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淵源)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각기 제 것이 좋고 옳다고 하면서 믿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남보다 특히 좋고 옳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변동이 없고 죄를 짓지 않는다.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이 도통이다. (공사 3장 41절) 26일에 4일생이면 4를 합쳐 30일로 꽉 차게 된다. 같은 생일도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가 맞아야 한다. 1년 12달이 도이며, 도라는 것을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12월하고 30일이 꽉 찬 것이 도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전부 1년 12달에 있다.
우리가 상제님 한 분만을 믿는다면 진리는 없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범인(凡人)으로서 할 수 없고 하느님으로서만 하실 수 있다는, 상제님의 범상치 않음만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철부지라는 것은 절후(節侯)를 모른다는 것이고 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도주님 함자에 철(哲) 자가 있지 않으냐? 축(丑)은 12월, 축월(丑月)이다. 이것이 소다. 그래서 소를 도라고 한다. 심우도(尋牛圖)란 소가 가는 길을 찾는다는 말이고 도를 찾는 그림이다. 불교인은 심우도를 수도과정이라고 한다. 닭이 또한 도다. 축시에 울기 때문이다.
금신(金神)은 가을이다. 노래 가(歌), 새 을(乙), 그러니 을미생(乙未生)이 된다. 을(乙)은 갈 지(之) 자와 같고, 가는 것은 길이다. 상제님과 도주님의 연세가 25세 차이로, 절후 24를 빼면 하나가 남으니 도주님이 주인이신 것이다. 도주님을 모르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진리가 없는 것이다. 도주님을 모르면 상제님을 옛날에 훌륭했던 분이라고 그냥 믿는 데 그친다.
금산사의 금불 옆에 出 형태의 크고 작은 호위불이 있는데, 큰 것은 증산, 작은 것은 정산이다. 솥 위에 올라가는 것은 시루밖에 없다. 솥을 걸고 시루를 얹으면 불을 때야 한다. 그래야 용사(用事)가 된다. 그래서 숯이 필요한 것이다. 금산사로 오라고 하신 것은 이것을 보고 깨닫고 그 진리로 들어오라고 하신 것이다. (행록 5장 29절) 금불 밑에 용소(龍沼) 못이 있는데 용이 아홉 마리가 있었기에 용소라고 한다.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에서 봉천명 봉신교하신 후, 상제님께서는 태인으로 가라고 하시어 태안에 닿으셨다. 그래서 안면도(安眠島)로 가셨는데, 안면도란 편안할 안(安), 졸 면(眠), 섬 도(島)이니 잠깐 쉬어가는 데라는 말이다. 그다음에 마동(馬洞)에 가셨으니, 마동은 말 마(馬), 동리 동(洞)이다. 말[馬]은 조씨(趙氏)를 가리키는 말이니, 봉서를 받으신 곳이 마동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치로 되며 천장길방(天藏吉方) 자리이다. 중곡도장 자리도 천장길방 자리이고 축좌미향(丑坐未向)으로 되었다. (1984. 12. 26)
부산(釜山)은 가마솥 부(釜)로서 입금산(入金山)이다. 부산 초량 옆에는 시루산도 있다. 시루와 똑같이 생긴 동산이다.
