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에 대한 말씀(4)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대순성전 한편에 심우도를 그려 놓았다. 심우도가 다른 게 아니라 도를 찾는 것이다. 도 찾는 그림으로 흰 소를 찾는 것이다. 희다는 것은 백(白) 자로, 백(白)은 사람 인(人)에 뫼 산(山)이니 인산(人山)이고 신선 선(仙) 자다. 사람 산(山)과 신선의 도를 찾는다는 것, 그게 백 자 안에 숨겨진 이치, 비결이다. 도(道) 하면 증산상제님, 정산님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우리 도는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구천상제님께서 천지를 임의로 하셨기에 다른 데서도 상제님을 믿는다지만 진리가 없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치다. 이치가 경위인데, 다른 데는 이론이 안 맞는다. 우리하고 믿는 것이 다르다. 다 같이 상제님을 믿는데 이치와 경위, 그게 없다.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적극성이 없다. 믿는 게 다르다. 우리는 적극성이 있다. 적극성이 없으면 안 된다.
증산(甑山), 정산(鼎山)의 도가 음양의 도다. 정산님은 12월 4일에 강세하셨다. 12월은 사철로 도를 뜻하며, 4일의 4는 사철을 의미하니 12는 곧 4이다. 4일, 곧 초나흗날은 초생달이니 소월(小月)이다. 비결에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 즉 청림도사를 찾으라는 말이 있다. 십이월(十二月)은 청(靑) 자이고, 4일은 소월(小月)이니 청(靑)은 곧 소월(小月=肖)이 되어 주청림(走靑林)은 조(趙)를 말한다. 그 외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 많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곳은 손바래기, 객망리, 시루산, 증산이다. 시루에는 솥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것을 비기(秘記)라 하는 것이다. (1991. 2. 12)
이 법은 상제님께서 필요하니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도통을 내기 위해서, 도통군자를 내기 위해서였다. 이 법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는 것을 직접 지어서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도통을 하기 위해 이 법을 받들어서 시행해야 한다. (1991. 5. 14)
우리 도가 천지도수라고 하는 것이다. 천지가 빈틈없이 짜여지는 법도이다. 우리 도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천지가 짜여지는 법도가 있어 만물이 태어나고 크고 결실한다. 그 법도가 돌아가서 만물이 생성⋅생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가고 그 안에 절후가 있어 모든 것이 생장염장(生長斂藏)한다. 우리의 도가 이것이다. 쉽게 말해서 각자 그 자리를 잡아주는 것이다. (1991. 6. 12)
우리 도의 모든 것이 다 여기에 있다. 우리 도라는 게 믿어서 살고, 빌어서 집안이 잘되고, 그런 게 아니다. 도(道)란 천지도수가 돌아가는 운로(運路)이다. 이것을 도(道)라 하는데, 그것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매일 공부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이것 천지도수를 돌리는 것이다. 조금만 삐끗하면 개병(皆病)이라 한다. ‘뭐 시간 좀 어기고 주문 조금 틀리면 어떠냐’ 하고 생각하면 큰일 난다. 시학관은 입초(立哨), 그런 것을 살피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주문과 시간을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시학관은 책임이 참으로 크다. 그런데 뭐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잘못되면 죄짓는 것이다. 재세 시에는 제일 큰 죄였다. 죄란 우리 공부를 망치는 것이다. 3달, 6달, 1년 몽땅 망친다. 책임을 질 줄 모르면 즉시 교체한다. (1991. 9. 25)
우리의 진리는 무궁무진하다. 틀림이 없고 옳다고 하는 것은 대순진리의 이론 그것이다. 임원들 중에도 배웠다는 임원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교화를 들었을 리 없다. 그래도 이론상 졌으니까 입도했을 것이다. 그런다고 그 선각은 다 아느냐? 아니다. 평생을 배워도 어렵다. 우리는 통해야 다 안다. 선⋅교감이 되려면 한 10여 년 걸리는데 각자 자기 실력을 잘 모른다. 하지만 밖의 다른 사람과 다르다.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이다. 신이 응해 있어 다르다. 그래서 수도의 과정을 밟고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되어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도에 들어와서 임원까지 되었을 때는 운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리, 이론에 있어서 운에 맞으면 이것을 도수(度數)라 한다. 진리에 모든 우리의 나가는 과정이 다 맞아 나간다. 그것을 길이라 한다. 말로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겪어보아 운에 맞아 나가니 아는 것이다. 운이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 어느 날에 어떻게 나서 어디서 커서 어떻게 된다는 등등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진리라 한다. 즉 천지가 열릴 때에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 그것을 운기(運機)라고 한다. 운기란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이 천지가 시작될 때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하고 나하고 이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다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오다가다 잠깐 만나는 것도 운이라고 하고 연분이라 한다. 그 과정을 그대로 나가니까 이것을 도수라고 한다. 도수에 맞으면 틀림없이 된다. 이론에 맞고 천지도수에 맞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종교보다 특히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천지가 정해 놓은 과정 그대로 가는 것, 천지운기 천지도수에 맞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가 좋다고 해도 우리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
