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에 “훼동도자(毁東道者)는 무동거지로(無東去之路)하고 훼서도자(毁西道者)는 무서거지로(無西去之路)하니라.”(교법 2장 30절) 하셨으니, 남의 종교를 헐뜯지 말고 자기의 수도에만 열중하여야 자기 성공이 되리라는 뜻이다. 남의 종교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비방이 되어 상극을 자초함이며 척을 짓는 것이므로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가 되지 못함이다. (1984. 4. 9)
<전경>에 “우리 공부는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이다. 남이 잘되고 남은 복(福)만 차지하여도 된다.”(교법 1장 2절)고 하셨으니, 우리 도인들은 사업이 덕을 베푸는 일임을 알고 시시(時時)로 성찰하여야 한다. 우선 가정의 화목이 이웃과의 친화(親和)의 발판이 되고 나아가서는 복지사회를 이룩하게 되므로 매사에 작고 큰 것을 가리지 말고 꾸준한 노력만이 대성(大成)하게 되는 것이다. (1985. 3. 16)
수도는 미래를 위한 나의 전진이니 무자기(無自欺)를 옥조(玉條)로 하므로 날조가 있을 수 없다. 항상 대화 소통의 광장을 만들어 보화(普化) 성역(聖域)에 동참함을 보는 듯이 전진(前進)에 박차를 더 힘차게 가함이 신념이다. 모든 종교가 운운하는 부활론이 그 신자들의 소망관인데 만일 부활이 없다고 하는 신자라면 그는 신념을 세우지 못한 신심(信心)의 발로(發露)를 보여줌이니, 우리 임원과 도인은 전경과 나의 훈시 내용의 요의(要義)를 바르게 이해⋅체득하여 촌각이라도 허비 없이 정진하여 성도(成道)의 도력을 얻도록 선도(先導)하는 교화에 충정(忠情)을 다하며, 남 잘 되게 하는 공부의 선구자가 될 임무를 완수하여야 할 것이다. (1985. 4. 13)
거짓이란 ①위세를 부려 지위를 노리는 것, ②자존(自尊)으로 남을 멸시하는 것, ③공리(功利)를 과장하기 위하여 자기 사람을 만들기에 힘쓰는 것, ④허물을 은폐하기 위하여 아첨하는 것 등이니, 이러한 일을 시행하는 자는 허구심(虛構心)에 여념이 없는 법이다. 끝내는 외로워지고 고독이 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니, 이 모두가 과부족을 반성하지 않은 까닭이다.
전경에 ‘우리 일은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이니라’(교법 1장 2절) 하셨으니, 이상의 네 가지 예를 든 것은 사람으로서 범하기 쉬운 몇 가지이므로, 임원들은 항상 현실에서 당래(當來)의 복을 목적으로 닦아 나가는 우리 도인들을 대순의 도인으로 교화 육성하여, 진리 도통의 목적 달성에 부족함이 없도록 책임을 다하여 나가기를 명심불망(銘心不忘)하여야 한다. (1985. 10. 19)
화목이란 서로의 뜻이 상통(相通)하고 정답다는 것입니다. 화목함으로써 인망(人望)을 얻게 되고, 덕망(德望)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뱀도 인망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교법 1장 26절) 인망을 얻어야 신망에도 오를 수 있으니 인망과 신망(神望)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언덕(言德)을 잘 가져 남을 잘 되게 하여야 하며, 쓸데없이 하고 버리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인망을 잃으면 신망도 잃게 됩니다. 모든 일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자신이 알고 신명이 아는 것입니다. 융화 단결해야 커다란 힘이 나옴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1986. 10. 28)
길 가다가 사람이 넘어졌는데 외인(外人)이라고 그냥 놔두고 오면 잘못된 것이다. 인륜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웃을 나보다 더 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첫째가 이웃 간 화합이다. 어려운 것은 서로 도와주고 상부상조해야 한다. 그래야 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혼자서는 못산다. 이웃 간에 서로가 서로를 붙들고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상대방이 나쁘다 해도 사람은 몰라도 신은 안다.
