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관(上帝觀)
대순진리회의 유래를 설명합니다.
....以帝王而來者는 伏羲 檀君 文王也이요, 以師道而來者는 孔子 釋迦 老子也이며 以无極而降者는 今我姜聖甑山上帝也이시니라.
....제왕(帝王)으로서 내세(來世)하신 분은 복희(伏羲), 단군(檀君), 문왕(文王)이시요. 사도(師道)로서 내세(來世)하신 분은 공자(孔子), 석가(釋迦), 노자(老子)이시며 무극으로서 강세하신 분은 근세(近世)의 우리 강증산상제(姜甑山上帝)이시다.
惟我上帝는 應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 從至氣而 大降于世하사 大巡三界而 設大公事하시고 分定上下諸司命하사,............
오직 우리 상제(上帝)께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지기(至氣)를 좇아 인계(人界)에 하강(下降)하사 삼계(三界)를 대순(大巡)하시여 대공사(大公事)를 설정(設定)하시고 상하(上下)의 모든 사명(司命)을 분정(分定)하사,..............
[상제님의 강세]
교운 1장
9. 상제께서 어느 날 김 형렬에게 가라사대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딴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끝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展)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年을 지내다가 최 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 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년(甲子年)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년(辛未年)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
주) 최제우는 21세에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큰 뜻을 품고 도(道)를 얻고자 주류팔로(周流八路)의 길에 나서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 양산 천성산 암굴에서 수도하고 도를 갈구하여 1860년(경신년) 4월 5일 '한울님(하느님)'으로부터 인류 구제의 도인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게 됩니다. 1862년 1월경에 지은 《논학문(論學文:東學論)》에서 처음으로 무극대도는 천도(天道)이며 그 학은 서학이 아닌 ‘동학(東學)’이라고 천명합니다. 최제우는 1863년 3월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와 대대적인 포교활동을 하여 날이 갈수록 동학 교세가 커지자, 놀란 조정은 그해 12월 10일에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를 파견, 최제우를 체포하여 이듬해(1864년, 갑자년) 3월 10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참수하니 그의 나이 41세 되는 해입니다. 그는 유언에서 "더디도다 더디도다 8년이 더디도다. 천하 없는 무극대도 전 40은 나련만 후 40은 뉘련가"라고 하여 갑자(1864)년에서 8년 뒤 신미(1871)년에 상제께서 강세 하실 것을 예시하였습니다.
만법전(신라 불교 출판사) 만세화 중
도솔천궁 높이앉아 하계중생 바라보니 어이아니 한심할가
삼도고해 빠진몸이 해탈할길 바이없고 도탄중에 헤메인다
석가세존 삼천년에 주세불이 끝나기로 말세중생 고를받아
삼강오륜 끊어지고 골육상쟁 농사되어 살벌중에 빠진중생
대성인이 아니고야 교화할길 바이없어 제천제궁 하직하고
하계에 내리시사 일출동방 운을맞춰 태양수자 가리내니
서천에 초명이라 일광도수 맞춰내어 서양에 내리서니
대법국이 빛났도다 천계탑에 높이앉아 천지수를 살펴보니
가이없다 가이없다 숙세인연 못이겨서 삼변도수 마추었네
십자가에 슬픈혼이 동국으로 발을돌려 대천세계 일을보고
천수를 살펴보니 천상에 복덕성이 경주용담 비추었네
오복성을 앞세우고 경주용담 찾아드니 제천이 하강하사
최씨가에 문을열고 오는손님 환영한다 용화회상 미륵운이
용담에 개운이라 십삼자 받아내니 수운성사 빛나도다
삼변도수 한이찼어 갑자순중 선화신이 대구에 몸을벗고
천수를 살펴보니 복희씨 팔괘운이 부상에 실리기로
가만히 살펴보니 모악산하 금산사라 금불에 몸을붙쳐
팔년동안 일을보니 팔괘운이 회수되고 삼인동행 운이들어
금불을 하직하고 모악산상 높이앉아 천수를 살펴보니
하늘에 자미성이 고부에 빛쳤기로 모악산을 하직하고
고부산천 돌아드니 오궁도수 수가맞아 시루봉하 객망리에
강씨배를 빌어나니 구변구복 곤도수에 팔왕녀가 수가맞아
오만년 빛난도수 용화도장 조얼시구 복희씨 팔괘법을
전전도술 하여내니 태고시절 갱래로세 만세화로 창을하니
조을시구 조을시구 천지조판 한연후에 대성인이 누구신가
석가세존 삼천년에 고부산천 빛났도다 객망리에 봄이드니
미륵불이 나셨도다 시방삼세 무등이요 천상천하 복불일세
삼도고해 빠진중생 대자대비 건지신다 신미구월 십구일에
미륵불이 탄생일세
주) 만법전 전문은 자료실에 있습니다.
