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에 대한 훈시(3)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그 원(冤)을 풀면 산다. 원을 가지면 죽는다. 명심해라. 해원상생, 그것을 못하면 죽는다. 간단히 말하면 서로 원망 없이 저 사람도 잘 되고 좋아지고, 나도 내 길이 열려 잘 되고 좋아지는 것을 얘기한다. 나는 저 사람에게 잘 해주는데, 저 사람은 내 감정을 자꾸 건드려 좋은 사람을 괜히 나쁜 사람 만들어 놓는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잘 이해해야 한다. 저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다. ‘전생의 나의 척신이 저 사람을 이용해서 그런 것이다.’ 하고 뉘우치고 도리어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도를 믿는 것이다. 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지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밖의 사람하고 같다. (1992. 1. 11)
이웃 간에 가장 먼저 가까이서 보는 것이 가정이다. 늘 얘기하지만, 우리가 도를 믿는데, 도인으로서 근본적인 것은 가정을 잘 지킨다 하는 데 있다. 부모와 자식, 형제 이렇게 가정이 이루어지는데,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도리만 다하면 된다. 한 가정에서 제일 중한 것이 부모 자식이다. 도를 믿기 전에는 몰라서 피했다면 몰랐으니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를 믿으면서 안다고 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해하여 참고 넘겨야 한다.
가정에서 제일 뭐한 것이 내외간(內外間)이다. 내외간에는 어떤 것이라도 이해해야 한다. 도를 믿기 전에 헤어졌다면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만, 도를 믿고 나서 헤어진다는 것은 안 된다. 도를 믿고 도를 안다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해해서 참아 넘겨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는 것은 할 수 있다. 얼마든지 우리의 행사를 그대로 행할 수 있다. 마음 하나로 다 이루어진다. 도를 믿는다 하면 잘 살아야 된다. 반대하더라도 절대 할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마음 하나다. 우리는 무엇보다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잘못들 생각하고 있는 게 내외간에 사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1992. 2. 8)
이웃 간에도 역시 동일하다. 상대방이 나의 뺨을 치거든 그 손을 어루만져주라. 이웃이 해코지해도 우리는 이해를 해줘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웃 간에 서로 사이가 좋다가 도를 믿으면서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아주 친한 사이에도 서운한 생각이 든다. 참 정다웠는데도 믿는 사람이 도 밖에 있는 사람을 격리해버린다. 도를 안 믿는 사람보다는 도를 믿는 사람을 더 자주 대하게 되고 또 서로 잘 통하므로 안 믿는 사람과는 자연히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웃과 사이가 나빠졌다면 덕화 손상이 된 것이다. (1992. 2. 8)
혼자는 못하는 것이다. 나 혼자 못하니까 서로 이해 못 하면 안 된다. 혼자 있다가 도통 받을 것 같으면 종단이라 할 게 없다. 혼자는 안 된다. 혼자 믿어서 되는 법은 없다. 우리 종단에 여러 방면, 여러 사람이 있어서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협력하니까 큰 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니면 이루지 못한다. 도통도 그렇다. 여러 자리가 다 들어서야 되는 것이지, 그 숫자대로 들어서지 못하면 안 된다. (1992. 2. 8)
만약 가정의 불화가 생길 경우에는 가족들이 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임을 깊이 이해하여 절대로 척을 짓는 일이 없이 가족에 대한 깊은 이해 속에 가화(家和)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992. 2. 10)
또한, “남이 나의 뺨을 때리면 그 손을 어루만져 주라.”는 말씀도 있듯이 우리 도인들은 타인에 대해 해원상생의 진리로 이해하는 생활태도를 간직하여야 합니다. (1992. 2. 10)
늘 하는 이야기지만, 방면의 파벌은 절대 용서를 안 할 것이다. 자꾸 분열이 일어나면 좋지 않다.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것이다 생각하면 된다. 분파, 이것은 살인으로 생각하면 된다. 자기 임원이 좀 못한다고 해서 그러면 안 된다. 우리는 해원상생이다. 늘 얘기하지만,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이다. (1992. 3. 14)
