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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즉아 아즉도(道卽我我卽道)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24-12-20 (금) 08:51 조회 : 345
도즉아 아즉도(道卽我我卽道)

오직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성(誠)ㆍ경(敬)ㆍ신(信)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修道)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ㆍ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修行)의 훈전(訓典)을 삼아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근본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국법을 준수하여 사회도덕을 준행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本來)의 청정(淸淨)한
본질(本質)로 환원(還元)토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도즉아 아즉도(道卽我我卽道)의 경지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관통(豁然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
<대순진리회요람>

도통진경은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성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 단, 도즉아 아즉도
(道卽我 我卽道)라고만 생각지 말고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맑게 닦고, 상제님 말씀에 주관을 두고 언행과
처세를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에 이르도록
무자기(無自己)하여 거울과 같은 진경(眞境)에
이르렀을 때 도통(道通)이 되는 것이다. 진경(眞境)은
만복의 근원이며, 진심견수복선래(眞心堅守福先來)이다.
(1980. 09. 20)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고
윤리도덕을 숭상하는 데서
정신만 통일된다면 그것이 도통이다.
(1991. 12. 5)

정성이라는 것은 도인으로서
심령(心靈)을 통일하는 것이다.
도(道)가 바로 나(我)고 내(我)가 바로 도(道)다
[道卽我 我卽道].
마음과 영(靈)이 통일(統一)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만기(萬機)를 통솔 이용하는 것이니,
만 가지의 기거동작을 통제하는 것 즉,
마음만 밝아지면 무소불능하게 되는 것이다.
(1993. 7. 1)

신명이 아니면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도(道)가 신(神)이고 신이 도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을 믿는 것이다.
신이 도고 도가 신이니, 우리는 신을 믿는다.
정신을 집중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 도가 신도(神道)인 것이다. 즉 신명의 도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조금도 속이지 못한다.
(1993. 11. 4)

수도의 목적은 도통입니다.
도통은 심령을 통일하여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를 정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령의 통일,
즉 영통(靈通)이 곧 도통입니다.
이것을 도주님께서는 포유문에서
심령을 통한 즉 귀신과 더불어 수작(酬酌)할 수 있고
만물과 더불어 질서를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세에서 구하는바 가장 진귀한 보배는
명예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며 오직 나의 심령입니다.
그것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 자신의 내면에 생득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해 질 녘에 동구 밖에서 찾는 할머니처럼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내면에 있는
지극한 보배를 밖에서 찾아 헤맸습니다.
<대순회보> 139호, 119호, 「일각문」 참조

오직 나의 지극한 보배인 심령을 통할 길이 없어
명리(名利)나 재리(財利) 등 인생의 덧없는 것에 골몰하여
인생을 헛되이 보내다 다행히 이 세상에
구천상제님께서 열어놓으시고
도주님께서 진법(眞法)을 설정하셨으며
도전님께서 영도(領導)하시는 한량없는
상생대도(相生大道)가 있으니,
우리는 비로소 오직
정심입의(正心立義)하고
구심령(求心靈)하여
상제님의 임의(任意)에 맡기는
올바른 수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순회보> 184호 전경성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실려 있는 몸도 내가 아닙니다. 내가 사용하는 마음도 내가 아닙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무엇입니까?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씩 벗겨 내며 이것이 진실로 나인가 하고 숙고해본다면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벗기고 또 벗겨서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세상을 만든 근본인 도(道)가 맨 마지막에 남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나는 불생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입니다. 달리는 될 수 없습니다.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에서 나 자신이 바로 도라는 입장에서 말하고 듣고 행하여야 합니다. 도로서 듣고, 도로서 보며, 도로서 말하고, 도로서 행하여야 합니다. 도가 바로 나이기 때문에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神)을 속이는 것이며, 신을 속이는 것은 하늘을 속이는 것이므로 득죄어천(得罪於天) 하면 무소도야(無所禱也)라고 용납될 곳이 없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 「각도문」에 “무릇 성인의 경전은 문장의 색채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며, 진인의 마음은 진실을 구하되 겉꾸밈을 구하지 않으며, 사물의 이치는 천연에서 구하되 조작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마음을 밝혀 도에 이르되 문달을 구하지 않으며, 글은 문장의 색채를 구하지 않고 옷은 비단옷을 구하지 않는다. 문장을 구하는 자는 성인의 심법을 얻기 어렵고 겉꾸밈을 구하는 자는 성인의 진실을 얻기 어렵도다(夫聖人之經典不求文章之色彩而求其眞理眞人之心求其實而不求外飾求其物之事理則求其天然而不求造作也故聖人明心達道而不求聞達書不求文章之色彩衣不求綾羅也求於文章者聖人之心法難得求乎外飾者聖人之眞實難得).”라고 하신 것도 무자기(無自欺)의 소귀(所貴)함을 밝히신 것입니다.