군산(群山)에서 수륙병진(水陸竝進)이라 하시며 서울로 가는 도수를 보셨는데, 군(群)은 무리가 많다는 뜻이다. (공사 1장 17절) 도수라는 것은 처음부터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목적지를 간다면 어디 어디 거쳐서 가야 되는 것이다. 도주님께서는 회문리(會文里: 글이 많이 모인다는 뜻)에서 탄강하시고 을축(1925)년에 도창현에서 무극도를 창건하셨으며, 신사(1941)년에 무극도가 해산된 지 4년 만에 부산으로 들어가셨다. 도주님께서 무자(1948)년 부산 보수도정에 상제님을 봉안하신 후 11년 동안 계셨고, 도주님 화천하시고 10년 만에 나도 떠났다. 합하면 부산에서의 21년은 기도주 21자와 같은 수가 된다. <전경>에도 나와 있지 않으냐? 모든 법은 서울에서 펴나간다고 하시며 신경수의 집에서 공사를 보시고 수륙병진 도수로 뱃길에 안경을 싸서 북쪽으로 던지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자리(서울)이다. (예시 46절)
이 시간이 간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모레가 오는 것과 같이, 복희선천, 문왕후천, 용화후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봄⋅여름⋅가을로 이어지는 것이 천지자연의 이치인 만큼 억지로 만들 수도 없다. 5천 년 전, 태호복희씨가 개국 초의 임금이었는데 황하수(黃河水)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왔다. 복희씨가 그것을 보고 천지 이치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하도(河圖)이다. 우임금 때는 낙수(洛水)에서 거북이[神龜]가 그림을 지고 나왔다. 이것을 보고 낙서(洛書)라고 한 것이다. 모든 이치가 물에서 나온 것을 말함이다. 그래서 금산사에 금불을 모신 것도 용추못인 물에다 모신 것이다. 그러므로 연원(淵源)이라고 한다. 태호복희씨 때 용마가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으니 용마부도(龍馬負圖)라고 하고, 우임금 때 거북이가 글을 지고 나왔으니 금구낙서(金龜洛書)라고 하고, 이번에는 용추 못에서 연원이 시작되므로 연원도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통도 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밝혀질 모양이다. 그것이 도통이다. (1984. 12. 27)
<전경>의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행록 5장 29절)고 하신 상제님 말씀은 그 진리로 오라고 하신 것이니 잘 이해시켜야 한다. 금산사의 용추 못이 어떠한 자리이고 누가 미륵불을 봉안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솥을 걸고 그 위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시루밖에 아무것도 없다. 존호가 증산(甑山), 정산(鼎山)이시기에 합치되는 것이다. 솥[鼎]과 시루[甑]가 되었다면 불을 때야 용사(用事)가 된다. 그냥 불을 때면 다 타버린다. 그러니 물이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것이 진리인 것이다.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다. 책만 보고 그냥 믿고 나가면 진리가 없다. 미륵금불의 금불은 금신(金身)이다. 금은 서방 4⋅9 금(金)이니 즉 가을이다. 가을은 노래 가(歌), 새 을(乙)이니 도주님께서 을미생(乙未生)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여합부절(如合符節)이라 한다. 도인들에게 교화를 잘해서 이해시켜라. (1985.. 1. 19)
이 같은 이단설에 말려들었던 자들은 도인으로 있었을 제, 전경에 올바로 귀의치 못하여 종통을 신앙의 생명으로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난맥(亂脈)에 날뛰게 된 것이다. 연원도통(淵源道通)을 연운도통(緣運道通)으로 오판하였으니, 아무 데고 따르면 된다는 생각을 할 뿐 아니라 사사상전(師師相傳)의 깊은 뜻을 이어받지 못한 데서 이러한 일이 저질러지게 된 것이다. (1985. 2. 20)
우리 도의 연원(淵源)은 <도헌> 제13조에 있듯이 일맥전수(一脈傳受)이므로, 임원들은 연원(淵源) 공(功)을 세우기에 먼저 체계를 슬기롭게 운영하라. 포덕사업에 있어서는 때에 따라 윗사람의 협의(協議)를 사후에도 받을 수 있으니 꼭이라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면 서로 간의 신의가 더욱 두터워져서 왈가왈부 없이 화기롭게 화합이 응고될 것이다. (1985. 5. 17)
* “연원(淵源)은 강증산상제(姜甑山上帝)의 대순(大巡)하신 유의(遺意)의 종통(宗統)을 계승(繼承)한 조정산도주(趙鼎山道主)의 연원(淵源)이라 한다.” <도헌> 제13조.
우선 연원(淵源)의 종통이 정립되어야 연운(緣運)이 생동(生動)하므로, <전경>에 “연원(淵源)을 바로 하라” (교법 2장 43절) 하시고, 또 “환골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교법 3장 42절)고 공사(公事)로 정하셨으니, 종맥(宗脈)이 바로 서야 신앙심이 건실(健實)해져 파쟁(派爭)이 일어날 수 없으며,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미혹(迷惑)이나 남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게 되어 오직 자기 수도를 위한 일심(一心)의 소망을 정성으로써 관철할 지조를 가진 신앙자가 될 것이다. (1985. 7. 3)
선⋅교감은 소속 임원과 도인들의 신앙심을 바로 세워 심신의 개벽으로 성도(成道)케 교화 육성하는 것이 책무이니, 먼저 종통의 연원을 바로 하고 대순진리회의 종지와 교리에 따라 해원상생의 제세대도(濟世大道)를 성경신(誠敬信)으로써 닦게 하여 도통진경에 이르도록 힘을 다하라.