우린 다른 게 아니다. 지금은 우리한테 있는 영(靈)이 욕심에 다 차 있어서 모르는데, 그게 다 벗겨지고 깨끗해지면 그것이 도통이다. 모든 것을 잘해 나가는 것은 모두 남을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 그러는 것이다. 그것이 없어져야 한다. 그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 도가 좋다는 것을 알고 도통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나보다 남을 위해야 한다.
올해는 가정화목, 이웃화합을 신조로 하여 사회에 남을 위한 일을 해나가야 한다. 사회봉사와 남을 위한 일에 내 몸을 아끼지 말고 헌신한다면, 덕화 선양이 되고 사업이 발전한다. 이것이 수도의 근본이니, 이것만 잘 알고 지켜나가면 된다. 이것으로 운수 받고 도통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1992. 2. 8)
혼자는 못하는 것이다. 나 혼자 못하니까 서로 이해 못 하면 안 된다. 혼자 있다가 도통 받을 것 같으면 종단이라 할 게 없다. 혼자는 안 된다. 혼자 믿어서 되는 법은 없다. 우리 종단에 여러 방면, 여러 사람이 있어서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협력하니까 큰 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니면 이루지 못한다. 도통도 그렇다. 여러 자리가 다 들어서야 되는 것이지, 그 숫자대로 들어서지 못하면 안 된다. 집을 짓는 것도 그렇다. 여러 가지가 합해져야 집이 되는 것인데, 나무 조각 하나만 갖다 놓으면 그냥 나무 조각일 뿐이다. 혼자는 못한다. 찰 것이 다 차야 한다. 도장을 건설하고 집을 짓고 하는 것도 숫자가 맞춰져야 한다. 여럿이 많은 힘을 합해서 이루어야 한다. 더구나 우리 도는 다 차야 한다. 상제님께서 도수를 보시는 것도 숫자가 맞아야 보시는 것이지, 안 맞으면 못 보신다. (1992. 2. 8)
척을 없애 화합 단결을 이루는 데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해주고 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내가 운수를 받을 수 있음은 나의 공덕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더욱더 큰 힘은 많은 수도인의 노력과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1992. 2. 10)
이웃과 화합(和合)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인식하고 그들과 상호 힘을 합쳐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며 우리 도인들은 솔선수범하여 봉사함으로써 이웃과 화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웃과 화합하고 봉사하여 그들을 잘 되게 해줄 때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게 되며 그 공이 나에게 돌아와 결국 내가 잘 되게 됩니다.
솔선수범하여 봉사하는 데는 해원상생에 맞는 올바른 처신 처사로써 남을 위해서는 내 몸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포덕(布德)은 이와 같은 도인들의 처신 처사에 달려있습니다.
옛말에 “가는 정(情)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과 같이 내가 먼저 남에게 솔선수범하여 봉사함으로써 맺혔던 척이 풀리고 이웃의 따뜻한 정이 있게 되며 나중에는 그들도 상제님의 대순진리에 관심을 갖게 되어 대순진리회를 찾게 됩니다.
또한, “남이 나의 뺨을 때리면 그 손을 어루만져 주라.”는 말씀도 있듯이 우리 도인들은 타인에 대해 해원상생의 진리로 이해하는 생활태도를 간직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먼저 척을 풀고 상대방에게 솔선수범하여 봉사함으로써 상호 간의 모든 일이 해원상생과 보은상생과 진리를 따라 이해와 화합 속에서 해결되게 되어 상제님의 대순진리가 사회 각계각층에 전해집니다. 그리고 대진대학을 설립하여 세계를 향해 도약하는 대순진리회의 위상(位相)은 점차 높아져 포덕천하(布德天下)를 이루게 하는 큰 힘이 됩니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대 종단으로 발전한 우리 대순진리회에 대해 사회 모든 사람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도인 여러분은 이와 같은 상황을 인식하여 나의 언행(言行) 하나하나가 종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도인은 위의 내용을 명심하여 어느 곳에서든 남을 위해 나를 아끼지 않는 자세로 성ㆍ경ㆍ신을 다해 대순진리를 생활화하고 전 세계에 선양하여 운수와 도통을 받을 수 있는 성숙한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992. 2. 10)
늘 강조하지만, 임원들인 선⋅교감들이 잘해야 밑의 수반들이 따라서 잘한다. 도인들이 봐도 배울 것이 없고, 밖의 사람들이 봐도 도인다운 점을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니 먼저 우리끼리 서로 아끼고 귀중하게 생각하며 존중해 나가야 한다.
