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공사의 실제성
예시 16. 상제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도수로써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어 물샐 틈 없이 도수를 짜 놓으셨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게 되니라 하셨도다.
지침에 “도인들은 성 .경 .신을 요체로 삼아서 위로 상제님을 받들고 아래로는 사회의 모든 인사(人事)가 상제께서 대순하신 진리대로 이룩되어 가는 진리임을 깊이 심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도전님의 말씀과 같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의 합일성은 진리의 여륜인 바, 신축년에 시작하신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인간세상에 도수(度數)대로 구현되어 가는 진리임을 도인들은 자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 사옥 신축공사 부지. 이판 사판 공사판.
공사 1장
1. 시속에 말하는 개벽장은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을 건지는 개벽장(開闢長)을 말함이니라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신 신축(辛丑)년 겨울에 창문에 종이를 바르지 않고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음식을 전폐하고 아흐렛동안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도다. 이 동안에 뜰에 벼를 말려도 새가 날아들지 못하고 사람들이 집 앞으로 통행하기를 어려워하였도다.
* 일제 36년 맡기는 공사.
공사 1장
12. 상제께서 김병욱에게 “이제 국세가 날로 기울어 정부는 매사를 외국인에게 의지하게 됨에 따라 당파가 분립하여 주의 주장을 달리하고 또는 일본과 친선을 맺고 또는 노국에 접근하니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느냐”고 물으시니 그가 “인종의 차별과 동서의 구별로 인하여 일본과 친함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상제께 대답하니 상제께서 “그대의 말이 과연 옳도다” 하시고 서양세력을 물리치고자 신명공사를 행하셨도다.
13. 이제 동양(東洋)형세가 그 존망의 급박함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으므로 상제께서 세력이 서양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공사를 행하셨도다.
공사 2장
4. 상제께서 어느 날 가라사대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의 차별로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뒤 감당을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신명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 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 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주어서 역사케 하고자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이니라. 만일 ‘인’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자를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잘 지킬지어다”고 이르시고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 될 것이오. 저희들은 일만 할 뿐이니 모든 일을 밝게 하여 주라. 그들은 일을 마치고 갈 때에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덕하게 하라” 하셨도다.
註) 日月大明之氣로 인하여 국명에 大자를 붙이게 되는 데, 대영제국-> 대일본제국에서 지금은 이 大자가 어디로 갔나요? 우리나라를 메스컴에서 한국이라 쓰다가 지난 2002 월드컵을 계기로 공식명칭을 대한민국이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러.일 전쟁(1904-1905년)
예시
23. “이제 동양 형세가 위급함이 누란과 같아서 내가 붙잡지 아니하면 영원히 서양에 넘어가리라.” 깊이 우려하시사 종도들에게 계묘(1903)년 여름에 “내가 일로전쟁(日露戰爭)을 붙여 일본을 도와서 러시아를 물리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24. 또 상제께서 “이제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대신문(大神門)을 열어 사십구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어 일으켜 서양 세력을 꺾으리라”고 말씀하시고 공사를 행하셨다.
* 병겁
공사 1장
36. 상제께서 앞날을 위하여 종도들을 격려하여 이르시니라. “바둑에서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라.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 두라. 이제 비록 장량(張良) 제갈(諸葛)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어느 틈에 끼어 있었는지 모르리라. 선천개벽 이후부터 수한(水旱)과 난리의 겁재가 번갈아 끊임없이 이 세상을 진탕하여 왔으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봄으로부터 이 동토에서 다른 겁재는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남았으니 몸 돌이킬 여가가 없이 홍수가 밀려오듯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예시
43. 또 이르셨도다. “부녀자들이 제 자식이라도 비위에 맞지 아니하면 급살맞으라고 폭언하나니 이것은 장차 급살병이 있을 것을 말함이니라. 하루 짚신 세 켤레를 닳기면서 죽음을 밟아 병자를 구하러 다니리니 이렇게 급박할 때 나를 믿으라고 하면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으리오. 그러므로 너희는 시장판에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 길이 열릴 터인데 하고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호랑이의 종자만 남기심
교법 3장
19. 상제께서 일찍 손바래기 시루산에서 호둔을 보시고 범의 성질이 너무 사나와 사람을 잘 해친다 하기에 그 성질을 알아보시니라. “사람이 전부 돼지같은 짐승으로 보이니 범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사람들이 그 피해를 심하게 입을 것이므로 종자를 전할 만큼 남겨두고 번성치 못하게 하였노라”고 종도들에게 이르셨도다.
