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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현 시리즈 샤우드 7 - 2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23-02-14 (화) 17:16 조회 : 380

믿음들


아까, 쿠투미가 슬로베니아의 대규모 모임(‘마스터들의 마법(Magic of the Masters)를 가리킴)에 왔었다고 했잖아요. 그의 영혼 아키라와 관련해서 굉장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그 이야기 속에서 그는 이런 결론에 다다릅니다—혹은 전 쿠투미를 그런 결론으로 이끈 건 아키라라고 생각합니다만—“중요한 건 당신이 뭘 믿는가가 아니다. 뭘 허용하는가이다.” 중요한 건 여러분이 뭘 믿느냐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지점에 다다랐습니다—5년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요. 믿음들이 아직, 말하자면 아직 중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믿음들조차 놓아버릴 수 있는 이런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믿음들조차 사라집니다.

 

믿음들은 측면입니다. 믿음은 말하자면, 인간에게서 파생된, 인간에게서 나온 측면들입니다. 그것은 마음(mind)의 측면들입니다. 그것은 신념체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믿는다는 거죠(아다무스 키득).

 

있죠, 아이에게, 믿음이란 놀이터의 장난감 같은 겁니다. 그네와 시소, 회전목마 같은 거죠. 믿음들은 멋집니다. 아이에게 놀고 경험할 거리를 만들어 주니까요. “놀이터에 가서 다른 애들이랑 모래 장난을 치면 어떤 느낌일까?” 믿음이란 그네와 같습니다. “저거 한 번 타 보자. 그네 타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해 보자.” 그래서, 아이에게 믿음이란 재밌는 놀이죠.

 

그러나 아이가 자라나 그네는 어떤어떤 방식이고 언제나 그런 식일 거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 이제 갑자기 믿음이란…… 거대한 돌기둥 같은 게 됩니다. 거대한 회색 돌기둥 같은 게 되어서, 인간은 실제로 거기에 갇혀 버립니다. 갇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길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되지요. 믿음 하나, 돌기둥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라면 그냥 빙 돌아서 계속 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믿음이라는 이 커다란 돌기둥들은 여러분을 그 안으로 유혹해 들입니다. 그리고 한 번 들어가게 되면 빠져 나오기가 아주 어렵지요. 그리고 이게 믿음이 단 하나가 아니라, 땅에서 이런 거대한 돌기둥이 수없이 솟아오르는 겁니다.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말이죠. 땅에서 죄 솟아오릅니다. 이제 여러분의 현실 풍경 자체가 이런 돌기둥, 이런 믿음들로 가득합니다. 어디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요. 그것들이 거기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거기 있고, 시야를 가립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이 회색 돌기둥들이 수없이 많으니까요. 낡은 신념들이 거기 떡 버티고 서 있으니까요. 그것들이 여러분의 온갖 잠재성의 시야를 가려 버립니다. 신념들은 많고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들을 믿기 시작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면요, 우리가 어디쯤 와 있냐면요, 용이 와서 말합니다. “여기에 믿음이 있다. 당신은 당신이 이걸 갖고 있었는지도 몰랐을 거다. 하지만 그것이 여기 있다. 이것은 너무나 큰 장애물이다. 이것을 부수어 버리거나, 통합하거나, 없애 버릴 준비가 되었는가? 이 믿음을 놓아버릴 준비가 되었는가?”

 

아까, 측면은 믿음 뒤에 숨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돌기둥 뒤에는 측면이 숨어 있지요. 그리고 측면은 그 믿음을 별로 놓아버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측면은 떠나고 싶지 않으니까요. 또한 측면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라는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믿음을 필요로 한다고 느끼니까요. 여러분의 정체성, 여러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 여러분 삶의 방향성을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은 이 수많은 돌기둥, 신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측면들인 것이죠. 그 중 일부는 오래 전, 아주 오래 전에 심어졌습니다. 가령 “남자는 다 돼지다”같은 믿음이요. 네, 누군가 방금 그러네요. “음 그건 사실이잖아.” (청중 웃음. 아다무스 키득)


남자는 다 돼지라는 믿음. 자,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인간에게 그것은 풍덩 뛰어들 만한 굉장한 경험이 됩니다. 여러분은 그 돌기둥 속으로, 그 믿음, 그 측면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한 경험이 되지요. 어느 정도까지는요. 여러분은 그렇게 행동을 하고 그것을 경험합니다. 네, 남자는 정말 돼지가 됩니다. 그렇게 믿으면,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전반적으로 그런 것에 이끌리게 될 테고, 그럼 그런 일이 펼쳐지게 되니까요.

