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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8-23 (목) 00:42 조회 : 2151
 

 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하나의 인간적인 경험으로서의 종교는, 진화하는 미개인들의 두려움에 노예가 된 원시적인 형태로부터, 영원하신 하느님의 자식임을 당당하게 의식하는 문명화된 필사자들의 숭고한 신앙 해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종교는 진보적인 사회 진화의 발전된 윤리와 도덕의 조상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는, 종교의 외형적이고 사회적인 징후가 인간 사회의 윤리적 그리고 도덕적 추진력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하나의 도덕적 활동이 아니다. 언제든지 종교는 사람의 진화하는 본성에 대한 암시이지만, 그것이 그 진화의 비결은 아니다.

 

품성의 신념 신앙인 종교는 믿지 않는 물질적 마음속에 잉태된 절망의 피상적으로 모순 되는 논리를 항상 극복한다. 그곳에는 순수하고 참된 내적(內的) 음성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비쳐주는 참된 빛"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의 인도는 인간 양심의 윤리적 자극과는 성질이 다르다. 종교적 확신의 느낌은 감정적인 느낌 이상이다. 종교의 확신은 마음의 이성(理性)을 그리고 심지어는 철학의 논리를 초월한다. 종교는 신념, 신뢰, 그리고 확신이다.

 

1. 참 종교

 

참된 종교는 당연한 증거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논술되고 실체화될 수 있는 하나의 철학적 신념의 체계가 아니며, 신비주의의 몽상적인 신봉자들에 의해서만 향유될 수 있는 황홀경의 막연한 느낌들에 대한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경험도 아니다. 종교는 이성의 산물이 아니지만, 내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성적이다. 종교는 인간 철학의 논리로부터 도출되지 않지만, 필사자의 경험에서는 전적으로 논리적이다. 종교는 진화적으로 기원된 도덕적 존재의 의식 속에 있는 신성(神性)에 대한 경험이며 시간 속에 있는 영원한 실체들에 대한 참된 경험, 아직 육체 속에 있는 동안 영적인 만족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참된 경험을 의미한다.

 

생각조절자는 그것을 통하여 자아 표현을 성취하는 특별한 기능구조를 갖고 있지 않으며, 종교적인 감정들을 받거나 표현하기 위한 신비적인 종교적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경험들은 필사자 마음의 자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기능구조를 통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조절자가 그가 변함없이 항상 내주하는 물질적 마음과 직접적인 대화에 임하면서 가지는 어려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들어있다.

 

신성한 영은, 느낌들이나 감정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장 높게 그리고 최고로 영성화 된 사고(思考)의 영역 속에서, 필사자 사람과 접촉을 이룬다. 너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너희의 느낌들이 아니라 너희의 생각들이다. 신성한 본성은 오직 그 마음의 눈으로만 감지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하느님을 식별하는, 내주하는 조절자의 음성을 듣는 그 마음은 순수한 마음이다. "신성함이 없이는 주(主)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한 모든 내적이고 영적인 교제를 영적인 통찰력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종교적 경험들은, 조절자와 진리의 영이 하느님의 진화하는 아들들의 개념들과 이상들과 통찰력 그리고 영적인 분투들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작용할 때 그들의 연합된 기능들에 의해서 사람 마음 위에 형성된 감동으로부터 기인된다.

 

그래서 종교는 시각이나 느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나 통찰력에 의해서 존속하고 번창한다. 그것은 새로운 사실들에 대한 발견이나 독특한 경험의 습득 속에 존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인류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들 속에 있는 새롭고도 영적인 의미들의 발견 속에 존재한다. 가장 고상한 종교적 경험은 믿음과 전통과 권한에서의 우선하는 활동에 의존하지 아니하며, 뿐만 아니라 종교는 고상한 느낌들과 순전히 신비적인 감정들의 소산물(所産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 마음속에 거주하는 영의 영향들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하나의 심원 하고도 실제적인 경험이며, 그러한 경험을 정신에 관한 용어로 정의를 내려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실체를, 순전히 그렇게 품성 경험의 실체로, 경험하는 경험이다.

 

종교가 물질적인 우주론의 이성주의적 고찰의 산물이 아닌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 경험 속에 시작되는 순전히 이성적인 통찰력의 창조이다. 종교는, 그것이 언제든지 순전히 지적인 이성과 철학적인 논리의 형식으로 정의되거나 표현될 수 없으며 다소 신비적임에도 불구하고, 신비적인 묵상에서뿐만 아니라 격리된 깊은 사색에 의해서 잉태되지 않는다. 참된 종교의 싹들은 사람의 도덕적 의식의 권역 안에서 기원되며, 그것은 사람의 영적 통찰력, 하느님을 찾는 필사자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계시하는 생각조절자가 현존하는 결과로 발생되는 인간 품성의 기능이 성장함에 따라 계시된다.

 

신앙은 도덕적인 통찰력을 가치들에 대한 양심적인 판별력과 결합하며, 의무에 대한 선재 (先在)하는 진화적 감각이 참된 종교의 계통을 완성시킨다. 종교의 경험은 결국에는 하느님에 대한 확실한 의식 속에서 그리고 믿는 그 품성의 생존에 대한 의심할 여지없는 확신 속에서 결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종교적인 열망들과 영적인 충동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단순히 하느님을 믿기를 원하는 쪽으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러한 하나의 본성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반드시 하느님을 믿어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몹시 감동을 받는 그러한 본성과 힘을 갖는다는 사실이 눈에 보일 것이다. 진화적인 의무에 대한 감각과 계시의 조명의 결과로 생기는 책무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될 권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마음의 위치와 혼의 태도에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사람의 도덕적 본성에 그토록 깊은 인상을 준다. 그러한 계몽되고 훈련된 개인들의 보다 높고 철학을 뛰어넘는, 지혜가 궁극적으로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의심하거나 그의 선함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인간 마음과 혼속에 있는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심원한 존재 -신성한 조절자- 에게 충실하지 못함을 증명하게 될 것임을 가르쳐 준다.

 

2. 종교의 실제

 

종교의 실제는 이성적이고 보통 수준에 있는 인간 존재들의 종교적 경험 속에 전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속에서 종교가 늘 과학적인 것으로 또는 심지어 심리학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의미이다. 계시가 계시임에 대한 증명은 인간 경험에서도 이와 동일한 사실인데,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여러 가지로 갈라지는 자연 과학들과 종교 신학을 종합하여 하나의 일관되고 논리적인 우주 철학, 과학과 종교에 대한 협조되고 온전한 하나의 해석이 되게 하여, 무한자가 어떻게 자신의 뜻을 펼치고 물질과 마음들과 그리고 영들에게 어떻게 계획하시는지를 알려고 갈망하는 필사자 마음의 질문들에 대하여 인간의 경험을 통해 대답하는 영의 만족과 마음의 합동을 창출한다는 사실이다.

 

이성은 과학의 수단이고 신앙은 종교의 수단이며 논리는 철학이 시도하는 기법이다. 계시는 마음의 중재에 의한 물질과 영의 실체와 관계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합일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기법을 제공함으로써 모론시아 관점의 부재(不在)를 보정(補整)한다. 그리고 참된 계시는 결코 과학을 변태적인 것으로, 또는 종교를 비이성적인 것으로, 또는 철학을 비논리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성은 과학의 연구를 통하여 자연을 추적하여 최초 근원에게로 인도해 줄 수 있지만, 과학의 최초 근원을 변환시켜서 구원의 하느님께로 이르는 일은 종교적 신앙을 요구한다. 계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러한 신앙, 그러한 영적 통찰력의 확인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생존을 이룩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위하여 두 가지 기본적인 이치들이 있다:

 

1. 인간 경험, 개인적 확신, 내주하는 생각조절자에 의해서 시작된, 어떻게 해서든지 등록된 희망과 신뢰

 

2. 진리의 영의 직접적인 품성적 사명활동에 의한, 신성한 아들들의 이 세상 증여에 의해서, 또는 기록된 글의 계시를 통한, 진리의 계시.

