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오늘의 우리는 상제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자각 있는 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첫째, 우리는 상제님의 가르침대로 원을 짓지 말고 지은보은(知恩報恩)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언행(言行)을 잘 가져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수도(修道)에 열중해야 합니다. (1983. 7. 25)
상제께서는 언덕(言德)을 잘 가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남을 비방하거나 시비를 말함이 곧 척을 짓는 원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화(禍)와 복(福)은 언제나 나 자신의 언행에 의해 일어난다는 원칙을 우리는 올바르게 깨우쳐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983. 7. 25)
수도는 상제님의 말씀에 나의 심신을 적중토록 일심(一心)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도덕과 윤리를 세우는 역사적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수도는 바로 이 같은 사명의 본바탕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誠)⋅경(敬)⋅신(信)을 수도의 요체로 삼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항상 자신을 비추어 깨달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1983. 7. 25)
우리 도의 입도인은 월 1회 성금을 헌납하는데, 자기의 성의에 따라 자진(自進)하도록 할 뿐, 강요는 일체 못하도록 제도화한 것은 작금의 일이 아니다. 다액(多額) 요구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수도란 금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도(人道) 정신을 회복하는 데 있다. “있는 사람의 황소보다 없는 사람의 장닭이 크다.”는 취지가 <전경>에 있음은 도의 진리가 돈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요, 정성심(精誠心)에 있음을 깨우쳐주심이다. 임원들은 나의 지시를 올바로 이행하여서 물의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19894. 4. 9)
수도는 배암향명(背暗向明)의 길이기 때문에 무자기(無自欺)가 선행되어야 하는 법인데, 만일 자기심(自欺心)이 되면 곧 기신(欺神), 기천(欺天)의 삼기(三欺)가 되므로 자연히 세상에 알려지기 마련이다. 어찌 한스럽지 않으랴!
반드시 수습하고 정화하여야 한다. 봉천(奉天)⋅경신(敬神)으로 인도재건(人道再建)하는 것이 대순진리회의 종주(宗主)이니, 종단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여 평온하고 건전한 종교 활동에 성심⋅성의를 다하여 나갈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 행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19894. 4. 9)
TV를 본 후 원망하지 말고 우리를 깨우쳐주는 것으로 알아라. 올바로 전해주는 것은 잘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고, 고칠 것은 고쳐 혁신해야 한다. 다 잘했다고 해도 잘못된 점을 찾아 고치면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냥 넘기면 아무 발전이 없다. 다른 방면 일이라고 하여 원망하지 말고 우리 전체의 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잘못을 하느님께서 벌주셨다고 생각하고 옳게 고치는 것이 믿는 마음이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다. 도인은 도인의 마음을 지키고 나가야지,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원망이나 하면 안 된다. (1984. 4. 30)
<전경>에 너희들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베풀 것이 없으니 언덕(言德)이나 힘써 행하라고 하셨다.01 도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도의 일념에서 신앙심은 굳건하지만, 단순성이 많기 때문에, 임원들은 항시 교화에 신중을 기하여 원리에 난탈(難脫)됨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 혹 임기응변책으로 감언이설을 하였다면, 이는 진리를 벗어난 조언(造言)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혹세무민하는 난법자(亂法者)가 되고, 안으로는 난도자(亂道者)가 된다는 것을 깊이 각성하여야 할 것이다. (1984. 5. 26)
고생 끝에 영화(榮華)라 한 옛말은 어떠한 충격을 당하였을 때 전진(前進)의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훼방을 받았을 때는 배암향명(背暗向明)의 도광(道光)으로 반성하여 복마선동(伏魔先動)의 해원상생 진리를 깨우쳐줌으로써, 오도(誤道)의 인식으로 말미암아 부실(不實)의 탈선이 되는 것을 스스로 삼가서 자기 회고(回顧)하는 참다운 도인이 되기를 심서(心誓)하는 신앙자가 되게 하여야 한다. (1984. 5. 26)
다음으로 보은상생(報恩相生)하는 일입니다. 누구나 나라는 존립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지은필보(知恩必報)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모의 혈육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자애와 형제 친척의 도움을 받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 국가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비로소 사람 된 도리를 다하게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은의(恩誼) 어린 사회를 떠나서는 하루라도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내가 이와 같은 삶의 근원을 깨닫고 생(生)의 원천을 살피어 마땅히 그러한 은혜를 헤아려 감사해야 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보은의 정신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984. 6. 15)