연원의 종통은 종교의 대동맥(大動脈)이다. 유교는 도통(道統)이라 하고 불교는 법통(法統)이라고 하여 그 계통이 천고(千古)에 뚜렷한데, 대순진리의 종통 연원섭리(淵源攝理)를 모르는 증산계열의 군소종파들은 종통을 혈통에 붙여 미혹(迷惑)과 잡된 모략선전으로 유혹한다고 하니 우리 도인들은 각성 못 하고 있는 일이 없도록 명확하게 일깨워 나가라.
<전경>에 “나의 일은 판밖에서 성도(成道)하리라.”(교운 1장 17절) 하시고, 또 “나도 영재(英材)가 있다면 가르치리라.”(행록 1장 32절) 하셨으니, 당시의 판 안에는 종통을 전수할 사람이 없다고 못 박은 말씀이다.
도주님은 봉천명(奉天命) 9년 수도 끝에 상제님의 계시를 받으시고 수로(水路)로 회국(回國)하실 제, 돌풍으로 안면도(安眠島)에 불시착하셨다가 통사동(通士洞)으로 옮기셔서 마동(馬洞)에서 선돌 부인이 비장하고 있던 상제님의 유전봉서(遺傳封書)를 받으신 후, 을축(1925)년 4월에 태인 도창현에 무극도를 창도하시기까지 오로지 계시와 봉서에 의하시고 판밖에서 독수(獨修)하셨기 때문에,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봉기지세(蜂起之勢)로 일어났던 증산계파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끼지 않은 판밖에서 성도(成道)하셨음을 명명백백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1986. 4. 25)
나 한 몸으로 임원의 직위를 받은 것이 아니요, 포덕의 노력 공헌에서 책임을 맡게 되었으니 임원이 됨은 연운에 의한 공덕이므로 연원을 따른 연운의 도인은 곧 나의 생명이다. 하지만 연운이 많아짐에 따라서 교만해져 이해로 바로 잡을 일도 구실을 만들어 궁지로 몰아붙인다면 이는 자신의 허물을 은폐하려는 일종의 술수에 불과하며 이 까닭을 알아차린 도인들이 공정을 위하여 부득이 나(도전님)에게 소원(訴願)하기에 이르면 대순진리로 창도하신 본회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점을 심심회오(心深悔悟)하여 선정부⋅교정부⋅정원의 임원들은 자기 도야에 심신을 경주하여야 한다. (1986. 8. 9)
우리 도의 임원은 도인을 지도 육성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자리다. 일거일동(一擧一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경거망동의 처사는 있을 수 없다. 임원은 위로 양위 상제님을 받들고 아래로는 많은 도인과 포덕을 통해 세인(世人)을 해원상생의 길로 인도하여 수도케 하는 선도자이므로, 연원을 바르게 하고 연운의 체계를 정립하여 체통을 굳건히 하여서 질서를 확립하는 절대적인 책임을 져서 그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1986. 9. 2)
<전경>에도 상제님께서 홀로 이룩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교운 1장 41절) 그러므로 우리 도의 연원(淵源)은 구천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 15세 시 진주(眞主)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만주 봉천에서 23세 시 득도하심은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신 것이며,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공사 3장 41절)이라 하신 것은 12월 4일로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강을 뜻하심입니다. 이것을 여합부절(如合符節)한 천부적 종통 계승이라고 합니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의 용추(용소)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위에 미륵불을 봉안한 것은 증산(甑山)⋅정산(鼎山), 양산(兩山)의 진리를 암시하여 도의 근원을 밝혀 놓은 것이며, 상제님께서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행록 5장 29절)고 하심도 미륵불과 솥의 양산의 이치를 알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1986. 10. 28)
복희씨 때나 문왕 때의 천지 이치가 하도, 낙서에 있다. 천지의 이치가 물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에도 후천 정역(正易)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도통은 거기에 있다. 용마나 신구(神龜)나 마찬가지로 모든 이치가 물에 있다. 소가 도다. 소는 청림이고 12월이다. 1년 12달에 4철, 24절후가 있고, 이 변화의 조화가 도이다. 12월이 도이다. 소가 축(丑)이고 12월이다. 즉 도를 말한다. 야우등산(野牛登山)이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 소에 관한 모든 비결은 청(靑) 자 하나로 돌아간다. 쇠꼬리(공사 1장 8절)도 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비결을 인용해서 교화 자료로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이 아니라도 할 말은 많다. 이 우주 안에 우리 도가 아닌 것이 없다. 비결로 교화하면 시한부로 되어버린다. 비결을 이용해서 교화하는 일은 안 된다. 그렇게 하지 마라. (1987. 4. 27)
