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人命)은 천명(天命)인데, 천명을 바로 사람의 마음에 맡기셨으므로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라 하셨으니 천명을 순종하여 안심 안신의 수도가 되어야 대병(大病)의 약이 됨을 의통(醫統)에 명기하신 것이다. (1986. 9. 2)
<전경>에 상제님께서 다른 겁재는 다 없앴으나 병겁(病劫)만은 남겨두셨다고 한다. 의통(醫統)으로써 죽은 사람을 밟고 다니면서 사람을 살려야 하는데 이것을 부정이라고 하여 가리면 그 일을 못 하지 않느냐. 모든 것이 마음에 끼면 꺼림칙하고 그렇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1991. 9. 28)
큰공부를 다 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시험을 해 보는 것이라고 그랬다. 전에도 말했듯이 교감, 보정 중 가정 없는 사람으로 뽑는데 사람이 없다. 우리 공부는 남을 살리자는 공부이다. 상제님께서 “이 동토에 다른 겁재는 다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남겼다. 의통을 잘 알아두라.”고 하셨다. 전에는 한 번, 두 번 해보다가 아니다 싶어서 그만뒀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내가 생각했던 것의 반은 되는 것 같아서 시키는 것이다. 어지간하면 내가 시험을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상제님을 믿는 다른 종단에서는 인패(印牌)라고 팔기도 하고 그러지만 안 된다. 이번에 해보니까 반은 내 생각대로 되는 것 같다.
어디에 가 있든 잘 믿으면 기운이 다 간다. 잘 믿으면 이 기운이 다 간다. 몸이 건강한 기운이다. 직접 공부를 안 해도 도인들 전체가 조금 다를 것이다. 주문을 읽으면 그 기운이 방방곡곡 다 간다. 멀고 가까운 것이 없다. 어디나 똑같다. (1992. 5. 31)
여기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신이나 신명하고 대화를 하고 호소해서 뭘 알고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개안이 되는 것이다. 개안은 신안이 열리는 것을 말한다. 신명에게 뭘 물어보고 호소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신안이 열리면 보는 것이다. 신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막히는 데가 없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상처를 보면 된다. 신명에게 호소를 해서 낫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절대 무슨 병을 고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의통이 신안이다. 공부하는 사람이 직접 신안이 열리고 신안에만 마주쳤다 하면 풀린다. 모든 것이 풀려진다.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멀고 가까움이 없이 다 된다. 영(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절대 병 고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병 고친다고 상제님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제님께서는 <전경>에 “세상에 모든 겁재는 내가 다 물리쳤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병겁은 남겨두었다.”고 하셨다. 또 이 병겁은 의통만이 막을 수 있다고 하셨다. (1992. 6. 26)
우리는 도통을 목적으로 가는데, 말하자면 의통이다. 우리가 믿어나가는 기본이다. 늘 얘기하지만, 병겁을 피하는 법이다. 상제님께서는 늘 병겁을 두고 말씀하셨고, 이것은 너희가 하라 하셨다. 도통이 다른 게 아니다. 수도해서 정신이 통일되면 자연히 영(靈)이 통해진다. 영이 통해지면 영통이고 그것이 도통이다.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병이다. 천기자동(天機自動)으로 다른 종교에서도 다 병 고친다고 한다. 그것은 큰 것의 그림자라 할 것이다. 천기자동인 것이다. 그런데 시료를 돈에 부친다면 이보다 유치하고 치사한 게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그게 아니다. 우리는 의통이다. (1993. 10. 3)
아직 시험하고 공부 중이다. 아직 문을 열려고 손도 못 잡은 것이다. 손에 닿은 정도다. <전경>도 보고, 이것저것 다 보면 도통이 다른 게 아니다. 의통이다. 도통문을 열려고 문에 손을 댄 정도다. 그런데 여기다 몇 푼 안 되는 돈 받아서 뭐가 되겠냐. 시료는 이제 문을 열려고 지금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1993. 10. 3)
우리의 목적은 도통이다. 정신, 심령을 통일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병겁이 닥칠 때 몸 돌이킬 여가가 없으니 의통을 해라, 창생을 구하라.”고 하셨다. 사실 누구도 앞으로 병겁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부인 못 한다. 우리는 이것을 준비해 나간다. 그러니 도통이 있어야 한다. (1994.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