금산사의 금불 옆에 出 형태의 크고 작은 호위불이 있는데, 큰 것은 증산, 작은 것은 정산이다. 솥 위에 올라가는 것은 시루밖에 없다. 솥(도주님)을 걸고 시루(상제님)를 얹으면 불을 때야 한다. 그래야 용사(用事)가 된다. 그래서 숯(도전님)이 필요한 것이다. 금산사로 오라고 하신 것은02 이것을 보고 깨닫고 그 진리로 들어오라고 하신 것이다. 금불 밑에 용소(龍沼) 못이 있는데 용이 아홉 마리가 있었기에 용소라고 한다. (1984. 12. 26)
이 같은 이단설에 말려들었던 자들은 도인으로 있었을 제, <전경>에 올바로 귀의치 못하여 종통을 신앙의 생명으로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난맥(亂脈)에 날뛰게 된 것이다. 연원도통(淵源道通)을 연운도통(緣運道通)으로 오판하였으니, 아무 데고 따르면 된다는 생각을 할 뿐 아니라 사사상전(師師相傳)의 깊은 뜻을 이어받지 못한 데서 이러한 일이 저질러지게 된 것이다. (1985. 2. 20)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원리를 벗어나 그 수명이 존속되지 못하여 온 것은 만상(萬象)의 생성 변화가 천리(天理)⋅지기(地氣)⋅인사(人事)의 순환 섭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체(天體)는 장구(長久)하며 지구는 윤동(輪動)하고 인생(人生)은 내왕무상(來往無常)하다. 하지만 강유지리(剛柔之理)를 받아 행하는 인간에서 도(道)가 밝혀진 까닭으로, 인생은 하늘로부터 받은 성리(性理)를 땅 위에서 바로 행한다. 이것이 수도요, 이제 수도하여 성도(成道)하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인존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전경>에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03고 말씀하신 뜻은, 성질이 편협하거나 어리석으며 제 할 일은 힘쓰려 하지 않고 다만 성공만을 속히 취하려는 무뢰자(無賴者)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모두 자신의 작공(作工)에 있음을 밝혀주심이니, 사람으로서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일이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고 항심(恒心)의 유무(有無)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심심각성(心深覺醒)하여 성도(成道)의 경지를 깨닫도록 성경신(誠敬信)에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1985. 2. 20)
진리는 스스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요, 믿고 닦음에서 깨달아지므로 서로 토론이 소중하지만, 필요 이상의 말이 많으면 도리어 번거롭고 문란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1985. 5. 17)
종교는 신앙으로써, 인간들이 소망하는 선행을 귀의처 삼아 현세를 바로 깨닫고 내세안락(來世安樂)에 동귀하고자 인연을 따라 사사상전(師師相傳)으로 신앙의 대상(對象)에 굳게 맹세하고 교리⋅신조를 지키고 광선(廣宣)하며 신념을 굳게 세워나가는 것이다. 오직 사람의 도리를 극진히 하면 복이 스스로 따르는 자연섭리(自然攝理)의 덕을 입게 마련이니, 이는 합덕진리(合德眞理)의 일원신앙(一原信仰)의 정종(正宗)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우선 연원(淵源)의 종통이 정립되어야 연운(緣運)이 생동(生動)하므로, <전경>에 “연원(淵源)을 바로 하라”04 하시고, 또 “환골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05고 공사(公事)로 정하셨으니, 종맥(宗脈)이 바로 서야 신앙심이 건실(健實)해져 파쟁(派爭)이 일어날 수 없으며,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미혹(迷惑)이나 남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게 되어 오직 자기 수도를 위한 일심(一心)의 소망을 정성으로써 관철할 지조를 가진 신앙자가 될 것이다.
정성(精誠)이란 본시 천리(天理)의 간단(間斷)없는 불식지공덕(不息之功德)의 지속이니, 생명이 존재하여 만물이 생성하고 양육 번성하는 변함없는 순환 왕복의 생생지리(生生之理)가 곧 천지의 성(誠)이므로, 사람이 이 천리(天理)의 성(誠)의 덕으로 살고 있음을 믿고 깨달아 천리(天理)를 받들어 나가는 일을 인간의 성(誠)이라 하는 것이다.
성(誠) 자체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형이상(形而上)의 공덕이요, 인간의 성(誠)은 형이하(形而下)의 유기유정(有機有情)이기에, 반드시 소중히 여기는 물질로써 성심(誠心)을 표현해야 하지만 그 다과(多寡)를 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믿고 닦는 사람은 유무(有無)를 막론하고 성금을 지중히 받들고, 임원들은 성금을 받는 즉시 영대(靈臺)에 고하는 뜻을 신입 도인이 되었을 때부터 깨우쳐주어야 한다. 성금이 개인에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은 마치 생명의 원동력인 호흡과 같은 것이다. 예부터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 하였으니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는 소원성취의 열매를 맺어주는 힘이 성(誠)으로써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불망(銘心不忘)하여 나가기 바란다. (1985. 7. 3)
