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神道)
* 신도(神道)란 인도(人道)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하느님과 천지신명의 도를 의미한다.
靈 = 神 = 道 = 我 = 靈 = Spirit = God = I Am
[상제님]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 (공사 1장 3절)
상제께서 오셔서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워
후천 선경을 열어놓으시고 신도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후에
인사를 조화하니 만민이 상제를
하느님으로 추앙하는 바가 되었도다. (예시 9절)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칙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라.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예시 73절)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니라.
천지신명이 모여 상제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 하므로 괴롭기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 (공사 1장 9절)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 (공사 3장 5절)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
(교운 1장 41절)
신명은 탐내어 부당한 자리에 앉거나
일들을 편벽되게 처사하는 자들의 덜미를 쳐서 물리치나니라.
자리를 탐내지 말며 편벽된 처사를 삼가고
덕을 닦기에 힘쓰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리라.
(교법 1장 29절)
이제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과 각 가정을 드나들면서 기국을 시험하리라.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여 가정에 화기를 잃으면
신명들이 비웃고 큰일을 맡기지 못할 기국이라 하여
서로 이끌고 떠나가리니 일에 뜻을 둔 자가
한시라도 어찌 감히 생각을 소홀히 하리오. (교법 1장 42절)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에 따라
그 사람의 임무를 감당할 신명의 호위를 받느니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자기 일에 해태한 마음을 품으면
나의 신명이 그에게 옮겨 가느니라. (교법 2장 17절)
속담에 “무척 잘 산다” 이르나니
이는 척이 없어야 잘 된다는 말이라.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짓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하나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
(교법 2장 44절)
나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사람에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리라. 그러므로 나는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자를 쓰리니 이는 비록 초목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게 되는 연고이니라. (교법 3장 1절)
천지에 신명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
(교법 3장 2절)
지금은 신명시대니 삼가 힘써 닦고 죄를 짓지 말라.
새 기운이 돌아 닥칠 때에 신명들이 불칼을 들고
죄지은 것을 밝히려 할 때에 죄지은 자는 정신을 잃으리라.
(교법 3장 5절)
조선과 같이 신명을 잘 대접하는 곳이 이 세상에 없도다.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제각기 소원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받들어 줄 것이므로 도인들은 천하사에만
아무 거리낌 없이 종사하게 되리라. (교법 3장 22절)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 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교법 3장 24절)
부디 마음을 부지런히 닦고 나를 깊이 생각하라.
(교법 3장 25절)
그리하여 상제께서 이 세상에 탄강하여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서
신명이 사람에게 드나들 수 있게 하시고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자들을 찾아 쓰고
모든 것에 운을 붙여 쓰기로 하셨도다.
이것은 삼계를 개조하기 위함이로다. (예시 7절)
[도주님]
사후와 신명계의 일은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설하는 것이
대동소이하나 본래 사람의 생사(生死)는
정신과 육체의 회산(會散)이니 사후에 육체에서 떠난 정신은
혼(魂), 백(魄)으로 나뉘고 이것이 생시에 쌓은
수도의 공덕에 따라 신(神), 귀(鬼)의 차등이 있으나
모두 신명계로 돌아가느니라.
그러나 이 신명의 주처(主處)는 곧 삼계니라.
또 극락과 지옥같은 일정한 처소에서
영구무궁한 것만은 아니니 사후에 지방신, 문명신 등이 되어
가장 높고 좋은 궁궐과 누각에서 향락하는 자도 있고,
악신(惡神), 적신(賊神), 무서신(無序神) 등이 되어
누추한 곳에서 신음하거나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되어
유리, 방황하는 자도 있느니라. 그러나 다시 닦음에 따라
상승도 하고 하락도 하며, 환생도 하고 전생(轉生)도 하느니라.
다만, 선천에는 그 질서가 바르지 못하여 신명계에도
착란과 원울이 있었으나 후천에는 모두 해원시키리라.
