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에 대한 훈시
본말(本末)이란 시비(是非)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 근본이 병들면 그 부분을 속히 제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엽(枝葉)까지 따라 손상(損傷)을 받게 되는 법이다. 묻혀 있어야 할 근본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은 비례망동(非禮妄動)이라. 이러할 때 박절한 것 같지만,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대하여 주는 것이 갱생의 도움을 주는 신의(信義)요, 화합으로 성도(成道)를 앞당겨 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1985. 6. 17)
항상 자비이존인(自卑而尊人: 자기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존경한다)으로 공경하여서 타산지석(他山之石)에 역점을 두어 나가면 일진월취(日進月就)의 진전으로 막혔던 지혜가 열려 석연치 않았던 마음의 쌓임을 털어내고 구인산상(九仞山上)에 진일궤(進一簣)하게 될 것이다.
상제님께서도 개문납객(開門納客)에 기수기연(其數其然)이라고 하셨습니다. 외부에서 도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손님이요, 우리 도인은 주인입니다. 주인으로서의 예의를 갖추어 극진한 예우로써 손님을 대하여야 합니다. (1987. 4. 3)
<전경>을 보면 상제님께서 “삼강오륜이 없으므로 천하가 병들었다(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행록 5장 38절)고 하셨다. 완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인격을 갖추지 못하고 도리를 지키지 못하면 질서가 무너진다. 충⋅효⋅열이 삼강이고 오륜은 삼강 안에 들어 있다. 대운(大運)이 여기에 있다. 올바른 사람을 만들 때 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일생 동안 삼강오륜을 심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될 때 도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도인이 되어야 도통도 운수도 받는다. (1988. 2. 29)
모든 체계질서는 예(禮)로써 지켜나가야 합니다. 도덕(道德)과 인의(仁義)도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부자 형제도 예가 아니면 윤리가 정립되지 않습니다. 스승을 섬기고 학문에 힘쓰는 일도 예가 아니면 바른 수업이 될 수 없고, 조상을 받들고 신명(神明) 앞에 치성(致誠)을 드리는 일도 정성의 예를 갖추어야 하며 사념(邪念)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심(恭敬心)을 가져야 합니다. 윗사람은 매사에 예를 갖추어 공정(公正)을 기하고, 아랫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을 수행할 때에 예법에 합당케 하여야 합니다.
위와 같이 인도(人道)는 ‘예(禮)’를 체(體)로 삼기 때문에 그 체통(體統)을 바로 하여야 체계질서(體係秩序)가 정립됩니다. 모든 임원과 수반도 부족한 일이 있을 때는 서로 한 걸음 물러서서 뉘우쳐 깨달아 체통을 바로잡고, 체계를 세워 연원(淵源)에 욕급(辱及)됨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상호 신뢰로써 체계를 확립하여야 하며, 이렇게 확립된 체계질서를 덕(德)으로써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의(恩義)로써 바르게 세우며, 예(禮)로써 지켜야 하며, 진리(眞理)를 바로 알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또한 배워서 포덕(布德)ㆍ교화(敎化)ㆍ수도(修道)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올해에도 발전하는 시대에 맞게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포용하여 상제님의 덕화가 온 누리에 미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988. 3. 27)
영대는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모신 곳이니 성⋅경⋅신을 다하는 마음과 자세로써 모든 예를 갖추어야 한다. 영대 참배 시 내수는 한복을 입어야 하고 한복 저고리는 반드시 옷고름이 있는 것이라야 한다. 단추나 브로치 같은 것으로 앞을 여민 것은 안 된다. 외수는 한복을 입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양복으로 정장하였더라도 위에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작업복이나 잠바 차림은 안 된다.
