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神眼)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삼아라.
이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
공부를 하면 개안(開眼)부터 된다.
개안이 신안(神眼)이다.
개안이 되면 내 잘못부터 안다.
참 무서운 것이다.
내 마음을 내가 속인다.
내(도전님) 말을 믿어라.
근본원리를 무자기에 두고 나가라.
신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신안은 우주를 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은 죄도
영화 필름처럼 다 나타난다.
척(慼)은 나의 잘못에서 나온다.
우리는 운수를 바라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척을 짓지 말아야 한다.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을 수 있게끔 갖추어야 한다.
(1988. 2. 29)
수도란 천지 이치에 통하는 것을 바라고 행해나가는
것이다. 하늘은 28수가 체(體)가 되며, 땅은 24절이
체가 되어 천지를 돌려나가므로 천지 안의 모든 신장,
일월성신, 일시분초 등이 이 사이에 전부 포함되어 있다.
천지의 모든 신은 따로 안 모셔도 여기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수도는 정신을 하나로 묶어가는 것이다.
정신 통일만 된다면 쉽다. 전부 시험해 보았다.
공부는 잠 안 자고 정신만 묶어주는 것이다.
정신만 묶으면 환하게 열린다.
신안(神眼)이 곧 개안(開眼)이다.
멀고 가까움이 없다. 잠을 안 자도 축나는 것이 없고
먹는 것도 하나 필요 없다. (1988. 12. 4)
태을주는 기운을 받고 소원을 이루는 주문이요,
기도주는 상제님께 고(告)하는 주문이다.
태을주는 무궁한 조화와 기운도 엄청나다.
태을주 기운은 소모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니,
약은 먹으면 약 기운이 소모되지만,
주문의 기운은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큰 공부를 할 때 불면불휴하고 주문을 읽으면
눈이 열리는데 이것이 개안(開眼)이다.
이 개안을 신안(神眼)이라 하는데 우주가 환히 보인다.
빠른 사람은 7~10일 정도가 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공부시키면,
하루 이틀 사흘 저녁만 안자면,
그때 보름 했을 때의 그 기운이 그대로 있다.
(1990. 1. 6)
큰 공부 시킬 때는 잠을 자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
중간에 잠깐 잠깐 쉬게 하는데 태을주로만 한다.
주문의 기운을 받으면 개안(開眼)이 되는데
그것이 신안(神眼)이다. (1990. 2. 1)
가면으로 하지 말라! 못쓴다!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 그러면 안 된다.
꼭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운수도 그렇다.
있다고 믿으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
도통도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개안(開眼)은 눈을 여는 것, 눈을 뜨는 것이다.
신안(神眼)이라고도 한다.
신안이 열리면 멀고 가까움이 없고 막히는 게 없다.
훤하다. 믿는 사람도 되지만
없다는 사람한테도 힘은 들지만 된다.
안 되는 사람은 없다. 다 된다.
도에는 법이 있고 제도가 있다.
이걸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옳고 좋다는 것만 알면 쉽다.
모든 것을 참고 이겨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법이라는 것이 도다.
상제님,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고 믿는 것이다.
옳고 좋다는 것을 안다면 무조건 받들어야 한다.
도의 진리, 대순진리뿐이다.
믿는다는 것에 절대 자기 뜻대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도의 법방(法方) 아래에서 움직여야 한다.
도인은 절대 다른 마음 먹어서는 안 된다. (1991. 2. 12)
가령 공부를 한다고 그래 보자.
한 1주일, 2주일, 3주일 해나가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재우지 않고 앉혀놓고 다른 생각 못 하게 만들면
아무것도 없이 깨끗해진다.
얼굴도 맑아지고 환해진다.
밖에서는 공부를 많이 하면 애를 많이 써서 수척해지지만,
우리 공부를 하게 되면 맑아진다.
속이 맑아지니까 겉도 맑아진다.
그러면 틔워진다.
틘다는 게 뭐냐면 개안(開眼)이다.
신안(神眼)이 열린다.
사수(師授)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모른다면 헛사수지.
