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工夫)에 대한 훈시
<전경>에 “훼동도자(毁東道者)는 무동거지로(無東去之路)하고 훼서도자(毁西道者)는 무서거지로(無西去之路)하니라.”(교법 2장 30절) 하셨으니, 남의 종교를 헐뜯지 말고 자기의 수도에만 열중하여야 자기 성공이 되리라는 뜻이다. 남의 종교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비방이 되어 상극을 자초함이며 척을 짓는 것이므로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가 되지 못함이다. (1984. 4. 9)
남을 미워하여도 안 되고 반항을 하여도 안 된다. 모든 것을 서로 이해하고 참고 견디어 나가라. 이것이 다 자기의 성공을 위함이다. 그렇게 못하면 운수를 받을 수가 없고, 운수를 못 받을 바에는 도를 닦을 필요가 있겠는가? 척을 못 풀면 큰공부를 할 때 척신에 걸려 공부도 못하고 도리어 욕을 보게 되고, 허령에 휘말려 제반사(諸般事)가 허사로 돌아간다. (1984. 9. 12)
<전경>에 “우리 공부는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이다. 남이 잘되고 남은 복(福)만 차지하여도 된다.”(교법 1장 2절)고 하셨으니, 우리 도인들은 사업이 덕을 베푸는 일임을 알고 시시(時時)로 성찰하여야 한다. 우선 가정의 화목이 이웃과의 친화(親和)의 발판이 되고 나아가서는 복지사회를 이룩하게 되므로 매사에 작고 큰 것을 가리지 말고 꾸준한 노력만이 대성(大成)하게 되는 것이다. (1985. 3. 16)
수도는 미래를 위한 나의 전진이니 무자기(無自欺)를 옥조(玉條)로 하므로 날조가 있을 수 없다. 항상 대화 소통의 광장을 만들어 보화(普化) 성역(聖域)에 동참함을 보는 듯이 전진(前進)에 박차를 더 힘차게 가함이 신념이다. 모든 종교가 운운하는 부활론이 그 신자들의 소망관인데 만일 부활이 없다고 하는 신자라면 그는 신념을 세우지 못한 신심(信心)의 발로(發露)를 보여줌이니, 우리 임원과 도인은 <전경>과 나(도전님)의 훈시 내용의 요의(要義)를 바르게 이해⋅체득하여 촌각이라도 허비 없이 정진하여 성도(成道)의 도력을 얻도록 선도(先導)하는 교화에 충정(忠情)을 다하며, 남 잘 되게 하는 공부의 선구자가 될 임무를 완수하여야 할 것이다. (1985. 4. 13)
거짓이란 위세를 부려 지위를 노리는 것, 자존(自尊)으로 남을 멸시하는 것, 공리(功利)를 과장하기 위하여 자기 사람을 만들기에 힘쓰는 것, 허물을 은폐하기 위하여 아첨하는 것 등이니, 이러한 일을 시행하는 자는 허구심(虛構心)에 여념이 없는 법이다. 끝내는 외로워지고 고독이 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니, 이 모두가 과부족을 반성하지 않은 까닭이다. <전경>에 ‘우리 일은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하셨으니, 이상의 네 가지 예를 든 것은 사람으로서 범하기 쉬운 몇 가지이므로, 임원들은 항상 현실에서 당래(當來)의 복을 목적으로 닦아 나가는 우리 도인들을 대순의 도인으로 교화 육성하여, 진리 도통의 목적 달성에 부족함이 없도록 책임을 다하여 나가기를 명심불망(銘心不忘)하여야 한다. (1985. 10. 19)
일상 항심(恒心)의 수도가 중요한 것이요, 형식만을 취하는 것은 허구성이다. 모든 수도 절차에 서투른 신입 도인을 공부에 임하게 하는 것은 도리어 불경이 될 수도 있으니 앞으로는 익히 가르쳐서 보내는 것이 임원의 사명임을 알고 꼭 지켜야 한다. (1986. 2. 14)
우리 공부는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야 하는 공부이니 먼저 상제님의 진리를 완전히 앎으로써 믿음이 확고해질 것이며 안심⋅안신이 될 것입니다. 이때 거짓이나 가면 가식(假面假飾)은 있을 수 없게 되어 각자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정성과 공경으로 수도생활을 하게 되며 안심⋅안신으로 상제님을 모시게 되니 모두가 목적으로 하는 바의 소망을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은 땅을 믿기 때문이며 가을이 올 줄 알기 때문인 것처럼 모든 일은 이 믿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1986. 4. 14)
공부 중에 마음이 맑게 티 하나 없는 경지에 들어가면 무엇이 보이는데 그것이 개안(開眼)이다. 마음자리가 바르게 서면 그것이 잠깐 들어온다. 다시 막히는 것은 마음자리가 올바르게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로 서면 다시 보인다. 그때 몸속의 모든 것이 다 보인다. 종기 같은 것은 보기만 해도 없어진다. 그런 것을 알려면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알아라. 모르고는 마음자리가 바로 설 수 없다. 그러니 싸우고 욕질하여 덕화를 더럽히지 말고, 좋은 일 훌륭한 일을 많이 해서 사회가 본받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상제님의 덕화를 펴나가는 것이다. 친절히 대할 때 포덕이 되는 것이다. (1987. 3. 10)
믿음으로 공부에 들어가면 잘못 가다가도 말 한마디에 다 풀어진다. 소금을 지고 물에 들어가라고 해도 들어가야 한다. 항상 지시를 따라야 한다. 자기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이란 항상 지시를 따라야 되는 것이다. 못 믿는 데서 허령이 든다. (1987. 6. 19)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삼아라. 이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 공부를 하면 개안(開眼)부터 된다. 개안이 신안(神眼)이다. 개안이 되면 내 잘못부터 안다. 참 무서운 것이다. 내 마음을 내가 속인다. 내(도전님) 말을 믿어라. 근본원리를 무자기에 두고 나가라. 신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신안은 우주를 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은 죄도 영화 필름처럼 다 나타난다. (1988. 2. 29)
인마(人魔), 신마(身魔), 심마(心魔) 이것이 척이다.* 상대방의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척이다. 이것을 푸는 것이 공부다. 공부와 입도해서 수도해 나가는 과정이 다 똑같다. 공부⋅수도도 척신(慼神)하고의 싸움이다. 21일 동안 척신이 내 마음에, 또 내 몸에 붙어 싸움을 한다. 싸움이 끝나면 밝아진다. 이렇게 되어야 도통이 된다. 척신하고의 싸움은 남과 맺은 척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가 수도해 나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도를 닦아 나가는 데 일이 잘되고 안 되는 것은 척신의 장난이다. 이러하니 일을 할 때는 가려서 하고, 좋은 것만을 취해서 운수대통을 받도록 하라. 척신한테 이기는 것은 참는 것이다.
* 예전 도전님께서 청학공부를 돌리실 때도 심마(心魔), 신마(身魔), 인마(人魔)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심마(心魔)는 가족 등이 떠올라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것, 신마(身魔)는 다리 등 몸이 아픈 것, 인마(人魔)는 사람이 와서 훼방을 놓는 것이다.
