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께서는 언덕(言德)을 잘 가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남을 비방하거나 시비를 말함이 곧 척을 짓는 원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화(禍)와 복(福)은 언제나 나 자신의 언행에 의해 일어난다는 원칙을 우리는 올바르게 깨우쳐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983. 7. 25)
<전경>에 “훼동도자(毁東道者)는 무동거지로(無東去之路)하고 훼서도자(毁西道者)는 무서거지로(無西去之路)하니라.”(교법 2장 30절) 하셨으니, 남의 종교를 헐뜯지 말고 자기의 수도에만 열중하여야 자기 성공이 되리라는 뜻이다. 남의 종교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비방이 되어 상극을 자초함이며 척을 짓는 것이므로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가 되지 못함이다. (1984. 4. 9)
인간은 자기 도량(度量)에 따라 기획하는 설계가 의욕으로 발동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즉, 기획과 설계의 행동이 의욕적인 발동인데 이 인간의 의욕이란 한이 없어서 허영과 야망으로 넘쳐 허황된 꿈으로 사라지기 쉬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허황된 꿈으로 화하면 드디어 실망과 후회는 물론 자기도 남도 원망하게 되어 한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허욕이 발동하는 것을 반성하고 조정하여 수심연성(修心煉性)으로 허영과 야망을 경계하고 자기 분수에 합당케 하여 후회 없이 하는 것이 해원(解冤)의 요체(要諦)입니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서로가 분수를 망각하고 허영과 야망으로만 일관하게 되면 급기야는 피해를 입게 되어 원망이란 척(慼)이 생겨 풀지 못할 원한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남에게 해독을 끼치거나 언덕을 베풀지 않는 것 등이 모두 척을 짓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상제께서 “속담에 ‘무척 잘 산다.’라고 이르나니 척이 없어야 잘 산다는 말이니라. 남에게 원억(冤抑)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나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신명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교법 2장 44절) 등등의 말씀은 해원상생의 일상 윤리를 생활화하여 실천토록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실천 윤리가 바로 상생의 화평 세계를 건설해나가는 윤리인 것입니다. (1984. 6. 15)
포덕을 많이 하고 유공을 세웠다고 하여 잘되는 것이 아니다. 무척(無慼)이면 잘 산다고 하였다. 척을 짓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삼마(三魔)가 있다. 인마(人魔), 재마(財魔), 신마(神魔)가 있으니, 이 세 가지 마가 전부 척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척을 풀어나가라.
가정불화가 큰 문제다. 가정불화에서 오는 척이 또한 무섭다. 특히 도인들은 척을 풀어나가면서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며 다가오는 운수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령 가정불화로 본가(本家)에서 기도를 못 드린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본부에서 수련을 하고 있으니, 자신이 부득이 기도를 못 모실 때는 심중에 죄송함을 느끼며 항상 도인의 본분을 잊지 말라. 본부의 수련 기운을 전국 도인들은 똑같이 받고 있다. (1984. 9. 12)
척을 맺어놓고 풀지 않으면 맺은 사람이 척신의 화를 먼저 당하는 법이니, 이런 일을 가볍게 생각할 때가 아니다. 혹 연운을 운운하며 도인을 미혹케 만드는 비루한 고의를 품는다면 처음은 스스로 괴로움을 이겨나가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지나친 오해로 배사율(背師律)도 범하게 되고 도인 상호 간도 본의 아닌 불화까지 생김을 생각하여 허물을 벗는 도인이 되어야 한다. (1985. 5. 17)
척을 풀어 되풀이되는 일이 없어야 화합의 길이다. <전경>에 척을 맺으면 직보(直報)가 있기도 하고 우회보(迂廻報)가 있다 하셨으니 과보(果報)의 섭리를 깨닫는 임원이 되라. (1986. 2. 14)
남의 잘못이 있을 때, 같이 어울려서 시비하면 같은 사람이 되며, 그것이 바로 척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 도리만 다하면 된다. 어느 사람이 누구를 미워한다고 해서 내가 따라서 미워할 필요가 없다. 같이 미워하면 끝이 좋지 않다. (1986. 2. 20)
