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이란 사랑으로 이어지는 인도(人道)의 본래정신(本來精神)을 저버리는 웅패(雄覇)의 인습(因習) 때문이니, <전경>에도 묵은 기운이 채워있는 곳에는 새 운수를 감당키 어렵다 하셨다. 이러므로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렵다 하신 것이니, 우리 도인들은 훈회와 수칙으로 일상 자신을 깨달음으로 반성하여 교화에 힘을 기울이고, 심덕(心德)으로 너그럽고 착하게, 구덕(口德)으로 말을 덕기(德氣)있게, 신덕(身德)으로 행동과 처신을 바로 하여 현명한 수도자의 자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1986. 5. 20)
선각도 후각을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 수하를 애휼(愛恤)로 지도하여야 한다. 밉고 고운 게 없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할 때는 아무리 늙어도 갓 낳을 때와 같은 생각을 한다. 애휼이란 갓난아기 다루듯이 하는 마음이다. 자식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다 컸으니까 잘해나갈 것이라는 마음이 잘 안 든다. 아래 도인도 그렇게 키우면 모두 다 올바른 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 수반한테 잘못이 있으면 그것은 선각의 책임이지 수반의 책임은 아니다. 몰라서 잘못한 것은 잘하도록 가르쳐 줘야 한다. 그러면 후각이 선각 생각하기를 ‘저 사람은 진짜 도인이다.’ 한다. 잘해나가야 우리가 원하는 소원이 빨리 이루어진다. (1990. 1. 30)
해원상생이란 사랑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게 없는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을 생활해 나가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말로만 말고 해원상생을 몸으로 실천해 생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수도다.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린애를 길러 나가는 그런 것이다. 밉지가 않고 귀찮지가 않고 원망스러운 게 없다. 밉고 귀찮으면 못 기른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해야 한다. (1991. 4. 20)
망기가(忘其家)란 쉽게 말해 도를 믿는 데 있어서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얘기이다. 도를 믿는데,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으라는 그런 뜻이다. (1991. 12. 5)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에 진실한 마음이면 그것이 도인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운수가 없고 도통이 없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도리를 잘하는 것이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우리는 해원상생 원리에 의해서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이다. (1993. 4. 1)
우리는 언제나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서 덕을 쌓아나가야 한다. 해원상생으로 행동하고 말을 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복을 받는다. 척을 지으면 복을 못 받는다.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 그게 해원상생이다. 척을 지으면 여러 가지가 막혀서 안 된다. (1994. 9. 2)
감사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은의(恩誼) 어린 사회를 떠나서는 하루라도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내가 이와 같은 삶의 근원을 깨닫고 생(生)의 원천을 살피어 마땅히 그러한 은혜를 헤아려 감사해야 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보은의 정신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984. 6. 15)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경신이다. 좋은 일, 훌륭한 일을 많이 하여 아랫사람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어 본받게 하고 친절히 대하여 고맙게 여기도록 하라. 그것이 잘 안 되더라. 잘되도록 해나가라. 밑의 임원은 누가 나를 여기에 인도하였는가 생각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잘 알도록 하라. 아래 임원들에게 친절했는지 선ㆍ교감들은 생각해보라. 선사ㆍ교정이 없으면 자신이 이 위치에 있었겠는지를. 사람들이 있어야 내가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선ㆍ교감은 아래 임원에게 감사의 마음, 아래는 위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치를 알고 서로가 이렇게 생각할 때 위ㆍ아래는 서로가 살을 깎아 먹여도 아깝지 않은 것이니 서로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생각하여 언행으로 실천토록 하여라.
미움이 어디 있고, 미울 게 어디 있느냐? 서로 도를 알면 그런 게 있을 수 없다. 티끌만큼이라도 서로 미워하지 말라. 서로가 고맙게 생각한다면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다. 어질 인(仁) 자는 부처가 아니고 우리 도인에게 있다. 인(仁) 자는 바로 친절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야 도통진경에 이르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일본사람에게 주지 않고 우리에게 붙여주신 인(仁) 자가 아니냐?
