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에 대한 훈시(3)
융화 단결(融和團結)해야 합니다
종단의 생명은 상ㆍ하의 융화 단결입니다. 우리가 운수(運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성ㆍ경ㆍ신을 다해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모든 것들이 알맞게 채워질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체계질서(體系秩序)를 확립하고 융화 단결하는 일이 종단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우리 도인들이 화합 속에 뭉쳐 자기 위치에서 각자의 책임(責任)을 다함으로써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도인 상호 간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척 잘 산다.”는 말씀과 같이 서로 간에 척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일의 장애는 척으로부터 옵니다. 운수를 받는 데는 더욱더 척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척을 없애 화합 단결을 이루는 데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해주고 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내가 운수를 받을 수 있음은 나의 공덕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더욱더 큰 힘은 많은 수도인의 노력과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함께 화합 단결하여 일을 이루어 나가는 가운데 도수가 차게 되어 우리가 상제님의 덕화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항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남이 이루었다거나 우리 방면이 하지 못한 일을 다른 방면이 이루어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한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도인의 자세가 될 때 해원상생(解冤相生)과 보은상생(報恩相生)을 이루어 상제님의 대순진리가 실현되고 상ㆍ하가 화합 단결이 되며 화기(和氣)가 가득한 곳에 신명의 도움과 운수가 있게 됩니다. (1992. 2. 10)
우리는 임원 체계를 좇아서 행해나가는데, 체계를 좇아갈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지금 윗임원이라고 해서 밑의 임원을 너무 하대하는 일이 심하다. 말을 할 때도, 무엇을 시킬 때도 하대다. 사회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남남끼리 만나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존대를 하는데, 여기는 선각⋅후각이라고 해서 욕지거리하는 것은 예사고, 뭣하면 두들겨 패기도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용서를 못 한다고 여러 차례 말을 했었다. 이러한 것이 생활화된다면 수도라고 할 수 없다. 죄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잘못하면 죄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임원들이 선각 임원이라고 해서 밑의 임원을 종 부리듯이 하찮게 생각하고, 말도 그렇게 하고, 조금 뭣하면 손찌검까지 하는 일이 있다. 방면에 그런 일이 있어 나에게까지 얘기가 들어오니까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아직 그런 일들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도인이라면 서로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가정집에서도 안 그렇다. 자식이라도 다 큰 애를 부모가 손찌검하면 안 받아준다. 동기간에는 더 그렇다. 우리는 윗사람은 밑의 사람을 고맙게 생각하고 밑의 사람도 윗사람을 고맙게 생각해서 서로 믿는 마음에서 받아주는 것이다. 당하면서도 ‘나를 사람 되라고 그러는 것이겠지’ 하고 고맙게 생각하여 이해하면 괜찮지만,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수도하는 정신이 많이 소모된다. 우리에게는 큰 퇴보다.
... 자기가 포덕했다고 자기 도인이 아니다. 도인이라면 그냥 도인인 것이다. 모두 상제님의 도인이다. 상제님의 사람이라는 말이다. 서로가 생각하면 다 귀중한 것이다. 수도해 나가서 다 도통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중에 여기 전부 도통군자가 될 것 아니겠는가? 학교의 선생도 학생에게 막 못한다. 우리는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 하다. 나중에 우리가 수도해서 도통군자가 된다. 우리가 도인, 도인 하니 그 글자, 그 말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지만 도인이라면 도인이라는 이름을 듣는 것도 참으로 큰 것임을 안다. 글자는 그냥 붙는 게 아니다. 도인이라고 하면, 누가 생각하더라도 완전히 참 수도가 된 사람, 즉 밖에서 볼 때는 충분히 수도를 해서 도통군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도를 통할 수 있는 수도가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면 서로가 정말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내수 임원끼리도 밑의 사람을 때리는 게 보통이다. 도인이니 때리고 그러는 거지, 자기 가족이면 때리려고도 안 하고 맞으려고도 안 한다. 그렇다면 도인이 내 가족보다 못하다는 것이냐? 우리가 수도해 나가는 데 제일 중요하며, 꼭 지키고 안 지키면 안 될 것이 이것이다.
