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에 대한 말씀(3)
[도전님]
도(道)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며 경위가 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대순지침)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원리를 벗어나 그 수명이 존속되지 못하여 온 것은 만상(萬象)의 생성 변화가 천리(天理)⋅지기(地氣)⋅인사(人事)의 순환 섭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체(天體)는 장구(長久)하며 지구는 윤동(輪動)하고 인생(人生)은 내왕무상(來往無常)하다. 하지만 강유지리(剛柔之理)를 받아 행하는 인간에서 도(道)가 밝혀진 까닭으로, 인생은 하늘로부터 받은 성리(性理)를 땅 위에서 바로 행한다. 이것이 수도요, 이제 수도하여 성도(成道)하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인존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전경에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뜻은, 성질이 편협하거나 어리석으며 제 할 일은 힘쓰려 하지 않고 다만 성공만을 속히 취하려는 무뢰자(無賴者)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모두 자신의 작공(作工)에 있음을 밝혀주심이니, 사람으로서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일이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고 항심(恒心)의 유무(有無)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심심각성(心深覺醒)하여 성도(成道)의 경지를 깨닫도록 성경신(誠敬信)에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1985. 2. 20)
도(道)란 신성ㆍ불ㆍ보살의 하소연에 의해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을 가지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사람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셔서 진멸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시려고 천지공사를 행하셨으며, 그 행하신 바를 계시(啓示)로 도주님께 전하신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1986. 10. 28)
나 자신이 수도하고 도를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에게 인사(人事)에 있어 불화(不和)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도(道)란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완성(完成)을 위해서 믿는 것이므로 어렵더라도 잘 극복하면 진강(眞降)을 받을 수 있고, 잘못하게 되면 허강(虛降)이 내려 몸과 마음을 망치게 됩니다. (1988. 7. 7)
도는 변한다. 변화가 있어야 조화가 생긴다. 인력(人力)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명이 만들어준다. 도에서는 도수(度數)라고 하고 사회에서는 운(運)이라 한다. (1988. 12. 5)
경위를 도(道)라고 한다. 경위는 씨줄, 날줄이다. 천을 짤 때 씨줄과 날줄이 발라야 좋은 옷감이 된다. 사람도 경위가 발라야 인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경위가 어긋나면 안 된다. 경위란 쉽게 말해서 도리(道理)다. 도리란 사람이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일이다. 사람으로 행할 일을 다해야, 도리를 다해야 인격을 갖추었다고 하는 것이다.
도가 경위이고 경위가 도리다. 행하고 지녀야 할 도리란 전경에 있듯이 바로 삼강오륜이다. 상제님께서도 세상에 삼강오륜이 없으니 천하가 다 병들었다고 하셨다. 사회에서도 사람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정해놓고 교육을 하고 가르쳐 나간다.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을 경위 바르다고 한다.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하려고 배우는 것이다. 만약 배운 사람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배운 사람이 그러냐?” 하고 비웃는다. 도리를 행하지 않으니까 법을 정한 것이다. 법이 다른 게 아니라 경위다. 상제님께서도 “세무충(世無忠), 세무효(世無孝), 세무열(世無烈)”이라 하셨다. 이것이 삼강(三綱), 강령(綱領)이다. 삼강이 주(主)이고, 오륜은 거기에서 나온 가지이다. 이것이 사라짐으로 해서 천하가 다 병들었다. 상제님께서 이 병을 고치시고자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이다. 이 병을 고치므로 우리 대순에 운수가 있다. 전경의 원 강령은 삼강오륜의 충효열이다.
이것을 믿기만 하면 안 된다. 잘 알고 그대로 실천하고 일상생활에 생활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도인이 된다는 뜻이다. 제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일을 가르치고,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한다. 도에서는 도인을 만든다. 도인이 되어야 도통을 받을 수 있고 운수를 받을 수 있다.
잘 지키고 잘 행해야 도인이 된다. 그러려면 무자기가 되어야 하는데 행하지 않고서 운수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무자기가 그것 아닌가! 그것을 도덕이라 한다.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도리를 도덕이라고 한다. 말로만 갖고는 안 된다. 무자기가 되어 완전한 도인이 되면 욕심과 사심이 없어진다. 원래의 본성, 천성(天性), 양심, 원래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래야만 도통 받을 만한 그릇이 만들어지고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 그릇을 만드는 것이 수도이다. 지금은 그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유리알같이 깨끗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통해진다. (1989. 2. 12)
수반들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것에는 거기에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인들은 상제님께서 베푸시고 천지신명들이 베풀어 주는 기운을 모두가 다 같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단순히 사람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은 신명의 일이고 우리 도(道)는 신도(神道)인 것입니다. (1989. 3. 17)
도는 음양(陰陽)이고 사상(四象), 오행(五行)이며 1년, 12월, 360일이다. 모든 조화⋅법칙은 음양에서 나온다. 음양의 원리에 의해 1년 12월에 사철이 다 들어가 있으며, 또 여기에 72후(侯)가 들어있어 모든 조화가 그 안에 다 있다. 음양의 이치로 변화하니 그것이 도이다.