도인들 생각하고 우리가 잘못하면 도인들이 다친다 생각하면 된다. 선⋅후각 사이에 이렇게 가면 절대로 분열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근본이다. 해원상생이란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하면 절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많은 도인을 생각해서 아래위를 잘 살펴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1992. 3. 14)
복희 선천은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고 3⋅8 목(木) 봄 절후이며 목신사명(木神司命)이었다. 문왕은 여름 절후이고 2⋅7 화(火), 화신사명(火神司命)이다. 우리는 금신사명(金神司命)이다. 금(金)은 4⋅9, 서쪽이고 가을이며, 금신(金神)은 상제님을 말하며, 그래서 상제님께서 미륵금불에 오셨다. 불교에서 찾는 미륵은 상제님을 말한다. 이것을 진리라고 한다.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시킬 줄 알아야 한다. (1992. 4. 9)
포덕을 시키고 교화를 시킬 때 몸과 마음에 배여 생활화시킬 수 있도록 하라. 무엇보다 본인이 잘 이해하고 믿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진리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진리를 이해하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믿다가 떨어지고 다른 데로 가게 된다. 믿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충분하게 이해를 못 시켰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 하면 우왕좌왕하는 것이니, 포덕을 하는 것보다도 들어온 한 사람을 떨어지지 않게 잘 이해시키고 가르치도록 하라. (1992. 4. 9)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 말로만 화목해서는 안 된다. 이웃 간에도 화합하고 사회에서도 화평해야 한다.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하여 심(心)⋅신(身)⋅사(事)에 있어서 꼭 지키고 행하여야 한다. 이것이 도의 근본이고 원리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꼭 이것을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못 지켜도 우리는 지킬 수 있다. 왜냐하면 도를 믿고, 운수가 있고 도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를 닦는 데 있어서, 이것을 충분히 이해시켜 꼭 알고 지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가정에 있어서는 나부터 내 위치에서의 도리를 지켜라. 참 어렵다. 설령 가족이 안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지키면 가정화목을 이룬다. 각기 자기 위치에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형⋅동생도 각자의 위치에서 도리만 지켜나가면 가정화목이 된다. 도를 믿는다면, 나의 위치에서 나의 도리를 지켜나가 화목을 이룰 수 있다. “내가 너 때문에 도를 믿을 수 있다, 없다.”라고 얘기할 수 없게 된다. 실지로는 모르니까 그런 것이다. 큰공부를 해보면 안다. 도를 닦으면서 가정을 버린 사람이 있는데 설령 그 집에서 같이 못 살겠다고 말을 하더라도 찾아가서 같이 살자고 얘기를 해봐야 한다. 모르니까 그렇지 안다고 하면, 우리 도를 잘 이해시키고 도인이 올바르다는 것을 이해시켜 함께 살도록 해라. 가정화목이 제일 우선이며 도의 근본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다. 옛말에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고 했다. 오는 정보다 가는 정이 먼저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더라도 신뢰하고 상대방에게 먼저 잘하면 조용하다. 내가 해롭게 하지 않고 먼저 잘하면 자연히 화합이 된다. 이것이 우리 도의 근본이고 해원상생이다. 가정이 화목해야 하고 이웃끼리 화합해야 하고 사회가 화평해야 한다.
우리 도인끼리도 화목해야 한다. 도인으로서 서로가 방면이 다르더라도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합해야 한다. 융화 단결하라. 단결이라는 것은 화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방면이 다르더라도 여러 사람의 힘을 합해야 우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으니 서로 고맙게 생각하고 단결해야 한다. 대학교 짓는 것을 봐도 그렇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된다. 나중에 운수를 받고 도통을 하는 것도 서로가 힘을 합치는 속에 있는 것이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도인끼리는 융화 단결해야 한다. 융화 단결이란 서로가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다. 몇 사람이 일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러니 서로 고맙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단결심이 우리 도의 근본이다. 이 근본을 지켜야 우리가 바라는 운수와 도통을 이룰 수 있다. 이게 우리 도의 신앙이고 근본이지 다른 것은 없다. 도인을 기르는 데도 이를 충분히 이해시켜 나가라. 확고하고 자신 있게 이해시켜야 한다.