영대에는 국궁(鞠躬) 자세로 올라가야 한다. 국궁 자세는 허리를 약 30도 정도 굽히는 것이다. 국궁 자세로 올라간 후 자기가 설 자리에 정렬한다. 정렬한 후에는 면수(俛首) 자세로 대기한다. 영대 안으로 들어서면서 읍배는 하지 않는다. (1988. 8. 19)
기도라 하면 상제님 앞에서 주문을 읽는 것인데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가짐과 단정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상제님을 모시고 있는 앞에서 어찌 큰 소리를 내겠는가! 소리를 낮추어서 작은 소리로 공손히 주문을 읽는 것이 예를 지키는 것이다. 도주님 재세 시 주문을 큰 소리로 읽지 말라 하셨다. 큰 소리를 내면 기도 기운을 도적맞는다고 하셨다. 주문을 크게 읽으면 자연 악성(惡聲)이 나오게 되고 악성에는 신명이 응하지 않는다. 악성으로 주문을 읽지 말라. (1988. 8. 19)
임원체계라는 것은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이다. 군대의 계급의식이 아니다. 예라는 것은 장소⋅환경에 적중해야 한다. 위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성경신이고 이것이 제일이다. 도주님 당시에도 빙 둘러서 얘기하셨다. 이 말을 깨우치는 방면은 사업이 많이 될 것이다. 임원이 도인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것이다. 아래 사람이 마음대로 물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라. (1988. 10. 1)
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하심도 막혀 있는 천지인 삼계를 막힘없는 상통(相通)으로 바꾸시려는 것임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도인 상호 간에 은의(恩義)로써 임원은 항상 반성하여 기거동작을 바르게 하며, 수반은 보은하는 마음으로 믿고 따르며 적중한 예를 갖출 줄 아는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988. 10. 10)
막힘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선⋅교감, 선사⋅교정은 한마음으로 해 나가라. 임원 상호 간에, 또 수반까지도 막힘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사이이므로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예란 시공(時空)에 따라 적중해야 한다. 예번즉난(禮煩則亂)이다. (1988. 10. 12)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 예(禮)이고 도리(道理)이다. 잘잘못을 알아야 한다. 모르면 안 된다. 선감⋅교감은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 누구에게 어디로 전가시켜서는 안 되며 전가시킬 수도 없다. 절을 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슨 일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된다.
나(도전님)의 뜻을 역으로 행하는 것, 거역하는 것은 대죄(大罪)다. 내(임원) 도인이 아니다. 선⋅교감의 개인 도인이 아니다. 중간 도인들을 놓고 싸움을 시키고 분열을 일으키는 행위는 죄 중에서 가장 크다. 최고 임원인 선⋅교감은 잘하건 못하건 간에 무조건 책임이 있다. 말을 한마디 하더라도 후각 도인들에게 피해가 갈 경우에는 무조건 말은 그만두어야 한다. 단순한 것이 도인들이다. 다 갖추었기도 하다. (1989. 1. 9)
처사에 공명정대해져라. 편벽과 삿됨이 없어야 한다. 불평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불평이 많이 일어나면 예(禮)가 빠지고 만사불성(萬事不成)이 된다. (1989. 1. 12)
음복(飮福)도 행사다. 음복은 상제님께 올렸던 귀중한 음식이다. 도장 안에는 빈자리가 없이 천지신명이 꽉 차 있다. 도인들이 음복할 때 신명도 같이 흠향한다. 영대, 봉심전, 대순성전에서 음복할 때는 예를 갖추어야 한다.
연운체계에 있어서 방면 문제가 발생한다. 진리의 근원은 연원(淵源)이다. 근원은 물에 있다. 포덕한 연운체계로 도통 받는 것이 아니다. 상제님, 도주님, 나(도전님)로 이어지는 연원 체계가 진리의 근본이다. (1989. 3. 18)
음복이란 단순히 먹는다는 것이 아니다. 음복도 행사다. 음복을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말라. 상제님께 올렸던 음식이니 귀중한 것이다. 예를 갖추어서 마음에 기쁨을 느끼며 들어야 한다. 우리 도장은 천지신명을 모시고 있는 장소다. 도장에는 신명들이 꽉 차 있어서 빈 곳이 없다. 신명이나 사람이나 같다. 신명도 도인들이 음복할 때 흠향(歆饗)하게 된다. 그러니 한 장소에 너무 많은 사람을 넣어서 욕되게 음복을 하게 해서 되겠느냐? 음복 때 장소가 협소하면 봉심전에서도 할 수 있다. 먹는 것을 천하게 생각해서 상제님의 진영이 모셔진 곳에서 어떻게 음식을 먹는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먹는 것은 귀중한 것이다. 어른 앞에서도 음식은 먹는다. 몸을 삼가 하면서 먹는다. 마음대로 행동을 못 할 뿐이다. 음복을 할 때는 모든 예를 갖추어야 하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본전에서 음복하는 도인들에게는 경(敬)과 예(禮)를 잘 가르쳐야 한다. 차선감 이하 임원들을 본전에서 음복을 시키는 것도 그 이하 수반들보다는 예를 갖출 줄 알고 조심을 하기 때문이다. 본전에서 음복을 하여도 우리가 믿고 나가는 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다. 도주님 재세 시에 우리도 가끔 영대에서 음복을 했었다. (1989. 3. 18)
해원은 척을 푼다는 뜻이니 해원상생이란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가 고맙고 감사하는 예를 지켜나가면 화합과 평화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데 서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니 서로가 고맙다는 것을 잘 알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척을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1989. 4. 12)
예(禮)가 번(煩)하면 곧 난(亂)이 되니 무질서하게 되는 것이다. (1989. 9. 19)
지금은 인사(人事)가 중심이고, 인사는 사람[人]으로서 할 일[事]을 하고 나가는 것이다. 예절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킬 줄 알아야 사람이라 하고 도인이라 한다. 그것을 닦는다고 한다. 닦는다는 것은 인사도리(人事道理)를 닦는 것이다. 예번즉난(禮煩卽亂), 너무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 예는 적법ㆍ적당해야 한다.