도인이라면 서로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가정집에서도 안 그렇다. 자식이라도 다 큰 애를 부모가 손찌검하면 안 받아준다. 동기간에는 더 그렇다. 우리는 윗사람은 밑의 사람을 고맙게 생각하고 밑의 사람도 윗사람을 고맙게 생각해서 서로 믿는 마음에서 받아주는 것이다. 당하면서도 ‘나를 사람 되라고 그러는 것이겠지’ 하고 고맙게 생각하여 이해하면 괜찮지만,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수도하는 정신이 많이 소모된다. 우리에게는 큰 퇴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동일정, 모든 행동 처사가 다 수도라는 것을 명심하고 나가야 된다.
옛날에 왕가(王家)에서 아들 형제를 여럿 낳게 되면, 종손은 세자, 그다음 형제들은 대군이라 했는데,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왕자는 어린애라도 절을 했다. 임금의 아들이라도 서로 형제 동기간이면서도 반말을 못 했다. 형제지간이라도 말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못했다. 자기 동생이라도 “이놈의 자식” 하고 함부로 못 했다. 모두가 지존 지엄한 임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동생이라도 하대하고 손을 못 대었다. 아버지가 지존의 자리에서 보고 있고 다 같은 왕의 자식이니 서로 함부로 못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보다 못하냐 하면 더하다. 우리는 모두 상제님의 도인이니 그것보다 더하다. 일국의 왕가도 그러한데 우리도 서로 귀중하게 생각하고 말 한마디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 수도의 중요한 점이 거기에 있다. 서로가 그것을 잊지 말라.
귀중하게 생각하면 서로가 존중하는 것이다. 일개 왕가에다 비유했는데, 상제님은 하늘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니 왕가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몇천, 몇만 배 지존 지엄하신 상제님의 도인이다. 그러니 도인들을 아주 금싸라기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지켜나가는 것이 수도이다. 주문만 읽는다고 그게 수도가 아니다. 내 마음을 깨끗이 닦는 그게 곧 수도인 것이다. 깨끗하게 닦으면 통한다. (1992. 12. 28)
우리는 항상 밖의 사람이거나 도인이거나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이거나 다 존경해야 한다. 그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존경하라고 해서 허리를 굽혀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경(敬)이란 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나도 중하게 여기고 남도 중하게 여겨라. 다른 곳에서는 “남을 사랑하라.” 했지만, 우리는 “남을 존경하라.”고 한다. 상대방을 존경하면 상대방이 이쪽을 나쁘게 안 한다. 악을 선으로 갚아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를 피로 씻는 것과 같다.(교법 1장 34절)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남을 존경해야 한다.
우리의 근본원리가 해원상생이다. 우리의 도는 상생대도이다. 그러므로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지도자의 입장인 선각 임원과 후각 입장인 밑의 수반 간에 서로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운수를 받는다. 이것이 우리의 해원상생 원리이다. 우리의 운수, 도통도 바로 그 원리에 있다. 그래서 서로 상생의 조화가 안 되면 없어져 버린다. 가령 단청 색깔을 보자. 색깔이 하나 빠지면 색이 다 죽는다. 남은 죽는데 자기는 살 수 있는가? 남을 죽이고 자기도 못산다! 색깔 하나가 툭 튀어나오면 다른 것도 죽는다. 그러면 밖에서 보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그 색깔을 죽여 버린다. 우리는 상생대도다. 서로가 같이 살아야 한다. 가령 임원과 수반이 있다면, 임원이 수반을 잘 못되게 하고 자기가 잘 될 수 없다. 임원이 밑에 도인을 잘 되게 지도해놔야 잘 되는 것이다. 조화다. 모든 것이 그렇다. 색상 하나도 그렇다. 상생이 아니면 안 된다. 임원도 밑의 사람이 잘 되면 잘 지도했다는 그 공로로 운수 받는 것이다. 밑의 사람을 죽여 놨으면 자기도 운수를 받지 말아야지! 상생대도이다. 해원은 상생이 없으면 안 된다. 해원이 없고 상생이 있을 수 없다. 아래 도인들을 잘 인도하여 잘 가르쳐 운수를 받게 하는 것이 임원의 책무인데, 위압감을 주면 원망이 생겨 척만 남고 그러므로 상생이 안 된다. 말로써 잘 알아듣도록 얘기해주면 아랫사람이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버스 색을 봐라.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다. 누런색에 붉은색, 파란색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면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든다. 누구든지 보면 버스 색이 참 좋다고 한다. 단청도 그렇다. 열두 색이 서로 잘 조화되어야 열두 색이 다 살아난다. 하나가 죽으면 다 죽어버리고 어느 하나가 우뚝 살아버리면 다른 것이 다 죽는다. 이것을 잘 알아두어라. 해원상생이다.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되고, 상생이 되어야 해원이 된다.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감사하다는 그 마음을 가지면 된다. 해원이 아니고는 상생이 있을 수 없고, 상생이 아니고는 해원이 있을 수 없다. (1993. 1. 28)