다시 말하거니와 신명계에서도 수도, 공부는
계속하여야 하느니 수도한 신명은 향상하되
원척을 풀지 못하고 악업을 자행하는 신은
더욱 아래로 내려가므로 생전에 대도를 믿고 닦은
상대신명(上臺神明)의 영화와 죄얼(罪孼)이 많은
척신의 재앙과 고생은 언어나 문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후 신명계의 복락은 생전에 상제님를 숭신(崇信)하고,
국가에 충성하며, 조상에의 봉사와 부모에의 효행을 힘쓰고,
형제와 일가친척, 이웃과 우애하며, 사회를 위한 일에
성ㆍ경ㆍ신을 다함으로써 얻으리라.
불신, 불충, 불효, 불성, 불경하여
살도(殺盜), 음탐(淫貪)으로 삶을 마친 자의 사후 참혹상은
인계의 생활로는 비교할 수 없이 처절하니라.
언어 습관을 삼가하여 ‘안 된다’느니 ‘죽는다’하는 말을
하지 말라. 망신살이 들어 기도의 효험도 없이
신명들이 모든 일을 말대로 되게 하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말로써 시비분쟁을 일으키고,
말로써 길흉화복을 자초하느니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산에 가서 산을 해치면 산과 척(慼)이 생기고,
물에 가서 물을 더럽히면 물과 척이 생기느니
해원(解冤)에 앞서 척을 짓지 말라.
등산, 임수자(臨水者)의 계잠(戒箴)이니라.
이처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척을 지어서는 아니 되거늘 하물며 신명과 인간에게랴?
결원(結冤)은 곧 작죄(作罪)니라.
신인조화(神人調化)는 우리 인간의 일거일동에
신명의 작용이 미치지 않음이 없으므로
신명과 인간이 조화(調和)되고 조화(造化)하여야
어천만사(於千萬事)가 형통자재(亨通自在)함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음ㆍ양이 합덕(合德)하지 않고
신ㆍ인이 조화(調化)하지 않으면
하루의 목숨도 지탱할 수 없음을 알라.
어떤 도인은 나보다도 제 소속 임원만을 믿고 따른다 하는데
도인은 도의 진리를 보고 믿어야 하고
사람을 보고 믿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도주인 나만 보고 믿어서도 아니 되거늘
하물며 임원만을 믿는다면 파당을 이루거나 분쟁을 일으켜
마침내 신명(身命)을 그르치리라.
너희는 그런 도인을 만들지 말라.
후천세계는 이미 구천상제님께서 천상신명과 인간계를
통투(通透)하셔서 짜놓으신 도수의 정(定)을 동(動)으로
작용시켜 지금도 당진(當進)하고 있되, 그 천기는
언제 어느 날이란 것을 말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숫자나 날짜 맞추기에 손가락을 꼽지 말라.
인위 조작이 되어 혹세의 근본이 되기 쉬우니라.
후천개벽의 큰 공사는 천지인 전체의 개벽이니,
이 또한 인간이 함부로 참견할 일이 아니니라.
다만, 천기에도 성사는 재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람이 죽으면 중천신(中天神) 또는 황천신(黃泉神)이 되나
시학(侍學)과 시법(侍法)을 마치면 죽더라도
선경의 신반(神班)에 참예하는 신명이 되느니라.
후천에는 청화명려(淸和明麗)한 유리세계(琉璃世界)이므로
인간과 신명이 조화하여 상합상통(相合相通)하고
구별 없이 살게 되느니라.
도인(盜人)을 비방하랴. 음인(淫人)을 매타(罵陀)하랴?
남의 말을 하지 말라.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
너희들 스스로의 심도(心盜), 심음(心淫)을
신명이 매타함을 두려워하라.
도인은 오직 무자기(無自欺)라야 하느니라.
[도전님]
상제께서는 “선천에서는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긋나서
인륜의 질서가 무너지고 마침내
망기군자무도(忘其君者無道)
망기부자무도(忘其父者無道)
망기사자무도(忘其師者無道)
세무충(世無忠) 세무효(世無孝) 세무열(世無烈)
시고천하개병(是故天下皆病)”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또 상제께서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지 않는다.” 하시고 “선령신(先靈神)을 부인하거나
박대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고,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이니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이니라.” 하시고
또 “모든 선령신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육십 년 동안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태어난 몸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헛되게 보낼 수 있으랴.”
