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음, 있죠, 인간은 아주, 아주 오랫동안 진실을 추구해 왔습니다. 항상은 아니에요. 항상은 아닙니다. 저 옛날 레뮤리아 시대나 아틀란티스 초기에는 사실 진실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의식 속에 있지 않았죠. 진실에 대한 논의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레뮤리아 시대에는, 여러분은 발견하느라 너무 바빴지요. 이 지구를 발견하고, 에너지가 여기 이 영역에서 어떻게 합쳐지고 또 작용하는지를 발견하느라고요. 지구 위 다양한 세계들, 요정의 세계, 숲의 세계, 동물과 물의 세계를 발견하느라고요. 여러분은 환생하느라, 여러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라 너무 바빠서, 이 진실이라는 것이 결코, 결코 의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사전에 없었고요. 입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아틀란티스 후반에 가서야 바뀌기 시작했죠. 특히 인간들이 근원(Source)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요. 그때는 신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신이라는 의식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근원을 찾으려고 했죠. 모든 게 어디서 흘러 나왔는가? 그들에게는 사실 에너지라는 말도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에너지는 어디서 흘러 나왔는가? 그래서 그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근원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우리가 지금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이 단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진실은 무엇인가? 삶의 이 모든 것들의 진짜 의미,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고 나서 이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는 아주, 아주 오랫동안 사라졌습니다. 아틀란티스 몰락 직후 존재들은 지하로 들어가 살았는데요, 결국에는 세상으로 나왔습니다만, 그때는 사실, 진실이라는 의식이 다시 없어져 버렸지요. 진실의 암흑기였다고 할까요. 이집트 시대 초기에 와서야, 이 진실이라는 개념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진실은, 혹은 진실에 대한 탐구는 아주, 아주 오랫동안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 시대에—아!— 진실은 유행이 되었죠. 그리스 시대는 너무도 철학적이었고요, 그 당시에 실로 엄청나게 의식이 확장됩니다. 그래서 진실이라는 단어가 또 다시 쓰이게 되었죠. 또 다시 의식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다소 철학적이 되어 버렸지요. 진실에 관해 수많은 토론이 벌어졌고요. 무엇이 진실인가, 수많은 논쟁과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진실에 대해 그토록 토론을 하고 그 많은 책들까지 썼음에도, 그 누구도 정말로 진실이 무엇인지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진실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진실이라는 개념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사람의 의식이 더 깨어 있을수록, 진실에 대한 욕구도 크다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의식이 깨어 있을수록 진실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도 더 커집니다. 그들은 진실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답을, 의미를, 진실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요, 일단 진실이라는 이 개념이 생기면, 그것은 머리(mind)로 가게 됩니다. 멘탈적 개념이 되지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될 만한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멘탈로 들어가게 되면, 머리가 그것을 가지고 노는 방식이 있습니다. 머리는 논쟁을 일삼지요. 숱한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요. 어떻게 보면, 절대로 답을 갖고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그러는 거죠.
그래서 진실은 거대한 머리의 게임(mind game)이 됩니다. 머리에는 엄청난 게임이지요. 어쩌면, 머리에는 궁극의 게임이겠지요. 그러나 머리가 인위적인 느낌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머리는 그 자체로는 진짜 느낌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지요— 머리의 진실 탐구도 실은 진짜가 아닙니다. 그건 멘탈적 시도죠. 하지만 머리는 사실 자기가 진실을 찾지 못하리라는 걸 압니다. 사실은 진실을 찾고 싶어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이건 머리의 거대한 철학적 게임이 됩니다. 진실은 의식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보다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의 주제인데도 말이에요.
잠깐 느껴 보세요. 들여다보세요. 사람들이 어떤지 본다면—사람들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들은 의식적으로 상당히 깨어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저 가까스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 인식하고 있죠— 잠시 그들을 느껴 보세요. 그들에게는 진실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참이 있고 거짓이 있다는 정도의 단순한 개념뿐이죠. 하지만 제가 말하는 건 더 깊은 차원의 진실, 의미, 목적입니다.
그래서, 진실은 거대한 머리의 게임이 되었고요, 그것은 실로 깨달음으로 가는 여러분의 여정에서 거대한 주의분산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제가 진실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 다루겠지만요. 아무튼 저는 지금까지 진실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스터와 인간과 아이 엠 사이의 이 새로운 의사소통 연결이 열리기 전까지는요.
