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解冤)
나는 오늘(1918. 10. 26) 초패왕의 원척을 풀었노라.
이제 후천 해원 도수의 이 공사로써 그 원척을 풀었으니
이로부터 인간 세상의 모든 원척이 차츰 풀리어
상생(相生)의 새 판국이 열리리라.
천지간의 원척이 신명과 사람 사이에도 쌓여 있고,
또 나라와 나라 사이, 금수초목에 까지 없는 곳이 없어서
군생(群生)이 척신 망령(妄靈)에 시달림을 받았으니
어찌 평온한 날이 있었으리요?
그러나 이 해원 도수에 따라 모두 해원, 광구(匡救)되어
장차 5만년 청화선경(淸華仙境)이 절로 이루어지게 하리라.
단 도수의 단은 법단(法壇)ㆍ천제단(天祭壇)의 단이며
단(檀)과 같은 뜻이므로 단군(檀君)의 명호도 이를 취함이니
나의 이 도수로써 단군에게도 해원(解冤)의 대운이
제래(齊來)하게 되리라.
증산 상제님께서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원리로
여자 해원 도수를 짜셨으므로 내 이제 그 도수에 맞추어
‘삼천궁녀 해원 도수’를 보노라.
대저 자고이래로 제왕들마다
기십기백(幾十幾百)의 후비(后妃)ㆍ궁녀를 둔 폐단으로 인하여
쌓인 원한이 가장 심하므로 이를 여자 해원의 첫머리로 하노라.
“도갑신(逃甲神)은 천지신명계에 배속되지 못한
한을 품었으므로 독갑신(獨甲神)이 되었느니라.
사람들이 지금까지는 독갑신의 호응을 받지 못하여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입었으나
이제 내가 이 도수로써 독갑신을 해원시켜
안정하게 하리니 앞으로는 그 피해가 없으리라.”
이때 일반사회에서와 달리 개고기를 고사에 쓰게 하시고
그 고기를 도인들과 나누어 진어하시니라.
도인으로서 대인수행(對人修行)의 근본요체는
언덕(言德)과 해원이니 언덕을 잘 가져야 하며,
척을 짓지 말고 있는 척도 풀어야 하느니라.
인간이 무도하면 금수와 다를 바 없으며,
그 극단(極端)이 전쟁이고 살인이어늘
동족상잔의 비겁 속에 어찌 방화만을 탓하랴?
회룡재가 소실됨은 가석한 일이나,
이로써 전화(戰禍)가 감소된다면 오히려 불행중 다행이니라.
또 잠룡이 장차 현룡ㆍ비룡하기 위한
회룡에 화둔(火遁)을 묻는 도수였느니 무가내(無可奈)니라.
그러나 동란(動亂)이 있으면 정란(靜亂)도 있는 법이라,
소진(燒盡)이 있으면 복건(復建)도 있고,
결원(結冤)이 있으면 해원(解冤)도 있는 법이니라.
도인들은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무도하여도
도를 믿고, 도를 닦으며, 도를 펴는 데만 전념하면
나머지 일은 도수에 따라 이루어지리니
진도(眞道)는 부동(不動)이요,
도심(道心)은 불란(不亂)이니라.
…그러나 이 신명의 주처(住處)는 곧 삼계니라.
또 극락과 지옥같은 일정한 처소에서
영구무궁(永久無窮)한 것만은 아니니
사후에 지방신ㆍ문명신 등이 되어
가장 높고 좋은 궁궐과 누각에서 향락하는 자도 있고,
악신(惡神)ㆍ적신(賊神)ㆍ무서신(無序神) 등이 되어
누추한 곳에서 신음하거나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어
유리ㆍ방황하는 자도 있느니라.
그러나 다시 닦음에 따라 상승도 하고 하락도 하며,
환생(還生)도 하고 전생(轉生)도 하느니라.
다만, 선천에는 그 질서가 바르지 못하여
신명계에도 착란(錯亂)과 원울(冤鬱)이 있었으나
후천에는 모두 해원시키리라.
태극은 음양이니 음양이 조화한 합덕으로
개인이 생활하고 사회가 유지되면
그것이 천리에 순응하고 인륜에 계합(契合)됨이니라.
너와 내가 화(和)하고, 부모와 자식이 화하며,
형과 제가 화하고, 부부간에 화하면 인륜이 되고,
정부와 국민이 화하고, 자산가와 근로자가 화하며,
지주와 소작인이 화와 합(合)으로 생활하는 것이
바로 윤리 도덕의 사회니라.