화합 화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 간에 척이 없어야 합니다. 시속에 “무척 잘 산다.”, “무척 좋다.”고 이르는 것은 척이 없어야 잘 살고 좋다는 말입니다. 남과 척이 맺혀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때 가로막히는 어려움이 따르므로 가려고 하는 길을 곧장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남과 맺혀 있던 척을 모두 풀어야 함은 물론이요, 앞으로도 척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척(慼)이란 남이 나에게 갖는 서운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 서운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화합하고 화목하게 지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 상호 간에 자기의 도리를 다하면 화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할 때 가정의 화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히 도인들 사이에 화목하여 화합이 잘 되면 그 기운이 가정을 통하여 사회에까지 미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도인들끼리 화합하는 이 마음이 커져 이웃에게 미치고 이웃끼리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줌으로써 척이 풀어지고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것이 뻗어 나가 국가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며 나아가 세계로 뻗어 나갈 때 상제님의 덕화가 온 누리에 골고루 퍼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도인마다 상생윤리를 실천하여 생활화함으로써 포덕천하가 이룩되어 우리가 바라는 지상선경이 빨리 성취되리라 믿습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가 믿는 종교가 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을 이방인 취급하거나 백안시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도인들은 절대로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들과 더욱 화목하고 화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친절히 대하며, 상대방을 존경할 줄 알며, 자기 자신이 겸손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1986. 4. 14)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먼저 척을 짓지 아니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이다. 남을 정면 또는 후면에서 헐뜯어서 중상하고 모략⋅음해 등으로 척을 맺어놓고 풀지 않았으면 사후(死後)에 그 보가(報價)를 받게 되는데 이는 척이 독약과 같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덕을 행하여 나가면 자애와 은혜가 베풀어지나니 은혜를 베푸는 데서 사람이 따르고 모이는 이치를 깨달아라. (1986. 9. 28)
척(慼)은 나의 잘못에서 나온다. 우리는 운수를 바라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척을 짓지 말아야 한다.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을 수 있게끔 갖추어야 한다. 도가 무엇인가 하면 경위다. 경위가 어긋나면 안 된다. 경위가 밝아야 옷감이 잘 짜인다. 경위란 쉽게 말해서 도리다.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인격을 갖추었다고 한다. 인격을 갖추어라.
인마(人魔), 신마(身魔), 심마(心魔) 이것이 척이다. 상대방의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척이다. 이것을 푸는 것이 공부다. 공부와 입도해서 수도해 나가는 과정이 다 똑같다. 공부⋅수도도 척신(慼神)하고의 싸움이다. 21일 동안 척신이 내 마음에, 또 내 몸에 붙어 싸움을 한다. 싸움이 끝나면 밝아진다. 이렇게 되어야 도통이 된다. 척신하고의 싸움은 남과 맺은 척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가 수도해 나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도를 닦아 나가는 데 일이 잘되고 안 되는 것은 척신의 장난이다. 이러하니 일을 할 때는 가려서 하고, 좋은 것만을 취해서 운수대통을 받도록 하라. 척신한테 이기는 것은 참는 것이다. (1988. 2. 29)
화합하여 융화 단결하여야 한다. 서로 간에 다툼과 좋지 않은 마음을 가졌으면 공부할 때 그 모두가 재현된다. 불화는 감정의 척을 짓는 씨앗이니 화목하라. (1988. 12. 5)
교화하는 데 제1 방법으로 할 것도 화합이다. 화합이 안 되게, 도통하지 못하게 철저히 말리는 것은 척(慼)이다. 언제나 그렇다.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면 안 된다. 임원들한테 많다. 그러면 불평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 (1989. 1. 12)
금년에는 화합 단결이 되어 일심동체(一心同體), 한마음 한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금년의 목표다. 화합 단결, 동심일체로 나아가자. 모든 것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금년에는 이것을 꼭 이루도록 하자. 도통도 화합이 잘되는 데서 이루어진다.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데서 화합이 되지 않고 사심(私心)이 동하며 척신(慼神)이 따라붙는다. 그러면 도통을 받는 데 큰 방해가 된다. 화합 단결하여 한 몸뚱이가 되어라.
