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운 2장 54절] 심검당(尋劒堂)과 다로경권(茶爐經卷)
도주께서 다음 달에 박 한경(朴漢慶)과 김 용화(金容和)ㆍ김 해구(金海九)ㆍ오 치국(吳治國)ㆍ류 철규(柳喆珪)ㆍ이 윤섭(李允燮)ㆍ류 한규(柳漢珪)ㆍ김 영하(金永河)ㆍ오 영식(吳永植) 등을 데리시고 해인사(海印寺) 경내에 있는 관음전(觀音殿)이자 심검당(尋劒堂) 뒤편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사흘 동안 공부를 하셨도다. 그러나 공부에 관한 말씀은 없으시고 “사명당(四溟堂)의 입적실에 가서 불공이나 드리고 가리라” 말씀하시니 박 한경과 그 외 세 사람이 먼저 그곳을 돌아보고 와서 가시기를 청하니 “너희들이 다녀왔으면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근처에 있는 백련암과 그 외 여러 암자를 돌아보시고 길에 오르셨도다. (교운 2장 54절)
앞의 다로경권 도수 편에서는 도인들이 대순진리를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 <전경>, <대순지침>과 함께 훈시를 중심으로 진리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진리에 대한 자각을 심심화(深深化)하여야 한다는 데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심검당(尋劒堂) 뒤에 다로경권이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잘못된 것을 보고나 들었을 때 심검(尋劒), 찾을 심 칼 검, 즉 칼부터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칼은 베는 것이 재주이므로 칼을 찾는다는 것은 베겠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이나 사람을 베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대상을 판단하거나 심판하는 것입니다.
심검당 뒤에 다로경권이 있는 것은 매사에 심검, 판단과 심판을 앞세우기보다는 다로권경, 차를 마시며 담소하듯이 웃으며 대화로 풀어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원상생은 “원수의 원(冤)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상이고, 해원상생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 형태는 바로 대화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대하든 칼부터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다로경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일을 대화로 풀면 풀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을 대화로 푸는 것이 해원상생입니다.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차가 있고
국가⋅사회에도 차가 있는데
모든 것은 대화로 푼다.
이것이 상생원리인 것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다.
잘 모르는 것을 오해라 한다.
모르는 것을 의심이라 한다.
의심이 가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오해고, 의심이고, 대화로 다 풀린다.
대화로 푸는 것, 이것이 곧 해원상생이다.
모르는 것을 풀고 서로 이해해야 한다. (1990. 1. 30)
대화로써
이해하고 풀어 나가는 것이
도의 일이며
해원상생의 원리인 것이고
우리의 원 근본이다. (1990. 3. 4)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무슨 말이든지 받아들인다는 마음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구수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1989. 3. 17)
또한 상제님께서 지으신 중화경(中和經)에는 ‘담소미중족이해분(談笑微中足以解紛)’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미소 지으며 대화하는 가운데 능히 분란을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대화와 웃음만으로도 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본의(本義)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대하든 칼을 찾기 이전에 다로경권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대하든 칼, 판단과 심판을 찾기 이전에 다로경권, 대화를 찾아야 합니다.
도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도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쟁투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과 조화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피아노의 선율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 하나만 가지고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개인도 마음과 영(靈)의 대화로 영통의 통일을 이루고, 가정도 대화로 화목을 이루며, 이웃도 대화로 화합을 이루고, 사회도 대화로 화평을 이루며, 세계의 국가 간에도 대화로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감사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감사’를 찾는 것이 해원상생입니다. 도전님께서 ‘나라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충(忠)’(1991. 5. 14)이라 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충ㆍ효ㆍ열이 없어서 천하가 다 병에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도하는 것은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함입니다. 나라에 고맙고 감사하는 것이 충(忠)이고, 부모님께 고맙고 감사하는 것이 효(孝)이며, 부부 간에 서로 고맙고 감사하는 것이 열(㤠)입니다. 부부가 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 열(㤠)입니다.
상제님의 은덕에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성ㆍ경ㆍ신입니다.
나라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충(忠)입니다.
부모님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효(孝)입니다.
부부가 서로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열(㤠)입니다.