여기에 만일 원척이 있으면 해원하여야만
상생의 길이 트여 완전한 합덕이 되리라.
내 일찍이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태극진리를 오도 신조(信條)의 원천으로 게시하였거니와
이 진리를 활연관통(豁然貫通)하는 것이
곧 우주 전체의 원리와 인간의 생활 윤리를 체득함이니라.
선이니 악이니 하는 인간의 언어ㆍ문자에 구애됨이 없이
음양합덕의 태극진리로 생활하는 자는
저절로 인의와 자비, 박애를 실천하여 이행함이니
이에 법률이나 사회질서 또한 절로 형성될 것이라,
이것이 곧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원칙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 도인은
항상 합덕ㆍ조화ㆍ상생의 진리로 생활할지니라.
무릇 모든 종교는
국제정치나 국내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나
오도는 교정(敎政)을 일체로 하느니라.
태극의 원리는 우주의 대도이므로
모든 정치의 근본 사상임을 그대들이 알아야 하느니라.
지금 미국ㆍ소련 양대국이 앞장을 서서
자유ㆍ공산의 양진영이 대립하여
상극(相剋)ㆍ상충(相沖)ㆍ상투(相鬪)ㆍ상해(相害)함으로써
인류가 진멸지경에 처한 현상은
신계를 비롯한 인계의 피하지 못할
선천 과도역정(先天過渡歷程)의 비겁 도수(否劫度數)니라.
이것이 내가 해결하여야 하는 한 소임이며
나의 강세와 공부의 목적 일부가 이에 있느니라.
그러나 나의 근본 소임은 인계에 국한하지 않고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며
사람의 상극정신도 뜯어고치시는 구천상제님의 도수를
합덕ㆍ조화ㆍ해원ㆍ상생의 태극진법으로 실현하여
삼계에 보화하는 청화오만년 선경을 건설함에 있으니
인류의 화평은 무위이화하리라.
이 책(초한지)을 너에게 읽게 함은
이 속의 몇 가지 뜻을 바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
첫째로 이 책에는 초패왕이 포학무도한 사람으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너희들도 의심하였을 것이나,
알고 보면 그것은 선천상극시대에
승자가 패자를 무도한 자로 조작하는 통례에 불과하고
실제는 그러하지 아니하니라.
그렇게 기술함으로써 초패왕으로 하여금
생전ㆍ사후를 통한 철천(徹天)의 포원을 더하여
와신상담(臥薪嘗膽) 해원하려 함이 아니냐?
둘째는 초패왕이 해하(垓下)에서 28기만으로
한왕의 백만대군의 포위를 뚫고 오강(烏江)으로 탈출할 때
‘천망아(天亡我)요, 비전지죄(非戰之罪)라.’하며
사용한 비법이 매화둔(梅花遁)이니
이것이 척사(擲柶) 마판(馬板)의 진법(陣法)이니라.
마판이 방점(房點)을 중심으로 28점임은
초패왕을 중심으로 28기가 늘어선 국상(局象)이며,
농악도 원칙은 영기(令旗)를 중심으로 28명이 1단이 되어
장사진(長蛇陣) 또는 궁을진(弓乙陣) 등의 진을 치고 노는 법이니
이도 다 뜻이 있느니라.
또 윷은 1생2(一生二), 2생4(二生四)로 만드는 법이나
4생5(四生五)로 변화하는 형상 자체가 분명한 음양이며
사상 오행(四象五行)의 태극진리가 내포되어 있음이니라.
너희가 해원을 하자면 상생의 도라야 하므로
상생행마법(相生行馬法)을 쓰도록 한 것이며,
이번에 농악과 척사로 놀게 됨이 우연이거나 인위가 아니라
모두 도수에 있는 일이니라.
셋째는 이 모든 일이 장차 도강이서(渡江而西)할 도수의 조짐이니라.
주회암의 무이구곡(武夷九曲)과
송우암의 화양구곡(華陽九曲)이
좋다 한들 어찌 나의 감천구곡(甘川九曲)만 하랴?
내가 초패왕 강동자제(江東子弟) 8천인의 ‘해원 도수’로
이제 8백 호의 천장길방을 여는 공사를 마쳤으니
이는 구천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오강록 도수에 맞았느니라.