 

과학은 최초 근원에 대한 가정에 있어서 그것의 이성적 탐색을 종료시킨다. 종교는 그것이 구원의 하느님을 확신하기 전에는 신앙의 비행(飛行)을 멈추지 않는다. 과학의 차별적인 연구는 절대자의 실체와 실재를 논리적으로 제시해 준다. 종교는 품성 생존을 이룩하시는 하느님의 실재와 실체를 기탄없이 믿는다. 형이상학이 철저히 실행하지 못한 것 그리고 심지어는 철학마저도 부분적으로 하지 못한 것을 계시가 해 주는데 그것은 과학의 최초 근원과 종교의 생존의 하느님이 하나이며 같은 신(神)임을 단언하는 것이다.

 

이성은 과학을 증명하고, 신앙은 종교를 증명하며, 논리는 철학을 증명하지만, 계시는 오직 인간의 경험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과학은 지식을 낳고 종교는 행복을 가져오며, 철학은 합일을 이룩한다. 계시는 우주 실체에 대한 이 삼원일체(三元一體) 접근이 경험적으로 조화됨을 확인시킨다.

 

자연에 대한 깊은 사색은 오직 자연의 하느님, 운동의 하느님을 계시할 수 있을 뿐이다. 자연은 오직 물질과 운동 그리고 생기-생명만을 드러낸다. 물질에 에너지를 더한 것은 특정 조건아래에서 살아있는 형태로 명시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연 생명이 그렇게 한 현상으로서는 상대적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개체성으로서는 전적으로 과도기적이다. 자연은 인간 품성 생존에서의 논리적 믿음에 관한 토대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자연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종교적인 사람은 이미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의 혼에서 바로 이 품성적 하느님을 발견한 것이다.

 

신앙은 혼속에 하느님을 계시한다. 진화하는 세계에서 모론시아 통찰력 대신으로 사용되는 계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이 그의 혼속에 나타내는 동일한 하느님을 자연 속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계시는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 그리고 심지어는 창조체의 세계와 창조주 사이,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있는 만(灣)을 성공적으로 건너게 해준다.

 

자연에 대한 깊은 사색이, 지능적인 안내와 심지어는 살아있는 조정의 지시에 있어서 논리적으로 가리켜 주기는 하지만, 어떤 만족스러운 방법으로도 품성적인 하느님을 계시하지는 않는다. 이에 반해서, 자연은 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작품으로 간주되는 존재로부터 그 우주를 배제시킬 수 있는 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하느님은 자연만을 통하여 발견될 수 없지만, 사람이 다른 방법으로 그를 발견하였다면, 자연에 관한 연구는 우주에 대한 더욱 높고 더욱 영적인 해석과 전적으로 일치되게 된다.

 

하나의 신기원인 현상으로서의 계시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며 개인적인 인간 경험으로서는 계속적이다. 신성(神性)은 필사자의 품성 속에서 아버지의 조절자 선물로, 아들의 진리의 영으로 그리고 우주 영의 성령으로 기능하며, 반면에 이러한 세 가지 초(超)필사자 자질들은 인간의 경험적 진화 속에서 최극자(最極者)의 사명활동으로 통합된다.

 

참된 종교는 실체에 이르는 통찰력이고 도덕적 의식의 신앙의 자녀이며, 독단적 교리들로 이루어진 어떤 몸체에 대한 단순한 지적 찬동이 아니다. 참된 종교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영 자체가 우리의 영에게 증거 하는" 경험 속에 존재한다. 종교는 신학적인 명제들 속에 존재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통찰력과 혼이 신뢰하는 숭고한 존재 속에 있다.

 

너희의 가장 깊은 본성 -신성한 조절자- 이 너희 속에 정의(正義)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 신성한 완전성을 향한 어떤 갈망을 창출(創出)한다. 종교는 신성한 달성에 이르는 이러한 내적인 충동의 인식에 대한 신앙 행동이며 그래서 구원의 방법, 참되고 선하다고 너희가 간주하게 된 그러한 모든 가치들과 품성의 생존 기법으로 너희가 의식하게 되는 혼의 신뢰와 확신을 가져오게 된다.

 

종교의 실현은 위대한 배움이나 현명한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또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통찰력이며, 그리고 그것이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종교 교사들 중 일부 그리고 심지어는 선지자들까지도 때로 세상의 지혜를 왜 그토록 적게 소유하였는가에 대한 바로 그 이유이다. 종교적 신앙은 배운 자들에게나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나 똑같이 가능하다.

 

종교는 언제든지 그 자체의 비평과 판단이 되어야만 한다. 외부로부터는 전혀 관찰될 수 없고, 납득은 더욱 그러하다. 품성적인 하느님에 대한 너희의 유일한 확신은 영적인 것들에 대한 너희의 믿음 그리고 경험과 마찬가지로 너희 자신의 통찰력 속에 존재한다. 비슷한 경험을 이미 하였던 너희 동료들 모두에게는, 하느님의 품성 또는 실체에 대한 논쟁이 필요 없는 반면, 하느님에 대하여 그렇게 확신하지 못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떤 논쟁으로도 결코 설득할 수 없다.

 

심리학은 사회 환경에 대한 종교적 반응들의 현상들을 연구하기 위하여 정말로 시도를 할 수 있지만, 종교의 작용과 실제적이고 내적인 동기들에 이르도록 뚫고 들어가기를 결코 희망할 수 없다. 신앙의 영역이며 계시의 기법인 신학만이 종교적 경험의 본성과 내용에 대한 모든 종류의 지능적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3. 종교의 특징들

 

종교는 너무도 생기가 넘치기 때문에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도 존속된다. 그것은 잘못된 우주론들과 그릇된 철학들로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으며, 형이상학이 혼동된 상태에서도 잔존한다. 종교의 모든 역사적 변천들 속에서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인간 진화와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것, 윤리적 양심과 도덕적 의식이 항상 살아 있었다.

 

신앙-통찰력 또는 영적 직관(直觀)은 생각조절자와 관련된 조화우주 마음의 자질인데, 그것은 사람에게 수여된 아버지의 선물이다. 영적 이성, 혼의 지성은 성령의 자질인데, 창조 영이 사람에게 수여한 선물이다. 영적 실체들의 지혜인 영적 철학은 진리의 영의 자질인데, 증여 아들들이 사람 자손들에게 수여한 복합적인 선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자질(資質)들의 합동과 상호 연합은 사람에게 잠재적인 운명 속에서 하나의 영 품성을 제정한다.

 

원시적이고 싹트는 형태 안에서 조절자가 소유한 것, 그것이 육신의 자연적인 죽음에서 생존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동일한 영 품성이다. 인간 경험과 연합하고 있는 영적 기원의 이러한 혼합적 실존개체는, 신성한 아들들에 의해 제공되는 생명의 길에 따라, 생명운동이 중지됨으로서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과도기 동반자관계에서 헤어질 때, 마음과 물체의 물질자아의 괴멸을 (조절자의 보호관찰 안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혼은 종교적인 신앙을 통하여 스스로를 계시하며, 그것의 출현하는 본성의 잠재적 신성을 어떤 쓰라린 지적이고 지극히 어려운 사회적 상황들에 대해 반응하도록 그것이 필사자 품성을 설득하는 특징적 방법에 의해 설명한다. 참된 영적 신앙(참된 도덕적 의식)은 다음과 같은 상황 속에 계시된다.

 

1. 고유하고 반대적인 동물적 경향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윤리와 도덕으로 하여금 진보를 이룩하게 함.

 

2. 쓰라린 실망과 압도적인 패배에 직면하여서도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탁월한 신뢰를 그것이 창출함.

