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각유주(物各有主) 옛날 김모(金某) 박모(朴某)라는 두 노인이 친하게 살았는데 하루는 김모가 죽었다가 생환하여 말하기를 “내가 염라국(閻羅國)에 가니 아직 올 때가 아니라 하며 다시 돌아가되, 반드시 오늘 오시까지 한 사람을 대신 보내라 하였으니, 오늘 오시에는 부득이 이 앞 다리 위에서 행인 하나를 떨어뜨려 죽일 수밖에 없노라.” 하고 다리 위에서 행인을 기다리니라.
이때 한 임신부가 어린아이를 업고 앞을 지나갔으나 김모는 결행하지 못하고 다시 와서 “늙은 목숨 하나 살려고 젊고 어린 세 목숨을 죽일 수 없었노라.” 하며 자결하므로 장사하니라.
다음날 김모가 박모에게 현몽하여 “나의 선행을 염라대왕이 가상히 여겨 어떤 산의 산신으로 임명하여 부임하게 되었으니 그대가 찾아오면 산삼은 얼마든지 주리라.” 하니라.
그 후에 박모가 찾아가자 “내가 산신이 되면 산삼은 임의로 하는 줄 알았더니 물각유주(物各有主)하여 불가능하도다. 그대에게 큰 죄를 지었노라.” 하며 사과하였다 하니 알아두라. (道主任)
지각유주(地各有主)
남사고는 경북 울진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 자주 불영사(不影寺)를 찾아갔다. 이 절은 산자수명하여 부처를 비춘다는 불영계곡안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소년 남사고는 절간에서 한 노승을 만났는데 그는 소년이 남다른 인물이 될 줄로 짐작해 3권의 비결을 내주었다.
천편(天編)은 별자리의 운행과 그 운세 등 천문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항목별로 적어 놓았다. 지편(地編)은 산천의 지세와 명당 등 풍수를 자세히 논한 것이었다. 마지막 인편(人編)은 한 번만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 그 명운(命運)을 알아맞히는 방법을 기록한 비밀스러운 책이었다.
노승은이 책들을 건네주며 신신당부했다. 아무쪼록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뒤 어느 날 노승은 남사고의 공부를 점검하러 집으로 찾아갔다.
당연히 제1권인 천편부터 차례로 공부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남사고는 인편에 실린 각종 비술에 빠진 나머지 천편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노승은 남사고가 비결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쓸까 염려한 나머지 남사고의 집에 불을 질러 책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러고는 불영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졸지에 비결을 빼앗긴 남사고는 새 각오로 삼천리강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제야 지리 공부의 요체를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명당을 얻더라도 결국 덕을 많이 쌓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사고가 아버지 무덤을 아홉 차례나 이장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는 지리를 완전히 터득한 고수였던 지라 가장 좋은 자리를 택해 아버지의 묘를 썼다.
그런데 써놓고 보면 더 좋은 자리가 문득 눈에 띄곤 해 옮겨 쓰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비룡승천(飛龍昇天·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형의 명당을 얻어 다시 이장을 하였다.
그때 지나가던 한 술사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구천십장(九遷十葬, 아홉 번 묘를 옮겨 열 번 장사를 지냄) 남사고야, 비룡승천을 좋아 마라. 고사괘수(枯蛇掛樹, 말라 죽은 뱀을 나뭇가지에 걸친 모양)가 아닌가?”
남사고는 깜짝 놀라 산세를 다시 살폈다. 죽은 용이 분명했다. 그 술사를 만나 한 수 배우려 했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다음이었다.
생각 끝에 남사고는 지각유주(地各有主)라, 명당도 저마다 임자가 따로 있어 인력으로 바꿀 도리가 없다는 깨침을 얻었다. 그는 별로 하자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묘자리를 구해 아버지의 유해를 평안히 모셨다.
요컨대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눈이 멀어 명당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고, 설사 요행히 명당을 차지하더라도 발복(發福, 복이 나타남)은 불가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