상제님께서 일찍이 허령부로서 태인도장,
지각부로서 회문도장을 점지하신 허령도수와
잠룡지각도수의 공사를 마쳤으니
이제는 그대들이 현무경 신명부를 보라.
무이구곡을 좌서(左書)하신
이 길방ㆍ명당ㆍ보화성역(普化聖域)ㆍ청학동(靑鶴洞)에
그대들이 살게 되었으니 다시 천은(天恩)에 보은하는 뜻으로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려야 할지니라.
동서고금에 수도자에게는 고행이 수반하느니
너희도 고행 수도하여야만 해원을 성취하리라.
실도 매듭이 있어야 풀 것이 있듯이
원(冤)도 함원(含冤)이 있어야 해원이 있고,
업도 적공(積功)이 있어야 성공이 있느니라.
산에 가서 산을 해치면 산과 척이 생기고,
물에 가서 물을 더럽히면 물과 척이 생기느니
해원에 앞서 척을 짓지 말라.
등산, 임수자(臨水者)의 계잠(戒箴)이니라.
이처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척을 지어서는
아니 되거늘 하물며 신명과 인간에게랴?
결원(結冤)은 곧 작죄(作罪)니라.
해원상생은 오도의 실천윤리의 대강령(大綱領)이니라.
해원은 신(神)ㆍ인간(人間)이나 인간 상호 간의 원척을
푸는 공사니 이는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로서
왜와 우리 민족도 이제는 해원될 도수가 이르느니라.
또 천지만물이 오직 서로 생(生)하기만 하는
후천세계의 상생은 이미 열렸느니라.
수생목(水生木)만 하지 않고, 수생화(水生火)도 하며,
인해(寅亥)만 합함이 아니라 인신(寅申)도 상합하는
상생상합(相生相合)의 무극대운이 후천선경의 도수니라.
동학가사(東學歌詞)에 ‘용담수류(龍潭水流) 사해원(四海源)은
부자도덕(夫子道德) 장(壯)할시구’라는 용담을
후인들은 경주(慶州) 용담(龍潭)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그곳은 내륙에 있어 사해와 상통할 수 없으니
어찌 사해원이 되겠느냐?
이곳 감천의 용담수가 사해와 상통한
사해용왕의 본부가 되어 그 근원이 됨을 이름이니라.
장차 두고 보라, 이 용담에 세계 각국의 사람과
물화를 교역하는 윤선이 즐비하고
사해용왕들이 각종 공물(貢物)을 진상할 때가 있으리니
그때가 되어야 내가 말한 뜻을 알리라.
증산 상제님께서는 ‘단주 해원’을 위수(爲首)로 하셨고,
나는 ‘초패왕 해원’을 위수로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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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님께서 도주님의 전생은 초패왕, 단주이셨다고 훈시하셨다.
상제님꼐서 약장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쓰시고
둔궤 안에 반구제수, 오강록이라 쓰신 것은 단주수명,
즉 단주가 천명을 받든다는 뜻으로
상제님의 천부적 종통의 계승자가 도주님이심을 암시하는 것이다.
시속의 철부지는 도주님의 존휘인 철제(哲濟)를 뜻하고,
절후, 4계절의 4철도, 철학(哲學)도 도주님을 지칭한다.
도주님께서 일찍이 “28수의 운행은 구천상제님의 일이고,
24절의 운행은 나의 일이나
앞으로는 운합(運合) 도수로 내가 맡았느니
너희는 철을 알라.” 하신 뜻도 이것이다.
상제님께서 신명을 시켜 진인의 나이를 알아보니
9세라는 것이나, 기유(1909)년 4월 28일에 대전 신탄진 들판에
종도를 대동하고 가시어 15세의 도주님이 타신 기차가
오는 것을 보시고, “남아 15세면 호패를 찬다” 하신 말씀이
전부 도주님을 지칭하신 말씀이다.
