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도 화목도, 불화와 불목(不睦)도 먼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데서 시원(始原)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므로 전경에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신명의 버림을 받는다 하신 것이다.
참는 것이 곧 양보요, 양보가 화합과 화목의 근원이 되나니, 처음 뜻을 세워 입도한 도인들의 입도 당시의 화합되었던 상호의 신의를 변함없이 주고받는다면 화합은 영속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화합이 바로 안심처(安心處)이다. 도인 간에 화합이 깨뜨려지면 난법난도(亂法亂道)가 일어나 패천만신(悖天慢神)을 범하게 마련이니 덕화 손상으로 욕급지존(辱及至尊)을 막을 길이 없으므로 만사불성이 된다는 것을 심량(深量)하여 화합이 안심⋅안신 수행의 초석이 됨을 체득(體得)케 하라.
척을 풀어 되풀이되는 일이 없어야 화합의 길이다. <전경>에 척을 맺으면 직보(直報)가 있기도 하고 우회보(迂廻報)가 있다 하셨으니 과보(果報)의 섭리를 깨닫는 임원이 되라.
화목이란 가정사(家庭事)를 말함이니 대순하신 공사는 인도(人道)를 갱정(更正)하신 공사이다. 가정을 버린 윤리도덕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을 먼저 알아야 한다.
화목치 못하였던 가정에서 입도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가정은 평온한 화목으로 돌아가야 천명을 받드는 도인이랄 수 있는 반면, 평온한 가정에 입도로 말미암아 불화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 나가라.
가정화목이란 윤리도덕의 원천이다. 도에 입도하였다면 한층 더 가정사에 충실하여 상도(常道)를 망각한 세인(世人)들에게 도를 보여주는 것이 포덕이며 덕화 선양이 되는데, 도리어 분란을 일으켜 본부에까지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또는 사람이 와서 패설(悖說), 망담(妄談) 등의 부실한 일이 생긴다면 밝게 살펴보지 못한 책임으로 단호한 처벌을 내릴 것이요, 금년은 또한 정돈의 해로 정하니 만사 밀도 있게 살펴서 새롭고 새로워지도록 면목일신(面目一新)을 이룩하라.
도를 닦는 사람의 지혜가 속히 밝아지는 것은 신명과의 조화(調和)요, 예지가 밝지 못하여지는 것은 일심 같으면서도 다른 취향이 있는 탓이다. 만사를 대성(大成)하는 일은 인사(人事)에서 신사(神事)에 이르기까지 차착(差錯)이 없도록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니, 이때 수도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훈시(1986.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