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기(無自欺)’에 대한 훈시(2)
첫째가 무자기(無自欺)이다. 절대로 속이면 안 된다. 내가 내 양심을 속이면 안 된다. 둘째가 윤리도덕으로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게 우리 수도의 기본 원리가 된다.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고 윤리도덕을 숭상하는 데서 정신만 통일된다면 그것이 도통이다. 도통이 거기에 있다.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인륜도덕⋅윤리도덕을 올바르게 행하고 지키면 사람이고, 못 지키면 금수다. 윤리도덕이 어려운 게 아니다. 쉽다. 여러 사람이 볼 때 모든 행동을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라 하고, 사람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면 금수라 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이 아니고 쉽다.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다, 본받을 만한 사람이다 하면 사람, 보기에 나쁘면 금수만도 못한 사람이다. 절대로 무자기가 되어야 하고 윤리도덕을 지켜야 한다. 스스로 내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며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수도 과정에 있어서 기본 원리가 된다. 이것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꼭 바라고 목적하는 일이 틀림없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가 가면(假面)이 된다. 올바로 안 된다. (1991. 12. 5)
도통이라는 것은 잘 닦아야 오는 것이다. 아무리 뭐라 해도 내가 닦지 못하면 안 된다. 거짓말이나 하고 속이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겁액(刧厄)만 쌓인다. 밖에서도 용납하지 않는다. 무자기는 내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안다. 자기가 알면 신명도 안다. 속이고 그러면 도통이 오겠는가? 안 온다. (1991. 12. 5)
가정부터 잘 다스려 나가야 한다. 수신제가(修身齊家)라 했다. 몸을 잘 닦은 연후에 집을 잘 다스릴 수 있다. 무자기와 윤리도덕, 이것을 수도에서 근본으로 알아라. 이것을 잘 알고 올바로 행하고 실천해 나가면 도통이 바로 거기에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 믿는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고 실제 믿음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믿는 것과 혼자 가족 모르게 믿는 것은 차이가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 믿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옳은 믿음이 나온다.
양심을 속이지 않고 인륜도덕을 지키면 맑아진다. 몸의 건강도 거기에 있다. 나쁜 게 다 빠진다. 그럼 유리알 같다. 수련하는 분들 공부하는 게 어렵다. 그러나 일심으로 전념하면 맑아진다. 공부를 갔다 온 사람 얼굴을 봐라, 다르다. 나쁜 게 조금 빠진 게 그 정도다. 맑은 기운이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몸도 건강해진다. 아주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을 이겨나가는 것이 공부다. (1991. 12. 5)
모든 일에 있어 절대 가면(假面), 외면(外面)으로 하면 안 된다.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무자기를 근본으로 해야 이루어진다. 무자기를 근본으로 윤리도덕, 인륜을 실천해 나갈 때 자연히 심신이 맑아지고, 우리의 도통이라는 것도 거기에 있다. 신명이 아는데 절대 못 속인다. 하는 일을 속이려고 하지 말라. 속인다고 안 될 것은 없지만 속이면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 몇 분 되지 않지만 큰공부하신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안다. 절대 속일 수 없다. 여기 계신 분들(선⋅교감 전체) 다 신명이 각각 한 분씩 맡고 있다. 신명이 곁에 다 있는데 어떻게 속이나? 절대 못 속인다. 신명들은 속일 수 없다. 그것도 믿으면 믿어지고, 안 믿으면 안 믿어지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믿고 닦아 나가야 한다.