스승의 은혜에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봉교 포덕의 정신입니다.
존장(尊長)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경(敬)입니다.
수하(手下)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애(愛)입니다.
친우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신의(信義)입니다.
직업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근면 성실한 직분 수행입니다.
원수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해원상생입니다.
가해자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해원상생입니다.
척신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해원상생입니다.
화액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전화위복입니다.
시련과 고통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수도정신입니다.
도 닦다 죽어도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신명인사일반(神明人事一般)의 열반지경(涅槃之境)입니다.
이렇게 해원상생의 본질은 감사입니다. 모든 것을 대할 때,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몸에 배야 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입니다.
우리 도는 상생대도이고, 상생대도의 핵심 사상은 해원상생ㆍ보은상생입니다. 해원상생의 이론과 실천체계에서 해원상생의 이론(내재적 측면)은 이해ㆍ존경ㆍ감사이고, 실천(외재적 측면)은 도인의 3대 실천 사항으로서 솔선수범ㆍ가정화목ㆍ이웃화합입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행하는 데 있어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도이고,
목적은 도통이다.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야 된다.
그래야 해원상생에서 도통진경(道通眞境)에 들어간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가 있다.
여러분은 판단 못할 것이다. (1994. 8. 4)
도인으로서 필히 지켜나가야 할
세 가지 실천 사항을 밝히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솔선수범이고,
둘째 가정화목이며,
셋째 이웃과의 화합입니다.
이와 같은 3대 실천 사항을
전 도인들은 명심하고 실천하여 생활화하도록 합시다.
생활화한다 함은 곧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
저절로 행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생의 법리이며,
우리 종단의 종지(宗旨)인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근본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대순회보>, 6호, 도전님 훈시)
해원상생은 음(내재적 측면, 이론)적으로는 이해ㆍ존경ㆍ감사이고, 양(외재적 측면, 실천)적으로는 솔선수범ㆍ가정화목ㆍ이웃화합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해원상생의 본질은 ‘감사’임을 자각하여야 합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실천하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몸에 배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척이 풀리고 맺힐 수 없다. 고맙고 감사할 때 척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통일도, 도통이 있고 없고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을 감정의 동물이라 한다. 이것을 없애는 것이 수도이다. 어디 원망할 게 없고 미워할 것이 없으면 감사할 것만 있다. 뭘 생각하든지 항상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 하늘과 땅이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있고, 나라가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있고, 부모가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나’라는 존재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다. ‘나’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해서 앞으로 도통도 있다.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면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 싫은 게 아무것도 없다.
상제님께서 누가 나를 때리거든 그 사람 손을 어루만져 주라고 하셨다. 기독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모르니까 그렇지, 안다면 가해자에게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내가 전생에 누군가를 때렸던 것이 척신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복수하는 것이다. 받으면 풀린다. 그 사람한테 와서 풀리는 것이다. 무엇을 도적맞았을 때 괘씸하고 미울 것이다. 그러나 전생에 누구한테 물건을 훔친 적이 있고 그게 지금 나타난 것이다. 그 도적이 한 게 아니다. 척신이 그 사람한테 와서 갚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가! 고마워하면 풀린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해 못 할 게 없다. 척은 받아야 한다. 받으면 풀린다. <전경>에도 있다. 상제님께서 일본 옷을 입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글방에 다니실 때 친구가 있었는데 싸워서 죽어 척이 되었고, 상제님이 일본 옷을 제일 싫어하니 일본 옷을 입으라고 해서 입었다 하셨다.(행록 4-54) 우리는 척을 다 풀어야 한다. <전경>에 화복(禍福)이라 했다.(교법 1-19) 화를 당하면 복이 온다.