보은상생(報恩相生)하는 일은 남을 이롭게 하자는 대순 정신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인간 누구나 개인의 존재를 생각하면 그것이 별개의 개념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은혜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부모의 혈육을 받아 세상에 출생하면서부터 부모의 자애와 형제 친척의 도움을 받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 국가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으며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은의(恩誼) 어린 사회를 떠나서 삶을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이와 같은 삶의 근원을 깨닫고 삶의 원천을 살피어 그러한 은혜를 헤아려 감사해야 하고, 보답하는 것이 바로 보은상생의 정신이며 윤리입니다. (1985. 7. 27)
내가 입도할 때 먼저 성금부터 올리고 입도의식(入道儀式)은 여러 달 뒤에 행한 것은 도의 진리를 확연히 깨닫기 위함이었다. (1985. 8. 7)
자고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이 있다. 이 뜻은 타인(他人)으로 인해 내가 연성(煉性)된다는 말이니, 이는 내가 모르는 것은 남에게 배워서 깨닫게 됨을 이름이다. <전경>에 “박람박식(博覽博識)이 가장 두렵다”06 하셨으니, 남을 다스리려면 먼저 지식을 쌓고 견문이 넓어야 매사에 적응하여 말 없는 가르침이 되어 무언행교(無言行敎)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선악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여 나가면 관용으로써 악도 회복시킬 수 있음이니, 이런 일이 대인(大人)을 배워 행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극기(克己)로써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면 인덕(人德)을 얻어 대인(大人)의 길이 열려 사람으로 인해 배우게 되고 사람으로 인해 닦아지니, 내 몸 닦음이 곧 가르치는 근본이 되느니라. (1985. 8. 7)
충고란 평교간(平交間)이나 동등한 시면(視面)에서 도리의 책임상에 어긋난 잘못을 깨우쳐주는 것을 말함이니, 남에게 충고하기에 앞서 자기부터 바르게 행하면 의당(宜當)히 충고도 할 수 있지만, 만일 사리의 분간도 없이 자기반성도 해보지 않고 충고를 가볍게 하였다면 장소에 따라 도리어 반감을 일으켜서 상생의 은의(恩義)를 해치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여 이해로써 상대에 상처가 생기지 않고 도움이 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을 충고의 진의(眞意)로 바로 알아서 행하여야 할 것이니, 자고로 ‘남을 책하는 데는 밝지만, 자신을 책하는 일은 어둡다’고 한 말을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1985. 8. 29)
거짓은 기만(欺瞞)이니 수칙에 무자기(無自欺)는 도인의 옥조(玉條)라 하신 뜻은, 기만으로 마음이 공허하면 말부터 실(實)이 없어 이상을 구현하지 못하고 행동 또한 바르지 못하여져 일마다 허구성에 사로잡히다가 마침내는 위선자(僞善者)가 되어 허세로 일을 그르쳐 망치게 되니, 이것이 다 속이는 데서 비롯됨을 깨달아서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전경>에 헛말로 꾸미면 부서질 때는 여지가 없다고 하셨는데,07 진실이 없는 일도 시작은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멸망뿐이라는 뜻이니 이는 곧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으로,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여 고치기를 등한시한다면 결과적으로 외롭고 고독하게 사라지리라는 깨우침이라. (1985. 10. 19)
우리 도는 구천상제님의 천지공사로 인한 광제창생의 덕화를 널리 펴는 것이니, 임원들은 도의 진리를 깨닫도록 가르쳐 나가는 도인 육성의 교육에 성심(誠心)⋅성의(誠意)를 다하여야 하며, 따라서 수도의 목적 달성에 부족함이 없도록 본부 수강 과정에 소속 수강생을 독려하여 임원 중의 임원이 되도록 성력(誠力)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1985. 11. 13)
언행이 자기를 대변한다는 것은 교화 육성의 표현이 되기 때문이니, <전경>에 잘되고 못 되는 것이 다 인공(人工)에 있다08 하신 뜻을 깨달아 말부터 삼가면 행동은 품위를 잃지 않는 법이다. (1985. 11. 13)
<전경>에 발복이라 하나니 한 발 잘 가면 행(幸)이 되고 잘못 가면 불행(不幸)이 된다 하셨으니,09 사람은 행동으로써 운명의 진로(進路)가 좌우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이란 이르는 곳마다 분신(分身)을 남기게 되므로 행동이 운명에 직결된다는 것은 오고 가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의 행동에서 운명이 좌우됨을 뜻함이니, 모든 행동이 다 마음을 대신한 표현임을 깊이 각성할 일이다. (1986. 1. 20)
행동은 남에게 호감을 주기도 하고 상대를 기피하게 할 수도 있다. 행동에 있어 성경신이 요체로 생활화되지 못하여 질적으로 중화(中和)가 되지 못하면 남에게 지탄을 받게 되어 운명에 막대한 저해(沮害)를 당하게 되는 것이므로, 도인 육성의 질적 향상에 있어 언어가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깨달아서 일상 자신을 반성하는 데 소홀함이 없게 마음을 다하라. (1986. 1. 20)
척을 풀어 되풀이되는 일이 없어야 화합의 길이다. <전경>에 척을 맺으면 직보(直報)가 있기도 하고 우회보(迂廻報)가 있다 하셨으니 과보(果報)의 섭리를 깨닫는 임원이 되라. (1986. 2. 14)
연원의 종통은 종교의 대동맥(大動脈)이다. 유교는 도통(道統)이라 하고 불교는 법통(法統)이라고 하여 그 계통이 천고(千古)에 뚜렷한데, 대순진리의 종통 연원섭리(淵源攝理)를 모르는 증산계열의 군소종파들은 종통을 혈통에 붙여 미혹(迷惑)과 잡된 모략선전으로 유혹한다고 하니 우리 도인들은 각성 못 하고 있는 일이 없도록 명확하게 일깨워 나가라. (1986. 4. 25)
잘못을 깨닫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허물을 짓기 전에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자각하며 자제하는 개심(改心)이요, 둘째는 잘못을 저지른 뒤에 비로소 과오를 뉘우쳐 사후 반성하는 두 가지의 자각일 것이다.
잘못이란 남을 경멸하는 자존심과 임기응변으로 사람을 속여 꾀는 모든 권모술수며 지위를 앞세워 불순언사(不順言辭)로 하대하는 비도덕적 행위와 자기의 무능을 은폐하려고 남의 약점을 들추어 위협적이며 억압적으로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될 것이다.
