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에 대한 훈시(2)
어느 한 곳이 이상하면 전체가 이상한 것이다. 한 가지를 알면 열 가지를 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할 수가 없다. 대순진리회 하면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다 관심을 쏟고 있다. 선⋅교감이라면 종단의 최고 임원이고 지도자 아닌가? 자칫하면 죄를 짓는 것이다. 임원이면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서 내가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말과 행동을 잘못하면 종단에 누를 입히는 것이다. 정말로 고치고 잘해야 한다. 도인이라고 하면 밖의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아주 특별하게 달리 본다. 잘해야 한다. 종교인이고 도인이니까 달리 본다. 사회 사람에게 모범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을 잘못하는 것이 죄다. (1991. 4. 20)
선감이 너무 수반까지 챙긴다고 불만이었는데 그건 오히려 고맙고 좋은 것이다. 윗사람의 위신을 세워줌으로써 자기도 아랫사람에게 존경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방면의 단결, 거기서 임원의 실력이 나오는 것이다. 화목이란 게 단결이다. 우리 종단의 생명은 단결이다. 그게 없으면 안 된다. 가령 밑의 선무체라고 했을 때 그 앞의 선무나 도인들이 화합과 단결이 잘 되어 모든 일이 잘되면, 그 수선무가 잘한다고 하고 밑의 수반들도 대견한 것이지만, 앞의 선무나 도인들이 못하면 수선무가 저러니까 그렇지 하며 수선무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밑의 수반들도 도인 같지 않고 어두워 보인다. (1991. 6. 12)
열(烈)은 여자에게만 한한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열녀(烈女)는 불사이부(不事二夫)요, 충신(忠臣)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말이 있다. 도를 믿는데,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으라는 그런 뜻이다. 충효열이 세상의 강령이다. 열이란 여자는 남자를 하늘과 같이 존경하라는 것이고, 남자는 여자를 땅같이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1. 12. 5)
우리 도인들은 누구나 다 대운(大運)을 원하고 도통을 목적하고 나간다. 우리가 큰 운수를 원하고 도통을 목적으로 생활해 나가는 것, 즉 행하고 움직이는 것이 수도이다. 우리의 수도가 곧 우리의 생활이다. 일상의 모든 행동과 처신처세, 일동일정이 모두 수도이다. 수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행동과 처신이다. 도인끼리는 상호 간에 서로 존경해야 한다. 임원으로부터 평도인에 이르기까지 항상 일동일정이 도통과 대운을 받기 위한 것이다.
늘 강조하지만, 임원들인 선⋅교감들이 잘해야 밑의 수반들이 따라서 잘한다. 도인들이 봐도 배울 것이 없고, 밖의 사람들이 봐도 도인다운 점을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니 먼저 우리끼리 서로 아끼고 귀중하게 생각하며 존중해 나가야 한다. (1992. 12. 28)
옛날에 왕가(王家)에서 아들 형제를 여럿 낳게 되면, 종손은 세자, 그다음 형제들은 대군이라 했는데,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왕자는 어린애라도 절을 했다. 임금의 아들이라도 서로 형제 동기간이면서도 반말을 못 했다. 형제지간이라도 말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못했다. 자기 동생이라도 “이놈의 자식” 하고 함부로 못 했다. 모두가 지존 지엄한 임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동생이라도 하대하고 손을 못 대었다. 아버지가 지존의 자리에서 보고 있고 다 같은 왕의 자식이니 서로 함부로 못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보다 못하냐 하면 더하다. 우리는 모두 상제님의 도인이니 그것보다 더하다. 일국의 왕가도 그러한데 우리도 서로 귀중하게 생각하고 말 한마디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 수도의 중요한 점이 거기에 있다. 서로가 그것을 잊지 말라.
(1992. 12. 28)
임금의 아들을 대군이라 하는데 대군 즉, 여러 형제를 많이 둬야 나라가 번영한다. 임금이라면 아들이고 딸이고 많이 둬야 한다. 그게 울타리가 된다. 그래야 정세를 잘 알 수가 있다. 바른말을 해주는 것은 내 자식이니 그렇다. 아니면 귀가 어두워진다. 대군이라도 서로가 귀중하게 생각하고 서로 존대한다. 왕비가 비록 자기 아들이지만 존대한다. 사극을 보면 나온다. 그것을 잘 알면 된다. 자기들을 낳은 분이 아주 높은 지존이므로 서로가 귀중하게 생각하며 존대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더하다. 내가 포덕을 했으니 내 도인이다 생각하고 함부로 하는데, 도인은 하느님의 아들, 딸이다. 자꾸 착각해서 ‘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니까 화를 내고 소리도 지른다. 위를 생각하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 없어야 한다. 귀중하게 생각하면 서로가 존중하는 것이다. 일개 왕가에다 비유했는데, 상제님은 하늘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니 왕가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몇천, 몇만 배 지존 지엄하신 상제님의 도인이다. 그러니 도인들을 아주 금싸라기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지켜나가는 것이 수도이다. 주문만 읽는다고 그게 수도가 아니다. 내 마음을 깨끗이 닦는 그게 곧 수도인 것이다. 깨끗하게 닦으면 통한다. (1992. 12. 28)
임금 앞에 많은 대군이 서로가 존중한다. 자기를 낳은 아버지가 높은 지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형제 모두가 아버지의 자식들이니 서로가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존 지엄하신 상제님 아니신가. 지존 지엄하신 상제님의 사람이라 생각하면 다 귀중한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잘해야 한다. 어렵다고 말을 못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목적은 도통이고 그것은 서로가 가르치고 배우는 데 있다. 그게 우리의 수도이다. 그것을 안 하면 도인이 아니다.