잠시 느껴 봅시다. 진실을요.
(침묵)
진실. 마스터와 인간과 아이 엠의 이 멋진 의사소통 연결이 궁극적으로는 바로 그것입니다. 진실. 인간이 아주, 아주 오랫동안 찾아왔던 것, 그러나 결코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있죠, 제가 보기에 진실은 두 종류입니다. 외적 진실들이 있죠. 그리고 사실 하나의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진실이지요. 제 뒤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진실입니다. 제 뒤에 나무가 있다는 사실은 진실이에요. 진실은 아주 외적인 것이 될 수 있고요, 기본적으로 진실이란 인식된 것입니다. 인식된 것입니다. 그것은 야자수와 대양을 인식하는 것처럼 직접적인 것, 물리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실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 혹은 그러하다고 믿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은 사실, 어떻게 보면 의식의 수준입니다. 여러분이 남성적이거나 혹은 여성적이라는 진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이가 몇이거나 몸무게가 몇이라는 진실이 있습니다. 밤에는 잠을 얼마 정도 자야 한다는 진실, 여러분이 차를 몬다는 진실, 저기 식료품점들이 있다는 진실이 있죠. 이것들은 전부 진실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진실은 아니지요. 그것들은 전부 외부적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실을 추구할 때, 대부분은 밖으로 나갑니다. 대부분은 진실을 찾아 밖으로 나갑니다. 만일 진실이 여기 지구에서 찾아지지 않는다면 다른 영역으로 가버립니다. 진실을 찾아 별들로, 우주로, 그 너머로 가지요. 물론 진실들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게 의식적으로 깨어 있는 존재가 정말로 찾고 있는 바로 그 진실은 아니지요.
다른 영역들에도 진실이 있습니다. 이 우주와 별들 너머까지 갔는데도 진실을 찾지 못하면, 그들은 다른 영역들에서 진실을 찾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신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고요. 천사적 존재들을 통해서도 찾으려고 합니다. 어쩌면 만나본 적 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온갖 것들에서 진실을 추구합니다. 영들, 정령들에서요. 그들은 과학과 물리학에서 진실을 찾습니다. 외부에서 진실을 찾지요. 그러나 웃긴 건, 그들은 바로 ‘그’ 진실은 절대로 찾지 못할 거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진실이니까요. 어떤 면에서 그것들은 전부 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찾고 있는 바로 그 진실은 아니지요.
그리고, 이제 내적인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곧 이야기하게 될 것이지요. 바로 여러분 자신의 진실입니다. 의식 있는 존재로서 진실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될 때 그걸 외부에서 찾아 나선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죠. 그러나 결국 그들은 찾지 못할 겁니다. 그러고 나면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하지요. “내적 진실이란 무엇인가? 내 안의 진실은 무엇인가?” 아, 그러면 이제 진실을 찾아 가는 아주 길고 고된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여기 이 진실에서, 그들은 가장 거대한 거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이것이 진실인지 물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들의 모든 측면들, 모든 과거 생들, 자기 약점이라 여겨온 모든 것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묻습니다. “이것이 진실인가? 이것이 내 진실인가, 아닌가?”
있죠, 저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통해 오는 생각들은 대부분 사실 여러분 게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생각들은 대중의식에서, 조상들과 전생들에서 오지요. 몸에서, 대개는 조상들의 몸에서요. 그래서 여러분은 내면으로 찾아 들어갑니다. 진실을 찾아 여러분의 생각 속으로, 심지어 몸 안으로까지 탐색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수많은 거짓 진실을 발견하지요. 그것도 여전히 진실이기는 합니다. 기억하세요, 전 진실을 ‘여러분이 인식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여러분이 인식하는 것, 특히 외부 세계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렇죠. 그러나 상당 부분, 내면세계에도 적용됩니다. 여러분의 진실은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인식하는 바입니다.
자, 이 진실이라는 문제가 그렇잖아도 복잡한데, 설상가상으로, 세계는 온갖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전 그것을 진실된 거짓이라고 부를 겁니다. 세상은 진실된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여기에 살고 있고, 거짓말은 상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요. 그러니까, 거짓말이 상당히 용인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걸 꼭 좋아한다기보다는, 거짓을 용인하는 거죠.