 

“삶에서 성공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해.” 샴브라 대부분의 문화에서 그것은 아주 깊이 뿌리박힌 믿음입니다—열심히 일하는 게 곧 성공— 그리고 한동안은 그러는 것도 재밌습니다. 인간은 그 안으로 풍덩 뛰어들어, 말하지요. “오, 난 열심히 일할 거야.” 겉으론 불평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그걸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뿐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삶 어디에든 적용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인가 하고 있다면, 그건 여러분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론 불평을 한다 하더라도요.

 

그래서 여러분은 그 믿음 속으로 첨벙 뛰어 듭니다—열심히 일하고 늦게까지 일해야 성공한단 믿음이요. 간혹 여러분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난 그렇게는 안 할래. 난 열심히, 늦게까지 일 안 할 거야.” 하지만 그 때에도 그것은 믿음입니다. 마음 한편에서 여러분은 말하죠. “음, 그럼 돈을 많이 못 벌겠지, 아마 성공도 못할 거야. 하지만 그래도 뭐 상관 안 해.” 그것은 여전히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죠. 여러분의 시야는 물론, 허용입니다. 여러분의 시야는, 여러분의 갈 길은 허용입니다. 허용은 어렵죠. 이 온갖 돌기둥 사이에 있다면요. 이 온갖, 커다란 회색 돌, 차가운 구조물들이 앞길을 방해하고 있다면요. 허용이 아주, 아주 어려울 겁니다.

 

여러분은 허용을 말하고, 허용을 생각하고, 허용을 그 현실 풍경 속 그저 또 하나의 믿음이라 여기려 합니다. 그러나 허용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측면이 아닙니다. 존재의 방식이지요. 그토록 간단합니다. 허용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허용에는 구조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흐름입니다. 그것은 “내 모든 것”이지, “내가 제한한 모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믿음들

자, 인간의 믿음들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린다, 마이크를 들어주세요. 사람들이 흔히 갖는 믿음들 또 뭐가 있을까요? 어쩌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믿음들도요. 믿음입니다.

 

실비아: 치유되려면 외부적인 뭔가가 필요하다는 믿음이요.

아다무스: 그렇죠. “도움은 외부에서 온다. 넌 형편없는 인간일 뿐이야. 그래서 너 스스로는 할 수 없지. 자, 그러니 바깥에서 얻어야 해.” 좋습니다. 좋아요. 몇 명 더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레베카: 한계 같은 것들이요. 어떤 특정한 것들만 할 수 있다는.

아다무스: 네네. 그런데 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주시죠. 당신은 늘 그런 식이더라고요.

레베카: 어느 정도만 여행할 수 있다(실비아 키득).

아다무스: 네?

레베카: 어느 정도까지만 여행할 수 있다.

아다무스: “어느 정도까지만 여행할 수 있다.” 네. 그래요.

레베카: 저는 여행을 훨씬 더 하고 싶거든요. 네, 그래서요.

아다무스: 좋습니다. 뭣 때문에 제한을 받습니까? 돈, 에너지, 시간?

레베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문화 같은 것들이요. 남들에게 들어온 말들, 프로그램되어 온 것들……

아다무스: 좋아요. 참으로 잿빛 믿음이군요. 믿음은 측면이라고 제가 말한 걸 잊지 마세요. 좋습니다. 몇 명 더요. 인간들의 흔한 믿음 또 뭐가 있을까요? (누군가 “오, 조심해요!”라고 말함)

 

린다: 네! 저 좀 도와주세요! 고마워요!

아다무스: 남자는 다 돼지라니까! (웃음)

린다: 전 그런 말 안 했어요!

아다무스: 네, 제가 한 말이죠(더 웃음.)

린다: …… 실질적인 정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죠!

 

아다무스: 말씀하세요.

