은 "우주는 정말로 아버지 같다"라는 최종적 분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5. 아버지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

 

산상수훈에서부터 최후의 만찬 설교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는 따르는 무리들에게 형제의 사랑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더 나타낼 수 있도록 가르치셨다. 형제의 사랑은, 너희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황금률"을 충분히 이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예수께서 너희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너희 동료 필사자들을 그렇게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예수께서는 인류를 이원적(二元的)인 애정으로 사랑하신다. 그는 이 세상에서 두 가지 품성 -인간과 신성한 것- 으로 사셨다.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그는, 사람들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는 사람의 창조주이시며 자기 우주 아버지시다- 사랑하신다. 또한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께서는, 필사자들을 하나의 형제로  -그는 진실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랑하신다.

 

예수께서는 나타낼 수 없는 형제의 사랑을 자기 추종자들로부터 기대하시지 않았지만, 하느님과 같이 되도록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되도록- 그들이 심히 분투함으로써, 하느님이 당신의 창조체들을 대하듯이 그들도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도 사람들을 그렇게 -아버지다운 애정을 보여 주기 시작하는- 사랑하기 시작하게 되기를 기대하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들을 향한 이러한 권고의 말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이 새로운 개념을 심어주려고 노력하셨는데, 그러한 개념이 수많은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어떤 특정된 감정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主)께서는 이렇게 중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시면서, 단순한 형제의 사랑의 한계에 대비(對比)하여,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네 가지의 초월적이고도 지고한 반응들로 이루어진 후반부의 묘사에 대한 전주곡(前奏曲)으로 신앙의 네 가지 태도들에 대해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는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들, 정의에 굶주린 자들, 온유한 자들, 가슴이 청결한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영을 인식하는 그러한 필사자들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을 놀랍게 실행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성한 이타심의 그러한 차원을 달성하는 것이 기대될 수 있으며 애통하는 사람들로서도 그들은 자비를 베풀고, 평화를 증진시키고, 박해를 견디며,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 가지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힘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애정은, 형제의 애정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초월하는 헌신의 차원들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러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들에 대한 신앙과 사랑은 도덕적 품성을 강화시키고 행복을 창조한다. 공포와 분노는 성격을 약화시키고 행복을 파괴한다. 이 감격적인 설교는 행복이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1. "영이 가난한 자들 -겸손한 자들- 은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당장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갈망이 충족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행복의 증진이라는 수확을 나중에 거두기 위해 자아 부정(否定)이라는 씨를 기꺼이 뿌린다. 예수 당시와 그 이후로, 행복은 재산의 소유라는 관념과 너무 흔히 연관되어 왔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일화에서, 바리새인은 영적인 풍요 -자기중심적- 를 느꼈고, 세리는 "영적으로 가난함" -겸손- 을 느꼈다. 전자(前者)는 거만하였고, 후자(後者)는 배우기를 원하고 진리를 추구하였다. 영이 가난한 사람은 영적인 풍요에 대한 갈망 -하느님에 대한- 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 탐구자들은 먼 미래의 보상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지금 보상을 받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속에서 천국을 발견하며, 그러한 행복을 지금 체험한다.

 

2.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풍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들만이 언제나 정의에 굶주릴 것이다. 오직 겸손한 자들만이 신성한 권능과 영적인 힘을 추구한다. 그러나 영적 자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일부러 영적 금식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육체적 금식은 4, 5일이 지나면 위험해지고, 그 사람은 음식에 대한 모든 욕구를 잃기 쉽다.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장기간의 금식은 배고픔 자체를 없애는 경향이 있다.

 

경험으로 얻는 의는 기쁨이지, 의무가 아니다. 예수의 정의로움은 역동적(力動的)인 사랑 -아버지의 애정과 형제의 애정- 이다. 그것은 부정적이거나 하지 말라는 식의 정의로움이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부정적인 것,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계속 바랄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에게 이들 무상의 행복에 관한 처음 두 가지를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성숙한 마음은 그 중요성들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온유한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온유함은 두려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께 협조하려는 사람의 태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이다. 그것은 인내와 참음을 포옹하며 합법적이고 우호적인 우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앙에 의해서 동기가 부여된다. 그것은 신성한 인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모든 유혹들을 물리친다. 예수께서는 유란시아에서 가장 이상적인 온유한 사람이셨으며 광대한 하나의 우주를 상속 받으셨다.

 

4. "마음이 청결한 자는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순결은, 의심과 복수심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부정적인 본질특성의 것이 아니다. 순결을 논함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인간의 성적(性的) 태도들을 전적으로 다루려는 의도는 없으셨다. 그는 사람이 자기의 동료 사람에게 가져야 할 신앙,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해 가지는 신앙, 그리고 아버지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같이 그들의 이웃들을 사랑하게 하는 신앙을 더 많이 고려하셨다. 아버지의 사랑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며 악을 묵과하지 않지만, 경멸과는 항상 거리가 멀다. 아버지의 사랑은 한 가지 목적만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항상 찾는데 그것이 진정한 부모의 자세이다.

 

하느님을 보는 것 -신앙을 통해서- 은 참된 영적 통찰력을 얻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영적 통찰력은 조절자의 안내를 강화시키며, 그리하여 결국에는 하느님 의식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너희들이 아버지를 알게 될 때, 너희 자신들이 신성한 아들관계임을 확신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육신의 형제들을 형제로서 -형제의 사랑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아버지로서 -아버지의 애정- 그들을 점점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교훈은 어린아이에게도 가르치기 쉽다. 아이들은 본성적으로 쉽게 믿으며, 부모들은 이들의 단순한 신앙을 잃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모든 속임수를 피하고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삼가라. 아이들이 자신의 이상적인 인물들과 생업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현명하게 도와주어라.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인간의 모든 투쟁들의 주된 목적 -숙달, 신성한 달성까지도- 에 대하여 계속해서 가르치셨다. 그는 항상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그는 12사도들에게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권고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이미 가치 있는 성취로 이루어졌어야 했으며 형제의 사랑의 성취를 나타냈어야 했다. 그는 오히려 사도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형제의 사랑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의 네 가지 지고한 반응들을 지적함으로써 이것을 설명하셨다.