도인은 화합해야 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도인들을 화합시키는 것이 또한 제일 어렵다. 누가 어떻고 이렇고 하는 말을 퍼뜨려 임원과 도인들 사이를 벌려놓는데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을 없게 만드는 것이 도인이다. 원래의 태생대로 성품과 성격에 따라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고, 실수로 하는 사람이 있고, 또 서로가 손잡고 하는 경우도 있다. 태생은 어쩔 수가 없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해놓고 또 그러는 수도 있지만, 그것을 고쳐야 하는 것이다. 도인과 도인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임원들, 수반들이 화합을 이루도록 교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 지도하여 나가라. 그러면 서로 걸리고 얽히는 것이 없다. 풀려야 도통할 수 있다. 이 모든 불평을 척이라 한다. 척을 푸는 것이 도통을 하는 길이다. <전경>에 “무척 잘 산다.”(교법 2장 44절)고 하지 않느냐!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금년에는 꼭 실천하는 도인이 되어라. (1989. 2. 10)
신안이 열리면 전 세계, 전 우주를 다 통한다. 자기 일생, 그러니까 부모로부터 태어나서 현시점까지 완전히 드러나고 밝혀진다. 일생이 그대로 다 드러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고 잠깐 나타나는 것이다. 신안이 되면 순간적으로 신명(神明)인지 사신(邪神)인지 한눈에 확 드러난다. 악귀인지 잡귀인지 금방 안다. 참으로 무섭다. 그러니 합심단결해서 한마음 한뜻이 되라. 거짓말하지 말고 바른말로 나아가라. 잘못한 데서 척이 전부 다 나온다. 잘못한 것이 척이 되어 척신이 와서 갚는다. (1989. 2. 12)
공부해 보면 아는데 제일 무서운 것이 척신(慼神)이다. 인마(人魔), 신마(身魔), 심마(心魔)가 다 척(慼)으로 나타난다. 제일 큰 마가 척신이다. 임원, 도인 상호 간에 상대방이 불평을 갖게 한다면 척이 된다. 원수지간만 척이 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만 거슬려도 척이 된다.
제일 떼어내기 어려운 것이 척이다. 그래서 척을 푸는 것을 우리 수도의 제일로 삼아야 한다. 가령 공부를 21일 동안 한다면 척신과 싸움을 해나가는 것이다. 공부는 순전히 척신과의 싸움이다. 싸움이 끝나면 공부가 끝이다. 척신은 사람에게 붙어 보복도 하고 몸에 붙어 몸에 고통도 준다. 마음에 붙어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고 잘못된 생각도 일으키게 한다. 전생보다는 이 세상에서 어릴 적부터 남하고 척졌던 것이 전부 붙어서 나에게 보복하는 것이다. 이것과 싸우는 것이다. 모두 다 풀려야 한다. 그것이 끝나면 환하다. 다 풀려서 깨끗해지면 도통을 받는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유리알 같아야 완전하게 도통이 된다. 21일간 척신하고 싸우지만 끝나버리면 아무 일도 없다.
