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편지 제916호 발행일: 2003년 4월 24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결점을 찾으면서 동시에 큰 걸음들을 취할 수 없다. 너는 어느 것을 취하겠느냐?
너는 잘못을 찾는 것이 너의 선택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을 찾지 않는 것이 너의 선택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누구의 선택인가? 그것은 환경의 선택인가? 그것은 네가 트집을 잡는 사람의 선택인가요? 그는 네가 그에게서 뭔가 다른 것을 찾기를 원한다.
그게 네 양육의 선택인가? 너의 결점 찾기가 네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가? 네가 불쾌해 할 수밖에 없는 건가? 그게 네가 선택한 것인가? 그게 너의 입장인가?
나는 네가 그런 척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내거나 덮으라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으라는 게 아니다. 나는 네가 아마도 우선시 될 수 있는 다른 것이 무엇인지 보기를 권하고자 한다.
누군가가 손을 들면, 너는 손가락을 볼 수도 있고 손가락 사이의 공간을 볼 수도 있다. 너는 짧게 멈추거나 멀리 볼 수 있다. 너는 너의 시각과 가슴의 미세한 조정을 바꿀 수 있다. 너는 보는 것의 강조를 어디에 두는가? 너는 그것을 어디에 두기를 선택하는가?
볼 가치가 있는 것을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음과 같다. 특정 거리를 찾고 있다면, 찾지 않았던 거리보다 그 길을 찾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같은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분명히, 네가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는 한, 네가 그 길을 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목적지를 정하면 그곳으로 갈 것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전단을 나눠주기를 기다리면서 같은 길모퉁이에 머물 필요가 없다. 너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너에게 중요한 것을 고르는 데 있어서 태만하게 행동하지 마라.
아무도 기뻐하는 것보다 실망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기쁨보다는 실망에 더 대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너는 마치 스토커인 것처럼 그 결점을 골라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고, 덤벼들 먹이를 찾는 것을 즐거워한다.
이제 너의 가슴에 기쁨을 주는 스토킹을 하라.
기쁨을 예견하라.
오늘 산책하면서 무엇을 찾고 싶은가? 그것을 전망하는 곳에 있어라.
너에게 어떤 짜증이 날지, 혹은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혹은 앞으로도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는 대신, 너의 시선을 다른 곳에 놓아라. 네 가슴의 부를 더해줄 것을 찾아보라. 너는 그것을 뺄 만큼 충분히 가졌었다.
정신을 딴 데로 돌려라. 다른 발견의 여정을 시작하라. 오늘 사랑스러운 것들을 세어보고, 구애하라.
누군가가 너에게 변색된 은 달러를 줄 때, 너의 가슴은 그 변색뿐만 아니라 그 은화도 지적할 수 있다.
다른 안경을 써라.
동전은 머리와 뒷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은 동전을 뒤집어 반대편을 보는 것이다. 무언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너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일 때,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보라.
어떤 좋은 것과 아름다움을 너는 너 자신으로부터 유보하고 있었느냐? 이미 계속되어온 것이 계속되어야만 하느냐?
네가 보는 것은 너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 오점은 네 눈에 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멋진 일인데, 이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고 있는 새들
하늘의 편지 제918호 발행일: 2003년 4월 26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배운 모든 것을 유용하게 사용하기를 원한다. 네가 더 많은 이해를 배울 때, 너는 그것을 사용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네가 올라갈 층계들을 보는 것과 같으며, 그것을 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때 비로소 너는 더 높은 곳에 있게 된다. 계단을 오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기회를 찾아라. 너 자신의 조금 더 많은 것을 줄 것을 염두에 두어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응답하라.
네가 무한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너는 같은 것을 유지하고 경계를 지킴으로써 자신의 경계가 없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한다. 너의 경계 없음을 찾기 위해서는, 과감히 나아가야 한다. 하나나 둘의 경계를 깨뜨려라. 네가 깨뜨리는 경계들은 너 안에 있다.
네가 무언가를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조금만 인식하라. 여기에는 인위적인 것이 없다. 너는 그런 경우로 올라갈 수 있는데, 네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럴 것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으로서, 있는 그대로 너로서, 단지 몇 개의 경계를 가진 너로서 말이다.
너 자신의 가슴으로 예스(yes)를 말하기 시작해라. 그것으로 노(no)를 말하는 것을 멈추어라.
삶에서 모범이 될 필요는 없다. 너는 기준을 설정하지 않았다. 너는 그것들을 뛰어넘고 있다. 세상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너는 그것들이 너를 떨어뜨리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너는 이미 더 높이 올라섰고, 이제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는 너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것은 너를 방해한다. 너는 그것을 너의 근거의 기준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더 이상 너의 기준이 아니다. 과거가 너에게 해준 것, 그것은 끝났다. 그것은 너를 네가 있는 곳으로 데려왔지만, 지금 너는 그 과거를 능가했다. 낡은 신발들을 뒤에 남겨두고 나아가라.
현재에 귀를 기울여라. 되감거나 빨리 감고 있지는 않은가? 너는 네 앞에 있는 접시에 점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먹는 동안, 너는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또는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시간은 하나의 경계이다.
네가 어제 알고 있던 모든 것이 하나의 경계이다. 네가 너 자신을 경계들로 파들어갈 때, 그것은 마치 네가 끝났고, 배울 더 많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축적된 지식을 모두 버려라. 새로 시작하라. 지금이야말로 네가 갈망해왔던 기회다.
나무는 변한다. 계절은 변한다. 날씨가 변한다. 기온이 변한다. 빛의 각도가 변한다. 그리고 세상에 살고 있는 너 또한 변한다. 너는 너 자신을 고수하면서, 가만히 서 있으려고 노력했던 적이 없느냐?
네가 가게 하는 것을 지체시키는 그 두려움은 무엇이냐? 가게 하는 것으로의 저항은 네가 있는 곳에 머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집착은 앞으로 가지 않음을 의미하며, 아니면 어쩌면 마지못함의 가득 찬 탱크로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을 뒤집어라. 그렇게 하면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네가 하나의 셋팅에 맞춰진 삼 단계의 전등이라고 고려해라. 그 전등은 그것이 되기로 된 것보다 더 어둡다. 빛이 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너는 둥지를 짓고 있지 않다. 너는 그것을 찢고 있다. 너는 날고 있다. 너는 아직 어떤 수족으로 날아야 하는지를 모르지만, 너는 날기 시작한다. 너는 어떤 수족으로 네가 날고 있는가를 알 필요가 없다. 너는 단지 날고, 어딘가에 내려앉을 필요가 있다. 네가 내려앉는 곳은 네가 다시 너의 날개들을 펼칠 단지 하나의 횃대일 뿐이다.
단지 새들이 날게 되어 있듯이,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