 

1.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상식이나 최선의 논리에서는, 행복이 애통함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적이거나 혹은 허식적인 애통함을 의미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정이 많은 감정적 태도를 암시하셨다. 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부드러움이나 다른 감정적 느낌이나 육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가장 큰 실수다. 연민의 정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가치 있는 속성이 된다. 남자다워지기 위해서 무정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용감한 남자가 되기 위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애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애통하는 자였던 모세는 삼손과 골리앗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었다. 모세는 최고의 지도자였지만 그는 또한 온유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인간욕구에 민감하고 이에 반응하는 것은, 진정하고 영구한 행복을 창조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런 온화한 태도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의심의 악영향으로부터 혼을 보호해준다.

 

2.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비는, 가장 높고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진실한 우정 -자애로움- 을 의미한다. 때로는 자비가 수동적일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비는 능동적이고 역동적 -지고한 부성애(父性愛)- 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아무리 여러 번 용서하여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흠이 없는 자녀를 고통으로부터 풀어주고자 하는 충동은 당연한 것이다. 아이들이 현실을 깨달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대개 친절하고 동정심이 있게 된다.

 

3. "화평케 하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저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평화가 아닌 무력으로 해방시켜줄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는 평화는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재판과 박해에 직면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나의 평강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희는 가슴에 파란이 일게 하거나, 두려워하지도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파괴적인 갈등을 미리 방지하는 평화이다. 개인적 평화는 품성을 집대성한다. 사회적 평화는 두려움과 탐욕과 분노를 막는다. 정치적 평화는 인종적 반목과 민족적 의심 그리고 전쟁을 막는다. 화평케 하는 것이 불신과 의심을 막는 길이다.

 

아이들에게는 평화를 이루는 자의 역할을 쉽게 가르칠 수 있다. 그들은 단체 활동들을 즐기며 함께 놀기를 좋아한다. 예수께서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잃게 될 것이지만, 자기 목숨을 버리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4.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은 행복할 것이니,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대항하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평화 뒤에는 박해가 종종 따라온다. 그러나 젊은이들과 용감한 어른들은 어려움과 위험을 결코 피해 가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은 이러한 모든 일들 -형제의 사랑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들- 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박해의 최종적 수확물은 언제나 진보였다.

 

아이들은 항상 용기 있는 도전에 반응한다. 젊은이는 언제나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은 일찍부터 희생마음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에서의 지극한 행복은 법 -윤리나 의무- 에 기반을 두지 아니하고 신앙과 사랑에 그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악에 대하여 선으로 보답하는 -불의에 대하여 선으로 갚아주는- 일을 기뻐한다.


6. 성직 임명이 있던 날 저녁

 

일요일 저녁, 가버나움 북쪽의 산지로부터 세베대의 집에 도착한 예수와 12사도들은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그 후에 예수께서 해변을 따라 산책하시는 동안, 사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회의를 마친 후에 쌍둥이 형제가 작은 모닥불을 피우는 동안 안드레는 예수를 찾아 나섰으며, 예수를 만나게 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주(主)님, 내 형제들이 천국에 대한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조금 더 지시를 주실 때까지는 이 임무를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원에 있는 우리들에게 오셔서 당신의 말씀의 뜻을 우리가 좀 더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하는 청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안드레와 함께 나머지 사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셨다.

 

정원으로 들어가신 후에 그는 사도들을 주위에 모이게 하시고 그들에게 다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옛날 방식으로 새로운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아야 하지만, 내가 분명히 말하겠는데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 너희는 어린아이와 같이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기꺼운 마음으로 나의 가르침을 믿고 또한 하느님을 믿어야만 한다. 천국의 새 복음은 현재 있는 것에 맞도록 만들어질 수 없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과 이 세상에서의 그의 사명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율법과 선지자들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이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시키려고, 발전시키고 명백하게 밝히려고 왔다. 나는 율법을 어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들 가슴의 돌판 위에 새 계명을 새겨 주려고 왔다.

 

"나는 너희에게 구제(救濟)와 기도와 금식으로 아버지의 은혜를 구하려고 하는 이들보다 그 의(義)를 앞지를 수 있는 어떤 의를 요구한다. 만일 너희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사랑과 자비와 진리로 이루어진 정의로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르려는 신실한 갈망- 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 "주(主)님, 새 계명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그 새 길을 보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이미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왔다.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그러나 나는 행위의 뒤에 감추어진 동기를 본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자기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누구든지 유죄 판결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자기 마음에 증오를 품고 복수를 계획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너희는 동료들을 그들의 행위에 의해서 심판할 수밖에 없겠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그 의도에 의해서 심판하신다.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학자들의 말을 이미 들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누구든지 이미 자기 가슴속에서 그녀를 간음하였다. 너희는 사람을 오직 그 행위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내 아버지께서는 자기 자녀의 가슴을 감찰하시고 그들의 의도와 실제적인 갈망으로 그들을 자비롭게 판결하신다."


예수께서 다른 계명에 대해 계속 논의할 마음을 가졌지만, 야고보 세베대가 중간에 끼어들어 물었다: "주(主)님, 저희는 사람들에게 이혼(離婚)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모세가 가르친 대로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해도 좋다고 허락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이 물음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법(法)을 제정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계몽시키러 왔다. 나는 이 세상나라를 개혁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설립하러 왔다. 오늘날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다른 세대에는 맞지 않을 정부의 규율이나 무역 또는 사회적 태도를 가르치려는 유혹에 응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나는 단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영을 해방시키며 혼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이혼의 문제에 관한 이 질문에 대답한다면, 모세는 이러한 일을 허락했으나 아담의 시대에 그 동산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

 