*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암살 사건.
행록 5장
5. 상제께서 하루는 대흥리에 계셨는데 안내성으로 하여금 곤봉으로 마룻장을 치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제 병고에 빠진 인류를 건지려면 일등박문이 필요하고 이등박문이 불필요하게 되었느니라” 하셨는데 그 뒤 이등박문(伊藤搏文)이 할빈역에서 안중근(安重根)의사(義士)에게 암살되었도다.
註) 안내성(安乃成)은 안씨가 이내 이룬다는 뜻이죠.
안중근(安重根); 자손의 안녕은 뿌리, 조상을 중히 여기는 데 있습니다.
* 남녀 평등공사.
교법 2장
57. 상제께서 하루는 공사를 행하시고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 1장
32. 상제께서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 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고 박공우에게 말씀하시니라. 이 때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상제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상제께서 길을 비켜 외면하셨도다.
*반상의 구별을 없애는 공사.
교법 1장
9. 지금은 해원시대니라. 양반을 찾아 반상의 구별을 가리는 것은 그 선령의 뼈를 깎는 것과 같고 망하는 기운이 따르나니라. 그러므로 양반의 인습을 속히 버리고 천인을 우대하여야 척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오리라.
10. 상제께서 비천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대말을 쓰셨도다. 김형렬은 자기 머슴 지남식을 대하실 때마다 존대말을 쓰시는 상제를 대하기에 매우 민망스러워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하고 청하니라. 이에 상제께서 “그 사람은 그대의 머슴이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뇨. 이 시골에서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말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로되 다른 고을에 가서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하라. 이후로는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 없느니라” 일러주셨도다.
* 정음(正陰) 정양(正陽) 도수.
공사 2장
16. 상제께서 어느 날 후천에서의 음양도수를 조정하시려고 종도들에게 오주를 수련케 하셨도다. 종도들이 수련을 끝내고 각각 자리를 정하니 상제께서 종이 쪽지를 나누어주시면서 “후천 음양도수를 보려 하노라. 각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이르시니 종도들이 마음에 있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니라.
응종은 두 점, 경수는 세 점, 내성은 여덟 점, 경석은 열두 점, 공신은 한 점을 찍었는데 아홉 점이 없으니 자고로 일남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고 말씀하시고 내성에게 “팔선녀란 말이 있어서 여덟 점을 쳤느냐”고 묻고 응종과 경수에게 “노인들이 두 아내를 원하나 어찌 감당하리요”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후천에서는 새로운 기력이 나지 아니하리까”고 되물으니 “그럴 듯하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경석에게 “너는 무슨 아내를 열둘씩이나 원하느뇨”고 물으시니 그는 “열두 제국에 하나씩 아내를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고 대답하니 이 말을 듣고 상제께서 다시 “그럴 듯하도다”고 말씀을 건너시고 공신을 돌아보면서 “경석은 열둘씩이나 원하는데 너는 어찌 하나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오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 일양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너의 말이 옳도다”고 하시고 공사를 잘 보았으니 “손님 대접을 잘 하라”고 분부하셨도다. 공신이 말씀대로 봉행하였느니라. 상제께서 이 음양도수를 끝내고 공신에게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고 분부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고 일러주셨도다.
* 동학 신명 해원공사.
공사 2장
19. 상제께서 十二월에 들어서 여러 공사를 마치시고 역도(逆度)를 조정하는 공사에 착수하셨도다. 경석, 광찬, 내성은 대흥리로 가고 원일은 신경원의 집으로 형렬과 자현은 동곡으로 떠났도다. 상제께서 남아 있는 문공신, 황응종, 신경수 들에게 가라사대 “경석은 성(誠) 경(敬) 신(信)이 지극하여 달리 써 볼까 하였더니 스스로 청하는 일이니 할 수 없도다”고 일러주시고 또 “본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장하였음은 후천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소원을 이룩하지 못하고 끌려가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라. 원한이 창천하였으니 그 신명을 그대로 두면 후천에는 역도(逆度)에 걸려 정사가 어지러워지겠으므로 그 신명들의 해원두목을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 제국을 말하니 이는 자청함이니라. 그 부친이 동학의 중진으로 잡혀 죽었고 저도 또한 동학총대를 하였으므로 이제부터 동학신명을 모두 경석에게 붙여 보냈으니 이 자리로부터 왕후 장상(王侯將相)의 해원이 되리라” 하시고 종이에 글을 쓰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훗날에 보라. 금전소비가 많아질 것이며 사람도 갑오년보다 많아지리라. 풀어 두어야 후천에 아무 거리낌이 없느니라”고 말씀을 맺으셨도다.