그건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친구들 속에서도 볼 수 있고요. 친구에게, 심지어 가까운 친지에게 거짓말을 안 당해 본 사람이 있나요?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최악이죠. 그들에게 모든 형태의 신뢰가 사라져 버리니까요. 어떻게 보면, 여러분은 신뢰를 버리고, 버리고, 점점 더 버리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바깥세상에, 다른 사람들에게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스스로를 더욱 신뢰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죠. 그러나 여러분조차 온갖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 물론 여러분은 다른 이들에게도 거짓말을 해 왔습니다만. 자기 자신에게도 숱하게 거짓말을 해 왔죠.
그래서 여러분은 거짓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데 어떻게 쉽게 찾을 수 있을까요? 모든 게 거짓으로 가득 찼는데 어떻게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뉴스 매체,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진실입니다만, 또한 왜곡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거짓입니다. 여러분의 광고—물건을 파는 광고들을 읽거나 듣고, 나가서 그 물건을 샀는데 광고와 똑같지 않았던 적, 얼마나 많나요?
그래서 여기서 여러분은 거짓 진실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언제든 누구라도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요. 단지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진실의 탐색이라는 이 개념 자체가 아주, 아주 어려워지고, 아주 왜곡되게 됩니다. 그런데 전 여기서 잠깐 이 점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거짓조차도 진실이라고 말이에요. 그것은 왜곡입니다만, 그것조차도 진실이 됩니다. 그 뒤에 의식이 존재하니까요. 그 뒤에 믿음이 존재하니까요. 아,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자기가 거짓말하고 있음을 스스로 아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일종의 대안적인 이야기를요. 거짓 이야기죠— 그런 경우일지라도 그들은 실제로 그것을 믿기 시작합니다. 아주 뛰어난 거짓말쟁이는 사실 자기들이 말하는 그 온갖 거짓들을 정말로 믿을 겁니다. 그대로 살아가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실로 모든 것이 전부 진실이라고 철학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거예요. 설령 그게 거짓에 근거하고 있을지라도 말이지요.
여러분 자신의 삶, 여러분 자신의 여정 상당 부분이 진실된 거짓이었습니다. 이번 생애로 들어오면서 여러분은 생각했죠—직업을 가질 거야, 교육을 받을 거야,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거야—그것은 진정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러분은 알았어요. 그게 진짜 여러분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기꺼이 그렇게 했지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전 “거짓말을 한다”는 말에 아무런 판단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진실의 왜곡이었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은 거짓으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내적으로도 수많은 거짓 위에 세워진 내적 현실 속에서 살고 있죠. 그러나 그렇다 해도, 어떤 면에서, 그것은 여러분의 진실이 됩니다. 그게 여러분의 삶이죠. 그러나—이건 아주 커다란 ‘그러나’입니다— 여러분은 그게 진짜가 아니란 걸 압니다. 그게 여러분이 아니란 걸, 여러분은 알아요. 그게 바로 ‘그’ 진실이 아니란 걸 여러분은 압니다.
자, 제가 아까 말했죠. 외적인 진실들에서는 절대로 ‘그’ 진실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요. 밖으로 나가서 이 모든 쇼를 주관하고 있는 신을 찾고 싶은 거라면, 여러분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저기 바깥에 나가서 철학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혹은 특별한 묘약 따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애초에, 저기 바깥에 나가서는 진실을 찾을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지가 않습니다.
물리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여러분의 물리적 현실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진실은 찾지 못할 겁니다. 신학자, 철학자, 그들은 의식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만, 저 바깥에서는 진실을 절대로 찾지 못할 거예요. 유일한 진실은 바로 내면에 존재하니까요. 유일한 진실은 말이죠.
그래서 FM, 존 쿠데르카가 이 의사소통 연결을 연구하고 있었을 때 말이죠, 아시다시피, 그는 가장 최근 삶에서 프로그래머이자 전기 엔지니어였잖아요. 인간과 마스터와 아이 엠 사이의 이 효율적인 연결을, 이 의사소통 연결점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궁리하고 있었을 때, 이 에너지의 정수를 들여다보고 있었을 때, 그는 마침내 진실이라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진실을요. 그리고 여기 우리 빌라에 벨이라는 개가 있는데요.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에게 왔네요(아다무스가 벨을 쓰다듬자, 벨이 작게 끙 소리를 낸다). 아! 좀 보세요. 이 멋진 개에게 얼마나 많은 진실과 아름다움이 있나요.