잠깐 동안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게 하신 후, 예수께서는 말을 계속하셨다. "너희는 모든 필사자의 행위에는 두 가지 관점들 -인간 관점과 신성한 관점 육신적인 방법과 영적인 방법 시간적인 평가와 영원에서의 관점- 이 있음을 항상 인식해야만 한다." 사도들이 비록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가르침을 통해 정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항상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가르침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려고 한다. 내 가르침의 정신을 빨리 식별하지 못한다. 다시 상기시키는데 너희는 나의 사자(使者)들임을 명심하고 내가 영적으로 나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너희의 삶도 그렇게 살도록 은혜를 입었다. 너희는 나의 개인적인 대표자들이지만 모든 이들이 모든 면에서 너희가 행하는 것처럼 살리라고 기대하는 잘못을 범하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내가 너희 외에도 다른 무리의 양떼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또한 그들에게 내가 매인바 되어 끝까지 필사자의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도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모범을 보여야 함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자 나다니엘이 물었다. "주(主)님, 우리가 공의를 위해 양보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모세의 율법은 말하기를,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했는데,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악을 선으로 갚아라. 나의 사자들은 사람들과 분투하여서는 안 되며 모든 이에게 온유하게 대해라. 당한 것을 그대로 갚는 것은 너희의 법칙이 아니다. 사람의 규율에는 그러한 법이 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항상 자비로 심판하며 사랑으로 행하라. 그리고 만일 너희가 이 말씀대로 행하기 어렵거든 지금이라도 되돌아가거라. 만약 사도가 되기 위한 요구사항이 너희에게 너무 벅차다면, 너희는 덜 엄격한 제자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러한 충격적인 말씀들을 듣고 사도들은 잠시 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모임을 가졌으나, 그들은 곧 다시 돌아왔으며,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다. "주(主)님, 우리는 당신과 함께 가겠으며 우리 중 어느 하나도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별도의 대가(代價)를 치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잔을 마시겠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제자가 아닌 사도가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기꺼이 책임감을 갖고 나를 따라라. 너희의 선행을 은밀히 행하되 너희가 선행을 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그리고 기도할 때에 홀로 따로 가서 하며, 헛된 반복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구하기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아버지께서 이미 알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라. 그리고 금식할 때에 다른 이에게 보이도록 슬픈 기색을 내지 마라. 나의 선택된 사도로서 이제 천국의 봉사를 하러 따로 나갈 때에 너희를 위한 보물을 지상에 쌓아두지 말고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 왜냐하면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가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따라서 만약 네 눈이 관대하면 너의 온 몸이 빛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눈이 이기적이면 온 몸이 어두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있는 빛이 어둠으로 변한다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러자 도마가 예수께 자기들이 "계속하여 모든 것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지"를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아, 우리가 납득함으로 뭉친 한 가족으로 살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너희는 위대한 사명을 부여 받았으니, 나는 너희가 전심을 다 바쳐 봉사하기 바란다. 너희는'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을 알고 있다. 너희는 하느님께 진지하게 경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재물을 전심으로 섬기지 못한다. 하늘나라의 일에 기탄없는 협력을 하려고 애쓴다면, 너희 자신의 삶을 걱정하지 말며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자진해서 일하는 손과 진실한 가슴은 굶주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너희의 모든 힘을 천국의 일에 바치고자 준비했으므로,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필요함을 못 본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고 너희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한 날의 수고는 그 날로 족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형제들아, 너희는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니 내일의 일을 위해 숙소로 가서 쉬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눈에서는 잠이 떠났다.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주(主)께 간청하였다. "저는 잠깐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내가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불안한 영 때문이며, 어쩌면 주(主)로부터 꾸짖음을 당할 지도 모르지만, 주(主)와 단 둘이서라면 달갑게 받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야, 나를 따라 와라."라고 말씀하며 집안으로 그를 데리고 가셨다. 주(主)를 만나고 돌아온 베드로가 기분이 한결 고조된 것에 힘을 얻어 야고보도 예수와 말씀을 나누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시간까지 다른 제자들도 계속해서 주(主)와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다. 잠을 자고 있던 쌍둥이 형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와의 면담을 끝내자, 안드레가 예수께 가서 물었다. "주(主)님, 쌍둥이 형제는 뜰에 있는 불 옆에서 자고 있는데 저들도 선생님과 면담을 하겠는지 물어보러 깨울까요?" 그러자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안드레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잘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라." 이제 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7. 성직 수여식 다음 주간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사도들이 예수와 함께 늦은 아침 식사를 들기 위해 모였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제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믿는 자들을 가르칠 너희의 임무를 시작해야 한다. 예루살렘으로 떠날 준비를 해라." 예수께서 이렇게 말하자 도마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주(主)님, 지금쯤은 우리가 그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우리가 이 위대한 사업을 성취할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우리가 천국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며칠만 더 여기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는 다른 사도들 모두도 도마와 같은 생각인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자 우리는 안식일까지 여기 머물기로 하겠다."

 

여러 주간들 동안 호기심 있는 구경꾼들을 포함하여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작은 집단들이  예수를 만나러 벳새다로 왔다. 이미 예수에 관한 소식은 널리 지방에까지 퍼졌으며 호기심에 찬 집단들이 두로, 시돈, 다마스커스, 케자리아, 그리고 예루살렘 같은 먼 곳의 도시로부터 왔다. 그때까지는 예수께서 그들을 맞아들여 천국에 대해 직접 가르치셨으나, 이제는 이 일을 사도들에게 맡기셨다. 안드레는 사도들 중에서 한 명씩을 택하여 방문자들을 맡아보게 했으며 가끔은 사도들 모두가 함께 이 일을 맡아보았다.

 

그들은 이틀 동안 일을 했는데,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늦게까지 사적(私的)인 모임을 가졌다. 삼 일째 되는 날,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고기를 잡거나 기분전환을 하거나 혹은 가족을 방문하고 오라"고 말씀하며 그들을 보내시고, 자신은 세베대와 살로메를 방문하셨다. 그들은 나머지 3일 동안의 가르침을 위해 목요일에 돌아왔다.

 

이 연습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세례이후의 자신의 지상 사명의 두 가지 큰 동기들에 대해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1.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현시하는 일.


2. 사람들로 하여금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 - 그들이 지고자의 자녀들임을 신앙으로 깨닫는 일.

 

이러한 한 주간 동안의 여러 가지 경험이 사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몇몇 사도들은 자신감이 너무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안식일이 지난 날 밤인 마지막 저녁 모임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는 예수께 나아와 말했다. "우리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전하러 가게 하십시오." 말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 지혜가 너희의 열정과 비슷한 정도가 되며 너희 용기가 너희 무지를 메우기 바란다."

