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록 5장 7절] 도리원서(桃李園序)
하루는 형렬이 상제의 명을 좇아 광찬과 갑칠에게 태을주를 여러 번 읽게 하시고 광찬의 조카 김병선(金炳善)에게 도리원서(桃李園序)를 외우게 하고 차경석ㆍ안내성에게 동학 시천주문을 입술과 이를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여러 번 외우게 하셨도다. (행록 5장 7절)
1 하루는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광찬과 갑칠에게는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고
2 김병선(金炳善)에게는 ‘도리원서(桃李園序)를 일천 번 읽으라.’ 하고
3 경석과 내성에게는 ‘시천주주(侍天主呪)를 혀와 입술을 움직이지 말고 많이 묵송(黙誦)하라.’고 해라.” 하시니
4 형렬이 그 명을 좇아 일일이 지도하니라.
5 상제님께서 ‘도리원서’에 대하여 일러 말씀하시기를
6 “이는 만고의 문장(文章)을 해원하는 것이니 너희는 모름지기 많이 외울지어다.” 하시니라. <道典>
기유년 여름에 대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시며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천지대공사를 보시니, 설법하시고 신명에게 칙명을 내리시니라.
명에 따라 광찬과 갑칠은 태을주를 소리 내어 읽으며 명령을 기다리고,
병선은 도리원서를 천 번 읽으면서 명령을 기다리고,
경석과 내성은 시천주를 소리 내지 않고 읽으면서 명령을 기다리니라.
공사를 마치시되 이 공사를 밝혀주시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번 공사에 너희들이 서로 싸웠으면 큰 화가 있었을 것이거늘 다행이니라.” <천지개벽경>
가르침을 내리시니, 도리원서라. 말씀하시기를, “만고의 문장을 또한 해원시키나니, 많이 외우도록 하라.” 하시니라. <천지개벽경>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 李白
부천지자(夫天地者)는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요
광음자(光音者)는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
이부생(而浮生)이 약몽(若夢)하니 위환(爲歡)이 기하(幾何)오
고인병촉야유(古人秉燭夜遊)는 양유이야(良有以也)로다
황양춘(況陽春)은 소아이연경(召我以煙景)하고
대괴(大塊)가 가아이문장(假我以文章)이리오
회도리지방원(會桃李之芳園)하여 서천륜지락사(序天倫之樂事)하니
군계준수(群季俊秀)는 개위혜련(皆爲惠連)이어늘
오인영가일독참강락(吾人詠歌一獨慚康樂)가
유상(幽賞)이 미기(未己)에 고담(高談)이 전청(轉淸)이라
개경연이좌화(開瓊筵以坐花)하고 비우상이취월(飛羽觴而醉月)하니
불유가작(不有佳作)이면 하신아회(何伸雅懷)리요
시여불성(詩如不成)이면 벌의금곡주수(罰依金谷酒數)하리라
[文義]
무릇 천지는 만물이 머물다 가는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라.
뜬구름 같은 인생은 꿈만 같으니 기쁨을 누린들 그 얼마나 계속되리.
옛 사람들이 등촉을 들고 밤늦도록 놀았음은 진실로 그 까닭이 있음이로다.
하물며 화창한 봄날에 아지랑이 황홀한 경치가 나를 부르고,
대자연(조물주)은 나에게 문장을 빌려 주었음에랴.
복사꽃 오얏꽃 만발한 화원에 모여 천륜의 즐거움을 펴니
젊은 수재들의 글 솜씨는 사혜련과 같은데,
내가 읊는 노래는 홀로 강락후에 부끄럽네.
그윽한 감상이 그치지 않고 고상한 담론은 더욱 맑아
화려한 자리를 펴고 꽃 앞에 앉아 우상(새깃 모양의 잔)을 날려 달 아래 취하니
아름다운 글이 없다면 어찌 우아한 회포를 펴리오.
만일 시를 짓지 못한다면 벌주는 금곡의 술잔 수를 따르리라.
