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통(宗統)
제 3장 : 59
癸卯(1903)년 겨울 어느 날 김보경(金甫京) 등 종도들이 시좌하고 있는 자리에서 혼자 말씀으로 '내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딘고?' 하시니라. 보경이 여쭈기를 '무엇이 그리 더디나이까?' 하니 '내 이제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니 아직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과 때가 이렇듯 더디니 어찌 민민(憫憫)하지 않으리요?' 하시니라. 보경이 다시 '그러하오면 저희들은 모두 무용지인(無用之人)이요, 또한 지금까지 헛되이 수종(隨從)하옴이니까?' 하고 상고하니 '체유기체(體有其體) 용유기용(用有其用)이며, 시유기시(時有其時) 인유기인(人有其人)이니라.' 하시니라. (무극진경)
註) 도주님께서 乙未(1895)년 12월 4일에 탄강하시니, 1903년이면 9세가 됩니다. 체도 그 체가 있고 용도 그 용이 있으며 때도 그때가 있고 사람도 그 사람이 있다는 말씀에서 체유기체(體有其體)는 무극의 진체이신 구천상제님을 용유기용(用有其用)은 태극의 진주이신 도주님을 뜻하심이며 시유기시(時有其時)는 도주님께서 15세시 만주 봉천으로 가시는 기차 안에서 계시로써 종통을 이어받으시는 봉천명의 때와 인유기인(人有其人)은 15진주로 천부적인 종통의 맥을 이으실 도주님을 뜻하심입니다.
제 9장 : 153
己酉(1909)년 4월 28일에 김보경 이치복 등 종도 몇사람을 거느리시고 대전역(大田驛) 근처의 철도주변에 행행하셔서 혼자 말씀으로 '올 때가 되었는데......,' 하시고 멀리 바라보시며 누구를 몹시 기다리는 표정이시니라. 종도들이 이상히 여겨 여쭈기를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시옵니까?' 하였으나 답을 않으시고 바라만 보시더니, 마침 남쪽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시고 반겨하시며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 십오세면 호패(號牌)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 과연 인유기인(人有其人) 시유기시(時有其時)로다.' 하시고 한참 동안 서 계시니라. (무극진경)
1 4월 28일에 김보경 등 몇 명의 성도를 거느리시고 태전(太田)역 근처의 철도 주변에 가시어 동서남북으로 오가시며
2 혼잣 말씀으로 “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멀리 바라보시며 누구를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계시니라.
3 성도들이 이상히 여겨 여쭈기를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십니까?” 하니 아무 말씀을 않으시고 바라만 보시더니
4 마침 이 때 달려오는 기차를 보시고반기시며 말씀하시기를
5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남아 15세면 호패(號牌)를 차나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 하시고
6 한참 동안 서 계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道典 5편 104장)
제 1장 : 38
도기 원년 기유(己酉 : 단기 4242, 서기 1909)년 4월 28일 날이 새기 전에 전가족이 도장의 인솔하에 왜헌의 감시를 피하여 창원역에서 기차로 망명길에 오르시니, 일행은 10여 명이며 간단한 의류와 집기 등을 가지고 신의주로 가셔서 배편으로 압록강을 건너 마차로 수둔구에 안착하시니라.
제 1장 : 39
도주님께서는 창원역을 출발하신 후 처음에는 망명준비의 과로로 피곤하셨으나 미시(未時)경, 대전(大田) 부근에 임어하셔서는 정신이 상쾌하시고 기운이 충천하신 중에 마음공부를 조금도 늦추지 않으시니라. 이때 홀연히 일광(日光) 같은 용안에 황금색 용포의 신인(神人) 한 분이 현현(顯現)하셔서 우레 같은 음성으로 하명하시기를 '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의 진주(眞主)니 이는 막중한 천기(天機)라. 그대가 나의 도통(道統)을 이어 치천하도수(治天下度數)로 무극대운(无極大運)의 대공사를 성취하되, 내 명교(命敎)를 받들어 태극(太極)의 진법(眞法)을 용(用)하면 무위이화(無爲而體)로 광구삼계(匡救三界)하리라. 그대의 호는 정산(鼎山)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며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나는 구천의 천존상제로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이 말씀에 정신이 더욱 활연하셔서 이 신인이 바로 진리의 당체이신 구천상제이심을 깨닫는 동시 '봉천명(奉天命)'의 도열(道悅)속에 몸소 '태극진주(太極眞主)'임을 대오자각(大悟自覺)하시고 삼계(三界)를 광구(匡救)하실 각오를 마음 속에 맹세하시니라. (태극진경)
註) 증산도의 도전에도 이 기록이 나와 있군요. 기유년 1909년 상제께서 천지공사를 보신 마지막 해에 4월 28일 대전역에 나오시어 창원에서 출발한 기차에 타고 있는 15세의 도주님을 대전에서 마중하시며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 15세면 호패(號牌)를 차나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하시며 삼계의 진주가 될 도주님께 위의 계시를 주시고 이해 6월 24일에 화천하십니다. 상제께서는 9년 천지공사로써 후천 5만년의 설게도를 설정하시었고 도주님께서는 이 설계도에 맞추어 50년 공부종필로 대도의 진법을 짜시었으니 무극이 곧 태극이며 도로서 일체이십니다.