 

사도들은 예수의 가르침의 많은 부분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지냈던 즐겁고 아름다운 삶의 중요성은 이해하였다.

 

8. 목요일 오후 호수에서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아셨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다른 동료들에게 자신의 사상들을 분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기를 바라시면서, 그들에게 얼마간의 특별한 가르침을 더 주기로 결심하셨다. 그는 사도들이 영적 천국의 특성을 다소 이해하면서도, 새로운 영적 가르침을 세상의 일시적 권세인 다윗의 왕권을 되찾고 이 지상에서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이전의 개념에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끊임없이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목요일 오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배를 타고 호수에 나가 천국의 문제들에 대해 좀 더 설명하셨다. 그것은 수많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장장 네 시간에 걸친 수업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은, 시몬 베드로가 그 날 오후에 배웠던 것에 대해 그 다음날 아침에 자기 형 안드레에게 전했던 내용을 가장 유익하게 재구성하여 요약한 것이다:

 

1.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보호하심을 믿으라고 가르쳤는데, 이는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날 오후에 오래된 히브리 속담에 동의하면서 인용하셨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그는 자신의 가르침들에 대해 충분한 해석이 되도록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 주셨다. 아버지를 신뢰함에 대한 그의 교훈들은 현대나 또는 어떤 다른 시대에 있어서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상황에 의해 판단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의 가르침은 모든 시대와 모든 세상에 있어서 하느님과 가깝게 사는 삶이라는 이상적인 원리를 포옹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 세 사람들에게 사도의 신분과 일반 제자의 신분으로부터 요구되는 점들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밝혀 주셨다. 그리고 그때에도 예수께서는 12사도들이 분별력과 선견지명을 발휘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 그가 금하신 것은 미리 생각함이 아니라 걱정함과 근심함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능동적이고 민첩하게 순종할 것을 가르치셨다. 검약과 검소에 관한 그들의 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오직 목수였으며 배 제작자였고 어부였던 자신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12사도들에 대한 자신의 신중한 구성만을 그들에게 환기시키셨다. 그는 세상이 그들에게 적이 아니고 하느님의 자녀들과 함께 일하면서 신성한 섭리를 이루는 환경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고자 하셨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무저항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관습을 납득시키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으셨다. 그는 자기 자신의 방어를 절대적으로 거부하셨으며, 사도들도 그렇게 행해 준다면 그가 기뻐하실 것임이 그들에게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들에게 악에 저항하거나 불의나 혹은 부상에 대항해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잘못된 일에 수동적으로 참으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는 그날 오후에, 악을 행하는 자와 범죄자들의 사회적 처벌을 인정하며 정부가 때때로는 사회질서 유지와 공의의 실행을 위해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그는 사도들에게 보복이라는 악의 실행을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고하셨으며 보복,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는 원한을 품는 것도 개탄하셨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사고방식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적이나 개인적인 복수의 모든 개념에 찬성하지 않았고, 이러한 문제들을 한편으로는 정부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판단 아래에 맡기셨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정부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 세 사람들에게 분명히 밝히셨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그 때까지의 자신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 인간의 형제신분이라는 도덕적 요구들을 기억하라.


악의 무익함 - 잘못된 것은 복수에 의해 고쳐지지 않는다. 악의 무기로 악과 싸우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신앙을 가져라 - 신성한 공의와 영원한 선행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2. 정치적 태도 :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 당시 로마정부와 유대민족 사이에 존재하던 긴장된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신중을 기할 것을 경고하셨으며 그들이 이러한 어려운 관계에 어떤 식으로든지 개입하는 것을 금하셨다. 그는 언제나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치라"고 말씀하면서, 자기를 해치려는 이들의 정치적 함정을 항상 조심스럽게 피하셨다. 그는 새로운 구원의 길을 확립하는 자신의 사명에서 옆길로 빠지기를 원치 않으셨으며 그 일 이외의 다른 어떤 일에도 자신의 주의를 돌리기를 거부하셨다. 개인적 삶에 있어서는, 모든 법과 규칙을 항상 준수했으며, 공적인 가르침에서는 시민적, 사회적, 경제적 영역을 무시하셨다. 그는 자신이 오로지 사람들의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영적 삶의 생활의 원리들에만 관심을 둔다고 세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정치적 개혁가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을 재조직하러 오신 것이 아니었으며 만약 그가 그랬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시대와 그 세대에만 적용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삶의 방법을 보여주셨으며, 어떤 세대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문제에 대하여 예수께서 사셨던 삶을 적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알게 되는 것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을 어떤 정치나 경제의 이론 또는 사회나 산업제도와 동일시하려는 오류를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된다.

 

3. 사회적 태도 : 유대의 랍비들은 오랫동안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 대해 논쟁해 왔다. 예수께서는 능동적이며 자발적인 친절, 이웃을 진실 되게 사랑함으로써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이웃에 포함시키고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만드는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오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서, 예수께서는 군중이 아니라 단지 개개인에게 관심이 있으셨다. 예수께서는 사회학자는 아니었지만 모든 형태의 이기적 고립을 없애려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는 순수한 동정심인 연민의 정을 가르치셨다.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비에 사로잡힌 아들이셨으며 연민의 감정은 바로 그의 본성이었다.

 

주(主)는 사람들이 친구들에게 식사 대접하는 것을 절대로 금한 적이 없으셨지만,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는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확고한 공의감을 갖고 계셨지만 그것은 항상 자비로 조절되어 있었다. 그는 사도들에게 사회의 기식자(寄食者)들이나 헌금으로 살아가는 전문적으로 헌금을 밝히는 자들에게 이용당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사회에 대한 의견 발표라고 하기에 가장 가까웠던 말씀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무분별한 친절이 많은 사회적 병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셨다. 다음날 예수께서는 사도들의 재산은 예수 자신의 요구나 두 사도의 공동 신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제금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유다에게 확고하게 지시하셨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항상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진하라"고 말씀하곤 했다. 모든 사회적 상황 속에서 절제와 인내와 용서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인 듯이 보였다.