[字義]
* 夫 무릇 부 : 무릇
* 者 사람 자 : ①~라는 것은 ②자, 것(형용사, 동사 또는 형용사구, 동사구 뒤에 쓰여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거나 동작을 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킴) ex) 老者, 强者
* 逆旅 맞을 역, 나그네 려 : 나그네를 맞는 곳, 여관(旅館)
* 光陰 빛 광, 그늘 음 : 햇빛과 그늘 즉 시간을 말함, 세월
* 百代 일백 백, 세대 대 : 영원함
* 之 갈지 : ①~의 ②그, 이, 그 사람, 그것(사람, 사물을 대신하여 목적어로 쓰임) ex) 求之不得 ③가다, 이르다 ex) 君將何之
* 過客 지날 과, 손님 객 : 과객, 손님
* 而 말이을 이 : 그리고
* 浮生 뜰 부, 살 생 : 뜬 구름 같이 덧없이 흘러 다니는 인생을 뜻하는 한 단어.
* 若 같을 약 : ①~과 같다 ②만약~라면 ex) 若不勞力, 必要失敗
* 夢 꿈 몽 : ①꿈 ②헛된 생각, 환상, 공상, 꿈꾸다
* 爲 될 위 : ①~이 되다, ~로 생각하다 ②하다, 행하다 ex) 事在人爲
* 秉 잡을 병 : 잡다, 쥐다, 들다
* 燭 양초 촉 : 양초, 초
* 良 진실로 량 : 진실로, 참으로
* 以 까닭, 이유 이 : ①이유, 까닭 ②~로써 ex) 以機器播種
* 況 하물며 황 : 하물며
* 陽春 따뜻할 양, 봄 춘 : 화창한 봄 날씨
* 召 부를 소 : 부르다, 초대하다의 뜻과 통함
* 煙景 연기 연, 경치 경 : 노을, 안개 등이 끼어서 아름다운 봄 경치를 뜻하는 한 단어이다.
* 大塊 클 대, 덩어리 괴 : 대지, 천지, 대자연을 뜻하는 한 단어, 북두성, 조물주.
* 假 빌릴 가 : ①빌리다, 차용하다 ②거짓(의), 가짜(의) ex) 槍假眼睛
* 桃李 복숭아 도, 오얏 리 : 오얏나무
* 芳園 꽃다울 방, 뜰 원 : 정원
* 序 펼칠 서 : 펼치다
* 天倫 하늘 천, 차례 륜 : 하늘이 맺어준 질서 즉 형제. 부자 형제 등 가족 간의 변치않는 떳떳한 도리
* 季 젊을 계 : 젊다, 어리다
* 惠連 은혜 혜, 이을 련 : 남조 송(宋)의 사혜련(謝惠連) 10세에 시를 잘 지어 그의 형 령운(靈雲)은 그를 만나 시를 지으면 좋은 구가 얻어졌다 함
* 吾人 나 오, 사람 인 : 나
* 詠 읊을 영 : 노래하다, 시를 읊다
* 慙 부끄러울 참 : 부끄럽다
* 康樂 건강할 강, 즐거울 락 : 사령운이 강락후에 봉해졌기 때문에 사강락(謝康樂)이라 함. 그는 산수시의 시조로 이태백이 그의 시품을 특히 좋아하여 은근히 자신에 비유함
* 幽賞 깊을 유, 감상할 상 : 그윽한 감상, 고요히 바라보며 즐김
* 已 그칠 이 : 그치다, 끝나다, 멎다
* 高談 고상할 고, 이야기 담 : 고상한 담론
* 瓊筵 옥 경, 댓자리 연 : 화려한 연석(宴席)
* 羽觴 날개 우, 술잔 상 : 새깃 모양으로 된 술잔의 이름
* 伸 펼 신 : 펴다
* 雅懷 우아할 아, 품을 회 : 마음속의 맑은 회포, 아취(雅趣)있는 마음
* 依 의하여 의 : ①~에 의하다 ②기대다, 의지하다
* 金谷酒數 쇠 금, 골 곡, 술 주, 셀 수 : 진(晋)의 석숭(石崇)이 금곡원(金谷園)에서 손님들을 초빙하여 연회를 베풀 때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술 석 잔을 먹였다는 고사(古事). 金谷은 하남성 낙양현의 서쪽 금수(金水)가 흐르는 골짜기. 석숭은 동양을 대표하는 대부(大富)였으나 녹주(綠珠)라는 애첩 때문에 아사(餓死)함