구천상제님께서는 신미(1871)년 9월 19일 객망리에 오셨고, 도주님께서는 을미(1895)년 12월 4일 회문리에 오셨다. 신미에서 을미까지 25년이다. 25는 24를 빼면 1이 남는다. 24는 24절후이며 24는 24장이 들어가지 주인은 못 된다. 1은 시작이고 주인을 의미하니 옥황상제님이 되는 것이다. 도주님의 전생은 초패왕, 단주이셨다. 초패왕은 24세 시 강동에서 발기했기에 망하였다. 만약 25세에 발기했으면 주인이 되어 천하를 평정했을 것이다. 전에는 이 말을 금지 사항으로 하였지만, 이제는 도가 밝아졌다.
상제님께서는 기유(1909)년 6월 24일에 화천하셨다. 6수(數)는 6⋅6해서 36으로, 36은 360을 뜻하고 360은 도(道)를 말한다. 360에는 24절후가 들어있으니 그러므로 24일에 화천하신 것이다. 이는 옥추보경에도 있다. 신미년부터 기유년까지 해서 39세이시다. 일제 때 ‘3대 9년 만에’ 혹은 ‘39년 만에’라는 동요가 유행했는데, 이 동요는 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동요가 없어졌다.
도주님께서는 무술(1958)년 3월 6일에 화천하셨다. 3수(數)는 천지인(天地人)이고 6수(數)는 6⋅6해서 36, 36은 360일이다. 360에는 12월이 있다. “十二月 二十六日 再生身”(공사 3장 41절)이니 여기에 4가 들어가면 30일이다. 도주님께서 12월 4일에 탄강하셨으니, 12월 30일 해서 1년 12달 꽉 찬다. 이것이 도이다. 기유년부터 무술년까지 50년이다. 50년 공부종필(工夫終畢)이 되는 것이다.
5일을 1후(侯)라 하고 후가 셋이 모인 3후를 1절후(節侯)라 하니, 360일이 72후이고 72후가 24절후이다. 24절후가 1년이니 72후가 1년이다. 이것이 우리 도의 법이다. 공부도 이것을 가지고 한다. 공부 시 봉심들 때 12명씩 3줄을 선다. 12명 서는 것은 12월을 뜻하고, 12는 우리 도를 상징한다. 12명 3줄이면 36명이 되고 36은 360일이다. 이것은 자연(自然)의 도(道)에 맞춘 것이다. 72명을 세우는 것도 72후를 맞추는 것이니 숫자를 맞추는 것도 도의 법인 것이다. 지금 여주에서 공부방에 3명씩 일곱 군데서 21명을 수련시키고 있다. 21은 3⋅7이다. 21로 한 것은 기도주 법에 맞춘 것이다. 숫자 맞추는 것이 공부시키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도법의 숫자를 잘 맞춰서 해야 한다. 이것이 도의 기본법이다. 그게 공부고 도다.
다른 곳에는 도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진리가 없다. 상제님을 모시는 다른 교파에는 진리라는 것이 없다. 단지 상제님께서 기이하고 다른 사람과는 달랐기 때문에 이 어른만 믿으면 잘 될 것이라는 것이지 진리가 없다. 상제님 한 분만 가지고서는 안 이루어진다. 도주님이 들어가야 한다. 도주님이 안 들어가서는 맞지 않는다. 상제님⋅도주님 두 분 법이라야 한다. 자연의 이치, 수리를 두 분의 법에 맞추어 쓰고, 맞추는 것이 도다. 이것이 우리 도의 기본법이 되고 강령이 된다. 옛 성인들의 글이나 말도 전부 이것이다. 미리 알고서 예언 같은 것으로 써 놓은 것이다. 생각에서 생각이 나고 깨닫는다는 것이나, 과학⋅철학도 모두 우주가 짜여진 바를 아는 것이다. 우주가 짜여져 있는데 늘 생각해도 벗어날 수 없다. 옛날에 글을 많이 배운 분들이 글만 배운 게 아니다. 앞으로를 많이 연구하여 생각이 나는 것을 적게 되면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전부 연구⋅예언해 놓았던 것이다. (1989. 4. 12)
우리가 수도라고 해서 꼭 남에게 죽어지내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갖출 것은 갖추어 떳떳하게 하면 된다. 할 말은 하고. 사람에게는 경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경위가 바로 도(道)다. 거기에 빠지지 않으면 남에게 죽어지낼 필요가 없다. (1989. 6. 4)
도를 통한다고 하는데, 도는 진리며 경위다. 정당한 경우⋅이치⋅진리에 통하는 것이다. 그냥 마음만 깨끗이 닦는다고 도통하는 게 아니다. 닦아서 착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진리에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우리 자신이 행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잘 모르면서 닦아나가고 있다. (1989. 6. 4)
여기까지 종교의 면모를 갖추기까지 고통이 심했다. 도주님 재세 시는 말할 것도 없고 30년 이상을 파란곡절을 겪으면서 내려왔다. 상제님께서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으로 공사를 보셔서 삼계의 모든 마(魔)를 다 풀어놓으셨다. 그래서 많은 파란곡절이 따른다. 앞으로의 목적 달성도 순조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화복(禍福)이다. 화(禍) 없이 복(福) 받는 일은 절대 없다. 화(禍)를 받고 복(福)을 받는다. 노력 없이 되는 법은 없다. 도(道)도 마찬가지다. (1989. 12. 29)