 

3. 자연적인 역경과 물리적인 재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용기와 확신을 발생시킴.

 

4. 어쩔 수 없는 질병과 심지어는 격렬한 육체적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가해한 평정과 지구력 있는 평온을 나타냄.

 

5. 학대와 아주 지독한 불법 앞에서 그것이 품성의 신비로운 평정과 침착성을 유지시킴.

 

6. 겉으로 보기에 기계적인 숙명의 잔인성과 인간 복지에 대한 자연 세력의 명백하게 철저한 냉담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신성한 신뢰를 유지시킴.

 

7. 논리의 모든 불리한 논증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속시키고 다른 모든 지적 궤변들을 성공적으로 견디어 냄.

 

8. 잘못된 과학의 현혹시키는 가르침과 불합리한 철학의 능란한 현혹에 상관없이, 혼의 생존에 대한 담대한 신앙을 그것이 계속 나타냄.

 

9. 그것이 현대의 복잡하고 편파적인 문명들이 주는 압도적인 부담에 상관없이 살아가고 승리함.

 

10. 인간적 이기심, 사회적 반목, 산업의 탐욕, 그리고 정치적인 부적응에도 불구하고 이타주의가 계속적으로 생존되도록 그것이 기여함.

 

11. 악과 죄의 복잡한 현존에 상관없이 그것이 우주적 합일과 신성한 안내에 대한 고상한 믿음을 확고하게 신봉하게 함.

 

12. 무슨 일이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하느님께 대한 경배를 계속해 나감. "그가 나를 치실지라로, 나는 그를 섬길 것이다"라고 담대하게 선언함.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신성한 영 또는 그의 속에 거주하는 영들을 갖고 있음을 세 가지 현상들에 의해서 아는데, 그것은 첫째는 품성적 경험 -종교적 신앙- 에 의해서이고, 둘째는 계시 -품성적이고 인종적인- 에 의해서이며, 셋째는 진정한 인간 실재의 실제 현존과 괴로운 상황들 앞에 있는 영과 비슷한 12가지 일들에 대해 앞에 말한 설명들에 의해 묘사되듯이 그의 물질적 환경에 대한 그러한 색다르고도 부자연스러운 반응들을 놀랍게 나타냄으로써 이다. 그리고 다른 것들이 더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본성의 최고자질, 종교적 경험에 대한 품성적 소유물과 영적 실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필사자 사람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종교의 권역에 대한 신앙의 바로 그러한 생생하고도 활발한 행위다.

 

4. 계시의 한계

 

너희 세상이 기원(起源)들에 대하여, 심지어는 물리적인 기원들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때때로 우주론에 가르침을 주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를 향하여 항상 문제가 되어 왔다. 계시에 대한 규칙들은 노력 없이 얻었거나 미성숙한 지식의 전달에 대한 그것들의 금지 조항에 의해 우리를 크게 제한한다. 계시된 종교의 일부분으로 제시된 우주론은 모두 매우 짧은 기간 내에 쓰지 못할 운명에 처한다. 따라서 그러한 계시에 대한 미래의 연구자들은 그 안에 제시된 관련된 조화우주론의 모습에서 실수를 발견하기 때문에, 계시가 담을 수도 있는 참된 종교적 진리의 어떤 요소를 버리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인류는 진리의 계시에 참여하는 우리가 우리들의 감독자들이 내리는 지시들에 의해서 엄격하게 제한을 받고 있음을 납득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1,000년 동안 이루어질 과학적 발견들을 미리 헤아려 얘기해 줄 자유가 없다. 계시자들은 계시 명령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지시들에 따라 행동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하며, 그것은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항상 그럴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계시 발표들에 대한 역사적 사건들과 종교적 진리들은 다가오는 시대들의 기록들 속에 남아 있게 되는 반면, 물리 과학들에 관련된 우리들의 진술 대부분은 몇 해가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발견들과 부가적인 과학 발달에 따라 교정되어야 할 필요성에 봉착할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발전들을 우리는 지금도 예견하고 있지만, 인간들이 발견하지 못한 그러한 사실들을 우리가 이 계시 기록에 포함시키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계시들이 반드시 영감 되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계시들의 우주론은 영감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지식의 합동과 분류를 위한 우리들의 허락에 의해 제한된다. 신성한 또는 영적인 통찰력이 하나의 선물로 주어지는 반면, 인간의 지혜는 진화해야만 한다.

 

진리는 언제나 하나의 계시인데, 자동 계시는 내주하는 조절자의 활동의 결과로 그것이 나타날 때이며 신기원적 계시는 그것이 어떤 다른 천상(天上)의 매개자나 집단 또는 품성의 기능에 의해 제시될 때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종교는 그것의 열매들에 의해, 그것이 그 자신의 타고난 신성의 우수성의 정도와 방법에 따라서 판단될 것이다.

 

비록 계시가 반드시 하나의 영적인 현상일지라도, 진리는 다만 상대적으로 영감 될 수 있다. 우주론과 관련된 설명들이 결코 영감된 것이 아닌 반면, 그러한 계시들은 그것들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해 과도기적으로 지식을 명백하게 설명하는 굉장한 가치가 있다:

 

 1. 권한을 가지고 실수를 제거함으로써 혼란을 감소시킴.


 2. 알려진 또는 곧 알려지게 될 사실과 관찰을 합동시킴.


 3. 아득한 과거에 있었던 신기원적 활동행위들에 관한 잃어버린 지식의 중요한 조각들을 회복시킴.


 4. 치명적으로 빠져있는 공백으로 획득되지 못한 지식에서 공백을 채우게 될 정보를 제공함.


 5. 지금 동봉되는 계시에 담긴 영적 가르침을 비추는 것과 같이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조화우주 자료를 제시함.

 

5. 계시에 의해 확대된 종교

 

계시는, 영 취득의 진리로부터 진화의 실수를 분류하고 선별하는 필요한 작업으로, 말할 수 없이 긴 세월을 절약하는 하나의 기법이다.

 

과학은 사실을 다룬다. 종교는 오직 가치에만 관여한다. 마음은 개화된 철학을 통하여 사실과 가치 둘 모두의 의미를 결합하려고 애를 쓰고, 그렇게 하여 완벽한 실체의 개념에 도달한다. 과학은 지식의 권역이고, 철학은 지혜의 영역이며, 종교는 신앙 경험의 구체임을 기억해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현시의 두 가지 위상을 제시한다.

 

1. 진화 종교 : 원시적인 경배의 경험, 마음의 파생물인 종교.

 

2. 계시 종교 : 영적 파생물인 우주적 태도 영원한 실체들의 보존, 품성의 생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목적을 가지신 조화우주 신(神)의 결과로서 생기는 달성에 대한 확신과 그 안에서의 믿음. 진화 종교가 조만간에 계시에서의 영적 확대를 받도록 예정된 것은 우주 계획의 한 부분이다.

 

 과학과 종교는 둘 모두 논리적 추론들을 위해 일반적으로 용인된 어떤 기초들에 대한 가정 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철학도 또한 다음의 세 가지 것들의 실체들에 대한 가정에서 그것의 경주를 시작한다.


   1. 물질적인 육체.                                                  


   2. 인간 존재, 혼 또는 심지어는 내주하는 영의 초물질적 위상.        


   3. 인간 마음, 영과 물질 사이, 물질적 존재와 영적 존재 사이의 상호 교신


과 상호 연합을 위한 기능구조.

 

과학자들은 사실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철학자들은 개념들을 통합시키는 반면, 선지자들은 이상들을 고양(高揚)시킨다. 느낌과 감정은 종교의 불변적인 부수물들이지만, 그것들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경험에 대한 느낌이 될 수 있지만, 느끼는 경험이라고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본질적으로는 논리(합리화)도 감정(느낌)도 종교적 감정의 일부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실체에 접근하는 영적 통찰력의 조성에 대한 신앙의 실행과 다양하게 연합될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은 각 개인의 마음이 처한 지위와 타고난 경향에 따른다.

