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존경, 감사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야 된다.
그래야 해원상생에서 도통진경(道通眞境)에 들어간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가 있다. (1994. 8. 4)
이해
남을 미워하여도 안 되고 반항을 하여도 안 된다.
모든 것을 서로 이해하고 참고 견디어 나가라.
이것이 다 자기의 성공을 위함이다.
그렇게 못하면 운수를 받을 수가 없고,
운수를 못 받을 바에는 도를 닦을 필요가 있겠는가?
척을 못 풀면 큰공부를 할 때 척신에 걸려
공부도 못하고 도리어 욕을 보게 되고,
허령에 휘말려 제반사가 허사로 돌아간다. (1984. 9. 12)
화목하는 데는 이해가 있어야 하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존중함으로써 권위가 서지 않는 것이 아니고,
권위가 바로 선다.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결정하는 것이 공사이며 도수(度數)라고 한다.
도수에 들어오면 ‘천기자동(天機自動)’이 된다.
아랫사람의 말이 하늘에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른다고 무시하며 묵살하지 말고 존중하라.
우리의 목적은 사업 하나 잘하자고 하는 것이니
미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사(私)’가 있을 수 없고
편벽이 없는 것이다. ‘모자지정(母子之情)’이면 된다.
감정이 있을 수 없다.
아랫사람은 언제나 늘 내 아래이지 않느냐.
그러니 아랫사람한테 내가 너무했지
하는 식으로 이해해주면 된다.
각자 각기 위치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나의 위치가 좋다고
하면 아랫사람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참으로 고마운 것이 아니냐.
밑에 도인도 위에 임원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내가 좋은 것을 어찌 아느냐.
그것을 알면 위의 사람이 고맙고 공경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면 화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고,
서로 정다운 것이 화목인 것이다.
화목이 안 되는 것은 나의 권위를 세우려고 억압하는
데서 문제를 일으킨다. 억압을 하면 언제이고 터져
불신을 가져온다. 무엇을 결정지을 때는 의견을 들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서로 알고 난 후에 해야 한다.
(1986. 7. 4)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의견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합니다.
어떠한 일을 추진할 때에도 명령적으로 하면
일이 잘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명하여 이해하도록 해야 하며,
상대가 충분히 납득하여 공감하도록 하여 일을 한다면
몇 배의 힘이 생길 것이며, 결과도 좋을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도 공사를 처결하실 때 반드시 종도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셨고, 의사를 물어보시고 행하셨으며,
심지어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물어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1986. 10. 28)
선⋅교감은 각자의 위치에서 도인을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윗임원의 할 일이다.
수반들이 따르고 배우도록
임원으로서 노력해야 한다.
올바른 도인이 되도록 만들자면 어렵다.
그러니 항상 생각하고 노력하라.
방면의 책임자가 일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그대로 따라 하니 어려운 것이다.
한 가정이나 우리의 도나 다를 바 없고 똑같다.
부모나 형이 해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똑같다.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이니 힘들다.
윗사람 노릇이 어렵다.
위로 부모가 있고 그 위에 조상이 있는데,
부모가 자기 조상을 중하게 생각할 때
그 자식도 중함을 알고 따라 한다.
부모가 불효하면 자식도 불효하게 된다.
따라 하니 어렵고 그래서 잘하라는 것이다.
자식도 나를 보고 해나가고 나를 보고 따라 하니,
바로 그것이 가정교육이다.
자식을 보면 그 집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형도 마찬가지이다.
형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면 밑의 동생도 잘하게 된다.
우리도 그러한 이치다.
윗임원들이 잘못하면 아랫사람도 따라 한다.
윗임원은 아래 임원을 아끼고 친절히 대해주고,
아래 임원은 윗임원을 존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화목이다. 수도의 수칙도 그렇다.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을 잘 이해하고
자애(慈愛)로 대할 때 모든 일이 되는 것이다.
(1987. 3. 10)
윗사람의 말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윗사람이 하라는 것을 지가 뭔데 하는 식으로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임원을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하는데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의심이 가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을 풀어야 한다.