스콧: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 봤거든요. 지난 몇 년, 한 삼 년 간 저의 이 여정에서요. 왜냐하면 저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던 게 바로 ‘그리고’의 힘이었기 때문에요. 우리는 삶에서 뭔가 큰 일이 일어날 때, 보통은 곧바로 이렇게 생각하도록 길들여졌잖아요. “오, 세상에, 이제 더 나빠질 일만 남았네. 돈 때문에 힘들어지겠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파트너, 샘의 건강 문제를 말하는 건데요. 크게 한 번 바닥을 쳤을 때, 저는 이랬죠. “오, 세상에! 상황이 더 악화되는 그런 에너지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그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그라운딩 덕분이었어요. ‘그리고’의 힘이 제가 그럴 수 있도록 도운 거죠. “아니야. 우리 삶은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좋아지고 있고 더 진짜가 되어가고 있어.”

아다무스: 네. 왜 그런 거죠? ‘그리고’ 속에 뭐가 있어서요?

스콧: 자기 자신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저 자신을 멈추는 거죠. “아.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믿음에 들러붙어 있는 그런 생각을 방금 했구나. ‘오 이거 더 나빠지겠는 걸. 이럴 때 사람들은 으레 다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러고는 전 거기에 ‘그리고’를 넣죠. 그러면 “음, 왜 꼭 더 나빠져야 하지? 왜 더 나아질 순 없지? 더 자유로워진다든지, 더 유연해진다든지, 더 배운다든지, 그밖에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잖아? ‘그리고’라면……”

아다무스: ‘그리고’가 언제나 거기 있던 잠재성을 밝혀 보여주는군요.

스콧: 그렇죠.

아다무스: 하지만 단선적인 인간 모드, 혹은 굳은 믿음 모드에 있다면, 뭐라고 표현하든지간에요, 그런 모드 속에 있다면 그런 잠재성들은 빛나지 않겠지요. 그런 잠재성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겁니다. 한 가지는 있겠죠—“이제 순식간에 내리막길을 내달릴 거니까 꽉 잡아. 거친 여정이 될 테니까.” 바로 그때 멈춰야 합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은 진실로 멀린(Merlin)이 되어 말해야 합니다. “잠깐 멈춰 봐. 난 ‘그리고’로 들어갈 거야. 훨씬 더 많은 잠재성들이 있어.”

그런 것을 꼭 멘탈적으로 인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건 멘탈적으로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오니까요. 여러분은 말합니다. “이 상황에 잠재성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걸 알아.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기에 마스터와 함께 있어. 마스터는 우리가 이 내리막길을 가는 동안 자동적으로 모든 걸 지혜로 변환할 거야.” 바로 그때 내리막길은 전혀 내리막길이 아니게 되지요. 여러분은 ‘그리고’로 들어가고, 그저 허용합니다. 바로 그게 모든 걸 바꾸죠. 갑자기 해결책 열 개가 막 생겨나지는 않더라도, 갑자기 확 밝아지는 겁니다. 좋아요, 훌륭합니다. 몇 명 더요. 몇 명 더요. 인간의 믿음이요.

 


샴브라1(여자): 음. 믿음이요. 제게 어린 딸이 있어요. 제가 들은 바로는,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 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버릇 나빠진다고요. 세상에서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거죠.

아다무스: 흠. 이상한 믿음이군요.

샴브라1: 이상한 믿음이에요.

아다무스: 네, 네. 그래서 당신은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해 줍니까?

샴브라1: 네.

아다무스: 많이요?

샴브라1: 네.

아다무스: 버릇이 나빠졌나요?

샴브라1: 아니요.

아다무스: 오, 거 봐요.

샴브라1: 네.

아다무스: 그딴 믿음 빨리 버려요!

샴브라1: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들어서요.

아다무스: 그건—쿠쿵!— 통합되었습니다.

샴브라1: 네.

아다무스: 네, 네.

샴브라1: 맞아요.

아다무스: 하지만 이상하죠, 네, 이상해요. 이번 달에, 측면학의 달에, 여러분은 깨닫게 될 겁니다. 나에게 믿음들이 참 많구나. 그런 건 어떻게 생겨났을까? 또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하는데요, 깨달음에는 그런 믿음을 위한 자리는 별로 없습니다. 불필요하죠.

샴브라1: 음음.

아다무스: 네, 맞아요.

 


자, 다음 질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샴브라들 이야기는 아니고, 지구 전반적인 거죠. 애들이든, 어른들이든, 노인이든이요— 그들로서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게 나을까요, 아님 안 갖는 게 나을까요? 자, 저는 샴브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잠시만 가만히 느껴 보죠.