우리 도를 신도라고 하니 신명의 도임을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정신(精神)이라는 것은 맑을 정(精), 신명 신(神)이다. ‘맑은 신’이라는 것을 사회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내 신이 맑아지면 다 알아지는 것이다. 큰공부에서 내가 시험해보고 있다. 사람을 시켜서 시험해본 것이 있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개안(開眼)은 신안(神眼)이다. 막히는 것이 없고, 멀고 가까운 것이 없이 다 통해지는 것이다. 전경에도 진강(眞降)을 받으면 만져도 낫고, 보기만 해도 낫는다고 했다. 대순성전에 가면 병 고치는 성화(聖畵)가 있다. 곱추도 고치시고 종도들에게 만국의원이라고 써 붙이라고 하셨다. 모든 병을 다 고치는 것인데 앞으로 있을 일을 말한다. 상제님께서 모든 겁재는 다 물리쳤으나 병겁만 남겨 놓으신 공사가 전경에 있다. 내가 시험해본 것이 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신명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해서 고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직접 신안이 열려 몸의 일부를 보면, 증상을 본다는 것인데, 아픈 곳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허강(虛降)과 진강(眞降)은 다르다. (1992. 5. 3)
‘신목여전(神目如電)하니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라.’고 했다. 사정(邪正)의 감정(鑑定)을 번갯불에 붙인다고 하셨는데, 신명의 눈은 번갯불보다 더 빠르다. 암실기심은 어두운 방에서도 속이지 말라는 것인데, 남이 모른다고 해서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절대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 여기서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다 나오는데 번갯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설마 설마 하는데, 그게 아니다. 알수록 말을 못 한다. 백지 한 장으로 눈 앞을 가려도 전체가 다 보인다. 신안(神眼)이라는 것은 막히는 게 없다. 멀고 가까움도 없다. 미국을 보는데 산이 막혀 있다고 못 보지 않는다. 번갯불에 비길 바가 아니다. 못 속인다. 도를 믿는다면 이것을 믿고 나가야 한다.
신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안다. 이 세상에서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면 부모도 다 모르고 나도 다 모른다. 기억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은 다 안다. 신은 상대방이 마음먹는 것까지도 다 안다. 도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도 알고, 도가 얼마나 엄한지도 안다. 며칠 지난 것도 알고, 몇 달 후 해나갈 것도 다 안다. 자기 것뿐 아니라 남의 것도 다 안다. 모르면 설마 설마 하지만, 도를 알면 얼마나 무섭고 겁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밖의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상대방이 어떤 마음으로 과거에 해왔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다 안다. 무당들은 맞고 틀리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다. 직접 본다.
도인들 앞에는 한 분씩 신명이 다 따라붙어 있다.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믿지 않으니 속이는 것이다.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다. 여기 큰공부하신 분들은 다 본다. 신명이 보호해 주다가 잘하면 더 힘이 되고, 못하면 떠나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가다가 말 안 듣고 울고 떼쓰면 떠밀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해 보면 된다. 임원이면 내가 말한 것을 듣고 지켜야 한다. 임원으로서 그것을 분간 못 하면 아무 자격이 없다. 죄만 짓는다.
신명은 내가 잘못한 것을 안다. 살아오면서 자기도 기억 못 하고, 부모도 기억 못 하지만 신명은 다 안다. 전생도 안다. 삼생(三生)의 인연을 가져야 내 사람이 되고 운수를 받는다고 하셨다. 내 전생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했으며 왜 도를 닦는지도 안다. 가령 우리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도 다 안다. 버스 타는 것, 화장실에 있는 것, 실지 그대로 다 보인다. 절대 망상이 아니다. 과거⋅현재⋅미래를 다 안다. 저 사람이 며칠 전부터 뭘 하고 있는지 다 알게 된다. 도가 이렇다는 것, 다 알게 된다. 자기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모를 것인데 다 알게 된다. 식당이라고 하면 식당에 어제는 손님이 몇 명 들었는지, 오늘은 몇 명 드는지, 주인은 모르지만 신명은 다 안다. 주인은 수저가 몇 개인지 모르나 신명은 안다. 여기서 보고 싶은 것은 다 볼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다. 더우면 추운 지방의 한기(寒氣)를 끌어다 쓰고, 추우면 열대지방의 열기를 끌어다 쓴다. 절대 남용은 못 하게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을 했다가는 죄를 짓는다. 절대 속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92. 5. 31)
‘신목여전하니 암실기심하지 말라.’는 말이 수운가사에 있을 것이다. 남이 모른다고 해서 매양 속이지 말라. 신의 눈은 번갯불과 같다고 했는데 나는 번갯불보다 빠르다고 했다. 오고 가는 것도 그렇다. (1992. 5. 31)