의심하지 말고 이해가 안 가면
충분히 배워서 알고 받아들여 이해하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공부에 들어가면 잘못 가다가도
말 한마디에 다 풀어진다.
소금을 지고 물에 들어가라고 해도 들어가야 한다.
항상 지시를 따라야 한다.
자기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이란 항상 지시를 따라야 되는 것이다.
못 믿는 데서 허령이 든다. (1987. 6. 19)
선ㆍ교감뿐만 아니라 저 수반까지 알도록,
이해하도록 가르쳐라.
윗사람이 본의 아니게 하는 것도,
그분이 나를 얼마나 믿으면 그러할까 하는 생각으로
하면 오해할 게 없지. 도인이면 감정이 있을 수 없어.
사람이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우리 도인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거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은 우리 도인한테는 없는 말이다.
우리는 신명공판이 있는데,
때가 되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도과정에서 받는 것이다.
자꾸 안 좋은 데로 빠지는 것, 그것이 함정이다.
언제든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니 잘하면 다 벗어지는 거야.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따라가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 거기에 맞게 받는 거다.
(1987. 7. 23)
도인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나 잘 풀리지 않는
일도 인내하면서 극복하는 것이 수도의 한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할지라도 나 자신이
잘 극복하고 이해하면 좋은 결과가 옵니다.
나 자신이 수도하고 도를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에게 인사(人事)에 있어
불화(不和)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도(道)란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
믿는 것이므로 어렵더라도 잘 극복하면
진강(眞降)을 받을 수 있고, 잘못하게 되면
허강(虛降)이 내려 몸과 마음을 망치게 됩니다.
(1988. 7. 7)
도인들은 도(道)를 인연으로 만났으니
그 이상 더 큰 인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면서 화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해도 내 운수하고는 상관이
없고, 내가 도를 믿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다고 해서 반항심이나 반발심을
가지게 된다면 자신도 망치게 되고 다른 도인도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더구나 가장 화합해야 할 도인들끼리
만약 조그마한 불화의 씨라도 가지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또한 덕화를
손상시키게 되니 매사에 화합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말은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1988. 7. 7)
성(誠)은 계획을 세우는 것,
경(敬)은 설계하는 것,
신(信)은 착수하는 것이다.
성(誠), 곧 정성을 들이면
경(敬), 곧 옳은 것ㆍ바른 것에 대한 판단이 생기고,
이에 따라 확신이 생긴다.
모든 일에 성경신이 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1988. 12. 4)
선감이 시키면 밑의 사람은 어떻게든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 복종은 아니다.
그러니까 상대를 잘 이해시켜야 한다.
지금은 가르치고 배워나가는 수도과정이다.
위 임원을 받들지 않고 계통이 안 서면 통솔이 안 된다.
군대는 말할 것 없고 단체나 공무원 등 사회조직체도
마찬가지다. 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임원 계통이 잘 서야 명령 계통이 잘 서고,
명령 계통이 잘 서려면 상대의 인격과 마음을 잘 읽어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1989. 2. 13)
해원은 척을 푼다는 뜻이니
해원상생이란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가 고맙고 감사하는 예를 지켜나가면
화합과 평화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데 서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니
서로가 고맙다는 것을 잘 알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척을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1989. 4. 12)
서로 간에 대화로써 일을 풀어나가는 것이
곧 상생원리이니,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아니면 도인을 올바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상황과 입장을 잘 모를 때
오해와 의심이 생기게 됩니다.
대화를 통하면 모든 오해와 의심을 풀어낼 수 있고
화합 단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남아있으면
올바른 도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 간의 의심과 오해를 풀고 이해하는 것을
해원상생이라 합니다. (1990. 2. 10)
도인은 수도를 해나가니까 뭐든지 모면할 수 있다.
모면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이해다.
수도의 제일 중요한 것이 이해다.
제일 위험한 것이 시누, 올케 사이다.
설사 풀렸다고 해서, 동기간이라 해서
서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해도 척이 맺힌 것이다.
척이라는 것은 자꾸 쌓이고 맺히게 되는 것이다.