있죠, 벨은, 사실, 린다와 콜드레 말로는 이웃의 개라고 하는데요, 사실 전 좀 의심스럽습니다. 벨은 이제 암요 에너지를—‘담고 있다’고 말하고 싶진 않고요—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마당을 뛰어다니고, 빌라에서 오랫동안 낮잠을 자고 하면서 벨은 암요 에너지를 흡수했거든요. 벨은 이 암요 에너지를 흠뻑 빨아들이고 있고, 암요 개가 되고 있습니다. 이사(Eesa)의 린다, 어쩌면 개 이름을 암요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최소한 벨라 암요라든지요. 네, 좋네요. 자, 약간의 주의 분산이었습니다. 우리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유일한 진짜 진실은 내면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밖의 모든 게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밖에 있는 것들도 전부 진실이니까요. 비록 거짓일지라도요. 그것들은 전부 이야기들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사실이라 부르는 것에서 나온 건 아니지만요. 다시 요점으로 돌아옵시다.
진실은 인식(perception)입니다. 여러분이 뭔가를 인식하는 방식이죠. 인식은 자각(awareness)입니다. 자각은 의식(consciousness)이고요.
자, 다시 한 번 보죠. 진실은 인식입니다. 여러분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여러분은 얼마든지 원하는 방식으로 인식합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입니다. 인식은 간단히 말해 자각입니다. 알아차리는 것이죠. 어떤 이들은 제한된 인식, 제한된 자각을 갖고 있지요. 언젠가 북미 원주민과 전 세계 다른 원주민들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요. 그들은 배들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런 자각이 없었거든요. 항해하며 다가오는 배라는 것은, 그들의 인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틀란티스 때조차도 그랬다고 제가 이야기했죠. 아틀란티스 초기에 여러분은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으로선 믿기 어렵겠지만요, 그냥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그득하니까요. 하지만 그때는 자각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인식할, 뭐랄까, 대역폭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존재하고 있었을지라도 말이죠. 별은 없다는 게 진실이었어요. 왜냐하면 그게 여러분이 인식하는 바였으니까요. 별은 없다는 것이요.
자, 우리에게는 인식이 있지요. 진실은 인식입니다. 인식은 자각이고요. 자각은 의식입니다. 알아차릴 수 있는,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말이지요. 여러분은 현실을, 여러분이 살고 있는 물리적 현실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 주변의 다른 영역들은 그렇게 잘 인식하지 못하죠. 그것들은 저기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온갖 다른 영역들과 차원들은 바로 여기서 서로를 관통하며 교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그건 우선, 여러분이 그것을 인식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약간 주의분산이 되겠습니다만, 아무튼 또한 마음이 그걸 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 마음이 막고 있다고 제가 지금 말했는데요. 또 어떻게 보면, 마음은 그것을 막음으로써 제 소임을 다하고 있었던 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이, 암요의 삶으로 들어가는 이 전적인 변환 속에서 편안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편안해져서 통제와 한계를 상당 부분 내려놓고 있습니다. 눈과 귀와 인간의 감각들 너머에 있는 것들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아가 마음의 기억, 마음의 특질(qualia) 너머에 있는 것들까지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요. 여러분은 다른 영역의 것들도 실로 아주 아름다운 방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할 겁니다. 부담스럽거나 당황스럽지 않을 거예요. 아주 단순하고, 아름다울 겁니다.
자, 이 점을 깊이 호흡해 봅시다. 진실을, 인식을, 자각을, 의식을, 여러분 외부의 모든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호흡해 봅시다. 왜냐하면 사실 그 모든 것은 전부 내면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그건 놀라운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전부 내면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밖에 있는 것이라 인식하지만, 모든 것은 사실 내면으로부터 인식되고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들, 우주, 은하, 저기 저 광대한 대양, 그 모든 게 사실은 내적 인식입니다. 그 모든 게 사실은 여러분의 에너지입니다. 전부 여러분의 에너지입니다.