 

진화 종교는 진화하는 사람 속에 있는 경배하는 특색의 조성과 육성이 위탁된 지역우주 마음 보조자의 자질이 외적(外的)으로 활동한 것이다. 그러한 원시 종교들은 인간적 의무에 대한 인식인 윤리와 도덕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그러한 종교들은 양심의 보증에 입각하며, 상대적으로 윤리적인 문명들의 안정을 가져온다.

 

품성적으로 계시된 종교들은 낙원 삼위일체의 세 품성체들을 대표하는 증여된 영들에 의해 후원되며, 특별히 진리의 확대와 관계되어 있다. 진화 종교는 가정을 개별화시켜서 품성적 의무에 대한 개념을 갖게 한다. 계시 종교는 사랑 가득함, 황금률(黃金律)에 점점 증가되는 강조를 쏟아 붓는다.

 

진화된 종교는 전적으로 신앙에 의존한다. 계시는 신성(神性)과 실체의 진리들로 이루어진 그것의 확대된 소개에 대한 추가적인 확신을 갖고 있으며 진화의 신앙과 계시의 진리라는 실용적 작용 결합의 결과로 누적되는 실제적 경험에 대한 훨씬 더 가치 있는 증거를 갖고 있다. 인간적 신앙과 신성의 진리의 그러한 작용 결합은 모론시아적 품성의 실제적인 습득에 이르는 길에서 성격의 소유를 잘 구성한다.

 

진화적 종교는 오직 신앙의 확신과 양심의 증거만을 제공한다. 계시적 종교는 신앙의 확신 이외(以外)에 계시의 실체들 속에 있는 살아있는 경험에 대한 진리를 제공한다. 종교에 있어서 세 번째 위상 또는 종교의 경험에 있어서 세 번째 위상은 모론시아 상태, 모타에 대한 더욱 확고한 이해를 이룩하는 것이다. 모론시아 진보 속에서는 계시된 종교의 진리들이 점점 더 확대되며, 너희는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진리, 신성한 선(善), 우주적인 관계들, 영원한 실체들, 그리고 궁극적인 운명을 점점 더 알게 될 것이다.

 

모론시아 진보에 두루, 진리의 확신이 신앙의 확신을 점점 더 대체시킬 것이다. 너희가 실제적인 영의 세계 속으로 최종적으로 불려 들어가게 되면, 순수한 영 통찰력의 확신이 신앙과 진리 대신에 작용하게 되거나 또는 오히려 그 전에 있었던 이러한 기법의 품성 확신과 관련하여 그리고 그 위에 겹쳐져서 작용하게 될 것이다.

 

6. 진보적인 종교 경험

 

계시된 종교의 모론시아 위상은 생존되는 경험과 관계되며, 그것을 크게 자극하는 것은 영 완성의 달성이다. 거기에는 또한 증대된 윤리적 봉사로의 강압적인 초청과 관련된, 경배에 대한 보다 높은 충동이 나타난다. 모론시아 통찰력은 칠중의 존재, 최극자, 그리고 심지어는 궁극적 존재의 영원히 확대하는 의식을 수반한다.

 

모든 종교적 경험에 두루, 물질적 차원에 대한 그것의 초기 발단으로부터 충만한 영 지위의 달성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그 조절자는 최극자 실재의 실체에 대한 개인적 인식의 비결이며, 바로 이 조절자는 또한 궁극적 존재의 초월적 달성에 대한 너희들의 신앙의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 존재적 하느님의 조절자 본질에 결합된, 진화하는 사람의 경험적 품성은 최극 실재의 잠재적 완성을 구성하며 선천적으로 초(超)품성의 초(超)유한적인 결과로서 생겨짐을 위한 기초이다.

 

도덕적 의지는 사리에 맞는 지식에 기초한, 지혜에 의해 증대된, 그리고 종교적 신앙에 의해 인정된 결정들을 포옹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선택들은 도덕적 본성의 행동들이며 도덕적 품성, 모론시아 품성의 그리고 결국에는 참된 영 지위의 선구자가 실재한다는 증거이다.

 

지식의 진화적 유형은 원형질의 기억 요소의 축적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창조체의 의식에 있어서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지혜는 연합과 재결합의 과정에서 원형질의 기억으로부터 공식화된 개념들을 포옹하며, 그러한 현상들이 인간 마음을 단순한 동물적 마음과 구분시킨다. 동물들도 지식을 소유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지혜 수용력을 소유하고 있다. 진리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영들의 그러한 마음에 수여된 것, 생각조절자와 진리의 영에 의해 지혜 증여 개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 미가엘은, 유란시아에 증여되었을 때, 자신이 세례를 받을 때까지 진화 종교의 지배 아래에서 사셨다. 그 순간부터 십자가형의 사건이 끝나기까지 그는 진화 종교와 계시 종교의 병합된 안내에 따라 자신의 일을 진행해 가셨다. 부활하신 그 날 아침부터 상승하실 때까지는 물질세계로부터 영의 세계로 이 세상에서 변화하는 모론시아 삶의 여러 단계들을 지나가셨다. 미가엘은 상승하신 후에 최극위 경험, 최극자의 실현에 대한 주인이 되셨으며, 네바돈에서 그 최극자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능력을 소유한 유일한 품성이 되셨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지역우주 속에 그리고 그 우주에 대하여 최극위를 가진 지위를 즉시 달성하셨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결과로서 생기는 융합과 그 결과로 생기는 내주하는 조절자 -하느님의 본질과 사람의 품성 합성- 가 잠재적으로는 그를 최극자의 살아있는 한 부분이 되게 하였으며 한 때는 필사 존재였던 그러한 사람으로 하여금 최극자를 위하여 그리고 그와 함께 우주적 봉사의 최종에 대한 끝없는 추구에 대한 영원한 상속권을 확립하게 하였다.

 

계시는 필사자 사람에게, 차츰 흐르는 시간의 진행이라는 수단을 써서 공간을 거치는 그렇게 장엄하고도 흥미로운 모험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관념과 결정으로 조직화함으로서 시작해 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그 다음에, 지혜에게 자아 소유된 관념들을 점점 더 실용적으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이상으로 변환시키는 고귀한 과업에 끊임없이 수고하라고 권한을 위임 한다, 동시에 그러한 개념들이 관념으로서 그렇게 이치에 맞고 이상으로서 그렇게 논리적이어서, 그래서 조절자가 낙원 진리 우주 진리의 시-공간 현시인, 아들의 진리의 영이 활동을 위하여 준비되는 실제적인 인간의 보충물을 이루도록 그와 같이 그것을 유한한 마음과 연합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그들을 병합하고 영성화 하는 일에 과감하게 나선다. 관념 결정들, 논리적 이상 그리고 신성한 진리의 합동은, 정의로운 성격을 소유하는 것이며, 모론시아 세계에서의 언제나 확대하고 갈수록 더 영적인 실체에 대하여 필사자에게 내리는 허락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현세적인 평온과 지적인 확신과 도덕적인 계몽과 철학적인 안정성과 윤리적인 민감성과 하느님 인식 그리고 개인적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완벽하게 그리고 동시적으로 제공하듯이 지식과 지혜와 신앙과 진리 그리고 사랑의 조화로운 합동을 그토록 충분하게 포옹하는 최초의 유란시아 종교를 구성하였다. 예수의 신앙은 인간 구원의 최종, 필사자 우주 달성의 최종 단계에 이르는 길을 가리켜 주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1. 영이신 하느님과의 아들관계에 대한 품성적 깨달음 안에서 물질적인 족쇄로부터 구원됨.

 

2. 지적(知的)인 속박으로부터 구원됨 :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니, 그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함.