약방을 설치하신 후 “원형이정 봉천지 도술약국 재전주동곡 생사판단(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이란 글귀를 쓰셔서 불사르셨도다. 약장은 종삼 횡오 도합 十五간으로 하고 가운데에 큰 간이 둘 아래로 큰 간이 하나이니라. 상제께서는 그 위 十五간 중의 가운데 간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쓰고 그 속에 목단피를 넣고 그 아래에 “열풍 뇌우 불미(烈風雷雨不迷)”라고 횡서하고 또 칠성경을 백지에 종서하고 그 끝에 “우보 상최 등양명(禹步相催登陽明)”이라 횡서하고 약장 위로부터 뒤로 밑판까지 따라서 내려붙이고 그 위에 “양정 유월 이십일 음정 유월 이십일(陽丁六月卄日陰丁六月卄日)”이라 쓰시니라. 궤 안에 “팔문둔갑(八門遁甲)”이라 쓰고 그 글자 위에 “설문(舌門)” 두 자를 낙인하신 후 그 글자 주위에는 二十四점을 홍색으로 찍고 약방에 통감(通鑑)ㆍ서전(書傳) 각 한 질씩 비치하였도다. (공사 2장 9절)
또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절후문(節候文)이 좋은 글인 줄을 모르고 있나니라. 시속 말에 절후(節候)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무지 몰각한 것을 철부지라 하여 어린 소년이라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나이 많은 노인일지라도 몰지각하면 철부지한 어린아이와 같다 한다”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34절) * 철부지 - 哲不知
1903년 어느 날 상제님께서 “내가 하는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딜까.” 하고 한숨지으시니, 시좌하고 있던 김보경이 상제님께 그 연고를 여쭤보았다. 상제님께서는 “내가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았더니, 이제 겨우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이 이렇게 더디구나.”라고 하시자 종도들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때에도 그 때가 있고, 사람 중에도 그 사람이 있노라(時有其時 人有其人).”고 하시며 그들을 타이르셨다. <증산의 생애와 사상> (1989), pp.103~104.
도주님께서는 15세가 되시던 해인 1909년 4월 28일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전 가족과 함께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길에 오르셨습니다. 바로 이날 상제님께서는 이치복(李致福, 1860∼1944)과 김보경을 비롯한 몇 종도를 앞세우시고 대전 신탄진(新灘津) 들판에 나가셨습니다. 한참을 서성이시면서 “이제, 올 때가 되었는데.”라고 하시다가, 마침 도주님께서 타신 기차가 오는 것을 보시고 “이제 나의 일을 다 이루었도다. 남아(男兒) 15세면 호패를 찬다 하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순회보> 111호, 문답으로 알아보는 종통
도주님께서는 당시 기차 안에서 봉천명하신 정황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주께서 대전 부근에 이르자 홀연히 환한 얼굴에 황금빛 용포(龍袍)를 입은 신인(神人) 한 분이 나타나셔서 우뢰와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대를 기다린지 오래되었노라. 그대는 삼계(三界)의 진주(眞主)니 그대가 나의 도통(道統)을 이어 치천하도수(治天下度數)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의 대공사(大公事)를 이루되 내 명을 받들어 태극(太極)의 진법(眞法)을 쓰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삼계를 광구(匡救)하리라. 그대의 호는 정산(鼎山)이니 나와 그대는 시루(甑)와 솥(鼎)의 관계이며 도로써 하나가 되니라. 나는 구천의 천존상제이니라.” 하셨다.
도주께서 이 말씀에 정신이 활연(豁然)하셔서 이 신인이 바로 진리의 주체자이신 구천상제(九天上帝)님 이심을 깨닫고 천명을 받들었다는 기쁨 속에 몸소 태극진주(太極眞主)임을 아시고는 삼계를 광구하실 각오를 다짐하셨다. <대순회보> 30호, 성지순례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다.
