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에 대한 훈시(4)
도인이라면 임원이든 수반이든 책무가 포덕이다. 포덕은 상제님의 덕화를 온 세상에 널리 선양하는 것이다. 그것은 얼른 보이지 않는데, 그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포덕이다. 여러 사람에게 도를 전해주는 것, 전도 그것이 포덕이다. 덕화 선양, 즉 상제님의 덕화를 펴나가는 것이다. 임원이건 수반이건 그것이 책무다. 만인에게 우리의 덕화를 전해주는 것이다. 전해주었다면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된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도통이 우리의 목적이다. 타인에게 도를 전해주고 믿게 했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책임이란 그 사람이 도통을 받을 수 있게 완성시켜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래서 포덕시킨 데 따라서 거기에 맞게 임원 제도라는 것이 있다. 그 제도에는 포덕에 따라 형성되는 임원 체계가 있는데 연운 체계인 것이다. 연운이 뻗어 나가면 그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잘 안 되는 것이다. 50명이나 100명을 포덕하면 선무 또는 교무이고, 그 이상이면 선사⋅교정, 그다음이 최고 임원인 선감⋅교감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을 모두 잘 모르고 있다. 착각하고 있다.
연운 체계를 잘 세워야 한다. 체계가 잘 서도록 임원 체계가 있다. 임원에게는 책무가 있는데, 자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 연운 체계가 확립이 안 된다. 우리의 법이 있다. 제도가 곧 법이다. 그 법을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을 안 지키면 체계가 서질 않는다. 임원에게는 마땅한 책임이 뒤따르니 정말 잘해야 한다. 남을 포덕해서 도통을 받도록 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남을 도통 받게 해주면 나도 도통 받는다. 남만 도통 받을 것이 아니라 나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그 체계가 잘 서지도 않고 이것을 잘 모르고 있다.
도통은 수도가 없이는 안 된다. 수도는 남이 해줄 수가 없다.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도해 나가야 하며 거기에 입각해 도인을 길러야 한다. 무자기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속이지 않는 것, 무자기가 우리가 수도해 나가는 원 기본이다. 이것 없이는 안 된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포덕을 하면 자기의 연운이라 하고, 연운의 수효에 따라서 선감⋅교감, 선사⋅교정, 선무⋅교무의 직책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직책으로 도통을 받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도가 없이는 안 된다. 내가 스스로 닦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잘 모른다.
도인이라면 너고 나고 할 것 없이 다 똑같은 한 도인이다. 똑같다는 것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안 된다. 여러 사람의 힘으로 도장도 됐고 그랬지 않느냐? 여러 사람의 힘이 합쳐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 안 그렇다면 종단이라는 것을 만들 필요가 없다. 나중에 때가 되면 아무나 데려다 쓰고, 아무나 그냥 주면 된다. 이것을 모르니까 자꾸 방면에 분열이 생기고 그런다. 이것을 우리가 꼭 알아야 하고 꼭 지키고 행해야 한다. 안 하면 안 된다.
포덕은 남에게 도를 전해 상제님의 덕화를 입도록 해주는 것으로, 우리의 책무다. 포덕하고 교화하는 것도 실제는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 잘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무자기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 속이지 말아야 한다. 글에도 있지 않으냐? “인간사어(人間私語)라도 천청(天聽)은 약뢰(若雷)하고 암실기심(暗室欺心)이나 신목(神目)은 여전(如電)이다.”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천층만층이라도 신명이 다 살핀다. 나 혼자 속인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신명의 눈이란 번갯불과 같다. 도인을 지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속이지 말아야 한다. 속이면 안 된다. 늘 속이는 거기에서 불평과 방면의 분열이 생긴다. 수도가 없이는 도통이 있을 수 없다. 성공이란 게 없다. 수도는 남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다.