정성이란 것은 부담 없이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도주님께서는 군밤을 좋아하셨는데 한 보따리 사들고 가면 안 받으셨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도주님을 모실 때도 할아버지, 아버지 모시듯이 하되 예절 바르게 했다. 너무 허리를 굽신거리는 것도 안 맞는다. 절할 때도 예법에 맞아야 한다. 여러 날 만에 만나면 절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그냥 예만 취하면 된다. 만날 때마다 절하거나 너무 구부리지 마라. 한 번 인사하면 되지 한마디 할 때마다 구부리는 것은 안 좋다.
말을 할 때는 듣는 것이 목적이므로 잘 들을 수 있도록 편히 앉게 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한 다리를 세우고 앉으면 예가 된다. 부담 없이 받도록 하는 것이 정성이다. 예법이란 장소에 따라 위치 상황에 따라 다르며, 도리에 알맞게 행하는 것이다.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1989. 9. 19)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다. 그것이 질서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예다. 도장 안에서는 안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그것이 곧 임무다. (1989. 10. 19)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예다. (1989. 10. 19)
도법(道法)이 그렇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도주 옥황상제님께서 펴신 법이다. 그 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도인의 도리이고 임무이다. 재세 시에 진퇴(進退) 절차를 안 지키면 사람이 아니고 진퇴절차가 예절이라 하셨다. 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예절이다. (1989. 11. 21)
상대를 거북하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시기, 장소를 가려서 해야 예의다. (1989. 11. 21)
나는 위의 임원에게 바른 소리를 했지, 무조건 ‘예, 예’ 하지는 않았다. (1990. 2. 5)
진퇴절차(進退節次)가 분명해야 합니다. 진퇴절차가 분명하지 않음은 경위(經緯)와 도리(道理)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이는 또한 사람으로서 근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리, 즉 예(禮)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만사(萬事)의 진리(眞理)는 하나입니다. 즉, 만법(萬法)은 똑같은 원리 아래 움직이는 것이므로 도인들은 이를 바르게 깨달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몸소 실천하고 겸허(謙虛)한 마음으로 움직일 때 바로 깨우칠 수 있는 것입니다. (1990. 2. 10)
가정에서 가정교육은 부모들에게 달려있다. 부모가 예의가 바르고 옳으면 자식도 그렇고, 부모가 거칠면 자식도 거칠어진다. 부모가 술을 먹고 주사(酒邪)가 심하면 자식도 찡그린다. ‘나중에 커서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경우는 잘 없다. 배운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워서 큰 애들이 제 아비보다 더하다. 윗임원들이 잘 대하면 밑으로 자동적으로 흐른다. 위에서 솔선하면 밑에서도 따른다. 사람 기르는 것이 누에 기르는 것과 같고 ‘나나니’라는 벌과도 같다. 나나니는 알과 새끼를 두고서 ‘날 날 날’ 한다. ‘나 닮아라, 나 닮아라.’ 한다. 우리와 똑같다. 밑에서는 위에서 하는 그대로를 배운다. 안 좋은 말은 안 쓰는 게 좋다. 때리는 것은 아주 영 없어져야 한다. 우리는 때려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1990. 3. 4)
선ㆍ교감은 최고의 임원이다. 따라서 예의가 적중(適中)해야 한다. 적중치 못하면 예가 아니다. 환경이나 위치에 따라서 적중해야 한다. 성경신(誠敬信)으로 모신다고 하는데 위가 편하도록 모시는 것이 제일 큰 것이다. (1990. 10. 1)
인륜이란 쉽게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서로의 관계를 말한다. 인륜이 천륜이고 천륜이 인륜이다. 이 관계에서 예의가 없으면 안 된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만 예의가 한국, 동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고 다 있다. 질서를 예의라고 하는 것이다. 도덕도 다른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을 질서라고 한다. 인륜도덕이란 유도(儒道)의 법칙이 아니고 인간 본질의 근본 바탕이다. 사람이 얽혀 있는 데는 인(仁), 예(禮), 신(信)이 있다. 이것이 서로 간의 질서이고 질서가 곧 예다. 부모 자식 간의 예가 있고 임금 신하 간의 예가 있고 친우 간의 예가 있다. 이것을 올바르게 지키면 사람이고, 못 지키면 금수라 한다. 장유유서, 붕우유신, 부자유친, 부부유별, 군신유의가 오륜인데, 서로 간의 질서가 있으면 이런 것들이 확립된다. 자식이 어디로 나갈 때 출필고(出必告) 반필면(反必面)한다면 질서가 있고 예의가 있는 것이다.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이 예의고 질서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친구는 서로 간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서로 같은 도인 사이라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 그것이 질서이고 예의이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1991. 10. 30)