가령 사람 이름을 아무렇게나 개똥이라고 지어도 그것은 사람이 지은 게 아니다. 이것은 하늘, 땅 생길 때부터 다 정해져 있다. 운기가 돌아가는 것을 천지도수(天地度數)라 한다. 운, 운기, 도수는 천지가 생긴 처음부터 벌써 완전히 정해져 겪고 나가는 과정이다. 사람이 머릿속으로 무엇을 생각한다 해도 진리 밖에 있는 것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리 안에 있는 것이면 나와진다. 천기자동(天機自動)으로 움직인다. 뭔가 나오려면 사람한테 생각되어져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다 천지 안에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생각이 나오질 않는다. (1991. 9. 28)
어디 가서 해원을 시키나? 누가 해원을 시켜주나? 어디 가서 조상 해원식이야? 지금 여기에도 많다. 해원시킨다고 돈 갖다 주고 온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임원뿐 아니라 수반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은 다 제명시켜라. 하지 말라고 할 필요도 없다. 그런 것도 신앙이고 일종의 종교라면 종교니 여기서 내보내버리면 된다. 해원은 우리 도(道)밖에 없다. 해원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우리 대순진리회의 상제님 외에 없다. 대순진리를 잘 믿는 것밖에 없다. 해원시킨다고 그런 데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 도인의 숫자를 칠 때 금방 낳은 어린애도 도인이다. 그뿐 아니라 조상들도 도인으로 들어간다. 여러분이 도에 들어온 것은 조상 덕이다. 조상들이 적선적덕(積善積德)을 한 덕으로 자손들이 도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조상들을 어디 가서 해원시키느냐? 그런다는 사람은 도에 운이 없고, 도에 못 들어올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우리 도 밖에 해원이라는 이야기가 어디에 있어? 해원이 뭐냐 하면 바로 대순이다. 해원이 대순이고 대순이 바로 해원이다. 대순이 원(圓)이고, 원은 막히는 데가 없이 돌고 돈다. 이것이 해원인데 우리 밖 어디에 해원이 있겠는가? (1992. 6. 26)
우리 도는 상생대도(相生大道)입니다. 상생(相生)은 조화(調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조화를 잃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단청을 함에 있어 열두 가지 색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룰 때 다채롭고 우아하게 보일 것입니다. 만일 어느 한 색이라도 튀어나와 보이면 다른 색들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수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체계 내에서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임원은 아래 사람을 애휼 지도(愛恤指導)하고 아래 수반은 임원을 경례(敬禮)로써 섬기면 척이 없이 잘 닦게 되는 것입니다.
해원상생(解冤相生)은 모든 사람을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것임을 아는 것이 존경입니다. 남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악(惡)을 선(善)으로 갚아 나가는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이므로 해원상생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존경하게 되면 나도 존경을 받아 인망(人望)을 얻고 또한 신망(神望)을 얻게 되어 도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존경하여 척이 없이 깨끗하게 수도하면 어느 누구도 나를 나쁘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여 인망을 얻게 되면 신명도 알게 되어 신망을 얻게 됩니다. 인망과 신망을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도인들은 명심하여 언제나 해원상생의 원리로 혁신해 나가야만 합니다. 해원 없이 상생 없고 상생 없이 해원은 없습니다. (1993. 2. 4)
늘 앉으면 얘기하지만,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다! 우리는 항상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서 생활해나가야 한다. 해원상생이 우리 도의 생명인 것이다. 학교생활도 그렇다. 우리 고등학교, 대학교의 선생, 교수, 직원도 다 도인인데, 학교생활도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서 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가르쳐 나가야 한다. 이거 아니면 고쳐지지 않는다. 이것으로써 다 살리는 것이다. 꼭 우리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그 원리로 해나가면 된다. 학생을 교육하는 것도 이 원리로 해나가는 것이다.