자, 이 점을 깊이 호흡해 봅시다.
자, 연결로 다시 돌아가 보죠. 인간과 마스터와 아이 엠 사이의 의사소통 연결 말이죠. 아주, 아주 오랫동안 없었던 것입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었으니까요. 사실 인식의, 의식의 바깥에 있었으니까요.
용
자, 약간 방향을 틀어서 프로노스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최근에 했던 프로노스트 말이죠. 그것은 전에 했던 프로노스트와는 달랐습니다. 전에는 세상에 대한 내용이었죠. 프로노스트가 원래 그러려고 만든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것은 바로 여러분에 관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프로노스트들보다 훨씬 개인적이었지요.
우리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앞으로 오게 될 완전히 새로운 인간 종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어요. 현재 지구의 흐름과 방향성에 대해, 의식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바로 지금 다가오고 있는 용 이야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죠. 이번 프로노스트에서, 우리는 이 지구에뿐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지구에뿐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삶에도 용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구에 미치는 영향과는 아주, 아주 다를 거라고 말했습니다. 용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용은 오랫동안, 다른 무엇보다도 샴브라를 더욱 민감하게 건드린 주제였을지 모릅니다. 용의 상징들, 용에 대한 친밀성과 친근함. 그것이 전 세계 샴브라들을 민감하게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상당수는 지금 들어오고 있는 용에 관해 개인적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요. 용과 함께 했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노스트에서 지금 들어오고 있는 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개인적 삶에서 용의 역할은 사실은 낡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이전 생애들에서 갖고 온 죄책감과 수치심. 그러나 그것은 이번 생에서도 만들어졌지요. 죄책감과 수치심은 깨달음 속으로는 절대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럴 수 없어요.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는 아주 길게 이야기 했고, 스레시홀드에서는 이와 관련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고는 깨달음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일부는 시도를 했습니다만, 아주 혼쭐이 났죠. 용은 그들을 잘근잘근 씹어 뱉어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억겁의 시간 전 불의 장벽을 통과할 때보다 훨씬 더 인정사정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지고는 갈 수 없습니다.
용은 또한 안으로도 들어가서, 안에 있는 거짓말들을 찾아냅니다. 거짓과 왜곡이 있는 곳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한 번 정말로 느껴 본다면, 거짓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공장이 바로 죄책감과 수치심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저 자신의 죄책감과 수치심으로부터 거짓말을 만들어 냅니다. 원초적인 거짓말들은 전부 다 수치심에 관련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바로 거기서 거짓이 생겨난 겁니다. 아주 극심하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낄 때 사람들은 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현실의 왜곡을 만들어내지요. 진실의 왜곡을요.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여러분은 아주 다양한 층위의 인식들을 갖고 있고, 때로 그것들이 서로 충돌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짓을 만들어 냅니다. 원본은, 말하자면 진실은 그대로 있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에게는 거짓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가 두 개 생깁니다.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 그 위에 거짓을 더 얹고, 그 위에 더 많은 거짓을 얹습니다. 하나씩 더, 더, 더. 곧 여러분에게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낡은 인간의 에고라는 것이 생깁니다. 때로는 아주 똑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그것 역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왜곡이나 거짓에 근거해 있지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쩌면 여러분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의도적인 거짓, 때로는 반쯤 무의식적인 거짓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죠. 그러나 여러분은 한편으로는 이런 온갖 것을 갖고 있는 동시에, 또한 진실을 찾고 있습니다. 점점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진실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사람의 내면에 아주 깊이 강렬하게 자리 잡은 것이죠.
이건 여러 면에서 아주 어려운 여정이었다고 제가 말했지요.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 모든 시련과 고난을 거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그저 숨어 버리고 싶었던 순간들을 거치면서, 그 속의 무엇인가가 여러분을 지금의 이 지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앎이지요. 제가 꽤 자주 이야기했던 단어지요, 앎이었습니다. 어딘가에 바로 그 깊은 내면의 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머리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반듯하게 정리해낼 수도 없을 거고요. 그것은 내적인 앎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음, 뭔가가 더 있다는 걸 알아.” 혹은 이렇게요. “내 진실이 있다는 걸 난 알아. 내 진실이 있다는 걸 알아. 어딘가에 있어. 난 느낄 수 있어. 그게 존재하고 있어. 고요한 나만의 순간이면 그걸 느낄 수 있어.”