가정⋅사회⋅이웃에서도 도인이 먼저 단결해야 하는데, 늘 성⋅경⋅신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도의 근본이고 뿌리이다. 정성, 공경, 믿음 이것이다. 부모 앞이든 친우 간이든 도인 간이든 성⋅경⋅신, 이것을 마음⋅몸⋅처사에 실천하게 하라.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 일을 하나 하더라도 정성으로 해보라. 사람을 대하는 데도 정성으로 믿고 공경해봐라. 서로가 공경하고 믿는 데 안 될 일이 없다. 상대방을 이해로써 맞이하고, 무엇이든지 이해시켜라. 내가 먼저 해야 한다. (1992. 5. 3)
지방 사업이라고 하는데, 첫째는 덕화를 펴는 것, 포덕이다. 쉽게 말해서 그것을 사업이라고 한다. 포덕해서 회관 또는 회실, 연락소에서 도인으로 육성시키는 것이다. 도인으로 만든다는 것은 첫째로 진리로써 도를 확신케 하여 도를 믿게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우리가 목적하는 바가 옳고 틀림없다는 것을 이해⋅확신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사업의 기본 원리이다. 다른 것이 없다. (1992. 11. 17)
도인을 만들어 나갈 때 절대 그 사람을 잘 이해시켜 나가는 것이지, 밑의 사람을 도인 만든다고 위협하고 소리 지르고 그러는 게 아니다. 잘 알도록 이해시켜라. 잘 알면 나쁘게 하지 않는다. 야단쳐서 사람 되는 것 아니다. 도인 가꿔나가는 데 절대 욕해선 안 된다. 이해를 시키도록 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잘 타일러야 부모 말을 옳게 듣고 나가는 것이지, 소리 지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 위협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이 잘 알도록 이해시켜주고 가르쳐주는 것이 사람 만드는 것이다. (1992. 11. 17)
평생을 해도 다 모르는 것이 우리 도니, 평생을 우리는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서로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서로 어머니와 아들 같은 사이,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 철모르는 얘들이 어머니한테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 서로 가르치고 알려고 배우며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귀중하게 생각하고, 말 한마디라도 존대하고…, 그것 아닌가?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서로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1992. 12. 28)
다른 게 아니라 상제님 자식이라는 것, 상제님 도인이라는 것, 그것만 생각하면 모두가 귀중하니 금이 가려야 갈 수가 없다. 그게 안 되니까 잘못하는 게 생긴다. 잘 이해하라. 수도의 제일 근본인 이것을 안다면 절대 금이 갈 게 없다. 우리는 서로 아껴주면 된다. (1992. 12. 28)
우리는 수도 중이다. 수도가 우리의 생활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밖에서나 안에서나 해원상생의 원리에서 생활해 나가야 한다. 해원상생은 쉽게 말해 서로 이해하고 상부상조하고 서로 양보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화장실에 가서도 서로 양보하는 것이다. 도장에서도, 방면에서도, 전 사회 사람에게도 다 그렇게 해야 한다. 바깥사람한테도 같아야 한다. (1992. 12. 28)
도인들이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도록 잘 만들어줘야 한다. 도인이 도통을 받을 수 있도록 도인을 완성하고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의 진리, 우리의 법을 잘 지켜나가도록 인도해주는 것을 교화라 한다. 교화해나가는 데 있어 때리거나 위압감을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이해시켜서 충분히 알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교화다. 그 사람이 나중에 운수 받고 도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교화가 제일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해라는 것은 내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잘 알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해를 시켜야지, 위압감을 주면 오히려 척만 짓는 것이다.
우리는 도인이고 비도인이고 간에, 누구를 대하든 항상 상대방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도인을 지도하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위협적으로 도인을 지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말로써 충분히 이해시켜나가 도를 잘 알도록 하는 것이다. 원래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다. 원 근본은 말로써 이해시켜 알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는 도통을 받도록 이끌어주는데 밑의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준다면서, 윗사람이라 해서 위압감으로 아랫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거기에는 척밖에 올 것이 없다. 그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이다.
