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만히 있는데 괜히 상대방이 자꾸 나를 싫어하고 방해하면 그것을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저 사람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 척을 지었는데 척신이 저 사람을 이용하여 나에게 갚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가면 된다. 상대방을 감싸주면서 나가면 된다.
상대방이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과거의 나의 척신이 그 사람을 이용해서 그러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안 보고 못 참고 내가 똑같이 상대해 나가면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내가 점점 영 못 쓸 사람이 된다. 자기는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꾸 뻐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꾸 진구렁으로 빠져 결국 도(道)도 못 믿게 된다.
상대방이 자꾸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같아도 그것을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용해서 방해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이겨나가야겠다.’ 하고서 이겨나가야 한다. 그 사람이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척신이 그럴 수도 있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도 “천도교걸어악(天道敎桀於惡) 천도교탕어선(天道敎湯於善).” (공사 3장 39절)이라 하지 않았느냐?
도를 잘 믿는다는 것이 어렵다. 여러 장애물이 자꾸 닥친다. 대운을 받는다고 할 때 어찌 마(魔)가 없이 되겠는가? 화복(禍福)이다. 복을 받자면 화부터 받아야 한다. 복마(伏魔)다. 복을 받자면 반드시 마가 붙기 마련이다. 잘들 해야 한다. 누구 하나 척신 없는 사람은 없다. 남에게 눈 한 번만 흘겨도 척이 맺힌다. 공부해 보면 척신, 척 없는 사람이 없다. 셋이 앉아서 하는데, 많은 사람도 아닌데, 그 사람을 이용해서 척신이 방해한다. 당해내지 못한다. 운수를 받는다고 하고 복을 받는다고 할 때 척신이 가만히 있겠느냐? 곁의 사람, 다른 사람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잘 못 믿도록 하고 죄짓게 하여 운수를 못 받도록 만든다.
그래서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그 원(冤)을 풀면 산다. 원을 가지면 죽는다. 명심해라. 해원상생, 그것을 못하면 죽는다. 간단히 말하면 서로 원망 없이 저 사람도 잘 되고 좋아지고, 나도 내 길이 열려 잘 되고 좋아지는 것을 얘기한다. 나는 저 사람에게 잘 해주는데, 저 사람은 내 감정을 자꾸 건드려 좋은 사람을 괜히 나쁜 사람 만들어 놓는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잘 이해해야 한다. 저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다. ‘전생의 나의 척신이 저 사람을 이용해서 그런 것이다.’ 하고 뉘우치고 도리어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도를 믿는 것이다. 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지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밖의 사람하고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