내 진심, 성의를 다해서 도를 믿고 있는데 화액을 당했다 하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도를 닦을 때 화액(禍厄)이 오면 잘못 믿어서가 아니라 잘 믿어서다. 겁액을 푸는 것이다. 삼계해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解魔大帝神位願趁天尊關聖帝君)이란 삼계의 마를 풀어주는 대제신위가 관성제군이라는 것이다. 내가 당하면 풀리는 게 있고, 심한 경우에는 받아서 죽을 수도 있다. 죽지만 내가 풀리는 것이다. 신으로 받으나 인간으로 받으나 똑같다. 살아서 풀리기도 하고 죽어서 풀리기도 한다. 생명을 요구할 정도로 그렇게 받아야 풀리는 것이다. 복수를 당하면 척이 풀린다. 신명으로는 해원인 것이다. 그러니 복수를 당한다 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나중에 도통이란 것은 신명인사일반(神明人事一般)이다. 신도 운수를 받는다. 도를 닦다 죽더라도 운수를 받는다.
... 고맙고 감사하다는 걸 생활화하라. 이것이 해원상생의 길이다. 말로 해선 안 된다. 완전히 믿음으로써 된다. 가해자를 이용해서 척신이 복수하는 것이고, 그래서 척이 풀리는 것이니 고마워해야 한다. (1991. 5. 14)
해원상생의 길, 해원상생의 도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생활화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 저절로 행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잠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우리 도의 사랑이 깊이와 넓이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언급하여야 합니다.
우리 도에서 말하는 사랑은 해원상생인데, 해원상생이란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것이 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지만, 우리는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밀라”고 하지만 우리는 “뺨 때린 사람의 손을 어루만져주라”고 합니다. 해원(解冤)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알 길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사랑에는 해원이 없습니다. 해원이 없이 상생이 없고 상생 없이 해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상생(사랑)이라는 개념도 그냥 사랑하는 것하고 은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이 어린아이의 사랑이라면 우리 도의 사랑(해원상생)은 어른의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우리 도의 해원상생으로 완성됩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우리는 도통을 하려는 것이다. 도통을 하려면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생화화해야 한다. 해원상생이란 사랑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게 없는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을 생활해 나가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래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말로만 말고 해원상생을 몸으로 실천해 생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수도다.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 그저 서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해나가야 한다. 남이 나에게 잘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잘해주고 이해해줘야 한다. (1991. 4. 20)
상제님께서 60년 조상의 공력으로 인세에 태어나게 된 조상의 은덕을 잊지 말라 하시고(교법 2-36),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니 사람의 도의로서 부모를 잘 공양하라(교법 1장 41절) 하셨으며,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예시 88)이라 하셨으니, 인간이 도통하여 인간 완성을 이루는 것이 천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이렇듯 인간 존재는 감사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도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의 고마움과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눈이 어두운 도인이니라” 하시고, 부모상의 기한을 3년으로 정한 이유를 어린애가 강보(襁褓)에 싸여 양육되는 기간이 3년이므로 그러하다는 보은의 이치를 밝혀주셨으며, 임원들에게 “너희는 삼재(三才)ㆍ오행(五行)ㆍ우주만물의 무한한 은덕 속에 사는 고마움을 알고 보은(報恩)을 명심하라.” 하셨습니다.
실로 감사는 해원상생을 보은상생으로 완결하는 궁극의 상생 이념입니다. 결국 감사가 해원상생ㆍ보은상생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입니다.
감사에 대한 도전님의 훈시를 몇 가지 더 보겠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나에게 나쁘게 대하더라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양보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결국은 그도 마음을 돌려서 상제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1987. 4. 3)
체계를 확립함에 있어서는 임원과 수반 상호 간에
서로의 은의(恩義)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임원들은 수반 도인들이 있음으로써 임원의 위치에
있을 수 있으니 그 은의를 잊지 않아야 하며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남의 의사를 존중하고
행동 처사를 바르게 함으로써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행할 때에 수반 도인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심복(心服)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상호 간에 통심정(通心情)의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수반 도인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또한, 수반 도인들은 자신에게 도(道)를 전하여 준
전도인(傳道人)이 있고, 도를 일깨워주며 이끌어주는
선각 임원이 있음으로써 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도문(道門)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여 항상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은의를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1988. 3. 27)
상대방이 자꾸 고맙다는 생각이 나도록,
또 나 스스로 무조건 고맙다고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감사한 것이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다. (1989. 1. 12)
이번에 통하는 것은 연원이다. 그 원리를 믿는 것이다.
