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감들 주문으로 모든 기운을 다 받는다
방금 도정실에서 수임 임원들한테도 그랬는데,
먼젓번에도 주문이 맞지 않아서 지적했다.
그런데 이번 치성에도 보니까,
순감들 있는 쪽에 선 사람들이 순감들을 누르려고 했다.
그것이 뭔 짓들인가? 그것은 참말로 큰 죄다. 참 딱들하다.
내가 순감들한테 물었더니 “주문을 얕게 했습니다.” 그런다.
주문을 악을 쓰고 읽어요.
순감들 주문을 이겨서 뭐할 거여?
내가 들어도 이상한데 신명들이 용서하겠어요?
될 수 있으면 배우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면 배워야지. 참으로 못 써.
내가 짜증이 나는데 신명들은 어떻겠어?
외수들은 아니다.
내수들이, 순감들 쪽에 선 내수 임원들이 그랬다.
그게 시기하는 거지, 뭐야!
시기, 질투하면 칠거지악의 하나라고 했어.
그것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있나?
순감들 주문 이겨보려는 마음이 아니냐? 참 딱들하잖아!
배워서 나가서라도 그렇게 하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지!
순감들이 하는 주문은 자나 깨나 그 주문이다.
순감들은 2층, 3층에서 주문 읽고,
처음 들어온 특수수련반은 1층에서 주문 읽는데,
처음에는 다르다가 나중에는 같아진다.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같아진다.
그 주문 가지고 공부가 되고, 기운도 받는 것이다.
밖에 주문 가지고는 안 된다.
참말로 선감들이 그런 것을 분별 못 해서 되느냐?
어느 방면이건 자기 방면에 순감이 있다면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 목적이 뭐냐?
잘 믿고 수도 잘해서 궁극적으로 도통하는 것이 아니냐?
내가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순감하면 상급 임원인
선감, 교감, 보정 임명을 나한테 직접 받고
순감 직위를 또 받았다. 중복으로 이중으로 받은 것이니,
그럼 대단한 것 아니냐? 그런데 그걸 꺾어서 뭐해요?
잘 이해들 해야 돼.
선감, 교감, 보정의 임명을 내게 직접 받고,
거기에다 순감이라는 임명을 직접 받았다.
그러니 전에는 자기 방면의 윗 임원 지시를 받았지만,
지금은 나(도전님)한테 직접 지시를 받는 것이다. 알아요?
그러면 이해를 해줘야 한다.
순감들한테도 이런 말을 안 했지만, 참 답답해서 하는 얘기다.
순감들 하면 지금은 다 갖고 있다.
<전경>에 보면, 도통은 상재, 중재, 하재가 있다.
상재는 7일, 중재는 14일, 하재는 21일이면 도통을 하고,
하재는 알기는 다 알고 용사(用事)를 못 한다고 하셨다.
(교운 1장 34절) 지금 순감들은 알긴 다 안다.
일부는 용사도 어느 정도 한다.
그럼 어느 정도에 들어갔다는 걸 알아야지!
요전에 포천에서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 그런다.
순감들 주문으로 모든 기운을 다 받는다.
그러면 여기 순감들에게서 배워 나가려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꺾어 보려고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쉽게 말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순감들이 지금 시료나 해주고 그러는 줄 알지만,
지금 공부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재는 알기만 하고 용사는 못 한다.
순감들이 암만 못해도 알긴 다 안다.
어디 막히는 것이 없다. 용사도 일부는 되지 않나?
안 그래도 그래, 치성에 주문 읽을 때 주문이 안 맞으면
내 주문을 낮춰서 주변 사람과 잘 맞춰 읽어야지,
각기 자기 것으로 고집하여 읽으려고 소리를 올리면
그것은 올바른 정성이 아니다.
우리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행하는 데 있어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도이고, 목적은 도통이다.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야 된다.
그래야 해원상생에서 도통진경(道通眞境)에 들어간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가 있다.
여러분은 판단 못 할 것이다. 가끔 내가 얘기하지….
우리의 목적은 도통, 즉 도통진경이다.
거기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수도다.
도를 닦는 것, 수도가 없이는
도통의 경지에 못 가고, 도통도 없다.
항상 수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수도는 정성, 공경, 믿음, 즉 성경신(誠敬信)이다.
성경신이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밖의 사람이 볼 때는 굉장한 것이다.
정성하고 공경하고 믿는 것은
수도는 그만두고라도 일상생활에서도 꼭 지켜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
성이 없어 봐요.
하려고 하는 데는 내 정성이 없으면 안 돼요.
성이 없다면 사람이 의욕이 없다.
의욕이 있어서 뭘 한다고 하는 데에는
정성이 없어선 안 된다.
경이란 공경인데, 상제님께만 쓰는 것이 아니다.
성경신 이것은 꼭 상제님께만 하는 게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목적하는 일에 쓰는 것이다.
우리한테는 상제님께 성경신을 하는 것이지만
밖의 사람은 자기 사업⋅일에 하는 것이다.
그 범위가 무척 큰 것이다.
우리한테 해당하는 것처럼
상제님께만 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정성이, 말하자면 의욕이다.
의욕 없이는 성이 없고,
성이 없으면 무엇도 이룰 수가 없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의욕이고,
거기에 정성이 없어선 안 된다.
경이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정성으로 뭐든지 공손하게 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막 해서 되겠어요?
즉 정성을 다 갖춰서 하려고 하는 것을 말함이다.
신(信)이라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성경신이란 범위가 굉장히 큰 것이다.
우리 수도는 성경신 삼법언으로 수도의 요체를 삼는다.
또 내 마음과 몸이 안정되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안 된다. 매사가 다 그렇다.
그래서 안심⋅안신, 이 두 가지를 이율령으로 법을 삼아
대순진리를 닦아 나가면, 그것이 수도가 되는 것이다.
성경신 이것이 굉장한 것이다. 이것만 해도 안 되는 게 없다.
성경신 삼법언으로 우리가 수도하는 데 요체로 삼고,
또 안심⋅안신을 법으로 삼아 대순진리를 닦고 또 닦고,
정성하고 또 정성하면 그것이 수도다.
여기에 영통이 있고, 도통도 여기에 있다.
영통이 도통이지 뭐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수도라는 게 어려운 것이다. 쉬운 게 아니다.
이렇게 해나가면 영(靈)이 통하고
영통(靈通)이 곧 도통(道通)이다.
여러분이 수도가 안 된 게 아니다.
수도가 되고 있다. 수도를 바르게 잘해야 된다.
늘 얘기하잖아? 내수들은 단청 가지고 얘기하고,
외수들은 일하는 것을 가지고 얘기하잖아?
단청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 영이 어느 정도 통했어요.
그러니까 그걸 긋고 그러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렇게 못한다.
영이 통하면 그것이 도통이다.
여러분이 그것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니까 그렇지,
여러분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에 일이 되는 것이다.
노인들도 자기 정성으로 해보자고 선을 그으니까 똑같다.
단청을 배웠건 안 배웠건 똑같다.
외수들도 마찬가지다.
배운 것이 없어도 누구라도 하라고 하면 다 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다.
훈시(1994.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