그 무언가, 그 앎, 그것이 바로 내면의 진실에 대한 앎입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면요, 용이 여러분 삶에 들어오면서, 그 용이 여러분의 진실을 막고 있던 것들, 그것을 못 느끼게 막고 있던 것들을 뒤져 찾아내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진실
자, 잠깐 여러분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해 보지요. 그것은 아마 말로는 정리가 잘 안 될 겁니다. 그렇게 해 보라고 저 역시 권하지도 않고요. 그것은 말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것을 특질화(qualia)할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멘탈적으로 연관시킬 수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은 진실은 절대적인 느낌, 앎,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여러분에게 옵니다. 그 누구의 진실과도 다른, 바로 여러분의 진실이요. 그 어떤 보편적인 진실과도 다르고, 온갖 외부적 진실과도 다릅니다.
여러분 안에는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역사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것은 여러분이라는 사람에 대한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진실입니다.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여러분의 일부였지요. 여러분이 진실의 바깥에 있었을 때도, 그것은 그대로 거기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식이 제한되어 있었을 때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그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FM이 몰두했던 것이었죠. “어떻게 하면 이 문을, 이 의사소통 포털을 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과 마스터와 아이 엠 사이의 그것을 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영혼의 의사소통을 인간적 차원으로, 일상의 차원으로 갖고 올 수 있을까?” 그리고 그가 그토록 몰두했던 것은, 별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스러운 말은 아니지만, 바로 진실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진실을 인식할 때, 이건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일인데요, 스스로의 진실이 자기에게 와 닿도록 허용할 때, 그때가 바로 마스터와의 의사소통을 아주 아주 잘, 아름답게 인식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말을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노래를 기대하십시오. 노래를, 느낌을, 앎을요.
진실은 사실, 감각입니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헷갈리는 감각에 속하죠. 있죠, 우리는 천사적 감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십만 가지가 더 있다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샤우드에서는 그런 감각들을 일부 체험해 왔고요. 키학에서도 물론이고요. 하지만 진실은 사실 감각입니다. 그러나 다른 여타 감각들과는 아주, 아주 다른 감각이죠. 잊지 마세요. 감각은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감각은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적 느낌이나, 인간의 물리적 감각 같은 것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그 감각은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이며, 그렇게 하는 데는 아주, 아주, 아주 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번에 한 가지 감각을 느낌으로써는 물론이고, 한 번에 여러 개의 감각을 느낌으로써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제 생각으로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내밀한 감각입니다. 바로 여러분(You) 자신의 감각이지요.
진실은 그 어떤 감각보다도 가장 독특한 감각입니다. 진실은 의식과 자각이 더 깨어날 때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깨어남 과정에서 느꼈던 바로 그 내적인 부름입니다. 뭔가 깊은 곳, 내면에서 울리는 부름이었죠. 그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여러분의 진실 말입니다. 우주의 진실이 아닙니다. 그건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것은 거대한 주의분산과 같습니다. 거대한 마쿄죠. 여러분 바깥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것은 말이에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 지점에까지 왔습니다. 진실은 바로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이것이 바로 FM이 연구를 하다가 불현듯 생각해 낸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스터와 아이엠의 이 의사소통 연결을 열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진실이라는 감각을 통해서입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의 진실 말이지요.
용은 진실하지 않은 곳들을 청소하도록 도울 겁니다. 용은 거짓에 근거한 이야기를 가려내도록 도와줄 겁니다. 네, 여러분은 그것이 전부 거짓이고 또한 동시에 전부 진실이라고 철학적으로 논증할 수 있겠지요. 이 점을 어떻게 처리할지 여기서 담판을 짓도록 하죠. 그것은 전부 거짓이고 전부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여러분 자신의 진실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내면의 진실과는 말이에요.
우리는 지난 달 미랍에서, 바로 이것을 불러들여오기 시작했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진실을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번 미랍에서도 그것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나 자신의 진실의 미랍
깊이 호흡하며, 배경으로 음악을 조금 틀겠습니다. (음악 시작)
오로지 여러분 자신의 진실입니다. 앎, 진실의 감각입니다.