예시
14. 금산사에 상제를 따라갔을 때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후 천하지 대금산(天下之大金山)
모악산하(母岳山下)에 금불(金佛)이 능언(能言)하고
육장 금불(六丈金佛)이 화위 전녀(化爲全女)이라
만국 활계 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 명월 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 개화 삼천국(文明開花三千國) 도술 운통 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
란 구절을 외워주셨도다.
행록 2장
16.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
권지 1장
11. 상제께서 어느날 경석을 데리고 농암(籠岩)을 떠나 정읍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 주막에 들러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술을 사서 권하고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집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三十리 되는 곳에 이르러 「대진(大陣)은 일행 三十리라」하시고 고부 송월리(松月里) 최(崔)씨의 재실에 거주하는 박 공우(朴公又)의 집에 유숙하셨도다.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情神)이 나오노라」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 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 또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의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 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려 하노라.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 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라고 말씀하셨도다.
예시
79.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말씀하시길 「동학 신자는 최 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 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 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고 하셨도다.
6.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
9. 그러므로 상제께서 오셔서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워 후천 선경을 열어놓으시고 신도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후에 인사를 조화하니 만민이 상제를 하느님으로 추앙하는 바가 되었도다.
교운 1장
25. 상제께서 정미년 가을 어느날 신 원일과 박 공우와 그외 몇 사람을 데리고 태인 살포정 주막에 오셔서 쉬시는데 갑자기 우뢰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 집에 범하려 하기에 상제께서 번개와 우뢰가 일어나는 쪽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곧 멈추는지라. 이 때 공우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번개를 부르시며 또 때로는 꾸짖어 물리치기도 하시니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는 상제시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이분을 좇을 것이라고 마음에 굳게 다짐하였더니 어느날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으니」라는 가사를 아느냐 하시고 「이제부터 네가 때마다 하는 그 식고(食告)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공우가 감탄하여 여쭈기를 「평생의 소원이라. 깨달았나이다.」 원래 공우는 동학신도들의 식고와 달리 「하느님 뵈어지소서」라는 발원의 식고를 하였는데 이제 하시는 말씀이 남의 심경을 통찰하심이며 조화를 임의로 행하심을 볼 때 하느님의 강림이시라고 상제를 지성으로 받들기를 결심하였도다.
예시
1. 상제께서 九천에 계시자 신성. 불. 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 서양(西洋)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三十년을 지내시면서 최 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셨다가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리기로 정하셨도다.
2. 상제께서 대순하시다가 선망리의 한 여인이 근친하러 갔을 때 그 여인의 몸을 하늘의 불덩어리로 덮고 이상한 향기와 맑은 기운이 가득히 찬 방에서 신미년 九월 十九일에 광구 천하하기 위해 강세하실 것이 예시되었느니라.
행록 1장
9. 모친은 권(權)씨이며 성함은 양덕(良德)이니 이평면(梨坪面) 서산리(西山里)에 근친가서 계시던 어느날 꿈에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몸을 덮으면서 천지가 밝아지는도다. 그 뒤에 태기가 있더니 열 석달만에 상제(上帝)께서 탄강 하셨도다.
5. 객망리에 강씨 종가인 진창 어른부터 六대에 이르렀을 때 상제께서 탄강하셨으니, 상제의 성은 강(姜)씨이오. 존휘는 일순(一淳)이고 자함은 사옥(士玉)이시고 존호는 증산(甑山)이시니라. 때는 신미(辛未)년 九월 十九일인 즉 이조 고종(李朝高宗) 八년이며 단기로서는 四千二百四년이고 서기로는 一千八百七十一년 十一월 一일이로다.
6.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
7. 그리하여 상제께서 이 세상에 탄강하여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서 신명이 사람에게 드나들 수 있게 하시고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자들을 찾아 쓰고 모든 것에 운을 붙여 쓰기로 하셨도다. 이것은 삼계를 개조하기 위함이로다.