 

3.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서, 필사 존재들의 형제애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모든 우주 창조체들의 형제신분에 대한 모론시아적 앎 영적 실체에 대한 봉사를 발견함. 그리고 영 가치의 선함에 대한 사명활동을 계시함.

 

4. 우주의 영적 차원들에 대한 달성을 통한 그리고 하보나의 조화와 낙원의 완성에 대한 결과로서 생기는 실현을 통한 자아 미완성으로부터의 구원.

 

5. 자아로부터의 구원, 최극 마음의 조화우주 차원 달성을 통하고 그리고 다른 모든 자아 의식 존재들의 달성과의 합동에 따른 자아 의식의 한계에서 해방.

 

6. 시간으로부터의 구원, 하느님을 인지함 그리고 하느님께 봉사함 안에서 끊임없이 진보하는 영원한 삶의 성취.

 

7. 창조체가 아(亞)절대의 최종자 이후 차원에서 궁극자에 대한 초월적인 발견을 시도하게 하는, 바로 그 최극자를 통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신(神)과 완전하게 하나가 됨.

 

일곱 가지로 구성된 그러한 구원은 우주 아버지의 궁극적 경험의 실현이라는 완성과 완숙에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성의 면에서 볼 때 이 모든 것은 종교에 대한 인간 경험의 신앙의 실체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들어 있을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신앙이 심지어는 궁극을 초월하는 실체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의 계시에 의하여 조성되었기 때문이며, 예수의 신앙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진화하는 우주 속에서 그러한 것이 나타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우주적 절대의 지위에 접근하였다.

 

예수의 신앙을 소유함으로써, 필사자 사람은 시간 속에서 영원의 실체들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경험 안에서, 최종 아버지를 발견하도록 만드셨고, 그리고 육신으로 필사자 삶을 사는 그의 형제들이 아버지를 발견하는 이 똑같은 경험을 그를 따라서 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예수께서 그 당시에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그들의 현재 상태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이 경험 안에서 똑같은 만족을 달성할 수 있다. 새로운 잠재들이 미가엘의 마지막 증여의 결과로 네바돈의 우주 안에 실제화 되었으며, 이들 중의 하나는, 만유의 아버지께로 인도 하는 영원의 길, 그리고 심지어는 공간의 행성에서 삶을 시작하면서 물질 육신과 피로 이루어진 필사자들에 의해서도 통과될 수 있는 그 길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었다. 예수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새로운 길이며 생명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아버지께서 단지 요청만 하면 그의 것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 그 신성한 유산을 사람이 소유하게 되는 길이다. 인간속성의 신앙 경험의 시작과 끝이, 나아가 신성한 인간속성까지도 예수 안에서 넘치도록 펼쳐진다.

 

7. 종교의 품성적 원리

 

하나의 개념은 행동을 위한 이론적 계획에 지나지 않으며, 반면에 명확한 결정은 행동에 대한 확인된 계획이다. 평범한 생각은 확인 없이 받아들여진 행동에 대한 계획이다. 종교의 품성적 사상을 세우게 하는 재료들은 그 개인의 내적(內的) 경험과 환경적 경험 둘 모두로부터 도출된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조건, 교육적 기회, 도덕적 경향, 제도적 영향, 정치적 발달, 인종적 경향, 그리고 어떤 사람의 시대와 장소에 따른 종교적 교훈은 모두 종교에 대한 한 개인의 사상을 조성 하는 데 있어서 그 요소들이 된다. 심지어는 타고난 기질과 지적(知的) 소질도 종교적 사상의 원형틀을 두드러지게 결정짓는다. 직업과 결혼 그리고 혈족 관계는 모두 삶에 대한 어떤 사람의 품성적 표준의 진화에 영향을 준다.

 

종교의 사상은 개념들과 경험적 삶 두 가지가 동료들을 흉내 내려는 경향에 의해 수정될 때 그 둘로부터 진화되어 나온다. 철학적 결론의 건전성은 의미들에 대한 민감성과 평가의 정확성과 관련하여 예리하고 정직하며 분별력 있는 사고(思考)에 달려 있다. 도덕적으로 비겁한 사람들은 철학적 생각의 높은 차원을 결코 성취할 수 없으며 그것은 새로운 차원의 경험들 속으로 침투하고자 하는 용기와 지적(知的)인 삶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들에 대해 탐구하고자 시도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곧 가치에 대한 새로운 체계가 현존하게 된다. 원칙과 기준이 새롭게 형성화되는 것이 달성된다. 습관과 이상은 다시 모습이 다듬어진다. 품성적 하느님에 대한 어떤 관념에 도달되고, 뒤이어 그와 가지는 관계에 대한 확대된 개념으로 이어지게 된다.

 

삶에 대한 종교적 사상과 비종교적 사상 사이의 큰 차이는 인정된 가치들의 본성과 차원 속에 그리고 충성심의 대상 속에 존재한다. 종교적인 사상의 진화에는 네 위상이 있다. 그러한 경험은 단지 순응하게 되는, 전통과 권위에 굴복하기를 거절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는 그것이 단지 일상적인 삶을 안정시키기에 충분한 정도에서 사소한 달성으로 만족될 수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우연적인 차원에 일찍부터 구속된다. 그러한 필사자들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 번째 집단은 논리적인 지성의 차원으로 진보하지만 그곳에서 문화적인 노예 상태의 결과로 인하여 침체된다. 위대한 지능인들이 문화적 속박의 무자비한 지배력 속에 그토록 견고하게 붙잡혔던 것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문화적인 속박을, 거짓되게 그렇게 부르는, 과학의 물질주의적 속박과 바꾸는 것을 보는 것도 똑같이 애처로운 일이다. 철학의 네 번째 차원은 모든 틀에 박히고 전통적인 불리한 조건들로부터의 해방을 달성하고, 정직하게, 충성되게, 용감하게, 그리고 진실 되게 감히 생각하고 생동하고 살아간다.

 

모든 종교적 사상에 대한 까다로운 시험은 지적인 분투와 사회적 봉사에 대한 그것들의 단일화를 실현하는 바로 그 순간에 물질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실체들 사이를 그것이 구별 짓느냐 못 짓느냐에 있다. 건전한 종교 사상은 하느님의 것들을 시저의 것들과 혼동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종교에 대한 대용물로 순수한 기적을 바라는 심미적 종파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철학은 주로 의식적으로 꾸민 이야기였던 원시 종교를 조화우주 실체의 상승하는 가치들에 대한 살아있는 경험으로 변환시킨다.

 

8. 신앙과 믿음

 

믿음은 그것이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삶의 양식을 실현할 때 신앙의 차원을 달성해 왔다. 교훈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이 아니며 그것은 단지 믿음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신앙은 확신도 아니고 신념도 아니다. 마음의 상태는 그것이 실제적으로 삶의 양식을 지배할 때에만 신앙의 차원을 달성한다. 신앙은 참된 품성적 종교 경험의 살아있는 속성이다. 사람은 진리를 믿고 미를 동경하며 선을 숭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경배하지는 않으며 구원하는 신앙에서의 그와 같은 태도는, 이들이 품성화되고 그리고 더욱 더 무한하게 되는 그 모든 것이신 오직 홀로이신 하느님에게 중심을 두고 있다.

 

믿음은 항상 제한하고 구속한다. 신앙은 확대하고 풀어준다. 믿음은 고정시키고, 신앙은 해방시킨다. 그러나 살아있는 종교적 신앙은 고귀한 믿음들의 연합 이상이며, 철학의 고양된 체계 이상이며 영적인 의미들과 신성한 이상(理想)들 그리고 최고의 가치들과 관련된 살아있는 경험이며 하느님을 알게 하고 사람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믿음은 집단적인 소유물이 될 수 있지만 신앙은 반드시 품성적이다. 이론적인 믿음은 어떤 집단에게 제시될 수 있지만, 신앙은 오직 종교인 개인의 가슴속에서만 발생된다.