사회에서 아무리 가까운 형제, 동기간이라 해도 윗사람, 형이 나무라면 서운한 감정이 있게 마련이다. 부모가 해도 그렇고 조부모가 해도 서운한 감정은 마찬가지다. 가정교육을 시킬 때도 막 야단쳐서 옳게 만들려는 것이 있고, 말로써 충분히 알도록 잘 이해시켜서 하는 것이 있다. 야단치는 것은 무식한 부모가 그런다. 뭘 잘못했다고 “이놈 새끼, 나쁜 짓 한다.” 하고 몽둥이로 때리고 하면 아무리 자기를 낳아준 부모라고 해도 감정만 생기고 원망을 하게 된다. 그것이 척인 것이다. 위협으로 사람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척밖에 따를 게 없고 잘 알도록 이해시키면 상대방이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도인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우리가 도 닦으면서 제일 무서운 게 척신이다.
가정에서도 아무리 잘못해도 나쁜 짓 한다 해서 몽둥이 가지고 만들려고 한다면 원망밖에 안 온다. 원망이 큰 척이니 척밖에 올 것이 없다. 도인은 더 하다. 그런 일이 많다. 잘 이해하도록 말로써 교화하면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될 텐데, 밑의 사람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인마! 너 그러면 도통 받을 줄 알아?” 하면서 마치 자기가 도통 줄듯이 얘기한다. 거기에서는 척밖에 안 돌아온다. 척을 많이 쌓으면 다른 사람은 그만두고 자기 자신부터 운수를 못 받는다. 그러니 “무척 잘 산다.”는 말이 있지 않으냐?
늘 얘기하는 것이다. (1993. 1. 28)
도통이 급한 것이 아니라 수도가 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잘 깨우쳐 도통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교화(敎化)가 필요합니다. 항상 상대방에게 진리를 잘 이해시켜 주어야 합니다. 만일 위협감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원망을 사게 되어 척만 짓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를 타이를 때도 올바른 도리를 잘 이해시켜 깨닫게 하면 감사히 생각하여 가정이 화목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야단을 쳐 나무라기만 하면 감정을 상해 원망이 생겨 척이 쌓여 가정불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1993. 2. 4)
밑의 사람이 많을수록 어렵다. 몸뿐만 아니라 말까지도 어렵다. 그런데 밑의 사람을 아주 그냥 쉽게 알아버린다. 임원들 자신이 잘 이해를 못 해서 밑의 도인들을 막 대한다. 몰라서 그런다. 거기에서 늘 불화와 분열이 생긴다. 대개 그렇다. 도인들의 다툼은 밖의 사람, 이웃 간의 싸움 그 이상으로 더 하다. 방면에 불화, 불만이 생기는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게 아니라 윗임원이 자기 권위를 내세우고 그러다 보니 밑의 사람을 급기야는 사람 취급을 안 하고 그래서 밑의 사람이 발버둥 치다가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 포덕할 때 마음먹고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된다. 밑의 사람들을 어렵게 생각해야 한다. 윗임원이 밑의 사람을 위력으로 꼼짝 못 하게 하면 처음에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다가 언젠가는 부러진다. 나중에는 체해버리고 굳어버린다. (1993. 3. 3)
돈 문제가 없으려면 성금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성금은 도가 좋고 옳기 때문에 진심에서 우러나와 자진해서 내는 것이다. 교화를 잘해서 세계평화의 근본원리인 해원상생의 법리를 잘 이해시키고 우리의 목적인 도통과 운수를 잘 이해시킨다면 성금을 더욱 정성스럽게 모실 것이다. (1993. 4. 1)
사회 사람도 포덕해야 되지만, 가족들도 다 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기본 원리를 잘 이해해 나가면 식구들 다 된다. 안 될 집이 없다. 우리의 원리, 법대로 해나가면 다 된다. (1993. 4. 27)
우리가 해원상생 그것만 잘 이해하고 행하면 된다. 그것을 잘 지켜 나가보라. 사회 사람들에게 다 지켜 나가보라. 그것을 옳게 이행 못 하니 탈이 난다.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서 생활하고 수도해 나가면 누가 나쁘다고 하겠느냐? 그게 안 되니까 그러는 것이다. 우리는 해원상생을 생명처럼 실천해야 한다. (1993. 5. 28)
