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月誠)
도인들이 나에게 올리는 성금은 나 개인의 용전이 아님을 명심하라. 이는 내가 천명을 받들어 대도를 현창하고 삼계를 광구하는 공사의 신성한 경용(經用)이며, 천지공정(天地公庭)의 공금(公金)인 동시에 도인 각자의 성경신을 표상(表象)함이며 후천복록(後天福祿)을 축적함이므로 월성금은 삼일성(三日誠)이 되어야 하느니라. (도주님)
우리 도의 입도인은 월 1회 성금을 헌납하는데, 자기의 성의에 따라 자진(自進)하도록 할 뿐, 강요는 일체 못하도록 제도화한 것은 작금의 일이 아니다. 다액(多額) 요구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수도란 금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도(人道) 정신을 회복하는 데 있다. “있는 사람의 황소보다 없는 사람의 장닭이 크다.”는 취지가 <전경>에 있음은 도의 진리가 돈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요, 정성심(精誠心)에 있음을 깨우쳐주심이다. 임원들은 나의 지시를 올바로 이행하여서 물의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1984. 4. 9)
성(誠) 자체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형이상(形而上)의 공덕이요, 인간의 성(誠)은 형이하(形而下)의 유기유정(有機有情)이기에, 반드시 소중히 여기는 물질로써 성심(誠心)을 표현해야 하지만 그 다과(多寡)를 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믿고 닦는 사람은 유무(有無)를 막론하고 성금을 지중히 받들고, 임원들은 성금을 받는 즉시 영대(靈臺)에 고하는 뜻을 신입 도인이 되었을 때부터 깨우쳐 주어야 한다. 성금이 개인에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은 마치 생명의 원동력인 호흡과 같은 것이다. 예부터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 하였으니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는 소원성취의 열매를 맺어주는 힘이 성(誠)으로써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불망(銘心不忘)하여 나가기 바란다. (1985. 7. 3)
내가 입도할 때 먼저 성금부터 올리고 입도의식(入道儀式)은 여러 달 뒤에 행한 것은 도의 진리를 확연히 깨닫기 위함이었다. (1985. 8. 7)
8세부터는 성금을 모시는 도인이다. 어린애도 다 부모 따라 운수를 받는다. 상제님 말씀에 목석이라도 기운만 붙이면 받는다고 하셨는데, 어린애라도 사람이니 먼저가 아니겠는가. 가령 부인이 잘 믿는데 남편이 반대만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부인의 운수와 같이 받는다. 운수가 달라서 남남이 된다고 하면 도덕이 될 수 없다. 자포자기하지 말고 따라만 가면 다 운수를 받는다. (1988. 10. 27)
우리에게 그런 성금은 필요 없다. 우리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서 아주 더러운 것이 돈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옳은 정성으로 잘 쓰는 것이다. (1989. 4. 12)
도주님 재세 시에는 삼일성(三日誠)이 있었다. 삼일성이란 초하룻날, 열하룻날, 스무하룻날, 일해서 버는 것을 성금으로 모시는 것이다. 절미성금(節米誠金)이란 것도 있었다. 끼니때마다 밥을 먹는 데서 쌀을 한 숟가락씩 떠놨다가 모으는 것이다. 정성이다. 어려웠던 그때 한 숟가락 쌀은 굉장한 정성이었다. 돈이 아니라 정성이다. 우리의 일은 모두 정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989. 5. 30)
종교에는 성금이란 게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십일조(十一租)라는 게 있는데, 10만 원 벌어서 1만 원 내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떠들어도 문제가 안 된다. 국가 세금도 1/10, 기독교도 십일조인데, 1인당 1만 원만 뗀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냐. 그렇게 해서 국가도 교회도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꼭 그렇게 받으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한다. 옛날 도주님 재세 시에는 삼일성(三日誠)이 있었다. 3일, 13일, 23일에 번 것은 모두 다 성으로 모시는 것이었는데, 그 이상은 ‘특’이라 했다. 그것을 꼭 지켰다. 재세 시에는 꼭 했었다.
성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대로 하면 그것이 성이다. 한 달에 100만 원 버는 사람이 천 원, 오천 원 내는 것은 성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요하면 안 된다. 성금은 자신이 도를 믿어나가는 표시이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게 있지 않으냐. 혼자서 하면 종단을 욕 얻어먹게 하고 힘들고 그런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하는 게 작아도 크고, 혼자 하면 큰 액수도 풀면 작아진다. (1990. 6. 17)
성금은 도가 좋고 옳기 때문에 진심에서 우러나와 자진해서 내는 것이다. 교화를 잘해서 세계 평화의 근본원리인 해원상생의 법리를 잘 이해시키고 우리의 목적인 도통과 운수를 잘 이해시킨다면 성금을 더욱 정성스럽게 모실 것이다. (1993. 4. 1)
우리 성금의 거의 95%가 사회를 위해 쓰인다. 사회에서 알면 다 놀랜다. 다 칭찬한다. 남 말할 것은 아니지만 다른 데는 안 이렇다. 자기네들에게 다 들어간다. 불교도 성금을 자기네들이 먹지 사회봉사가 없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우리같이 하는 데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 흠 잡힐 데가 없다. 떳떳하게 해라. (1993. 8. 14)
성금이란 자신의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마음의 표시이고, 정성이라는 것도 마음의 표시이다. 매사에 있어 너무 과해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 과부족 다 안 된다. 못쓴다. 과(過)란 자기 힘에 부치는데 하는 것으로 넘쳐도 잘 못 쓰고, 부족이란 넉넉한데 만 원을 모셔도 아무것도 아닌데 천 원을 내는 것으로 정성이 아니다. 못쓴다. 성은 진실하게 과부족이 없이 하는 것이다. 단 100원이라도 몇십만 원보다 더 큰 게 있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돈의 액수로 정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강요는 절대로 안 된다. 성금이란 자기 스스로의 진실ㆍ진심에서 나와서 하는 것이다. 도인을 만들려면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인을 만들려면 다른 게 아니다. 도가 좋고 옳다는 것을 자기가 확신한다면 시키지 않아도 한다. 도를 알고 확신한다면, 얼마를 해도 아깝지가 않은 것이고, 모르면 단 10원을 해도 아까운 것이다.