해원상생 이것이 우리 도에서 제일 중요하고 숭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되고 못 되고 하는 것도 모두 여기에 있다. 도를 닦아 나가는 데도 해원상생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다. 도인들끼리 생활해 나가는 데도 무엇을 하든지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서 모든 일을 해나가야 한다. (1993. 4. 27)
도는 병 고치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걸 갖고는 되질 않는다. 늘 얘기하지만 도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도(道)는 대순(大巡)이다. 대순이란 원이고 원은 둥근 것이니 막히는 데가 없다. 네모는 각이 져서 끝이 있고 막히지만, 원은 막힌 데가 없다. 대순은 원이고, 원은 무극이고, 무극이 태극이다. 천지의 모든 이치, 진리는 다 이 안에 들어있다. 우리가 통한다고 하는 것은 그 진리에 통하는 것이다. 그 진리는 무궁무진하고 끝이 없고 한이 없다. 다른 것하고는 다르다. 우리 도의 진리는 다 모른다. 통해야 안다. 안 통하면 모른다. 포덕하고 도인들 만나 교화하는 것을 10년 이상 해야 선⋅교감이 되는데, 그런 선⋅교감들이라 해도 모른다. 우리의 진리는 아주 끝이 없다. 쉽게 말해 적고 크고 간에 우리 진리에 안 맞는 게 없다. 무궁무진하다.
대순은 원이고 무극이고 태극이다. 무극이니 끝이 없고, 태극이니 군생만물이 생기는 모든 이치가 다 있다. 우리의 도는 끝이 없고 무한하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삼라만상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다 우리의 진리에 들어가 있다. 무극이니 얼마만큼 큰 지 알 수 있다. 1년 12달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여기에서 삼라만상이 생기고 자라고 결실하고 없어진다. 생장염장(生長斂藏), 그것이 말하자면 도(道)다. 여기에 이치와 조화가 다 들어가 있다. 우리가 이것을 다 알아야 한다. 여기에 통해야 한다. 통하면 다 알아진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의 공부가 얼마만큼 소중한지 알고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주문을 못 읽고 그러면 안 된다. 하루면 1년 360일을 돌리는 것이다.
복희 선천에는 하늘에다 봉신(封神)을 하였고, 문왕 때에는 모든 운수가 땅에 있어서 땅에 봉신을 하였다. 방위를 보고 날짜를 보는 것은 신을 땅에다 봉했기 때문이다. 살아서는 집터를 보고 죽어서는 묘 터를 보고, 방위를 본다. 나도 방위나 시간, 위치를 세밀하게 본다.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다 땅에 달려 있다. 앞으로는 정역 시대다. 정역 시대에는 모든 운수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에게 봉신을 한다.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한다.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라고 도통주(道通呪)에 있듯이, 앞으로는 사람이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년⋅월⋅일⋅시⋅분⋅초⋅각까지 전부 사람이 맡는다. 천지를 다 운용해 나가는 것을 사람이 한다. 우리가 해나간다. 성⋅경⋅신으로 해야 한다. 도라고 보통 아는 작은 도통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천지를 운용해 나가는 것이다. (1993. 4. 27)
도(道)가 신(神)이고 신이 도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을 믿는 것이다. 신이 도고 도가 신이니, 우리는 신을 믿는다. 정신을 집중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 도가 신도(神道)인 것이다. 즉 신명의 도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조금도 속이지 못한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1993. 11. 4)
도가 이치다. 도라는 것은 천지 음양이고, 이것이 이치이고, 이치가 경위다. 옷감 짜는 데 씨줄, 날줄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잘 되면 좋은 옷감이 나오고 잘못되면 나쁜 옷감이 나온다. 그게 도덕이고 질서다. 그것이 없어진 것이다. 그 질서가 없어진 것이 나쁘다는 것이지, 남녀, 적서, 반상의 구별이 나쁜 것이 아니다. 거기에 원이 맺혀있기 때문에 그것을 상제님께서 해원 공사로 풀어주신 것이다.
질서가 경위고 도덕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 어머니는 어머니 노릇, 자식은 자식의 노릇을 각자 해야 한다. 그것을 못하면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할 수 있게 벗겨지려면 해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잘 알아야 한다. 서로 극이 되어있다. 이걸 해원상생으로 풀어야 한다. 그래서 해원을 바탕으로 모든 천지도수를 보신 것이다. 지금 그대로 되어 나간다. (1994. 3. 24)
포덕사업을 하는 사람을 도(道)에서 일꾼이라 합니다. 일꾼은 모름지기 부지런하고 솔선수범하며 고통을 끈기 있게 참아 포덕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운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도에서 성공(成功)했다고 하며 이 성공은 모두 포덕으로 이루어집니다. (1995. 4. 20)
정성이라는 것, 성(誠)을 쓰는 것은 심령을 통일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나간다. 우리 도의 정성이라는 것은 마음이다. 일신(一身)이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있다. 마음이 만기(萬機)를 통솔한다. 마음과 영이 통하면 무소불능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것도 하면 있고, 안 하면 없다. 마음에 있다고 생각해서 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생각해서 안 하면 없는 것이다. 유기심유(有其心有) 무기심무(無其心無)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된다고 하면 되고,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 심령 통일도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정성이란 틈 없이 늘 부족하다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1993. 7. 11)
기도란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상제님을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모아서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성으로 소정의 주문을 봉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1986.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