제도, 그것이 우리 종단의 법이다. 다른 게 아니라 그것이 법이다. 상제님을 믿고 나간다면 우리는 이 법을 지켜야 한다. 그 법에 어긋나면 도통이 없다. 임원은 밑의 사람이 잘 가도록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임원은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도인들에게 법과 질서를 가르쳐주려면 엄하게 한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위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가르치는 데는 부자지간도 안 된다. 아버지만 해도 어렵다. 그러니 우리는 모자지정(母子之情)으로 해야 한다. 어머니와 자식의 그 정으로 나가야 한다. 이런 위치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밑의 사람이 묻고 배울 수가 있다. 밑의 사람이 모르는 것을 윗사람에게 마음 놓고 자유롭게 묻고 배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위력으로 하면 안 된다. 절대로 엄하게 어려워하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임원이라는 권위를 내세워서 위협하고 엄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수도다. 우리는 지금 수도하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임원과 수반은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배우는 데 있어 충분히 마음 놓고 물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상하지간에 말하기 어려우면 안 된다. 상하 간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한다. 말하기 쉽고 어렵지 않은 데서 배우게 되고, 알면 윗사람에게 머리가 자연히 숙여지는 것이다. 안 그러면 반발만 생긴다. 나가다가 분열이 생기고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이게 안 돼서 그런 것이다. 내가 웃어른이라는 권위부터 찾고, 위엄이나 권위를 내세워 눌러서 사람을 만들면 절대 안 된다. 처음에는 잘 듣다가 서로 점점 어려워진다. 겉으로는 잘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자꾸 병이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나중에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이것이 안 된다. 영 안 된다. 권위를 세워서는 도인을 절대로 못 만든다.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도인들은 해나가며 배우면서 깨달아야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잘못이다 하는 걸 나가면서 알아야 한다. 사업은 숫자가 많은 것보다 적더라도 그런 일 없이 야문 것이 오히려 낫다. 연운 관계에서 무엇보다 첫째로 서로 화목해야 한다. 화목, 화평, 평화,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것이 원리인데 여기에서 벗어나 자꾸 다른 짓을 하면 되겠는가?
가정에서도 자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다르다. 자손이 많은 사람은 밑의 사람을 위해 시집살이를 해야 한다. 밑의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심스러운 것이다. 내가 잘못해도 잘해도 내가 하는 대로 그대로 배운다. 말 한마디라도 어렵다.
방면들 전부 보면 다 그렇지 않은가? 처음엔 모르고 알고 간에 포덕시키고 잘 가르쳐 나갈 때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그대로 나가면 좋은데 나가다 보면 불화가 생기고 변동이 생긴다. 내가 포덕을 하는 것은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것인데 이러면 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나가다 보면 임원들 자신도 잘 모르게 낭패다.
밑의 사람이 많을수록 어렵다. 몸뿐만 아니라 말까지도 어렵다. 그런데 밑의 사람을 아주 그냥 쉽게 알아버린다. 임원들 자신이 잘 이해를 못 해서 밑의 도인들을 막 대한다. 몰라서 그런다. 거기에서 늘 불화와 분열이 생긴다. 대개 그렇다. 도인들의 다툼은 밖의 사람, 이웃 간의 싸움 그 이상으로 더 하다. 방면에 불화, 불만이 생기는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게 아니라 윗임원이 자기 권위를 내세우고 그러다 보니 밑의 사람을 급기야는 사람 취급을 안 하고 그래서 밑의 사람이 발버둥 치다가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 포덕할 때 마음먹고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된다. 밑의 사람들을 어렵게 생각해야 한다. 윗임원이 밑의 사람을 위력으로 꼼짝 못 하게 하면 처음에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다가 언젠가는 부러진다. 나중에는 체해버리고 굳어버린다.