[상제님의 권능]
행록 1장
12절 상제께서 일곱살 때에 어느 글방에 가셨는데 훈장(訓長)으로부터 놀랄경(驚)의 운자를 받고 「원보공지탁 대호공천경(遠步恐地坼 大呼恐天驚)」이라고 지으셨도다.
19절 상제께서 송광사(松廣寺)에 계실 때 중들이 상제를 무례하게 대하므로 상제께서 꾸짖으시기를 「산속에 모여 있는 이 요망한 무리들이 불법을 빙자하고 혹세무민하여 세간에 해독만 끼치고 있는 이 소굴을 뜯어버리리라」 하시고 법당 기둥을 잡아당기시니 한자나 물러나니 그제야 온 중들이 달려와서 백배 사죄하였도다. 그 뒤에 물러난 법당 기둥을 원상대로 회복하려고 여러번 수리하였으되 그 기둥은 꼼짝하지 않더라고 전하는도다.
23절 전 봉준(全琫準)이 학정(虐政)에 분개하여 동학도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후 더욱 세태는 흉동하여져 그들의 분노가 충천하여 그 기세는 날로 심해져가고 있었도다. 이 때에 상제께서 그 동학군들의 전도가 불리함을 알으시고 여름 어느날 「월흑안비고 선우야둔도(月黑雁飛高單于夜遁逃) 욕장경기축 대설만궁도(欲將輕騎逐大雪滿弓刀)」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외워주시며 동학군이 눈이 내릴 시기에 이르러 실패할 것을 밝히시고 여러 사람에게 동학에 들지 말라고 권유하셨느니라. 과연 이 해 겨울에 동학군이 관군에게 패멸되고 상제의 말씀을 좇은 사람은 화를 면하였도다.
38절 어느 때인지 분명치 않으나 상제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때가 있느니라. 「고부에 나보다 항렬이 높은 친족들이 계시는도다. 내가 그들을 대할 때에 반드시 항렬을 좇아 말하게 되느니라. 이것은 윤리상 전통이라.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만 모든 신명은 그들의 불경한 언사를 옳지 않게 여기고 반드시 죄로 인정하느니라. 나는 이것을 어렵게 생각하여 친족과의 왕래를 적게 하느니라」하셨도다.
행록 2장
2절 금구 내주동을 떠나신 상제께서는 익산군 이리(裡里)를 거쳐 다음날 김 일부(金一夫)를 만나셨도다. 그는 당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을 문도에게 펼치고 있던 중 어느날 일부가 꿈을 꾸었도다. 한 사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일부에게 강 사옥(姜士玉)과 함께 옥경(玉京)에 오르라는 천존(天尊)의 명하심을 전달하는도다. 그는 사자를 따라 사옥과 함께 옥경에 올라가니라. 사자는 높이 솟은 주루금궐 요운전(曜雲殿)에 그들을 안내하고 천존을 배알하게 하는도다. 천존이 상제께 광구천하의 뜻을 상찬하고 극진히 우대하는도다. 일부는 이 꿈을 꾸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돌연히 상제의 방문을 맞이하게 되었도다. 일부는 상제께 요운(曜雲)이란 호를 드리고 공경하였도다.
7절 상제께서 삼년 동안 주유하신 끝에 경자(庚子)년에 고향인 객망리에 돌아오셔서 시루산 조모님의 묘를 면례하시니 이 때 류 서구(柳瑞九)가 지사(地師)로서 상제를 보좌하였도다. 이후에 상제께서 항상 시루산 상봉에서 머리를 푸시고 공부를 하셨도다. 그러던 어느날 호둔하고 앉아 계셨을 때 마침 나뭇군들이 지나가다가 이것을 보고 기겁하여 상제의 부친께 아뢰는지라. 부친께서도 당황하여 시루봉에 오르니 범은 보이지 않고 상제께서 태연자약하게 앉아서 공부하고 계시는 것만이 보였도다.