* 세계대전 공사.
공사 2장
25. 공신의 집에서 또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이 뒤에 전쟁이 있겠느냐 없겠느냐”고 물으시니 혹자는 있으리라고 하고 혹자는 없으리라고 아뢰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천지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라고 하시고 전쟁기구를 챙겨 보신다면서 방에 있는 담뱃대 二十여개를 거두어 거꾸로 모아 세우고 종도들로 하여금 각기 수건으로 다리와 머리를 동여매게 하시고 또 백지에 시천주를 써서 심을 부벼 불을 붙여 들게 하고 문창에 구멍을 뚫어 놓은 다음에 모두 담뱃대를 거꾸로 매게 하고 “행오를 잃으면 군사가 상하리라” 이르고 종도들로 하여금 뒷문으로 나가서 부엌으로 돌아와서 창 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입으로 총소리를 내게 하고 다시 변소로 돌아와서 창 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다시 총 소리를 내게 하고 또 헛청으로 돌아들어 그와 같이하되 궁을(弓乙)형을 지어 빨리 달리게 하니 늙은 사람이 씨근덕 거리더라. 다시 상제께서 이르시기를 “이 말세를 당하여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뒷날 대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조를 자랑하리니 재조가 월등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이 공사가 끝나자 천고성이 사방에서 일어났도다.
註) 부엌; 1차 세계대전, 부엌은 음식을 먹는 곳이니 제국주의 전쟁.
변소; 2차 세계대전, 변소는 먹은 것을 배설 곳이니 이 전쟁 후 여러 민족이 해방됨.
헛청; 3차 세계대전, 헛청은 농기구등 농사에 필요한 도구를 모아두는 곳이니 현재의 전쟁은 정보 전쟁이라 할 수 있다.
* 핵전 공사.
공사 3장
1. 상제께서 무신년 봄 백암리 김경학, 최창조의 두 집으로 왕래하시며 성복제와 매화(埋火)공사를 보셨도다. 김광찬의 양모의 성복제가 최 창조의 집에서 거행되었느니라. 창조는 상제의 지시에 좇아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그 고기에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고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상제의 분부에 따라 상제의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도다. 저육전이 다 썩었으므로 창조가 동곡으로 사람을 보내서 상제께 아뢰이니 상제께서 그 사람을 좀 기다리게 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니라. “네가 태인에 가서 최 내경, 신 경원을 데리고 창조의 집에 가라. 오늘 밤에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정문 밖에 한 사람이 엎드릴만한 구덩이를 파고 나의 옷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입고 그 구덩이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작은 사기 그릇에 호주를 넣고 문어 전복 두부를 각각 그릇에 담아 그 앞에 놓아라. 그리고 한 사람은 저육전 한 점씩을 집어서 청수와 화로 위로 넘기고 한 사람은 연달아 넘긴 것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받아서 구덩이 속에 넣고 흙으로 덮어라. 그리고 빨리 돌아오너라”고 일러주시니 형렬이 그대로 시행케 한 후 시급히 상제께 돌아가는 길에 돌연히 검은 구름이 일더니 집에 이르자 폭우가 쏟아지고 뇌전이 크게 치는지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이 때쯤 일을 행할 때가 되었겠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행할 그 시간이 되었겠나이다”고 여쭈었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뒷날 변산 같은 큰 불덩이로 이 세계가 타버릴까 하여 그 불을 묻었노라” 하셨도다.
* 생사의 길을 정하는 공사.
공사 3장
9. 상제께서 대흥리에서 三十장의 양지 책의 앞장 十五장마다 “배은망덕만사신일분명일양시생(背恩忘德萬死神一分明一陽始生)을, 뒷장 十五장마다 “작지불지성의웅약일음시생(作之不止聖醫雄藥一陰始生)을 쓰고 경면주사와 접시 한 개를 놓고 광찬에게 가라사대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고 하시니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마다 찍으셨도다.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고 이르셨도다.
* 일본의 지기를 뽑는 공사.