 

예수의 생활철학 -여기서 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에서 영구적인 최고의 중심은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여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셨으며, 한편으로는 조상들을 과잉 숭배하는 유대인의 전통을 고치려고 노력하셨다. 그는 가정생활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의 의무라고 하셨지만, 가족관계가 신앙적 의무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는 가족이 현세적인 관습이고, 죽음 이후에는 적용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족이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방해가 되자, 주저 없이 가족을 포기하셨다. 그는 사람의 새롭고도 폭넓은 형제신분 -하느님의 아들들- 을 가르치셨다. 예수 시대의 팔레스틴과 로마제국 전역에서는 이혼이 성행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결혼과 이혼에 관한 법들을 규정하기를 거듭 거부하셨지만,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은 대부분 이혼에 관한 강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요한 마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신약 성서의 저자들이 이혼에 대해 더욱 엄격하고 진보된 개념들을 고수하였다.

 

4. 경제적 태도 :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배운 대로 일하셨고 사셨으며 거래하셨다. 비록 그가 부(富)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해 자주 주의를 기울이긴 하셨지만, 경제 제도의 개혁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어떤 개선책도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 세 사람들 에게, 자신의 사도들로서는 재산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면서 단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분배에 대해 말씀했을 뿐, 부와 재산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시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 공의와 산업적 공평성의 필요를 인식하셨지만, 그것의 달성을 위한 아무런 규율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열 두 사도들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에게는 한 번도 세상의 재물을 버리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의사였던 누가는, 사회적 평등에 강한 신념을 가진 자였으며, 예수의 많은 가르침들을 자신의 개인적 믿음과 일치시켜 해석하였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공동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개인적으로 지시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그러한 문제에 관한 어떤 종류의 말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탐욕에 대해 자주 경고하시면서, "사람의 행복은 그의 물질적 소유의 풍족에 있지 않다"고 선언하셨다. 그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그는 재산의 소유에 대해 정면 공격을 하지 않으셨지만, 영적 가치가 선행된다는 영원한 기본 원칙을 강조하셨다. 그는 자신의 후반기 가르침에서 대중에게 설교하실 때에 수많은 비유를 통하여 유란시아의 삶의 관점의 많은 잘못된 점을 고치려고 애를 쓰셨다. 예수께서는 절대로 경제이론을 정립하려는 의도가 없으셨으며 각각의 시대가 자신들의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만 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만일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늘날 이 땅에 살고 계시더라도, 그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분쟁 속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으실 것이므로 대부분의 선남선녀들이 실망할 것이다. 그는 너희들로 하여금 순수하게 인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갖출 수 있도록, 너희들의 내적인 영적 생활을 완전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시면서 홀로 따로 숭고하게 남아 계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이들을 하느님을 닮게 만들고 이 하느님의 자녀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동정심으로 바라보며 기다리실 것이다. 그가 비난하신 것은 부가 아니라 그 부가 그것을 신봉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이었다.  이 목요일 오후에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사도들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5. 개인적인 종교 : 그의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도 예수의 삶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더 잘 납득해야만 한다. 그는 유란시아에서 완전한 삶을 사셨고, 그의 고유한 가르침들은 그 삶이 직접적인 경험으로 가시화(可視化)될 때에만 납득될 수 있다. 아버지의 신성한 특성과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예수의 사도들에 대한 가르침과 대중에 대한 설교가 아니라, 그의 삶이다.

 

예수께서는 히브리의 선지자들이나 그리스의 도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공격하시지 않았다. 주(主)께서는 이들 위대한 선생들의 많은 좋은 말들을 인정하셨지만, 그는 부가적 (附加的)인 어떤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사람 의지의 자발적인 일치"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단지 종교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고 오직 영적 자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하나의 종교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한 번만이라도 그를 바라 볼 수 있었다면, 예수께서는 이 세상일들에 위대한 경험을 한 진정한 하나의 사람이셨음을 단번에 알아 차렸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예수의 가르침들은 기독교 시대의 여러 세기들을 거치면서 비뚤어지고 잘못 전해져 왔으며 너희들도 역시 주(主)의 온유함과 겸손함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목표했던 것은 뛰어난 자아 존중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져야만 진정으로 높임을 받는다고 충고하셨으며 그가 진정으로 목표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겸손이었다. 그는 성실함 -순수한 진심- 에 가장 큰 가치를 두셨다. 성실성은 그가 품성을 평가하는 기본 덕목이었으며, 반면에 용기는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그의 표어였고, 인내는 그의 이상적인 품성의 힘을 지탱해 주는 것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종교적 용기, 담력, 영웅적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께서 자신의 대표자로서 소박하고 씩씩하며 대부분 어부 출신인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하심 이유이다.

 

예수께서는 당시의 사회적 병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셨으며 도덕적 비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진정한 덕을 갖춘 적극적인 선생이셨다. 그는 가르치실 때에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셨으며 악을 선전(宣傳)하기를 거부하셨다. 그는 도덕의 개혁가도 아니셨다. 그는 인간의 감각적 충동이 종교적 비난이나 법적 제재에 의해서 억제되지 않음을 잘 아셨으며 사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셨다. 그의 몇 가지 경고는 주로 자만심, 잔인함, 억압, 위선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요한처럼 격렬하게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는 많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정직한 가슴을 소유하고 있음을 아셨으며 그들이 종교적 전통에 얽매어 있음을 납득하셨다. 예수께서는 "먼저 좋은 나무를 심는 것"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다. 그는 그 세 사도들에게, 자신은 몇 가지의 특정한 선행들에게 가치를 두지 않고 전체의 삶에 가치를 둔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 날의 가르침에서 요한이 터득한 한 가지는, 예수의 종교 핵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르려는 데서 동기를 가진 품성과 더불어, 연민의 정을 가진 성격의 성취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선포할 복음이 진실로 전체 인류에 대한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다. 그는 이 생각을 나중에 바울에게 전했는데, 바울은 그것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두 번째 아담"이라고 칭하는 기독교 교리를 형성하였다.