옛날에도 그랬다. 도주님 재세 시에 도인들이라 해봐도 많을 때 4천∼5천 호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전에 2∼3천 호 될 때 방면에 분열이 있었다. 분열이 있는 데를 보면 결과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 권위를 쓰니까 그런 것이다. 위력을 쓰려고 하는 데서 어려워지고 해서 나중에 밑에서 견디다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위에 쫓아 올라와서 도(道) 좀 닦게 해 달라고 얘기하고 했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잘 듣고 반성해서 고치라는 것이다. 밑의 사람 꼼짝 못 하게 해서 문제가 생겨 밑에서 올라와 얘기할 때 그 사람을 나무라고 윗임원을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해할까 봐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반을 떠받들라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 한 3,000호 때, 호수로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되지만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분열이 더 많았다. 수안보에 해성이 형이 있었는데 임원하고 안 맞아서 노상 위(도주님)에 쫓아가고는 했다. 중식, 은식, 철규, 여기저기 여러 군데 그랬다. 그러다가 말썽부리는 사람들을 김사학(金思學)에게 한 군데로 몰아줬다. 몇백 호 됐었다. 분열이 생길 때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임원이 상호 간에 맞지 않아 윗임원이 불신을 당해서이다. 원인은 늘 윗임원이 위력으로 밑의 사람을 꾹 눌러서 그러는 것으로 끝에 가면 터진다. 그것이 있으면 안 좋다.
여기, 다 그렇다. 대구방면만 해도 처음에는 하나로 해오다가 지금은 몇 개 방면인가? 이제는 안 합쳐진다. 부산도 그렇다. 4개다. 천안방면만 안 그랬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그런데 끝에 와서 안 좋은 게 왔다. 밑의 사람을 자꾸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내 연운을 자꾸 나쁘게 생각한다. 한 번 떨어져서 사업하면 나중에는 들어가질 않는다. 더 하다. 정이 떨어져서 합쳐지지 않는다. “내 밑이다, 내 연운이다.” 하는 것은 잘못이다. 헛일이다. 나중에 도통 받을 때 가면 다시 자기 연운이 된다고 그러는데, 절대 아니다. 따로 하는 것 그대로다.
대구방면 중에서는 성주방면이 제일 클 것이다. 대구는 원래는 경산방면이다. 지금 다 나왔는데 합쳐지지 않는다. 부산방면도 거기에서 나온 부전방면이 제일 크다. 그렇다고 해서 부산선감이 그 혜택을 못 받는다. 따로 가고 있는 것이다. 부전선감은 호 책임자라고 해도 부산선감은 그 자리에 못 간다. 따로 본다. 따로 계산한다. 지금 성주방면도 세 방면으로 되어 있다. 성주 안(영일) 선감이 12, 13만 호이고, 서울이 6, 7만 호, 목포가 또 나가서 4, 5만 호이다. 서울과 목포가 잘 나간다고 해도 성주선감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목포방면, 서울방면 따로 간다. 운수 받을 때 지금대로 받는다. 그대로다. 도통 때 다시 오는 게 아니다. 나눠지면 안 좋다. 잘 나갔다고 하겠지만 도통 때 봐라. 만약 성주가 하나로 합쳤으면 말도 못하게 좋다. 안 선감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목포도 위치가 지금보다 훨씬 올라간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할 수 없다.
요전에 인망, 신망 얘기하지 않더냐. 인망을 얻어야 신망을 얻을 수 있다. 신망에 올라야 운수를 받는다. 가령 서울방면에서 서울선감이 자기가 할 것을 잘 해나가면 운수⋅도통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운수가 없다. 지금 임원이라고 해서 꼭 도통을 받고 운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남의 심부름만 해주고 도통은 못 받는 격이 될 수 있다. “남의 발에 신발 신겨준다.”는 옛말이 있지 않으냐? 내가 이종사촌에게서 도를 받았다. 그 이종사촌은 나에게 다리 놔주고 말았다. 도만 전해주고 도를 안 믿었다. 이종사촌이 나에게 도를 전해줬다고 해서 도에서 떨어졌는데 운수 받는 게 아니다. 못 받는다.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조금도 받지 못한다. 그것하고 똑같은 것이다. 잘들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밑의 사람만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잘해야 한다. 위의 임원에게 잘못이 있다. 쉽게 말해 신임을 못 받으면 안 된다. 그것이 인망이다. 사회에서도 덕망이 크다 하고 존경하고 안 그래요? 인망에 오르면 신망에 오른다. 잘해야 한다. 임원이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잘해야 한다. 절대로 수도 없이는 안 된다. 닦는다는 것은 내가 닦는 거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수도는 자기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다. 수도라는 것이 꼭 주문만 읽고 앉아있는 게 아니다. 임원이 되어 가지고 밑의 도인들에게 배신당하는 것, 그것도 잘못이다. 임원은 밑의 도인에게 잘해야 한다. 위에서 잘했는데 밑에서 배신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밑의 잘못이다. 무조건 윗사람만이 잘못하고 밑의 사람이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개가 윗임원의 강권으로 상하가 안 맞아서 잘못된다. 도는 참 어렵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알면 쉽다. 모르니까 안 되는 것이다. 안다면 지켜진다.