수련한 사람 보면 살 색이 맑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속의 나쁜 기운이 자꾸 빠져나가니까
몸도 가벼워지고 좋아지는 것이다.
도통이라는 것은 잘 닦아야 오는 것이다.
아무리 뭐라 해도 내가 닦지 못하면 안 된다.
거짓말이나 하고 속이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겁액(刧厄)만 쌓인다.
밖에서도 용납하지 않는다.
무자기는 내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안다.
자기가 알면 신명도 안다.
속이고 그러면 도통이 오겠는가? 안 온다.
인륜도덕은 우리 수도과정에 있어서 기본 원리이다.
사람의 도리, 그것을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꼭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리지만
그것을 지키기가 어렵다.
수도가 다른 게 아니다.
주문만 읽는다고 수도가 아니다.
사람으로서 꼭 지키고 행하여야 할 일을
내가 움직이고 철저히 행하는 것이 수도다.
움직이는 데 있어 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도리를 지키고 행해야 한다.
집에 돌아가면 가정 구성원으로서 행하고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남자라면 가장으로서 꼭 지켜야 할 도리를 행하고,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 수도과정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다.
(1991. 12. 5)
신명(神明)은 복희씨께서 하늘에 모았고
문왕(文王)은 영대(靈臺)에 모셨다가 땅에 봉신(封神)했고
이번에는 신명을 도장(道場)에 모셨다가 사람에게
봉신(封神)을 하는 것이다.
공부를 시켜 보았더니 다 못하더라.
여자를 먼저 시키는 것은 수성(水性)을 띠고
남자는 화성(火性)을 띠고 있기 때문에
내수(內修)를 먼저 시키는 것이다.
신인상합(神人相合)이 도통(道通)이다.
진리(眞理)가 옳고 틀림없다는 것만 믿게 하면 된다.
공부(工夫)한 사람이나 안한 사람이나
기운(氣運)은 똑같이 받는다.
선, 교감이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한다면
선, 교감의 자격이 없다.
공부를 하면 주문(呪文) 소리가 나온다.
그 근방에 가도 기운(氣運)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를 하면 첫째로 건강해진다.
주문을 하니 피 순환이 잘되어 밥을 잘 먹는다.
멀고 가까움이 없이 똑같다.
즉 곁에 있는 사람이나 먼 데 있는 사람이나 똑같다.
개안(開眼)이라는 것은 신안(神眼)이 열리는 것이다.
즉 신(神)을 보는 것이다.
개안해서 보는 신은 우리가 얘기하는 신과는 다르다.
공부한 사람은 신을 다 본다.
공부를 마친 사람은 절대로 허령(虛靈)이 들지 않는다.
허령이 들래야 들 수가 없다.
내 하고 싶은 대로 볼 수 있으니까
더 이상 보고 싶은 것이 없으니 허령이 안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 도(道)의 진리(眞理)를 이해시키고
도인(道人)들이 그것을 확고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1992. 3. 18)
전에도 얘기했듯이 개안(開眼)은 신안(神眼)이다.
막히는 것이 없고,
멀고 가까운 것이 없이 다 통해지는 것이다.
<전경>에도 진강(眞降)을 받으면
만져도 낫고, 보기만 해도 낫는다고 했다.
대순성전에 가면 병 고치는 성화(聖畵)가 있다.
꼽추도 고치시고 종도들에게
만국의원이라고 써 붙이라고 하셨다.
모든 병을 다 고치는 것인데 앞으로 있을 일을 말한다.
상제님께서 모든 겁재는 다 물리쳤으나
병겁만 남겨 놓으신 공사가 <전경>에 있다.
내가 시험해 본 것이 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신명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해서 고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직접 신안이 열려 몸의 일부를 보면,
증상을 본다는 것인데,
아픈 곳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허강(虛降)과 진강(眞降)은 다르다. (1992. 5. 3)
우리 도를 신도라고 하니 신명의 도임을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정신(精神)이라는 것은
맑을 정(精), 신명 신(神)이다. ‘맑은 신’이라는 것을
사회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내 신이 맑아지면
다 알아지는 것이다. 큰공부에서 내가 시험해보고 있다.