진실은 감각입니다.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여러분의 현실로 출발하지만 그 다음에는 더 넓게 확대되지요. 진실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심오한 것이 됩니다.
여러분의 진실을, 여러분의 개인적인 진실을 느껴 보십시오. 그러나 그걸 말로 표현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그저 느껴 보기를 권합니다. 그저 느껴 보고, 그것이 거기 있음을 아십시오.
말로 표현하려 하지 마세요. 멘탈적이 될 뿐이니까요. 그러면 마음이 당혹스러워 할 것입니다. 저 함정들로, 막다른 골목으로 데려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말로 표현하려 하지 마세요.
그것을 뛰어넘어 그저 느끼십시오.
여러분의 진실을요.
(침묵)
그것을 지금 정확히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는 알 필요도 없습니다. 분명, 말로 표현하거나 멘탈적 생각으로 표현하려 하지 말고, 그저 그것이 거기 있음을 아십시오.
깊이 호흡하며, 여러분의 진실을 느껴 봅시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무엇의 것도 아닌 진실을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진실을요.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서, 또 여러분 주변 세계에서 온갖 거짓이 나왔다 해도, 그 진실은 앗아갈 수 없습니다.
(침묵)
깊이 호흡합시다. 진실이 또한 마스터와 인간과 아이 엠 간의 의사소통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침묵)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러분의 진실을 정의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저 그것이 거기 있음을 아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게 거기 있다는 걸 아는 것으로요.
(침묵)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아주, 아주 많은 생애를 바깥에서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혹은 내면으로 진실을 찾으러 들어갔지만 그 복잡하고 혼돈스런 온갖 이야기들, 거짓들, 왜곡들 속에서 길을 잃었지요.
진실은 감각입니다. 모든 감각들 중에서도 가장 내밀하고 가장 개인적인 감각입니다.
이제 깊이 숨 쉬며 그것이 거기 있음을 아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게 거기 있음을 아는 것이요.
그리고 언젠가, 머지않은 어느 날, 바로 이 진실이 여러분을 깊은, 아주 깊은 차원에서 마스터와, 모든 지혜와, 또 아이 엠과 연결시켜 줄 것임을 아십시오. 그러나 또한 이 지혜는 여러분을 에너지, 에너지 자체와도 연결시켜 줄 것입니다.
이 진실이 그 관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이니까요. 진실과 에너지. 오, 그 둘은 아름다운 커플과도 같습니다. 그 둘은 파트너입니다. 그 둘은 함께 춤추는 법을 아주, 아주 잘 압니다.
깊이 호흡하며, 여러분의 진실이 거기 있음을 아십시오. 그것은 결코 떠난 적이 없습니다. 잊혀졌을 뿐입니다.
사라진 적도 없습니다. 그저 간과된 것뿐이지요.
깊이 호흡하며, 여러분의 진실이 이제 돌아오고 있음을 아십시오.
(침묵)
바로 이 진실로, 모든 의사소통이 열립니다. 이 진실과 함께, 에너지와의 새로운 관계, 바로 암요의 삶이 옵니다.
깊이 호흡하며, 여러분의 진실이 다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아십시오.
(침묵)
허용하십시오. 정의하려고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감각의 아름다움입니다.
어쩌면 나중에, 시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글로 적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여러분 자신을 허용해, 여러분의 진실이 거기 있음을 아십시오. 그것은 감각입니다. 그것은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또한 에너지가 여러분에게 오도록 허용하는 방식입니다.
(침묵)
진실. 인간과 마스터와 아이 엠을 이어주는, 어쩌면 가장 효율적인 연결.
(침묵)
진실, 인간의 언어로는 아주, 아주 묘사하기 어려운 것이지요—그렇게 되면 거의 거짓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그 진실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이 거기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족합니다.
(침묵)
진실은 바깥에서는 결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 바깥 우주에, 땅속 깊은 곳 어딘가에 묻혀 있지 않습니다. 진실은 오직 내면에서만 옵니다.
여러분의 진실이 거기 있다는 걸 깨닫도록 여러분 자신을 허용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침묵)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잊혀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잊혀졌을 때, 여러분은 마스터와 아이 엠과의 연결에서도 벗어났었죠.