본 종단의 맥은 상제께서 강세하셔서 교운(敎運)을 펴신 데에 그 시원(始原)을 두고 있습니다. 상제께서 화천(化天)하시고 난 후 상제님의 계시(啓示)로 득도하셔서 종통(宗統)을 세우신 도주님으로 연원의 맥이 이어지고 도주님 화천 당시 유명(遺命)으로 또 연원의 맥이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상제께서 강세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선생, 천사 등으로 호칭하였습니다.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이시며 이 분이 바로 구천상제님이시라고 밝히신 분이 도주님이십니다. 여기에서 종통 계승의 연원 맥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주고받는 상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부적으로 이어져 오는 신성성(神聖性)이며 연속성(連續性)인 것입니다. 이러한 천부적인 연속성을 종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연원에 따라 입도하는 도인들은 전도자와의 연운 관계가 있습니다. 연운에 따라 도인들은 사사상전(師師相傳)으로 맺어져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또한, 연운에 따른 포덕 업적에 따라 임원체계가 형성되며 이 체계는 본 종단을 이끌어 나가는 기본 체계가 되는 것입니다. (1988. 10. 10)
도통의 근원은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운수를 받는 것은 상제님을 받드는 것이다. 도통은 선감이 주는 것이 아니다. 나 아니면 도통을 못 한다고 선⋅교감이 도통을 주는 것 같이 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처음 가꿀 때 사람 되라고 하는 것이 가다 보면 선⋅교감이 운수를 주는 거로 된다. 나한테 조금 못한다고 하여 도통을 못 받는다고 하면 이런 데서 반발이 생긴다. 제일 참기 어려운 자리가 임원 자리다. 자칫하면 죄를 짓게 된다. 상대(上臺)는 수반 자리가 많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안 된다면 도가 아니다. 무자기(無自欺)가 되어야 한다. 자기 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공석(公席)에서 꾸중하는 것은 앞으로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1989. 1. 6)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그러므로 연원이신 구천상제님⋅도주님을 믿는 것이다. 연원을 안 믿으면 도인이 아니다. 옳지 못한 길을 가면서 옳다고 하면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이다. 도인은 선⋅교감 개인의 도인이 아니라 상제님의 도인이다. 상제님의 도인을 자기 도인으로 만든다면 그것보다 큰 죄가 어디 있겠는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1989. 1. 12)
진리의 근원은 연원(淵源)이다. 근원은 물에 있다. 포덕한 연운체계로 도통 받는 것이 아니다. 상제님, 도주님, 나(도전님)로 이어지는 연원 체계가 진리의 근본이다. (1989. 3. 18)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수운가사에도 연원도통으로 되어있다. 수운은 범인(凡人)과 다르다. 수운가사는 우리 얘기지 다른 것이 아니다. 연원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연원이란 포덕한 연줄이 아니다. 연원을 잘못 판단하여 선각이 아니면 도통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된다.
연원(淵源)이란 원 근본을 말한다. 못 연(淵), 근원 원(源)으로, 못도 물이요, 원(源)도 물이다. 못 연(淵), 근원 원(源)에는 삼 수(氵)가 있다. 진리의 근원은 물에 있다. 옛날 복희(伏羲) 때는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와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우임금 때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지고 나와 주(周) 문왕(文王)은 거기에서 천지의 이치를 깨달았다. 하도⋅낙서에서 진리가 나왔다.
