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을 연상케 하는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7일까지 한국에 민주화의 봄을 맞이하는 국민적 기대를 가졌던 민주화 운동의 기간을 이르는 말입니다. 서울의 봄은 12ㆍ12 군사 쿠데타를 성공한 신군부에 의해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계엄군에 의해 수백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수천 명의 부상자를 남긴 채 무력으로 진압되면서 종결되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2023년 11월 22일 개봉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로 12ㆍ12 군사 쿠데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군사 반란이 일어난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의 9시간을 2시간 20분의 영화에 담았습니다. 영화는 베테랑급 주연, 조연의 실감나는 연기와 감독의 연출로 관객을 영상에 끌어들이는 몰입도는 대단하여 어느새 등에 기대었던 몸은 스크린 쪽으로 쏠리고 시간은 압축되어 어느새 영화는 끝나 있었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서요. 이 사건은 비단 이날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이런 일들을 많이 봤어요. 우리 생활에도 욕망 덩어리들이 많죠. 승자들 사이에서도 의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을 것 같았어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여러 중요한 모멘텀이 있을 거고 결정적인 판단을 해야 해요. 모든 일들이 꼭 지혜와 안목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경종을 알리고 싶었어요.”
감독이 전하고 싶은 핵심은 ‘중요한 순간’ 속에서 선한 사람들과 탐욕스러운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역사가 인간의 욕망에 의한 잘못된 판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젊은 관객이 많이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건과 그것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서울의 봄은 해원상생(解冤相生)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대중 교육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봄은 국민 주권을 유린한 국민적 가해자가 어떻게 모의하고 어떻게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는지를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어도 현상적인 면에서 납득이 가게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에 공수부대가 투입된 것에도 개연성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욕을 가지고 군부 내에서 쿠테타를 일으켜 국민의 주권을 찬탈하였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몸의 에고(ego)가 왕좌를 차지하고 여러분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 집단(하나회)의 통치라는 것은 권력욕을 실현하는 데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야욕의 충족을 지향합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집단의 대국민 통치나 여러분 몸의 왕좌에 군림한 에고의 통치나 그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역사가와 대중에게 맡기더라도 이들의 반역 행위를 다루는 것은 여러분 몸의 에고를 다루는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문제는 여러분이 에고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와 본질에 있어서 같은 것입니다.
에고는 무엇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우선 여러분이 보고 있는 그 모습이 바로 여러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남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남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분리를 인정할 때만 가능한 것으로 만약 분리가 없는 것임을 자각하였다면 남은 곧 나임을 알 것입니다. 예, 분리가 없다면 남은 곧 나입니다. 남은 나이고 나는 남이니, 너와 나는 없고 우리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리의 환상을 극복하면 ‘너와 나’는 ‘우리’로 바뀝니다.
너와 내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판단이 함께 존재합니다. 너와 나의 분리가 판단을 부릅니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된다면 판단은 없고 분별만이 있게 됩니다. 너와 나는 판단하고, 우리는 분별합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세요. 너와 나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에고 또한 우리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에고가 우리라는 범주에 드는 순간, 에고에게는 역할이 주어집니다. 에고의 역할은 몸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필요하며 여러분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입니다. 다만 에고가 그런 기능을 넘어서 월권을 하는 데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인이 군대에 있지 않고 군대 밖으로 나와 정치 권력을 찬탈하는 반역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군인의 역할은 왜곡되고 뒤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에고가 일신(一身)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것은 군인이 군대를 벗어나 정치 권력을 찬탈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에고가 일신의 주인으로 군림하면 그의 본연의 임무인 몸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일을 잘하게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에고는 무리하게도 다른 욕망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정치군인이 정치 권력을 찬탈한 다음에는 그 권력을 이용하여 명리(名利)와 재리(財利)만을 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인간이 에고의 욕망에 사로잡혀 허망한 꿈을 추구하다 일신을 그르치는 것이나 찬탈한 권력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 국민의 심판을 받아 감옥행이 되고 천추에 오명을 새기는 것은 다 같은 현상입니다.
이것이 두과지리(豆瓜之理)이며 인과응보(因果應報)입니다. 오이를 심어 오이가 나고 콩을 심어 콩이 나는 것은 천지자연의 이치입니다. 오이를 심어 콩을 거둘 수 없고 콩을 심어 오이를 거둘 수 없습니다. 선인선과, 악인악과입니다. 천지간에 이를 심판하는 기관이 없는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자신이 심은 것을 자신이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뿌린 대로 거둔다.”라고 표현합니다.
해법은 자명합니다. 여러분 삶의 모든 고락(苦樂)과 행ㆍ불행, 흥망성쇠는 다 여러분 자아(自我, self)에 달려 있습니다. 에고도 여러분 자아의 일부이고 진아(眞我)도, 영(靈)도 여러분 자아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무엇으로 보는가? 여러분은 누구인가? 여러분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진실하게 자신에게 던지고 진실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필멸하는 에고 마음인가, 아니면 영원한 영인가? 여러분은 하늘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드려 세상에 낸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을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사랑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생명이며, 생명은 영이니, 여러분은 영입니다. 그것은 달리 될 수 없으니 나는 영이고, 분리는 없으며, 우주지간에 오직 나(I AM)만이 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영임을 확고히 자각하세요. 그러면 에고는 순복하게 됩니다. 따라서 에고의 기능 장애는 해소되고 본래의 몸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는 자기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군인이 군대에 충실히 복무하여 국방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올바르게 돌아갑니다. 이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입니다.
인과응보와 시필귀정은 동전의 양면으로 하나입니다.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두고, 모든 일은 정(正)과 의(義)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천지간에 원원(元元)한 법칙으로 호리불차(毫釐不差)의 원리입니다. 누구도 이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단순한 이치를 깨우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에고 마음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고 정과 의에 벗어난 일을 행치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영임을 깨달았다면 그간 에고가 행한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자신이 영임을 알고, 영만이 실재하는 것이니 에고가 한 거짓 행위는 실재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모든 것이 영임을 자각하는 것이지 자선이나 시혜가 아닙니다.
자신이 영임을 알고 그간 에고의 행위가 헛된 것이었음을 자각하여 자신을 용서하였다면 이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와 나는 없고 우리만 있으며, 우리는 모두 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영이며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모두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슴으로 서로를 바라보세요. 그러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으며, 사랑을 주지 못할 존재는 없는 것입니다.
나는 영이고 영은 생명이며 생명은 사랑이니, 사랑은 만물의 생명력이고 조화이므로 하느님을 사랑으로 예배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곧 사랑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여러분에게 내리는 천지의 축복입니다.
합덕과 조화, 상생의 사회를 위하여!
늘 사랑과 감사, 기쁨 속에 머무세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임의에 맡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