윗임원이라 해서 아랫사람을 두들기고 욕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밑의 사람에게 불신을 당하게 된다. 위아래가 서로 존경해야 한다. 외수 임원들, 밑의 내수 임원들을 아주 뭐로 안다. 욕하고 때리고 한다. 그 사람이 운수를 받겠어? 사람이 용서 안 하는데 신명이 용서하겠어? 용서 안 한다.
한 가지 고칠 것은 가족 간에 선⋅후각 가리는 것이다. 전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교감이고 자기 아버지가 교정이었다. 아버지에게 심부름시키고 잘못한다고 호령했다. 또 한 집안에서 부부가 선⋅후각인데, 부인이 선각이고 남편이 후각이니 집에서도 선각, 후각 따지고 드는 모양이다. 그러면 안 된다. 도는 도고, 가정은 가정이다. 만약 우리 도가 그렇다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우리 스스로도 그런 도라면 치워 버려야 한다. 가족은 천륜이다. 아무리 내가 못하더라도 가정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부모는 부모고 형은 형이고 동생은 동생이고 자식은 자식이다. 그렇지 않고 천륜을 무시하고 막하면 그것은 천륜을 끊어놓는 것이 된다. 가정에서도 도의 체계, 선⋅후각을 따진다고 한다. 그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뭐라 하겠는가? 우습다고 한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 잘못되었다면 도통이 없다.
가정 제도는 천륜으로 맺어진 것이다. 전(흥수) 목수를 정무로 내다보니 그 아버지를 교령으로 올려주게 되었다. 그 가정의 천륜을 보고 해주는 것이다. 자식이 임원이고 아버지가 평도인이라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선⋅후각으로 가정 제도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군포 허 선감과 김 보정, 김 보정은 부인이 선감이니 임원으로 내주었다. 임원 아니면 안 된다. 수반이면 안 된다. 부인이 선각이라도 남편이면 남편이지 외수라고 호칭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는 도리를 다해야 한다. 부인이 남편을 외수라고 부르면, 아들에게 아버지 물으면 외수라고 한다. 그것은 안 된다. 이영숙 선감에게 남편 오 교감이 꼼짝 못 한다. 그게 아니다. 가족의 위치에서 해야 한다. 가정에 우리의 선⋅후각 제도를 연결시키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그건 안 된다. 그건 못 쓴다. 고쳐라. 그래선 안 된다.
가정 제도라는 것은 천륜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도니까 천륜으로 이루어진 것을 따라가야 한다. 도니까 그 위로 같이 된다. 부인이 상급 임원이면 남편은 그 위로 같이 되는 것이다. 월성방면에 부인이 교감이고 남편이 선무인데 남편을 보정으로 했다. 그것이 잘하는 것이다. 내외지간에 부인이 도를 잘 믿어서 임원이 되었다면, 남편은 포덕도 안 하고 사업을 안 했다 해도 나중에 같이 된다. 가령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하게 되면 아버지에게도 자식 덕으로 따라서 그 벼슬을 주었다. 증여받은 것이다. 아들이 아주 높은 벼슬을 하면 오히려 벼슬을 따로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주고, 공이 크면 자식 대에도 내려갔다. 전 정무를 임명 주다 보니까 아버지를 교정에서 교령으로 했다. 자기 위치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잘 알아둬야 한다. 여자가 선각이라도 잘못하면 남편에게 야단맞아야지 체계를 따지면 안 된다.