 

신앙은 그것이 실체들을 거부하고 그것에 헌신하는 자들에게 거짓된 지식을 수여할 때 그것의 진리를 왜곡한다. 신앙은 그것이 지적인 성실성의 배반을 조성하고 최고의 가치들과 신성한 이상에 대한 충성심을 무시할 때 하나의 배신자가 된다. 신앙은 필사자 삶의 문제 해결 의무를 결코 피할 수 없다. 살아있는 신앙은 편협한 신앙이나 박해 또는 옹졸함을 조장하지 않는다.

 

신앙은 창조적인 상상력을 속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연구에 의한 발견들을 향하여 불합리한 선입관을 보이지도 않는다. 신앙은 종교에게 생기를 불어넣으며, 그 종교인들로 하여금 용맹스럽게 황금률을 지키도록 강요한다. 신앙의 열정은 지식에 의거하며, 그것의 분투는 장엄한 평화의 전주곡이다.

 

9. 종교와 도덕

 

종교의 어떤 공공연한 계시라도, 만약 그것이 그 전에 있었던 진화적 종교에 의해 창출되고 조성되어 왔던 윤리적 책무의 의무 요구 사항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믿을만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계시는 진화된 종교의 윤리적 시야를 반드시 확대시키며, 반면에 그것은 그 전에 있었던 모든 계시들의 도덕적인 책무들을 동시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확대시킨다.

 

너희가 사람의 원시적인 종교에 대해 (또는 원시인의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판단을 내리는 자리에 앉는다고 가정할 때, 너희는 그들의 개화 정도와 의식 지위에 따라서 그들의 종교적 경험을 평가하고 그러한 미개인들을 판단해야 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종교를 지식과 진리에 대한 네 자신의 표준들에 의해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마라.

 

참된 종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가장 높은 윤리적 그리고 도덕적 개념, 삶에서의 가장 위대한 가치들과 우주에서의 가장 깊이가 깊은 실체들에 대한 그의 가장 높은 해석을 구성하는 그러한 모론시아의 실체를 믿지 않는 것이 그에게 잘못이라고 억누를 수 없이 그를 충고하는, 혼 안에 있는 숭고하고도 심오한 신념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는 다만 영적 의식에서 나오는 가장 높은 명령에 지능적 충성을 바치는 경험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오직 그것이 윤리적 그리고 도덕의 개념을 풍성하게 하는 범위 내에서만 종교의 일부분을 이룬다. 예술은 높은 영적 동기로부터 도출되는 목적으로 그것이 확산될 때에만 종교적이다.

 

문명화된 사람의 계몽된 영적 의식은 어떤 특정한 지적 믿음 또는 어떤 사람의 특별한 삶의 방식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진리 발견, 필사자 실재의 항상 반복되는 상황들에 대한 반응의 알맞고 올바른 기법에 관심을 둔다. 도덕의식은, 의무가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의 일상적인 조정과 지도 속에서 지키도록 요구하는 그 윤리적이고 새로 출현하는 모론시아 가치들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자각에 적용되는 하나의 이름일 뿐이다.

 

종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더라도, 거기에는 그것의 본성과 기능에 대한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실제적 징후들이 있다:

 

1. 종교의 영적인 충동과 철학적 압력이 사람으로 하여금 도덕적 가치들에 대한 그의 판단을 직접적으로 밖을 향하게 하여 그의 동료들에 대한 문제들 속으로 투영해 들어가게 만드는 경향 -종교의 윤리적 반응- 이 있다.


종교는 영적 가치들의 첨가된 개념들과 연결되고 그 전에 있었던 도덕적 가치들의 개념과 영적 가치의 개념으로 덧붙여진 것과 합동하며 그것에 기초하고 그것으로부터 신앙으로 도출된 신성한 실체에 대한 영성화 된 의식을 인간 마음을 위하여 창출한다. 그리하여 종교는 필사자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검열관, 실체에 대한 영화롭게 된 도덕적 신뢰와 신용의 한 형태인, 영원의 더욱 영구적인 실체들과 시간의 증진된 실체들이 된다.

 

신앙은 영구적인 실체에 대한 도덕적 의식과 영적 개념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 된다. 종교는 사람이 현세적이고 자연적인 세계의 물질적인 제한 조건들로부터 탈출하여 구원이라는 기법, 진보적인 모론시아 변환에 의해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영원하고도 영적인 세계의 숭고한 실체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10. 사람의 해방자인 종교

 

지능적인 사람은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발생된 존재, 물질적인 우주의 한 부분임을 알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그는 에너지 우주의 수학적 차원의 운동과 장력(張力) 속에서 개별적인 품성의 생존을 식별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물리적인 인과법칙의 고찰을 통하여 영적인 실체를 식별할 수도 전혀 없다.

 

또한 인간 존재는 자신이 관념적 조화우주의 일부분임을 인식하지만, 개념이 도덕적 생활 범위를 넘어서 지속 하더라도, 착상하는 품성의 품성적 구원을 나타내는 개념에서 선천적으로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논리와 이성의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도 논리학자나 이성(理性) 연구자에게 품성 생존에 대한 영원한 진리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법률의 물질적인 차원은 인과작용(因果作用) 연속성을, 그 전에 있었던 행위에 영향을 주는 끊임없는 반응을 제공한다. 마음 차원은 관념 작용의 연속성의 영구 보존, 먼저 존재한 개념들로부터의 개념적 잠재성의 끊임없는 흐름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우주의 이러한 차원들 중 어떤 것도 호기심에 찬 필사자에게 지위의 불공평성으로부터 그리고 우주 안에서 과도기적으로 존재 하는 실체, 제한된 생명 에너지의 소모에 따라 소멸될 운명에 처한 임시적 품성이라는 견딜 수 없는 불안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통로를 보여주지 못한다.

 

사람이 우주 안에서 자신의 필사자 지위 속에 타고난 족쇄를 영원토록 부술 수 있는 것은 오직 영적 통찰력에 이르게 하는 모론시아의 통로를 통해서이다. 에너지와 마음은 낙원과 신(神)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지만, 사람의 에너지 자질과 마음 자질 중 어떤 것도 그러한 낙원 신(神) 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발생되지 않는다. 오직 영적인 관념에서만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현재 낙원 아버지에 의해 수여되고 내주 되는 것이 오직 영적인 관념에서만 그러하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인류는 종교적인 경험의 통로를 통해서 그리고 참된 신앙에 의해서 이루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신성(神性)을 발견할 수 없다.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신앙 수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물질적 제한 조건들의 제한된 한계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물질적 영역, 죽음이 존재하는 곳으로부터 영적인 영역, 영원한 생명이 존재하는 곳으로 확실한 행실을 성취할 합리적인 희망을 제공한다.

 

종교의 목적은 하느님에 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불변성과 철학적 보장을 제공하는 것, 필사자를 신성한 존재와, 부분적 존재를 완전한 존재와, 사람을 하느님과 융합시킴으로써 인간 삶을 안정시키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관념성에 대한 사람의 개념이 천부적인 실체가 되는 것은 종교적인 경험을 통해서이다.

 

신성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증명도 논리적인 증명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성 자체만으로는 종교적 경험의 가치들과 우수성들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은 언제나 옳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행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영적 가치들의 확실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경험의 실체에 대한 증명을 제시함에 있어서 필사자 차원에서 이룩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접근이다. 오로지 그러한 신앙만이 물질세계의 기계적인 쇠고랑으로부터 그리고 지적 세계의 불완전성에서 나오는 실수로 인한 왜곡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그것만이 개별적 품성의 계속적인 생존에 관한 필사자 사고(思考) 속에서 만난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발견된 유일한 방법이다. 오직 그것만이 실체의 완성에 이르는 그리고 사랑과 법률과 합일과 진보적 신(神) 달성에 대한 우주적 창조 속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입장권(入場券) 이다.

