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을 하나 포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런데 공부를 해서 뭐 좀 안다고 하니까 그런 쪽으로 빠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우리는 진리다. 진리를 잘 이해시키고 진리로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 어느 종단에서 공부를 해서 신을 보고 아는 척하니, 우리 대순진리회 도인이 거기에 넘어갔다는 소리가 있다. 이 모든 책임은 임원들에게 있다. 각각의 도인들이 진리를 잘 알도록 하여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
원래 실(實)이 나오기 전에 허(虛)가 먼저 동한다고 했다. 별것이 다 나온다. 그런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라. 안다고 하나 허령에 지나지 않는다. 허령이다. 다른 것보다 뭐를 좀 본다 하고 뭐 좀 안다고 하는 것이 허령이다. 허령에 들면 눈동자부터 풀려 들어간다. 몸도 허해지고 병이 난다. 자기가 안다. 허령에 현혹되어 도를 이탈하는 사람이 개중에 있다면, 그는 진리를 모르는 탓이다. 진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알고 믿게끔 하라.
복희씨는 신명을 천상의 옥경대, 하늘에 봉했고, 문왕은 영대를 두어 천지신명을 모셨다가 땅에다 봉했고, 이번에는 천지신명을 모신 데가 우리 도장이고 사람에게 봉한다. <전경>에도 진강(眞降)을 받으면 어떻고 허강(虛降)을 받으면 어떻고 하는 것이 나온다.
----------------------- 상제께서 어느 날 한가로이 공우와 함께 계시는데 이때 공우가 옆에 계시는 상제께 “동학주(東學呪)에 강(降)을 받지 못하였나이다.”고 여쭈니 “그것은 다 제우강(濟愚降)이고 천강(天降)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도다. 또 “만일 천강을 받은 사람이면 병든 자를 한 번만 만져도 낫게 할 것이며 또한 건너다보기만 하여도 나을지니라. 천강(天降)은 뒤에 있나니 잘 닦으라.”고 일러주셨도다. (교운 1장 58절) ---------------------------
공부를 시켜봤는데 다는 못하더라. 몇 사람을 공부시키고 있는데 왜 내수를 먼저 시키느냐 하면 영(靈)이 맑아서이다. 여자는 수성(水性)을 띄고 남자는 화성(火性)을 띄고 있기 때문에 내수를 먼저 시키는 것이다. 신인상합(神人相合)이 도통이다.
여기에 공부한 사람이 몇 사람 있을 것이다. 많지는 않다. 공부하면 신을 본다. 보면 신명인지 잡신인지 구별해야 한다. 도장에 있는 신명하고 밖에 있는 잡신하고 완전히 다르다. 사람이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사람됨이 좋고 저 사람은 어떻고 하듯이 신도 마찬가지다. 도장에 신명이 있고 저 밖에도 신이 있다. 귀신도 있다. 교회나 절에도 거기 나름대로 신이 있다. 우리 도장의 신명들과 그 신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내가 추측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다. 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안다.
공부했다고 아는 체하는 것은 허령이다. 밖에서는 정신이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공부 마친 사람을 봐라. 멀쩡하지 않으냐?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다. 눈동자를 보면 틀린다. 허령이 들면 눈동자부터 탁해져 하얗게 된다. 이런 것 저런 것보다 진리가 옳고 틀림없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걸 알면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 몇 사람 큰공부한 사람이 있는데 방면에서는 알 것이다. 공부한 사람이나, 방면 사람이나 기운은 똑같이 받는다. 선⋅교감들이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한다면 선⋅교감의 자격이 없다. 도인들에게 전할 때는 할 소리, 안 할 소리, 구분해서 해야 한다. 도장에서 공부나 수련을 하면 저 지방 구석구석까지 다 기운이 간다고 늘 이야기한다. 공부를 하면 주문소리도 나고 한다. 그 근방에만 가도 기운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를 하면 우선 몸이 건강해진다. 주문을 하면 혈액 순환이 잘 된다. 소화도 금방 돼서 배가 고프고, 밥도 많이 먹게 되고 소화도 잘되어 몸이 좋아진다. 공부 기운을 받는 데는 멀고 가까운 것이 상관없다. 사수가 시간을 알려주는데, 방안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나 밖에서 챙기는 사수나 똑같다. 사수도 몸 건강하고 아주 좋다. 곁에 있는 사람이나 먼 데 있는 사람이나 영은 똑같다. 곁에서 기운 받는 것이 똑같다면, 멀리서 기운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 지방까지도 기운이 똑같이 내려간다. 모른다 하더라도, 저 멀리 있다 하더라도, 도인이면 기운을 똑같이 받는다.
개안(開眼)이라고 하는데 신의 눈이 열린다는 것이다. 즉 신이 보이는 것이다. 신을 보는 눈에 눈이 마주치면 혹 뭐 아프다가도, 안 좋은 상태여도 확 다 풀려버린다. 본래대로 돌아간다. 공부해서 아는 척하는 것은 다 허령이다. 밖의 사람들이 공부해서 받는 신하고 우리가 받는 신하고 전혀 다르다. 공부한 사람은 신을 다 본다. 지금 이곳에서 공부를 마쳤다고 하면 절대 허령에 들지 않는다. 허령이 들래야 들 수가 없다.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고,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듣고, 빠지는 것 없다. 직접 내가 보고 들으니, 허령이 들질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 도의 진리를 이해시키고 도인들이 그것을 확고하게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