잘못이란 사랑으로 이어지는 인도(人道)의 본래정신(本來精神)을 저버리는 웅패(雄覇)의 인습(因習) 때문이니, <전경>에도 묵은 기운이 채워있는 곳에는 새 운수를 감당키 어렵다 하셨다.10 이러므로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렵다 하신 것이니,11 우리 도인들은 훈회와 수칙으로 일상 자신을 깨달음으로 반성하여 교화에 힘을 기울이고, 심덕(心德)으로 너그럽고 착하게, 구덕(口德)으로 말을 덕기(德氣)있게, 신덕(身德)으로 행동과 처신을 바로 하여 현명한 수도자의 자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진실은 성(誠)이 근본이 되는 것이니, 정성이 지극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는 것은 정성 때문이니, 밝아지고서 거짓이 있을 수 없고 관계가 흐트러질 수 없으며 질서의 문란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날뛰는 어리석음을 고인(古人)들은 당랑(螳螂)이 포선(捕蟬)하니 황조재후(黃鳥在後)로다 하였다.12 이 뜻은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 노리고 있을 때 그 뒤에서 꾀꼬리가 사마귀를 잡으려 노리고 있다는 것으로, 자기 처지를 모르는 사마귀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유한 것이다. 자기는 살피지 아니하고 탐욕에 급급하면 위태로움이 경각에 닥쳐온다는 것을 말함이니, 이를 깨달아 지성으로 발심대원(發心大願)하여 만복(萬福)의 근원인 진실의 자아를 완성하도록 교화 육성하는 데 정성을 쏟아 나가야 할 것이다. (1986. 5. 20)
<전경>에 대해서는 구천상제님의 천지공사기(天地公事記)로서 누가 감히 안다고 교육을 자날(自捏, 마음대로 꾸며 날조함)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교감들이 서로 상상하고 문장을 고증하여서 의견을 교환하고 진리에 왜곡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광구천하의 섭리와 광제창생의 상생이법(相生理法)을 깨닫고 종통의 맥락을 확연하게 명시하셨음을 알아 도주님의 창도 이념에 귀의할 것이다. (1986. 6. 13)
공자도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라 하였으니,13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여 취사선택의 원리를 세워서 나의 소견만을 고집하지 말고 지식을 넓혀서 진리를 바로 깨달아 교화에 힘써 나가면 서로가 덕을 쌓는 것이므로 지식 유무를 초월하여 도인들은 한결같이 창도 이념의 신앙심이 격상하여 포덕천하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을 속히 이룰 것이다. (1986. 6. 13)
신조(信條) 사강령의 안심⋅안신을 수행의 훈전으로 삼으라 하셨으니 마음이 결핍한 현세(現世)에서 도인들은 나의 운명의 원동력이 안심 안신의 이율령(二律令)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라. (1986. 9. 2)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먼저 척을 짓지 아니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이다. 남을 정면 또는 후면에서 헐뜯어서 중상하고 모략⋅음해 등으로 척을 맺어놓고 풀지 않았으면 사후(死後)에 그 보가(報價)를 받게 되는데 이는 척이 독약과 같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덕을 행하여 나가면 자애와 은혜가 베풀어지나니 은혜를 베푸는 데서 사람이 따르고 모이는 이치를 깨달아라. (1986. 9. 28)
토론회에서는 자신이 수도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깨우친 것이나 연구한 것을 기탄없이 발표하여야 하며, 이러한 토론회를 자주 가져야 합니다. (1986. 10. 28)
여러분도 일선에서 도 사업을 하다 보면, 많은 어려운 문제점들이 앞에 닥칠 것이며, 이럴 경우에 정성을 쏟아 연구하게 되어 그 정성이 지극할 때 갑자기 깨달아지고 일이 풀려나가는 것을 누차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명들이 그 정성에 감동하여 알음 귀를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 정성에 따라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찾게 되고,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은 얻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론회를 통하여 이렇듯 어렵게 얻은 각자의 깨달음이나 경험, 서로의 의사를 충분히 교환하게 되면 서로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입니다. (1986. 10. 28)
상제님께서도 인간 세계에 오셔서 40여 년간을 주유천하(周遊天下)하시면서 인간의 속정을 살피셨습니다. 그리하여 상극된 이 세상을 상생의 법리로 천하창생을 살리려고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천하창생을 살리려는 상제님의 크신 뜻을 우리 도인들은 하루속히 자각하여 여러 사람에게 대순진리를 바르게 알려 화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1987. 4. 3)
남에게 잘하면 그 여음이 밀려와 커다란 복록이 되어 다가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도인 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였다면 그 덕은 자신뿐만 아니라 종단 전체에 미치고,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한 사람이 잘못하면 그 화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종단 전체를 불신하게 하는 씨가 되고, 이러한 행위들이 상제님의 덕화를 손상시키는 원인이 됨을 자각하여야 합니다. (1987. 4. 3)
도인은 진리 하나 깨닫고 믿음으로 닦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 때가 온다 해도 사회 사람이 바르게 듣지 않는다. 혹자나 들을까? 그러니 과장된 이야기는 문제의 씨가 되니 피하라. (1987. 6. 23)
인도(人道)는 ‘예(禮)’를 체(體)로 삼기 때문에 그 체통(體統)을 바로 하여야 체계질서(體係秩序)가 정립됩니다. 모든 임원과 수반도 부족한 일이 있을 때는 서로 한 걸음 물러서서 뉘우쳐 깨달아 체통을 바로잡고, 체계를 세워 연원(淵源)에 욕급(辱及)됨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1988. 3. 27)
선⋅교감이 도장에 출근하면 성⋅경⋅신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임원들은 도장에서 배워서 그것을 지방에서 그대로 해야 한다. 배운다는 것은 꼭 누가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행동과 말씨를 보고 듣는 가운데 깨닫고 배워지는 것이다. 토론함에 있어서 형식적인 것은 아무 쓸모 없다. 진지하면서도 서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로 해야 한다. 도주님 재세 시에는 임원들이 출근하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장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선⋅교감이 도장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그 자체가 바로 상제님을 모시는 것이다. 선⋅교감은 도장을 수호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988. 8. 19)