월성금은 10만 원 이하로 한다. 삼일성이면 개인당 4∼5만 원 이상이 되고 가족 수대로 하면 이보다 더 많지만, 10만 원 이상은 성이든 뭐든 없애라. 한 호당 10만 원 이상 하지 마라. 이제는 한 집에 10만 원 이상 안 해도 된다. 꼭 10만 원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네 형편에 따라서 벅차지 않게 하라. 몇천 원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과부족이 없도록 하라. 너무 과해도 안 되고 너무 부족해도 잘못이다. 완전한 도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1,000원을 내도 제대로 한다. 앞으로 있어서 월성만 잘 지키면 아무 문제 없다. 타종교에서는 머릿수로 한다. 식구 수를 다 친다.
돈이란 써야 한다. 돈이 필요 없으니 성금을 안 받았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도인이 안 된다. 돈을 안 받으면 도인이 안 만들어진다. 쓸 데가 없어서 돈을 갖다 버리는 일이 있어도 성금을 받아야 한다. 어쨌든 모인 그 돈을 써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밖으로 도를 빛내야 한다. 그래야만 도세가 확장된다. 그래서 학교를 많이 짓기로 결정했다. (1993. 8. 14)
10만 원 내도 될 사람이 만 원 낸다면 정성이 아니고, 없는 사람은 단돈 10원을 내도 그것이 몇억, 몇백억보다 큰 것이다. 있는 사람이 몇백만 원을 내도 없는 사람 10원보다 못한 경우가 있다. 정성은 그와 같은 것이다. 부자로 몇백, 몇천만 원 내도 좋은 사람이 정해져 있는 10만 원을 내는 것은 괜찮다. 정해진 것이니 그렇다. 성금은 10만 원 이하다.
무물(無物)이면 불성(不誠)이다. 성금이 없으면 도인이 안 된다. 올바른 성금을 내게 하고, 올바르게 받아서, 올바르게 쓰면 된다.
그저 우리는 도인을 만들어야 한다. 도인을 만들려면 무물이면 불성이다. 그게 없으면 정성이 아니라 한다. 참다운 도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가 자발적으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형편에 맞게 성금을 내게 해야 한다. 성금이라는 것은 정성의 표시이고 성금이 아니면 정성을 모르고 정성이 나와지지도 않는다. 성금이 아니고서는 도에 정성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1993. 10. 3)
수도가 성경신이다. 성은 내 마음으로, 경은 내 몸으로, 신은 내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치성드리는데, 정성 올리는 것을 금하면 상제님에 대한 정성을 끊는 것이니 그대로 두라고 했다. 아무리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까지 막으면 너희들 도를 믿지 말라는 얘기가 된다. 그것은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치성물은 받으라고 했다. (1993. 11. 4)
성날은 도중 행사로 우리로선 월중 행사로 대행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치성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치성만 모시면 되고 성금은 아무나 심부름시켜 사무실에 전해주면 된다. 만약에 성날이 중요하지 않다면 치성이 없는 달에 올 필요가 없다. 왜 다달이 선ㆍ교감들이 모이겠느냐? 선ㆍ교감들이 모두 모이는 또 다른 이유, 그것을 알아야 한다.
성(誠)은 일 년에 열두 번이 있다. 도인들의 한 달간 정성이다. 돈, 금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성이 중요하다. 돈은 다만 그 정성의 표시인 것이다. 선ㆍ교감은 도인을 대표해서 여기에 모이는 것이다. 선ㆍ교감들이 오백만 도인을 대표해서 정성을 상제님께 올리는 것이다. 도 믿는 정성을 표시한 것이다. 여간 중요한 게 아니다. 임원들이 이것을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편이든지 어떠한 방법이든 송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1994. 5. 16)
우리가 정한 법을 잘 지켜야 한다. 돈이 필요 없다. 우리가 돈이 필요한 때는 지나갔다. 실제가 그렇다. 그런데 도인이라면 성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나중에 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받을 게 없다. 성금만은 내야 한다. 10만 원 이하로 성금을 내는 것은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1994. 6. 10)
성금을 내고 기도행사를 하는 모든 것은 입도치성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도치성을 했다고 도의 행사에 참석하고, 하지 않았다고 참석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상관없다. 하는 사람은 치성부터 올리자고 안 한다. 원래는 입도부터 시키고 후에 치성을 올리는 것이다.
생각해봐!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임원들이 중간에서 몽땅 만든 거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치성을 올리더라도, 도를 알고 올리는 치성하고 모르고 올리는 치성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도를 알면 정성이 나온다. 도를 모르고 올리면 뭔지 모른다. 치성이라 할 수 없다. 도를 모르고 치성을 드리면 안 된다. 백날을 드려도 안 된다. 내려오면서 임원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199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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