우리는 항상 서로가 돕고 이해하고 같이 융화 단결해야 한다. 그것이 해원상생 대도의 근본이 된다. 말보다도 실천에 옮기고 항상 생활화해 나가야 한다. 어렵다. 어렵다면 참으로 어렵고, 쉽다면 참으로 쉬운 것이다. (1993. 11. 4)
행하는 데 있어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도이고, 목적은 도통이다.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야 된다. 그래야 해원상생에서 도통진경(道通眞境)에 들어간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가 있다. 여러분은 판단 못할 것이다. (1994. 8. 4)
어디 가도 우리 종단을 자랑할 수 있다. 우리는 첫째가 해원상생이다. 포덕도 해원상생으로 해 나간다. 해원상생은 서로 이해하고 돕고, 무엇보다도 가정화목, 이웃화합, 사회화평, 온 세계를 평화스럽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1994. 8. 4)
내가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을 받들어 40년간 도를 이끌어오면서 남한테 갖은 모략뿐만 아니라 여러 일을 당해 오면서도 털끝만큼도 걸린 것이 없었다. 상대해서 한 번도 싸운 적 없었다. 내가 숙맥이라서 몰라서 그랬던 게 아니다. 내가 이기면 뭐하겠어? 조금 양보하고 이해하는 게 낫지. 승리한다 해도 척을 맺는다. 도에서 볼 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척을 만들 필요가 없다. 덮어놓고 숙맥 짓 한 게 아니고 척을 안 지려고 그런 것이다. 서울로 와서도 다른 사람한테 흉한 소리를 많이 들었다. “도주님께 권한을 받으신 도전님께서 마음대로 하실 권리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왜 내버려두느냐?”고 하는데, 시일이 흘러가니 우리가 그때 부산 태극도에 매달려 그걸 찾으려고 싸웠다면 지금 대순진리회가 없다. 나에게 손해가 와도 절대로 대항이란 걸 하지 않는다. (1994. 8. 4)
우리는 해원상생이라는 기본 원리를 갖고 있으니, 서로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 가정에서 더 잘해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다 된다. 그러니 포덕을 많이 해라. 상제님께서 동리 동리 각 학교마다 태을주가 끊임없을 것이고, 집집마다 등대가 선다고 하셨다. 집집마다 태을주 소리가 다 나오도록, 전체가 다 믿도록 해야 한다. (1994. 8. 4)
도인 기르기가 참으로 어렵다. 전경에도 도인을 기르는 것이 누에 기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누에를 기르자면 손이 아주 자주 가야 하듯이 도인은 자주 만나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전경에 비인정(非人情)이면 불가근(不可近)이라고 했다. 인정(人情)이 없는 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뜻이다. 도인 상호 간에는 서로 인정이 가야 한다. 내가 포덕시켜서 도인이 되었다고 하면 가깝게 떨어지지 말고, 그래서 서로 인정이 가야 한다. 비인정이면 불가근이다. 인정이 뭐냐면 우리의 해원상생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정이다. 임원이든 아니든, 도인은 서로 보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서로 믿는 것이다. (1994. 9. 2)
우리는 무엇보다도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나가야 한다. 서로가 이해만 되면 걸릴 것이 없다. 다 풀린다. 우리는 서로가 고맙지 않은가? 서로가 참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우리의 수도다. (1995. 2. 5)
세계평화는 해원상생(解冤相生)이 아니면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일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하며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수도이며 “무척 잘 산다.”는 말처럼 척이 없어야 모든 일이 잘 풀려 내가 잘 되는 것입니다. (1995.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