작은 신경도 신안으로 보면 크게 확대되어 보인다. 현미경으로 안 보이는 것도 보는 것과 같다. 수술이라는 것은 없다. 아픈 사람은 보기만 해도 낫는다. 내가 시험을 많이 해 보았다. 임원과 수반이 다르다. 선감⋅교감, 선사, 선무를 공부시켜 보면 차이가 많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속이지 못한다. 우리는 무자기가 되어야 한다. 신안이란 막힌 곳이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말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냄새도 멀고 가까운 것이 없다. 사람이 먹는 것도 필요 없다. 이것을 시험해 봤다. 잠을 안 자도 괜찮다. 공부할 때도 잠을 안 자도 괜찮다. TV에 나오는 음식의 냄새도 맡는다. 어떤 사람은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되고 하는 법은 없다. (1988. 2. 29)
수도는 정신을 하나로 묶어가는 것이다. 정신 통일만 된다면 쉽다. 전부 시험해 보았다. 어떤 사람은 내(도전님)가 술수를 부렸다고 한다. 내(도전님) 생각만 해도 병이 낫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공부는 10일 이상 보름 동안 태을주를 읽힌다. 쉽다. 그러나 실제로 시켜보면 잘 못 한다. 공부를 시키면 어린애 같아진다. 잠 못 자게 하고 정신을 통일시킨다. 지금 금방 하면 약해서 허령(虛靈)이 든다. 그래서 수련을 시킨다. 공부는 잠 안 자고 정신만 묶어주는 것이다. 정신만 묶으면 환하게 열린다. 신안(神眼)이 곧 개안(開眼)이다. 멀고 가까움이 없다. 잠을 안 자도 축나는 것이 없고 먹는 것도 하나 필요 없다. 공부반은 안 먹고 안 자도 상관없다. 자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에게 병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자신의 뱃속을 훤히 본다. 들여다보기만 해도 병이 없어져 버리고 도지지를 않는다. 기독교에서 배 속에 성령 수술하면 피가 묻어 나온다는데 그것은 거짓이다. 피가 묻어나올 수가 없다. (1988. 12. 4)
우리 공부는 밖에서 얘기하듯 병을 고쳐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건 사기밖에 안 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하는 데 멀고 가까운 것이 없다. 보기만 해도 낫고 생각만 해도 낫는다. 상대방이 나를 생각만 해도 낫는다. 도통에 대해서 말하는 건 어떠한 말이라도 그 이상이면 이상이었지 거짓말이 없다. 잠자고 안 자고도 상관없다. 10월에 공부를 시작하여 3, 4월에 마쳐도 낮에 다니니 다른 사람은 모른다. 삼칠일(三七日)씩 할 때는 잘 조절해 주어야 한다. 3⋅7공부하고 나서 처음에는 20분 정도 잠을 재운다. 5∼6개월 안 자고 나면 처음에는 잠이 잘 안 온다. 얼굴도 새까맣던 사람이 하얗게 된다. 방면에서 서로 싸우지 마라. 공부할 때 다 튀어나온다. 애먹는다. (1988. 12. 4)
주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옛날에는 밤새워 수련해도 허령이 없었다. 지금은 있다. 정신을 모으지 말고 너무 오래 하지 말고 주력(呪力)만 많이 쌓아두라. 1시간 이상 연속해서 주문을 읽지 마라. 지금은 정신을 조금만 모으면 허령이 난다. 허령이 안 나도록 정신을 놓지 마라. 허령이 들면 도통을 못 받는다. 짧은 시간에 허령이 든다는 것은 운수가 가깝게 다가온다는 증거다. 대신에 기도를 많이 모셔라. 어떤 보약보다도 낫다.
사람과 신이 합해지면 도통이다. 기운을 받고 신이 응하면 된다. 수강전에서 수련한다고 해서 도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도통은 정신을 모으고 잠만 안 자면 된다. 천지도수는 제 기틀이 되면 자동적으로 당기어진다. (1988. 12. 5)
뭘 할 때는 서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 본부 또는 여주수도장에서의 수련은 봉축주 1독 하고, 태을주 4독, 기도주 4독 후 태을주를 계속한다. 지방에서 수련을 할 때는 전체 주문을 송독한 후 태을주를 계속한다. 큰공부 때는 봉축주 1독 후 태을주만 계속하게 된다. 태을주도 다 잊어버리는데 봉축주, 기도주 찾을 겨를이 없다. 밖에서 태을주를 충분히 읽고 들어가는데도 태을주를 잃어버린다. 잃어버리면 꽉 막혀서 여기에서 한 자, 저기에서 한 자 찾아서 하나씩 읽고 나면…, 태을주도 찾으려면 그것만큼 힘든 게 없다. 봉축주마저 잃어버릴 때도 있다. 공부나 수련을 5분, 10분 쉬었다가 할 때는 새로 하는 것처럼 주문을 송독한다. (1989. 1. 6)
수강⋅수련⋅치성⋅공부를 보낼 때도 도의 법규에 맞게 하라. 우리의 법도대로 해야 한다. 방면에서 임원들이 수강⋅수련을 보낼 때 어떤 사람이 잘못하면 안 보내는 경우가 있다. 말을 안 듣는다고 감정적으로 안 보내면 죄를 짓는 것이다. 수강이고 수련이고 법도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면 말썽이 안 난다. (1989. 2. 10)
우리는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해 나간다.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 스스로 내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 무자기이다. 제일 무섭고 제일 어려운 것이다. 도통은 말할 것도 없고 큰공부를 할 때 개안(開眼)부터 된다. 이것이 신안(神眼)이다. 개안이 되면 내 잘못부터 확 나온다. 어려서부터 있었던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참 무섭다. 제일 무서워! 자기의 잘못부터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기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 못 속인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아니라고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이 다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완전히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1989. 2. 12)
공부해 보면 아는데 제일 무서운 것이 척신(慼神)이다. 인마(人魔), 신마(身魔), 심마(心魔)가 다 척(慼)으로 나타난다. 제일 큰 마가 척신이다. 임원, 도인 상호 간에 상대방이 불평을 갖게 한다면 척이 된다. 원수지간만 척이 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만 거슬려도 척이 된다.
제일 떼어내기 어려운 것이 척이다. 그래서 척을 푸는 것을 우리 수도의 제일로 삼아야 한다. 가령 공부를 21일 동안 한다면 척신과 싸움을 해 나가는 것이다. 공부는 순전히 척신과의 싸움이다. 싸움이 끝나면 공부가 끝이다. 척신은 사람에게 붙어 보복도 하고 몸에 붙어 몸에 고통도 준다. 마음에 붙어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고 잘못된 생각도 일으키게 한다. 전생보다는 이 세상에서 어릴 적부터 남하고 척졌던 것이 전부 붙어서 나에게 보복하는 것이다. 이것과 싸우는 것이다. 모두 다 풀려야 한다. 그것이 끝나면 환하다. 다 풀려서 깨끗해지면 도통을 받는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유리알 같아야 완전하게 도통이 된다. 21일간 척신하고 싸우지만 끝나버리면 아무 일도 없다.
지금 본부와 여주수도장에서 하는 공부와 수련의 기운은 공부와 수련을 하지 않는 지방의 도인들에게 그대로 가는 것이다.
기운 받으면 쳐다보기만 해도, 만지기만 해도 낫는다. 신안이 열리면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낫는다. 고치는 일정한 방법이 없다. 보면 낫는 것이다.
공부를 시켜보면 임원하고 수반하고는 다르다. 차이가 난다. 임원이 도의 일을 하다 보니 기도나 수련을 적게 했는데 그래도 다르더라. 중간 임원과 수반이 다르고, 상급 임원은 또 다르더라. 못 속인다. 그러니 거짓을 해서는 안 되며, 무자기를 근본으로 삼아 수도를 해나가라. (1989. 2. 12)
5일을 1후(侯)라 하고 후가 셋이 모인 3후를 1절후(節侯)라 하니, 360일이 72후이고 72후가 24절후이다. 24절후가 1년이니 72후가 1년이다. 이것이 우리 도의 법이다. 공부도 이것을 가지고 한다. 공부 시 봉심들 때 12명씩 3줄을 선다. 12명 서는 것은 12월을 뜻하고, 12는 우리 도를 상징한다. 12명 3줄이면 36명이 되고 36은 360일이다. 이것은 자연(自然)의 도(道)에 맞춘 것이다. 72명을 세우는 것도 72후를 맞추는 것이니 숫자를 맞추는 것도 도의 법인 것이다. 지금 여주에서 공부방에 3명씩 일곱 군데서 21명을 수련시키고 있다. 21은 3⋅7이다. 21로 한 것은 기도주 법에 맞춘 것이다. 숫자 맞추는 것이 공부시키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도법의 숫자를 잘 맞춰서 해야 한다. 이것이 도의 기본법이다. 그게 공부고 도다. (1989. 4. 12)
공부하는 사람이나 하지 않는 사람이나 기운은 다 똑같이 돌아간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도 지방에서 수련할 때 기운은 다 같이 들어간다. (1989. 5. 3)
우리의 일은 자리 공부이다. (1989. 5. 8)
우리 도는 공부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공부는 자리 공부다. 시학⋅시법공부로 돌아가는데, 그러면서 도장을 수호한다. 주문을 외운다고 공부고, 안 외운다고 공부가 아닌 게 아니다. 이대로 돌아가는 거다. 나중에 그대로 들어가면서 주문만 읽으면 공부가 된다. 방만 만들고 주문을 외우면 공부다.