확 풀었다고 생각하는데 풀린 게 아니다.
이걸 본다면 위ㆍ아래에 거스르는 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 자체도 가져서는 안 된다.
운수를 바라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수도가 참말로 어렵다.
해원상생이라는 것은 척을 푸는 것이다.
절대로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척을 맺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남을 잠깐 오해만 해도 척은 쌓인다. (1990. 3. 4)
도인들을 교화하는 것은 이해시켜 나가는 것이다.
(1990. 6. 17)
도는 자기가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임원들은 도인을 교화할 때
도의 진리를 이해시켜야 한다.
도의 진리를 가르쳐 몸과 마음에 배이도록 해주는 것이
교화다. 모든 것을 잘 알도록 진리로써 이해를 시켜야
한다. 칭찬과 나무라는 일까지도 모두 진리로써
이해시켜야 한다. 이런 것이 어렵다. 아직은 사람이므로
모욕을 주어서는 도인으로 만들 수 없다.
진리로 이해시켜 자기 스스로가 깨닫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인에게 위압감을 주어서 하면 금세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되질 않는다. 우격다짐으로 도인을 대하는
사람과 도인을 이해시키려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드러나진 않지만, 강압과 위압감으로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1990. 7. 14)
‘나는 이렇다’ 하면서 나를 강조하면
자꾸 어두운 데로 빠지게 된다.
내가 나의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면
운수 받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공부에도 허령(虛靈)이란 게 있다.
허령이 다른 게 아니다.
허강(虛降), 진강(眞降)이 있는데,
허강을 받는다는 것은 허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올바르지만 남이 볼 때는 옳지 않다.
이것이 정신이상이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못쓰게 된다.
이 병을 고치려면 자기가 진강이 아니라
허강을 받았음을 깨닫고 허령임을 인정하면 된다.
수도 과정 중에도 이와 같이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면
스스로가 고쳐진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으면 밝아지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가면 점점 어두워져서 도에서
아주 멀어지게 된다. 내가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일이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로써
본인이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스스로가 깨닫고 깊게 반성하고 뉘우치면
제대로 갈 수 있다. (1990. 7. 14)
화목이 제일이며 해원상생의 근본원리가 된다.
이해하는 것,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도며 도통 받을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 된다면 도통을 당장 받을 수 있다. (1990. 10. 1)
존경
닦지 못한 인간들의 자존심이 상대를 멸시하며
시비(是非)를 조장할 수 있으므로 내 몸을 바로 잡는
일은 자기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다. 아무리 내가 안다고
해도 여러 사람의 의견만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지식을 높이고 인격을 도야하며 처세의 길을
넓히게 됨이니, 따라서 남을 존중하면 도리어
숭배를 받게 되어 소외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원수의 원을 풀어 은인을 대하듯 하라.” 하셨으니
내 몸을 내가 닦기를 힘써 나가려면 반성으로써
날에 날마다 내 몸이 새로워지도록 게을리하지 말아야
곧, 수기(修己)가 되는 것이다. (1985. 8. 7)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을 이방인 취급하거나
백안시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도인들은
절대로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들과 더욱
화목하고 화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친절히 대하며,
상대방을 존경할 줄 알며, 자기 자신이
겸손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1986. 4. 14)
공자도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라
하였으니,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여 취사선택의
원리를 세워서 나의 소견만을 고집하지 말고
지식을 넓혀서 진리를 바로 깨달아 교화에 힘써 나가면
서로가 덕을 쌓는 것이므로 지식 유무를 초월하여
도인들은 한결같이 창도 이념의 신앙심이 격상하여
포덕천하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을 속히 이룰 것이다.