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사람이 선령의 음덕으로
부모의 혈육을 받아 세상에 태어난 근본,
즉 출생 이전의 신계 선령 공덕까지도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은상생은 인도(人道)의
대의(大義)가 되며 대도(大道)가 되는 것입니다.
(1984. 6. 15)
우리 도장은 영대를 봉안하였으니
지상의 옥경(玉京)으로 도통진경의 성전(聖殿)이다.
그러니 이 성역(聖域) 내에서는 성경신의 극치가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거울 앞에서 얼굴을 곱게 다듬는데,
도인들은 도장에 출입할 제 무엇을 깨끗이 하고
영대에 참배하여야 하는가?
소망의 도통군자가 되고자 닦는 것은 신도(神道)인 까닭이요,
신도(神道)이므로 수심명덕(心修明德)을 힘써나가야
도성덕립(道成德立)이 될 것이다. (1985. 5. 17)
우리의 도가 신도(神道)이기 때문에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도수(度數)가 차면 천기자동(天氣自動)에
의해 말을 하게 됩니다. 생각이 나고, 예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천기자동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일지라도
그 말은 하늘이 시켜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1986. 10. 28)
우리 일은 신도(神道)이며 천기자동(天機自動)으로
다 알아진다. 하늘의 뜻을 수반도 안다.
수반도 도의 흐름을 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고
천지신명이 베풀어주시는 도움을 도인들은 다 받고 있다.
우리 일이란 전부가 신명의 일이다. 모든 일을 할 때는
하늘의 뜻, 즉 상대의 뜻을 듣고 그 의사에 맞추면
절대 불평이 없다. 여러 사람의 의사를 들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천기자동으로 움직여져서
다 만들어진다. 다 나오게 된다. 여러 사람의 기국에
따라서 생각이 다 틀리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1989. 2. 10)
상대방을 단순히 사람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은 신명의 일이고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인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 기국과 생각이 다르므로
많은 사람에게 물어야 많은 기운을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천운에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1989. 3. 17)
도를 닦을 때 화액(禍厄)이 오면
잘못 믿어서가 아니라 잘 믿어서다. 겁액을 푸는 것이다.
내가 당하면 풀리는 게 있고,
심한 경우에는 받아서 죽을 수도 있다.
죽지만 내가 풀리는 것이다.
신으로 받으나 인간으로 받으나 똑같다.
생명을 요구할 정도로 그렇게 받아야 풀리는 것이다.
복수를 당하면 척이 풀린다. 신명으로는 해원인 것이다.
그러니 복수를 당한다 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나중에 도통이란 것은 신명인사일반(神明人事一般)이다.
신도 운수를 받는다. 도를 닦다 죽더라도 운수를 받는다.
(1991. 5. 14)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이다.
신이 응해 있어 다르다. 그래서 수도의 과정을
밟고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되어가는 것이다.
천지가 열릴 때에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
그것을 운기(運機)라고 한다.
운기란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이
천지가 시작될 때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운기가 돌아가는 것을 천지도수(天地度數)라 한다.
운, 운기, 도수는 천지가 생긴 처음부터
벌써 완전히 정해져 겪고 나가는 과정이다.
사람이 머릿속으로 무엇을 생각한다 해도
진리 밖에 있는 것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리 안에 있는 것이면 나와진다.
천기자동(天機自動)으로 움직인다.
뭔가 나오려면 사람한테 생각되어져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다 천지 안에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생각이 나오질 않는다.
우리 대순의 도는
상제님께서 근래에 오셔서 만드신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이 시대에 상제님께서
인세(人世)에 오시고 대순진리회가 생겨서
발전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도주님께서 화천하신 후 파란곡절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부산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도수인 것이다.
내가 계속 거기에 있었으면 대순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중곡동 도장이 내가 아니면 안 된다.
그것을 도수, 운로(運路)라 한다.
운에 박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여주에 도장을 짓는 것도 천지도수다.
이것은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안 하려고 한다고 안 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중곡동 도장과 여주 수도장은
천지의 조판 이후 짜여진 천지도수이다.