가령 시학⋅시법공부를 하면 시학원이 총지휘 감독을 하는데, 공부에 한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날 도장 내에서의 제반사를 총책임지고 임원 데리고 지휘⋅감독해 나가는 것이다. 그게 수호하는 거다. 다른 것이 아니다. 정⋅진급의 책무는 공부를 하는 데 아무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정급은 공부 들어온 날이 되면 자기 방면 선감 말을 듣지 말고 시학원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자기 직계 선감이 들어와 불의한 일을 할 시에는 강력하게 응분의 제재를 해야 된다. 이것이 군대식이다. 만약 그날 사고가 발생하면 시학원이 총책임지고, 임원 12명과 내⋅외수 24명까지 36명 모두의 책임이다.
시학⋅시법공부에 들어가면 그때는 도장에 수호반이 필요 없다. 공부반이 수호도 다 한다.
공부 들어오면 잠을 못 잔다. 원래 공부하면 잠 안 잔다. 도장에 치성 들어 와도 잠을 자지 마라. 안 자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게 공부다. 도주님 재세 시에는 도장에 들어오면 밤을 새웠다. 잠 안 자는 공부다. 부산 태극도 때는 72명이 집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낮이고 밤이고 똑같았다. 동네도 사람이 왔다 갔다 하니 온 동네가 안 자고 사는 것 같았다. 도둑이 못 들었다. 치성 올리러 왔다가 자면 포감들이 크게 꾸중을 했다. 지금은 전부가 자유지 뭐! 내 맘대로 아냐? 내 마음대로지! 옛날에는 어디 그래! 맘대로가 어디 있어? 우리 도는 민주주의면 안 돼. 꽉 묶여 있어야 터질 때 한꺼번에 터지는 것이다. 터질 때 도통 난다. 꼼짝 못 하게 묶어 놓으면 정신이 하나로 더 뭉쳐진다. 치성⋅공부하러 왔다가 자면 안 된다. 치성 때 못 자게 해야 한다. 안 자는 공부가 아니냐? 우리 도는 안 자는 공부다. 제일로 그 공부가 어려운 것이다. (1989. 5. 30)
우리의 공부를 준비하는 중요한 자리다. 수호가 공부다. 주문을 안 읽는다는 것뿐이지 공부다.
우리가 하는 일이 상급 임원을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공부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공자는 72명만 통예시켰고 석가는 500명을 통케 하였으나 도통을 얻지 못한 자는 다 원을 품었도다.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든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닦은 바에 따라 다 열어준다.”(교운 1장 34절)고 하셨다. 동서양 사람들 다 들어와도 자리는 남는다. 그게 자리다. 도통이라고 해서 어디 가서 병 고치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리! 우리는 그것이다! 이 자리 공부는 원래 1년을 다 돌아가야 된다. 앞으로의 자리 공부가 바로 시학(侍學)이다. 시학은 도주님께서 정하신 법으로 하루에 36명씩 들어간다. 5일마다 초강식을 한다. 5일이 1후(侯)가 되고 3후가 합해서 1절후(節侯)가 되니 합강식을 한다. 세 절후가 합해서 한 철이 된다.
자리라는 것이 그 자리인 것이다. 상제님께서 나중에 못 앉을 자리에 앉는 자는 신명이 잡고 끌어내린다고 그러셨다. (1989. 6. 22)
우리 공부는 자리 공부인데, 공부 못 들어가도 자리는 있다. <전경>에 공자는 72명, 석가는 500명을 통하게 했으나 상제님께서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다 주신다고 하셨다. (교운 1장 34절) 세계 사람이 모두 와도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분, 초, 각 등등의 책임자로 한다면 사람이 얼마나 오든 자리는 있다. 자리가 비면 목석이라도 기운을 붙여 쓴다고 하셨다. (교법 3장 4절) 이것은 도인이 아니라도 기운만 붙이면 쓸 수 있다는 말씀이다. (1989. 10. 19)
여기 도장에 성 모시려고 와 있는 동안은 자유가 없다. 공무다. 함부로 도장 밖으로 벗어나지 마라. 도정실 출근은 의무다. 성 모시고 며칠 있는 동안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지방의 많은 도인을 대표해서 성을 모시려고 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공부다. 많으나 적으나 성 모시려고 와 있는 동안은 공사(公事)다. 사회에서는 공무집행이라 한다.
도장에 한 번 모임이 있다 하면 그것을 큰 행사로 알아야 한다. 이 행사가 곧 공사임을 알아야 한다. 공사가 행사고, 행사가 공사고 공무다. 도정 업무를 마치고 나가면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끝나기 전까지는 공무집행 중이다.
큰공부 시킬 때는 잠을 자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 중간에 잠깐잠깐 쉬게 하는데, 태을주로만 한다. 주문의 기운을 받으면 개안(開眼)이 되는데 그것이 신안(神眼)이다. 신안이 열리면 세계가 훤히 보이고 멀고 가까운 게 없다. 이 경지는 빠른 사람이 일주일 내지 열흘 안에 도달할 수 있다. 예전에 보름 정도 그걸 시험해 보고 난 다음, 3∼4년이 지난 후 또 안 자게 하고 공부를 시키니 그때는 2∼3일 정도 만에 옛날에는 보름 만에 오던 기운이 그대로 돌아오더라. 주문의 기운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살아있다. 며칠 잠을 자지 않고 주문을 외우다가 산에 올라가면 가뿐하게 날아다닌다. 등산하는 기운과는 다르다. 직접 경험과 공부를 해 보았다. 실험해 본 것이다.
공부를 시작하면 10월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4월쯤에 끝난다. 6개월 정도 한다. 공부할 때는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1990. 2. 1)
긴 공부 들어가면 사뭇 종일 울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울어도 보통 서럽게 우는 게 아니다. 척신이 붙었다가 물러나는 것이다. 척신이 붙었다가 밀려 떨어져 나갈 때 척신이 나가면서 분통해서 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우는 게 아니다. 그 사람 척신이 꼭 보복을 하려 했다가 도를 믿고 공부를 하기 때문에 주문 기운에 밀려 가지고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척신이 우는 것이다. (1990. 3. 4)
수호가 진법(眞法)이며 진법(陳法)이다. 나중에 공부한다고 해서 변경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주문만 외우면 되는 것이다. 이 반 그대로 공부한다. 자기 책임을 다한다면 임원실에서 잠을 자도 관계없다. 이것이 우리 종단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주문만 읽는다고 공부가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공부다! 도장 지키러 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문을 안 읽어서 그렇지 정신적으로는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도장에서 공부한다고 그 사람만 기운 받는 게 아니라 전 도인에게 다 돌아간다.
우리는 밤에 잠 안 자고 공부한다. 사수가 다니면서 잠을 못 자게 한다. 산공부(山工夫)를 하면 픽픽 쓰러지고 허탈감이 들지만 우리 공부는 몸도 중량이 늘고 좋아지고 얼굴이 훤해진다.