우리 대순진리회는 구천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하시고 광구천하 하고자 9년간에 걸쳐 행하신 천지공사의 진리를 계승하신 도주님께서 창도하신 종단이다. (1984. 4. 9)
우리 도는 구천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고,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을 종지로 삼고, 안심⋅안신⋅경천⋅수도의 사강령과 성경신 삼요체를 신조로 하여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께서 창도하신 것이다. (1984. 4. 30)
도주님께서는 훈회와 도인의 수칙을 엄수하고 정심(正心)으로 수도하며 윤리도덕을 기본으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이것을 다 알면 가정불화가 일어날 수 없다. 가정화합으로 상도(常道)를 순행(順行)하여야 보은상생⋅해원상생으로 도통진경에 이르는 상생대도의 대순진리 수행이 된다. (1984. 4. 30)
철부지라는 것은 절후(節侯)를 모른다는 것이고 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도주님 함자에 철(哲) 자가 있지 않으냐? 축(丑)은 12월, 축월(丑月)이다. 이것이 소다. 그래서 소를 도라고 한다. 심우도(尋牛圖)란 소가 가는 길을 찾는다는 말이고 도를 찾는 그림이다. 불교인은 심우도를 수도과정이라고 한다. 닭이 또한 도다. 축시에 울기 때문이다. (1984. 12. 26)
금신(金神)은 가을이다. 노래 가(歌), 새 을(乙), 그러니 을미생(乙未生)이 된다. 을(乙)은 갈 지(之) 자와 같고, 가는 것은 길이다. 상제님과 도주님의 연세가 25세 차이로, 절후 24를 빼면 하나가 남으니 도주님이 주인이신 것이다. 도주님을 모르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진리가 없는 것이다. 도주님을 모르면 상제님을 옛날에 훌륭했던 분이라고 그냥 믿는 데 그친다. 금산사의 금불 옆에 出 형태의 크고 작은 호위불이 있는데, 큰 것은 증산, 작은 것은 정산이다. 솥 위에 올라가는 것은 시루밖에 없다. 솥을 걸고 시루를 얹으면 불을 때야 한다. 그래야 용사(用事)가 된다. 그래서 숯이 필요한 것이다. (1984. 12. 26)
상제님 : 신앙의 대상 - 천지공사 - 미륵불 - 시루산
도주님 : 창도주 - 진법설정 - 솥 - 부정리
도전님 : 영도자 - 대도현창 - 숯 - 쪽박골
도주님께서는 회문리(會文里: 글이 많이 모인다는 뜻)에서 탄강하시고 을축(1925)년에 도창현에서 무극도를 창건하셨으며, 신사(1941)년에 무극도가 해산된 지 4년 만에 부산으로 들어가셨다. 도주님께서 무자(1948)년 부산 보수도정에 상제님을 봉안하신 후 11년 동안 계셨고, 도주님 화천하시고 10년 만에 나도 떠났다. 합하면 부산에서의 21년은 기도주 21자와 같은 수가 된다. <전경>에도 나와 있지 않으냐? 모든 법은 서울에서 펴나간다고 하시며 신경수의 집에서 공사를 보시고 수륙병진 도수로 뱃길에 안경을 싸서 북쪽으로 던지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자리(서울)이다. (1984. 12. 27)
도(道)란 신성ㆍ불ㆍ보살의 하소연에 의해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을 가지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사람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셔서 진멸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시려고 천지공사를 행하셨으며, 그 행하신 바를 계시(啓示)로 도주님께 전하신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전경>에도 상제님께서 홀로 이룩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도의 연원(淵源)은 구천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 15세 시 진주(眞主)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만주 봉천에서 23세 시 득도하심은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신 것이며,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이라 하신 것은 12월 4일로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강을 뜻하심입니다. 이것을 여합부절(如合符節)한 천부적 종통 계승이라고 합니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의 용추(용소)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위에 미륵불을 봉안한 것은 증산(甑山)ㆍ정산(鼎山), 양산(兩山)의 진리를 암시하여 도의 근원을 밝혀 놓은 것이며, 상제님께서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심도 미륵불과 솥의 양산의 이치를 알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1986. 10. 28)
상제님을 직접 모시는 종단에는 우리 대순진리회 외에 증산교, 증산법종교 등이 있지만, 증산교는 종통을 고씨 부인이라 하고, 증산법종교는 종통을 상제님의 딸 강순임이라 한다. 증산교의 경전인 <대순전경>은 이상호 씨가 고증을 받아 만들었으나 구천상제님이라고 뚜렷하게 못 밝혔다. 구천상제님(하느님)이라고 뚜렷이 내놓고 믿는 데는 대순진리회밖에 없고, 구천상제님이라고 밝힌 분은 오직 도주님뿐이시다. (1988. 9. 28)