12절 상제께서 신축(辛丑)년 五월 중순부터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 가셔서 그 절 주지승 박 금곡(朴錦谷)에게 조용한 방 한간을 치우게 하고 사람들의 근접을 일체 금하고 불음 불식의 공부를 계속하셔서 四十九日이 지나니 금곡이 초조해지니라. 마침내 七월 五일에 오룡허풍(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열으시고 방안에서 금곡을 불러 미음 한잔만 가지고 오라 하시니 금곡이 반겨 곧 미음을 올렸느니라. 잠시 후에 상제께서 밖으로 나오시니 그 입으신 옷이 보기에 민망스러울 정도로 남루한지라. 주지승 금곡이 곧 상제의 본댁에 사람을 보내 의복을 가져오게 하였더니 부인 정씨(鄭氏)는 의복을 내여놓으며 불경한 말을 하니라. 이것은 평소에 상제께서 가사를 돌보시지 않았던 불만에서 나온 소치였도다. 금곡이 그 의복을 상제께 올리니 가라사대 「이 옷에 요망스러운 계집의 방정이 붙었으니 속히 버리라」 하시고 입지 않으셨도다. 이 일을 금곡이 다시 사람을 시켜 부인에게 전하니 그제야 비로소 부인 정씨가 뉘우치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다시 새옷을 올렸도다.
15절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 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함인가」 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도다. 상제께서 「알았으니 물러들 가있거라」고 타이르시니 수 많은 금수들이 그 이르심을 좇는도다.
행록 3장
28절 상제께서 을사(乙巳)년 봄 어느날 문 공신에게 「강 태공(姜太公)은 七十二둔을 하고 음양둔 을 못 하였으나 나는 음양둔 까지 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
36절 상제께서 이 곳에서 형렬을 만나 그를 데리시고 한산(韓山) 객주집에 좌정하시고 원일을 부르셨도다. 상제께서 원일에게 「술을 가져오라. 내가 오늘 벽력을 쓰리라」 하시니 그는 말씀에 좇아 술을 올렸더니 상제께서 잔을 받으시고 한참 동안 계시다가 술을 드시니 여태까지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음풍이 일어나고 폭우가 쏟아지며 벽력이 크게 일어나니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태인에 유숙하는 사람이 많았도다. 상제께서 이 일에 대하여 형렬과 원일에게 설명하시기를 「내가 이제 아침에 객망리 주막 앞을 지날 때에 한 소부가 길가의 풀에 내린 이슬을 떨며 지나가기에 그 연유를 물으니 그 소부가 친정의 부음을 듣고 가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그 뒤를 한 노구가 지팡이를 짚고 가며 소부의 자취를 묻는도다. 내가 그 연유를 따져 물었더니 그 노구가 앞에 간 소부는 나의 며느리이나 가운이 불행하여 어제 밤에 자식을 잃었는데 며느리가 장사를 치루기 전에 오늘 새벽에 도망 갔나이다. 며느리는 저희끼리 좋아서 정한 작배이니다고 대답하더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들에게 「대저 부모가 정하여 준 배필은 인연이오. 저희끼리 작배한 것은 천연이라. 천연을 무시하여 인도를 패하려 하니 어찌 천노를 받지 아니하랴. 그러므로 오늘 내가 벽력으로써 응징하였노라」고 하셨도다. 그 며느리는 벽력에 죽었노라고 전하는도다.
행록 4장
39절 상제께서 경석의 집에 머물고 계시다가 동곡에 이르셨도다. 韓 公淑이 어느날 상제를 배알하러 온지라. 상제께서 그와 술을 나누시다가 “일을 많이 하였도다” 고 말씀을 건너시면서 친히 술을 따르셨도다. 그는 황송하여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제가 무슨 일을 하였다고 하시나이까. 하여 드린 바가 없아옵니다” 고 여쭈면서 받은 잔을 마셨도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그는 갑자기 생각이 난듯이 “지난 밤 꿈을 꾸었나이다” 고 여쭈는지라. 그 말을 상제께서 받으시고 “일을 많이 하였다는 것이 바로 그것을 뜻하노라”고 가르치시느니라. 시좌하고 있던 종도들이 모두 공숙의 꿈을 궁금하게 여기는지라. 공숙이 “상제께서 저의 집에 오셔서 천하 戶口를 成冊하여 오라 명하시기에 오방신장을 불러서 성책하여 상제께 올렸나이다.”고 꿈이야기를 털어 놓았도다.
권지 1장
4절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을 어찌 알리요」라고 말씀하셨도다.