 

종교는 관념론적 고립감 또는 영적 고독에 대한 사람의 감각을 효과적으로 치유한다. 믿는 자를 하느님의 아들로서, 새롭고도 의미심장한 우주의 한 시민으로서의 참정권을 부여한다. 종교는 사람에게 자신의 혼속에서 식별할 수 있는 정의(正義)의 섬광을 따름에 있어서 무한자의 계획과 영원한 존재의 목적에 자기 자신을 그것에 따라 일치시키도록 확신시킨다. 해방된 그러한 혼은 이러한 새로운 우주, 자신의 우주 안에서 즉시 편안한 느낌을 갖기 시작한다.

 

너희가 신앙에 대한 그러한 변환을 경험할 때, 너희는 더 이상 수학적인 우주에 노예가 된 한 부분이 아니며 오히려 우주 아버지의 해방된 의지적 아들이다. 그러한 해방된 아들은 일시적인 실재의 종말이라는 냉혹한 운명에 대항하여 더 이상은 홀로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은 모든 자연 현상, 자기에게 절망적으로 대항하는 불평등과 싸우지 않으며 어쩌면 자신이 희망 없는 환상을 신뢰하거나 또는 상상력이 풍부한 실수에 자기 신앙을 고정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무력하게 만드는 두려움에 의해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는다.

 