우리 공부는 남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 항상 상대를 위해주고 잘 보살펴주어 척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척신이 난동하면 도통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깊이 명심하여야 합니다. “무척 잘 산다.”는 말과 같이 척이 없어야 상대는 물론 나도 그 공덕으로 도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도는 상생대도(相生大道)입니다. 상생(相生)은 조화(調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조화를 잃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단청을 함에 있어 열두 가지 색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룰 때 다채롭고 우아하게 보일 것입니다. 만일 어느 한 색이라도 튀어나와 보이면 다른 색들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수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체계 내에서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임원은 아래 사람을 애휼 지도(愛恤指導)하고 아래 수반은 임원을 경례(敬禮)로써 섬기면 척이 없이 잘 닦게 되는 것입니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은 모든 사람을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이 존경입니다. 남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악(惡)을 선(善)으로 갚아 나가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이므로 해원상생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존경하게 되면 나도 존경을 받아 인망(人望)을 얻고 또한 신망(神望)을 얻게 되어 도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993. 2. 4)
“남을 잘 되게 하라”, 나보다도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광제창생의 이념이고, 해원상생의 기본원리이다. 수도가 다른 게 아니라 이게 수도다. 이것을 잘 지키고 실행함으로 해서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는다.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다. 참으로 몸에 푹 배어야 한다. 도통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려울 게 없다. (1993. 5. 28)
도인의 성금을 받아서 우리의 종단을 경영하는 데 쓰고, 밖에 사회를 위해 일을 한다. 종교라는 것은 원래 첫째가 난민구제, 쉽게 말해 죽어가는 사람 살리고, 배울 수 있는 사람 배우게 해주고, 남을 잘 되게 해주는 것이다. 둘째가 진리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배운다는 것인데, 글공부는 아니다. 학교를 짓는 것은 도를 위해서이고, 없는 사람을 구제해 주는 것이다. 남을 구제해 준다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사회복지사업으로 양로원 등을 운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종단을 위해야 한다. 종단을 위한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다. 종단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천하포덕, 세계 사람을 도를 알게 해서 세상을 다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책무다. 사회를 위해서 쓸 때는 항상 종단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이다. 양로원을 짓고자 하는 것도 빈민구제의 일환이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 종단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도인의 성금을 아무렇게나 쓸 수도 없고, 또 써서도 안 된다. 사회에 남을 위해 썼다 하면 그것은 곧 종단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기독교가 했던 것이 병원 지어서 어려운 사람 구해주고 했던 것인데, 그 교세를 확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우리 종단은 세상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사업을 한다. 사업이라는 것은 포덕사업이다. 우리가 교세를 확장시키는 것이 포덕이다. 그게 잘 되기 위해서는 학교를 세우는 것이 제일 낫겠다 싶다. 처음에는 양로원을 계획했는데 까다로워 잘 안되었다. 그래서 학교를 하기로 했다. 사회 명목도 서고…. 학교를 세우면 다른 것보다 빨리 도가 알려진다. 그렇다고 그런 뜻을 갖고 뭐한다 해서 잘못될 것은 없다. 고등학교의 경우, 두 군데 허가가 났다. 곧 시작할 거다. 병원은 후년에 할 것이다. 동두천에 세우는데, 그곳에 의대를 세우려 한다. 뭐 하나 계획을 세워놓으면 ‘될 것이면 될 거고 안 될 것이면 안 될 거다.’라고 마음을 여유 있게 갖는다. 그게 목적이 아니니까.