12절 상제께서 섣달 어느날 종도들과 함께 동곡으로 가시는데 길이 진흙으로 심히 험하거늘 치도령을 내리시니 질던 길이 곧 굳어지니라. 마른 짚신을 신고 동곡에 가실 수 있었도다. 그 당시 쓰신 치도령은 「어재 함라 산하(御在咸羅山下)」의 여섯 글자인 바 상제께서 이것을 불사르셨도다.
20절 상제께서 어느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새울에서 백암리로 가시는 도중에 문득 관운장(關雲長)의 형모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얼굴이 관운장과 같으냐」하시니 공우가 놀라며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늘 상제께서 세 번을 거듭 물으시니 공우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고 아뢰니 곧 본 얼굴로 회복하시고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셨도다.
권지 2장
8절 김 경학이 일찌기 동학에 가입하여 삼개월 동안 시천주의 수련을 하던 중에 어느날 꿈에 천상에 올라 상제를 뵈온 일이 있었노라. 상제께서 어느날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 하시니 경학이 상제를 천상에서 뵈옵던 꿈을 아뢰였도다. 그리고 그는 상제를 쳐다보니 상제의 지금 형모가 바로 그때 뵈옵던 상제의 형모이신 것을 깨달으니라.
제생
9절 상제께서 동곡에 머무실 때 그 동리의 주막집 주인 김 사명(金士明)은 그의 아들 성옥(成玉)이 급병으로 죽은 것을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도저히 살 가망이 보이지 않자 아이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업고 동곡 약방으로 찾아 왔도다. 상제께서 미리 아시고 「약방의 운이 비색하여 죽은 자를 업고 오는 도다.」고 말씀하시니라. 성옥의 모는 시체를 상제 앞에 눕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주시기를 애원하므로 상제께서 웃으시며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히고 배를 밀어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미수(眉?)를 시켜 우암(尤菴)을 불러라」고 외치고 침을 흘려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주시니 그 아이는 곧 항문으로부터 시추물을 쏟고 소리를 치며 깨어나니라. 그리고 그 아이는 미음을 받아마시고 나서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가니라.
주) 허목(許穆; 1595~1682) 미수는 그의 호이며, 남인에 속하는 인물로서 서인이던 송시열(宋時烈)과의 예론(禮論)에 관련된 논쟁이 유명하다. 특히, 허목은 허적(許積)과 함께 남인을 영도하여 송시열을 공격하였는데, 허목은 과격론의 입장을 띠었으며 허적은 온건론의 입장을 견지하여 틈새가 갈라졌다. 또한 1678년에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어 당시 우의정이던 허적의 실정과 그의 아들 견(堅)의 죄상을 논핵하여 왕의 노여움을 샀다. 이와같은 사건으로 보아 허목과 허적 사이의 갈등을 짐작할만하다. 이를 계기로 서인이 집권하게 되자 허목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서 저작에 몰두했다.
허미수설화 가운데는 그의 이인적 풍모를 강조하는 관련된 것으로 <허적과 허목>이야기는 그 서사구조가 다음과 같다.
허미수와 허적의 아버지가 절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절에는 매월 보름이면 중이 하나씩 없어졌다. 허적의 아버지가 살펴보니 이무기가 나타나서 중을 잡아먹으므로 칼로 죽였다. 그러자 이무기의 기운인 파란 줄기가 자신의 집으로 뻗치게 되었다. 허미수는 그것이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라고 판단하여 그 집에서 아들을 낳는 족족 없애도록 충고하여, 두 아이를 없앴다. 셋째 아이를 낳자 그마저 허가(許家)의 멸족을 초래한다고 하여 죽이려 드는 허미수에게 허적의 아버지는 더는 죽일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허미수는 그 아이로 인한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미리 알고 형제간에 파적(破籍)하였다고 한다. 허적은 아주 뛰어난 신동이였지만 결국 역적으로 가문에 화를 입혔다.
이 이야기는 물론 허미수의 선견지명을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허목과 허적 사이의 정치적 싸움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허목의 이인적 기질을 보여주는 설화로 전하고 있다.