연운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억지로 만들어서 되는 게 아니다. 체계가 확립되자면, 임원이 자기의 책무⋅도리를 잘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도통을 못 받는다. 아랫사람에게 불신을 당해 밑에서 따로 나가면, 나중에 그 덕을 못 받는다. 분열되어 완전히 갈라지면 적이 되고, 그러면 그대로 가는 것이다. 내 연운이니 나중에 때가 되면 합쳐지고 그 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의 이종사촌 형도 다리만 놔 주었지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절대 수도 없이는 도통이 있을 수 없다. 수도는 자기가 직접 하는 것이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무척 잘 산다 하지 않느냐? 제일 안 좋은 것이 척이다. 절대 척을 지면 안 된다. 수도는 앉아서 주문만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임원이든 수반이든, 잘하든 못하든, 자기의 책무를 이행해나가는 것이 수도의 기본이다. 그러자면 혁신을 해야 한다. 금년에는 꼭 혁신해야 한다. 혁신이란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혁신이라는 명칭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고치고 잘하자는 것, 이게 혁신이다. 절대 척이 없어야 한다. 주문 읽고 앉아있는 것도 수도지만, 임원이면 임원, 수반이면 수반으로서 자기의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 수도다. 그것이 중요하다. 책무가 잘 이행되었으면 수도가 잘 된 것이고, 못 되었으면 수도가 안 된 것이다.
서로가 존경해야 한다. 밑의 사람이라고 함부로 막 해서는 안 된다. 밑의 사람 입장에서 의논해야 한다. 안 되는 것은 늘 속이는 데서 안 된다. 무자기,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절대 속일 수가 없다. 못 속인다. 지금은 묻어 놨다 하더라도 나중에 다 드러난다. 상대방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잘 알아듣게 말을 해줘야 한다. 우리의 일은 신명이 아는 것이다.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둬야 한다. 절대 속이면 안 된다. 전부 신명이 도통을 준다. 잘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크게 욕심부리는 것보다도 그 위치에서 해야 할 책무를 다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어서 도통이 크고 그런 게 아니다. 도통은 크고 작은 것을 떠나서 받기만 하면 그보다 큰 영광이 없다. 무자기가 근본이라는 것, 속이면 안 된다는 것, 이것을 명심하고 꼭 믿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 꼭 믿어야 한다. (1993. 3. 3)
옛날에는 내가 세 번만 만나면 떠밀어도 안 나갔다. 그때는 촌에서 잘 됐다. 대개 촌에는 학교도 못 다닌 사람, 국문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충북이 더 했다. 대동아전쟁 말기에도 충청도 시골에 가면 남자들도 국민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사람들뿐이었다. 국민학교 다닌 사람도 잘 없었다. 그런 데에선 진리를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은 국민학교 애들도 이론적으로 하면 다 들어간다. 애들도 이론적으로 맞고 안 맞는 것을 잘 안다.
임원은 일을 하는 데 있어, 누구는 더 생각하고, 누구는 덜 생각하고 하지 마라. 그것이 있으면 낭패다. 절대로 편벽되고 삿된 것이 있으면 안 된다. 늘 공명정대⋅무편무사해야 한다. 임원들이 공명정대하고, 무편무사하고, 체계가 제대로 서 있으면 깨려야 깰 수가 없다. 참배를 그렇게 해 봐요. 참배하면서 바로 입도시키지 말라는 건 연운이 바로 서지 않고 체계 질서가 안 서기 때문이다.
포덕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포덕한다. 먼저 있던 사람들은 포덕을 잘 못 시킨다. 전부터 있던 사람은 새로 포덕되는 사람을 도인으로 만들어주면 된다. 똑같은 소리도 이 사람이 하는 것 다르고, 저 사람이 하는 것이 다르다. 이 사람에게 듣는 것하고, 저 사람에게 듣는 것하고도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필요하다. 도인은 금싸라기보다 중요하다. 늘 도인을 금싸라기 이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임원들이 그렇게 아껴주어야 한다. (1994.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