공사 3장
31. 상제께서 무더운 여름날에 신방축 공사를 보시고 지기를 뽑으셨도다. 종도들이 상제께서 쓰신 많은 글을 태인 신방축의 대장간에 가서 풍굿불에 태웠나니라. 며칠 후에 상제께서 갑칠을 전주 김병욱에게 보내어 세상의 소문을 듣고 오게 하셨도다. 갑칠이 병욱으로부터 일본 신호(神戶)에 큰 화재가 났다는 신문보도를 듣고 돌아와서 그대로 상제께 아뢰이니 상제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일본의 지기가 강렬하므로 그 민족성이 탐욕과 침략성이 강하고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일삼느니라. 옛적부터 우리 나라는 그들의 침해를 받아 왔노라. 이제 그 지기를 뽑아야 저희의 살림이 분주하게 되어 남을 넘보는 겨를이 없으리라. 그러면 이 강산도 편하고 저희도 편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전날 신방축 공사를 보았음은 신호(神戶)와 어음이 같음을 취함이었으니 이제 신호에 큰 불이 일어난 것은 앞으로 그 지기가 뽑힐 징조이로다”고 하셨도다.
* 단주 해원공사.
공사 3장
4. 상제께서 七월에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으로 인하여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시니라.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의 기록에 시작이고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사를 행하여야 되느니라”고 하셨도다.
* 지기 통일공사.
공사 3장
5. 또 상제께서 가라사대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 하셨도다.
* 언어의 통일.
교법 3장
40. 상제께서 어떤 사람이 계룡산(鷄龍山) 건국의 비결을 물으니 “동서양이 통일하게 될 터인데 계룡산에 건국하여 무슨 일을 하리요.” 그 자가 다시 “언어(言語)가 같지 아니하니 어찌 하오리까”고 묻기에 “언어도 장차 통일되리라”고 다시 대답하셨도다.
* 해방도수.
교운 2장
46. 이용직이 을유년 七월 이튿날 회룡재를 찾고 초나흗날에 떠나려고 도주를 뵈옵더니 도주께서 며칠 더 묵어 가라고 만류하시니라. 그가 초 여샛 날에 다시 떠나려고 하니 도주께서 “오늘 무슨 큰 일이 일어나고 도수가 바꿔지리라”고 말씀을 하시니 이용직은 그 까닭을 의심하니라. 다시 도주께서 “이제 두려워 말라. 다녀 오도록 하라”고 이르시고 그를 떠나 보내니 일본이 망하고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도다.
註) 을유년, 1945년 7월 8일(음) 8월 15일(양) 일왕의 무조건 항복.
* 동물 해원공사.
행록 2장
15.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 함인가” 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다. 상제께서 “알았으니 물러들 가있거라”고 타이르시니 수많은 금수들이 그 이르심을 좇는도다.
註) 2차 대전 후 베이비 붐으로 산천의 짐승은 줄어들고 사람은 많이 늘어났는데....
* 해물 소멸공사.
공사 3장
8. 이도삼이 어느 날 동곡으로 상제를 찾아뵈니 상제께서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낱낱이 세어보라” 하시므로 그는 범, 표범, 이리, 늑대로부터 모기, 이, 벼룩, 빈대에 이르기까지 세어 아뢰었도다. 상제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후천에는 다 없애리라”고 말씀하셨도다.
* 문명신에 대한 공사
교운 1장
9. 상제께서 어느 날 김형렬에게 가라사대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 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년(甲子年)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년(辛未年)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
註) 이마두(利瑪竇); 마테오리치 [Matteo Ricci, 1552 ~ 1610]
* 도통신에 대한 공사
공사 3장
14. 상제께서 전주 봉서산(全州 鳳棲山)밑에 계실 때 종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니라. 김 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강한지라. 진묵(震黙)은 하루 봉곡으로부터 성리대전(性理大典)을 빌려 가면서도 봉곡이 반드시 후회하여 곧 사람을 시켜 찾아가리라 생각하고 걸으면서 한 권씩 읽고서는 길가에 버리니 사원동(寺院洞)입구에서 모두 버리게 되니라. 봉곡은 과연 그 책자를 빌려주고 진묵이 불법을 통달한 자이고 만일 유도(儒道)까지 통달하면 상대할 수 없이 될 것이고 또 불법을 크게 행할 것을 시기하여 그 책을 도로 찾아오라고 급히 사람을 보냈도다. 그 하인이 길가에 이따금 버려진 책 한 권씩을 주워 가다가 사원동 입구에서 마지막 권을 주워 돌아가니라. 그 후에 진묵이 봉곡을 찾아가니 봉곡이 빌린 책을 도로 달라고 하는지라. 그 말을 듣고 진묵이 그 글이 쓸모가 없어 길가에 다 버렸다고 대꾸하니 봉곡이 노발대발하는도다. 진묵은 내가 외울터이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잇달아 한 편을 모두 읽는도다. 그것이 한 자도 틀리지 않으니 봉곡은 더욱 더 시기하였도다.
