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신다는 것을
자나 깨나 늘 마음속에 잊지 말라
기도란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모아서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에 대한 인식이 옳고 그름에 따라
믿음이 참된 믿음도 되며 거짓된 믿음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야 하며
가면 가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정성이 있는 곳에
상제님의 하감(下鑑)하심이 있는 것이며,
천지신명의 보살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86. 4. 14)
『전경』에 “所願人道 願君不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有君無臣其君何立 有父無子其父何立 有師無學其何立
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누구나 소원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임금이 되기를 원하나 누구나 임금이 될 수 없고,
아비가 되기를 원하나 누구나 아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며,
스승이 되기를 원하나 누구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임금은 있으나 신하가 없으면 그 임금이 어디에 설 것이며,
아버지는 있으나 자식이 없으면 그 아버지가 설 곳이 어디 있으며,
스승은 있으나 배울 제자가 없으면 그 스승이 설 곳이 또한 어디 있으리오.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천지신명들이 굽어살피고 있다).”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래 수반 도인들이 없고 임원만 있다면
임원이 되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 나가는 것도 수도의 한 과정입니다.
가르치려면 물어 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스스럼없이 물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며,
어떠한 물음이라도 전부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환경과 마음이라야 가르칠 수 있고 또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래 도인들은 임원이 가르쳐 주는 것이 고맙고,
임원들은 아래 수반들이 잘 따라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긴다면
이것이 바로 해원상생의 원리인 것입니다. (1989. 3. 17)
경천이라는 것은
모든 행동에 있어서 조심하고
상제님 받드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항상
나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믿는다 해도
늘 부족한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이 경천이다.
우리가 모르니까 그렇지 상제님께서는 다 보고 계신다.
그것을 모르니까, 믿지 않으니까 안 좋은 일을 한다.
그걸 모르니까 속이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그런다.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신다는 것을
자나 깨나 늘 마음속에 잊지 말고
늘 부족한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이 경이고 거기서 경천이 나온다.
수도에 있어서는
심신을 늘 침착하고 항상 잠심(潛心)해야 한다.
내 마음과 몸을 늘 침잠하게 하고
정신을 아주 고요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상제님을 모시는 정신을 모아서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삼고
경지우경(敬之又敬), 공경하고 공경하여
성지우성(誠之又誠), 정성하고 정성해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해야 한다.
잠시도 잊지 말고 이것을 가슴속에 새겨두고 있어야 수도가 된다.
정신적으로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안정되어 편안하게 해야 한다.
안심⋅안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경천⋅수도, 하느님을 자나 깨나 공경하며
직접 곁에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
늘 부족함을 두려워하고
심신을 침착하고 고요하게 하여
늘 상제님 받드는 마음을 모아서
영통을 목적으로 경지우경, 성지우성해야 한다.
이것을 항상 내 마음과 몸에 새겨야 한다.
이것이 수도다.
이것이 실천되어야 한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어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못 지켜도 우리는 이것을 지키고 실천할 수 있다.
우리 도가 참으로 좋다는 것을 믿고,
앞으로 도를 통한다는 것을 확신하니까 쉬운 것이다. (1993.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