수련이 공부다. 전에는 허령이 겁났지만, 이제는 걱정 없다. 중곡동 수련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수도부에 수호자 명단이 있다. 그것 가지고 공부시킬 것이다. 공부 안 한다고 운수 못 받는 건 아니다. 꼭 공부한 사람만 운수 받는다는 건 아니다. 다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 안 들어가는 일은 없도록 하라.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하니 안 들어간다고 하는 건 안 된다. 우리의 일은 전부 다 성의(誠意), 정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신(誠敬信)이라 한다. 운수도 모든 것이 성경신, 정성⋅공경⋅믿음에 달려있다. (1990. 4. 24)
상급 임원들이 여기 도장에 들어오게 되면 배우는 것이 아닌가? 배우는 게 뭔지 잘 모를 것이다. 어디서 배우는가 하면 여럿이 모인 가운데서 보고, 듣고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나 도인이 되는 것이나 혼자서는 안 된다. 여기 오면 여러분이 모두 있을 것이고 여러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저건 저 사람 잘못인데, 저건 저 사람의 훌륭한 면인데 하게 된다. 그래서 잘못하는 것을 보면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자연히 자기는 안 하게 되고, 부러울 정도로 잘하는 면을 보면 그 사람을 배우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어있다. 이렇게 배우고 익혀 나가야 한다. 이게 수도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이렇다.” 하면서 나를 강조하면 자꾸 어두운 데로 빠지게 된다. 내가 나의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면 운수 받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공부에도 허령(虛靈)이란 게 있다. 허령이 다른 게 아니다. 허강(虛降), 진강(眞降)이 있는데, 허강을 받는다는 것은 허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올바르지만 남이 볼 때는 옳지 않다. 이것이 정신이상이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못쓰게 된다. 이 병을 고치려면 자기가 진강이 아니라 허강을 받았음을 깨닫고 허령임을 인정하면 된다. 수도과정 중에도 이와 같이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면 스스로가 고쳐진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으면 밝아지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가면 점점 어두워져서 도에서 아주 멀어지게 된다. 내가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일이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로써 본인이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스스로가 깨닫고 깊게 반성하고 뉘우치면 제대로 갈 수 있다.
공부반에서 주문 한 번만 잘못 읽거나 졸아도 그 시간은 헛것이었다. 그것이 천지의 운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되면 큰일이었다. 공부반에서 주문을 바꿔 읽었을 때, 제시간에 주문을 바꾸지 않았을 때, 졸았을 때는 사고가 난 것이었다. (1990. 7. 14)
공부 돌려보면 처음에는 힘들어도 하다 보면 그다음 번에는 먼저 사람의 기운으로 공부가 쉽게 되는 것처럼, 선⋅교감들이 해놓으니 선무들도 하는 것이다. (1990. 9. 4)
이번 일처럼 그런 정신을 가지고 하면 앞으로 안 될 것이 없다. 그런 정신으로 나가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없다. 공부도 도통도 마찬가지다. 내가 시킨 일이니 자신감을 가지고 하면 되는 것이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유기심즉유지(有其心則有之) 무기심즉무지(無其心則無之)”라고 하셨다. 모든 것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실제 다른 게 아니다.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그뿐이지만, 잘 생각하면 앞으로 수도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991. 1. 3)
* 有其心則有之하고 無其心則無之하나니: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니 (요람, 16쪽)
앞으로 큰공부가 있을 것이다. 큰공부도 시켜보았는데 이거하고 똑같다. 이번 공사에서처럼 기술자, 기능공 같은 아는 사람을 시켜보면 이해가 안 가서 안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이해가 안 가니까 자기네가 배운 대로 하려고 한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무조건 신심(信心) 하나만 가지고서 함께 가면 그게 더 빠르다. 임원들보다 수반들, 수반도 처음 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빠르다. 그저 좋은 것 하나만 가지고 하니 빠르다. 오래된 사람들은 힘과 기국은 크다. 그러나 빠르지는 못하다. 부산에 있을 때 큰공부를 시켜보았더니, 빠른 사람이 있고 느린 사람이 있었다. 늦어도 누구라도 보름 넘어 삼칠(21)일 안에 다 된다.
다 되는 것을 개안(開眼)이라 한다. 우리 개안은 듣는 것, 보는 것, 뭐든 다 된다. 무슨 말이라도 거짓말은 하나도 없다. 가령 지금은 밤이면 자야 하고 때 되면 먹어야 하지만, 우리가 소망하는 목적을 이루어 선(仙)이 되면 자고 먹는 게 필요 없다. 전부가 내 마음에 있다. 누가 들으면 곧이 안 듣고 미친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되고, 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본다는 것이 지금은 종이만 하나 가려도 안 보이지만, 나중에는 멀고 가까운 게 상관이 없다. 눈이 열리는 것이 개안이고 그게 신안(神眼)이다. 들리는 것에도 멀고 가까움이 없다. 개안이 신안인데 <전경>에도 있다. 죽는 사람을 손만 대도 낫고, 보기만 해도 낫는다는 내용이다. (교운 1장 58절) 신안이 열리면, 가령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보기만 해도 낫는다. 눈 속의 시신경까지도 확대시켜 다 본다. 안 보일 턱이 없다. 보면 낫는다.
아무리 못하고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안 하려고 한다 해도 보름 이상 21일을 넘지 않는다. 안 될 사람은 없다. 앞으로 공부시키면 다 그렇다. 이번에 시킨다면 수련식으로 한다. 다른 공부 들어가듯이 순번대로 시키지 않는다. 빠른 사람부터 시킬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하는 사람들이 쉬워진다.
공부에 자고 안 자고는 문제가 아니다. 가령 음력 10월쯤 공부 시작하면 그 이듬해 음력으로 3월까지는 안 잔다. 그냥 다니고 하니 밖의 사람은 모른다. 그래도 하등 이상 없다. 몸이 축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몸이 더 가볍고 얼굴에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공부시킬 때 잠을 안 자도 3∼4일만 넘어가면 괜찮다. 먹는 것도 2일, 3일만 넘어가면 아무 문제 없다. 몸이 축나지 않는다. 공부할 때 처음에는 1주일, 2주일 시키다가 그 후 21일 공부를 시킨다. 시작할 때 체중을 달아보는데, 끝나면 체중이 많이 늘어있다. 건강하다.
무엇을 시키더라도 이번 공사에서 한 것처럼 누가(도전님) 시키는 거니까 된다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서 하면 되는 것이다. 도통도 마찬가지다.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여러분이 수도를 했다 해도 어느 정도인지 몰랐겠지만, 이것으로 해서 우리 수도의 힘이 어디까지 왔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다는 것, 많은 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걸 모르면 안 된다.
공부는 내수들이 많이 빠르고, 외수들은 아무래도 탁하다. 탁하면 도통 받는 데 지장이 있다. 얼마만큼 수도했는가가 중요하다. (1991. 1. 3)
시간이 모여서 날이 되고, 날이 모여서 달이 되고, 달이 모여서 1년이 된다. 시간에도 음양이 있고 날짜에도 음양이 있어 그날의 음, 양에 맞추어 기도주, 태을주를 읽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수도 공부다. 1후는 5일이고 그 이치로 주일을 본다. 공부도 여기에 맞추어서 한다. 5일을 공부하게 되면 5개 반이 되고, 이게 모여서 초강식(初降式)을 한다. 보름이 되면 초강이 3번이고 합강(合降)이 된다. 이것을 자리 공부라 한다. (1991. 2. 12)
1년 12달의 조화를 도라 하고, 이것을 공부하여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이런 조화의 한 자리를 맡고자 하기에 자리 공부인 것이다. 우리 도는 정성을 들여 병 낫고, 집 잘되고, 덕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다. 우리는 도통을 하려는 것이다. 도통을 하려면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생활화해야 한다. 해원상생이란 사랑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게 없는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을 생활해나가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말로만 말고 해원상생을 몸으로 실천해 생활해나가는 것, 그것이 수도다.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린애를 길러 나가는 그런 것이다. 밉지가 않고 귀찮지가 않고 원망스러운 게 없다. 밉고 귀찮으면 못 기른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해야 한다. (1991. 4. 20)
개안(開眼) 공부는 눈을 연다는 것이다, 정신이 통일되면 영이 맑아진다. 정신통일이란 다른 게 아니다. 특수수련반 공부시킬 때 잠을 안 재우고 공부방에 넣는데 10일 이상 잠을 안 재우면 아무 다른 생각이 안 든다. 그 상태를 정신통일이라 한다.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겪지만, 그 끝에는 정신이 통일된다. 정신이 신명인데 이게 통일된다. 이것을 개안이라고 하는데 눈을 연다는 것이다. 그러면 막히는 데가 없다. 한 열흘 자지 않으면 그때는 잡념이고 뭐고 다른 거 생각할 게 아무것도 없고 졸린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때 정신이 통일된다.