임원체계라는 것은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이다. 군대의 계급의식이 아니다. 예라는 것은 장소⋅환경에 적중해야 한다. 위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성경신이고 이것이 제일이다. 도주님 당시에도 빙 둘러서 얘기하셨다. 이 말을 깨우치는 방면은 사업이 많이 될 것이다. 임원이 도인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것이다. 아래 사람이 마음대로 물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라. (1988. 10. 1)
상제께서 강세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선생, 천사 등으로 호칭하였습니다.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이시며 이 분이 바로 구천상제님이시라고 밝히신 분이 도주님이십니다. 여기에서 종통 계승의 연원 맥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1988. 10. 10)
사람은 각자가 필요한 대로,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것만큼 얘기하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의 그릇이 있다고 합시다. 이 그릇을 깨뜨려 산산조각을 냈을 때,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그릇의 일부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조각들 하나하나가 그릇의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조각들을 전부 모아 붙여놓아야만 비로소 완전한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지만, 한 가지의 의견만으로 우리의 일을 해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각기 다른 다양한 의견을 모았을 때에야 우리의 일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가르치고 또 배우는 과정이니 아래 도인들은 임원에게 무엇이든지 물을 수 있고 임원들은 아래 도인들이 물어 올 때에 무엇이든지 받아들여 이해가 될 때까지 충분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상제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기본자세인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망각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결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1989. 1. 7)
임원이란 직책은 도인들이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게끔 지도 육성하는 데 있습니다. 임원도 수도과정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 실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임원의 잘못으로 인하여 아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므로, 만약 임원이 잘못했을 때 임원 자신이 스스로 자각하여 잘못을 인정하고 임원의 자리를 내세움 없이 겸손하게 일을 처리한다면 그 임원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도인을 위한 임원이니 도인들이 잘될 수 있도록 체계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1989. 3. 17)
연원(淵源)이란 원 근본을 말한다. 못 연(淵), 근원 원(源)으로, 못도 물이요, 원(源)도 물이다. 못 연(淵), 근원 원(源)에는 삼 수(氵)가 있다. 진리의 근원은 물에 있다. 옛날 복희(伏羲) 때는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와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우임금 때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지고 나와 주(周) 문왕(文王)은 거기에서 천지의 이치를 깨달았다. 하도⋅낙서에서 진리가 나왔다.
금산사의 금불(金佛)을 모신 자리에도 용추(龍湫)가 있다. 상제님, 정산님의 진리도 못, 즉 물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상제님께서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14고 하신 것은 금산사의 미륵불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들으라는 말씀이고 양위 상제님의 진리로 들어오라는 말씀이다. 두 분의 진리를 받아야 통한다. 이것이 연원도통이다. 연원도통이란 상제님⋅도주님 두 분의 진리에 도통이 있음을 말한다. 포덕한 연줄로 운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연원과 연운은 다르다. 오늘 갓 입도한 도인이라도 연원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다. (1989. 3. 18)
다른 곳에는 도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진리가 없다. 상제님을 모시는 다른 교파에는 진리라는 것이 없다. 단지 상제님께서 기이하고 다른 사람과는 달랐기 때문에 이 어른만 믿으면 잘 될 것이라는 것이지 진리가 없다. 상제님 한 분만 가지고서는 안 이루어진다. 도주님이 들어가야 한다. 도주님이 안 들어가서는 맞지 않는다. 상제님⋅도주님 두 분 법이라야 한다. 자연의 이치, 수리를 두 분의 법에 맞추어 쓰고, 맞추는 것이 도다. 이것이 우리 도의 기본법이 되고 강령이 된다. 옛 성인들의 글이나 말도 전부 이것이다. 미리 알고서 예언 같은 것으로 써 놓은 것이다. 생각에서 생각이 나고 깨닫는다는 것이나, 과학⋅철학도 모두 우주가 짜여진 바를 아는 것이다. 우주가 짜여져 있는데 늘 생각해도 벗어날 수 없다. 옛날에 글을 많이 배운 분들이 글만 배운 게 아니다. 앞으로를 많이 연구하여 생각이 나는 것을 적게 되면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전부 연구⋅예언해 놓았던 것이다. (1989. 4. 12)
도주님께서는 나라를 구하고 창생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입산수도하시다가 우리 도의 진리를 깨달으셨다. 정사(1917)년 2월 10일, 23세 되시던 해에 득도하셨다. 23수는 태을주의 수와 일치한다. 그 주문으로 도를 받으셨다. (1989. 5. 8)
도통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도주님께서 설법하신 것이 도법(道法), 도의 진리 아닌가? 그것을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알아서 지켜나가는 것이 도통이다. 우리가 그냥 마음 착하게 먹는다고 신통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도를 잘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깨달으면 완벽하게 된다. 좀 더 크게 보고 나가고, 생각을 하더라도 좀 더 크게 하라. (1989. 6. 4)