금산사의 금불(金佛)을 모신 자리에도 용추(龍湫)가 있다. 상제님, 정산님의 진리도 못, 즉 물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상제님께서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신 것은 금산사의 미륵불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들으라는 말씀이고 양위 상제님의 진리로 들어오라는 말씀이다. 두 분의 진리를 받아야 통한다. 이것이 연원도통이다. 연원도통이란 상제님⋅도주님 두 분의 진리에 도통이 있음을 말한다. 포덕한 연줄로 운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연원과 연운은 다르다. 오늘 갓 입도한 도인이라도 연원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다. (1989. 3. 18)
이번에 통하는 것은 연원이다. 그 원리를 믿는 것이다. 연원을 착각하고 몰라서는 안 된다. 연원은 줄이 아니다. 아래가 잘되면 윗사람은 저절로 커지고, 위가 커지면 아래도 따라서 커진다. 그러니까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서로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1989. 3. 18)
복희 선천 시대와 문왕 후천 시대가 있고, 복희는 봄 시대이고 문왕은 여름 시대다. 우리의 진리가 정역으로 가을이다. 복희씨 때는 용마(龍馬)가 하수(河水)에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는데 그것을 가지고 모든 이치를 만들었고 알게 되었다. 천지의 이치가 모두 하도에 담겨있었다. 문왕 때는 거북이[神龜]가 낙수(洛水)에서 지고 나왔던 낙서(洛書)에서 천지의 이치가 나왔다. 이렇게 되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세상에 나오고 알았다. 이제 앞으로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천지조화나 모든 이치를 통하는 것이다. 연원이라는 말도 못 연(淵), 근원 원(源), 물을 이야기한다. 즉 못을 근원으로 한다. 모든 이치는 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용마나 거북이나 모두 물에서 하도와 낙서를 지고 나왔다. 이번에 연원이라는 것은 상제님께서 나오는 곳이다.
금산사에 미륵불이 있는 곳을 처음에는 용소(龍沼)라고 했다. 용이 아홉 마리 살았다는 연못인데 진표율사가 용소를 메워서 미륵을 모시라는 계시를 받아, 계시대로 그곳을 메워 금불(金佛)을 봉했다. 금불은 미륵을 말함이다. 현몽을 했는데, 현몽이란 계시를 말한다. 무엇으로 메웠느냐 하면 숯이다. 전국에 눈병이 돌게 돼서 눈이 아픈 사람이 그 연못에 숯을 던져 메우면 병이 나았다. 거기에 무쇠로 된 솥을 얹고 솥 위에 도금을 한 미륵을 세웠는데 시루다. 시루가 솥 위에 얹힌다.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계시에 의한 것이다. 미륵 좌우 양쪽에 보호불들을 세웠는데, 미륵과 가까이 있는 두 보호불은 좀 크고, 가 쪽의 두 보호불은 작다. 이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증산(甑山), 정산(鼎山)을 의미한다. 즉 出의 형태로 산이 두 개여서 양산(兩山)이니 날 출(出) 자이다. 출출명장이 양산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것이 연원도통이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때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지 않으셨느냐? 그래서 증산교에서는 금산사에 자주 간다. 그런 데는 뚜렷하게 내세울 진리가 없으니 되지를 않는다. 신도들이 모여도 하나, 둘 떨어진다. 자꾸 떨어지니까 안 되어서 시한부(時限附)를 썼다. 지금은 없다. 우리는 시한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믿고 나가는 것이다. 증산교에서 금산사 중과 얘기하니, 중도 신도가 절에 많이 오리라 생각하고 절에 들어오라고 했다.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는 말씀은 증산, 정산의 진리를 찾으라는 것이지 절에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밖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줘도 모른다. 이 이치를 우리 대순의 도인밖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연원도통이란 근본이 용 못에 있음이며, 결국 근본이고 이치가 증산⋅정산의 진리임을 말한다. 용소가 근본이고 용소는 물이다. 모든 이치는 물에서 나온다. 용마는 하수, 거북이는 낙수, 모두 물에서 나왔다. 지금 와서는 연원에서 진리가 나온다. 원 근본은 못이다. 그래서 연원도통이라 한다. 네 연원, 내 연원하는데, 네 연원, 내 연원이 없다. 상제님⋅정산님을 믿고 나가는 것이 연원이다. 도인은 상제님의 도인이지, 누구의 도인이 아니다. 앞으로는 연원도통이다. 후천 정역은 연원도통이다. (1992. 4. 9)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연원(淵源)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포덕 연운(緣運)으로 안다. 그것이 아니다. 착각하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것이다. 포덕해 나가는 것을 연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다. 완전히 다르다. 앞으로는 연원도통이다. 못 연(淵), 물 연(淵), 근본 원(源)이다. 오늘날까지 모든 진리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면 물에서 나왔다. 모든 진리가 물에서 나왔고, 우주 삼라만상이 생기고, 크고, 자라고,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전부 물에 있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 그래서 진리도 물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물이 아니면 낳는 이치도 없고, 클 수도 없고, 생명을 유지시켜 나갈 수도 없다. 물 없으면 안 된다. 쉽게 얘기해서 이 세상 전부가 물이다.