제 6장 : 45
하루는 금산사에 행행하셔서 미륵금불과 기대(基臺)를 친감하시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과연 증정일체(甑鼎一體)며 양산도(兩山道)로다.' 하시고 화위전녀(化爲全女)와 주초위왕(走肖爲王)을 하교하시니라. (무극진경)
'그대들 가운데 누가 나를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방자한 소리니라.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었고, 금산사 장륙금신(丈六金身)은 손에 들었으며, 증산상제님께서는 입술 속에감추셨고, 나도 여기 있느니라.' 하시며 혀를 들어 보이시니 혀 밑에 단주(丹珠)가 영롱하니라
(태극진경)
註) 진표율사가 금산사의 용추 못을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위에 미륵불을 봉안한 것은 증산 정산의 양산의 진리를 암시하여 후천대도의 근원을 밝혀놓은 것이며 선천의 하도와 낙서가 물에서 표출되듯이 후천대도의 진리도 1.6水 근본인 물에서 즉 용추못에서 세워진 솥과 시루의 관계로 나타나며 상제께서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심도 미륵불과 솥의 양산의 이치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정북창의 금산사가 또한 솥과 미륵불의 관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본 자료실에 금산사가 전문과 해설이 있습니다.
'오는 잠을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외워라. 하늘에 으뜸가는 임금이니 5만 년 동안 동리동리 각 학교에서 외우리라.' 하시니라. (교운1장60절)
'그대들이 지금 태을주를 외우고 있으나 그 뜻을 알고 외우느냐? 만사무기(萬事無忌) 태을주, 포덕천하(布德天下) 태을주, 소원성취(所願成就) 태을주니라. 그러므로 한자 한음에도 성경신을 다하여 마음을 다져 외워야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의 감응이 있으리라.'
'또 천상에는 팔만사천 제대신장이 있고, 사람의 몸에 팔만사천 모원공(毛元孔)이 있어 그 모원공마다 모원신(毛元神)이 있느니, 태을주의 정기(精氣)가 거기에 차야 도체도골(道體道骨)이되느니라.' (태극진경)
제 8장 : 22
궤 안에는 '오강록(烏江錄)' '설문(舌門)' '반구제수(半口齊水)'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 등의 글을 쓰시고 글자마다 화각(火刻)하신 다음, 내부 정면의 문자 주위에 24점을 주사(朱砂)로 돌려 찍으시며 '이 궤는 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遁櫃)'니라.' 하시니라. (무극진경)
도주님께서 둔궤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사배를 올리시므로 일동도 따라 올리고 내부를 살피니 그 안에는 양피(羊皮) 한 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들어 있으니라. 내부 정면 중앙에는 '오강록(烏江錄)', 그 좌측에 '설문(舌門)', 우측에 '반구제수(半口齊水)', 좌면에는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우면에는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이라는 화각서(火刻書)가 있고 정면 문자 주위에는 주사(朱砂)로 24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으니라.
상우가 지난 봄에 둔궤의 내부를 살피고 그 신비에 감동한 이래, 그 비의(?意)를 깨닫기에 골몰하다 못하여 연말 어느 날 도주님께 오강록과 설문의 뜻을 신중히 여쭈니 '오강록(烏江錄)은 나의 비결이고 설문(舌門)은 너희 비결이니 더는 묻지 말라.' 하시니라. 다시 여쭈기를 '양피는 미생(未生)의 뜻이옵고, 24점은 사철의 뜻이오며 반구제수(半口齊水)는 선생님의 존함(尊啣)이 분명하오나 반개국(半開菊)의 뜻은 무엇이옵나이까? 하교하여 주옵소서.' 하니 '국화는 9월 5일에 반쯤 핀다는 뜻이니라. 그러나 이런 일에 몰두하면 수행에 방해되니 근신하고 수구여병(守口如甁)하라.' 하시니라.