(1992. 12. 28)
우리는 도인이고 비도인이고 간에, 누구를 대하든 항상 상대방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도인을 지도하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위협적으로 도인을 지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말로써 충분히 이해시켜나가 도를 잘 알도록 하는 것이다. 원래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다. 원 근본은 말로써 이해시켜 알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는 도통을 받도록 이끌어주는데 밑의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준다면서, 윗사람이라 해서 위압감으로 아랫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거기에는 척밖에 올 것이 없다. 그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이다. (1993. 1. 28)
충분히 잘 알도록 일러주는 것이 교화다. 막 욕지거리를 하고 마치 자기가 도통을 주는 듯이 하는 일이 많은데 위협이나 욕설로는 안 된다. 나중에 운수를 못 받는다. 우리는 항상 밖의 사람이거나 도인이거나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이거나 다 존경해야
한다. 그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존경하라고 해서 허리를 굽혀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경(敬)이란 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나도 중하게 여기고 남도 중하게 여겨라. 다른 곳에서는 “남을 사랑하라.” 했지만, 우리는 “남을 존경하라.”고 한다. 상대방을 존경하면 상대방이 이쪽을 나쁘게 안 한다. 악을 선으로 갚아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를 피로 씻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남을 존경해야 한다.
(1993. 1. 28)
우리의 해원상생 원리가 아니고서는 세계평화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목적도 근본도 평화다. 평화스러우려면 항상 서로가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도인이든 아니든,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모두 다 존경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화목이 되고
화목이 오므로 평화로워진다. 항상 남을 존경해야 함을 잊지 말라. 그 속에 화목이 있고 화평이 있고 단결이 있는 것이다. (1993. 1. 28)
해원상생(解冤相生)은 모든 사람을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이 존경입니다. 남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악(惡)을 선(善)으로 갚아 나가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이므로 해원상생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존경하게 되면 나도 존경을 받아 인망(人望)을 얻고 또한 신망(神望)을 얻게 되어 도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존경하여 척이 없이 깨끗하게 수도하면 어느 누구도 나를 나쁘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여 인망을 얻게 되면 신명도 알게 되어 신망을 얻게 됩니다. 인망과 신망을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도인들은 명심하여 언제나 해원상생의 원리로 혁신해 나가야만 합니다. 해원 없이 상생 없고 상생 없이 해원은 없습니다. (1993. 2. 4)
방면 체계나 가정, 국가, 사회의 모든 조직체는 공존 공생(共存共生)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척이 없이 서로 돕고 존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방면 체내(體內)가 편안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 국가가 안정되고 천하가 화평하게 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1993. 2. 4)
문제가 생기면 밑의 사람만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잘해야 한다. 위의 임원에게 잘못이 있다. 쉽게 말해 신임을 못 받으면 안 된다. 그것이 인망이다. 사회에서도 덕망이 크다 하고 존경하고 안 그래요? 인망에 오르면 신망에 오른다. 잘해야 한다. 임원이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잘해야 한다. 절대로 수도 없이는 안 된다. 닦는다는 것은 내가 닦는 거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수도는 자기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다. 수도라는 것이 꼭 주문만 읽고 앉아있는 게 아니다. 임원이 되어 가지고 밑의 도인들에게 배신당하는 것, 그것도 잘못이다. 임원은 밑의 도인에게 잘해야 한다. 위에서 잘했는데 밑에서 배신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밑의 잘못이다. 무조건 윗사람만이 잘못하고 밑의 사람이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개가 윗임원의 강권으로 상하가 안 맞아서 잘못된다. 도는 참 어렵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알면 쉽다. 모르니까 안 되는 것이다. 안다면 지켜진다. (1993. 3. 3)
서로가 존경해야 한다. 밑의 사람이라고 함부로 막 해서는 안 된다. 밑의 사람 입장에서 의논해야 한다. 안 되는 것은 늘 속이는 데서 안 된다. 무자기,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절대 속일 수가 없다. 못 속인다. 지금은 묻어 놨다 하더라도 나중에 다 드러난다. 상대방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잘 알아듣게 말을 해줘야 한다. 우리의 일은 신명이 아는 것이다.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둬야 한다. 절대 속이면 안 된다. 전부 신명이 도통을 준다. 잘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1993. 3. 3)
우리는 늘 해원상생이다. 상제님의 공사는 광제창생, 세상의 창생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살리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 저 사람 죽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살리려 하고 같이 살려고 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는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경하라는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도인뿐만이 아니다. 밖의 사회 사람이라도 존경해야 한다. 밖의 사람이건 안의 사람이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에 빠지면
건져주고 해야 한다. 해원상생은 서로가 아무 원망이 없이 서로 존경해 나가는 것이다. (1993. 4. 27)
늘 얘기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 서로가 감사해야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감사할 게 뭐가 있냐?’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혼자는 못 사는 것이다. 서로가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이 다른 게 아니다. 서로가 존경하면서 조화하는 것이다. 조화가 다른 게 아니라 좋은 것이 조화다. 서로 조화가 되어야 거기에서 가정화목, 이웃 화합, 사회 화평, 세계평화가 나온다. 이것이 상제님의 사상이다. 우리는 그 사상을 이어서 생명으로 알고 지켜나가야 한다. 해원상생은 평화사상이다. 화목⋅화합⋅화평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해원상생을 나쁘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1993. 5. 28)
행하는 데 있어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도이고, 목적은 도통이다.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야 된다. 그래야 해원상생에서 도통진경(道通眞境)에 들어간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가 있다. 여러분은 판단 못할 것이다. (1994.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