지금부터 약 5천 년 전, 개벽 초 태호복희씨 그 시대에 하수(河水)라는 물에 말이 나타났다. 신기한 용마(龍馬)가 나타났는데 그 용마의 등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개벽 초의 주인인 태호복희씨가 그것을 보고 연구해서 우주의 진리를 찾고 안 것이다. 그로부터 7∼8백 년 뒤, 지금부터 약 4,000년 전 요순우탕(堯舜禹湯) 시대가 있었는데 그때도 물이다. 낙수(洛水)라는 물이 있어서 거기에서 신기한 거북이[神龜]가 나왔다. 문왕이 그것을 연구해서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알아 진리를 편 것이다. 이렇게 우주의 모든 이치, 진리가 다 물에서 나왔다.
이번에도 도통이 어디에 있냐 하면 물에 있다. 즉 연원에 있는 것이다. 물에서 도통이 된다. 그래서 연원도통이라 한다. 전라도 금산사의 그 자리가 바로 못이다. 용추가 있었는데, 이 못을 메우고 금불을 봉안했다. 여기에 상제님과 정산님의 이치가 들어있다. 이 못을 나무 숯으로 메웠고 거기에 솥을 얹어 놨다. 솥 위에는 시루가 얹힌다. 금산사의 미륵은 좌우에 두 분씩 해서 지금 오불(五佛)이다. 미륵불이 出 형태로 세워져 있으니 출(出) 자로 뫼 산(山) 자가 둘이다. 구천상제님의 호가 증산(甑山)이시고, 솥이 있으니 정산(鼎山)님이 계셔야 한다. 도주님의 호가 정산이시다. 솥과 시루만 있어도 안 된다. 물이 필요하고 불을 때야 한다. 두 분의 그 이치인 것이다. 그래서 증산⋅정산에서 도통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진리라는 것은 물에서 나오고 물이 아니면 안 된다. 증산님, 정산님이 다른 데 있으면 안 된다. 이것을 연원이라 하고 도통이 여기 있는 것이다. 물이 아니면 낳고 자라고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가 없다. 증산⋅정산에 의한 도통이다. 용추 못에 그분들의 진리가 있다. 그러니 그분들의 진리에 의해서 도통이 나오는 것이다.
연원에서 나오는 것이지, 포덕시키는 것에서 도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상제님을 믿고 해나가면 다 도통이 있다. 다만 포덕해 나가면서 선⋅후각이 있고, 가르치고 배우는 선⋅후각 간에는 서로가 음덕(陰德)이 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밑에서는 윗분이 잘해서 고맙고, 위에서는 밑의 사람이 잘해줘서 고마운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해원상생의 원리다. 그것이 있을 때 도통이 있는 것이다.
선⋅교감이 도통을 못 믿어서 이러고저러고 왔다 갔다 한다면 큰일이다. 도통이란 도를 통하는 것이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통하는 것이다. 연원도통을 명심해야 한다. 원 근본은 용추 못, 물에 있다는 것이다. 상제님, 도주님으로부터 진리가 퍼진다는 것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다 알고 삼라만상을 낳고 자라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키고 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도통이라 한다. 자고이래로 도통은 없었다. 무엇을 조금 안다고 도통이 아니다. 이제 도통이 나온다. (1993. 9. 8)
* 금산사 이치 = 연원의 이치
상제님 – 미륵불 – 시루(甑)산
(계시 종통)
도주님 – 솥 – 부정(鼎)리
(유명 종통)
도전님 – 숯 – 쪽박(朴)골
* 연원(淵源)의 속성
1. 천부적(天賦的)이다.
2.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다.
3. 만수도인의 연원은 모두 같다.
4. 연원도통이다.
연원도통이다. 앞으로는 연원도통이다. 도통이라는 것이 자고이래로 없었다. 그것이 있는 것이다. (1993.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