깨어남이 시작되기 전에, 여러분이 그냥 보통의, 좋은, 평범한, 일상의 사람이었을 때(아다무스 키득), 믿음이 있는 게 나았나요, 없는 게 나았나요? 좋은 질문이죠. 대답은 누가……

 

메리: 오, 하느님. (웃음)

아다무스: 린다는 누가 자기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거 안 좋아해요.

린다: 진짜요?!

메리: 뭐라고 했죠?

아다무스: 아니에요. (더 키득)

메리: 못 들었어요.

아다무스: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은—여러분이 머글이라 부르는 그들이요— 믿음을 갖는 게 낫습니까, 안 갖는 게 낫습니까?

메리: 믿음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죠.

아다무스: 네, 하지만 전반적으로요.

메리: 아마 전반적으로는 있는 게 좋다고 봐요. 전반적으로 믿음은 기준이 되어 줄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바탕으로 뭘 하고, 파악하고, 진짜라 믿고 그런 거요—사람들 대부분은 감당하지 못할 거 같아요. 머글들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모든 것이라는 가능성을 감당하지 못할 거 같아요.

아다무스: 음음. 좋습니다. 몇 명 더요. 보통의, 평범한, 평균적인 사람들에게 믿음은 좋은 걸까요, 아닐까요?

 

태드: 좋죠.

아다무스: 네, 그렇죠.

태드: 그래요.

아다무스: 네.

태드: 네.

아다무스: 왜죠?

태드: 지금 떠오른 생각인데, 믿음과 법칙들이란 게, 그 책에 나오는 그거랑 같은 것 같아요.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보면, 거기에는 아무런 체계가 없잖아요. 아무 것도 없죠.

아다무스: 맞아요.

태드: 제가 기억하기로 고등학교였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막대기를 들고, 사람 머리가 꽂힌 막대를 들고 행진을 하죠. “돼지를 죽여라!” 모르겠어요, 그게 되게……

아다무스: 정말 흥미로운 걸 읽었군요, 허! (태드 키득) 그래도 설명은 잘 되네요(그들 웃음).

태드: “돼지를 죽여라! 죽여라……” 하지만, 네. 평범한 머글들에게는, 믿음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믿음이 다 다르고, 그러면……

아다무스: 아뇨. 전 믿음 일반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태드: 네.

아다무스: 믿음 일반은 괜찮다.

태드: 체계와 질서에는 좋죠. 말하자면요.

아다무스: 물론이죠. 어떤 이들은 믿음이 지나치고, 어떤 이들은 부족하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믿음은 좋은 것이다……

태드: 안 그러면 서로 충돌할 테니까요.

아다무스: …… 인간들이요?

태드: 네, 전 믿어요……

아다무스: 네, 좋아요.

태드: …… 그게 좋을 거라고.

아다무스: 그렇게 믿는군요! (아다무스 키득)

태드: (목소리를 깔고) “제가 믿기론……”

아다무스: 네, 네!

태드: 고마워요.

아다무스: 두 명 더요(몇몇 키득). 믿음은 인간에게 좋을까요?

 

헨리에타: 음, 믿음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죠, 특히……

아다무스: 혹은 방향성을요—삶의 방향성요. 둘 다죠.

헨리에타: 특히, 종교 분야에 있는 사람들, 특정 교파나 분파에 있는 사람들, 종교적인 그런 사람들에겐. 믿음이 전부죠. 그들은 그것을 위해 사니까요!

아다무스: 믿음이 없는 종교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헨리에타: 오, 하늘님! (그들 웃음)

아다무스: 오, 크림슨 서클. 좋아요(더 웃음). 당신은 종교가 없으니까. 해당 없죠. 에!

헨리에타: 네, 네.

아다무스: 그럼 당신은 신자 찬성론자입니까, 아니면……

헨리에타: 내가 신자냐고요?

아다무스: 네.

헨리에타: 더는 아니죠! (웃음)

아다무스: 선택 찬성론자군요! 인간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까?

헨리에타: 깨달음의 길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이나, 우리 대부분이 이미 지나 온 방향으로 가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그건 정말……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이정표가 반드시 있어야겠죠. 근데 이걸 설명하기가 참 어렵네요. 제가 어디 높은 데 있는 것마냥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아다무스: 음.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헨리에타: 아니죠(키득). “평범한” 실존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에게, 믿음은 사실 필요하죠. 삶의 이정표이자 준거틀이 되니까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아다무스: 네, 맞아요.