인륜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가정이 있고 이웃이 있고, 이것이 인륜이다. 아내, 부모, 자식 등, 각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인륜도덕을 지키는 것이다. 윗사람이라고 해서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근본원리가 인ㆍ예ㆍ신인데, 꼭 행하고 지키고 실천해야지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도를 닦는 근본인데, 이것을 모르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운수를 받을 길이 없다. (1991. 10. 30)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만 예의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 뒤떨어져 있다. 질서가 예의 아니냐? 미국 사람들은 질서를 잘 지킨다. 질서가 도덕이다. 실제로 예의에 있어서는 서양에 뒤떨어져 있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 모르면 금수가 아니냐? 그런데 지금 다 끊어져버렸다. 때문에 상제님께서 대운 대통을 내놓으시고 처방을 펴시고 잘 지키라 하신 것이다. <전경>에 여러 가지 말씀을 해 놓으셨는데, 전부 다가 이것이다. 인륜도덕 즉 근본을 알아서 행하고 지키고 실천해서 몸에 배도록 해서 나가면 이것을 도 닦는다, 도를 통한다 하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포덕해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인륜도덕이란 것이 참으로 어렵다. 말로는 쉽다. 밖의 사람들도 대순진리회에 들어가지 않고 그것만 알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어렵다. 대순진리회 도인들만이 그것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대운 대통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도인 아니고는 어렵다. 해석하기도 어렵다.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1991. 10. 30)
무엇보다도 남자, 여자라는 구분을 하고 언어에 있어 서로 존대하고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나가도록 하라. 그래야 밑의 사람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밖의 사람들도 배우게 된다. 밑의 도인들은 꼭 윗임원들이 하는 대로 한다. 그러므로 잘해야 한다. (1991. 12. 5)
우리도 해원상생의 원리에 의해서 수도해 나가는 것이다. 앉아서 주문 읽고 하는 것이 수도가 아니다. 일동일정에 있어서 도인으로서 잘 행동⋅처세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다. 예에 맞추어 나가면 어려울 게 없지만 행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목적하는 것이 맞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이 된다면 어려울 게 없다. (1992. 11. 17)
우리 도는 상생대도(相生大道)입니다. 상생(相生)은 조화(調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조화를 잃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단청을 함에 있어 열두 가지 색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룰 때 다채롭고 우아하게 보일 것입니다. 만일 어느 한 색이라도 튀어나와 보이면 다른 색들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수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체계 내에서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임원은 아래 사람을 애휼지도(愛恤指導)하고 아래 수반은 임원을 경례(敬禮)로써 섬기면 척이 없이 잘 닦게 되는 것입니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은 모든 사람을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이 존경입니다. 남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악(惡)을 선(善)으로 갚아 나가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이므로 해원상생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존경하게 되면 나도 존경을 받아 인망(人望)을 얻고 또한 신망(神望)을 얻게 되어 도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993. 2. 4)
성(誠)은 내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정성은 끝이 없어 무한하다. 경(敬)이란 것은 공경을 말한다. 몸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며 예절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다. 상제님에 대해, 부모에 대해, 위에 대해, 밑에 대해 몸으로 하는 것으로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1993. 4. 27)
항상 정성⋅공경⋅믿음, 이것을 실행해야 한다.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몸으로 경을 다해야 한다. 예에 적중하는 것, 이것이 경이다. 위, 아래, 동료들에게, 어른 앞에서, 애들 앞에서 예에 적중하게 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1993. 4. 27)