도장이라면 늘 정결하고 신성해야 한다. 그러자면 항상 깨끗해야 한다. 신성(神聖)하다는 것은 신명(神明) 신(神) 자에 성인⋅신선 성(聖) 자를 말한다. 도장은 상제님을 모시고 천지신명을 모신 자리다. 그러므로 늘 깨끗하고 신성하여야 한다. 꼭 무엇을 치워서 깨끗하다는 것보다는 도장 안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을 항상 정결하고 깨끗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 보인다고, 보는 사람 없다고 무슨 상관이냐 하는데, 그게 아니다. 내가 알고 신명이 아는데, 어떻게 마음 하나 속이고 느슨하게 먹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헝클이게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늘 깨끗한 정신, 마음을 가져야 한다. (1993. 1. 28)
안심(安心)⋅안신(安身)하고 수도에 임하기 위해 우리는 도장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수호하는 목적은 도인들의 수도⋅공부에 만전을 기하는 데 있습니다. 수도에 임하는 도인들은 성⋅경⋅신을 다하여 수도자의 자질을 한층 더 높여 가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뜻이나 언어ㆍ행동ㆍ처사에 대해서 날이 가면 쉽게 망각하게 되나, 천지신명들은 인지(認知)하고 있음을 도인들은 항상 명심하여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1993. 2. 4)
도통은 수도가 없이는 안 된다. 수도는 남이 해줄 수가 없다.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도해 나가야 하며 거기에 입각해 도인을 길러야 한다. 무자기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속이지 않는 것, 무자기가 우리가 수도해 나가는 원 기본이다. 이것 없이는 안 된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포덕을 하면 자기의 연운이라 하고, 연운의 수효에 따라서 선감⋅교감, 선사⋅교정, 선무⋅교무의 직책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직책으로 도통을 받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도가 없이는 안 된다. 내가 스스로 닦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잘 모른다. (1993. 3. 3)
포덕은 남에게 도를 전해 상제님의 덕화를 입도록 해주는 것으로, 우리의 책무다. 포덕하고 교화하는 것도 실제는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 잘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무자기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 속이지 말아야 한다. 글에도 있지 않으냐? “인간사어(人間私語)라도 천청(天聽)은 약뢰(若雷)하고 암실기심(暗室欺心)이나 신목(神目)은 여전(如電)이다.”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천층만층이라도 신명이 다 살핀다. 나 혼자 속인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신명의 눈이란 번갯불과 같다. 도인을 지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속이지 말아야 한다. 속이면 안 된다. 늘 속이는 거기에서 불평과 방면의 분열이 생긴다. 수도가 없이는 도통이 있을 수 없다. 성공이란 게 없다. 수도는 남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다. (1993. 3. 3)
서로가 존경해야 한다. 밑의 사람이라고 함부로 막 해서는 안 된다. 밑의 사람 입장에서 의논해야 한다. 안 되는 것은 늘 속이는 데서 안 된다. 무자기,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절대 속일 수가 없다. 못 속인다. 지금은 묻어 놨다 하더라도 나중에 다 드러난다. 상대방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잘 알아듣게 말을 해줘야 한다. 우리의 일은 신명이 아는 것이다.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둬야 한다. 절대 속이면 안 된다. 전부 신명이 도통을 준다. 잘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크게 욕심부리는 것보다도 그 위치에서 해야 할 책무를 다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어서 도통이 크고 그런 게 아니다. 도통은 크고 작은 것을 떠나서 받기만 하면 그보다 큰 영광이 없다. 무자기가 근본이라는 것, 속이면 안 된다는 것, 이것을 명심하고 꼭 믿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 꼭 믿어야 한다. (1993. 3. 3)
도인은 무자기를 원칙으로 한다. 내 마음을 내가 속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진흙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된다. 나중에는 빠져나오지도 못한다. (1993. 4. 1)
우리는 정성⋅공경⋅믿음, 즉 성⋅경⋅신 삼법언(三法言)과 안심⋅안신 이율령(二律令)을 믿고 닦으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것을 꼭 지키고 참으로 몸과 마음에 배면 실제로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렵다면 옳게 못 닦아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신을 수도의 요체로 삼고, 안심⋅안신을 수행의 훈전으로 삼아 무자기를 근본으로 해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수도해 나가면 자연히 정신이 통일되니, 이것을 영통이라고 하고 도통이라고 하는 것이다. 안 하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해원상생 원리에 입각하지 않고는 도통이 되지 않는다.