사람을 시켜서 시험해본 것이 있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개안(開眼)은 신안(神眼)이다. 막히는 것이 없고,
멀고 가까운 것이 없이 다 통해지는 것이다.
<전경>에도 진강(眞降)을 받으면 만져도 낫고,
보기만 해도 낫는다고 했다.
“신목여전(神目如電)하니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라.”고 했다.
사정(邪正)의 감정(鑑定)을 번갯불에 붙인다고 하셨는데,
신명의 눈은 번갯불보다 더 빠르다.
암실기심은 어두운 방에서도 속이지 말라는 것인데,
남이 모른다고 해서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절대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
여기서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다 나오는데
번갯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설마 설마 하는데, 그게 아니다.
알수록 말을 못 한다.
백지 한 장으로 눈 앞을 가려도 전체가 다 보인다.
신안(神眼)이라는 것은 막히는 게 없다.
멀고 가까움도 없다.
미국을 보는데 산이 막혀 있다고 못 보지 않는다.
번갯불에 비길 바가 아니다. 못 속인다.
도를 믿는다면 이것을 믿고 나가야 한다.
신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안다.
이 세상에서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면
부모도 다 모르고 나도 다 모른다.
기억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은 다 안다.
신은 상대방이 마음먹는 것까지도 다 안다.
도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도 알고,
도가 얼마나 엄한지도 안다.
며칠 지난 것도 알고,
몇 달 후 해나갈 것도 다 안다.
자기 것뿐 아니라 남의 것도 다 안다.
모르면 설마 설마 하지만,
도를 알면 얼마나 무섭고 겁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밖의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상대방이 어떤 마음으로 과거에 해왔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다 안다.
무당들은 맞고 틀리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다. 직접 본다. (1992. 5. 31)
여기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신이나 신명하고 대화를 하고 호소해서
뭘 알고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개안(開眼)이 되는 것이다.
개안은 신안(神眼)이 열리는 것을 말한다.
신명에게 뭘 물어보고 호소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신안이 열리면 보는 것이다.
신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막히는 데가 없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상처를 보면 된다.
신명에게 호소를 해서 낫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절대 무슨 병을 고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의통이 신안(神眼)이다.
공부하는 사람이 직접 신안이 열리고
신안에만 마주쳤다 하면 풀린다.
모든 것이 풀려진다.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멀고 가까움이 없이 다 된다.
영(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1992. 6. 26)
다른 데서 공부하는 것하고 다르다.
신명에게 무엇을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신명이 와서 무엇을 일러주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정신통일이다.
정성으로 내 마음과 몸을 유리알같이
깨끗하게 직접 닦는 것이다.
깨끗해지면 저절로 직접 다 알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신안(神眼)이고 개안(開眼)이다.
병 치료를 개안, 신안으로 한다.
신안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겠다고 자신하는 마음만 가지면
영력(靈力)으로 하는 것이지,
무엇이 와서 일러주고 얘기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거짓말이 많다.
정신통일이 되어 신안이 열리면 다 보인다.
어디가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신안으로 마주치면
그 자리에서 확 낫는다.
마음이 거울처럼 맑으면 통한다.
도라는 것을 크기로 말하면 한이 없고 끝이 없다.
복희 선천 때는 말하자면 봄 운(運)이다.
문왕 후천은 여름 운(運)이다.
이것이 가면 앞으로 정역인데 가을 운(運)이 된다.
절후 변화와 같다.
가을은 풍년이니 좋을 때가 아니냐?
결코, 뭐가 다 망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고 나서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늘 해원상생이다.
상제님의 공사는 광제창생,
세상의 창생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살리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
저 사람 죽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살리려 하고 같이 살려고 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경하라는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도인뿐만이 아니다.
밖의 사회 사람이라도 존경해야 한다.
밖의 사람이건 안의 사람이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에 빠지면 건져주고 해야 한다.
해원상생은 서로가 아무 원망이 없이
서로 존경해 나가는 것이다. (1993. 4. 27)
신안으로 직접 보면 그냥 원래대로 돌아간다.
신안에 딱 마주치면 다 나아지고
원 상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디 힘을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1993.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