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병 고치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걸 갖고는 되질 않는다. 늘 얘기하지만 도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도(道)는 대순(大巡)이다. 대순(大巡)이란 원이고 원은 둥근 것이니 막히는 데가 없다. 네모는 각이 져서 끝이 있고 막히지만, 원은 막힌 데가 없다.
대순(大巡)은 원(圓)이고, 원은 무극(無極)이고, 무극이 태극(太極)이다. 천지의 모든 이치, 진리는 다 이 안에 들어있다. 우리가 통한다고 하는 것은 그 진리에 통하는 것이다. 그 진리는 무궁무진하고 끝이 없고 한이 없다. 다른 것하고는 다르다. 우리 도의 진리는 다 모른다. 통해야 안다. 안 통하면 모른다. 포덕하고 도인들 만나 교화하는 것을 10년 이상 해야 선⋅교감이 되는데, 그런 선⋅교감들이라 해도 모른다. 우리의 진리는 아주 끝이 없다. 쉽게 말해 적고 크고 간에 우리 진리에 안 맞는 게 없다. 무궁무진하다.
대순은 원이고 무극이고 태극이다. 무극이니 끝이 없고, 태극이니 군생만물이 생기는 모든 이치가 다 있다. 우리의 도는 끝이 없고 무한하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삼라만상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다 우리의 진리에 들어가 있다. 무극이니 얼마만큼 큰지 알 수 있다. 1년 12달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여기에서 삼라만상이 생기고 자라고 결실하고 없어진다. 생장염장(生長斂藏), 그것이 말하자면 도(道)다. 여기에 이치와 조화가 다 들어가 있다. 우리가 이것을 다 알아야 한다. 여기에 통해야 한다. 통하면 다 알아진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의 공부가 얼마만큼 소중한지 알고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주문을 못 읽고 그러면 안 된다. 하루면 1년 360일을 돌리는 것이다.
복희 선천에는 하늘에다 봉신(封神)을 하였고, 문왕 때에는 모든 운수가 땅에 있어서 땅에 봉신을 하였다. 방위를 보고 날짜를 보는 것은 신을 땅에다 봉했기 때문이다. 살아서는 집터를 보고 죽어서는 묘 터를 보고, 방위를 본다. 나도 방위나 시간, 위치를 세밀하게 본다.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다 땅에 달려 있다.
앞으로는 정역 시대다. 정역 시대에는 모든 운수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에게 봉신을 한다.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한다.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라고 도통주(道通呪)에 있듯이, 앞으로는 사람이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년⋅월⋅일⋅시⋅분⋅초⋅각까지 전부 사람이 맡는다. 천지를 다 운용해 나가는 것을 사람이 한다. 우리가 해나간다. 성⋅경⋅신으로 해야 한다. 도라고 보통 아는 작은 도통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천지를 운용해 나가는 것이다.
옛날은 지금 이 시대하고 다르다. 문명이 발달했다 해서 지금 이 시대에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없다. 다 옛날에 있었던 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그 흉내도 제대로 못 낸다. 가령 남한산성이 지금은 차가 들어가지만, 옛날에는 깊은 산골이었다. 그 성을 다 그곳에서 나온 돌로 쌓았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들지 못하는 돌도 많다. 그것을 그 산골짜기에서 다 인력으로 쌓았다. 옛날에 뭐로 움직이고 뭐로 했겠나? 전부 사람 힘으로 했다. 사람도 다니지 않는 저 깊은 산 속의 절도 연장 없이 인력으로 지었다. 그 시대 사람하고 지금 사람하고 다르다. 지금 사람은 못 할 것이다.
그때를 지금 말하면 어린애 단계다. 석가는 앉아있으니 태아고 어린애이다. 앞으로는 미륵이다. 미륵은 서 있으니 어른이다. 이것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른 하면 다 갖추어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도를 간단히 생각할 게 아니다. 상상치 못할 큰 운수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소홀히 해서 되겠어요?
기독교에서는 불로 심판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신명 심판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야 한다. 첫째가 속이지 않는 것이다. 속이면 안 된다. 모르겠지 하겠지만, 통한다면 과거⋅현재⋅미래가 다 훤한데 못 속인다. 거울같이 다 들여다본다. 속일 수가 없다. 그러니 참 잘해야 한다.
다른 데서 공부하는 것하고 다르다. 신명에게 무엇을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신명이 와서 무엇을 일러주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정신통일이다. 정성으로 내 마음과 몸을 유리알같이 깨끗하게 직접 닦는 것이다. 깨끗해지면 저절로 직접 다 알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신안(神眼)이고 개안(開眼)이다.
병 치료를 개안, 신안으로 한다. 신안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겠다고 자신하는 마음만 가지면 영력(靈力)으로 하는 것이지, 무엇이 와서 일러주고 얘기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거짓말이 많다. 정신통일이 되어 신안이 열리면 다 보인다. 어디가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신안으로 마주치면 그 자리에서 확 낫는다. 마음이 거울처럼 맑으면 통한다.
도라는 것을 크기로 말하면 한이 없고 끝이 없다. 복희 선천 때는 말하자면 봄 운(運)이다. 문왕 후천은 여름 운(運)이다. 이것이 가면 앞으로 정역인데 가을 운(運)이 된다. 절후 변화와 같다. 가을은 풍년이니 좋을 때가 아니냐? 결코, 뭐가 다 망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고 나서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늘 해원상생이다. 상제님의 공사는 광제창생, 세상의 창생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살리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 저 사람 죽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살리려 하고 같이 살려고 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경하라는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도인뿐만이 아니다. 밖의 사회 사람이라도 존경해야 한다. 밖의 사람이건 안의 사람이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에 빠지면 건져주고 해야 한다. 해원상생은 서로가 아무 원망이 없이 서로 존경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