본 종단의 맥은 상제께서 강세하셔서 교운(敎運)을 펴신 데에 그 시원(始原)을 두고 있습니다. 상제께서 화천(化天)하시고 난 후 상제님의 계시(啓示)로 득도하셔서 종통(宗統)을 세우신 도주님으로 연원의 맥이 이어지고 도주님 화천 당시 유명(遺命)으로 또 연원의 맥이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상제께서 강세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선생, 천사 등으로 호칭하였습니다.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이시며 이 분이 바로 구천상제님이시라고 밝히신 분이 도주님이십니다. 여기에서 종통 계승의 연원 맥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주고받는 상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부적으로 이어져 오는 신성성(神聖性)이며 연속성(連續性)인 것입니다. 이러한 천부적인 연속성을 종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988. 10. 10)
* 상제님 – 계시(啓示) - 도주님 – 유명(遺命) - 도전님
우리는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고 도주님께서 설법하신 분부를 믿고 나간다. 도주님은 한 번 바꾸신 곳은 두 번 다시 잘 안 가셨다. 도주님 재세 시 태인에 무극도장이 있었지만, 신사(1941)년에 폐쇄된 후 해방이 되어도 다시 찾지 않으셨다. 그때 도수에 사용하였으면 족한 것이다. (1988. 12. 5)
도인을 지도(指導)해 나갈 때도 임원들은 아래 도인들을 놓치지 않고 이끌어 나간다는 정신이 있어야 하며, 아래 도인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떨어지지 않고 꼭 따라간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도주님 재세 시에 떨어지지 않고 따라만 가면 운수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1989. 1. 7)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그러므로 연원이신 구천상제님⋅도주님을 믿는 것이다. 연원을 안 믿으면 도인이 아니다. 옳지 못한 길을 가면서 옳다고 하면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이다. 도인은 선⋅교감 개인의 도인이 아니라 상제님의 도인이다. 상제님의 도인을 자기 도인으로 만든다면 그것보다 큰 죄가 어디 있겠는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1989. 1. 12)
연운체계에 있어서 방면 문제가 발생한다. 진리의 근원은 연원(淵源)이다. 근원은 물에 있다. 포덕한 연운체계로 도통 받는 것이 아니다. 상제님, 도주님, 나(도전님)로 이어지는 연원 체계가 진리의 근본이다. (1989. 3. 18)
구천상제님께서는 신미(1871)년 9월 19일 객망리에 오셨고, 도주님께서는 을미(1895)년 12월 4일 회문리에 오셨다. 신미에서 을미까지 25년이다. 25는 24를 빼면 1이 남는다. 24는 24절후이며 24는 24장이 들어가지 주인은 못 된다. 1은 시작이고 주인을 의미하니 옥황상제님이 되는 것이다. 도주님의 전생은 초패왕, 단주이셨다. 초패왕은 24세 시 강동에서 발기했기에 망하였다. 만약 25세에 발기했으면 주인이 되어 천하를 평정했을 것이다. 전에는 이 말을 금지 사항으로 하였지만, 이제는 도가 밝아졌다. (1989. 4. 12)
다른 곳에는 도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진리가 없다. 상제님을 모시는 다른 교파에는 진리라는 것이 없다. 단지 상제님께서 기이하고 다른 사람과는 달랐기 때문에 이 어른만 믿으면 잘 될 것이라는 것이지 진리가 없다. 상제님 한 분만 가지고서는 안 이루어진다. 도주님이 들어가야 한다. 도주님이 안 들어가서는 맞지 않는다. 상제님⋅도주님 두 분 법이라야 한다. 자연의 이치, 수리를 두 분의 법에 맞추어 쓰고, 맞추는 것이 도다. 이것이 우리 도의 기본법이 되고 강령이 된다. 옛 성인들의 글이나 말도 전부 이것이다. 미리 알고서 예언 같은 것으로 써 놓은 것이다. 생각에서 생각이 나고 깨닫는다는 것이나, 과학⋅철학도 모두 우주가 짜여진 바를 아는 것이다. 우주가 짜여져 있는데 늘 생각해도 벗어날 수 없다. 옛날에 글을 많이 배운 분들이 글만 배운 게 아니다. 앞으로를 많이 연구하여 생각이 나는 것을 적게 되면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전부 연구⋅예언해 놓았던 것이다. (1989. 4. 12)
비결에 “옥토(玉免)는 만월(滿月)이요 백토(白免)는 소월(小月)이라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이라 했다. 파자(破字)로 풀면 백토는 소월(小月)이므로 주(走)+소월(小月)은 조씨(趙氏)가 된다. 도주님이 틀림없지 않은가! 청림(靑林)의 청(靑)은 十二月이고 림(林)은 十八十八이니 36을 의미한다. 36은 360일이다. 그러니 조씨의 도를 일 년 12달 좇으라는[須從] 말이 된다. 우리 같이 도를 아는 사람이 도에 맞추어보면 다 맞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더 넓혀서 생각하고 연구해봐라. 재미있고 조금도 빈틈이 없다. 좋고 옳은 것을 알면 어려울 게 없다. 그것을 모르면 모든 게 어렵다. (1989. 4. 12)