항상 자비이존인(自卑而尊人: 자기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존경한다)으로 공경하여서 타산지석(他山之石)에
역점을 두어 나가면 일진월취(日進月就)의 진전으로
막혔던 지혜가 열려 석연치 않았던 마음의 쌓임을
털어내고 구인산상(九仞山上)에 진일궤(進一簣)하게
될 것이다. (1986. 6. 13)
도인들은 임원들의 교화 육성에 따라 포덕천하의
막중한 사업을 행하게 되므로 임원들은 늘 도인들에게
세심(細心)하면서 처사에는 대아적(大我的)으로
도를 닦아가도록 하고, 방면을 초월한 대순진리회의
임원의 지위에 있음을 존심(存心)하여 허심탄회한
자세와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내 마음이 곧 네 마음)
이라는 폭넓은 견해로써 상호 화목하고, 고집과 자존
없이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성을 길러 대동화합을 선도하여야 한다.
임원은 양공용재(良工用材: 숙련공이 재료를 다룸)하듯이
도인들의 심중을 잘 살피는 반면, 중설(衆說)도
귀담아들어서 집중지도(執中之道)를 채택하고,
소속 임원들을 경시하여 의견을 무조건 묵살하지
말아야 화합의 길이 열리게 되어 신뢰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도인들이 스스로 따르도록 심중(心中)을
쏟아서 대순진리회에 귀의하는 수도심을 높여서
일심 단합의 방면을 이룩하는 데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1986. 8. 9)
이웃의 윗사람은 존경하고,
같은 또래에게는 믿음을 주고,
아랫사람은 사랑하고,
이것을 바로 알아 지킬 일을 지키는 것이
이웃화합이다. 정(情)이라는 것이 있다.
정이 가야 한다. (1987. 2. 1)
체계를 확립함에 있어서는 임원과 수반 상호 간에
서로의 은의(恩義)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임원들은 수반 도인들이 있음으로써 임원의 위치에
있을 수 있으니 그 은의를 잊지 않아야 하며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남의 의사를 존중하고
행동 처사를 바르게 함으로써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행할 때에 수반 도인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심복(心服)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상호 간에 통심정(通心情)의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수반 도인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또한, 수반 도인들은 자신에게 도(道)를 전하여 준
전도인(傳道人)이 있고, 도를 일깨워주며 이끌어주는
선각 임원(先覺任員)이 있음으로써 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도문(道門)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여 항상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은의(恩義)를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1988. 3. 27)
우리 일은 신도(神道)이며 천기자동(天機自動)으로
다 알아진다. 하늘의 뜻을 수반도 안다.
수반도 도의 흐름을 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고
천지신명이 베풀어주시는 도움을 도인들은 다 받고 있다.
우리 일이란 전부가 신명의 일이다.
모든 일을 할 때는 하늘의 뜻,
즉 상대의 뜻을 듣고 그 의사에 맞추면 절대 불평이 없다.
여러 사람의 의사를 들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천기자동으로 움직여져서 다 만들어진다.
다 나오게 된다. 여러 사람의 기국에 따라서 생각이
다 틀리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1989. 2. 10)
임원은 내가 필요해서 내가 내는 것이다.
내 허락 없이는 못 낸다. 임원의 징계라든가
제반 사항을 방면에서 선감 마음대로 못한다.
모든 임원의 징계는 나의 명(命)에 의해서 할 수 있다.
수임선감에게 일임해서 징계하는 일은 없다.
도전의 임원이고 도의 임원이기 때문이다.
도전의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한다. 선감의 임원이 아니다.
임원은 나의 일을 하는 사람이지 윗임원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임원이 나면 높고 낮든 간에 서로가
존중하라. 모두 도의 임원이기 때문이다. (1989. 2. 13)
중 임원 또한 선감의 사람이 아니니까 존중해 주어야
한다. 선무 또한 선감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선무는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고 선감이 대행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수임선감이라고 하더라도 징계권은
없다. 일이 있어 집에 들여앉히는 것은 ‘대기’이고,
돌아다니는 것은 다 하지만 어느 권한 하나를
제재받는 것은 ‘삭권’이다. 이 모두가 나의 재가를
얻어야 한다. (1989. 2. 13)
언제나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수반들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것에는 거기에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인들은 상제님께서 베푸시고
천지신명들이 베풀어 주는 기운을 모두가 다 같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단순히 사람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은 신명의 일이고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인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 기국과 생각이 다르므로 많은 사람에게
물어야 많은 기운을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천운(天運)에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무슨 말이든지 받아들인다는
마음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구수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1989. 3. 17)
열(烈)은 여자에게만 한한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열녀(烈女)는 불사이부(不事二夫)요,
충신(忠臣)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말이 있다.