도주님께서는 이렇게 안 하셨다. 재세 시에 임원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바로 그 얘기를 안 하시고 옛날얘기를 끄집어내서 빙 돌려 하셨다. 비결 같으셨다. 분부를 모시고 나가서 말하는 것이 각각 틀렸다. 지금은 내(도전님)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잘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깨닫는 것은 각각이다. 잘 들어야 한다. 잘 모르겠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1990. 1. 30)
만사(萬事)의 진리(眞理)는 하나입니다. 즉, 만법(萬法)은 똑같은 원리 아래 움직이는 것이므로 도인들은 이를 바르게 깨달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몸소 실천하고 겸허(謙虛)한 마음으로 움직일 때 바로 깨우칠 수 있는 것입니다. (1990. 2. 10)
우리 도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일거일동(一擧一動)을 조심하고 매사에 솔선수범(率先垂範)으로써 사회에 모범(模範)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상제님께서 베풀어주신 법을 올바로 깨닫고 이를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1990. 2. 10)
도는 자기가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임원들은 도인을 교화할 때 도의 진리를 이해시켜야 한다. 도의 진리를 가르쳐 몸과 마음에 배이도록 해주는 것이 교화다. 모든 것을 잘 알도록 진리로써 이해를 시켜야 한다. 칭찬과 나무라는 일까지도 모두 진리로써 이해시켜야 한다. 이런 것이 어렵다. 아직은 사람이므로 모욕을 주어서는 도인으로 만들 수 없다. 진리로 이해시켜 자기 스스로가 깨닫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인에게 위압감을 주어서 하면 금세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되질 않는다. 우격다짐으로 도인을 대하는 사람과 도인을 이해시키려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드러나진 않지만, 강압과 위압감으로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1990. 7. 14)
“나는 이렇다.” 하면서 나를 강조하면 자꾸 어두운 데로 빠지게 된다. 내가 나의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면 운수 받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공부에도 허령(虛靈)이란 게 있다. 허령이 다른 게 아니다. 허강(虛降), 진강(眞降)이 있는데, 허강을 받는다는 것은 허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올바르지만 남이 볼 때는 옳지 않다. 이것이 정신이상이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못쓰게 된다. 이 병을 고치려면 자기가 진강이 아니라 허강을 받았음을 깨닫고 허령임을 인정하면 된다. 수도과정 중에도 이와 같이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면 스스로가 고쳐진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으면 밝아지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가면 점점 어두워져서 도에서 아주 멀어지게 된다. 내가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일이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로써 본인이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스스로가 깨닫고 깊게 반성하고 뉘우치면 제대로 갈 수 있다. (1990. 7. 14)
야단도 받을 사람이 있고 받지 못할 사람이 있다. 임원이라면 제일 먼저 개개인의 심정이나 성격을 잘 파악해야 사람을 만들지, 그렇지 않으면 못 만든다. 야단을 칠 때 이해를 하는지 반감을 가지는지 잘 보아야 한다. 야단을 맞고 반감이 없다고 하면 없지만, 있다고 하면 참 무서운 것이다. 야단을 칠 때 자기가 잘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인들은 가지각색이다.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잘 이해시키고 깨닫게 해야 어떠한 난관이라도 뚫고 나간다. 우격다짐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도인을 다루는 데는 금싸라기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이는 도인들을 중하게 다루어서 운수를 받도록 잘 인도하라는 뜻이다. 방면에 불상사가 나면 그 책임은 임원들에게 있다. (1990. 7. 14)
이간질은 상인해물죄다. 살인죄보다 크니 제명 처분을 해야 한다. 화목이 제일이며 해원상생의 근본원리가 된다. 이해하는 것,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도며 도통 받을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 된다면 도통을 당장 받을 수 있다. (1990. 10. 1)
수도라고 해서 꼭 주문 읽고 사업하는 그것만은 아니다. 도의 진리를 이치, 경위라 하고 이것에 의해서 수도해 나가는 것이다. 수도의 힘이 크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이것이다. 밖에 나가서 포덕하고 사업할 때 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교화해 보면 이론에 맞으니까 수긍하고 입도한다. 이것을 바로 경위라고 한다. 경위는 순리의 진리, 순리에 맞는 이치를 말한다. 경위에 맞는다고 하면 순리이고 순조로운 것이며, 경위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순리에 어긋나고 순조롭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순리, 경위를 배워나간다. 순리, 순서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뭘 하나 한다고 했을 때 거기의 순서, 즉 그때의 경위에 맞아야 한다. 경위, 순서, 이것이 우리 도의 진리이다. 이 진리만 잘 깨닫는다면 틀리는 게 없다. 오늘날 이만한 것은 사회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 한다. 우리의 진리만 이해하면 막히는 게 없다. 순리대로 하면 모든 게 다 풀려나간다. 나(도전님) 역시도 도를 믿고 수도만 했지,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배우거나 공부해 본 적이 없다. 서울 중곡동 도장을 지을 때도 배워서 알고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배우고 경험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놓고 생각할 때도 그렇다. (1991. 1. 3)
대순은 둥근 것이다. 끝이 없고 막힘이 없다. 무극, 태극이라 한다. 무극이 대순이요, 대순이 무극이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온 것이 아니고, 무극이 태극이고 태극이 무극이다. 태극은 극이 없이 크다는 뜻이며 대순을 의미한다. 우주의 모든 천지일월 삼라만상의 진리가 태극, 즉 대순에 실려 있다. 그 안에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요람>에도 대순진리(大巡眞理)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즉 부지런히 닦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 즉 구부러지고 펴진 곳을 모두 이해함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다고 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안다 하면 안 풀리는 게 없다. 다 된다. 다 풀린다. 순리로 하는 것이다. 순리로 하면 모든 게 다 풀리고 빠른 것이다. 대순을 이해하고 진리만 알면 막히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다. (1991. 1. 3)