꿇어앉는다고 해서 예(禮)가 아니다. 예라고 하는 것은 알맞아야 하는 것이지, 거북스러울 때면 이미 예가 아니다. 습관이 되었다. 순감들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그러면 다 그런다. ‘내 앞에서는 내가 질색하니까 그러지 않지만, 완전히 습관이 돼서 그러는구나.’ 한다. 앉을 때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다리는 땅에 놓으면 편안하다. 그것을 앉을 때의 법좌(法座)로 생각하라. (1993. 6. 24)
사람 마음의 표현은 몸이다. 행동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자체는 몸뚱이다. 내 몸의 처신⋅행동에 있어서 법리에 합당하고 도리에 적중해야 한다. 비리(非理), 비례(非禮)의 허영에 망동치 않아야 한다. 이것이 안신이다. 몸으로 행동하는 것은 마음의 표현이니 예에 합당하고 의리에 적중해야 한다. 의리가 아니고 예가 아닌 것에 빠지지 말라.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야 수도가 된다. (1993. 6. 24)
사람 마음의 표현은 몸이다. 행동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표현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자체는 몸뚱이다. 내 몸의 처신⋅행동에 있어서 법리에 합당하고 도리에 적중해야 한다. 비리(非理), 비례(非禮)의 허영에 망동치 않아야 한다. 이것이 안신이다. 몸으로 행동하는 것은 마음의 표현이니 예에 합당하고 의리에 적중해야 한다. 의리가 아니고 예가 아닌 것에 빠지지 말라.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야 수도가 된다. (1993. 6. 24)
경(敬), 공경할 경 자인데 내 몸으로 하는 것이다. 마음이 실제로는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는 것은 마음에 있다. 말하자면 ‘이것을 한다, 저것을 한다’ 하는 것이 마음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성은 마음으로 하고, 경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경이란 마음으로 기운을 받아 움직이는 데서 예의에 적중케 알맞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상제님께 배례를 드린다면 절하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것인데, 마음에 있어야 움직이지 안 그러면 못 움직인다. 움직이는 데서도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한다. 움직이는 걸 보면 저 사람 정말 정성을 다해서 움직이는 것인가, 가면으로 움직이는 것인가 알 수 있다. 정성을 갖고 내 행동을 예에 적중하게 하는 것을 경이라 한다. (1993. 7. 11)
마음이 있어서 몸을 움직여 나가는 것을 예의에 적중하게 알맞게 행해 나가는 것이 경이다. (1993. 7. 11)
몸을 주관하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 예에 적중해서 알맞게 움직이는 것이 경이다. 정성, 즉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데에 예에 적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1993. 7. 11)
이제는 밖에 많이 알려졌으니까 밖의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한다. 참말로 본받을만한 종교라는 신임을 받아야 한다. 솔선수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보고서 들어오도록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제는 그 단계에 가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 아주 생활화해야 한다.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했으니 우리는 예의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함보다도 우리의 제일 기본이 그것이다. 상제님의 원 근본이 그것이다. 수도의 제일 기본이 예절이다. 예절이란 다른 게 아니다. 충효열, 삼강오륜이다. 간단하게 부모 섬길 줄 알고, 어른과 애를 알고, 서로 믿음을 갖고 지키는 것이다. 간단하다. 그것이 싫다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환경에 맞추어 적절하게 해나가는 것이 예의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기 간에 우의를, 친구 간에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밖의 사람들 대순진리회가 뭐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상 알아서 조상 섬기고 가정화목하고 그런 것이라고 대답하면 그러냐고 그러면서 좋게 보고 그것만 갖고도 포덕이 된다. 우리의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니다. 도세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포덕이다. 상제님의 덕화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항상 진리로써 사회에 신뢰받는 일을 해야 한다. 예절도 잘 지켜나가며 이것을 아주 생활화하여야 한다. 그러면 밖의 사람들이 ‘참말로 대순진리회가 좋구나.’ 하고 스스로 오게 된다. 예란 다른 게 아니다. 사람의 도리에 적중하고 합당하게 하는 것이다. (1993. 8. 13)
경(敬)은 위에도 아래에도 다 쓰는 것이다. 내 일신의 동작을 예의에 따라 모든 공경을 다하는 것이다. (1994.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