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잘해야 한다. 그러자면 첫째가 가정화목이고 다음으로 이웃화합이다. 그것이 우리의 종교다. 이것은 우리가 생활화해 나가는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종교다.
가족이 다 따라 믿게 해 줘야 한다. 이것을 이루려면 자기 위치에서 자기 도리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 도리란 자기의 책무이다.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책임을 지키는 것이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됐으면 자식에게 어머니의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이고, 아버지가 됐으면 자식에게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에 대해서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부인은 남편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남편은 부인에 대한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이다. 부모, 자식, 남편, 아내의 도리만 다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화목이란 것이 된다. 진리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 먼 데 가서 구할 것이 아니다. 도를 믿고 안 믿고 간에 이 도리를 알고 지키는 것을 사람이라고 하고, 이 도리를 모르고 못 지키면 금수라고 한다. 각자 자기 위치, 자기 환경에서 자기가 할 일을 다 해나가는 것이 도리이고 책임이고 책무인 것이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생활이 원만하다.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고,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도리이다. 상제님께서도 비인정(非人情)이면 불가근(不可近)이라 하지 않으셨느냐? 가정에는 가정에서의 정이 흘러야 하고, 이웃 간에는 이웃에서의 정이 흘러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서로 상부상조해서 살아나가는 것을 말한다. 서로가 도와서 잘 되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이웃 간에 척을 짓지 말고 원과 한을 사지 마라. 서로 상부상조하여야 한다. 절대 ‘도인이다. 외인이다’ 찾지 마라.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어 이웃화합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수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발을 하려고 해도 여주 시내에는 안 간다. 원주로 간다. 원주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변두리로 간다. 중곡동에서도 면목동이나 청량리로 간다. 만약 그쪽에서 나를 알아보고 대순의 영도자라고 그러면 쉽게 본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 대순으로 돌아온다. 봐서 별 볼 일 없거든. 똑같아 보이고 오히려 더 못하지…. 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부러 피해 다닐 때가 많다. 중곡동 사람들은 내 얼굴을 모른다. 웬 할아버지로 안다. 이웃에 살면서도 모른다.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온 일이 있는데, “내가 아는 아주머니구먼. 들어와요.” 하니까 깜짝 놀란다. 본 적은 있는데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전에 천호동에 살 때 천리교를 믿는 이웃 사람이 있었는데 여자인데 아주 못 됐었다. 불교인이 지나가면 욕하고 그랬다. 아주 나빴다. 앞뒷집 사이인데,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서로 가깝지는 못해도 정이 들었다. 한 달에 몇 번씩 떡을 해먹고 우리 집에 꼭 가져다줬다. 받고 그냥 있어? 우리도 갖다 줬지. 그러니 정이 들게 되더라. 외인(外人)인데 나에게 아주 잘했다. 생각하면 도인들처럼 인색한 사람이 없다. 내수도 외수도 다 그렇다. 그러지 마라.
가정화목, 이웃화합이 해원상생이고 그것이 수도다. 해원상생하는 것이 수도다. 우리는 상제님의 해원상생의 원리로 수도해 나가는 것이다. 수도하면서 이것을 망각하면 헛수도인 것이다. 매일 해야 하는 것이 가정화목, 이웃화합이다. 이것을 종교로 알아라. 화목하는 데는 식구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자기의 할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이고, 이웃 간의 화합은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서 서로 상부상조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종교고 우리가 닦는 것은 이것을 닦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