서로가 막힘이 있으면 안 되고 서로가 통해야 한다. 임원 간에, 또한 방면 간에도 막힘이 있더라. 그게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바로 거기에서 시작하여 이루고, 못 이루고 하는 것이다. 도인이 되어야 한다. 방면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다 마찬가지이다. 방면 간에 벽이 있다면 참말로 안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서는 도통진경이 안 되는 것이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1987. 3. 10)
우리는 신명공판이 있는데, 때가 되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도과정에서 받는 것이다. (1987. 7. 23)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애심보다 더한 것이 도인의 마음이다. 그것이 우리 도의 해원상생이며, 진리인 것이다. 이런 것이 몸에, 정신에 배여야 우리의 일이 되는 것이다. 도가 좋고 옳다는 것을 알면, 이렇게 안 되겠느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가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해야 운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저절로 된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아기를 업었을 때도 괴로움을 모르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1987. 7. 23)
체계를 확립함에 있어서는 임원과 수반 상호 간에 서로의 은의(恩義)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임원들은 수반 도인들이 있음으로써 임원의 위치에 있을 수 있으니 그 은의를 잊지 않아야 하며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남의 의사를 존중하고 행동 처사를 바르게 함으로써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행할 때에 수반 도인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심복(心服)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상호 간에 통심정(通心情)의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수반 도인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또한, 수반 도인들은 자신에게 도(道)를 전하여 준 전도인(傳道人)이 있고, 도를 일깨워주며 이끌어주는 선각 임원이 있음으로써 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도문(道門)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여 항상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은의를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1988. 3. 27)
상대방이 자꾸 고맙다는 생각이 나도록, 또 나 스스로 무조건 고맙다고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감사한 것이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다. (1989. 1. 12)
이번에 통하는 것은 연원이다. 그 원리를 믿는 것이다. 연원을 착각하고 몰라서는 안 된다. 연원은 줄이 아니다. 아래가 잘되면 윗사람은 저절로 커지고, 위가 커지면 아래도 따라서 커진다. 그러니까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서로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1989. 3. 18)
해원은 척을 푼다는 뜻이니 해원상생이란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가 고맙고 감사하는 예를 지켜나가면 화합과 평화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데 서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니 서로가 고맙다는 것을 잘 알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척을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1989. 4. 12)
우리 종단의 진리는 한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우주를 다 포함한다. 우리의 목적은 전 세계에 덕화를 선양하는 것이다. 이 덕화는 저 조그만 초목, 티끌까지도 다 미쳐있다. 우리가 잘함으로 인해서 덕화가 펴진다. 절대로 덕화 손상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내년만 넘어가도 우리는 어디에도 밑가지 않는다. (1990. 1. 30)
화합 단결은 우리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혼자의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힘과 뜻을 합쳐야 비로소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도인들은 서로 간에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방면(方面)과 체(體)가 서로 다를지라도 다 같이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도문소자(道門小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1990. 2. 10)
상제님께서는 오히려 때린 사람의 손을 만져서 위로해 주라고 하셨다. 전생에 때린 일이 있으면 척신이 맞게 한다. 내가 한 대 매를 맞았다면 반드시 전생에 누구를 그대로 때린 것이다. 전생의 잘못이 있어서 그 척신이 그 사람에게 응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라. 전생의 잘못은 빌고 풀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전생에 훔친 것이 있어 그 죄가 벗겨지는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죗값을 받은 것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척을 푸는 것이고, 척이 다 풀려야 해원상생이 되는 것이다. 척도 모면할 수 있다. 도를 믿으니까 참으면서 인내해서 모면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면한다는 것이 도를 믿으므로 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1990. 3. 4)
방면에 있어 임원 서로 간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고마움밖에 없는 것이고, 윗사람은 여러 사람이 잘해줘서 임원 직책에 있으니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이렇게 고마운 생각이 들려면 우리 도가 좋고 틀림이 없다는 것을 모르면 안 된다. 그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인 것이다. 꼭 옳고 틀림이 없다면, 자신만만하게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원은 그것을 알고 깨닫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 (1991. 1. 20)
우리는 도통을 하려는 것이다. 도통을 하려면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생활화해야 한다. 해원상생이란 사랑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게 없는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을 생활해 나가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말로만 말고 해원상생을 몸으로 실천해 생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수도다.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1991. 4. 20)
우리가 생활하고 실천하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몸에 배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척이 풀리고 맺힐 수 없다. 고맙고 감사할 때 척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통일도, 도통이 있고 없고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을 감정의 동물이라 한다. 이것을 없애는 것이 수도이다. 어디 원망할 게 없고 미워할 것이 없으면 감사할 것만 있다. 뭘 생각하든지 항상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1991. 5. 14)
제일 중요한 것이 ‘나’라는 존재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다. ‘나’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해서 앞으로 도통도 있다.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면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 싫은 게 아무것도 없다. (1991. 5. 14)
상제님께서 누가 나를 때리거든 그 사람 손을 어루만져 주라고 하셨다. 기독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모르니까 그렇지, 안다면 가해자에게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내가 전생에 누군가를 때렸던 것이 척신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복수하는 것이다. 받으면 풀린다. 그 사람한테 와서 풀리는 것이다. 무엇을 도적맞았을 때 괘씸하고 미울 것이다. 그러나 전생에 누구한테 물건을 훔친 적이 있고 그게 지금 나타난 것이다. 그 도적이 한 게 아니다. 척신이 그 사람한테 와서 갚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가! 고마워하면 풀린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해 못 할 게 없다. 척은 받아야 한다. 받으면 풀린다. <전경>에도 있다. 상제님께서 일본 옷을 입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글방에 다니실 때 친구가 있었는데 싸워서 죽어 척이 되었고, 상제님이 일본 옷을 제일 싫어하니 일본 옷을 입으라고 해서 입었다 하셨다. 우리는 척을 다 풀어야 한다. <전경>에 화복(禍福)이라 했다. 화를 당하면 복이 온다. (1991. 5. 14)
고맙고 감사하다는 걸 생활화하라. 이것이 해원상생의 길이다. (1991. 5. 14)
선감ㆍ교감ㆍ보정 하면 우리 종단의 최고 임원이고, 나중에 도통을 한다면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 지금까지 온 것이 누구의 덕이겠느냐? 그래서 저 밑의 평도인을 보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평도인들도 임원을 보면 ‘내가 운수를 받도록 이끌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1992. 12. 28)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되고, 상생이 되어야 해원이 된다.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감사하다는 그 마음을 가지면 된다. 해원이 아니고는 상생이 있을 수 없고, 상생이 아니고는 해원이 있을 수 없다. (1993. 1. 28)
도통이 급한 것이 아니라 수도가 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없게 되면 나 또한 없다고 생각할 때 상대인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나의 생존의 가치와 역할이 상대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방면 체계나 가정, 국가, 사회의 모든 조직체는 공존 공생(共存共生)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척이 없이 서로 돕고 존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방면 체내(體內)가 편안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 국가가 안정되고 천하가 화평하게 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1993.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