도를 믿는데,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으라는 그런 뜻이다. 충효열이 세상의 강령이다.
열이란 여자는 남자를 하늘과 같이 존경하라는 것이고,
남자는 여자를 땅같이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1. 12. 5)
옛날에 왕가(王家)에서 아들 형제를 여럿 낳게 되면,
종손은 세자, 그다음 형제들은 대군이라 했는데,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왕자는 어린애라도
절을 했다. 임금의 아들이라도 서로 형제 동기간이면서도
반말을 못 했다. 형제지간이라도 말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못했다. 자기 동생이라도 “이놈의 자식” 하고 함부로
못 했다. 모두가 지존 지엄한 임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동생이라도 하대하고 손을 못 대었다.
아버지가 지존의 자리에서 보고 있고 다 같은 왕의
자식이니 서로 함부로 못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보다 못하냐 하면 더하다. 우리는 모두 상제님의
도인이니 그것보다 더하다. 일국의 왕가도 그러한데
우리도 서로 귀중하게 생각하고 말 한마디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 수도의 중요한 점이 거기에 있다.
서로가 그것을 잊지 말라. (1992. 12. 28)
내가 포덕을 했으니 내 도인이다 생각하고 함부로
하는데, 도인은 하느님의 아들, 딸이다. (1992. 12. 28)
일개 왕가에다 비유했는데, 상제님은 하늘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니 왕가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몇천, 몇만 배 지존 지엄하신 상제님의 도인이다.
그러니 도인들을 아주 금싸라기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지켜나가는 것이 수도이다.
주문만 읽는다고 그게 수도가 아니다.
내 마음을 깨끗이 닦는 그게 곧 수도인 것이다.
깨끗하게 닦으면 통한다. (1992. 12. 28)
경(敬)이란 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나도 중하게 여기고 남도 중하게 여겨라.
다른 곳에서는 “남을 사랑하라.” 했지만,
우리는 “남을 존경하라.”고 한다.
상대방을 존경하면 상대방이 이쪽을 나쁘게 안 한다.
악을 선으로 갚아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를 피로 씻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남을 존경해야 한다. (1993. 1. 28)
해원상생은 모든 사람을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이
존경입니다. 남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악(惡)을
선(善)으로 갚아 나가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이므로
해원상생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존경하게 되면 나도 존경을 받아
인망(人望)을 얻고 또한 신망(神望)을 얻게 되어
도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993. 2. 4)
기독교는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경하라는 것이다.
해원상생은 서로가 아무 원망이 없이
서로 존경해 나가는 것이다. (1993. 4. 27)
늘 얘기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
서로가 감사해야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감사할 게 뭐가 있냐?’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혼자는 못 사는 것이다. 서로가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이 다른 게 아니다.
서로가 존경하면서 조화하는 것이다.
조화가 다른 게 아니라 좋은 것이 조화다.
서로 조화가 되어야 거기에서 가정화목, 이웃 화합,
사회 화평, 세계평화가 나온다.
이것이 상제님의 사상이다. 우리는 그 사상을 이어서
생명으로 알고 지켜나가야 한다.
해원상생은 평화사상이다.
화목ㆍ화합ㆍ화평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해원상생을 나쁘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1993. 5. 28)
감사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은의(恩誼) 어린 사회를 떠나서는
하루라도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내가 이와 같은 삶의 근원을 깨닫고 생(生)의 원천을
살피어 마땅히 그러한 은혜를 헤아려 감사해야 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보은의 정신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984. 6. 15)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경신이다.
좋은 일, 훌륭한 일을 많이 하여 아랫사람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어 본받게 하고 친절히 대하여
고맙게 여기도록 하라. 그것이 잘 안 되더라.