헨리에타: 그들은 허용이나 ‘그리고’ 속에 살지 않고, 이런 게 존재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요.

아다무스: 물론이죠. 예를 들어, 힌두교에서는, 사실 처음에 그건 종교가 아니었는데요. 힌두교는 사실 그곳 사람들에게 이정표 같은 거였습니다—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는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화장실 가는 방식 같은 것까지 온갖 것들에 관해서요— 그런데 신이라는 걸 만들어내기 시작했죠. 열 몇 가지 신이 십만이 넘는 신이 되었고, 각 신마다 수많은 믿음들이 생겼죠. 그것은 훌륭한 집단생활의 가치를 넘어 종교가 되었지요. 믿음으로 변해버렸어요.

헨리에타: 음, 또 하나는, 파워를 줘버렸죠.

아다무스: 맞아요. 맞아요.

헨리에타: 파워를 자기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그것을 이런 믿음이나 신이나 상징들, 의미를 갖는 물체들에 갖다 놓으면, 그러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삶에 대한, 자기의 존재 방식에 대한 소유권을 갖지 못하게 되죠.

아다무스: 그렇다면 이런 건가요. “믿음을 인간에게 줘 버리자. 계속 그렇게 두자. 바꾸려 하지 말자. 그것이 그들에게 봉사하니까.”

헨리에타: 그것은 그들에게 봉사하죠. 그렇지 않을 때까지요.

아다무스: 저처럼 말하지 마세요(웃음). 고맙습니다.

 


린다: 밖에 눈이 오는 것 같은데요. 그것도 믿음인가요? 아니면, 뭔가요?

아다무스: 그건 현실 인식이죠(누군가 “그건 관찰이죠”라고 말함). 관찰이죠.

헨리에타: 네.

아다무스: 만일 눈과 추위가 당신에게 별로 잘 안 맞는다고, 그래서 예를 들어 하와이에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면, 그건 좀 다르지만요(웃음). 하지만 밖에 눈이 온다고 관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에 —앉아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특히 감정적인 것들을 덕지덕지 붙인다면, 그러면 그건 믿음이 되지요. 그럼 그건……

린다: 좋았어!

아다무스: 돌기둥이 되겠죠. 다시 한 번, 제가 말한 걸 기억하세요. 아이에게 믿음이란 놀이터와 같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서 재밌게 놉니다. 배우고, 경험하고, 넘어지기도 해요. 누군가와 부딪히고요, 그네 같은 데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엄청 신나게 노는 겁니다. 하지만 나중이 되면, 그런 믿음들이 커다란 회색의, 차가운 돌기둥으로 변하고, 여러분은 그 안에 갇혀 버립니다. 그 안에 갇히지 않더라도, 길에 방해물이 됩니다. 길을 막아버리죠. 흐름의 길을 막아버립니다.

 


자, 좋은 질문이었고요—좋은 대답들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간에게 믿음은 필요한가? 믿음은 인간에게 한도를 정해주지만, 인간이 그 믿음을 믿기 시작할 때, 그것은 측면으로 변합니다. 그 측면은, 믿음 뒤에 숨어 버린 측면은, 끊임없이 인간을 잡아 두고 제한합니다.

 

어떤 믿음들은 실제로 재미있고요, 또 실제로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이 점을 한 번 더 기억했으면 합니다. 매션이냐 완전한 자유냐 하는 질문에 대답할 때 말이에요. 매션 속에서—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삶이지요. 일종의 임무와 같은 유형이지만요—그때 여러분은 믿음들을 갖고 있을 것이며, 그건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습니다. 그 믿음들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여러분이 선택한 거라면 말이죠. 그 믿음들이 측면이 아니라 단면(facets)이라면 말이죠. 그리고 또한 여러분이 이걸 깨닫기 시작하면…… 이건 조금 있다 더 설명할게요.

 

믿음들은 감각입니다. 그것은 감각입니다. 우리는 감각이 2십만 개는 더 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음, 믿음은 다른 감각들보다는 좀 더 인간에 기반한 감각입니다만, 그래도 그것들은 감각이 됩니다.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의 하나죠. 눈과 추위가 해롭다, 혹은 불편하다 믿는다면(린다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아다무스 웃음), 현실을 그렇게 인식하게 될 겁니다.