공부를 하던 내수가 견디다, 견디다 못해 나중에 얘기하는데 구렁이가 몸을 칭칭 감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몸이 차다, 무섭다는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믿었기 때문이었다. 믿는 마음이 아니면 쓰러졌을 것이다. 이것이 도통하는 과정이다. 믿으니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믿으면 무섭지도 않고 겁도 나지 않는다.
우리는 잠을 안 자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전에는 도장에 들어오면 잠을 못 자게 했다. 치성 때도 자면 안 된다. 잠이란 것은 필요가 없고 쓸모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공부는 잠 안 자는 공부다. 공부는 10월에 시작하면 그 이듬해 3, 4월이면 끝난다. 반년이면 된다. 밖의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공부는 자꾸 해야 한다. 해 본 사람들은 자주 하려고 한다.
공부할 때는 모든 척신이 다 동한다. 척신이 곁에 앉은 사람을 이용해서 방해한다. 마음에 심고(心苦)가 생기고 몸에도 고통이 생긴다. 같이 앉은 사람을 이용해서 공부하는 데 자꾸 방해한다. 척신이 얼마만큼 무서운지 모를 것이다. 모든 척이 빨리 풀려야 운수 받는 데 지장이 없다. (1991. 5. 14)
우리 공부는 자기 자리가 다 있다.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공부는 체(體)다. 체가 잡히면 그 안에 용(用)이 있다. 체용(體用)이다. 그러므로 자리는 다 있다.
<전경>에 자리를 탐내는 자는 다 죽는다고 그러셨다. (교법 1장 29절) 임원들은 잘 알아야 한다. 내가 그 자리에 못 앉을 것 같으면 사양해야 한다.
큰 그릇, 작은 그릇을 뭐로 측정하느냐 하면 첫째가 자기 밑의 도인 수(數)다. 자기 밑에 도인이 많은 사람하고 적은 사람하고 다르다는 것이다. ‘임원이 먼저 되었다, 나중에 되었다.’ 하는 것으로 따지는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드는 일을 중요시해야 한다.
직장이 있어서 공부를 못 들어가도 절대 낙망할 것 없다. 나중에 상대(上臺)는 저 밑에서 난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첫째는 연운의 인원수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포덕 많이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크게 보는 것이 사업 실적이다. 신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정확하게 본다는 것은 어렵다. (1991. 6. 12)
* 도주님께서 상대(上臺)는 하지하(下之下)에서 많이 나온다고 하셨다는 말씀이 전한다.
밑에 도인이 많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성심(誠心)만 가지면 된다. 일심(一心)을 가지고 하면 된다. 혈심(血心)이어야 한다. (1991. 6. 12)
* 신미년 5월 11일(1991. 6. 22)에 시학 공부가 시작되었다. 이날 아침 6시 19분이 하지 드는 시간이었다.
임원이 많아지면 나중에는 평도인 자리도 선⋅교감들이 들어간다.
이 공부가 바로 진법이다. 참 진(眞) 자 진법(眞法)이며, 진칠 진(陣) 자 진법(陣法)이다. 그러므로 어느 자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자리가 없다. 다 소중한 것이다. 군대에 분대⋅소대⋅중대⋅대대로 나아가는 조직체가 있는데, 바로 그 군대의 진법(陣法)과 같다. 잘못하면 다 죽는다. 공부를 24시간 하는데, 시간이 틀려도 안 되고 주문이 틀리거나 끊겨서도 안 된다. 만약 잘못하면 모두가 절단난다. 중곡동 시법기도공부는 상제님 모시고 기도하는 기도공부고, 여기 시학공부는 자리 공부다. 세 합강을 마쳐야 1군단을 마치는 것이며 한 도수가 마쳐진다. 여기서 하나만 어그러지면 다 절단난다. 다 죽는다. 지금 죽는다는 것이 아니다. 여태 수도한 것이 다 어그러진다는 것이다. 내 생명이 여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생명이 여기 붙어 있다는 걸 안다면 잘들 해야 된다.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공부이므로 아무렇게나 생각하면 안 된다. 이 공부는 하다가 말아도 안 되고, 하루 가서 내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남도 망치는 것이다. 안 가느니만 못하다. 직장이 있는 사람, 가정화합이 안 된 사람은 안 된다. 공부반 짜는데 절대 자리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기국에 맞춰야 한다. 상제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불평⋅불만도 할 수 없다.
공부하는 사람과 집에 있는 사람 다 똑같이 운수를 받는다. 성공하면 어느 자리고 간에 안 좋은 자리가 없다.
지금은 전부 땅에 있지만,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이며 이것이 도통이다.
지금 공부는 체(體)이고, 분⋅초⋅각은 용(用)이다. 그래서 공부에 참석 못 하더라도 자리는 많다. 공부하고 안 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공부자는 잘해야 한다. 소홀히 하면 큰 죄다. 공부를 잘못하면 남의 심부름 해주는 것이 된다. 공부를 못하고 안 한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믿는 마음과 정성만 있다면 어느 곳에 있어도 된다. 지금 공부는 자리 공부지, 운수를 받는 게 아니다. 시학공부는 자리를 잡는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앉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공부 못하는 분들을 잘들 이해시켜 주어라.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공부를 돌리는데도 공부에 못 들어가니 이제 뭐 하겠느냐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과 집에 있는 사람이 다 같이 똑같이 받는다. 시간이 있어서 사시(四時)기도를 꼬박꼬박 모시는 사람의 정성보다 형편이 안 되어 기도시간에 잠깐 심고만 드리는 사람의 정성이 참으로 크듯이, 내가 성심이 부족해서 안 하는 것은 모르지만 부득이하여 공부에 참석할 수 없다면 운수는 같다.
공부라면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자기 책임을 다하려면 잘 새도 없다. 재세 시에는 치성 때고 언제고 잠을 안 재우셨다. 우리 공부는 잠을 안 자는 공부다. 잘 시간이 없다.
포덕을 많이 하라. 사업을 많이 하라. 나중에 상급 임원이 많아지면 평도인 공부 자리까지 상급 임원이 하게 된다. 그러므로 평도인 자리가 낮은 자리가 아니다. 공부 자리가 원 체(體)가 된다. 몸뚱이가 되는 것이다. 그걸로 용사(用事)하고, 그 안에 자리는 말할 수 없이 많다. 세계 사람이 다 들어와도 자리가 남는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목석이라도 기운만 붙이면 다 된다고 하셨다. (1991. 7. 6)
틀리는 걸 사고라고 한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한 시간 대기를 시키는 것이다. 절대로 사고가 없어야 한다. 주문이 조금만 틀려도 얼마만큼 큰 것이 어그러지는지 알아야 한다. (1991. 7. 11)
공부하는데 주문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르지 마라. 고성을 피하라. 소리가 너무 크면 악성(惡聲)이 되어 신명이 응하지 않는다. 시학원이 다니면서 잘 일러주어라. 음성이 큰 것은 관계없다. 음성이 큰 것하고 소리 지르는 것하고 다르다. 소리는 순성(順聲)이라야 된다. 순조로워야 한다.