(침묵)
우리는 프로노스트에서, 그리고 스레시홀드에서는 더욱 집중적으로 이야기했었습니다. 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것은 사실 여러분의 진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곡이 있다면, 죄책감과 수치심이라는 짐을 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진실을 결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겁니다.
(침묵)
모든 죄책감과 수치심, 고통 받고 에너지의 노예가 되는 것을 모두 뛰어넘고 나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의 진실을 느낄 수 있는 지점에 다다릅니다. 여러분의 진실이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에요. 이것이 바로 암요의 삶을 가져옵니다.
잊지 마세요. 진실은 감각입니다. 그것은 판단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에요. 그것은 그저 감각입니다. 어쩌면 현실을 인식하는 가장 순수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또한 진실은 밖으로 꺼내고 싶은 것, 외부화하고 싶은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입니다. 여러분의 진실을 세상으로 가지고 나와서, 외부에 내놓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 뻗어나가는 빛이, 여러분 진실의 빛이 의식으로 일단 들어오고 나면, 일단 기억이 되살아나고 나면, 그 빛은 세상으로 자연히 비춰 나갑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외부화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빛이 그저 온 세상으로 자연스레 비춰 나갑니다.
깊이 호흡하며, 여러분의 진실이 거기 있음을 아십시오. 겹겹이 쌓인 온갖 이야기들과 거짓들, 자기 기만과 주의 분산과 외부 탐색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진실이 거기 있음을 아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세요. 지금은 그것을 정의하려 하지 말고, 말로 표현하려 하지 마세요. 그것은 감각입니다. 그것은 느낌입니다. 허용하고 느껴봅시다. 여러분의 진실을 느끼도록 허용해 봅시다.
(침묵)
수치심을 느끼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지 마십시오. 진실에서 벗어나 있던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마세요.
(침묵)
깊이 호흡하며 바로 여기에 여러분의 진실이 있음을 아십시오.
(침묵)
이 진실은 또한 여러분의 새 친구들과의, 새 에고와의, 우리가 위고라 부르는 새 에고와의 의사소통을 가져옵니다. 마스터와, 에너지와의 의사소통을 말이죠.
깊이 호흡하며, 여러분의 진실이 여기 있음을 아십시오.
(침묵)
여러분 중에는 지금까지 스스로가 그 진실에, 자기 자신의 진실에 자격이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진실이 너무 멀리 사라지고 너무 깊이 숨어들어 버려서 절대 못 찾을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의 이 지점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 진실은 철학적 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럴 땐 깊이 호흡하며 여러분의 진실이 거기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그것은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숨어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며칠간은 진실이, 말하자면 잘 의식되다가 또 며칠간은 잘 안 느껴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진실은 결코 다시 숨어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여러분을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남은 여정에, 이 지구 위 여러분의 암요의 삶에 내내 함께할 것입니다.
다 같이 깊이 호흡합시다. 여기 빌라 암요에서요. (음악 끝남) 아, 앞으로 이 아름다운 곳에서 펼쳐질 수많은 샤우드의 시작이군요.
자, 그럼, 여러분의 진실이 여기 있다는 앎을 깊이 호흡해 들입시다.
여러분의 창조 속에서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아다무스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린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깊이 호흡합시다.
이 새로운 진실을 느껴 봅시다. 우리 저마다, 각자의 진실을요.
깊이 호흡하며, 이 자료가 통합되도록 허용합시다. 이 놀라운 정보가요.
이 말들, 이 에너지를, 그저 느끼고 호흡해 들입시다.
우리가 창조한 아름다움을 호흡하고 느껴 봅시다.
암요의 존재를 호흡해 봅시다.
깊이 호흡합시다.
여기 빌라 암요에서의 샤우드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해 주셔서 언제나처럼 감사합니다.
제프리 하피에게도 감사하고요.
참으로 용감하게도 아다무스를 채널링해 주었죠.
FM, 존 쿠데르카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제가 볼 땐, 틀림없이 주파수 마스터(Frequency Master)가 아닐까 싶은데요. 한 번 보죠.
자, 그럼, 고맙습니다. 삼월 첫 째 주 토요일에 뵙지요.
샤우드와 크림슨서클에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