 

이제, 믿음들 때문에 현실을 그렇게 인식할 때,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에너지가 들어와 말합니다. “좋아.” 에너지는 어떤 식이 되었든 개의치 않습니다. 에너지는 말하죠. “그게 너의 믿음이구나. 그게 네가 선택한 거구나. 그게 너의 관점이구나. 그럼 우리가 너에게 그걸 줄게. 너에게 춥고 따분하고 눈 오고 비참하고 불편한 경험을 줄게.” 그럼 인간은 울부짖죠. (린다가 “울”자 몇몇 키득)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인간은 그걸 사랑합니다. 왜냐, 그건 경험이니까요. 그건 그저 경험할 무언가, 할 무엇인가일 뿐입니다. 첨벙 뛰어들 무엇인가요.

 

이제 여러분이 그것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비행기 타고 하와이로 가면 돼요, 린다—그러면 갑자기 여러분은 “오, 음, 그렇다면 믿음이란 꽤 재미있을 수 있는 거구나. 난 믿음에 갇혀 있지 않아. 그것은 내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아. 어쩌면 이제는 그 믿음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어. 따라서 에너지가 더는 그 믿음을 지원하려 하지 않을 거야.” 갑자기, 그 믿음들은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여러분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를 해 보자면요. 매션과 완전한 자유라는, 맨 처음 질문이 있었죠. 결국 요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어떤 것들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겁니다. 아마 여러분의 깨달음 속에 있는 뭔가로 뛰어들겠지요. 그저 나무 아래 앉아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아다무스 키득). 부처처럼 그러고 앉아 온종일 명상하진 않을 거예요. 아마 아닐 거예요. 어쩜 부처도, 부처조차도 그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아마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아마 경험 속으로 뛰어들 겁니다. 여러분의 인간 옆에는 이제 마스터가 서 있으니까요.

그리고 경험은 그렇게 여러분을 옭아매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을 붙잡아두지 않을 거예요. 갑자기, 경험의 기쁨이 생깁니다. 경험의 두려움보다는요.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리라는 두려움보다는요. 갑자기 경험의 기쁨이 생깁니다. 아마 그런 일이 일어날 겁니다. 왜냐하면—마스터는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마스터는 그저 수수방관, 아무 것도 안 하고 이 모든 걸 지켜보기만 할 테니까요— 그러나 아마 인간은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경험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겁니다. 여기서 제 요점은요, 중요한 건 여러분이 뭘 믿느냐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에겐 물론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무엇을 허용하느냐입니다.

 

 

 

허용

자, 허용이 무엇일까요? 허용이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듣기에는 꽤 간단하죠. “나는 허용한다.” 그러나 저는 많은 샴브라들이 그것을 믿음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걸 압니다. (청중 “오오”, “음음”) 측면으로 만들어 버리죠. “나는 허용해야만 해. 나는 허용을 믿어.” 허용은 믿음이 아닙니다. 허용은 그저 허용입니다. 허용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잠깐만 고요하게 있으면서, 잠재성들에 나를 열겠어.”—그것은 “그리고”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 잠재성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야.” 왜냐하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잠재성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허용함으로써, 이 오래된 돌기둥 같은 믿음들을 제거해 버리게 됩니다. 용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죠.

 

허용은 그저 허용입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은 인식되지 않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 여러분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허용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내 길에서 비켜서겠다.” 아이엠이, 마스터가, 인간의 ‘진정한’ 표현이, 낡은 믿음들이란 측면으로 점철되지 않은 인간이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에너지와 함께 놀기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허용은 이런 겁니다. 인간이…… 저는 가끔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한계에 다다른 인간은 그 다음에 뭘 어째야 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멘탈적으로도 지칠 대로 지쳤고요. 인간의 해결책은 전부 다 알아봤습니다. 그러나 아주 협소한, 믿음 지향적인 방식으로 바라보았죠. 아주 작고 비좁은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갇혀버렸어요. 그들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 채,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제 그들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말합니다. “아! 그냥 허용할래.” 그러면 그것이 바로 그 길을 열어 줍니다. 지금 FM(故 존 쿠데르카를 가리킴)이 여러분 모두에게 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바로 그 길을요. 마스터와 인간과 아이엠의 의사소통 통로를 말이에요. 그것이 직관, 그리고 바로 그 지혜로의 길을 열어 줍니다. 그 지혜가 바로 지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뭘 믿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전 이번 달이 여러분의 믿음을 전부 놓아 버리기 좋은 달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죽도록 두렵겠죠. 인간은 믿음을 좋아하니까요. 이렇게 말하기는 죽도록 두려울 겁니다. “내 믿음을 전부 다 포기하겠다.” 그게 여러분의 컴퍼스니까요. 바로 지금 여러분을 계속 지켜 주고 있는—지켜주고 있다고 여러분이 생각하는—안내 시스템이니까요. 하지만 사실 그것은 여러분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지요.