연원을 착각하고 몰라서는 안 된다. 연원은 줄이 아니다.
아래가 잘되면 윗사람은 저절로 커지고, 위가 커지면
아래도 따라서 커진다. 그러니까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서로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1989. 3. 18)
해원은 척을 푼다는 뜻이니
해원상생이란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가 고맙고 감사하는 예를 지켜나가면
화합과 평화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1989. 4. 12)
상제님께서는 오히려 때린 사람의 손을 만져서
위로해 주라고 하셨다. 전생에 때린 일이 있으면
척신이 맞게 한다. 내가 한 대 매를 맞았다면
반드시 전생에 누구를 그대로 때린 것이다.
전생의 잘못이 있어서 그 척신이 그 사람에게
응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라.
전생의 잘못은 빌고 풀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전생에 훔친 것이 있어
그 죄가 벗겨지는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죗값을 받은 것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척을 푸는 것이고,
척이 다 풀려야 해원상생이 되는 것이다. (1990. 3. 4)
선감ㆍ교감ㆍ보정 하면 우리 종단의 최고 임원이고,
나중에 도통을 한다면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 지금까지 온 것이 누구의 덕이겠느냐?
그래서 저 밑의 평도인을 보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평도인들도 임원을 보면 ‘내가 운수를 받도록
이끌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1992. 12. 28)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되고, 상생이 되어야 해원이 된다.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감사하다는 그 마음을
가지면 된다. 해원이 아니고는 상생이 있을 수 없고,
상생이 아니고는 해원이 있을 수 없다. (1993. 1. 28)
방면 체계나 가정, 국가, 사회의 모든 조직체는
공존 공생(共存共生)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척이 없이 서로 돕고 존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방면 체내(體內)가
편안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 국가가 안정되고
천하가 화평하게 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1993. 2. 4)
늘 얘기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
서로가 감사해야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감사할 게 뭐가 있냐?’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혼자는 못 사는 것이다.
서로가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1993. 5. 28)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서로가 은혜를 입고 간다.
임원이라도 후각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아랫사람도 윗임원이 있기 때문에 이 도를 알게 된 것이니
서로 감사해야 한다. (1993. 5. 28)
행하는 데 있어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도이고,
목적은 도통이다.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야 된다.
그래야 해원상생에서 도통진경(道通眞境)에 들어간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가 있다. (1994. 8. 4)
정리해보면, 감사의 실천에서 도전님께서는 “상대방이 자꾸 고맙다는 생각이 나도록, 또 나 스스로 무조건 고맙다고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감사한 것이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다.”(1989. 1. 12) 하시고,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몸에 배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고맙고 감사할 때 척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디 원망할 게 없고 미워할 것이 없으면 감사할 것만 있다. 뭘 생각하든지 항상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고마워하면 풀린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1991. 5. 14) 하셨으며, “해원상생이다.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되고, 상생이 되어야 해원이 된다.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감사하다는 그 마음을 가지면 된다.”(1993. 1. 28), “고맙고 감사하다는 걸 생활화하라. 이것이 해원상생의 길이다.”(1991. 5. 14) 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는 화합 단결을 강조하시며 “항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남이 이루었다거나 우리 방면이 하지 못한 일을 다른 방면이 이루어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한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도인의 자세가 될 때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을 이루어 상제님의 대순진리가 실현되고 상ㆍ하가 화합 단결이 되며 화기(和氣)가 가득한 곳에 신명의 도움과 운수가 있게 됩니다.”(<대순회보> 9호, 도전님 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검당 뒤편의 다로경권을 통하여 우리는 대화의 중요성과 감사의 소귀함에 대하여 알 수 있었습니다. 대화는 해원상생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 형태이고, 감사는 해원상생의 본질입니다.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감사[神性]를 보고 감사를 생활화하는 것이 바로 해원상생의 길입니다.
서로 간에 대화로써 일을 풀어나가는 것이 곧 상생의 원리이니, 대화를 통하여 오해와 의심을 풀면 화합 단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감사의 생활화로 나의 기국을 바다와 같이 만들 때 상제님의 덕화를 받아 대운대통하는 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