어느 때가 되면 대순진리회에서
중곡동과 여주에 도장을 짓는다는 것이 정해져 있다.
(1991. 9. 28)
닦는다는 게 앉아서 태을주 읽고 주문 읽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다. 물론 신도(神道)이니 주문을 읽으면
신명이 응한다. 신명이 계시기 때문에 주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다는 것은 운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잘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그 조건의 근본이
인륜도덕이다. (1991. 10. 30)
“무척 잘 산다.”고 하지 않느냐? 척이 없어야 잘 된다.
우리가 제일 경계할 것이 척이다.
남에게 척 짓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척을 지으면 운수도 없고 도통도 없다.
명심해라.
<전경>에도 인망(人望)을 얻어야 신망(神望)을 얻는다고 했다.
신망보다는 인망이 크다.
사람들이 저 사람 참 훌륭하다고 하면 신명계도 그렇게 된다.
신도 착한 신과 나쁜 신이 있는데,
좋게 평이 나면 좋은 신이 오고
나쁘게 평이 나면 나쁜 신이 응한다.
척을 맺으면 나쁜 신이 응하여 막히게 된다. (1992. 2. 8)
도장에 있는 신명하고 밖에 있는 잡신하고 완전히 다르다.
사람이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사람됨이 좋고
저 사람은 어떻고 하듯이 신도 마찬가지다.
도장에 신명이 있고 저 밖에도 신이 있다.
귀신도 있다. 교회나 절에도 거기 나름대로 신이 있다.
우리 도장의 신명들과 그 신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내가 추측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다.
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안다. (1992. 3. 18)
‘신목여전(神目如電)하니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라.’고 했다.
사정(邪正)의 감정(鑑定)을 번갯불에 붙인다고 하셨는데,
신명의 눈은 번갯불보다 더 빠르다.
암실기심은 어두운 방에서도 속이지 말라는 것인데,
남이 모른다고 해서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절대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
도인들 앞에는 한 분씩 신명이 다 따라붙어 있다.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믿지 않으니 속이는 것이다.
우리 도는 신도이다.
신이 심판을 하고,
신으로부터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는다.
사람이 많아서 남는 법은 없다.
전 세계 사람이 다 와도 모자란다. 잘하면 다 받는다.
신의 눈은 번갯불과 같다고 했는데
나는 번갯불보다 빠르다고 했다. 오고 가는 것도 그렇다.
우리 공부는 남 잘되게 하는 공부이다.
다른 종교는 공부를 하고 기원을 해도
자기를 위해서 하고 자기에 국한하지만, 우
리는 몇 사람이 공부해도 전국 방방곡곡
도인 모두가 똑같이 (기운을) 받는다.
전국 어디서나 믿으면 기운이 가고 안 믿으면 안 간다.
<전경>에 너희가 믿음을 주어야
내가 믿음을 주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믿는 자에게는 가고, 안 믿는 자에게는 안 간다.
믿는 자는 받고 안 믿는 자는 못 받는다.
그냥 그런 것이 아니고 실지 그렇다.
실제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다. (1992. 5. 31)
우리 도는 신명의 도다.
순감들이 잠을 100일 안자고서
신명, 신도의 신비를 얻은 것이다.
가령 간이나 폐가 없다 하면,
있게 해달라고 하면 나온다.
없는 것이 새로 생겨나오는데,
신비 정도 갖고는 안 된다. (1993. 7. 11)
우리의 수도가 거기까지 갔다.
사람으로서는 이해 못 하니 신명의 일이다.
신명이 아니면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도(道)가 신(神)이고 신이 도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을 믿는 것이다.
신이 도고 도가 신이니, 우리는 신을 믿는다.
정신을 집중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 도가 신도(神道)인 것이다. 즉 신명의 도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조금도 속이지 못한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모든 게 똑같다. 늘 얘기하는 것이다. (1993. 11. 4)
우리가 믿는 것은 신을 믿는 것이다.
우리 도인이 진리에 입각해서 믿고 행해 나가는데,
믿는다는 것은 신을 믿는 것이다.
신이 도고 도가 신명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신명을 믿으면 신명 앞에서는
조금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1993.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