잘되도록 해나가라. 밑의 임원은 누가 나를 여기에
인도하였는가 생각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잘 알도록 하라. 아래 임원들에게
친절했는지 선ㆍ교감들은 생각해보라. 선사ㆍ교정이
없으면 자신이 이 위치에 있었겠는지를. 사람들이
있어야 내가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선ㆍ교감은 아래 임원에게 감사의 마음,
아래는 위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치를 알고 서로가 이렇게 생각할 때 위ㆍ아래는
서로가 살을 깎아 먹여도 아깝지 않은 것이니
서로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생각하여
언행으로 실천토록 하여라.
미움이 어디 있고, 미울 게 어디 있느냐?
서로 도를 알면 그런 게 있을 수 없다.
티끌만큼이라도 서로 미워하지 말라.
서로가 고맙게 생각한다면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다.
어질 인(仁) 자는 부처가 아니고 우리 도인에게 있다.
인(仁) 자는 바로 친절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야 도통진경에 이르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일본사람에게 주지 않고
우리에게 붙여주신 인(仁) 자가 아니냐?
서로가 막힘이 있으면 안 되고 서로가 통해야 한다.
임원 간에, 또한 방면 간에도 막힘이 있더라.
그게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바로 거기에서
시작하여 이루고, 못 이루고 하는 것이다.
도인이 되어야 한다. 방면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다 마찬가지이다. 방면 간에 벽이 있다면 참말로
안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서는 도통진경이
안 되는 것이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1987. 3. 10)
우리는 신명공판이 있는데,
때가 되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도과정에서 받는 것이다. (1987. 7. 23)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애심보다
더한 것이 도인의 마음이다.
그것이 우리 도의 해원상생이며, 진리인 것이다.
이런 것이 몸에, 정신에 배여야 우리의 일이 되는 것이다.
도가 좋고 옳다는 것을 알면, 이렇게 안 되겠느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가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해야 운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저절로 된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아기를 업었을 때도
괴로움을 모르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1987. 7. 23)
체계를 확립함에 있어서는 임원과 수반 상호 간에
서로의 은의(恩義)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임원들은 수반 도인들이 있음으로써 임원의 위치에
있을 수 있으니 그 은의를 잊지 않아야 하며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 남의 의사를 존중하고
행동 처사를 바르게 함으로써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행할 때에 수반 도인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심복(心服)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즉, 상호 간에 통심정(通心情)의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수반 도인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또한, 수반 도인들은 자신에게 도(道)를 전하여 준
전도인(傳道人)이 있고, 도를 일깨워주며 이끌어주는
선각 임원이 있음으로써 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운수를 받을 수 있는 도문(道門)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여 항상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은의를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1988. 3. 27)
상대방이 자꾸 고맙다는 생각이 나도록,
또 나 스스로 무조건 고맙다고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감사한 것이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다.
(1989. 1. 12)
이번에 통하는 것은 연원이다. 그 원리를 믿는 것이다.
연원을 착각하고 몰라서는 안 된다. 연원은 줄이 아니다.
아래가 잘되면 윗사람은 저절로 커지고, 위가 커지면
아래도 따라서 커진다. 그러니까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서로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1989. 3. 18)
해원은 척을 푼다는 뜻이니
해원상생이란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가 고맙고 감사하는 예를 지켜나가면
화합과 평화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데 서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니
서로가 고맙다는 것을 잘 알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척을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1989. 4. 12)
우리 종단의 진리는 한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우주를 다 포함한다.
우리의 목적은 전 세계에 덕화를 선양하는 것이다.
이 덕화는 저 조그만 초목, 티끌까지도 다 미쳐있다.
우리가 잘함으로 인해서 덕화가 펴진다.
절대로 덕화 손상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내년만 넘어가도 우리는 어디에도 밑가지 않는다.
(1990. 1. 30)
화합 단결은 우리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혼자의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힘과 뜻을 합쳐야 비로소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도인들은 서로 간에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방면(方面)과 체(體)가
서로 다를지라도 다 같이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도문소자(道門小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1990. 2. 10)
상제님께서는 오히려 때린 사람의 손을 만져서
위로해 주라고 하셨다. 전생에 때린 일이 있으면
척신이 맞게 한다. 내가 한 대 매를 맞았다면
반드시 전생에 누구를 그대로 때린 것이다.