공부하는데 가화가 안 됐거나 직장 있는 사람, 아픈 사람은 넣지 마라. 못할 사람을 뭐하러 보내나! 강식 세 번과 시법을 해야 공부 한 번이 마쳐지는 것이다. 강식 때 못 온다는 사람을 넣으면 안 된다. 오히려 안 좋다. 아주 중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공부하다가 강식을 한 번 빠지거나 사고 내면 다 망쳐놓는 것이다. 여러 사람 것을 망치는 것이다. 망쳐놓은 사람이 좋을 수는 없다.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공부할 상황이 안 되는 사람은 안 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반 짜는데 회원으로 외수 3명, 내수 3명이 좋은데, 내수 숫자가 워낙 많고 외수 숫자가 많이 적으니 어쩔 수 없다. 관계없다. 공부할 때 그 시간에 읽는 주문이 바뀌어도 안 되고, 주문이 틀려도 안 되고, 끊겨서도 안 된다. 시간을 어겨도 안 된다. 시학원⋅시학관은 이런 일을 막으라고 둔 것이다. 제대로 안 되면 사고라 한다. 대단히 중요하니 각별히 유념하라. 시학원이 있는데도 시학관을 둔 것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이다. 또 사고를 막기 위해 공부 들어가기 전에 꼭 한 시간을 대기하고, 들어가서 한 시간을 공부한다. 그래서 결국 두 시간 공부가 된다. (1991. 7. 27)
금년에 큰공부를 시키려고 한다. 특수수련반을 뽑아서 시켜보려 한다.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고 항상 정신을 바로 하여 생활해나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특수반은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상태를 보기 위해 몇 명 뽑아서 시험적으로 시켜보는 것이다.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이 공부를 하면 마음의 고통[心苦], 몸의 고통[身苦]이 오는데, 마음과 몸의 여러 가지 고통을 이겨나가야 한다. 마음과 몸의 고통을 이겨야 하는데, 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이 공부를 시작하니까 또 난리가 아니다. 수강반들까지도 못 견뎌 한다.
이 공부를 해야만 하고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공부 안 들어간다고 해서 기운을 안 받는 것이 아니다. 다 기운을 받는다. 우리 일이 그렇다. 뭘 하면 그 사람에게만 기운이 가는 것이 아니고 다 내려간다. 수련반이 그 예다. (1991. 8. 26)
공부 인원이 열한 달 치밖에 없다면 열한 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섯 달 걸리는 4호로 공부를 끝낼 것이다. 4호도 안 될 때는 석 달인 2호로 한다. 내수 도인은 충분하다. 외수 도인이 모자란다.
‘백지도 맞들면 가볍다.’는 말이 있다. 36명 중 한 사람이라도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여 잘못되면 다 절단난다. 하나라도 더 끌어들여 하나가 되어야 우리가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 (1991. 9. 25)
공부하는 데도 몸의 고통, 마음의 고통, 정신적인 고통이 있다. 공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도를 닦아 나가는데, 사업을 해나가는 데도 여러 가지 고통, 어려움이 있다. 회관을 하나 짓는 데도 이웃 사람한테 방해를 받고 그러지 않느냐?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고통을 겪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된다. 거기에 따른 고통을 겪어나가고 이겨나가는 데서 수도가 된다. 힘이 되는 더 강한 마음이 생긴다. 사업을 하는 것이나 공부를 하는 것이나 똑같다.
실제로 공부를 일주일만 해 보면 다 안다. 몸, 마음, 정신적으로 고통이 들어오는 것을 일주일만 해 보면 안다. 가령 남한테 안 좋게 해서 미움을 샀다면 공부하면서 다 받아넘겨야 된다. 다 받아야 한다. 안 받으면 안 된다.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 집(회관)을 짓는 데 방해를 받아서 못해나가는 것은 전생이나 현생에 남한테 그만큼 했기 때문에 보복을 받는 것이다. 다 받아야 한다. 다 받아서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는 것이 닦는 것이다.
공부가 도통이다. (1991. 10. 30)
공부를 해 보면 대번에 안다. 3명이 공부하면 내 척신이 공부방에 앉은 다른 사람에 응해서 보복한다. 같이 있는 사람을 이용해서 자꾸 방해한다. 도인끼리도 그렇다. 반드시 전생, 과거에 무슨 잘못이 있다. 도를 믿는 데 방해가 되거든, 누가 나를 때리거든 반드시 손을 잡고 위로해주라. 내가 믿는 마음을 갖고 감사하고 나가라.
나는 가만히 있는데 괜히 상대방이 자꾸 나를 싫어하고 방해하면 그것을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저 사람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 척을 지었는데 척신이 저 사람을 이용하여 나에게 갚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가면 된다. 상대방을 감싸주면서 나가면 된다. (1992. 1. 11)
이번에 처음으로 큰공부라고 해 보았다. 여기 큰공부를 몇몇이 마치고 나왔는데, 배운 사람이 나은가? 못 배운 사람이 나은가? 공부할 때도 보면 배운 사람이 훨씬 낫다. 신명이 와서 응해주는 것도 그렇다. 무식한 사람보다 배운 사람은 요령이 있다. 안 배운 사람은 잘 못 한다. 신명이 와서 응할 때도 그렇다. (1992. 2. 8)
공부가 얼마만큼이나 중요한가에 대해 가끔 얘기했는데, 중요성을 모른다. ‘시간이나 채우고 간다.’ 하는 마음이다. 수련이나 중곡동 공부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중곡동 공부는 기도공부다. 이 공부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중곡동 공부에서도 시간은 지켜야 하지만, 혹 시간에 늦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공부는 우리 종단, 도인의 생명과도 같다.
이것은 임원들 책임이다. 방면에서 공부 보내려면 미리 연습을 시켜서 보내야 한다. 시학⋅시법은 도인의 생명이니 시간은 어떻게 지키고, 주문은 어떻게 한다는 것을 잘 일러줘야 한다. 여기 와서 사고가 난다면 그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선⋅교감은 최고 임원이다. 임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죄다.
원래 공부를 한다면 3일 정성은 드려야 하지만, 그렇게는 못 한다 할지라도 당일 정성은 드려야 한다.
부산에서 재세 시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도주님께 직접 공부에 대한 명을 모셨는데, 우리 도인에게는 공부하는 것이 생명보다 더 중하다고 말씀하셨다. 부산에서 여러 차례 돌아갔고 여기에서는 처음이다. 옛날 부산에서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 소용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운수를 받고, 용화세계가 되어서 후천선경 5만 년이 열리는데, 이것이 이번의 시학공부에 달려있다. 그러니 이 공부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번에는 천지의 흐름이 다 온다. 이번에는 연습이 아니다. 하다가 잘못되면 나중에 잘하면 된다고 하는데, 절대 그것이 아니다.
앞으로 후천의 천지도수가 이 공부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조그마한 잘못으로 후세에 재앙이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안 그렇다면 뭐하려고 이러는가! 한 번 하고 집어치우면 된다. 우리의 조그마한 잘못으로 후세에 재앙이 오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 이번에 시학원을 용서해주는 것은 앞으로 잘하라는 뜻이지,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 공부가 후천 정역 도수 5만 년을 짜는 것이다. 후천 5만 년이 이것으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주역 시대인데, 문왕 때부터 현재까지 재앙이 생기는 것은 이전에 무엇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옷을 만들 때 뭐 하나 잘못하여 태워서 겨우 맞췄는데, 입고 다니면 태운 곳이 먼저 망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치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한 말을 귓가로 허술히 듣지 말고 사실이라는 것을 믿고 나가야 한다. 얼마만큼 이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 공부가 우리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나 하나 잘 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나 하나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천지의 군생 만물에 다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공부는 나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
공부를 시켜봤는데 다는 못하더라. 몇 사람을 공부시키고 있는데 왜 내수를 먼저 시키느냐 하면 영(靈)이 맑아서이다. 여자는 수성(水性)을 띄고 남자는 화성(火性)을 띄고 있기 때문에 내수를 먼저 시키는 것이다. 신인상합(神人相合)이 도통이다.
여기에 공부한 사람이 몇 사람 있을 것이다. 많지는 않다. 공부하면 신을 본다. 보면 신명인지 잡신인지 구별해야 한다. 도장에 있는 신명하고 밖에 있는 잡신하고 완전히 다르다. 사람이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사람됨이 좋고 저 사람은 어떻고 하듯이 신도 마찬가지다. 도장에 신명이 있고 저 밖에도 신이 있다. 귀신도 있다. 교회나 절에도 거기 나름대로 신이 있다. 우리 도장의 신명들과 그 신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내가 추측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다. 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안다.
곁에 있는 사람이나 먼 데 있는 사람이나 영은 똑같다. 곁에서 기운 받는 것이 똑같다면, 멀리서 기운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 지방까지도 기운이 똑같이 내려간다. 모른다 하더라도, 저 멀리 있다 하더라도, 도인이면 기운을 똑같이 받는다.