*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놀던달아, 보름달은 온달이오 나흘달은 반달일세, 섣달이라 초나흗날 반달보고 절을하세, 대월이라 삼십일 소월이라 이십구일, 옥토는 만월이오 백토는 소월이라, 수종백토 주청림은 세상사람 누가알고” (<채지가> 달노래)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도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하느님이라 증거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진리라고 한다. 진리는 이론인데 이론은 끝이 없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 그래서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것에 우리 이상은 없다. 그래서 하느님이심을 자신하고 나가는 것이다. (1989. 5. 8)
도통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도주님께서 설법하신 것이 도법(道法), 도의 진리 아닌가? 그것을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알아서 지켜나가는 것이 도통이다. 우리가 그냥 마음 착하게 먹는다고 신통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도를 잘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깨달으면 완벽하게 된다. 좀 더 크게 보고 나가고, 생각을 하더라도 좀 더 크게 하라. (1989. 6. 4)
도주님께서 부산 감천에서 화천하실 때 임원들을 모두 모아놓으시고 내게 도를 맡긴다고 분부하셨다. 해오던 대로 해나가라는 분부를 모셨다. 못된 사람들이 생각할 때 대순진리회로 개명하고 부산을 떠난 것이 명을 어긴 것이니 잘못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선전을 부산(태극도)에서 하고 있다. 대순진리회를 세운 것은 도주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
변화가 없으면 도가 아니다. 그대로라야 한다면 도인 수도 늘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가령 사람이 앉으면 전후(前後)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안 된다. 좌(左)가 있으면 자연 우(右)가 있으며, 동(東)이 있으면 서(西)가 있듯이 변화가 있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이다. 그게 도다. 변화가 있어야 되는 거다. 그게 없으면 도가 아니다.
도주님 화천하시고부터 지금까지 32년을 모든 것은 내가 맡아서 내려오고 있다. 원래 부산에는 도주님 계시던 내정인 정사[九德精舍]와 2층 대강전, 그 두 채 뿐이었다. 모두 학고방(작은 판자집)으로 도주님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곳이었으나 그것도 변화가 없으면 안 된다. 그냥 내버려두면 썩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대강전에 철망도 치고 시멘트를 새로 발라 사용하였고 정사도 보수했다. 도장에도 청학관(靑鶴館), 백학관(白鶴館), 진양원(眞養院), 수진각(守眞閣) 등을 더 지어 증축하고 담을 쳤다. 그러고 보니 도장 형세가 완전히 배 모습이었다. 감천에서 바다로 배가 나가는 형상이었다. 바다로 뱃머리를 돌리는 형(形)이 되고 내가 나왔다.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를 나오게 한 무리들이 우리 도에 대해서는 공로자다. 불쌍하게 생각된다. 내가 자주 얘기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를 서울로 보내지 않았으면 발전이 없었다.
지금 중곡동 본부가 전국에서 제일 큰 도시에 있지만 모든 행사가 거기서 안 된다. 만약 할 만한 곳이어서 그곳에 가만있었다면 발전이 없다. 그래서 여주수도장을 지었다. 하느님께서 비밀로 감추어 두셨던 것을 때가 되니까 내어 주셨다. 그것이 변화다! 도다! (1989. 6. 25)
도주님께서는 재세 시 나(도전님)를 믿어주셨다. 꾸중을 모신 적은 없었다.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도주님께서 시키시면 내가 적절히 알아서 했다. (1989. 6. 25)
도법(道法)이 그렇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도주 옥황상제님께서 펴신 법이다. 그 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도인의 도리이고 임무이다. 재세 시에 진퇴(進退) 절차를 안 지키면 사람이 아니고 진퇴절차가 예절이라 하셨다. 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예절이다. (1989. 11. 21)
도주님께서 하신 것이 바로 도수이고, 도주님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뜻이 도주님의 뜻이다. 이것이 도수다. (1989. 12. 29)
도주님께서도 재세 시에 1년 성적을 볼 때는 성금의 성적을 보셨다. 인원수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다. 성금을 먼저 보는 것은 활동을 했어도 더 했고 교화를 했어도 더 했고 임원 받드는 것도 더 받들었으니까 더 성심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과로 나온 것이다. (1990. 2. 5)