 

야고보는 예수께서 그의 지상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완성된 하늘나라에서 이미 시민들이 된 것처럼 살게 되기를 원한다는 감격적인 진리를 깨달았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셨고 사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셨다. 그는 사도들에게 제자들과 신도들을 일정한 틀에 짜 맞추지 말라고 끊임없이 훈계하셨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고 분리된 한 개인으로서 각각의 혼이 각자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 허용되기를 원하셨다. 베드로의 많은 질문 중의 하나에 대답하시면서 주(主)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람들이 자유로워져서 갓난아이처럼 다시 새롭고 복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예수께서는 진정한 선행은 무의식중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자선을 행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항상 강조하셨다.

 

세 사도들은 이 날 오후, 주(主)의 종교에는 영적 자아 성찰(省察)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없음을 깨닫고 매우 놀랐다. 예수 시대를 전후하여 모든 종교들에서, 심지어 기독교에서도, 의도적 자아 성찰을 신중하게 제안한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종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예수의 삶의 철학은 종교적 자기반성을 동반하지 않는다. 이 목수의 아들은 세워 가는 특성에 관하여 가르치신 적이 없으며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선언하시면서, 자라 가는 특성에 대해 가르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만하는 이기주의에 대한 예방책으로서 자아 분석을 배척하여야 한다는 그 어떤 말도 결코 하신 적이 없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권리는 신앙, 개인적 신념에 달려 있다. 하늘나라로 가는 점진적인 상승에 참여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代價)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서라도 사려는 비싼 진주와 같다.

 

예수의 가르침은 약한 자나 노예들만을 위한 하나의 종교가 아니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교이다. 그의 종교는 결코 신조나 신학적 규칙으로 구체화되지 않았으며(그의 시절 동안에), 그는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삶과 가르침은 온 세상의 모든 세대에게 영적 인도와 도덕적 가르침에 적합한 영감을 주는 이상적인 유산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그리고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예수의 가르침은 모든 종교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서서, 그들 모두에게 살아있는 희망이 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종교가 사람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유일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으며 그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열 두 사도들에게는 종교가 그들의 유일한 일이라고 단언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도들에게, 그들이 진정한 문화를 추구하는데 방해가 될 그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으셨으며 오직 전통에 얽매여 있던 예루살렘의 종교적 학파들로부터만 멀리 떨어지셨다. 그는 개방적이며, 가슴이 넓고, 박식했으며, 참을성이 많으셨다. 자의식(自意識)이 강한 연민은, 정의(正義)로운 삶을 사는 그의 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主)는 그 당시 또는 다른 세대의 비(非)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해결책도 제공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실체에 이르는 영적 통찰력을 개발하고 삶의 기원으로 시작되도록 자극하기를 원하셨으며 인류의 잠재적이고 영원한 영적 요구에만 전적으로 관심을 두셨다. 그는 하느님과 똑같은 선을 보여주셨다. 그는 사랑 -진, 선, 미- 을 신성한 이상이며 영원한 실체로 찬양하셨다.

 

주(主)는 사람 속에 새로운 영, 새로운 의지  -진리를 아는 새로운 힘을 주고 동정심을 경험하며 선을 선택하는- 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해지려는 영원한 충동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려는 의지를 사람 속에 창조하기 위해 오셨다.

 

9. 봉헌식이 있던 날

 

그 다음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자기 사도들과 함께 헌신의 시간을 가지셨고, 그들에게 성직수임식을 행했던 산지(山地)로 되돌아가셨으며 그곳에서 길고도 훌륭한 감격적인 사적인 격려 말씀을 하신 후에, 열 두 사도들의 봉헌식을 엄숙하게 거행하셨다. 이 안식일 오후에, 예수께서는 산허리에서 사도들을 자기 주위에 모아놓으시고, 자신이 세상에 그들만 남겨두고 떠나야만 할 그 날을 대비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 그들을 맡기셨다. 이 때에는 더 이상의 새로운 가르침은 없었고, 단지 환담과 교제를 나누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실시되었던 성직 수임식 설교의 많은 특성들을 회고하셨고, 그런 다음 제자들을 한 사람씩 앞에 불러서 그들이 이제 자신의 대리자로 세상에 나아가도록 임명하셨다. 주(主)의 봉헌식의 훈시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 나아가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 영적으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억눌린 자를 위로하며, 고통 받는 자를 보살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돈이나 여벌의 옷을 지니지 말라고 충고하시면서, "수고한 사람은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진하라. 그러나 주의하라. 왜냐하면 너희 적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리들과 총독들 앞에 불려갈 것인데, 이것은 너희가 이 복음을 믿기 때문이며, 너희 자신이 그들에게 나를 위한 증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너희를 재판관 앞에 끌어다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내 아버지의 영이 너희 안에 있어서, 그때에 그가 너희를 통해 말할 것이다. 너희들 중 일부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며, 너희가 이 땅에 하늘나라를 세우기 전에 이 복음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나의 영이 너희보다 먼저 세상 모든 곳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니, 먼저 유대인들에게 가고, 그런 후에 이방인들에게로 가거라."

 

그들은 산에서 내려와 함께 세베대의 집으로 돌아갔다.

 

10. 봉헌식 이후의 밤

 

그 날 밤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집안에서 가르치셨는데, 그들이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할지를 가르치기 위해 장시간 이야기를 하셨다. 제자들은 정의로움 -구원- 을 얻는 방법으로써 어떤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종교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천국에서는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가 의롭게 되어야만 한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하여,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게 되라."고 하셨다.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자신의 사도들에게 주(主)가 말씀하는 동안 내내 설명하셨던 요지는, 자기가 세상에 가지고 온 구원은 오직 신앙과 단순하고도 진실한 신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은 옛 생활방식을 참회하는 회개의 세례를 설교했다. 그러나 너희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는 세례를 선포하려는 것이다. 그러한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만 회개를 권고하지만, 그러나 이미 하늘나라로 들어갈 진실한 입구를 구하는 이들에게는, 문을 활짝 열어 하느님의 자녀들의 즐거운 친교 안으로 그들을 들여보내라." 그러나 갈릴리 어부 출신인 그들로서는, 천국에 있어서는, 신앙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세상 일상 삶 속에서 정의로움을 행하는 것보다 앞서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도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하나의 큰 고충은, 그들이 종교적 진리의 높은 이상과 영적 원리를 개인적 행동의 구체적인 규정으로 바꾸려는 경향이었다. 예수께서는 혼의 태도에 대한 아름다운 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셨지만, 그들은 이러한 가르침들을 개인적 행동에 있어서의 규칙들로 해석하려고 계속 고집하였다. 여러 번에 걸쳐서, 그들이 주(主)가 한 말을 기억할 때, 그들은 그가 말로 하지 않은 것들은 거의 틀림없이 잊어버렸다. 그러나 예수 자신이 가르침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들은 점진적으로 그의 가르침에 동화되었다. 그의 언어로 행한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사도들은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점진적으로 깨달았다.