공부해서 아는 척하는 것은 다 허령이다. (1992. 3. 18)
믿는다고 하면 공부를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똑같다. 이 사실이 틀림없다는 것을 믿어도 좋다.
공부가 우리의 생명이다. 그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1992. 4. 9)
여기 몇 분 되지 않지만 큰공부하신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안다. 절대 속일 수 없다. 여기 계신 분들(선⋅교감 전체) 다 신명이 각각 한 분씩 맡고 있다. 신명이 곁에 다 있는데 어떻게 속이나? 절대 못 속인다. 신명들은 속일 수 없다. 그것도 믿으면 믿어지고, 안 믿으면 안 믿어지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믿고 닦아 나가야 한다.
도를 믿는 것이 약이다. 내가 항상 얘기하지만, 병은 마음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1992. 5. 3)
우리 도는 신도(神道)이다. 큰공부 한 분들(봉강전에서 순감 공부한 분들), 몇 사람 나와 봐요. 이리 나와 봐요. (약 22명 나옴) 지금 여기에 나온 사람들도 있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시봉까지 합하면 한 30명 될 것이다. 언제든지 얘기하지만, 우리 도는 신도이다. 신명으로 심판하고, 신명으로 도통하고 운수를 받는다. 신명은 속일 수가 없다. 여기 계신 큰공부하신 분들, 이분들은 안다.
도인들 앞에는 한 분씩 신명이 다 따라붙어 있다.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믿지 않으니 속이는 것이다.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다. 여기 큰공부하신 분들은 다 본다. 신명이 보호해 주다가 잘하면 더 힘이 되고, 못하면 떠나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가다가 말 안 듣고 울고 떼쓰면 떠밀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해 보면 된다.
우리 공부는 남 잘되게 하는 공부이다. 다른 종교는 공부를 하고 기원을 해도 자기를 위해서 하고 자기에 국한하지만, 우리는 몇 사람이 공부해도 전국 방방곡곡 도인 모두가 똑같이 (기운을) 받는다. 전국 어디서나 믿으면 기운이 가고 안 믿으면 안 간다. <전경>에 너희가 믿음을 주어야 내가 믿음을 주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교법 1장 5절) 믿는 자에게는 가고, 안 믿는 자에게는 안 간다. 믿는 자는 받고 안 믿는 자는 못 받는다. 그냥 그런 것이 아니고 실지 그렇다. 실제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다. 큰공부한 분들은 지금은 더 알 것이다. 내가 안다고 해서 절대 아는 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1992. 5. 31)
해원의 법은 우리 도밖에 없다. 어디에 가서 조상을 해원시켜준다는 말인가? 그런 사람은 우리 도에 못 들어올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이 안에서 큰공부를 시키는데 신명들이 꽉 차 있다. 어디 한 치의 틈도 없다. 신들도 여기에 와서 공부한다. 그 신들은 우리 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이나 도인들의 조상들인데, 뭘 어떻게 누가 해원을 시켜준다는 것이냐? 큰공부하면서 자기 조상신을 안 보는 사람이 없다. 증조, 고조, 등등 다 본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도를 믿는 것은 모두가 조상 덕이고, 조상은 여기서 해원하는데 무슨 다른 해원이 있다는 말이냐? 누구든지 자기 부모, 조상들부터 본다. 원래 조상이 삼대 이상 적선을 안 하면 자손이 이 도에 못 들어온다.
절대 우리 공부는 병 고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상제님께서 병겁 하나 남겨두었다 하셨는데 지금 우리가 그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진강을 받게 되면 보기만 해도 낫고 말만 해도 낫는다. 쳐다보기만 해도 없어졌던 폐가 다시 살아난다. 지금 현재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믿기만 하면 된다. 가령 뼈가 어긋나도 맞춰지고, 구부러진 것이 펴지고, 부서져도 다시 맞춰지는데, 이 모든 것이 믿음에 있다. 신명을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1992. 6. 26)
상급 임원을 거쳐야 순감 임명을 모신다. 그러니 순감은 선감의 위다.
내가 못하게 해서 그렇지, 순감들은 마음대로 한다. 추운 것을 덥게, 더운 것을 춥게도 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안 되는 게 없다. 아직 시험 중이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깨끗한 정신을 가지는 것이 수도인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공부다. 정신과 마음가짐이 잘 나타나는 것이 공부다. 이곳 도장은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시학⋅시법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생명보다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기에 도장은 늘 정결해야 하고 수도의 만전을 기하려고 수호를 한다. 수호란 오가는 사람을 감시하는 게 아니다. 도 안에 법도와 제도가 있는데, 항상 도장 안에서 도인으로서 법도와 제도를 잘 지키는가를 살피고 지도해주는 것이 수호다.
도장은 참으로 신성한 곳이다. 정결이라 하면 무엇을 치워서 깨끗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바르고 옳게 하는 것을 말한다.
도통이란 신명들이 응해주는 것이다. 도장은 신성한 곳으로 신명들이 도장에 집결해 있다. 잘 닦으면 그 신명들이 우리한테 응해주는데, 바르게 닦은 사람에게 신명이 응해지는 것이다. 내 마음이 유리알같이 맑게 닦여 있으면 신명이 응해진다. 사실이 그렇다. 거기까지 되어야만 도인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도인을 그렇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임원을 비롯한 도인의 책무이다.
지금 때를 기다린다고 하나 그것보다 우리의 수도가 급하다. 전부가 유리알처럼 맑아지면 그것이 바로 도통인데, 지금은 정신이 탁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련과 공부가 필요하다. 순감 공부, 그 정도 받는 것도 잡념이 완전히 없어야 한다. (1992. 12. 28)
성⋅경⋅신, 안심⋅안신⋅경천⋅수도, 이것이 어렵다. 그러나 늘 얘기하지만 우리는 쉽다. 도통과 운수가 틀림없이 꼭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려울 게 없다.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공부가 많이 들어갔다. 밤에 자고 안 자고가 필요 없고, 꼭 먹어야 한다는 것도 없다. 밤새운 사람들이 몸이 더 가볍다. 하루에 한두 번 운동시킬 것이다. 맨 처음 20일은 어려웠다. 그때하고는 다르다. 먹는 게 필요 없다. 안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오히려 잠을 안 자고 안 먹어도 몸이 더 가볍다.
성⋅경⋅신, 안심⋅안신이 없으면 안 된다. 쉽게 말해서 믿고 자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감들이 시료 볼 때 조금이라도 잡념이 들어오면 보는 환자도 시원치 않다. 그것이 정신통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환자라도 어떻게 하겠다고 자신만 가지면 다 된다. 안 되는 것이 없다. 자신만 가지면 된다. 믿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하고 확신을 하라. 쉽게 말해서 동그라미가 어그러져 있는데 저것을 바로 펴 놓는다 하고 꼭 믿고 확신하면 그렇게 된다. 확신을 못 하면 그렇게 안 된다. 가령 뼈가 어그러졌다고 해도 자신이 꼭, 바로 갖다 놓는다고 생각하고 되었다고 하면 틀림없이 되는 것이다. 확신하면 되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자신 못하고 확신 못 하면 안 된다.
마음을 꼭 틀림없이 하겠다고 믿고 꼭 된다고 자신하고 확신하는 것이 정신통일이다.
도라고 보통 아는 작은 도통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천지를 운용해 나가는 것이다. (1993. 4. 27)
잠 안 자고 공부를 하고, 안 될 일이 없다. 잠을 안 자고 몇십 일 한 게 이 정도면, 나중에 의통을 하면 어떻겠느냐? 옳게 닦느냐, 안 닦느냐의 문제지, 없는 것이 아니다. (1993. 5. 28)
지금 순감들 120명이 공부하고 있는데, 1층은 좁아서 봉강전 2, 3층, 정각원 세 군데에 나누어서 있다. 내일모레면 석 달째이다. 보기에는 주문 읽고 하는 것이 쉬워 보여도 그게 아니다. 참으로 어렵다. 석 달을 잠 안 자고 공부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말이 석 달이지 졸리면 귀찮다. 그런데 그들은 과히 그렇게 어렵게들 생각지 않는다. 저렇게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실제로 시료를 해나가고 있으니까 어려운 줄을 모른다. 죽는 사람을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렇다. 되고 안 되고 그런 게 없다. (1993. 6. 24)
여주 봉강전에서 순감들 100일 공부 끝마치는 파석 치성(破席致誠)이 26일에 있다.*
* 음력 5월 26일(양력 7. 15)
내일모레면 순감들 100일 공부 마치고 파석 치성을 올린다. 만일에 정성이 아니었으면 그 공부는 안 되는 것이다. 공부에 강(降)이라는 게 있고, 취정(聚精)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 위험한 것이 약간 있다. 그래서 공부시키는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취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기가 지났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도 괜찮다. 말이 100일이지, 쉬운 것이 아니다. 100일이란 게 까마득한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심령을 통일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성이라야 한다. 정성이 아니면 안 된다.