... 도인이라면 아무리 내가 포덕했다고 해도 내 도인이 아니다. 도인이라면 상제님의 아들⋅딸이다. 도인은 전부 상제님의 도인이다. 이것을 잘 이해 못 해서, 내가 포덕해서 내 도인이라고 막 함부로 하고 그러는데 주의해야 한다. 모르고 하니 그렇지, 세상에 그보다 큰 죄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아직 올바르게 도를 못 닦고 있지만, 도인이라면 누구나 큰 운수, 즉 도통을 목적으로 수도해 나가니, 가령 오늘 운수를 받는다고 하면 지금 수도가 되어있다는 것, 도통을 받을 수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를 명심하고 서로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해도 다 모르는 것이 우리 도니, 평생을 우리는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서로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서로 어머니와 아들 같은 사이,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 철모르는 얘들이 어머니한테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 서로 가르치고 알려고 배우며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귀중하게 생각하고, 말 한마디라도 존대하고…, 그것 아닌가?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서로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선감⋅교감⋅보정 하면 우리 종단의 최고 임원이고, 나중에 도통을 한다면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 지금까지 온 것이 누구의 덕이겠느냐? 그래서 저 밑의 평도인을 보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평도인들도 임원을 보면 ‘내가 운수를 받도록 이끌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 내가 포덕을 했으니 내 도인이다 생각하고 함부로 하는데, 도인은 하느님의 아들, 딸이다. 자꾸 착각해서 ‘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니까 화를 내고 소리도 지른다. 위를 생각하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 없어야 한다. 귀중하게 생각하면 서로가 존중하는 것이다. 일개 왕가에다 비유했는데, 상제님은 하늘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니 왕가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몇천, 몇만 배 지존 지엄하신 상제님의 도인이다. 그러니 도인들을 아주 금싸라기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지켜나가는 것이 수도이다. 주문만 읽는다고 그게 수도가 아니다. 내 마음을 깨끗이 닦는 그게 곧 수도인 것이다. 깨끗하게 닦으면 통한다.
... 다른 게 아니라 상제님 자식이라는 것, 상제님 도인이라는 것, 그것만 생각하면 모두가 귀중하니 금이 가려야 갈 수가 없다. 그게 안 되니까 잘못하는 게 생긴다. 잘 이해하라. 수도의 제일 근본인 이것을 안다면 절대 금이 갈 게 없다. 우리는 서로 아껴주면 된다. (1992. 12. 28)
우리 도는 상생대도(相生大道)입니다. 상생(相生)은 조화(調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조화를 잃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단청을 함에 있어 열두 가지 색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룰 때 다채롭고 우아하게 보일 것입니다. 만일 어느 한 색이라도 튀어나와 보이면 다른 색들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수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체계 내에서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임원은 아래 사람을 애휼 지도(愛恤指導)하고 아래 수반은 임원을 경례(敬禮)로써 섬기면 척이 없이 잘 닦게 되는 것입니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은 모든 사람을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이 존경입니다. 남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악(惡)을 선(善)으로 갚아 나가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이므로 해원상생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존경하게 되면 나도 존경을 받아 인망(人望)을 얻고 또한 신망(神望)을 얻게 되어 도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존경하여 척이 없이 깨끗하게 수도하면 어느 누구도 나를 나쁘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여 인망을 얻게 되면 신명도 알게 되어 신망을 얻게 됩니다. 인망과 신망을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도인들은 명심하여 언제나 해원상생의 원리로 혁신해 나가야만 합니다. 해원 없이 상생 없고 상생 없이 해원은 없습니다.
해원상생의 원리는 평화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전 천하(全天下)를 평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화목하고, 화합해야 하며, 그 속에서 단결 또한 이루어지게 됩니다. 대진대학교를 건립하는 일에서 우리들의 화합 단결된 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면 도인들과 사회 사람들과의 화합하고 단결하는 힘이 부족합니다. 새해에는 혁신함으로써 방면과 사회를 초월하여 화목과 화합으로 단결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며 해원상생이 될 때 전 천하에 평화가 이룩됩니다.
방면이 다르더라도 도인들 서로 서로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화목과 화합으로 평화를 이룰 때 단결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단결은 어느 한 방면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라는 말과 같이 여러 방면이 하나로 뭉쳐 모든 사람의 힘이 모여졌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방면 남의 방면 분별없이 모든 도인이 다 고마운 것입니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없게 되면 나 또한 없다고 생각할 때 상대인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나의 생존의 가치와 역할이 상대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방면 체계나 가정, 국가, 사회의 모든 조직체는 공존 공생(共存共生)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척이 없이 서로 돕고 존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방면 체내(體內)가 편안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 국가가 안정되고 천하가 화평하게 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로 새롭게 혁신하여 모두가 척을 없앰으로써 도통을 받을 수 있는 성숙한 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1993.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