 

사도들은 자기들의 주(主)가 멀리 퍼져있는 우주의 모든 세상들의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영감의 삶에 관계하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깨닫지 못하였다. 때때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그가 일은 이 세상에서 하시지만 그 일은 그가 창조한 방대한 다른 세상들도 위해서라는 점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의 지상 일생을 유란시아에서 사셨던 것은 이 세상의 남녀들에게만 개인적인 육신의 삶의 모범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세상들의 모든 필사자들에게 고차원의 영적이고 영감적인 이상(理想)을 창조하려는 것이었다.

 

그 날 저녁에 도마가 예수께 물었다. "주(主)님, 우리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잘못된 예언에 속지 말며 돼지 앞에 우리의 진주 목걸이를 던지지 말라고도 경고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솔직히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당신의 가르침을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더 참아야 하겠느냐! 너희는 내가 가르친 것을 언제나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했을 때에는, 쉽게 속아 넘어가며, 단지 쉽게 믿으며, 너희 눈에 즐겁게 비취는 낯선 이를 성급히 신뢰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그 설명에 서 너희에게 바랐던 것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였다. 너희는 자녀이고 그리고 너희가 들어가고자 구하는 곳은 너희 아버지의 나라인 것이다. 모든 정상적인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는 납득과 사랑의 관계를 보증해 주는 본능적인 애정이 있으며,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얻기 위해 흥정 하려는 모든 계획을 영원히 배제한다. 그리고 너희가 전하려고 하는 그 복음은, 바로 이 영원한 자녀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그러한 신앙과 깨달음에서 자라 나오는 구원과 관계된다.

 

예수의 가르침의 한 가지 특징은, 하느님께 대한 개인의 사적(私的)인 관계 -바로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 에서 유래되는 그의 철학의 도덕성이다. 예수께서는 국가나 민족에게가 아니라, 개인에게 중점을 두셨다. 저녁식사 동안에, 예수께서는 마태와 이야기하시다가 어떤 행동의 도덕성은 개인의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하셨다. 예수의 도덕성은 항상 긍정적이었다. 예수께서 다시 규정하신 황금률은 능동적인 사회적 친교를 요구하셨는데 구식의 부정적인 규율은 고립됨으로써 지켜졌다. 예수께서는 도덕성의 모든 규칙과 의례를 제거하시고 이를 영적 사고와 진실로 의로운 삶이라는 웅대한 차원으로 끌어올리셨다.

 

이러한 예수의 새 종교에 실질적인 관계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의 가르침 속에서 발견되는 실질적인 정치적, 사회적, 혹은 경제적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진정한 개인적 종교체험의 자발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영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처럼, 혼의 내적 경험의 자연스러운 결실들이었다.

 

예수께서 마태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끝내자 시몬 젤로떼가, "주(主)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인가요?"라고 질문하였다. 예수께서 이에 대답하셨다. "그렇다. 시몬아,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이것이 너희가 선포하려는 그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러한 교리를 파악할 수 없었으며 이는 새롭고, 이상하고, 놀라운 선언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진리를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심어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자신들의 형제들로 대하라고 가르치셨다.


안드레의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주(主)는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가르침은 자신의 삶에 대한 종교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는 사람의 본성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에서부터 오는 도덕성을 가르쳤다.

 