[解義]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는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지은 한시(漢詩)로, 봄밤 복사꽃,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형제들과 즐기는 잔치의 기쁨과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통석(通釋): 대저 천지는 만물의 숙소요, 세월은 영원히 쉬지 않고 천지의 사이를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그중에 인간의 생애라고 하는 것은 꿈 같이 덧없는 것이니 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린다 한들 그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고인이 등불을 손에 잡고 밤놀이를 즐겼다는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는 일이니, 더욱이 때는 봄 만물이 화창한 계절에 운무 낀 풍경으로 나를 부르고 천지(조물주)는 나에게 문장을 지을 수 있는 재주를 빌려주었으니 더욱 이 봄밤을 즐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도리화 만발한 동산에 모여서 형제들이 즐거운 놀이를 할 때 젊은 수재들이 모두 혜련과 같이 시재가 있는 사람들이며 그중 나의 시재만이 홀로 시 잘하는 강락에 부끄러울 뿐이다. 고요히 경치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아직 끝나지 않고 고상한 담화가 갈수록 맑은 분위기를 더해가니 훌륭한 연석에 꽃을 대하고 앉아서 새깃 모양의 잔을 주고받으며 달빛 속에 취한다. 이런 즐거운 분위기에서 좋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아한 마음을 펼 수 있겠는가. 만약에 시가 되지 않는다면 진의 석숭이 금곡원에서 잔치를 열었을 때 시 못 지은 사람에게 벌주 삼배를 내리던 그 규칙을 따르리라.
무릇 천지는 만물이 머물다 가는 숙소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라.
부유하는 인생은 꿈만 같으니 기쁨을 누린들 그 얼마이랴.
옛 사람들이 등촉을 들고 밤늦도록 놀았음은 진실로 까닭이 있음이라.
하물며 화창한 봄날에 아지랑이 황홀한 경치가 나를 부르고,
북두성(조물주)은 나에게 필재를 주었음에랴.
복사꽃 오얏꽃 만발한 화원에 모여 천륜의 즐거움을 펴니
젊은 수재들의 글 솜씨는 사혜련과 같은데,
내가 읊는 노래는 홀로 강락후에 부끄럽네.
그윽한 감상이 그치지 않고 고상한 담론은 더욱 맑아
화려한 자리를 펴고 꽃 앞에 앉아 우상(산새 모양의 잔)을 날려 달 아래 취하니
아름다운 글이 없다면 어찌 우아한 회포를 펴리요.
만일 시를 짓지 못한다면 벌주는 금곡의 술잔 수를 따르리라.
부천지자(夫天地者)는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요
광음자(光音者)는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
이부생(而浮生)이 약몽(若夢)하니 위환(爲歡)이 기하(幾何)오
고인병촉야유(古人秉燭夜遊)엔 양유이야(良有以也)로다.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라
이로써 덧없는 인생이 꿈과 같으니
기쁨을 누린다 한들 그 얼마인가.
옛 사람들이 밤새워 등불을 밝혀 놀았음이 진실로 까닭이 있음이라.
아! 진실로 이 문장은 만고의 명문입니다.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이렇듯 절묘한 표현이 또 있을까요.
이래서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하나 봅니다.
