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는 해원상생이다. 우리의 목적이, 그 모든 것이 해원상생 안에 들어가 있다. 도를 통하는 것도, 수도의 방법도 모두 여기에 있다.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이고 간에 푸는 것, 즉 척을 푸는 것이 수도의 과정이고 목적이다. 모든 것을 푼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그 사람에게 걸리는 것,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이 척이다. 꼭 원수지는 것만이 척이 아니다. 상대가 기분이 나빠서 반감을 가지면 척이 되고 그게 나에게 돌아온다. 양쪽 다 좋지 못하다. 척을 지으면 자신도 그만큼 손해가 온다. 안 좋은 것이다. 다 잘되고자 수도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도주님 말씀에 성지우성(誠之又誠)하고 면이수지(勉而修之)하면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이라 했다. 그러니 정성에 정성을 들이면 대화로써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 있다. 도인을 다스리는 것은 모든 것을 이치를 들어 풀어서 설명하고 잘하도록 살펴주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원리를 믿고 나가면서도 행동을 반대로 하면 안 된다. 사회에서도 모든 것을 대화로 해나가자고 하는데, 그것이 본래 우리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잘못을 본인이 충분히 알도록 해주면 자연적으로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도가 좋고 옳다는 것을 잘 이해시키면 잘 믿을 것이다. 대화로써 모든 것을 해결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