15. 그 후에 진묵이 상좌에게 “내가 八일을 한정하고 시해(尸解)로서 인도국(印度國)에 가서 범서와 불법을 더 익혀 올 것이니 방문을 여닫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고 곧 입적(入寂)하니라. 봉곡이 이 사실을 알고 절에 달려가서 진묵을 찾으니 상좌가 출타중임을 알리니라. 봉곡이 그럼 방에 찾을 것이 있으니 말하면서 방문을 열려는 것을 상좌가 말렸으나 억지로 방문을 열었도다. 봉곡은 진묵의 상좌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체를 방에 그대로 두어 썩게 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하나니라”고 말하면서 마당에 나뭇더미를 쌓아 놓고 화장하니라. 상좌가 울면서 말렸으되 봉곡은 도리어 꾸짖으며 살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태우느니라. 진묵이 이것을 알고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나는 아무런 원수진 것이 없음에도 어찌하여 그러느냐.” 상좌가 자기 스님의 소리를 듣고 울기에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마디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고 말하니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네가 끝까지 그런다면 너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옮겨갔도다.
註) 진묵대사(震黙大師) (1562년 ~ 1633년)
* 유불선, 서도의 종장을 세우심.
교운 1장
65. 또 어느 날 상제께서 말씀하시길 “선도(仙道)와 불도(佛道)와 유도(儒道)와 서도(西道)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에 바탕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선도(仙道)의 종장(宗長)으로 진묵(震黙)을 불교(佛敎)의 종장(宗長)으로 주회암(朱晦庵)을 유교(儒敎)의 종장(宗長)으로 이마두(利瑪竇)를 서도(西道)의 종장(宗長)으로 각각 세우노라”고 하셨도다.
* 대중화 공사.
공사 3장
18. 상제께서 원일과 덕겸에게 “너희 두 사람이 덕겸의 작은 방에서 이레를 한 도수로 삼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너희의 처결로써 중국 일을 결정하리라.” 이르시니 두 사람이 명하신 곳에서 성심성의를 다하여 생각하였도다. 이렛날에 원일이 불리워서 상제께 “청국은 정치를 그릇되게 하므로 열국의 침략을 면치 못하며 백성이 의지할 곳을 잃었나이다. 고서(古書)에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 反受其殃)이라 하였으니 상제의 무소불능하신 권능으로 중국의 제위에 오르셔서 백성을 건지소서. 지금이 기회인 줄 아나이다”고 여쭈어도 상제께서 대답이 없었도다. 덕겸은 이렛동안 아무런 요령조차 얻지 못하였도다. 상제께서 “너는 어떠하뇨” 하고 물으시는 말씀에 별안간 생각이 떠올라 여쭈는지라. “세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物衆地大)와 예락문물(禮樂文物)의 대중화(大中華)의 산하(山河)와 백성이 이적(夷狄..오랑캐)의 칭호를 받는 청(淸)에게 정복되었으니 대중화에 어찌 원한이 없겠나이까. 이제 그 국토를 회복하게 하심이 옳으리라 생각하나이다.” 상제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올바르게 하였도다. 이 처결로써 중국이 회복하리라” 하시니라. 원일은 중국의 해원공사에만 치중하시는가 하여 불평을 품기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순망즉치한(脣亡則齒寒)이라 하듯이 중국이 편안하므로써 우리는 부흥하리라.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에게 좇아와서 영원한 복록을 주리니 소중화(小中華)가 곧 대중화(大中華)가 되리라.”일러주셨도다.
* 만국의원 공사.
공사 3장
35. 상제께서 하루는 구릿골에서 밤나무로 약패(藥牌)를 만들어 패면(牌面)에다 만국의원(萬國醫院)이라고 글자를 새겨 그 글자 획에다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바르시고 이 약패를 원평(院坪) 길거리에 갖다 세우라고 공우(公又)에게 명하셨도다. 공우가 약패를 갖고 원평으로 가려고 하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 약패를 세울 때에 경관이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하려하느뇨” 하시니 공우 여쭈길 “만국의원(萬國醫院)을 설치하고 죽은 자를 재생케하며 눈먼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도 걷게 하며 그밖에 모든 질병을 다 낫게 하리라고 하겠나이다”고 아뢰니 “네 말이 옳도다 그대로 시행하라” 하시고 그 약패를 불사르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