늘 얘기하지만, 종단의 생명은 단결이다.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종단뿐 아니라 어느 단체라도 다 그렇다. 단체의 생명은 단결에 있다. 단결심이 없으면 깨져 버린다.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방면은 임원과 평도인으로 구성되어있다. 임원도 몇 층으로 구성되어있다. 서로가 잘해야 한다. 내가 늘 얘기하지만 평도인은 자기에게 운수를 전해준 사람을 고맙게 생각하고, 임원은 그 사람들이 있으니까 자기가 그 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단결이고, 한마음 한뜻이 되는 길이다. 한마음 한뜻이면 안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내가 늘 얘기했다. 방면에 있어 임원 서로 간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고마움밖에 없는 것이고, 윗사람은 여러 사람이 잘해줘서 임원 직책에 있으니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이렇게 고마운 생각이 들려면 우리 도가 좋고 틀림이 없다는 것을 모르면 안 된다. 그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인 것이다. 꼭 옳고 틀림이 없다면, 자신만만하게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원은 그것을 알고 깨닫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 (1991. 1. 20)
믿는다는 것은 정해놓은 법과 제도를 믿는 것이다. 자기의 뜻대로 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 믿는다고 한다면 정말 옳고 좋다는 것을 알아서 믿어야 한다. 모르는 것은 배워 나가야 한다. 알아야 한다. 도는 자각(自覺)을 하는 것이라고 해서, 각자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다. 자각이란 도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자꾸 깨달으라는 것이지 자기 생각대로 멋대로 하라는 게 아니다. 종단 안에서 제도에 순종해 나가야지, 종단의 제도와 법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한다면 난법난도자, 난동자가 되는 것이다. (1991. 2. 20)
임원이면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서 내가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말과 행동을 잘못하면 종단에 누를 입히는 것이다. 정말로 고치고 잘해야 한다. 도인이라고 하면 밖의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아주 특별하게 달리 본다. 잘해야 한다. 종교인이고 도인이니까 달리 본다. 사회 사람에게 모범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을 잘 못 하는 것이 죄다. (1991. 4. 20)
이론이 다른 것이 아니다. 진리다. 진리를 표현해서 말하는 것이 이론이다. 진리는 무궁무진하다. 이론, 진리, 이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통해야 다 아는 것이다. 이론은 연구하고 깨달아야 하지, 그냥 듣고는 모른다. 우주 안의 군생 만물을 빠짐없이 다 알면 통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꾸 말하라. 그러다 보면 된다. (1991. 9. 28)
우리는 대운 대통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대운 대통을 꼭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인륜도덕을 말로 다 하고 있지만 행하고 지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을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 올바르게 닦는 것이다. 올바르게 지킬 사람은 대순진리회 도인밖에 없다. 우리가 대운 대통을 바라고 확신하니 인륜도덕을 지킬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많이 지켜지고 있다. 여러분은 못 깨달을 것이다. 지킨다는 것은 말하자면 진리를 어느 정도 안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통한다는 것이다. 인륜도덕을 지키는 것도 자주 닦는다는 것인데, 도인이 얘기할 때는 수련이라 표현한다. 수련하면 맑고 밝아진다. 진리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다. 이치를 진리라 한다. 지금 잘 닦는 것도 아니고, 잘 닦은 것도 아니고, 잘 닦았다고도 할 수 없지만, 내가 볼 때 조금은 닦여져 있다. 그렇기에 이치에 밝아지고 있다. (1991. 10. 30)
대운 대통이 꼭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밑의 도인들을 가르쳐 나가는 데도 제일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마음과 몸에 배고 행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밑의 도인이 스스로 이해하고 깨우쳐 나가고 행해나가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교화이고 임원들의 책임이다. (1991. 10. 27)
포덕 되어 도에 들어왔다고, 알고서 믿고 입도한 것이 아니다. 행하면서 깨닫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을 믿고 입도한다. 입도를 한 후에는 도에 대한 진리를 잘 이해하고 믿어나가야 하는데 참으로 어렵다. 쉬운 게 아니다. 선⋅교감으로 몇십 년 된 사람도 있지만 다 모른다. 도라는 게 어렵다. 도의 진리는 무궁무진하다. 도의 진리는 나중에 통해 봐야 알지 지금은 잘 모른다. 그래도 도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어느 정도라도 가르치면서 지켜나가야 한다. (1992. 4. 9)
후각(後覺)이라고 하대하는데 선각(先覺), 후각이란 게 뭐냐? 10년 전에 들어와도 도를 깨닫지 못하면 선각이 아니다. 어제 들어와도 도를 먼저 깨달으면 선각이다. 자기 밑에 있다고 해서 자기 도인이 아니다. 상제님의 도인이다. (1992. 5. 31)
원한 맺힌 분의 원(冤)은 동학사에 가야 하니 그것이 바로 동학이요, 동학 곧 청학에 가야 해원한다. 동학사의 승려는 전부 여자이니, 이것은 앞으로 여자 운이 온다는 얘기다. 그냥 우리에게 맞춰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도주께서 그곳에서 한 주일 동안 도수를 보셨다. 지금도 도수를 보시던 방이 있다.15 거기에서 신라⋅고려⋅이조 때 원 맺힌 분들을 우리 도로 해원시키셨다. 박제상을 모신 사당을 동계사라 하는데, 바로 해원을 위한 것이다. 우리 도는 해원이고, 우리 도 외에는 해원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1992. 6. 26)
포덕이란, 여러 사람에게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 도인들을 사회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게 처신하여 칭송을 크게 받으면 덕화 선양이 되는 것입니다.