내 몸도 내가 아니고 내 마음도 내가 아닐진대 하물며 내 몸에 걸친 옷이나 내가 소유한 재물이나 학벌, 명예가 진정한 나이겠습니까. 밖으로 향한 의식을 내적으로 관조(觀照)하여 진실로 귀중한 보배를 내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정직과 진실이 인성의 본질이므로 무자기, 즉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 마음을 바로 하고 의리를 세우며 모든 것을 상제님의 임의(任意)에 맡겨나가는 것이 우리의 잃어버린 본진(本眞)을 회복하는 첩경입니다.
<대순회보> 148호, 일각문.

자연현상에서 동심원은 중심에서 밖으로 퍼져가듯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도 이것을 이르시어 천지 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 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도하여 도통(道通)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 천지의 은덕(恩德)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에서 심령(心靈)을 통일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하는 상생대도(相生大道)의 길입니다. <대순회보> 155호, 일각문.

경천은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성과 공경을 다하는 마음이다. 경천 실천에는 여러 방법이 있으나 기도를 모시는 것은 경천의 실천에 매우 중요하다. 기도는 상제님 영시(永侍)의 정신을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靈通)의 통일을 목적으로 주문을 봉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의미 속에는 경천이 포함되어 있다. 기도를 모시는 가운데 자신의 내면은 밝아지고, 지난 세월 마음을 속였던 자신의 허물들이 보이면서 반성을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자신의 마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그대로의 양심으로 회복이 된다면 마침내 현실적인 마음과 자신의 영(靈)은 통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에서 심령(心靈)을 통일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대순회보> 185호, 청계탑

우리 도에서 기도(祈禱)는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모아서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靈通)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하는 것’이다. 기도의 본질은 ‘상제님을 가까이 영원토록 모시는 정신’에 있다. 이런 기도의 정신은 비단 기도 모시는 시간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도인의 일상에서 생활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 모시러 가는 길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적으로 깊이 호흡하면서 상제님께 감사의 념(念)을 올리자.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상제님 감사합니다!’ 숨을 길게 내쉬면서 ‘상제님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더 나아가 <대순진리회요람>에는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에서 심령(心靈)을 통일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하라.” 하셨으니 숨을 들이쉬면서 상제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숨을 내쉬면서 상제님 뜻을 받들겠다는 마음을 다져 보자. <대순회보> 145호, 청계탑

깊이 궁구해보면 깨달음과 마음의 작용에 대해 이보다 더 명쾌한 경구는 없을 것입니다. 심부재도(心不在道)나 도재심공(道在心工)이라, 마음에 도가 있는 것은 아니나 도는 마음으로 닦은 공력으로 깨닫게 된다는 경구입니다. 이 구절이 어느 정도 밝게 알아져야 도와 마음의 관계를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道)가 영(靈)이고 영이 신(神)입니다.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 이것이 깨달음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대순회보> 123호, 대순광장

<바가바드 기타>에 의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는 ‘진정한 나’가 아닙니다. 흔히 자신의 육체나 마음을 ‘나’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됩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몸과 마음, 영혼의 너머에 더 근원적인 ‘나’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에 이른 ‘나’, 아트만이 되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는 “나의 가장 지극한 보배가 바로 심령(吾至寶之心靈)”(교운 2장 41절)이라 하셨습니다. 심(心)과 영(靈)을 통일하여 영통, 도통에 이르는 것이 우리 수도의 목적입니다. <대순회보> 122호, 대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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