신(信)은 믿을 신 자, 믿음이다. 믿어야 한다. 믿는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순감들이 이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나가고 있다. 시료를 한다 할 때 첫째 내가 믿어야 한다. 믿고 아주 확신을 해야 한다. 믿고 아주 확신만 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내가 하는 것을 틀림없이 믿고 해놓은 것이 아주 잘 되었다고 믿으면 안 될 것이 없다. 이것이 기본 정신이다. 이것만 가지면 공부뿐 아니라 모든 게 안 되는 것이 없다. 도인이라면 제일 중요한 게 믿음이다. 우리 도인으로서는 아주 중요하다. 우리 도인뿐만 아니라 사회 사람에게도 믿음은 중요하다. 사회에서도 믿음으로 산다. 서로 믿음이 없으면 못산다. 사람은 누구나 믿음으로 살아나간다. 믿음은 꼭 된다고 하고, 됐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수도의 기본 정신이다. 도인은 모든 일을 할 때 된다고 믿고서 하면 틀림없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1993. 7. 11)
공부하면 전생, 전전생 다 알아진다. 도인 하면 대개 전생에 뭔가 크게 일을 하다가 못 이루고 이번에 세 번째 와서 뜻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전경>에도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교법 1장 4절)란 구절도 있지 않으냐? 전생에 뭔가 큰일을 하려다 실패한 사람들이 다 우리 도를 닦는다. 공부를 하면 현재, 과거, 미래를 다 보는데, 도인 하면 대개 전생에 산속에서 중을 하면서 중생을 제도했든지, 뭔가 전생에 성덕(成德)을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생에서 대순진리회에 입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도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다 전생에 뭔가 잘했기 때문에 이생에서 도와 인연이 닿는 것이다. 한 생가지고 안 된다.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 태어나서 일을 못 이루고, 3대 적선을 해야 우리 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시료를 하면서 큰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하고 있다. 지금 시험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아픈 것을 낫게 해 주면서 시험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완전히 시험하고 나중에는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된다. 큰 것이 있다. 시험이다. 그 방법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도 방법만 일러주면 다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느냐? (교운 1장 41절) 완전히 되면 그 방법만 알려주면 다 된다. 방법만 완전히 하면 된다. 현재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그런 것이다. 잘들 해야 한다. (1993. 9. 8)
이것으로 된 것이 아니다. 아직 시험하고 공부 중이다. 아직 문을 열려고 손도 못 잡은 것이다. 손에 닿은 정도다. <전경>도 보고, 이것저것 다 보면 도통이 다른 게 아니다. 의통이다. 도통문을 열려고 문에 손을 댄 정도다. 그런데 여기다 몇 푼 안 되는 돈 받아서 뭐가 되겠냐. 시료는 이제 문을 열려고 지금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시료 갖고 돈 받으면 용서 못 받는다. 시료비니 뭐니 하면 운수 못 받아!
정신이 통일되면 영이 통하고, 영이 통하면 도통이다. 여기 순감들을 보면 영이 통해지면서 사물을 보면 지저분한 것이 젖혀지고 본래대로 깨끗하게 된다. 이것이 시료다. 우리의 목적이 도통인데, 제일 무섭고 모면하기 어려운 것이 병이다. 병겁이다. 그러나 도에 통하면 된다. 밝게 통해져서 보면 뭐든지 원 상태로 확 돌아선다. 뼈가 썩었다 하더라도 원래대로 돌아가고 피가 탁하다고 하면 쳐다보는 순간 싹 맑아진다. 지금은 모든 것이 시험 기간이고 이런 것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밖의 사람은 이해 못 한다. (1993. 10. 3)
순감들이 하는 주문은 자나 깨나 그 주문이다. 순감들은 2층, 3층에서 주문 읽고, 처음 들어온 특수수련반은 1층에서 주문 읽는데, 처음에는 다르다가 나중에는 같아진다.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같아진다. 그 주문 가지고 공부가 되고, 기운도 받는 것이다. 밖에 주문 가지고는 안 된다.
선감, 교감, 보정의 임명을 내게 직접 받고, 거기에다 순감이라는 임명을 직접 받았다. 그러니 전에는 자기 방면의 윗 임원 지시를 받았지만, 지금은 나(도전님)한테 직접 지시를 받는 것이다.
순감들 하면 지금은 다 갖고 있다. <전경>에 보면, 도통은 상재, 중재, 하재가 있다. 상재는 7일, 중재는 14일, 하재는 21일이면 도통을 하고, 하재는 알기는 다 알고 용사(用事)를 못 한다고 하셨다. (교운 1장 34절) 지금 순감들은 알긴 다 안다. 일부는 용사도 어느 정도 한다.
순감들 주문으로 모든 기운을 다 받는다. 그러면 여기 순감들에게서 배워 나가려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꺾어 보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쉽게 말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1994. 8. 4)
수도를 하고, 앉아서 공부를 한다 했을 때, 언제 된다는 것을 알면 공부가 안 된다. 환장해서 죽는다. 공부를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한부가 있을 수 없다. 도인한테는 시한부가 있을 수 없다.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우리는 도통이 목적이다. 우리는 자나 깨나 수도다. 수도는 여러 가지다. 성경신도 있고, 기도, 공부도 있지만, 항상 심령(心靈), 즉 정신을 통일시켜 나가는 것이다. 시한부가 들어가면 여태 닦아온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린다. 조금만 까딱 잘못해도 심령과 정신이 흩어진다. 그러니 시한부가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끝나는 것이 없다. 도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도통을 해야 끝나는 것이다.
유기심즉유지(有其心則有之)하고, 무기심즉무지(無其心則無之)이다. 있다고 생각하면 있을 것이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는 것이다. 그게 뭐냐면, 꼭 도통이 있다고 생각하고 믿으면서 도통을 받을 수 있도록 수도과정을 잘 밟아 나가면 도통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해나가면 도통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시한이 다 됐다면 세상이 다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도통할 날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시한이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시료를 안 받아도 도인이 건강한 것은 시료 기운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도 건강해진다. 꼭 도인만 병이 낫는 것이 아니다. 하다 보면 밖의 사람들도 받는다. 그 덕화를 밖의 사람들도 받고 있는 것이다. 시료 받고 도인뿐 아니라 이 사회도 건강해진다. 흉년도 없다. 도인뿐 아니라 도 안 믿는 사람들, 밖에 있는 사람들도 잘 받는다. 도를 믿는다고 받고, 도를 안 믿는다고 못 받는 게 아니다. 덕화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받는다. (1994. 12. 3)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가? 신인상합이 되면 그것이 도통이다. 외수는 외수가 일하는 것, 내수는 내수가 일하는 것을 봐요. 그것이 참말로 내 힘으로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 봐요. 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힘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 가령 시료를 볼 때도 갈비뼈 하나가 부러져도 바로 시료를 보면 그 자리에서 붙지 않느냐? 사람의 힘으로 되겠어? 신의 조화가 아니면 안 된다. 신이라는 것이 그렇다. 빠르고 정확하다. 여기 공부반 시료 사수들은 안다. 도인이 아닌 사람을 시료를 봐주고 전화를 해보면, 처음에 그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러다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어 괜찮네’ 하고 놀란다. 신명은 이렇게 빠르다. (1995.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