상제님께서 김병선에게 도리원서를 천 번 외우게 하신 공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김병선(金炳善)은 종도 김광찬의 조카인데, 김병선에게는 ‘사오미개명(巳午未開明)’의 싯구도 외워주시고(예시 85절), 도전님에 대한 공사(공사 1장 17절, 18절)에도 동행케 하셨습니다. 이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도(道)가 밝아진다는 사오미 개명은 현재 눈부시게 변혁되는 세상 일의 추이로 볼 때, 을사(2025)년, 병오(2026)년, 정미(2027)년의 해를 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종도들의 기운을 쓰실 때 종도의 이름에 담긴 기운을 쓰시므로 김병선의 이름을 음미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金炳善은 4.9金 세상(후천)의 선(善)을 드러낸다(炳, 밝을 병)는 의미입니다. 상제님께서 김병선에게 사오미 개명의 때를 일러주신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김병선에게 도리원서를 천 번 외우게 하신 공사는 위의 인용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만고의 문장을 해원하시는 공사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만고의 문장’으로 이백의 도리원서를 뽑으셨습니다. ‘만고의 문장’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빛날 만큼 뛰어난 글, 즉 세상에 비길 데 없는 훌륭한 문장을 의미합니다. 이백의 도리원서는 실로 청수를 떠 놓고 읽을 만한 만고의 명문입니다. 글이나 시가 만고를 통해 빛나는 것은 그 안에 깊은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도리원서를 그토록 빛나게 하는지 그 깊은 진리의 면모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고의 문장
이백의 도리원서는 만고의 문장입니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도리원서가 만고의 빼어난 문장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것은 문장의 백미(白眉)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인식하면 도리원서를 다르게 대할 것입니다. 대중의식은 많은 사람이 좋고 뛰어나다는 평가에 마음이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도리원서가 만고의 문장이라고 하는 소리만 들어도 그것을 듣는 사람의 마음은 특별하게 움직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이백의 도리원서를 언급할 때는 ‘만고의 문장’이라는 수식어를 함께 사용하세요. 이미 상제님께서 그런 평가를 내리셨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저작권의 근원
만고의 문장인 도리원서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도리원서의 저작권은 이백이 시에서 밝히고 있듯이 조물주, 즉 상제님께 있는 것입니다. 많은 명시가 있지만 도리원서처럼 그 글 재주의 출처를 대괴, 즉 조물주이신 상제님께 돌린 시는 없습니다. 이것조차 이백은 상제님의 뜻을 그의 시에 담은 것입니다. 이백이 시선(詩仙)이라 주목받는 것은 바로 그 구절 때문입니다. 도리원서 중에서도 이 사실을 밝힌 구절이 가장 뛰어난 백미입니다. 바로 “대괴가아이문장(大塊假我以文章: 조물주가 나로 하여금 대신 글을 쓰게 하시는구나)”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창조주의 현현이며, 모든 것은 하나라는 진리를 전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에는 세 가지 법령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임(Oneness), 모든 것은 하나이며 하나가 모든 것이라는 ‘하나임’이고, 둘째는 ‘안에서와 같이 밖에서도’이며, 셋째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서도’입니다. 이것이 10 무극(하느님 자리, 無極神), 열 십(十) 자의 의미입니다. 불교의 만(卍) 자, 기독교의 십자가(十) 등 모든 종교적 상징 안에 열 십(十) 자가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만사에 적용하고 생활 속에서 분별의 잣대로 삼으세요. 지혜의 근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는 무언가 특이하고 어려우며 복잡해야 한다는 인식을 어릴 때부터 주입받아 왔습니다. 이것은 에고의 인식이 그러합니다. 에고는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복잡하고 오리무중인 것을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삼고 있기에 간단하고 명료한 진리를 늘 왜곡하여 비틀고 복잡하게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택할 때 복잡다단한 것보다는 간단 명료한 것을 선택해 나가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새로운 시대(NEW AGE)의 세 가지 지침은 AGE, 허용(Allow), 우아함(Grace), 쉬움(Ease)입니다. 만상 만물, 만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진화 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우아하고 은혜롭게 살며,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간단하고 명료한 진리적 측면을 살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인생 지침이 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본질
이백은 시간을 나그네로 공간을 여관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천지는 만물이 일시적으로 쉬어가는 여관이고,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라 하였습니다. 공간은 만물이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것이고 세월은 영원한 것인데, 세월의 영원함은 곧 존재의 영원함입니다. 광음(光陰)은 빛과 어둠, 낮과 밤으로 세월을 뜻합니다. 세월은 빛과 어둠의 교차로 삶의 태피스트리를 직조하는 겁니다. 도장의 선녀직금(仙女織錦)의 그림이 이를 상징합니다. 빛과 어둠으로 직조하는 삶은 - 한올 한올이 올바르게 짜져야 비단이 완성되듯이 -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양자물리학에서 시공간의 본질은 고전 물리학에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시간과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건과 입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창조적으로 형성되는 구조임을 시사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을 중력의 근원으로 보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시공간 자체가 양자적(불연속적)일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간과 시간은 고정불변된 실재이거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가변적이라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후천에는 창생들이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한다고 하셨고(예사 81절), 도주님께서는 “성경신을 다하면 자신의 선선천(先先天)도 조명(照明)하고 후후천(後後天)도 감오(感悟)할 수 있느니라.” 하셨으며, 도전님께서는 신안이 열이면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다 안다.”(1992. 5. 31)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에서도 시간은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양자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의 본질에 대한 다음 인용문을 보세요.