 

용이 들어와 그 모든 믿음들을 탐사하기에 얼마나 좋은 달인가요. 낡은 믿음들이 너무나 많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들은 여러분이 알아차리는 순간 곧바로 사라져버릴 수 있으니까요. “으으! 난 저거 싫어. 저걸 선택하지 않을래. 나는 언젠가는 인간 속으로, 마스터답게 깨달은 경험 속으로 들어갈 거야. 저 오래된 낡은 것들은 더는 필요 없어.”

 

허용에는 미리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펼쳐져야만 해.” 허용은 이런 겁니다. “모르겠어. 인간으로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하지만 난 그것을 경험하는 쪽이 되려고 해. 나는 이 이야기의 더 큰 의식과 지혜를 허용해. 나는 모든 잠재성들을 허용해. 나는 나 자신이 저 낡은 개념들을 놓아버리도록 허용해. 뭔가를 이루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믿음, 깨달음은 인생 마지막에만 온다는 믿음, 혹은 깨달으려면 영적으로 공부해야만 한다는 믿음들 따위. 그 모든 측면들을 나는 놓아버려. 이제 그것들을 내 삶의 지혜로운 단면으로 갖고 올 거야. 허용할 거야.”

 

허용은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허용은 그저 허용입니다—여러분 자신을 여는 거죠. 세상을 여는 게 아니라요. 사람들이 다가오도록 놔두고 여러분에게서 뭘 훔쳐가게 놔두는 게 아닙니다. 허용은 여러분과 여러분 자신, 마스터와 아이엠 사이의 일일 뿐입니다. “나는 내 전부를 허용한다.” 그뿐입니다. 그때 그 돌기둥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것들은 더 이상 여러분을 가두어 두었던 커다랗고 차가운 돌이 아니라, 갑자기 다시 여러분을 섬기는 에너지로 돌아옵니다. 순수한 에너지일 수도, 돈이라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갑자기 그것들은 이제 믿음에서 허용으로 변환됩니다. 사실은 여러분의 아름다운 일부분인 단면으로 변환됩니다.

 

자, 이 점을 깊이 호흡해 봅시다. 이게 1부였습니다. 여러분이 뭘 믿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쿠투미가 그렇게 훌륭한 말을 한 것은 정말이지 아주 오랜만에 들어봤지 뭐예요. 여러분이 가진 믿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허! 그런 것은 아무 상관없어요. 여러분의 믿음들은 어떻게 보면 가짜입니다. 어렸을 때, 혹은 영적으로 미성숙할 때는 재미있죠. 하지만, 성숙해지면 불현 듯 깨닫게 됩니다. “그런 믿음들이 사실 나를 붙잡아 두고 있었구나.” 여러분이 뭘 믿느냐는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살 거라고 믿고 있는지 어떤, 여러분이 깨달을 거라고 믿고 있는지 어떤지, 혹은 뭔가가 여러분의 깨달음을 가로막고 있다고 믿고 있는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뭘 허용하고 있는가입니다.

 

이 점을 깊이 호흡하면서, 잠시 허용해 봅시다.

 

허용 속에는, 그 무엇에 대한 강압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만트라를 암송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선언 따위도 하지 않아요. 그저 이런 겁니다. “나는 내 전부에 나를 연다. 인간으로서, 나는 더 이상은 이 온갖 책임을, 온갖 짐과 두려움을 떠안을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의 전부를 허용한다.”

 

자, 이번 달은, 측면 작업을 하기에 아주 훌륭한 때입니다. 여러분 몇은 이미 꿈 속에서 시작을 했지요(아다무스 키득). 또 믿음에 대한 작업도요. 잊지 마십시오. 측면은 믿음 뒤에 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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