전생의 잘못이 있어서 그 척신이 그 사람에게
응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라.
전생의 잘못은 빌고 풀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전생에 훔친 것이 있어
그 죄가 벗겨지는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죗값을 받은 것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척을 푸는 것이고,
척이 다 풀려야 해원상생이 되는 것이다.
척도 모면할 수 있다. 도를 믿으니까 참으면서
인내해서 모면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면한다는 것이
도를 믿으므로 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1990. 3. 4)
방면에 있어 임원 서로 간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고마움밖에 없는 것이고, 윗사람은 여러 사람이
잘해줘서 임원 직책에 있으니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이렇게 고마운 생각이 들려면
우리 도가 좋고 틀림이 없다는 것을 모르면 안 된다.
그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인 것이다. 꼭 옳고 틀림이
없다면, 자신만만하게 그것이 옳다고 생각되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원은 그것을 알고
깨닫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 (1991. 1. 20)
우리는 도통을 하려는 것이다.
도통을 하려면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생활화해야 한다.
해원상생이란 사랑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게 없는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을 생활해 나가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말로만 말고
해원상생을 몸으로 실천해 생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수도다.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1991. 4. 20)
우리가 생활하고 실천하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몸에 배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척이 풀리고 맺힐 수 없다.
고맙고 감사할 때 척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통일도, 도통이 있고 없고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을 감정의 동물이라 한다.
이것을 없애는 것이 수도이다.
어디 원망할 게 없고 미워할 것이 없으면
감사할 것만 있다.
뭘 생각하든지 항상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1991. 5. 14)
제일 중요한 것이 ‘나’라는 존재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다.
‘나’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해서 앞으로 도통도 있다.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면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
싫은 게 아무것도 없다. (1991. 5. 14)
상제님께서 누가 나를 때리거든
그 사람 손을 어루만져 주라고 하셨다.
기독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모르니까 그렇지,
안다면 가해자에게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내가 전생에 누군가를 때렸던 것이 척신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복수하는 것이다.
받으면 풀린다. 그 사람한테 와서 풀리는 것이다.
무엇을 도적맞았을 때 괘씸하고 미울 것이다.
그러나 전생에 누구한테 물건을 훔친 적이 있고
그게 지금 나타난 것이다. 그 도적이 한 게 아니다.
척신이 그 사람한테 와서 갚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가! 고마워하면 풀린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해 못 할 게 없다.
척은 받아야 한다. 받으면 풀린다. <전경>에도 있다.
상제님께서 일본 옷을 입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글방에
다니실 때 친구가 있었는데 싸워서 죽어 척이 되었고,
상제님이 일본 옷을 제일 싫어하니 일본 옷을 입으라고
해서 입었다 하셨다. 우리는 척을 다 풀어야 한다.
<전경>에 화복(禍福)이라 했다. 화를 당하면 복이 온다.
(1991. 5. 14)
고맙고 감사하다는 걸 생활화하라.
이것이 해원상생의 길이다. (1991. 5. 14)
선감ㆍ교감ㆍ보정 하면 우리 종단의 최고 임원이고,
나중에 도통을 한다면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 지금까지 온 것이 누구의 덕이겠느냐?
그래서 저 밑의 평도인을 보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평도인들도 임원을 보면 ‘내가 운수를 받도록
이끌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1992. 12. 28)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되고, 상생이 되어야 해원이 된다.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감사하다는 그 마음을
가지면 된다. 해원이 아니고는 상생이 있을 수 없고,
상생이 아니고는 해원이 있을 수 없다. (1993. 1. 28)
도통이 급한 것이 아니라 수도가 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없게 되면
나 또한 없다고 생각할 때 상대인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나의 생존의 가치와 역할이 상대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방면 체계나 가정, 국가, 사회의 모든 조직체는
공존 공생(共存共生)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척이 없이 서로 돕고 존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방면 체내(體內)가
편안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 국가가 안정되고
천하가 화평하게 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1993.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