우암은 서인의 거두로서 동시대 남인의 지도자였던 허미수와 효종 사후 2차에 걸친 예론으로 첨예한 대립을 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친분관계를 유지하여 자신이 병이 들었을 때, 우암은 약처방을 허미수에게 부탁하였다. 이에 허미수는 비상 세 푼을 달여 마시라 하였고, 우암은 이를 의심치 않고 달여 마시어 병에서 회복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자료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병겁]
예시
41절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마음속으로 육임(六任)을 정하라고 명하셨도다. 공우가 생각한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이 불가하다 하시여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정하였더니 이 사람들을 부르사 불을 끄고 동학 주문을 외우게 하여 밤새도록 방안을 돌게 하다가 불을 켜 보게 하시니 손씨가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느니라. 상제께서「나를 부르라」고 그에게 이르니 그는 겨우 정신을 돌려 상제를 부르니 기운이 소생하니라. 상제께서 이 일을 보시고 종도들에게 「이는 허물을 지은 자니라. 이후에 괴병이 온 세상에 유행하리라. 자던 사람은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길을 가던 자는 노상에서 각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하고 혹은 엎어져 죽을 때가 있으리라. 이런 때에 나를 부르면 살아나리라.」고 이르셨도다.
43절 또 이르셨도다. 「부녀자들이 제 자식이라도 비위에 맞지 아니하면 급살맞으라고 폭언하나니 이것은 장차 급살병이 있을 것을 말함이니라. 하루 짚신 세켤레를 닳기면서 죽음을 밟아 병자를 구하러 다니리니 이렇게 급박할 때 나를 믿으라고 하면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으리오. 그러므로 너희는 시장판에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 길이 열릴 터인데 하고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만법전의 대명, 제세신약가
대명(大命)
오지제자는 일심으로 봉명하고 순일진심으로 의통을 잘기억하라
수한도병의 겁재가 서로체번하야 그칠세없이 인세를 진탕하나
아직병겁은 크게 없었나니라 시운이 자래하야 천지가 회운당래에는
무섭고두렵고 눈으로 볼새없고 입으로 말할새없고 귀로들을 새없고
약으로 쓸새없고 권리로 부술새없고 기운도 당할새없고 크고무서운
병겁이 전세계를 맹습할때 몸도리킬 여가없고 홍수밀듯 하리니
모든기사 묘법을 다버리고 의통을 잘알아 두었다가 죽는사람을
많이 살리라 인명을많이살리면 복록줄이나오니라
병겁은내가그대로 두고너희에게 의통을부쳐주어 오만년무극대운
조화선경에 무위화신하여 한없는복록을 누리게하였으니 봉명봉명일심하라
오일심봉명오일심 의통천강생기지봉생기신봉 생기인출생기
吾一心奉命吾一心 醫統天降生氣地奉生氣神奉生氣人出生氣
대명의통대자 대비성심성의성봉 성약포덕천하광제 창생일심의통 대선생전여률령
大命醫統大慈 大悲聖心聖意聖奉 聖藥布德天下廣濟 蒼生一心醫統 大先生前如律令
제세신약가(濟世神藥歌)
목전지사 쉽게알고 심량없이 가다가서 병화선궁 불머리에
흑사화에 채인몸이 살아날길 망연이라 오십년간 생문열고
별수판에 곤한몸이 궁곤에 헤메이며 포덕천하 광제심을
심중에 각을하고 사해팔방 떠다니며 양생문을 펴어놓고
들어오소 같이사세 마음량식 있는데로 끌러놓고 있는구변
없는구변 만년덕담 펼쳐낼때 탐부욕심 사라지고 철석간장
다녹는다 이리저리 썽낸마음 그저그저 삼켜가며 같이살자
말을하고 같이보자 말을하나 오욕락에 빠진마음 도덕설을
들을손가 대화양생문을 헛것같이 천대타가 천운이 순환하사
어느듯이 동청룡에 닥친몸이 사판중에 떨어지니 이아니 개탄일가
후회한들 쓸데있나 허허이것 왠일인고 동서양 괴질운수
새로개벽 된단말을 전설로 들었드니 내당할줄 내몰랐네
복귀빈천 영웅호걸 장사라도 호원없는 개벽세상 개벽중에
내빠졌네 아이구 이것왠일인가 아이구이것 흑사화라 말로들은
흑사화를 내당한줄 내몰랐네 아이고 이것사판일세 가련한 창생들아
오욕락에 몸이빠져 생수궁 아니찾고 천수를 모르다가 흑사화를
무릎쓰고 소리없이 죽을적에 어이아니 한심할가 앉아죽고 서서죽고
듣다죽고 보다죽고 가다죽고 오다죽고 울다죽고 웃다죽고 약국죽고
의원죽고 법도죽고 죄도죽고 청천에 해만둥실 떠서있고 오도가도
아니하니 무인적막 귀신세계 풍류소리 무슨일고 팔고액난 주린중이
의통인패 봄을만나 백일청천 극락대에 소원성취 뜻을얻어 백발이
환흑하고 락치부생 선풍도골 춤을추내 함께오른 의심형제 흑사화에
잃은몸 애통한들 쓸데있나 운수야 좋다만은 목넘기기 어렵도다
삼천년에 도는운수 그리받기 쉬울손가 어떤사람 이러하고 어떤사람
저러하니 운수역시 각각이라 수원수구 할수있나 무궁쾌락 조화선경
눈앞에 벌어지나 받을자가 몇몇이며 만날자가 몇몇인가
그집운수 그뿐인걸 한탄한들 쓸데있나 우는곳에 춤을추니 그집운수