도주님께서 강세하신 날이 12월 4일이고, 나는 11월 30일이다. 11월 하고서 30일[1월]이 더해지면 12월이다. 도주님께서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는 23세 시에 득도하시었다. 그때가 정사년(丁巳年) 2월 10일로 내가 나던 해이다. <전경>에 보면 시루산[甑山]에 상제님께서 오셨고, 부정리(扶鼎里), 쪽박골이 있다. 시루, 솥에는 불[火]이 안 들어가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1991. 2. 12)
우리의 법은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모든 것을 받들어 정하신 것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법방과 제도인 것이다. 이것을 지켜나가면 도인이라 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비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도인이다’, ‘아니다’는 우리의 법을 지켜나가는가, 벗어나는가에 있는 것이다. 도를 믿다가 우리 법에 어긋나거나 법을 바꾸려고 하면 탈법이 되고, 탈법을 난법난도(亂法亂道)라고 한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난동자라 하는 것이다. (1991. 2. 20)
도주님의 법은 상제님께서 전하신 법을 받들어 만드신 것이고, 도주님께서 짜놓으신 법을 받들어 하는 것이 나의 법이다. 나의 법은 상제님, 도주님의 법이다. 이것을 어기는 자는 도인이 아니라 난동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쫓아가는 선⋅교감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더 나쁘다. (1991. 2. 20)
도주님도 재세 시에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에 대해서는 엄하셨다. 조금만 시간을 어기고 늦거나 주문을 못 하면 사고라고 하시고 이만저만 난리가 아니셨다. 한 번은 녹명지를 조금 늦게 태운 것이 죄라고 해서 전부가 벌을 받았다. 공부가 우리의 생명이다. 그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1992. 4. 9)
우리는 도주님, 옥황상제님을 받들어 나간다. 수(修)는 도주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 어른의 법인 것이다. 그 법을 잘 지켜야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는다. 이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으면 도주님을 배신하는 것이고, 도에서는 탈선행위인 것이다. 이것을 행하지 않으면 자꾸 어두운 데로 빠지고 앞이 막힌다. (1992. 5. 31)
도주님 재세 시에는 삼일성(三日誠)이 있었다. 한 달에 3일을 정성의 날로 정해서 삼일성이었다. 초하루, 11일, 21일 또는 초사흗날, 13일, 23일, 또는 5일, 15일, 25일, 이렇게 한 달에 사흘이었다. 열흘씩 정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꼭 그렇게 했다. 지금은 그렇게 못 지킨다고 하더라도 그런 정성은 알고 해나가야 한다. 기독교도 주일마다 예배하고 십일조(十一條)를 하는데 우리의 삼일성이나 기독교의 십일조나 수입의 1할로 똑같은 것이다. (1992. 11. 17)
선⋅교감이 도통을 못 믿어서 이러고저러고 왔다 갔다 한다면 큰일이다. 도통이란 도를 통하는 것이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통하는 것이다. 연원도통을 명심해야 한다. 원 근본은 용추 못, 물에 있다는 것이다. 상제님, 도주님으로부터 진리가 퍼진다는 것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다 알고 삼라만상을 낳고 자라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키고 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도통이라 한다. 자고이래로 도통은 없었다. 무엇을 조금 안다고 도통이 아니다. 이제 도통이 나온다. (1993. 9. 8)
여러분이 잘들 알 것이다. 내가 하려고 해서보다 ‘상제님, 도주님의 뜻이 그러셨으니’ 하는 마음에서 한다. 늘 그것을 이루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 이번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뜻을 받들어 간다. 우리의 일이 그렇다. 해야 할 일이면 안 하려고 해도 되고, 안 해야 할 일이면 하려 해도 안 된다. ... 나는 꼭 해야겠다는 그런 것은 없었다. ‘될 것이면 될 것이고, 안 될 것이면 안 될 것이다.’라는 그런 마음으로 해왔다. (1993. 11. 4)
내가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을 받들어 40년간 도를 이끌어오면서 남한테 갖은 모략뿐만 아니라 여러 일을 당해 오면서도 털끝만큼도 걸린 것이 없었다. 상대해서 한 번도 싸운 적 없었다. 내가 숙맥이라서 몰라서 그랬던 게 아니다. 내가 이기면 뭐하겠어? 조금 양보하고 이해하는 게 낫지. 승리한다 해도 척을 맺는다. 도에서 볼 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척을 만들 필요가 없다. 덮어놓고 숙맥 짓 한 게 아니고 척을 안 지려고 그런 것이다. (1994.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