성(誠)은 심(心),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고, 경(敬)은 신(身), 몸으로 경을 다하는 것이며, 신(信)은 처사, 즉 일을 믿음으로 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수도의 요체로 삼고 안심⋅안신을 수행의 훈전으로 삼아서 나가야 한다. 안심⋅안신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내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해서 윤리도덕을 숭상하면 자연히 정신이 통일이 되어 삼라만상의 굽고 바른 것을 다 알고 무소불능(無所不能)하니 이것을 영통, 도통이라 한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도 해원상생이다. 이 원리가 아니면 되지 않는다. 이 원리에 입각해서 해나가야 한다. (1993. 4. 27)
기독교에서는 불로 심판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신명 심판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야 한다. 첫째가 속이지 않는 것이다. 속이면 안 된다. 모르겠지 하겠지만, 통한다면 과거⋅현재⋅미래가 다 훤한데 못 속인다. 거울같이 다 들여다본다. 속일 수가 없다. 그러니 참 잘해야 한다.
다른 데서 공부하는 것하고 다르다. 신명에게 무엇을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신명이 와서 무엇을 일러주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정신통일이다. 정성으로 내 마음과 몸을 유리알같이 깨끗하게 직접 닦는 것이다. 깨끗해지면 저절로 직접 다 알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신안(神眼)이고 개안(開眼)이다. (1993. 4. 27)
도인이라고 하면 무자기를 근본으로 삼아 나가야 한다. 무자기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지키는 것보다 행해야 하는 것이다. 수반이고 임원이고 간에 이것을 원칙으로 하라. 수도가 다른 게 아니다. 속이지 않는 것, 그게 수도다. 내 마음을 내가 속이지 않는 것, 그게 근본이다. 그게 안 되니까 자꾸 얘기하는 것이다. 몸에 푹 배어야 한다.
무자기를 근본으로 삼고 임원으로서 모든 일을 해나갈 때는 공명정대해야 한다. 무편무사하게 일 처리를 해야 한다. 편벽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어느 사람 밉고, 어느 사람 곱고, 그런 것이 없다. 다 똑같다. 공명정대, 무편무사가 생활화되어야 한다. 생활로 삼고 나가자. 그것이 수도다. 이것을 생활화하여 나가라. 편벽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말로는 해놓고 행동은 엉뚱한 짓을 한다. 백 말을 해봐야 그렇다. 우리는 첫째 목적이 운수 받고 도통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자기를 근본으로 공명정대, 무편무사하고 편벽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993. 5. 28)
훈회, 수칙에도 있다. 그것이 다른 게 아니라 전부 해원상생이다. “마음을 속이지 말라”, 무자기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언덕을 잘 가지라”, 화복(禍福)이 입속에 있다고 했다. 말 한마디로 복을 가질 수도 있고 화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언덕을 잘 가져야 한다.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서로가 은혜를 입고 간다. 임원이라도 후각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아랫사람도 윗임원이 있기 때문에 이 도를 알게 된 것이니 서로 감사해야 한다. “남을 잘 되게 하라”, 나보다도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광제창생의 이념이고, 해원상생의 기본원리이다. 수도가 다른 게 아니라 이게 수도다. 이것을 잘 지키고 실행함으로 해서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는다.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다. 참으로 몸에 푹 배어야 한다. 도통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려울 게 없다. (1993. 5. 28)
경천이라는 것은 모든 행동에 있어서 조심하고 상제님 받드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항상 나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믿는다 해도 늘 부족한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이 경천이다. 우리가 모르니까 그렇지 상제님께서는 다 보고 계신다. 그것을 모르니까, 믿지 않으니까 안 좋은 일을 한다. 그걸 모르니까 속이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그런다.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신다는 것을 자나 깨나 늘 마음속에 잊지 말고 늘 부족한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이 경이고 거기서 경천이 나온다. (1993. 6. 24)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을 믿는 것이다. 신이 도고 도가 신이니, 우리는 신을 믿는다. 정신을 집중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 도가 신도(神道)인 것이다. 즉 신명의 도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조금도 속이지 못한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모든 게 똑같다. 늘 얘기하는 것이다.
앞으로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밖에서는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시료를 도저히 이해 못 한다. 똑같이 마찬가지로 학교 만드는 것도 신명이 하는 것이지 사람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도를 믿는다는 것은 신을 믿는 것이다. 신을 믿는다면 조금도 속이지 못한다. (1993.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