우리가 수도하는 것도 똑같다. 척이 풀리는 것이다. 수도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난관이 척신이고 마(魔)다. 어려움이 오는 것은 척신이 말아먹으려 하는 것이고 이것을 푸는 데 필요한 것이 인력(人力)이다. 운이나 운명으로 돌려버려서는 안 된다. ‘이러니까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 이러니까 이것은 해야겠다.’는 것이 되어, 그릇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해서 고쳐나가야 한다. (1989. 2. 12)
화합이 되면 아무것도 막히는 것이 없습니다. 막히고 걸리는 것이 척이며 척은 반드시 풀어야 합니다. ‘무척 잘 산다.’라는 말은 척이 없으면 잘 산다는 말이고 척이 없어 막히고 걸리는 것이 없다면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합이란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몸과 마음에 푹 배이게 하여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이상 말한 것을 명심하여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야 합니다. 무자기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을 행하게 되면 잘못된 일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척이 되어 나타나게 되며, 이 척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1989. 3. 17)
해원은 척을 푼다는 뜻이니 해원상생이란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가 고맙고 감사하는 예를 지켜나가면 화합과 평화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데 서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니 서로가 고맙다는 것을 잘 알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척을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1989. 4. 12)
제일 중요한 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은 다른 게 아니라 척(慼)을 푸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척신(慼神)이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 제일 먼저 척을 풀어야 한다. 척이 없어야 한다. ‘무척 잘 산다’는 말은 척을 풀어야 잘 산다는 말이다. 그 척신이 발동을 해서 보복을 한다. 나에게 원한이 있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 응해서 그 사람을 이용해 나를 때리게 만드는 것이다. 척신이 사람을 이용해서 보복하는 것이다. 수도과정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척신이다. 우리 수도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척을 푸는 것이다. 사람의 급소를 때렸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다. 안동방면의 대전에서 있었던 일도 맞아서 죽은 게 아니다. 원한 신이 상대방에게 응해서 때릴 때 죽는 것이다. 옛날부터 살(殺)을 맞는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복막염 수술한 사람을 잘못 건드린 것인데, 척신이 발동해 때린 사람을 이용해서 보복을 한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오히려 때린 사람의 손을 만져서 위로해 주라고 하셨다. 전생에 때린 일이 있으면 척신이 맞게 한다. 내가 한 대 매를 맞았다면 반드시 전생에 누구를 그대로 때린 것이다. 전생의 잘못이 있어서 그 척신이 그 사람에게 응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라. 전생의 잘못은 빌고 풀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전생에 훔친 것이 있어 그 죄가 벗겨지는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죗값을 받은 것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척을 푸는 것이고, 척이 다 풀려야 해원상생이 되는 것이다. 척도 모면할 수 있다. 도를 믿으니까 참으면서 인내해서 모면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면한다는 것이 도를 믿으므로 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리거나 한 것은 서로의 마음에 남는다. 겉으로 아무리 마음이 풀렸다 해도 각자의 영(靈)이 있어서 척이 풀리지가 않는다. 영이 노하는 것이다. 그것이 풀려지지가 않는 것이다. 수도를 하니까 잘 참아서 풀 수가 있다. 말다툼할 때 그것도 척이 되는 것이다. 남에게 욕을 하여도 척이 된다. 그것이 풀리지 않고 쌓인다. 운수에 지장이 있다. 긴 공부에 들어가면 다 나타난다. 시누이와 올케를 한방에 못 넣는다. 공부할 적에 시누, 올케를 한방에 두면 매일 싸운다. 말다툼할 때 참고 안 한 말이 막 나와서 싸운다. 욕지거리한다. 그래서 한방에 못 넣는다.
긴 공부 들어가면 사뭇 종일 울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울어도 보통 서럽게 우는 게 아니다. 척신이 붙었다가 물러나는 것이다. 척신이 붙었다가 밀려 떨어져 나갈 때 척신이 나가면서 분통해서 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우는 게 아니다. 그 사람 척신이 꼭 보복을 하려 했다가 도를 믿고 공부를 하기 때문에 주문 기운에 밀려 가지고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척신이 우는 것이다.