저러하니 원형이정 분명일세 도산검수 격어올때 이때보고 격었다네
공사 1장
36절 상제께서 앞날을 위하여 종도들을 격려하여 이르시니라. 「바둑에서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라.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두라. 이제 비록 장량(張良). 제갈(諸葛)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어느 틈에 끼어 있었는지 모르리라. 선천개벽 이후부터 수한(水旱)과 난리의 겁재가 번갈아 끊임없이 이 세상을 진탕하여 왔으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봄으로부터 이 동토에서 다른 겁재는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 만은 남았으니 몸 돌이킬 여가가 없이 홍수가 밀려오듯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상제께서 인세에서 행하신 일 - 천지공사(天地公事)]
공사 1장
2절 상제께서 이듬해 사월에 김 형렬의 집에서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 때 상제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쓸때 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하시고 「너는 나를 믿고 힘을 다하라」고 분부하셨도다.
3절 상제께서「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고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
11절 상제께서 어느날 종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되느니라」하시고 사흘 동안 공사를 보셨도다. 상제께서 공사를 끝내시고 가라사대「간신히 연명은 되어 나가게 하였으되 장정은 배를 채우지 못하여 배 고프다는 소리가 구천에 달하리라」하셨도다.
교법 3장
23절 세계의 모든 족속들은 각기 자기들의 생활 경험의 전승(傳承)에 따라 특수한 사상을 토대로 색 다른 문화를 이룩하였으되 그것을 발휘하게 되자 마침내 큰 시비가 일어났도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이제 민족들의 제각기 문화의 정수를 걷어 후천에 이룩할 문명의 기초를 정하셨도다.
예시
12절 상제께서 모든 도통신과 문명신을 거느리고 각 민족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文化)의 정수(精髓)를 뽑아 통일하시고 물 샐 틈 없이 도수를 짜 놓으시니라.
30절 상제께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제재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 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 지어다.」라고 말씀하셨도다.
교법 3장
4절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 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한 도에 돌아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말뚝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이 되는 연고이니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천하고 약한 것을 편이하여 마음과 입과 뜻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죄를 조심하고 남에게 척을 짓지 말라. 부하고 귀하고 지혜롭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묵은 기운이 채워 있는 곳에 큰 운수를 감당키 어려운 까닭이니라. 부자의 집 마루와 방과 곡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 차있나니라.
27절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
공사 1장
4절 상제께서 삼계의 대권(三界 . 大權)을 수시 수의로 행하셨느니라. 쏟아지는 큰비를 걷히게 하시려면 종도들에 명하여 화로에 불덩이를 두르게도 하시고 술잔을 두르게도 하시며 말씀으로도 하시고 그밖에 풍우 . 상설 . 뇌전을 일으키는 천계대권을 행하실 때나 그 외에서도 일정한 법이 없었도다.
[천지공사의 실제성]
지침에 "도인들은 성.경.신을 요체로 삼아서 위로 상제님을 받들고 아래로는 사회의 모든 인사(人事)가 상제께서 대순하신 진리대로 이룩되어 가는 진리임을 깊이 심도록 노력하여야한다" 하셨듯이 이 세상은 상제께서 공사를 보신 도수대로 돌아가는 것임을 깊이 자각하여야합니다.
이 부분은 천지공사의 실제성이라는 항목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