“웹스터(Webster) 사전에 의하면 시간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져 가는 사건들의 기간 안에서 측정되는 비공간적 연속체’라고 시간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적 체계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時間)은 때 시(時) 자와 사이 간(間) 자의 결합입니다. 때라는 것은 공간과 결부되어 있고 공간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결국, 그때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적인 흐름이 시간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 존재(physical observable being)가 아니고, 사람마다 달리 느끼는 형이상학적 개념(metaphysical notion)에 불과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주 전체에서 시계가 사라진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돕니다. 존재하는 것은 물질과 에너지뿐이요, 그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흐름과 운동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은 없다(Space-time is nothing).”고 한 것입니다.
시간관리에서 시간이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있을 뿐입니다. 시간을 강력한 실존으로 여기면 시간을 다루기 힘들어집니다.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니, 시간에다 일을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선택하고 그것에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 시간관리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하루라는 시간에 ‘<중용> 읽기’를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용> 읽기’에 2시간을 배정하면 전자는 하루가 지나도 <중용>을 다 읽지 못하게 되지만 후자는 2시간 만에 <중용>을 다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대순회보> 169호, 신생활관)
시간은 환상이며, 시간은 오직 지금 여기의 표상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은 환상이며, 시간은 오직 지금 여기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강물의 비유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강물 앞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흐르는 강물은 선형적인 시간을 형상하는 데 좋은 소재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보는 강물은 현재이고 상류는 과거이며 하류는 미래입니다. 이제 걸어서 상류, 즉 과거로 가봅니다. 거기서 강물을 보면 지금 강물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하류, 즉 미래로 가보면 그곳 역시 지금 내가 보는 강물입니다.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지금 여기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합니다. 시간은 오직 지금(至今)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시천주(侍天呪)를 외울 때 “지극한 기운을 지금 크게 내려주기를 원하옵나이다(至氣今至원위대강)”라고 읽는 것입니다. 지기(至氣), 지극한 기운, 도통의 기운은 금지(今至), 이제 금, 이를지, 지금 내리는 것이지 나중에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문을 외울 때는 금(今),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여야 합니다. 주문을 외우는 지금 이 순간 대강을 받기로 작정하고 주문을 읽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강하게 현존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공을 초월하는 현상을 체험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을 강하게 의식하며 현존하는 것은 비단 주문을 외울 때 뿐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I Am Presence, 현존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강력한 현존의 도구는 자신의 호흡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일호일흡지위도(一呼一吸之謂道)’라 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역 계사전의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입니다.
삶 = 꿈
시공간의 본질이 환상임을 알았다면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삶이 환상이라는 것을 쉽게 납득할 것입니다. 이백이 삶을 꿈에 비유한 것은 너무나 적절한 표현입니다. 상제님께서도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교법 2장 36절)라고 하시어 삶을 꿈에 비유하셨듯이 여러분의 삶은 꿈과 같고 꿈은 오히려 진짜 삶입니다. 진짜의 삶을 꿈 속에서 느끼는 것이 여러분이 체험하고 있는 물질세계의 삶입니다. 인생은 꿈이고 꿈은 실재라는 명제는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이 명제를 인식하는 사람은 오히려 꿈같은 한 세상을 진실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역설입니다. 꿈을 꿈으로 인식해야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은 꿈이라는 말은 우리의 물질 세상이 환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질 세상이 환상이라는 것은 무수히 들어서 그런 줄만 알고 있는데 우리 인간 중에 이것을 진실로 깨달은 이는 많지 않습니다. 인간은 항상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잘 이해합니다.