도인은 수도를 해나가니까 뭐든지 모면할 수 있다. 모면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이해다. 수도의 제일 중요한 것이 이해다. 제일 위험한 것이 시누, 올케 사이다. 설사 풀렸다고 해서, 동기간이라 해서 서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해도 척이 맺힌 것이다. 척이라는 것은 자꾸 쌓이고 맺히게 되는 것이다. 확 풀었다고 생각하는데 풀린 게 아니다. 이걸 본다면 위⋅아래에 거스르는 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 자체도 가져서는 안 된다. 운수를 바라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수도가 참말로 어렵다. 해원상생이라는 것은 척을 푸는 것이다. 절대로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척을 맺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남을 잠깐 오해만 해도 척은 쌓인다.
정도(正道)를 밟으면 보복하려던 척신이 떠난다. 원수를 꼭 갚으려고 했는데 감히 안 될 때는 울고 떠난다. 본인이 서럽게 운다. 이것이 사불범정(邪不犯正)이다. (1990. 3. 4)
우리 도는 해원상생이다. 우리의 목적이, 그 모든 것이 해원상생 안에 들어가 있다. 도를 통하는 것도, 수도의 방법도 모두 여기에 있다.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이고 간에 푸는 것, 즉 척을 푸는 것이 수도의 과정이고 목적이다. 모든 것을 푼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그 사람에게 걸리는 것,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이 척이다. 꼭 원수지는 것만이 척이 아니다. 상대가 기분이 나빠서 반감을 가지면 척이 되고 그게 나에게 돌아온다. 양쪽 다 좋지 못하다. 척을 지으면 자신도 그만큼 손해가 온다. 안 좋은 것이다. 다 잘되고자 수도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1990. 6. 17)
한 가정에서 두 사람은 믿고 세 사람은 이해를 못 해 안 믿는다고 해서 그 세 사람이 도인이 아닌 게 아니다. 큰 죄만 안 지으면 된다. 크게 말리지 않으면 운수마당에 간다. 부모가 어렵게 해도 참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서 도리를 다하면 된다. 도를 안 믿는 식구가 죄를 안 짓게 하기 위해서라도 할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도인된 마음이다. 도를 믿는다 할 때는 이것저것 이해해서 싸우지 말고 참아야 한다. 척이 되면 서로가 안 좋다. 내 몸을 내가 생각해서, 가족 한 사람이라도 더 생각해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 힘이 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참고서 잘들 해야 한다. (1991. 1. 20)
우리가 생활하고 실천하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몸에 배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척이 풀리고 맺힐 수 없다. 고맙고 감사할 때 척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신통일도, 도통이 있고 없고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을 감정의 동물이라 한다. 이것을 없애는 것이 수도이다. 어디 원망할 게 없고 미워할 것이 없으면 감사할 것만 있다. 뭘 생각하든지 항상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상제님께서 누가 나를 때리거든 그 사람 손을 어루만져 주라고 하셨다. 기독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모르니까 그렇지, 안다면 가해자에게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내가 전생에 누군가를 때렸던 것이 척신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복수하는 것이다. 받으면 풀린다. 그 사람한테 와서 풀리는 것이다. 무엇을 도적맞았을 때 괘씸하고 미울 것이다. 그러나 전생에 누구한테 물건을 훔친 적이 있고 그게 지금 나타난 것이다. 그 도적이 한 게 아니다. 척신이 그 사람한테 와서 갚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가! 고마워하면 풀린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해 못 할 게 없다. 척은 받아야 한다. 받으면 풀린다. <전경>에도 있다. 상제님께서 일본 옷을 입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글방에 다니실 때 친구가 있었는데 싸워서 죽어 척이 되었고, 상제님이 일본 옷을 제일 싫어하니 일본 옷을 입으라고 해서 입었다 하셨다.(행록 4장 54절) 우리는 척을 다 풀어야 한다. <전경>에 화복(禍福)이라 했다.(교법 1장 19절) 화를 당하면 복이 온다. (1991.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