임원들은 자신이 먼저 도(道)를 진실하게 믿고, 아래 도인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옳고 그들을 바로 알아야 도인들을 바르게 이끌 수 있습니다. 권위로서 도인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언제나 대화로써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래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대화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90. 2. 10)
우리의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인들은 항시 정당하게 경위를 밝히고 모든 것을 도(道)의 법(法)과 제도에 맞추어 움직여야 합니다. 성(誠)을 모시고 포덕(布德)ㆍ교화(敎化)를 하고, 도장에 출입하는 것 모두가 수도 과정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지극한 정성(精誠)이 필요합니다. 정성은 믿음에서 나오고 수도(修道)도 믿음[信]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진퇴절차(進退節次)가 분명해야 합니다. 진퇴절차가 분명하지 않음은 경위(經緯)와 도리(道理)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이는 또한 사람으로서 근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리, 즉 예(禮)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만사(萬事)의 진리(眞理)는 하나입니다. 즉, 만법(萬法)은 똑같은 원리 아래 움직이는 것이므로 도인들은 이를 바르게 깨달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몸소 실천하고 겸허(謙虛)한 마음으로 움직일 때 바로 깨우칠 수 있는 것입니다. (1990. 2. 10)
우리의 도(道)는 우리나라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全世界), 나아가서는 전 우주(全宇宙)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한국(韓國) 땅에 강세(降世)하시어 도(道)를 펼치셨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포덕(布德)해야 한다는 정신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우리의 진리에 감화되어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90. 2. 10)
모르고 믿으라는 것이 아니다. 진리가 있지 않으냐.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한다. 무엇을 도라 하느냐? 전 우주, 천지 전체, 모든 것이 생하고 크며,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법칙, 변칙, 조화를 도라고 한다. 5일을 1후(侯)라 하고, 3후(侯)면 보름이라 하니 이것이 1절후다. 1절후가 음과 양으로 한 달을 이룬다. 한 달이 세 개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이다. 1년에는 72후가 있고 24절후가 있고 12달이 있다. 시간이 모여서 날이 되고, 날이 모여서 달이 되고, 달이 모여서 1년이 된다. 시간에도 음양이 있고 날짜에도 음양이 있어 그날의 음, 양에 맞추어 기도주, 태을주를 읽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수도 공부다. 1후는 5일이고 그 이치로 주일을 본다. 공부도 여기에 맞추어서 한다. 5일을 공부하게 되면 5개 반이 되고, 이게 모여서 초강식(初降式)을 한다. 보름이 되면 초강이 3번이고 합강(合降)이 된다. 이것을 자리 공부라 한다.
천지(天地)를 도(道)라 하고, 천지가 음양(陰陽)이다. 천자(天子)는 하늘의 아들이고, 도문소자(道門小子)는 도의 아들을 말한다. 소자는 윗전에 자신을 낮춰 칭하는 것으로 도에 내 몸을 낮추어 말하는 것이다. 도를 천지라고 한다. 천지는 음과 양이 아니냐? 하늘⋅땅은 음양인데 하늘⋅땅은 눈에 보이지만 음양은 보이지 않는다. 천(天)은 양(陽)이니 음(陰)이 없다. 하늘이 높은가? 도가 높은가? 하늘이 큰가? 도가 큰가? 하늘의 아들이 큰가? 도의 아들이 큰가? 도의 아들이 크다. 우리 도는 순리로 보아야 한다. 하늘이 큰가? 도가 큰가? 그래도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눈을 꼭 감고 있어서 모르는 게 아니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하나가 큰가? 둘이 큰가? (1991.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