삶이 환상이라는 주제로 세상에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구운몽>이 있습니다. 나중에 구운몽의 내용을 살펴보세요. 여러분이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을 한갓 꿈으로 본다면 여러분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꿈을 허구로 알고 있습니다. 꿈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의식적인 노력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전개되는 상황을 지켜만 볼 수 있습니다. 꿈 속에서는 꿈을 지켜보는 자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깨어나서도 여러분의 삶을 꿈을 지켜보듯이 지켜보는 자의 입장에서 대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삶에 집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가상이란 것을 안다면 그리고 그 전개 방식이 여러분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택된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삶에서 집착은 내려놓고 게임의 규칙에 충실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게임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유저는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고 바로 게임 아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유저는 게임의 규칙을 잘 숙지하고 그 규칙 하에서 게임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게임의 규칙이 바로 우리 사회의 공중도덕이고 윤리도덕입니다.
사회에서 인간이 윤리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금수(禽獸)라고 지칭하는 것도 인간으로서의 게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금수에게는 금수의 게임 규칙이 있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게임 규칙이 있으니, 인간이 금수의 게임 규칙을 따른다면 인간 게임의 장에서는 범죄자가 되는 것이고 게임장에서 아웃되거나 격리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세의 게임 규칙이 바로 대순진리회의 훈회와 수칙입니다. 그리고 그룹 메시지에서 늘 언급하는 세 가지, 서로 존중하고, 남을 잘 되게 하며, 서로 잘 어울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삶에 대한 심오한 영적 지침입니다.
물질 세상의 여러분은 게임 캐릭터이고 유저는 여러분의 상위자아입니다. 결국 여러분의 삶은 상위자아가 꾸는 꿈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여러분의 삶은 상위자아의 게임입니다. 그러므로 게임의 캐릭터는 상위자아와의 연결이 핵심인 것입니다. 캐릭터는 유저와 항상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연결이 끊긴다면 캐릭터는 게임장에서 바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토록 여러분 삶에서 상위자아와 연결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상위자아와 신(神)의 관계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의 상위자아는 신의 분신입니다. 여러분의 상위자아도 신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투영체입니다. 상위자아가 신과 연결이 끊긴다면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상위자아와 신과의 연결은 절대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만약 게임의 캐릭터가 신을 인식하고 신께 모든 것을 의지한다면 그 캐릭터는 신이 영원한 것과 같이 영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게임의 비유가 신과 상위자아, 여러분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부생(而浮生)이 약몽(若夢)하니 위환(爲歡)이 기하(幾何)오” 덧없는 인생이 꿈과 같으니 기쁨을 누린들 그 얼마나 계속되리. 이것이 <구운몽(九雲夢)>의 주제입니다. 주인공인 성진과 팔선녀가 구(九)이고 인생의 덧없음을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에 비유하여 운(雲), 주인공의 꿈이야기임을 나타내는 몽(夢), 그래서 구운몽입니다.
성진(性眞)은 성품 성(性), 참 진(眞)으로 ‘인간의 참된 본성’ 혹은 ‘불성(佛性)’을 의미합니다. 성진의 꿈 속에서의 이름인 양소유(楊少游)는 버들 양, 적을 소, 노닐 유로 버들가지처럼 흐드러지게 노닐다는 뜻으로 세속적인 풍류와 부귀영화를 상징합니다. 성진은 그 모든 꿈에서 깨어나 도달하는 본질적인 자아를 의미합니다. 작품은 게임의 캐릭터인 양소유가 상위자아인 성진과 합일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성진(性眞)이라는 이름은 작품의 주제인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깨닫고 다시 참된 불성으로 돌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상위자아 입장에서 물질 세상의 자아에게 바라는 바는 성진(性眞)의 길, 참된 성품을 깨달아 상위자아와 합일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피안의 세상이 확장된 물질 세상에 상위자아의 뜻, 신의 뜻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안(신성)에서와 같이 밖에서도, 신성을 구현하는 것이며, 위(천국)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게임의 규칙은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참된 성품을 회복하는 길이자 지상천국 건설의 길입니다.
1. 마음을 속이지 말라.
2.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3. 척(慼)을 짓지 말라.
4.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5. 남을 잘 되게 하라.
합덕(合德)과 조화(調化), 상생(相生)의 사회를 위하여!
늘 사랑과 감사, 기쁨 속에 머무세요!
모든 것을 상제님의 임의에 맡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