이제는 오히려, 실재에 대한 부분적인 그림자들에 대하여 실체가 승리하는 전투를 함에 있어서 징집된 하느님의 아들들이 함께 하고 있다. 마침내 모든 창조체들은, 생명의 영원과 지위에 있어서의 신성(神性)을 달성하고자 하는 숭고한 투쟁 속에서 거의 무제한적인 우주의 모든 신성한 무리들과 하느님이 자기들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신앙으로 해방된 그러한 자녀들은 지고한 무리들과 영원의 신성한 품성들과 같은 편에서 시간의 투쟁들 속에 확실하게 모집되었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진로 속에 있는 별들도 그들을 위하여 지금 싸우고 있고, 그들은 마침내 그 속으로부터, 하느님의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있으며, 모든 것은 물질적인 고립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영원한 영적 진보의 확실성으로 변환되었다. 심지어는 시간 그 자체도, 공간의 움직이는 찬란한 모습 위에 낙원 실체들에 의해 던져진 영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네바돈의 멜기세덱에 의해 제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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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제 2 편 하느님의 본성 운영자 08-18 2181
194  제 3 편 하느님의 속성 운영자 08-18 2343
193  제 4편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운영자 08-18 2292
192  제 5 편 개인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 운영자 08-18 2119
191  제 6 편 영원 아들 운영자 08-18 1979
190  제 7 편 영원 아들과 우주와의 관계 운영자 08-18 2140
189  제 8 편 무한 영 운영자 08-18 2040
188  제 9 편 우주에 대한 무한 영의 관계 운영자 08-18 2125
187  제 10 편 낙원 삼위일체 운영자 08-19 1951
186  제 11편 낙원의 섬 운영자 08-19 2254
185  제 12 편 우주들의 우주 운영자 08-19 2038
184  제 13 편 낙원의 성스러운 구체 운영자 08-19 2074
183  제 14 편 중앙에 있는 신성한 우주 운영자 08-19 2306
182  제 15 편 일곱 초우주 운영자 08-19 2183
181  제 16 편 일곱 주(主) 영 운영자 08-19 1977
180  제 17 편 일곱 최극 영 집단 운영자 08-19 1900
179  제 18 편 최극 삼위일체 품성 운영자 08-19 2075
178  제 19편 합동 삼위일체-기원 존재 운영자 08-19 2020
177  제 20 편 하느님의 낙원 아들 운영자 08-19 1975
176  제 21 편 낙원 창조주 아들 운영자 08-19 1988
175  제 22 편 삼위일체화 하느님의 아들 운영자 08-19 1771
174  제 23 편 단독 사자 운영자 08-19 1986
173  제 24 편 무한 영의 높은 품성 운영자 08-19 2037
172  제 25 편 공간의 사자(使者) 무리 운영자 08-19 1896
171  제 26 편 중앙 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19 1814
170  제 27 편 1차 초(超)천사의 사명활동 운영자 08-19 2023
169  제 28 편 초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19 2094
168  제 29 편 우주 힘 지휘자 운영자 08-19 1917
167  제 30 편 광우주의 품성 운영자 08-19 1982
166  제 31 편 최종의 무리단 운영자 08-19 1914
165  제 2 부 지역 우주 / 제 32 편 지역우주들의 진화 운영자 08-19 1993
164  제 33 편 지역우주의 관리 운영자 08-19 2215
163  제 34 편 지역우주 어머니 영 운영자 08-20 1904
162  제 35 편 하느님의 지역우주 아들 운영자 08-20 1934
161  제 36 편 생명운반자 운영자 08-20 1820
160  제 37 편 지역우주의 품성 운영자 08-20 2328
159  제 38 편 지역우주의 사명활동 영 운영자 08-20 2175
158  제 39 편 성(聖)천사 무리 운영자 08-20 2227
157  제 40 편 상승하는 하느님의 아들 운영자 08-20 2112
156  제 41 편 지역우주의 물리적 측면 운영자 08-20 2348
155  제 42 편 에너지 - 마음과 물질 운영자 08-20 2549
154  제 43 편 별자리 운영자 08-20 2157
153  제 44 편 천상의 거장(巨匠) 운영자 08-20 2247
152  제 45 편 지역체계 관리 운영자 08-20 2071
151  제 46 편 지역체계 본부 운영자 08-20 2020
150  제 47 편 일곱 맨션세계 운영자 08-20 2056
149  제 48 편 모론시아 삶 운영자 08-20 2056
148  제 49 편 거주되는 세계 운영자 08-20 1971
147  제 50 편 행성 영주 운영자 08-20 2183
146  제 51 편 행성 아담 운영자 08-20 2283
145  제 52 편 행성 필사자 신(新)시대 운영자 08-20 2159
144  제 53 편 루시퍼 반란 운영자 08-20 2643
143  제 54 편 루시퍼 반란의 문제 운영자 08-20 2265
142  제 55 편 빛과 생명의 구체 운영자 08-20 2139
141  제 56 편 우주 합일 운영자 08-20 2109
140  제 3 부 유란시아의 역사 / 제 57 편 유란시아의 기원(起源… 운영자 08-21 2454
139  제 58 편 유란시아의 생명 태동 운영자 08-21 2184
138  제 59 편 유란시아의 해양 생명 시대 운영자 08-21 2312
137  제 60 편 초기 육지 생명 시대의 유란시아 운영자 08-21 2296
136  제 61 편 유란시아의 포유류 동물기 운영자 08-21 2382
135  제 62 편 초기 사람의 시조(始祖) 종족 운영자 08-21 2201
134  제 63 편 최초의 인간 가족 운영자 08-21 2148
133  제 64 편 진화하는 유색 인종 운영자 08-21 2243
132  제 65 편 진화의 총괄 운영자 08-21 2222
131  제 66 편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 운영자 08-21 2351
130  제 67 편 행성의 반란 운영자 08-21 2165
129  제 68 편 문명의 태동 운영자 08-21 2122
128  제 69 편 원시 형태의 인간적 제도 운영자 08-21 2208
127  제 70 편 인간 정부의 발전 운영자 08-21 2247
126  제 71 편 국가의 발전 운영자 08-21 1994
125  제 72 편 이웃 행성의 정부 운영자 08-22 2195
124  제 73 편 에덴 동산 운영자 08-22 2281
123  제 74 편 아담과 이브 운영자 08-22 2402
122  제 75 편 아담과 이브의 불이행 운영자 08-22 2511
121  제 76 편 두 번째 동산 운영자 08-22 2221
120  제 77 편 중도 창조체 운영자 08-22 1964
119  제 78 편 아담 시대 이후의 보라색 인종 운영자 08-22 2278
118  제 79 편 동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311
117  제 80 편 서방에서의 앤다이트 확대 운영자 08-22 2290
116  제 81 편 근대 문명의 발전 운영자 08-22 2234
115  제 82 편 결혼의 진화 운영자 08-22 1826
114  제 83 편 결혼 제도 운영자 08-22 2338
113  제 84 편 결혼과 가정생활 운영자 08-22 2120
112  제 85 편 경배의 기원 운영자 08-22 2272
111  제 86 편 종교의 초기 진화 운영자 08-22 2077
110  제 87 편 귀신 예찬 운영자 08-22 2197
109  제 88 편 주물 숭배, 부적과 마술 운영자 08-22 2448
108  제 89 편 죄, 희생 제물, 그리고 속죄 운영자 08-22 2463
107  제 90 편 샤머니즘 - 주술사와 사제 운영자 08-22 2359
106  제 91 편 기도의 진화 운영자 08-22 2048
105  제 92 편 종교의 후기(後期) 진화 운영자 08-22 2397
104  제 93 편 마키벤타 멜기세덱 운영자 08-22 2140
103  제 94 편 동양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321
102  제 95 편 레반트에서의 멜기세덱의 가르침 운영자 08-23 2210
101  제 96 편 야훼 - 히브리인의 하느님 운영자 08-23 2628
100  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의 하느님의 개념의 진화 운영자 08-23 2475
99  제 98 편 서방(西方)의 멜기세덱 가르침 운영자 08-23 2282
98  제 99 편 종교의 사회적인 문제 운영자 08-23 1984
97  제 100 편 인간 경험 속의 종교 운영자 08-23 2128
96  제 101 편 종교의 실제적인 본성 운영자 08-23 2152
95  제 102 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운영자 08-23 2096
94  제 103 편 종교적 경험의 실체 운영자 08-23 2172
93  제 104 편 삼위일체 개념의 성장 운영자 08-23 2092
92  제 105 편 신(神)과 실체 운영자 08-23 1856
91  제 106 편 실체의 우주적 차원 운영자 08-23 1982
90  제 107 편 생각조절자의 기원과 본성 운영자 08-23 2061
89  제 108 편 생각조절자의 임무와 사명활동 운영자 08-23 1892
88  제 109 편 조절자와 우주 창조체의 관계 운영자 08-23 1900
87  제 110 편 조절자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운영자 08-23 2021
86  제 111 편 조절자와 혼 운영자 08-24 2163
85  제 112 편 품성 생존 운영자 08-24 2096
84  제 113 편 성(聖)천사 운명 수호자 운영자 08-24 2228
83  제 114 편 성(聖)천사의 행성 정부 운영자 08-24 2275
82  제 115 편 최극(最極) 존재 운영자 08-24 1949
81  제 116 편 전능 최극자 운영자 08-24 2135
80  제 117 편 최극자 하느님 운영자 08-24 2450
79  제 118 편 최극과 궁극 - 시간과 공간 운영자 08-24 2144
78  제 119 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운영자 08-24 2480
77  제 4 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20 편 미가엘의 유란… 운영자 08-26 2473
76  제 121 편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운영자 08-26 2338
75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운영자 08-26 2469
74  제 123 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492
73  제 124 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운영자 08-26 2257
72  제 125 편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운영자 08-26 2166
71  제 126 편 혹독한 시련의 2년 운영자 08-26 2203
7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운영자 08-26 2081
69  제 128 편 예수의 성년기 초기 운영자 08-26 2302
68  제 129 편 예수의 성년 시절 후반기 삶 운영자 08-26 2332
67  제 130 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6 2402
66  제 131 편 세계의 종교들 운영자 08-26 2170
65  제 132 편 로마 체류 기간 운영자 08-26 2132
64  제 133 편 로마에서 돌아옴 운영자 08-26 2336
63  제 134 편 과도기 시절 운영자 08-26 2355
62  제 35 편 세례 요한 운영자 08-26 2296
61  제 136 편 세례와 40일 운영자 08-26 2083
60  제 137 편 갈릴리에서의 체류기간 운영자 08-26 2183
59  제 138 편 천국 사자(使者)들의 훈련 운영자 08-26 2179
58  제 139 편 열두 사도 운영자 08-26 1855
57  제 140 편 열 두 사도를 세움 운영자 08-26 2296
56  제 141 편 대중 활동의 시작 운영자 08-26 2048
55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의 유월절 운영자 08-26 2075
54  제 143 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운영자 08-26 2081
53  제 144 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운영자 08-26 2163
52  제 145 편 가버나움에서의 중대한 4일간 운영자 08-26 2213
51  146 편 갈릴리의 첫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6 2061
50  제 147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의 방문 운영자 08-26 2123
49  제 148 편 벳새다에서의 전도자들 훈련 운영자 08-26 2040
48  제 149 편 두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047
47  제 150 편 세 번째 설교 여행 운영자 08-27 2177
46  제 151 편 해변에 머물면서 가르침 운영자 08-27 2048
45  제 152 편 가버나움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 운영자 08-27 2098
44  제 153 편 가버나움에서의 위기 운영자 08-27 1982
43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운영자 08-27 2053
42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운영자 08-27 1945
41  제 156 편 두로와 시돈에서 체류 운영자 08-27 3075
40  제 157 편 케자리아-빌립보에서 운영자 08-27 2077
39  제 158 편 변모의 산 운영자 08-27 2119
38  제 159 편 데가볼리 전도 여행 운영자 08-27 2239
37  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운영자 08-27 2038
36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운영자 08-27 2084
35  제 162 편 초막절 축제 운영자 08-27 2284
34  제 163 편 마가단에서의 70인의 임명식 운영자 08-27 2255
33  제 164 편 봉헌식 축제 운영자 08-27 1893
32  제 165 편 페레아 전도가 시작됨 운영자 08-27 2117
31  제 166 편 페레아 북쪽 지방의 마지막 방문 운영자 08-27 1989
30  제 167 편 필라델피아 방문 운영자 08-27 2044
29  제 168 편 나사로의 부활 운영자 08-27 2473
28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운영자 08-27 2210
27  제 170 편 천국 운영자 08-27 2035
26  제 171 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운영자 08-27 2151
25  제 172 편 예루살렘에 들어감 운영자 08-27 2191
24  제 173 편 예루살렘에서의 월요일 운영자 08-27 1938
23  제 174 편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운영자 08-27 2075
22  제 175 편 성전에서의 마지막 설교 운영자 08-27 2057
21  제 176 편 화요일 저녁 감람산에서 운영자 08-27 2203
20  제 177 편 수요일, 휴식을 취한 날 운영자 08-27 3323
19  제 178 편 야영지에서의 마지막 날 운영자 08-27 3146
18  제 179 편 최후의 만찬 운영자 08-27 3395
17  제 180 편 작별 설교 운영자 08-27 3098
16  제 181 편 마지막 훈계와 경고 운영자 08-27 3272
15  제 182 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운영자 08-27 3471
14  제 183 편 배반과 예수의 체포 운영자 08-27 3570
13  제 184 편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운영자 08-27 3222
12  제 185 편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 운영자 08-27 3362
11  제 187 편 십자가 형 운영자 08-27 3557
10  제 188 편 무덤에 있던 시간 운영자 08-27 3492
9  제 189 편 부활 운영자 08-27 3709
8  제 190 편 예수의 모론시아 출현 운영자 08-27 3421
7  제 191 편 사도들과 여러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운영자 08-27 3482
6  제 192 편 갈릴리에서의 출현 운영자 08-27 6797
5  제 193 편 마지막 출현과 상승 운영자 08-27 6866
4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운영자 08-27 6359
3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운영자 08-27 6467
2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운영자 08-27 7065
1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운영자 07-27 16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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