요한이 예수께, "주(主)님, 천국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늘나라는 이 세 가지 본질들로 이루어졌는데, 첫째 하느님의 다스리심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둘째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는 진리를 믿으며 셋째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하느님을 닮아 가는- 최극 인간의 소망의 실현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인데, 모든 필사자들은 구원의 이 세 가지 본질 모두를 신앙으로 얻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 기다림의 주간이 끝나고, 그들은 그 다음날 예루살렘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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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제 4편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운영자 08-18 2292
192  제 5 편 개인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운영자 08-18 2119
191  제 6 편 영원 아들 운영자 08-18 1979
190  제 7 편 영원 아들과 우주와의 관계 운영자 08-18 2140
189  제 8 편 무한 영 운영자 08-18 2040
188  제 9 편 우주에 대한 무한 영의 관계 운영자 08-18 2125
187  제 10 편 낙원 삼위일체 운영자 08-19 1952
186  제 11편 낙원의 섬 운영자 08-19 2254
185  제 12 편 우주들의 우주 운영자 08-19 2038
184  제 13 편 낙원의 성스러운 구체 운영자 08-19 2074
183  제 14 편 중앙에 있는 신성한 우주 운영자 08-19 2306
182  제 15 편 일곱 초우주 운영자 08-19 2183
181  제 16 편 일곱 주(主) 영 운영자 08-19 1977
180  제 17 편 일곱 최극 영 집단 운영자 08-19 1900
179  제 18 편 최극 삼위일체 품성 운영자 08-19 2075
178  제 19편 합동 삼위일체-기원 존재 운영자 08-19 2020
177  제 20 편 하느님의 낙원 아들 운영자 08-19 1975
176  제 21 편 낙원 창조주 아들 운영자 08-19 1988
175  제 22 편 삼위일체화 하느님의 아들 운영자 08-19 1771
174  제 23 편 단독 사자 운영자 08-19 1986
173  제 24 편 무한 영의 높은 품성 운영자 08-19 2037
172  제 25 편 공간의 사자(使者) 무리 운영자 08-19 1896
171  제 26 편 중앙 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19 1814
170  제 27 편 1차 초(超)천사의 사명활동 운영자 08-19 2023
169  제 28 편 초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19 2094
168  제 29 편 우주 힘 지휘자 운영자 08-19 1917
167  제 30 편 광우주의 품성 운영자 08-19 1982
166  제 31 편 최종의 무리단 운영자 08-19 1914
165  제 2 부 지역 우주 / 제 32 편 지역우주들의 진화 운영자 08-19 1993
164  제 33 편 지역우주의 관리 운영자 08-19 2215
163  제 34 편 지역우주 어머니 영 운영자 08-20 1904
162  제 35 편 하느님의 지역우주 아들 운영자 08-20 1934
161  제 36 편 생명운반자 운영자 08-20 1820
160  제 37 편 지역우주의 품성 운영자 08-20 2328
159  제 38 편 지역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20 2175
158  제 39 편 성(聖)천사 무리 운영자 08-20 2227
157  제 40 편 상승하는 하느님의 아들 운영자 08-20 2112
156  제 41 편 지역우주의 물리적 측면 운영자 08-20 2348
155  제 42 편 에너지 - 마음과 물질 운영자 08-20 2549
154  제 43 편 별자리 운영자 08-20 2157
153  제 44 편 천상의 거장(巨匠) 운영자 08-20 2247
152  제 45 편 지역체계 관리 운영자 08-20 2071
151  제 46 편 지역체계 본부 운영자 08-20 2020
150  제 47 편 일곱 맨션세계 운영자 08-20 2056
149  제 48 편 모론시아 삶 운영자 08-20 2056
148  제 49 편 거주되는 세계 운영자 08-20 1971
147  제 50 편 행성 영주 운영자 08-20 2183
146  제 51 편 행성 아담 운영자 08-20 2283
145  제 52 편 행성 필사자 신(新)시대 운영자 08-20 2159
144  제 53 편 루시퍼 반란 운영자 08-20 2643
143  제 54 편 루시퍼 반란의 문제 운영자 08-20 2265
142  제 55 편 빛과 생명의 구체 운영자 08-20 2139
141  제 56 편 우주 합일 운영자 08-20 2109
140  제 3 부 유란시아의 역사 / 제 57 편 유란시아의 기원(起源… 운영자 08-21 2454
139  제 58 편 유란시아의 생명 태동 운영자 08-21 2184
138  제 59 편 유란시아의 해양 생명 시대 운영자 08-21 2312
137  제 60 편 초기 육지 생명 시대의 유란시아 운영자 08-21 2296
136  제 61 편 유란시아의 포유류 동물기 운영자 08-21 2382
135  제 62 편 초기 사람의 시조(始祖) 종족 운영자 08-21 2201
134  제 63 편 최초의 인간 가족 운영자 08-21 2148
133  제 64 편 진화하는 유색 인종 운영자 08-21 2243
132  제 65 편 진화의 총괄 운영자 08-21 2222
131  제 66 편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 운영자 08-21 2351
130  제 67 편 행성의 반란 운영자 08-21 2165
129  제 68 편 문명의 태동 운영자 08-21 2122
128  제 69 편 원시 형태의 인간적 제도 운영자 08-21 2208
127  제 70 편 인간 정부의 발전 운영자 08-21 2247
126  제 71 편 국가의 발전 운영자 08-21 1994
125  제 72 편 이웃 행성의 정부 운영자 08-22 2195
124  제 73 편 에덴 동산 운영자 08-22 2281
123  제 74 편 아담과 이브 운영자 08-22 2403
122  제 75 편 아담과 이브의 불이행 운영자 08-22 2511
121  제 76 편 두 번째 동산 운영자 08-22 2221
120  제 77 편 중도 창조체 운영자 08-22 1964
119  제 78 편 아담 시대 이후의 보라색 인종 운영자 08-22 2278
118  제 79 편 동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311
117  제 80 편 서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290
116  제 81 편 근대 문명의 발전 운영자 08-22 2234
115  제 82 편 결혼의 진화 운영자 08-22 1826
114  제 83 편 결혼 제도 운영자 08-22 2338
113  제 84 편 결혼과 가정생활 운영자 08-22 2120
112  제 85 편 경배의 기원 운영자 08-22 2272
111  제 86 편 종교의 초기 진화 운영자 08-22 2077
110  제 87 편 귀신 예찬 운영자 08-22 2197
109  제 88 편 주물 숭배, 부적과 마술 운영자 08-22 2448
108  제 89 편 죄, 희생 제물, 그리고 속죄 운영자 08-22 2463
107  제 90 편 샤머니즘 - 주술사와 사제 운영자 08-22 2359
106  제 91 편 기도의 진화 운영자 08-22 2048
105  제 92 편 종교의 후기(後期) 진화 운영자 08-22 2397
104  제 93 편 마키벤타 멜기세덱 운영자 08-22 2140
103  제 94 편 동양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321
102  제 95 편 레반트에서의 멜기세덱의 가르침 운영자 08-23 2210
101  제 96 편 야훼 - 히브리인의 하느님 운영자 08-23 2628
100  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의 하느님의 개념의 진화 운영자 08-23 2475
99  제 98 편 서방(西方)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282
98  제 99 편 종교의 사회적인 문제 운영자 08-23 1984
97  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운영자 08-23 2128
96  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운영자 08-23 2152
95  제 102 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운영자 08-23 2097
94  제 103 편 종교적 경험의 실체 운영자 08-23 2172
93  제 104 편 삼위일체 개념의 성장 운영자 08-23 2092
92  제 105 편 신(神)과 실체 운영자 08-23 1856
91  제 106 편 실체의 우주적 차원 운영자 08-23 1983
90  제 107 편 생각조절자의 기원과 본성 운영자 08-23 2061
89  제 108 편 생각조절자의 임무와 사명활동 운영자 08-23 1892
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900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2021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63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96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28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75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49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35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50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44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80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73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39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69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9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57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66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203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81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302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32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402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70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32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36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55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96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83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83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79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55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97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48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75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81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64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213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61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23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4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47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77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48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98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82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53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45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75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77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19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39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38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84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84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55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93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117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8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44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73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210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35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51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91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38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75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57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203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23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4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95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98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72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71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70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22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62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57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92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709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21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82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97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66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59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6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6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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