내 일이 그렇다. 한다면 하고 꼭 끝내지,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다. 포천 대학교 모든 게 순조로웠다. 다른 데서 했으면 사람들이 많이 상했다. 다른 데는 비가 와도 현장은 비가 안 오는 경우를 여러분도 많이 봤다. 산지(山地)이고 규모가 큰 곳이라 대형사고가 날 수 있는 곳이었는데도 사고가 없었다. 제주도 도장을 지을 때도 그랬다. 우리가 어디 가거나 공사할 때 경험해서 알겠지만, 하느님이 마음대로 하는 것 같다. 하늘이 응해 준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도 그런 소문을 많이 듣고, 또 그렇게 보기도 한다.
우리 종단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학교 짓는 것이 제일 빠른 것 같다. 고등학교만 할 게 아니라 2년제 전문대학이 좋은 것 같아 터를 계약해 놓았다. 자리도 좋고 터도 좋다. 위치가 좋다. 병원⋅학교 자리도, 위치도 좋다. 터가 그렇다. 지금 당장 포천 대학은 종합대학이다. 돈만 많으면 된다. 우리는 도인도 많고 하니 크게 힘들 게 없다. 해서 안 될 것 같으면 안 된다. 될 거면 맘만 먹으면 금세 된다. 포천 대학은 거기가 수도권으로 들어간다. 다른 대학은 못 들어온다. 종합대학이라야 된다. 서울 이북에 종합대학은 못 들어온다. 대진대학만 된다. 학교 땅이 나왔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거기도 자리가 좋다. 될 것이면 되고, 안 될 것이면 안 되는 것이다.
병원부지도 참 좋다. 8군단 군수기지로 그린벨트에 묶여 있는 것이 800만 평 된다. 정부도 마음대로 못한다. 그것이 안 풀리면 병원을 못 짓는데, 우리가 4만 평을 샀더니 거기만 풀렸다. 우리의 일이 그렇다. (1993. 10. 3)
잘 되게 해주려고 한다면서 그냥 다니면 안 된다. 그 사람의 심리 그것을 잘 알아야 한다. 그 심리를 맞춰줄 줄 알아야 한다. 말 몇 마디, 행동하는 것 보면 금방 알지 않아? 보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 그 심리를 잘 알아서 잘 맞춰줘야 한다.
어릴 때 아버지와 자식보다도 어머니와 자식 사이가 제일 가깝다. 아버지는 어렵다. 임원과 밑의 도인들 사이가 어머니와 자식과 같은 사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어릴 때 모자지정(母子之情)인 것처럼, 임원에게 어떠한 어려움도 얘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인이 그 위의 임원에게 어렵지 않고 무엇이든지 물을 수 있게 만들어 가야 한다.
권위로 하면 안 된다. 나는 임원인데 하는 권위를 버려야 한다. 잘 모르던 도인도 나중에 알게 되면 저절로 잘하게 된다. 내가 잘하면 “우리 선사, 우리 선감” 하면서 저절로 잘 받들어진다. 우리 도인 사이는 부모 자식 간의 천륜, 그보다 더한 것이다. 부모는 못 믿어도 임원 상호 간에는 더 믿는다. 어머니⋅아버지보다도 사이가 더 가까운 것이다. 도인은 서로 믿어야 한다. 안 그러면 안 된다.
임원이 권위나 세우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늘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임원이 권위만 세우면 안 된다. 늘 내 권위만 생각하고 그러면 안 된다. 임원이면 저 밑의 수반들에게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애정보다 더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 (1994. 9. 2)
포덕이라는 것이 그렇다. 남을 잘 되게 하려고 노심초사하잖아? 그러면 된다. 포덕시키려고 하는 데는 잘 되는 경우도 있고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목적한 바를 이루고 소원을 성취하려면 포덕을 해야 한다. 그것을 명심해요. 도를 잘 믿는다고 해봤자, 그것으론 안 된다. 나의 처신, 책무만 잘하면 된다. 임원의 본분은 뭐고 책무는 뭐고, 평도인의 책무는 뭐다는 것을 잘 알아서, 거기에 내 정성, 내 힘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틀림없다. (1995.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