포덕하여 도인을 만든다는 것은, 도통(道通)을 받을 수 있도록 도인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도통은 신명이 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은 바르게 닦은 사람에게 응하게 됩니다. 바르게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유리알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닦아 일심(一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통이 급한 것이 아니라 수도가 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잘 깨우쳐 도통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교화(敎化)가 필요합니다. 항상 상대방에게 진리를 잘 이해시켜 주어야 합니다. 만일 위협감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원망을 사게 되어 척만 짓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를 타이를 때도 올바른 도리를 잘 이해시켜 깨닫게 하면 감사히 생각하여 가정이 화목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야단을 쳐 나무라기만 하면 감정을 상해 원망이 생겨 척이 쌓여 가정불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993. 2. 4)
도인들은 해나가며 배우면서 깨달아야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잘못이다 하는 걸 나가면서 알아야 한다. 사업은 숫자가 많은 것보다 적더라도 그런 일 없이 야문 것이 오히려 낫다. 연운 관계에서 무엇보다 첫째로 서로 화목해야 한다. 화목, 화평, 평화,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1993. 3. 3)
수임 임원의 역할은 분위기를 잘 만들어 토론이 잘 성립되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수임원이라 해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임 임원이라고 해도 배워야 한다. 도는 각(覺)이라고 하는 것이다.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어도 깨달은 게 많을 수 있고, 그 깨달음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면 배워야 한다. 지금 입도를 했더라도 그런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10년이고 20년이고 닦았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도란 배워서 알 수가 없다. 결국, 통해야 다 아는 것이다. 토론회라면 수임 임원은 이것을 잘 성립시켜 서로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몰라서 그렇지 배울 게 많다.
우리는 수도다. 수도에 따라 운수를 받는 것이다. 어떻게 배우느냐? 여러 사람이 눕는 걸 봐도, 내가 볼 땐 잘했다, 잘못했다는 것을 안다. 소리를 질러도 행위자는 몰라도 보는 사람은 잘했다, 잘못했다를 안다. 보고 반성해서 고치게 된다. 깨닫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래야겠구나’, 잘못하면 ‘나도 고쳐야겠다.’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자나 노나 일하나 거기서 배우고 깨달을 게 많다. 모든 것에서 배우게 된다. (1994. 5. 16)
여러 사람이 있어야 알지, 혼자서는 모른다. 혼자는 안 된다. 남이 하는 걸 봐야 잘하는 것, 잘못하는 것을 안다. 저 혼자서는 절대 모른다. 사람 없는 데서 큰 사람은 나밖에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벙어리나 귀머거리 같다. 도는 많은 사람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우린 이렇게 자꾸 연구하고 깨달아 나가야 한다. 그것이 수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다. 앉아서 주문만 읽는다고 아는 게 아니다. 모른다. (1994. 5. 16)
-----------------------------------
01 “한 고조는 소하(蕭何)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나니 너희들은 아무것도 베풀 것이 없는지라. 다만 언덕(言德)을 잘 가져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가 잘되고 그 여음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의 말을 악하게 하면 그에게 해를 입히고 그 여음이 밀려와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 삼갈지니라.” (교법 2장 50절)
02 상제께서 가라사대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셨도다. (행록 5장 29절)
03 교법 2장 34절
04 교법 2장 43절
05 교법 3장 42절
06 교법 2장 24절
07 “모든 일을 있는 말로 만들면 아무리 천지가 부수려고 할지라도 부수지 못할 것이고 없는 말로 꾸미면 부서질 때 여지가 없나니라.” (교운 1장 36절)
08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 (교법 2장 34절)
09 이때에 경학의 형이 아우를 오라고 사람을 보내온지라. 상제께서 그를 보낸 후에 발을 당기고 가라사대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요 잘못 가면 곤란이라.” 하시고 곧 그곳을 떠나 최창조의 집에 독행하셨도다. 그곳에 머무시다가 다시 혼자 그 앞 솔밭을 지나서 최창겸에게 이르러 잠시 몸을 두시니 상제께서 계시는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도다. (행록 5장 10절)
10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말뚝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임이 되는 연고니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천하고 약한 것을 편이하여 마음과 입과 뜻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죄를 조심하고 남에게 척을 짓지 말라. 부하고 귀하고 지혜롭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묵은 기운이 채워 있는 곳에 큰 운수를 감당키 어려운 까닭이니라. 부자의 집 마루와 방과 곳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 차 있나니라.” (교법 3장 4절)
11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교법 2장 6절)
12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엿보고 있는데 사마귀 뒤에는 새가 사마귀를 노리고 있다는 것으로,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뒤에 따를 걱정거리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 고사는 전한(前漢) 때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의 「정간(正諫)」, 또 <장자(莊子)>의 「산목편(山木篇)」과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등장한다.
13 <논어>, 「술이편(述而編)」에 나오는 말로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14 행록 5장 29절
15 병신년 3월에 박한경은 도주의 분부를 좇아 류철규⋅박종순과 함께 정하신 바에 따라 공주 동학사(東鶴寺)에 이르렀도다. … 도주께서는 배종자들을 데리시고 이곳을 두루 살피셨도다. 그리고 동학사 염화실(拈花室)에서 이레 동안의 공부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길 “이번 공부는 신명해원(神明解冤)을 위주한 것이라.”고 이르셨도다. (교운 2장 5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