'한패공(漢沛公)의 성공은 신모야곡(神母夜哭)에 있고, 한광무(漢光武)의 성공은 적복부(赤伏符)에 있으며, 나의 성공은 오강록(烏江錄)에 있느니라.'
'주회암의 무이구곡(武夷九曲)과 송우암의 화양구곡(華陽九曲)이 좋다 한들 어찌 나의 감천구곡(甘川九曲)만 하랴? 내가 초패왕 강동자제(江東子弟) 8천인의 '해원도수' 로 이제 8백호의 천장길방을 여는 공사를 마쳤으니 이는구천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오강록도수에 맞았느니라. 상제님께서 일찍이 허령부로서 태인도장, 지각부로서 회문도장을 점지하신 허령도수와 잠룡지각도수의 공사를 마쳤으니 이제는 그대들이 현무경 신명부를 보라. 무이구곡을 좌서(左書)하신 이 길방 명당 보화성역(普化聖域) 청학동(靑鶴洞)에 그대들이 살게 되었으니 다시 천은(天恩)에 보은하는 뜻으로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려야 할지니라.'
'용마(龍馬) 신귀(神龜)는 모두 물에서 나왔고 또 하우씨의 9년 치수는 낙서에 유래함이나, 나의 5만년 후천대운(後天大運)은 오강록(烏江錄)에 유래함이니라. 낙수와 오강은 강하(江河)의 중류이나 이곳 감천용담은 황하(黃河)와 낙수(洛水)로 통하는 낙동강과 동해의 수회처(水廻處)니라.' (태극진경)
註) 채지가의 초당의 봄꿈에 반구제수 알련마는 어이그리 철도몰라
이심구일 찾아가서 주청림을 하였어라
半口齊水: 半折,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절반이 되죠. 折+口=哲, 齊+水=濟
이십구일은 작은달이죠. 小月+ 走靑林= 趙靑林
靑= 十二月 林=十八+十八=36 도주님 탄강일 12월 4일 화천일 3월 6일
확연히 아시겠죠?
丁巳(1907)년 윤2월 초6일 새벽에 공부하시던 중 구천상제님의 계시(啓示)를 받드시고, 당일로 매씨 봉귀(鳳貴)와 사촌아우 길룡(吉龍)을 거느리시고 노고산에서 3일 간 목욕재계하시며 많은 전수(奠需)를 장만하셔서 계시에 따른 '득도치성(得道致誠)'을 올리시니, 이날이 도기 9년, 정사(丁巳) 윤2월 초10일, 양력 4월 1일 계유(癸酉)일진이고 시각은 계축(癸丑)시니라. (태극진경)
註) 도주께서 23세시에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에 감오 득도하심은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을 이루신 것입니다.
도주님께서 정유(정유 : 도기 49, 단기 4290, 서기 1957)년 원조에 임원들의 세배를 받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글 한 구를 외우리니 잘 기억하여 두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去年四月何四月 運來靑龍是四月
거년사월하사월 운래청룡시사월
4월 초4일 아침에 포장 호장들을 정사로 부르셔서 수라를 함께 진어하신 다음, 하교하시기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그대들은 모두 태극도의 공인(工人)들이니라. 반드시 알아 둘 일이 있으니 오도의 중대사는 모두 4월에 이루어지므로 음력이든 양력이든 4월은 내가 잊지 못할 달이니라. 봉천명과 득도가 그러하고 천보와 황극도수, 태인 회문 부산 세 도장의 개시가 모두 그러 하지마는, 이는 이미 지난 도수이고 그보다 더 큰 도수는 돌아오는 4월이니라.' 하시더니 '거년사월 하사월(去年四月 何四月)고? 운래청룡 시사월(運來靑龍 是四月)이라.' 하는 한시 한 절을 읊으시니라.
1958년 2월 15일 밤에 금현이 여쭈기를 '어느 비결에 '청실기주(靑失其柱) 향무일점(香無一點)'이라는 구절이 있사온데 그 뜻을 하교하여 주옵소서.' 하니 '너희 스스로 곧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註) 청실기주(靑失其柱) 향무일점(香無一點)은 격암 남사고의 마상록에 있는 비결로 도주님의 화천일을 나타내며 지기금지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는 음력 3월 6일, 양력 4월 24일을 뜻합니다. 靑이 그 기둥을 잃고 香에서 일점을 없애면 三月 六日이 됩니다.